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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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문민의 대림칼럼]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이다 댓글:  조회:500  추천:0  2022-02-17
전후석의 '당신의 수식어'를 읽고 문민 서울국제학원장 문민 약려 :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졸, 이주동포정책연구원 (2010~2013),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 (2011~현재), 어울림주말학교 교장(2014~2017), 서울국제학원 원장 (2014~현재).한중포커스신문 편집위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저서 : 귀화시험 한권으로 합격하기, KBS '거리의 만찬-대림동 블루스' 출연(2019) 당신은 누구십니까. 30대 재미한인 젊은 작가 전후석이 던진 질문이다. 그가 쓴 책표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숲 같기도 하고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아 알른거린다. 는 작가 본인이 디아스포라이면서 또 다른 여러 그룹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언급 한 책이다. 전후석 작가는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다큐 영화까지 만들었다(영화). 디아스포라 콤플렉스에 젖어 있었던 필자는 젊은 작가가 어떻게 디아스포라에 대해 썼나 궁금해서 책을 펼쳐들었다. 저자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중국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중국 친구는 농담으로 저자의 이름을 앞뒤돌(필자의 이름이 전후석, 前后石 앞 전, 뒷 후, 돌 석으로 임의로 해석) 이라고 불렀다.  전후석 작가는 여러 나라를 종횡무진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와서 초중고 교육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대학 공부를 하였다. 대학 마치고 중국 연변에 가서 인턴 그리고 쿠바, 브라질, 요르단, 러시아... 이 와중에 재미한인, 쿠바 한인, 중국 조선족, 브라질 한인, 러시아 고려인, 입양아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그리고 한국으로 귀환한 탈북자, 중국동포, 고려인 동포 등 다양한 디아스포라를 만나고 인터뷰하고 봉사활동하면서 이들이 각자 처한 환경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전후석은 헤로니모 선생의 삶을 통해 이중, 다중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정리되고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고 한다. 헤로니모는 100퍼센트 쿠바인이자 100퍼센트 한인, 그 이상의 세계 시민성을 갖췄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태어나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태아 때부터 투쟁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고향이 한국이란 이유로 주자파走資派 누명이 우리 가족에 씌워졌다. 아버지는 물론 엄마 뱃속에 있던 나까지 투쟁의 대상이 되어 끌려 다녔다고 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나에게 나의 뿌리를 알게 해 줬고 내가 한국에 와야 하는 당위성을 알려주었다. 나는 광복 50주년 되던 해에 한국에 왔다. 당연히 와야 할 곳에 왔다고 생각했던 꿈들이 한국에 온 후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나 개인의 정체성보다 ‘한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 더 혼란스러웠다. 나뿐만아니라 한국인들도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한국에 와서 다시 대학 다닐 때 교양과목 강사였던 탁석산 선생이 쓴 을 보면 한국인들조차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한국에 대해 명쾌한 대답이 없는 것 같다. 전후석이 쓴 를 읽고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본다. 한국은 더 이상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이젠 다양한 디아스포라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이다. 중국의 조선족, 미국의 재미코리안, 일본의 재일코리안, 러시아의 고려인, 유럽의 입양아 그리고 국내로 귀환한 중국동포, 고려인, 탈북자, 난민...를 모두 포용한 집합체이다. 저자는 더 큰 나를 만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떠난 디아스포라라면 나는 돌아온 디아스포라이다. 돌아와 내가 첫번째로 해야 할 과제는 동질성 회복이다. 그리고  더나은 한국을 만드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시인 박춘혁이 직접 작시, 작곡하고 부른 노래를 들어본다. ... 우리는 바람에 흩어진 작은 씨앗 언젠가 이 땅에서 뿌리 내리리 우리는 파도에 부셔진 모진 생명 언젠가 바다에서 다시 만나리... 우주의 영원함 속에 찰나같이 스쳐 지나가는 삶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일 것이다. 동북아신문
21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 댓글:  조회:1217  추천:1  2020-03-11
[대림칼럼]   서울국제학원 원장 문민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졸업, 이주동포정책연구원 (2010~2013),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 (2011~현재), 어울림주말학교 교장(2014~2017), 서울국제학원 원장(2014~).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다.   40년 전 학생이 되여 학교라는 존재를 알고 지금까지, 3월이면 개학이고 12월이면 방학하는 것이 철칙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새 학년 새 학기 3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3월이 되면 1학년이였던 것이 2학년이 되여 후배도 생긴다.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바뀐다. 긴긴 겨울방학을 보냈으니 얼른 학교 가서 새로 생길 짝과 놀고 싶다. 3월 새학기에 대한 기다림과 설레임은 요즈음 학생들도 마찬가지일게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개학 연기!! 그것도 3주씩이나 휴교란다.   휴교로 텅빈 교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휴교’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이다. ‘방학’에 대한 경험은 많아도 ‘휴교’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다. 휴교 동안 학교운동장에 가서 신나게 축구하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면 3주 휴교가 아니고 4주 휴교라도 좋겠지만 집에서만 있으라니 죽을 맛이다.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된 ‘휴교’를 맞아 역설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였다.   휴교의 가장 큰 리유는 악덕 ‘코로나19’였다. 이것부터 잡고 봐야 했다. 설 전(지난 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뉴스를 보면서 설 련휴 내내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코로나19’를 잡을 것인가. 일단 예방과 방역이 최우선이다. 설 련휴를 마치고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약국. 병원에서만 사용하는 줄 알았던 소독제를 구입해서 교실마다 구석구석 소독청소를 했다. 학원 계단입구에 손소독제를 비치해 놓고 학생들이 학원 현관문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손 소독을 하도록 했다. 교실시설 방역뿐만 아니라 학생들 개인위생과 예방수칙을 지키도록 교육했다. 매일매일 샤워하고 옷을 자주 세탁해서 입도록 권했다. 손을 자주 씻지 않아 손톱 밑이 까만 학생들에게 손톱깎이를 선물하며 개인위생을 지키도록 다독였다. 마스크가 부족했지만 지역 시민단체와 구청에서 십시일반으로 지원해줘 등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영등포구청에서 보내준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는 학생들[사진 서울국제학원 제공]     이 지면을 빌어 지역시민단체와 영등구청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학원에서의 ‘코로나 잡기’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였다. 학부모님들은 학원에서 수시로 방역하고 등원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학생들은 하나 둘씩 결석을 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학원은 더 이상 배움의 터전이 아니였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꼭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이 와중에 언론에서 중국인이 많이 사는 대림동을 코로나의 온상으로 매도하고 있었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라는 국민청원이 71만명을 넘었다. 28년전 어렵게 수교한 한중관계가 당장 단교라고 할 것처럼 보였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집밖에 내보내기가 두렵다고 한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국의 TV뉴스를 보기도 민망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정제된 중국 뉴스를 자주 보게 된다고 한다.   2월,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교육부에서 미루어 개학 연기를 예고했지만 그래도 3월이 되면 개학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새학년 새학기 개학으로 즐거워야 할 등교길에 끝끝내 학생들의 그림자를 볼 수 없었다.   한국 1만1600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3주동안 휴교!! 휴교로 540만 학생들의 발목이 꽁꽁 묶였다.   휴교한다고 공부도 멈출 수 없다. 국어, 영, 수 교과서는 잠간 덮어둘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교과서’는 덮을 수 없다.   나는 왜 한국에 살고 있나현재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나 개인적인 생각에 이어 내가 소속된 사회에 대해 고민해 본다.   ‘한-중 운명 공동체’ 과연 무슨 의미인가. 유구한 력사속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갔던 선조들의 남긴 행적은 어떠했나. 오늘날 한중관계는 어떠한가.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동안 학원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 지도에만 올인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한 교과목을 더 추가해야겠다. 바로 ‘나(吾)’라는 과목이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왜 이곳에 있으며 내가 앞으로 살 세상에 대한 준비를 진지하게 다뤄야겠다. 내가 바르면 우리가 바르고, 우리가 바르면 사회도 바르게 될 것이다.   난생 처음 ‘코로나’를 겪으면서 앞으로 우리의 삶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과정의 련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생처음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지라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무섭다고 피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대비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코로나 여파로 여기저기서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남 탓만 무성하다. 모든 것이 정부의 잘못이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만 기다린다. 이 와중에 착한 사람도 있다. 서울국제학원이 입주해 있는 건물 주인이 코로나 극복에 동참하여 앞으로 임대료의 일부를 5개월 동안 할인해주기로 약속했다.   학원생들의 코로나예방을 위해 현빈 엄마가 손세정제 10병을 보내왔다. 중도입국으로 원래부터 학습결손이 많은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화상(视频)수업으로 대체했다. 카메라 앞에서 장시간 강의로 목이 쉬고 힘들었지만 휴가 신청한 선생님이 한명도 없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중국 류학생도 우리 학생이다   일부 국회의원을 비롯한 한국국민들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외칠 때 한국정부의 교육수장인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중국 류학생도 우리 학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오는 중국류학생이 행여나 홀대받을가봐 대학교에 달려가 기숙사 상황을 직접 지도 점검하였다. 중국 류학생이 가장 많은 성균관대, 경희대 두 대학의 재학생만 해도 7천명이 넘는다. 이는 전체 한국내 중국 류학생의 10%에 달한다. 유은혜 장관의 언행은 장차 한중 관계의 가교 주역이 될 류학생들에게 크나큰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휴교를 맞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였다. 결국 인간은 과학으로 코로나를 이길 것이며 또한 사랑으로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흑룡강신문 
20    동포정책 패러다임 대전환 댓글:  조회:1237  추천:3  2019-08-27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다”   작성자: 문민   요즈음 한국 뉴스에서 온통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내용으로 도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법무부에서 새로 시행하는 9.2 동포정책은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뉴스 중에 빅뉴스이다.   9.2 동포정책은 그동안 시행해 왔던 정책에 비해 격이 달라졌다. 동포들 사이에서 신분 상승의 증표였던 F-4 체류자격을 취득하려면 기술자격증만 있어도 되였는데 이제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기본 소양도 가져야 한다. 단순히 평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 가르쳐서라도 하겠다고 한다. 바로 사회통합프로그램이다.   사회통합프로그램에서 4단계 이상이면 재외동포 체류자격(F4)을 부여한다. 이는 9.2 동포정책의 핵심이다.   법무부는 성급히 기술자격증을 취득하기 보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한국어부터 배우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데 더 관심을 보였던 동포들에게도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동포를 산업현장에 필요한 ‘기술’로만 보던 것이 우리 ‘이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자격과 사회통합프로그램은 질적으로 다르다. 운영기관도 다르다. 기술자격은 로동부 소관이고 사회통합프로그램은 법무부 소관이다. 얼핏 보기에는 기술자격이 다양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 동포들의 취업과 련결될만한 기술은 료리, 건설 등 몇가지뿐이였다. 그럼에도 많은 동포들이 기술자격에 몰렸던 것은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 있고 한국에서 계속 체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회통합프로그램으로도 가능하게 되였다. 그리고 이것을 한국어능력을 립증하는 중요한 근거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어능력을 어떻게 립증할것인가?   9.2동포정책 자료를 보다보면 한국어능력시험(TOPIK)과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에 대해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어능력시험(토픽이라고도 함)은 국립국어원에서 주관하는 국가시험으로 한국대학 입학시 류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필수요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지원하려면 최소 4급을 취득해야 한다. 시험이 필기로만 이루어져 조선족 소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3~4급을 거뜬히 통과할 수 있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은 한국어능력시험보다 조금 복잡하다. 우선 시험류형이 다양하다. 사전평가, 중간평가, 종합평가가 있다. 그리고 구술시험도 있다. 단순 한국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소통능력도 평가한다. 평가후 수준별 100시간 교육을 실시한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은 www.socinet.go.kr에서 신청한다. 먼저 사전평가를 신청해야 한다. 사전평가는 연 평균 6회 시험을 보는데 2019년 8월 현재 2번 기회가 더 있다.   사회통합프로그램에서 주로 사용하는 교재는 (1단계~4단계)와 (5단계)이다. 1단계에서 4단계 과정은 교과서 제목 그대로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어 교육이다. 이 과정은 언어 습득의 기본인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가 모두 가능하도록 교육한다. 5단계는 한국어 4단계 이상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정치, 문화, 력사, 지리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도록 50시간 수업으로 짜여져있다. 한국사회이해(5단계)는 일부 대학교에서 유학생들의 교양과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009년부터 실시한 사회통합프로그램은 초기에는 결혼이민자들이 주로 수강하였다. 이들은 대부분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 대부분 1단계부터 수업을 들었다. 일부 중국동포들도 사회통합프로그램에 참여하였지만 워낙 한국어 수준들이 어느 정도 있었던 터라 사전평가를 해보면 바로 3단계 혹은 4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사전평가를 더 잘 받으려면 필기시험(50문항) 뿐만 아니라 구술시험에서 응시 태도와 의사소통에 류의해야 한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숙명녀자대학교, 동국대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로 출강했던 필자의 경험으로 봤을 때 중국동포들은 사회통합프로그램보다 기술자격시험을 더 선호했던 것 같다. 그 리유는 동포들이 사회통합프로그램은 교육기간이 너무 길고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리해가 여타 나라 사람들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동포들의 년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조선족학교를 다닌 경험이 없는 자녀들이 들어오면서 부모세대와 다른 패턴을 보였다. 한국어가 어눌한 상태에서 바로 기술자격 시험에 도전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모한 결정이였다. 그러나 적어도 9.2동포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그나마 가정형편이 괜찮은 동포들은 오전에는 기술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다른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기술자격시험에 올인했다. 그러다 운 좋게 기술자격 시험에 합격이라도 하면 바로 배우고 있던 한국어를 그만 두었다. 이처럼 동포사회는 현재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리해보다 기술자격이 우선시 되는 삶을 살아왔다.   한국법무부의 금번 정책은 기존의 출입국 중심 정책에서 국내에 체류 중심으로 정책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돈 벌면 중국으로 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한국에 정주(定住)하는 동포들이 늘어나고 20년이상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다. 이에 정부차원에서 한걸음 앞선 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은 더 이상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다. 이제는 함께 갈 이웃이다. 사회통합이 답이다. 기술만 가지고는 안된다.’     문민 약력: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졸업, 이주동포정책연구원(2010~2013),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 (2011~현재), 어울림주말학교 교장(2014~2017), 서울국제학원 원장 (2014~현재), 한중포커스신문 편집위원, 저서: 귀화시험 한권으로 합격하기, KBS 출연(2019) 동북아신문 
19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며 댓글:  조회:1642  추천:1  2016-09-01
      중국동포 밀집지역에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이라는 기사가 동포사회에 빅뉴스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국제학교 설립에 대해 크게 반기고 있다. 굳이 국제학교가 아니어도 현재의 한국학교에 대해 대부분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는데 멀리 타국에 와서 한국어도 배우고 중국어까지 배우는 일거양득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그동안 한국의 국제교육은 밖으로 나가는 것   그동안 한국의 국제교육의 중심은 영어를 배우러 영어권 선진국에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유학을 통해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 더 큰 인재로 되도록 하려는 한국의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제교육의 부담은 적지 않았다. 어린 자녀가 해외에서 혼자 공부하기 어렵기에 부모 중 한명이 같이 동행하다보니 ‘기러기아빠’가 생겨났다.   한 가정이 아이 교육을 위해 양쪽으로 나눠 생활하다보니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낮은데 있는 아이들마저 해외로 조기유학을 가다보니 국내 재학생이 점점 줄어 대도시의 학교에서도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재외한인학회의 간담회에서 영일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의 발표에 따르면 전교 재학생이 천 명이상이었던 학교가 지금은 재학생이 4백 명도 못 미친다. 그나마 현재 재학생의 30%~40% 중국 출신이다.   영일초등학교보다 외국학생 비율이 더 많은 학교도 있다.   내국인 학생은 점점 줄고 반대로 외국학생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학교 구성원만 볼 때 이미 국제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孔子가 일찍이 말씀하기를 인재시교(人材施敎)라 했거늘 학생들의 소질과 다름에 따라 최상의 교육을 하는 것이 동양인이라면 다 아는 도리다. 외국출신 학생들에게 오로지 한 가지-한국교육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그들이 선택하여 왔다 할지라도. 국제학교의 설립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학교 교육은 학생, 교사, 그리고 교육과정 삼박자 맞아야   중국의 조선족학교가 그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족 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족 교사가 조선어문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요즈음 조선족 학생이 줄어 중국 한족학생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족학교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조선족교사가 있고 조선어문 교육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초등학교의 단계에 국제학교를 설립하려면 최소 3박자가 맞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학생이 일정 비율이상으로 유지되는 학교의 경우 우선 고려대상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은 교사 수급과 교육과정인데 그중 교사수급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찍 한국을 떠나 외국 학교 교육을 경험하고 귀국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혹은 한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 출신 인재들을 영입하면 된다.   문제는 교육과정이다. 현행 교육제도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외국어 과목을 임의로 정규과목으로 설치할 수 없다. 현재 배우고 있는 영어도 1학년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3학년부터 정규과목이다. 여기에 외국어를 하나 추가한다는 것은 법을 바꿔야만 가능한 일이다.   법을 바꾸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마음만 먹으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는 일이다.   초등학교 국제학교 설치는 의미 커   그동안 중국동포자녀들이 특정 지역 학교에 몰리면서 정작 그곳에서 살고 있던 한국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불상사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학교로 바뀌면 너도나도 다시 복귀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 슬럼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 조선족소학교 교사를 역임했던 필자 역시 국제학교 설립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조선족학교에 재학 중인 중고등학생 100여명이 KBS 도전 골든벨에 참가하여 자랑스럽게 골든벨을 울렸다.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조선족교육의 가능성-조선족 학생들이 한국, 중국 어디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골드벨 마지막 50번 문제가 조선족학교의 전신이며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께서 설립한 서전서숙에 대한 문제였다. 110년 전 연변 용정에 설립된 서전서숙의 뒤를 이어 마을마다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어 조선족은 중국의 56개 민족 중 1950년대부터 문맹률이 가장 낮은 민족으로 칭송되었다. 실제로 조선족 교육 덕분에 한국에 온 중국동포들은 여느 외국출신들보다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추진 중인 국제학교에서 명실상부 국제교육(중국어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엄마 고향으로 가서 엄마가 다녔던 학교에서 교사가 되어 조선족 교육의 명맥을 이어나간다면 백여 년 전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서전서숙을 설립하셨던 이상설 선생님께서 지하에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흑룡강신문 8월 31일자  
18    자녀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댓글:  조회:1937  추천:0  2015-02-10
나는 고등학생 딸을 둔 학부모다. 어제 학부모회가 있다고 해서 딸이 다니는 학교를 다녀왔다. 딸애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는 직장을 핑계로 학부모회 통지서를 받았어도 그냥 스쳐지나갔지만 이제는 시간 여유가 있어 참가해볼 생각으로 딸애가 고등학생이라 부모들이 학교를 찾아가면 머쓱해 할까봐 먼저 동의를 구했다. 생각 밖으로 흔쾌히 동의를 받았다. 모처럼 학부모회에 참석했는데 큰 강당이 빈 좌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있었다. 전체 학부모회의를 마치고 반별로 자녀가 공부하는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 면담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1년 동안 딸애의 담임을 맡아줄 선생님을 직접 뵙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애는 엄마에게 꼭 보여줄 곳이 있다면서 학교입구에 있는 분식집에 들렸다. 그리고 학교 친구들과 즐겨먹는 주먹밥을 주문했다.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여느 때보다 말이 많아졌다. 나에게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지만 학부모회에 찾아온 엄마의 기억은 없다. 과연 학부모회가 있었을까 싶다. 중학교부터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던 나의 학창시절은 반 친구와 선생님이 전부였고 기숙사-식당 -교실- 운동장 4박자에 맞춰 매일 매일 보냈던 것 같다. 사춘기 때 힘들었어도 엄마가 곁에서 토닥토닥 해준 적이 없다. 학교에서 스케이트 선수로 뽑혀 기분이 날듯이 기뻤어도 바로 엄마에게 알릴 수 없었다. 요즘 나는 고등학생 딸애를 지켜보면서 학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반성한다. 학기 초라 하루에도 몇 장씩 학부모 안내문을 받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딸애가 교복 치마 길이 때문에 선생님께 불려갔다고 들었는데 이 일을 알고도 모르는척해야 하는지 아니면 선생님께 자녀 대신 사죄 전화라도 해야 하는지 등등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4월1일부터 법무부 동포정책이 개선되었다. 앞으로 가족단위로 한국에 체류하는 동포가 많아질 것이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미성년 자녀를 중국에 두고 왔던 학부모들에게 희소식이다. 이제는 자녀들을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보내며 매일매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부재했던 가정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교육은 부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육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던 자녀가 한국에 온 후 매일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국동포 학부모들이 한국 교육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자녀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오는 5월부터 학부모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한편 재한동포교사협회에서도 동포자녀들을 위해 학교입학, 학교생활 안내, 자녀 진로상담 등을 내용으로 중국동포 학부모 상담실(070-7573-5988)을 운영하고 있다. 나 혼자 힘이 부족하면 주변을 둘러보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아 머리를 맞대보자. 내 자녀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자녀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서울=동북아신문]  
17    선생님, ‘책무’가 뭐예요? 댓글:  조회:2032  추천:2  2014-05-14
해마다 이맘때면 멀리 중국 어딘가에 계실 스승이 그립습니다. 어렸을 적에 다녔던 학교가 폐교 되었으니 찾아 뵐 수 없어 마음이 더 아련합니다. 17년 전 서울에서 다시 공부하여 모교 두 개가 더 생겼습니다. 하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이지요. 학교 모두 서울에 있어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지만 졸업 후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중학교 선생님을 찾아뵈러 간다기에 나도 한번 나의 스승을 찾아뵐까 용기를 내보지만 갑자기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떠올라 어느 선생님부터 찾아뵈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선생님께 안부를 전하고자 합니다. “선생님 가르침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 행복하게 보내세요.” 이렇게 인사를 올렸지만 왠지 불효한 제자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서울대 석사학위과정 지도교수인 진동섭 선생님이 첨삭지도해주신 논문 표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부 공부를 할 때는 전공보다 교양과목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성적증명서를 보니 그때 재미있게 들었던 교양 과목 성적 역시 높게 나왔습니다. 3학년 1학기에 들었던 과목 ‘논리와사고’는 A+였습니다. 지금도 그때 수업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탁석산 박사였는데 한 학기 동안 아주 얇은 교과서 하나를 소개하면서 그 책을 꼭 사지 않더라도 읽고 나서 중간고사 전까지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읽었던 책은 ‘한국인의 정체성’이었습니다. 150페이지도 되지 않은 얇은 책이라 부담되지도 않았습니다.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나의 정체성을 얘기하는 것 같아 책속에 푹 빠졌습니다. 나는 A4 3장 되는 리포트에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실토했습니다. 선생님은 빨강 펜으로 잘 썼다고 코멘트를 달아 주었습니다. 졸업하고 퍽 후에 알게 되었지만 탁석산 박사는 종종 TV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싶었지만 혹여 알아보지 못할까봐 그만두곤 했습니다. 당시 한반에 수강생이 50~60명이 되었지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부 공부를 할 때는 지도교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공부를 할 때는 입학하면서부터 지도교수가 정해졌습니다. 나의 지도교수는 ‘학교 컨설팅’ 책을 쓰신 진동섭 교수였습니다.       ‘어떻게 학습공동체(Leaning community)를 이룰 것인가’라는 학창시절의 메모 2003년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를 지원할 때 저는 연구계획서에 중국의 조선족 학교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썼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구계획서와 졸업논문이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학 당시 제출했던 연구계획서와 졸업논문 주제가 거의 일치했습니다. 조금 수정되었다면 범위를 줄였을 뿐이었습니다. 원래는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학교를 대상으로 하려고 했는데 졸업논문에서는 흑룡강성 조선족학교를 중심으로 썼습니다.   선배들은 석박사 졸업논문을 쓰면서 한번쯤은 ‘논문병’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심장이 콩알만 해져 쉽게 놀라고 긴장이 수개월 지속되면서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한국어 실력이 낮은 나로서는 동기들에 비해 두 배, 세 배 힘들었습니다. 띄어쓰기, 철자, 사투리 등등 논문을 쓸 기본이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논문자격시험은 통과했지만 막상 논문을 쓰려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졸업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힘들 때마다 지도교수님은 띄어쓰기, 철자, 사투리를 하나하나 첨삭지도 해주셨습니다. 최종 인쇄되기까지 7번~8번 교수님께 지도를 받았습니다. 교수님은 매번 꼼꼼히 첨삭지도를 해주셨습니다. 졸업한지 7년이 되고 그동안 이사를 두 번이나 하였지만 아직도 교수님께서 직접 첨삭 해주신 논문원고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최종 인쇄본보다 더 값진 논문이라고 생각되어 폐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수님 이 못난 제자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첨삭논문원고를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요즈음 7년 전에 썼던 논문을 자주 읽어보곤 합니다. 논문 쓸 당시 갖고 있던 문제인식이 그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중국동포 자녀 교육을 위해 주말학교를 만들고자 합니다.       서울대 석사공부를 할 때 읽었던 책들. 왼쪽 두 번째 ‘중국 조선족 학교 통·폐합의 원인 분석’은 필자의 석사논문이다. 선생님, 그때 학창시절 노트를 보니 ‘어떻게 학습공동체(Leaning community)를 이룰 것인가’라는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무성(accountability)’에 대한 메모도 있습니다.   주말학교가 ‘학습커뮤니티(Leaning community)’의 일환이라면 어떻게 ‘책무성’을 실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책무가 무언가요? 7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그때처럼 하나하나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주말학교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에 대한 답을 찾고 싶습니다 .
16    재한조선족문제 해결 방안, 이곳에 없을 수도 댓글:  조회:2876  추천:1  2014-03-04
연 초부터 국내체류 동포 문제가 주요 정당에서 정책이슈로 떠오른 모양이다. 더 이상 중국동포의 문제를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2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금요일 차례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특히 양 정당 모두 최고위원들이 직접 중국동포 문제 해결을 위해 세미나를 개최하였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세미나의 내용이나 개최 방법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개최한 세미나에는 200명 강당 좌석을 꽉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서 계단에 앉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민주당 박영선 외 3인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는 20여명 정도 참석하여 정시에 끝났다. 양측 모두 똑같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지만 새누리당에서는 재외동포법, 취업제한 제도 등 국내체류 동포 관련 법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많이 논의되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서울 거주 중국동포 특히 영등포 밀집지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일예로 생활지역에서 쓰레기투기, 치안, 기초질서 등 이다. 한쪽은 거시적인 담론이라면 한쪽은 미시적인 담론으로 국내체류동포 전반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귀화한 동포의 한사람으로써 양쪽의 세미나를 듣는 내내 불편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발제자들이 이런 저런 제도적 차별과 문제점을 지적하면 해당 부처에서 나온 공무원은 그건 국민들의 일자리 잠식이 우려되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고 간단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또 중국동포들이 특정지역에 모여 살면서 지역주민들에게 민폐가 되고 역차별이 발생한다고 걱정한다. 세미나의 취지가 국내체류 중국동포의 문제 해결을 위한 자리인데 해결방안은커녕 문제를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똑같은 주제로 벌써 3년째 공회전하고 있다. 작년 한해만 하여도 이미 두 차례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어쩌면 중국동포 문제는 국회에서 해결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동포는 동포이지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제’ 해결을 방치할 수 없다. 문제라고 제기되었던 상당부분은 동포들의 민원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 제도적인 한계로 불편하고 차별을 당하는 것 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동포 관련 제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젔다고 한다. 만약 제도가 개선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50만 중국동포들이 한국에서 체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서울에만 23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중국동포의 ‘수도’인 연변자치주 연길시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20만명)보다 많다. ‘중국동포 문제’의 상당부분은 중국동포들의 대량 유입에 기인되었을 수도 있다. 중국동포들의 문제는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해결의 열쇠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중국동포들은 중국에서도 집거지를 형성하여 동포들의 문제를 민족자치주, 민족현, 민족향, 민족촌 단위로 스스로 해결해왔던 경험이 있다. 농토가 없으면 황무지를 개간하고 학교가 필요하면 마을마다 학교를 짓고... 한국 내에서의 중국동포 문제는 중국 국내에서의 상황과 다르다. 이곳에 중국동포 자치주가 만들어질 리가 없고 토지를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중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 있을 때나 똑같다.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짜내야 한다. 맨주먹으로 만주벌에 2000개 마을을 세운 윗세대들의 이주와 정착의 경험과 지혜를 구하라. 어쩌면 국내체류 중국동포의 문제 해결방안이 한국에 없을 수 도 있다. 어쩌면 선조들이 지어놓은 2000개 마을을 재건하는 일이 급선무일지도 모른다. 출처:재한외국인방송
15    방문취업동포는 사회통합의 孝子? 댓글:  조회:3403  추천:2  2013-06-13
이민자정책에 있어서도 사회통합은 단연 중요한 화두다. 얼마 전 모 대학교에서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주제로 학술회의가 있었다. 국내 체류 이민자의 사회통합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었다.  먼저 영주권자(F-5체류자격)와 귀화자의 비교이다. IOM 정기선 연구윈의 연구에 따르면 귀화자가 영주권자보다 소득수준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귀화자의 남녀 성비는 77:23. 여자가 남자보다 3배 넘게 귀화하는 셈이다. 필자는 학술회의에 참가하기에 앞서 한 지인의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는 그동안 다문화사회 관련 연구를 꽤 했는데 중국동포를 모르면 제대로 된 연구가 어렵다면서 중국동포들은 귀화자와 영주권자 누가 더 많으냐 물은 적 있다. 오늘 이 지면을 통해 답을 보낸다. 일반적으로 영주권 취득보다 귀화허가과정이 어려워 귀화자보다 영주권자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동포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귀화자가 영주권자보다 2배 더 많다. 한국의 전체 귀화자는 12만 명. 그 중 중국동포 출신 귀화자 비중이 61%다. 이처럼 많은 동포들이 귀화한 것에 대해 여타 외국인들은 한국이 같은 민족에게 우대정책을 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귀화동포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귀화를 희망하는 동포들에게 모두 허가를 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귀화과정이 결혼이민자보다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기대감은 귀화 후 소속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호(서울대)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귀화자 출신의 한국에 대한 소속감은 중국보다는 캄보디아와 필리핀 출신이 압도적으로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계 중국인 및 중국계 귀화자들의 소속감은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귀국동포 중 귀화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가장 많은 체류형태가 방문취업(H-2체류자격)이다. 현재 방문취업 쿼터는 30만 명. 한국정부의 입국제한으로 추첨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 방문취업(H-2)동포의 사회통합 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방문취업 동포가 재외동포(F-4체류자격)보다도 사회통합지수가 월등히 높았다. 연구자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이들 집단의 사회통합도가 높은 이유는, 사회문화영역의 배점이 여타 체류자격보다 높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들 스스로의 주관적인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이들은 재외동포(F-4)집단에 비해 한국입국의 목적이 뚜렷하고, 현재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면서 취업 이외에는 상대적으로 특별한 욕구가 없는 집단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대다수가 중국을 모국으로 하는 재외동포라는 점에서 우리사회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소속감이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회통합도를 높이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똑같은 출신국 대상이지만 국내에서 체류형태에 따라 사회통합 정도가 다르다는 결론이다. 그것도 체류제한이 열악할수록 사회통합 정도가 높단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적은 비용으로 이민자 사회통합을 실현한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사회통합을 위해 전국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글로벌센터 등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기관을 수백 개 설립하였다. 하지만 정작 30만 귀국동포들을 위한 지원기관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사회통합을 그럭저럭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귀국동포들의 숨은 공로가 아닐까 싶다. 사회통합지수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귀국동포 상당수는 귀화를 희망한다. 그들이 귀화 후에도 높은 사회통합 정도를 갖도록 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14    [感悟KOREA]다문화공무원 시험에 실패한 이유 댓글:  조회:1973  추천:1  2013-04-29
지난 4월 구로구청 다문화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했다가 최종면접에서 낙방했다. 원서지원을 도왔던 주위 지인들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그 중에는 현직 공무원도 있다. 처음에는 채용결과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찌 이럴 수가.     초심으로 가서 채용 안내를 살펴보고 또 봤다. 채용분야의 직무내용은 다문화가족 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상담, 통번역 서비스를 지원하고, 다문화정책 관련 자료 수집 및 분석 등이다. 지원 자격기준은 국내에서 1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인 자가 학사학위 이상의 학위를 취득했거나 2년 이상 관련 직무분야에 경력이 있으면 된다. 8급 공무원에 준하는 채용이지만  자격기준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관련 분야에서 7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나는 자신 있게 지원했다. 시험은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시험으로 나뉘었다. 1차 서류심사는 무난히 통과됐다. 2차 면접에도 자신 있게 응했다.     심사관 4명은 공무원의 자세, 한국사회 적응력 및 이해력,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전문지식과 그 응용능력 등에 대해 평가하기 위해 응시자가 제출한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보면서 질문했다.     첫 번째 심사관은 지원동기에 대해 질문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고 몇 번이고 연습했었다. 나는 준비한대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구로구 다문화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중국동포들의 비중이 큰 데 있다. 특히 구로구 가리봉동은 중국동포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구로구의 다문화 구성원의 특성을 잘 반영한 바람직한 다문화사회를 실현하는데 자그마한 보탬이 되고자 지원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심사관은 중국조선족소학교에서 몇 년 동안 근무했느냐 그리고 이주동포정책연구소에서는 어떤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직접 해왔던 일들을 아무런 꾸밈없이 차분히 대답했다. 이어진 질문은 만약에 다문화공무원이 되면 가장 먼저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 무엇인가였다. 당연히 그 동안 무시되고 소외되었던 구로구에 체류하고 있는 다수 이주민들을 위한, 동포지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대답했다...... 면접시험은 대략 5~6분 정도 짧게 끝났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 시험을 보느라 다소 긴장되고 피곤했지만 심사관의 질문에 소신껏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이다.     왜 탈락했을까?  무엇이 문제였나?  아직까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스스로 준비과정을 돌이켜보며 반성해 볼 뿐이다. 동포출신 선배 공무원의 조언이 떠올랐다. 면접에서 동포임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나의 경력 대부분이 동포들과 관련된 것이다 보니 동포사업을 떠나 나를 얘기할 수 없었다.        게임은 이미 끝났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만약 내가 다문화공무원이 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본다. 아마도 사표를 낸 전임자처럼 완주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현장에서 느끼는 다문화사회와 구청에서 집행하는 다문화사회 사업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동포출신 공무원이 '동포'를 뺀 다문화사업을 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최종합격자는 타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결혼이민자라고 한다. 금번 구로구의 다문화공무원 채용 의도는 분명했던 것 같다. 여기서 다문화공무원이란 어느 나라 출신이든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것과 또 결혼이민자 관련 업무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뽑는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동포들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업무경험은 대부분 동포들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대학공부 7년, 동포 관련 경력 7년은 다문화공무원 채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 동포 전담 공무원이 채용되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그러나 그때는 공무원시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동포 전담 공무원 채용공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13    마흔 유혹 댓글:  조회:2145  추천:2  2013-01-23
언제부턴가 눈이 침침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자주 비비기 시작했다. 답답하여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마흔 되면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생리현상이라고 한다. 마흔?? 아니, 내가 벌써 마흔 줄에 들어섰다고?! 그동안 내 나이 얼마인지 세어 볼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마흔 한참 지나서야 내 나이가 마흔임을 알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리. 공자는 사십불혹(四十不惑)이라 했지만 나는 마흔유혹(四十有惑)을 체험하고 있다. 왜? Why?? 为什么??? 왜 하필이면 마흔에? 마흔이 뭐길래?? 궁금하면 □ 에 물어봐 라고 했던가. 인터넷 검색창에 '마흔'이라고 쓰자 주옥같은 글귀가 쏟아졌다. 모두 책제목인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저자를 찾아 도서관으로 향했다. 김병수 저자는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이 없다’며 도서관에 온 것을 환영했다. 주선용 저자는 ‘책이 마흔을 힐링한다’며 마흔 즈음에 읽으면 좋을 책들을 안내했다. 백승중 저자는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이라며 더 이상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 봐야 앞길이 열린 다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해 '마흔을 준비하는 100일의 휴가'(나영석)를 내어 사카요가요코가 쓴 '마흔살의 정리법'으로 정리해봐야겠다. 마코토가 쓴 '마흔에 꼭 만나야 할 사람, 버려야 할 사람' 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도서관 열람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학이라 집에서 빈등거리며 놀고 있는 딸이 느닷없이 물어온다. “엄마, 엄마 취미는 뭐야?” “취미? 네가 잘 알잖아! 엄마가 어떤 취미가 있는지?” 불쑥 내민 딸의 질문에 생각해 볼 시간을 벌려고 잠깐 대답을 피했다. 딸아이는 특별한 뜻 없이 물어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밤잠을 설쳤다. 엎치락뒤치락. “나의 취미는 뭐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취미도 없이 살았나?...” 이력서나 회원가입 등 개인 인적사항을 적는 양식에서 간간이 보아왔던 '취미'란은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쳐 버렸던 것 같다. 사실 20대에는 서예를 취미로 여유롭게 보냈다. IT강국인 한국에 오면서 책상위의 주인이 바뀌었다. 문방사보(文房四寶) 대신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가 책상 중간에 모셔졌다.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메모리의 용량이 늘어날수록 나의 한국생활 리듬도 빨라졌다. 하루 일과는 컴퓨터 앞에서 시작하여 컴퓨터 앞에서 끝났다. 업무특성상 글 쓰는 일이 많아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 집 컴퓨터로 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그래도 할 일이 늘 쌓여 있었다. 눈 깜짝 할 사이 30대는 지나갔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선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때 침침해진 눈이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 마흔이야!” “그런데 왜?” 주인은 어리둥절해졌다.
12    고향 가는 길, 통일로 가는 길 댓글:  조회:3598  추천:5  2012-10-06
주말이면 즐겨 찾는 곳이 있다. 꽉 막힌 빌딩숲을 탈출해 파주 평화누리공원을 향해 가노라면 뻥 뚫린 자유로에서 느끼는 그 자유는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그러나 시원한 활주로 같은 자유로의 자유도 잠깐. 자유로를 한참 신나게 달리다 보면 ‘판문점’이란 커다란 교통표지를 끝으로 더 이상 갈수 없다. 대한민국의 최북단이다.   매번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 오군 했던 그 길을 올 추석에도  찾아 떠났다. 가족친지들과 함께 갔는데 평소에 자주 왔던 내가 모처럼 ‘가이드’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드넓은 평화누리공원의 잔디언덕을 올라가니 향기로운 가을바람에 날것만 같은 기분이다. 함께 온 일행들도 연신 환호하며 어린아이들처럼 잔디언덕 위에서 평화롭게 뛰어놀았다.       ▲ 통일을 기다리는 주차장   평화누리공원이 생기기 전 가장 오래 이 지역을 지킨 건물이 하나 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을 위해 1972년에 세운 임진각 전망대다. 전망대에 오르니 구름 한 점 없이 공활한 가을하늘과 맞닿을 것만 같았다. 전망대 맞은 편에는 망배단(望拜壇)이 있었는데 오늘은 추석이라 망배단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가족별로 이북에 계신 부모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었다.   평소에 소심함 딸이 엉뚱한 질문을 한다. “엄마 저분들은 왜 밖에서 제사를 지내?” “엉?... 그러게. 내려 가서 저분들게 물어볼까?” 나의 알맹이 없는 말에 답답한 남편이 얼른 대답한다. “저분들은 실향민이야.” “실...향...민?”딸은 이해가 가지 않은 듯 머리를 갸우뚱한다. 옆에서 듣고 만 있던 나는 부언설명을 하고 싶지만 어느새 목이 꽉 메여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  “엄마도 실향민이야?” 철없는 딸아이의 질문에 아빠는 폭소를 터뜨리며 답을 대신했다. 임진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아직은 손닿을 수 없는 북녘 땅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나서 2층 한식집에 들렸다.        ▲ 통일을 잇는 다리   식사하면서도 북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자리를 찾아 앉고 음식을 주문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할아버지 한분이 혼자서 음식을 주문해 놓고 훌쩍훌쩍 흐느끼고 있었다. 딸아이는 귓속말로 “저분이 실향민 같아”라고 소곤거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까부터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져 더 이상 메뉴판의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자유로 중앙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에 반해 잠깐 차를 세웠다. 푸른 창공을 향해 어여쁘게 핀 수많은 코스모스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통일로 가는 길을 걸어갑니다.    백두산을 지나 송화강을 지나    내 고향 흑룡강으로 걸어갑니다. 고향으로 가는 길, 누구나 그 마음이면 모두 통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11    2012년 새해 소망 댓글:  조회:3159  추천:0  2012-01-02
           2012년 흑룡해를 며칠 앞두고 KBS라디오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 출연하여 중국에 있는 동포들에게 새해인사를 올렸습니다.  오늘은 이 지면을 통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데 50만 중국동포와 그 이웃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2012년 새해에는 신뢰를 쌓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한해가 됩시다!”      신뢰를 쌓읍시다       잘 아고 있듯이 2012년은 방문취업 시행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약속대로 5년이 지나면 귀국해야 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귀국해야 할 동포들이 어림잡아 6만 명입니다.    한편 지난 12월 20일 중국동포사회에 있어 희비가 엇갈리는 하루였습니다. 한국 입국 신청자 24만을 대상으로 추첨을 했고 그 중 4만 명이‘한국행 로또’에 당첨되었습니다. 추첨에 당첨된 4만 명 동포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2년은 중국동포들에게 있어 큰 파도와 같이 격랑이 있는 한해인 것 같습니다. 동포들이 입국과 출국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창구가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한 법무부가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금번 4만 명 입국인원을 배정하면서 동포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는 동포들이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 정부정책을 신뢰하고 순리로운 입출국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소통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국만기일이 눈앞에 다가옴에 따라 귀국일자를 연장하고 싶어 하거나 한국에서의 계속 체류를 희망하는 이들의 간곡한 목소가 들리고 있습니다. “꼭 가야 합니까?”전화기를 붙잡고  몇 번이고 묻고 또 묻습니다. “꼭 가야 합니까? ”      그대가 듣고 싶은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는 나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쩌다 우린 이 지경에 빠졌습니까? 5년 동안 체류하면서 뭘 하셨습니까? 왜 이제야 와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요. 얘기를 했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 동포언론을 통해 그동안 우리의 사연을 수없이 얘기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에 그나마 현재의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자화자찬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가득한 2011년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소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는 해입니다. 그동안 소외된 마음을 추스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 대화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소중한 한 표를 보내야겠습니다.      앞으로 5년 후에는 적어도 “꼭 가야 합니까?”와 같은 질문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손에 손잡고 협력합시다     2012년은 중국동포들에게 있어 남다른 한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중수교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은 한국도, 중국도 아닌 중국동포입니다.     최근 동포들은 중국 동북3성에 토지를 이웃들에게 임대주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 연해도시에 근사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장기체류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동포사회와 한국의 지역사회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중국동포들은 언젠가 중국으로 돌아갈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지역주민들이 있지만 50만 중국동포들이 국내에 체류하는 한 방임할 대상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돈독한 신뢰와 따뜻한 소통이 없다 보니 서로 얼싸안으며 포옹할만한 협력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2012년에는 진정 서로 악수하며 협력하는 중국동포와 지역주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연구위원)
10    당신은 누구의 멘토입니까 댓글:  조회:3435  추천:2  2011-11-28
작년 여름, 모 기관에서 진행하는 멘토링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평소에 신문에서 ‘메토링’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했지만 정작 멘토링프로그램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호기심이 동해 선뜻 응했다. 프로그램 진행 첫날, 멘토와 멘티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는 멘토좌석으로 배치되었다. 그때까지 내가 어떤 멘토 역할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주최 측의 설명과 나의 멘티가 배정되면서 그제야 멘토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귀화교육을 다년간 해온 강사로서 귀화시험에 세 번이나 낙방한 멘티를 꼭 귀화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그 멘티는 그후 석달간의 멘토링을 통해 네 번째 귀화시험에 합격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되는데 성공하였다. 이쯤이면 멘토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으리라. 멘토의 사전적인 의미는 개인적인 스승导师이나 지도자 또는 후원자를 일컫는다. 멘토는 그리스신화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이티이카왕국의 왕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믿을 만한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부탁한다. 그러자 멘토는 왕이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년 동안 친구의 아들을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후원자로 정성껏 보살펴 훌륭한 왕자로 성장시킨다. 이때부터 멘토라는 고유명사는 ‘경험이나 지혜가 많은 사람이 상대방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그의 꿈과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쓰이게 되었다. 최근 한국의 일간지 신문 1면에는 ‘안철수’이름 석자가 자주 등장한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출신었던 그가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하여 최고경영자(CEO)로 있다가 지금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망하는 첫 번째 멘토이기도 한 그가 지금의 ‘안철수’가 있기까지 300여명의 멘토가 있다고 말한다. 역시 성공하는 사람에겐 멘토가 있고, 훌룡한 멘토가 많을수록 더 큰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날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가 50만이나 된다.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한국에 왔으리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는 독불장군이 없다. 서로가 멘토가 되어 주고 서로서로 성공하도록 돕다보면 다 함께 성공할 것이다. 멘토는 먼곳에 있지 않다. 우리의 가까이에 있고 바로 우리 이웃에 있다. 당신의 멘토는 한국인일수도 있고 고향 친구일수도 있다.   일전에 길림신문사에서 펴낸 ‘꿈을 이룬 사람들’의 30인 주인공은 나름대로 한국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들 삶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50만 재한중국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제도적인 한계, 차별과 무시, 경제적인 빈곤 등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한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 갈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적어도 한 명 이상의 훌륭한 멘토가 있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멘토가 되어 50만 재한중국동포들이 모두 성공적인 한국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도록 성공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자이라는 말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멘토는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은 또 누구의 멘토인가?
9    숫자로 본 방문취업제 댓글:  조회:3169  추천:3  2011-10-07
방문취업제 시행 전까지만 하여도 한국에 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친척방문이었다. 2007년부터 시행한 방문취업제는 무연고자들에게도 입국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전대미문의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일가친척이 없는 무연고자들이 입국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한국어능력시험이었다. 그러나 중국13억 인구가 잘 아록 있듯이 중국조선족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났다. 합격률이 높고 한국 입국 대기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국어능력시험 기준이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작년부터 재외동포기술교육이 입국 기준이 되었다.    방문취업제 시행 5년이 다가옴에 따라 이제는 입국보다 국내체류와 귀국관리가 급선무로 다가왔다. 이에 지난 9월 9일 법무부는 방문취업 동포에게 '추석선물'을 내 놓았다. '추석선물'은 두툼했다. 이번에 과연 어떤 기준으로 방문취업 개선안을 내놓았을까 궁금했다. 선물보따리를 펼쳐보니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숫자 55가 기준이다. 과연 방문취업제 개선안에 나타난 여러 개 숫자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25세]  만25세, 방문취업 자격으로 입국할 수 있는 연령기준이다. 신청일 기준으로 하루라도 부족하면 비자신청을 할 수 없다. 왜 하필이면 통념상 성인기준인 20세도 아니고 25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입국한 방문취업자 대부분이 가장이라는 것은 너나 나나 모두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가장이 한국에서 장기체류하다 보니 그들 자녀들이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오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 자녀를 한국에 유학시키는 방법이 가장 좋지만 모두가 한국유학을 희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들이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에서 장기체류하는 동안 자녀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가정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는 자녀가 속출하고 있다. 이제라도 선진 고등교육을 시켜보려고 해보지만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한국어도 가르치고 기술교육이라도 시켜보고 싶은데 어떤 절차를 밟으면 되는지 문의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자녀교육을 위해 투자하고자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은 25세 미만 동포 자녀들에 대한 대안 부재로 방치되고 있다. [3년, 4년10개월, 그리고 5년] 3년, 방문취업 입국한 날 혹은 방문취업 체류자격으로 변경한 날로부터 한국에서 연속 체류할 수 있는 기한이다. 3년 되면 완전출국을 해야 하는데, 완전출국이라 함은 귀국할 때 공항 혹은 항만에서 외국인등록증을 반납하는 것을 의미한다. 3년 만기되었어도 귀국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고용주의 재고용신청이 있는 경우만 해당된다. 고용주의 재고용신청이 허락되면 계속 근무하는 조건으로 4년 4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방문취업제의 최대 체류기한은 5년이다. 내년부터 5년 만기자가 속출한다. 5년 만기자들은 귀국 1년 후에야 재입국 신청할 수 있다. [55세, 60세 그리고 3개월, 6개월] 지난 9월 9일 법무부는 '추석선물'로 5년 만기자들에 대한 출입국절차 안내 자료를 공지했다. 자료에 따르면 만 55세가 되기 전에 만기 출국한 경우에는 출국 후 1년이 지난 다음 3년 유효한 방문취업  복수사증을 발급받아 재입국 할 수 있다. 1년이 너무 길다는 고용주들의 의견이 있어 지방 제조업 또는 농축산업·어업 분야에서 1년 이상 취업중인 경우에는 만기 출국 후 6개월만 지나면 방문취업 사증을 발급받아 입국할 수 있다. 55세가 된 이후에 만기 출국한 경우에는 출국 후 경과기간 없이 3개월 유효한 단기종합 복수사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가라는 것도 서러운데 나이제한까지 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5년이 지나 60세가 되면 재외동포 체류자격(F-4)으로 한국에 자유롭게 체류할 수 있단다. [30.3만명] 30.3만 명은 한국에서 방문취업 자격(H-2)으로 체류할 수 있는 최대인원이다. 9월 9일 '방문취업' 관련 공지 내용을 살펴보다 보면 법무부에서 무척 공을 들인 것 같다. 한국의 출입국관리법 제정이라 이처럼 특정 체류자격에 30만 명 이상 몰린 역사가 없다. 이처럼 특정 체류인원이 대거 국내에 체류하다보니 관리도 어렵고 문제제기가 쉬운 표적대상으로 되었다. 이에 노동부가 시시때때로 지적하는 부분인데, 방문취업자가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부의 제안에 따라 방문취업 총량규모를 정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30.3만 명'이다. 이 숫자를 넘기만 하면 바로 입국규제가 따른다.  [방문취업시행 5년을 돌아보며] 2007년부터 시행한 방문취업제로 그동안 중국동포사회는 양적인 발전을 거두었임에 틀림없다. 국내 체류 중국동포는 2006년 말 13만 명이었던 것이 2011년 7월 현재 46만 명이다. 그 중 30만 명이 방문취업 체류자이다. 개인적으로 가정 살림도 넉넉해졌고 씀씀이도 늘어났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는데 큰 기여도 하였다. 국내 체류 중국동포들은 땀이 섞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기술과 자본을 조금씩 축적하였다. 이제는 축적한 기술과 자본으로 재도약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방문취업의 숫자에 웃고 울지 말고 어서 빨리 방문취업을 졸업해야 한다. 앞으로 5년 내 '30.3만 명'을 '3.03만 명'으로 바뀌길 바란다.  
8    중국 재외동포정책이 주는 시사점 (문민) 댓글:  조회:4033  추천:46  2010-11-10
중국 재외동포정책이 주는 시사점“화교를 포용하는 중국의 귀국화교보호법” 문민  (사)이주•동포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해외에 2년 이상 장기 거주한 조선족도 화교중국으로 귀국하면 그 혜택 대상 돼 중국의 재외동포라 함은 화교, 화인, 귀교로 분리된다. 귀교는 중국으로 귀국한 화교이며, 화교는 해외에 있는 중국공민이다. 귀교와 화교는 모두 중국공민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귀국화교법 제2조에서 “귀교란 귀국하여 정주한 화교를 말하고, 화교는 해외에서 장기거주했던 중국공민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정주 개념은 2년 이상 외국에서 연속 거주한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중국공민인 조선족이 해외에서 2년 이상 장기 정주하고 있으면 화교의 범주에 해당된다는 점, 따라서 2년 이상 해외에서 거주하다 중국으로 귀국할 경우 귀국화교보호법에 따라 보호와 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 중국동포들이 알고 있고 혜택을 받고 있는지도 관심이 쏠렸다.  중국의 귀국화교보호법은 1990년 9월 7일 제정되어 1991년 1월 1이부터 시행하였다. 각 지방정부는 상기 법령에 근거하여, 지방의 실정에 따라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귀국화교보호법의 주요내용은 무엇일까? 이 법 제9조는 귀국화교가 운영하는 농장이나 임업 등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이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토지를 빼앗아 차지할 수 없으며 합법적인 권익을 침범할 수 없다.    아울러 농장이나 임업 등 공장에 안치한 귀국화교를 위하여 공장의 소재지에서는 수요에 따라 학교와 의료보건기관을 설립하고 정부에서는 관련 인원, 설비, 경비 등을 보조한다.  또한 귀국화교보호법 제10조에 따르면 정부는 취업한 귀교 및 교권의 권익을 보장하도록 되었다. 특히 노동인력을 상실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경우 관할 인민정부에서 구제를 하도록 명시되었다. 귀국화교보호법은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로 다시 나가 정주하는 화교들에게도 권익보호를 하고 있다. 제 10조에 따르면 귀교 혹은 귀권은 관련 규정에 따라 해외에서 정주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떤기관이라도 그의 합법권익을 침해할 수 없다. 휴직, 이직 혹은 퇴직 후 해외에서 정주하는 귀교(교권 포함)에게 퇴직금, 연금 등을 그대로 받는다고 했다. 그 외에도 귀교(교권 포함)가 국외에서 정당한 권익이 침해되었을 때 중국과 체결한 조약이나 국제관례 혹은 국제조약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 @중국동포타운신문 제186호 2010년 11월 5일 게재
7    재한조선족 취업문제와 사회주류화 (문민) 댓글:  조회:3013  추천:46  2010-07-04
재한중국동포의 취업문제와 사회주류화 문민 Ⅰ. 문제제기 방문취업제의 정체성? 법무부는 월별 외국인체류현황을 집게하고 있다. 국가별 외국인 체류현황을 보면 중국이 가장 많다. 중국인 체류 인원을 세분화하여 중국동포를 따로 통계 내는데 그 통계를 보면 중국동포의 비율이 전체 외국인 체류의 40%이상을 차지한다. 이처럼 재한외국인사회에서는 중국동포는 양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체류자격별 그 구성을 보면 중국동포는 방문취업(H-2)체류자격에 편중되었는데 이 체류자격은 경제활동영역이 지극히 제한되어 단순노무 중에서도 32개 업종만 가능하다. 중국동포는 외국인비율에서 앞도적인 비중을 차지 하지면 질적인 면에서는 비전문화, 단순노무 주류화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체류 중국동포의 80%가 방문취업 체류자격에 몰려 있는 이유? 방문취업체류자격은 친인척방문과 취업이 가능한 두 가지 체류자격을 결합한 것으로 이해된다. 방문취업 체류자격이 신설되기 전에는 취업이 명문화되지 않아 친인척방문(F-1-4, F-1) 자격으로 입국하여 국내에서 다시 체류자격(E-9)을 변경하고 고용허가제에 편입하는 조건으로 취업이 가능해졌다. 2007년 3월 방문취업제도의 도입은 중국동포들이 입국 시점부터 ‘친인척방문과 취업’이 동시에 가능한 비자를 갖게 되면서 중국동포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특히 무연고 동포도 입국이 가능해져 생애최초로 한국에 입국하는 중국동포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H-2체류자격이 최고의 비자로 알고 있었다.   국적을 취득하면 주류화에 자동편입? 국적을 취득한 동포들의 상당수는 국적취득 직전까지 H-2체류자격을 소지하고 있다. 국적신청 후 혹여 다른 비자로 변경을 권유하면 아주 당혹해한다. H-2비자에서 F-4나, F-5로도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적을 신청한 중국동포들 중 F-4나, F-5 비자로 변경한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적취득 전까지 H-2비자를 소지했던 동포들은 취득 후에도 똑같은 영역에서 취업활동을 하고 있다. 신분증이 외국인등록증에서 주민등록증으로 변경했을 뿐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똑같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또 다른 소외계층을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Ⅱ. 재한 중국동포들의 현황 Ⅱ-1. 체류현황 지난해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외국인주민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 출신은 443,566명이다. 한편 법무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신분으로 한국체류 중인 중국동포는 377,560 361566명이다. 나머지 약 6만~7만 명은 국적 회복 혹은 귀화자로 추정되며 이들은 내국인과 똑같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다. 외국인 신분으로 체류 중인 중국동포의 체류자격별 현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 와 같다.[그림-1 참고]       [그림-1] 2009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월계통계 참고 위의 그림에서 보여준 체류자격은 전체 30여개 출입국 사증 중에서 중국동포들이 주로 취득한 자격이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방문취업 체류자격은 299,856명으로 전체 중국동포 국내 체류자의 80%이다. 체류자격별 취업활동영역을 보면 영주, 재외동포, 연구, 교수, 회화지도, 특정직업, 기업투자 체류자격은 전문 직종에 해당된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중국동포는 5,800여명으로 집게 된다. 영주자격이나 결혼이민자의 경우 취업활동에 대한 제한이 없어 전문직이든 비전문직이든 구분 없이 취업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면 방문취업, 연수취업, 산업연수 등 체류자격은 단순노무직종에 한해서 활동가능하다. Ⅱ-2. 취업현황 중국동포들이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은 불과 10년 도 안 된다. 아래 한국의 외국인근로자취업제도를 살펴보면서 중국동포들의 한국취업 연혁을 살펴보기로 하자.   Ⅱ-2-1. 산업연수생제도(D-3, E-8) 산업연수생제도는 한․중 수교 이전인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의 산업연수생이들 입국이 가능했지만 이는 중국동포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국내기업이 해외 연수생을 직접 초청하고 직접 고용하는 형태로서 기업 별 초청인원이 많을 경우 관리차원에서 통번역이 가능한 조선족동포가 1~2명씩 함께 오게 되었다. 당시 그들의 체류비자는 산업연수(D-3), 연수취업(E-8)이었고 이렇게 입국한 중국동포는 2006년 현재 6312명이다. 이들은 입국 후 첫 1년은 연수생 신분으로 최저임금에 크게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을 하다가 1년이 지난 후에 연수취업 비자로 변경하고 근로기준법에 의한 근로자신분으로 된다. 그러나 산업연수생제도가 폐지 된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불법취업자만 양산하는 꼴이 되었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2004년 고용허가제도에 의해 폐지되고 기 입국자들에게 고용허가 체류자격으로 변경해 주었다.   Ⅱ-2-2. 취업관리제(F-1-4) 취업관리제는 불법취업,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상당수 중국동포를 구제하기 위한 특단의 제도이다. 한․중 수교 이후 친인척 초청으로 방문동거 자격으로 입국하는 동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취업가능 체류자격이 아님에서 불구하고 취업하는 동포들이 증가하고 따라서 불법체류자도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 3월 31일 당시 국내체류 기간이 4년 미만인 22만 7천여 명에 대한 합법화 조치를 발표하였다. 4년 이상자와 2003년 3월 31일 이후 신규 불법체류자 등 9만 7천여 명에 대해서는 합법화 신청 접수가 끝나는 2003년 11월 5일까지 자진출국 조치가 발표되었다. 이 조치로 18만 여명이 합법화되고 비전문취업(E-9)체류자격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40세 이상 국내 연고가 있는 동포로서 음식종업원, 간병인, 환경미화원 등8개 분야 서비스업종에서 취업활동 가능하였다. 건설업 분야는 2004년부터 추가로 허용하였다. Ⅱ-2-3. 고용허가제(E-9) 한국정부는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취업관리제도 하에 F-1-4체류 자격을 소지하고 8개 업종에 한하여 취업 활동이 가능했던 중국동포들이 취업교육과 구직등록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고용허가제의 특례로 편입되었다. 또한 서비스업, 제조업, 건설업 등 20개 업종으로 다소 확대된 업종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었다. 취업연령 역시 40세 이상만 취업이 가능했던 것을 25세 이상으로 연령제한을 완화하여 젊은 중국동포들도 취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Ⅱ-2-4. 방문취업제(H-2) 국내 연고동포뿐만 아니라 무연고 동포에 대해서도 취업가능 한 제도이다, 고용허가제에서 20개 업종으로 제한되었던 취업범위를 34개 업종으로 취업을 확대하였다. 방문취업제는 중국의 조선족사회의 여론을 최대한 반영하여 지역별, 연령별 쿼터를 정하여 입국하도록 하였다. 법무부는 방문취업제도 도입배경에서 재외동포 체류자격(F-4)부여를 위한 과도기라고 했다. 방문취업(H-2)체류자격으로 입국한 동포들 중 취업을 희망할 경우 반드시 취업교육 2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취업교육생 중 10%정도 대졸 혹은 전문직직종에서 근무하던 자이다. 그러나 취업교육을 받고 취업가능 활동범위는 34개 단순노무 업종에 한정되었다. 해당 체류자격을 소지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면 불법취업으로 간주한다. 방문취업제도 관련 문제점은 3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자 한다. 위의 그림-2는 방문취업제도로 입국한 중국동포 인원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방문취업제 시행 당시 9만 여명에서 30만 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는 재한 중국동포들의 양적인 팽창에 큰 기여를 하고 있고 영등포, 구로 등 지역에서 집중 거주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Ⅱ-2-5. 재외동포(F-4) 1999년 재외동포법 제정. 관련 체류자격(F-4)이 신설된 후에도 상당수 중국동포의 경우 해당 되지 않는다. 단순노무에 종사하는 경우 해당 체류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한 해당 체류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출국하여야 하면 국내에서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였다. 2008년 법무부에서 F-4체류 확대방안이 있은 후 자격요건이 갖춘 자에 한해 국내에서 F-4자격으로 체류자격 변경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였다. 2010년 2월 현재 5803명이 재외동포 자격을 취득하였다. 국내에서 동포들의 취업연혁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표-1]참고.)   [표-1] 한국체류 중국동포 관련 취업제도   연 도 취업제도 체류자격 취업활동범위 1991~2003 산업연수생제도 D-3 제조업에 한정 2002~2004 취업관리제 F-1-4 8개 업종 2004~2007 고용허가제 E-9 20개 업종 2007~현재 방문취업제 H-2 34개 업종 2008~현재 재외동포법에 의한 취업 활동 F-4 단순노무를 제외한 전문 직종에 한함   Ⅲ. 취업문제점: 단순노무의 주류화 Ⅲ-1. 취업의 주류화 개념   ‘주류’란 사전적 의미는 ①강물 따위의 원줄기가 되는 큰 흐름, ②사상이나 학술 따위의 주된 경향이나 갈래 또는 ③조직이나 단체 따위의 내부에서 다수파를 이르는 말이다. 주류화란 정치·경제·사회정치·경제·사회 영역에서 정책과 프로그램의 기획, 시행, 점검 그리고 평가과정에서 큰 흐름이나 주된 경향을 말한다. 본 연구는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이 경제활동 측면에서 어떤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래 중국동포들에 대한 정책과 일련의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취업분야어서 중국동포들의 주류화를 알아보기로 하자.   Ⅲ-2. 제도적 측면 Ⅲ-2-1. 방문취업제도의 한계 앞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체류 중국동포의 80%가 소지하고 있는 방문취업체류 자격(H-2)은 영세한 사업장에서 3D업종의 일손이 부족하고 게다가 내국인 일자리 잠식이라는 국내여론으로 한정된 단순노무에 치우쳤다. 이처럼 제도적인 장치로 말미암아 3D업종에서 단순 업무만을 체험하다보니 전문직 진출을 사실상 닫혀 있다. 비록 2003년부터 공식적으로 취업을 허가한 이후 서비스에만 한정되었던 취업활동 영역을 제조업을 포함, 건설업을 추가하여 현재 34개 업종에서 취업이 가능하지만 전문기술이 필요치 않는 단순노무에만 허가하고 있다. 특히 그 외의 업종에서 취업할 경우 불법취업으로 간주하고 벌금을 물리거나 2번 이상 적발될 경우 강제추방까지 한다고 명문화 하고 있다. 이처럼 방문취업제도는 전문분야에서 중국동포들의 경제활동을 사실상 차단하고 반면 동포들의 비주류 경제활동 즉 3D업종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법무부는 중국동포들이 서비스업종에 너무 편중되었다고 보고 지방 제조업이나 농어촌에서 장기적으로 취업활동하면 인센티브(장기 거주 자격, 영주권 등)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중국동포들이 단순노무를 더욱더 강화하는 수단이다. 2008년부터 재외동포 체류자격 취득절차를 간소화되면서 방문취업 동포가 국내에서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재외동포 체류자격(F-4)을 취득한 중국동포는 2월 현재5803명뿐이다. 이는 방문취업 체류자의 1.9%에 불과하다. 필자가 2006년 취업교육 당시 설문조사에 의하면 중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했거나 대학 학력을 소지한 취업교육생은 7.8%였다. 실제로 이들이 모두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취득하게 되면 2만 여명이 된다. 그러나 이들이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에서 설명했듯이 재외동포 체류자격 취득요건 중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단순노무에 종사하지 않아야 한다. 전문 직종에 종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방문취업제도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단순노무에만 경험을 가진 중국동포들은 재외동포체류자격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한다. 재외동포 자격요건은 되지만 정작 신청하지 않는 이들은 전문직분야에서의 취업기회가 단순노무보다 좁다고 보고 괜히 재외동포 자격을 취득했다가 취업이 어려워지면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단순히 취업상태만으로 재외동포임을 구분하는 제도는 국가별 재외동포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같은 국가에서도 동포들의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 단순노무를 한다는 이유로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상당수 중국동포들은 국내에서 사회주류화를 포기하고 계절노동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방문취업 체류자격은 중국동포들에게 있어 가장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체류자격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국적을 신청한 상당수 중국동포들은 완전귀화하기 전까지 방문취업(H-2)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원한다. 재외동포(F-4)체류자격이나 영주권(F-5)으로 변경가능 하지만 입국 후 처음으로 부여받은 방문취업(H-2) 체류자격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가? 개인의 선호성향에 따른 것이고 절대 방문취업제도의 대물림 현상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그러나 국적을 취득한 후 신분증 겉면만 바뀌었을 뿐 하고 있는 일은 계속 방문취업체류자 동포들과 똑같다.   Ⅲ-2-2. 공공행정서비스에서 제외 행정안전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외국인주민이 가장 많은 지역은 영등포구이다. 영등포구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주민이 3만8천명이며 그중 3만6천명이 중국동포라고 한다. 이쯤이면 중국동포지원센터하나쯤이라도 생길만 한데 아직까지 전무하다. 지난 2008년 서울시에서 서울글로벌센터를 설립하고 국가별 외국인 주민들이 집거하는 지역을 선정하여 지역특성에 맞는 외국인 종합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 마포구 연남동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빌리지를 설립하였는데 연남글로벌빌리지를 알고 이용하는 한국체류 중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연남동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주로 대만계로 2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노동부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후 전국에 10개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설립하였다. 노동부는 2009년 12월 현재 전체 외국인근로자(546,876)의 55%가 중국동포임에도 불구하고 중국동포들의 수준에 맞는 노동행정서비스를 외면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국가별 외국인근로자 문화행사를 하도록 지원하였지만 중국동포는 제외되었다. 노동부는 중국동포들이 오히려 내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하는 주범으로 여기고 전문성,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로자직무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을뿐더러 전문직으로 취직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노동부는 방문취업으로 입국하는 동포들이 취업을 원할 경우 취업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취업교육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일반 외국인근로자들이 받는 취업교육과 똑같은 시간(20시간)에 대동소이내용으로 하지만 일반외국인근로자들에게서는 받지 않는 취업교육비(12만2천원)를 받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신설 된 후 전국에 이민자에 대한 공공서비스기관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다문화지원센터이다. 얼핏 기관이름만으로 보아 다양한 외국인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결혼이민자 및 그 자녀에 초점이 맞추어 있고 특히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주민을 위한 행정서비스를 경쟁이라도 하듯 각 부처 그리고 지방단체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서비스 대상에서 동포가 제외되거나 서비스 내용이 동포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2-3 국적취득자 친인척 초청 제한 중국동포들에 대한 제도적인 제한은 외국인신분으로 체류하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는 국적취득자들에 의한 방문취업자가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고 또 그 주범이 국적취득 중국동포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친인척 초청인원을 제한하거나 초청시기를 귀화 후 2년이 경과되어야만 가능하도록 하였다. 국적취득 전이나 국적취득 후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다른 국가 동포들에 비해 차등대우하고 중국동포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규제함으로써 중국동포들의 개인발전은 물론 재한 중국동포들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나아가서 한국에서 그들의 역할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Ⅳ. 비주류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위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체류과정에서 중국동포들의 경제활동 특히 취업과정에서의 제도적인 규제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방문취업제도에 의한 취업활동 경험이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고착화 되는데 주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았다.   1. 방문취업(H-2)자격을 진정한 의미의 재외동포 자격으로 부여 방문취업제의 업종제한은 중국동포들의 자유로운 취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며 개인의 발전과 신분 상승이동에 장애요인이다. 따라서 취업활동범위를 제한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하루빨리 원래의 도입취지에 따라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재외동포체류자격에서 단순노무 취업금지 조항을 삭제하여 업종에 제한 없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취업뿐만 아니라 창업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동포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공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 지금까지 동포들이 한국에서 취업을 하고자 할 경우 의무적으로 취업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취업교육의 본연의 취지에 따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 무료교육이 어렵다면 취직 후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교육비 일부 혹은 전액을 환급해주는 방법도 고려 해 볼만하다. 그리고 동포근로자들이 집중거주하고 있는 영등포, 구로, 안산 등 지역에 동포체류지원센터(가칭)를 설립하여 문화 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동포들의 정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행정서비스가 필요하다. 특히 각종 직업훈련교육 정보취득이 쉽고 이용하기도 쉽게 함으로써 보다 나은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3. 출생 국에서 부여받은 교육 및 자격증 승인 중국동포 방문취업 체류자 중 중국에서 교사, 한의사, 경찰 등 전문직에 종사했던 이들이 대한 적재적소의 인적활용이 필요하다. 이에 앞서 이들의 전문지식과 전문경험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약간의 보수교육 혹은 관련 전문성을 강화하는 연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참여하도록 격려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방문취업(단순노무)비자로 입국했다는 이유로 기존의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또는 체념하게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결혼이민자나 국적취득자 중에서 공직에서 근무했거나 전문직 경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전문성을 계속 발휘하지 못한 채 단순노무자로 전락되고 있다.   4. 동포 개인의 자기계발 활동 및 인적 네트웍 구축 취업활동에서 중국동포들의 단순노무화 또는 비주류화는 제도적인 장애요인도 있지만 개인적인 문제도 있다. 제도적인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내국인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내국인의 경우도 좋은 직장 또는 전문직으로 가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교 졸업하고 영어600점 이상,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을 갖추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취업조건으로 보고 있다. 또한 취업을 위해서는 비공식적인 3연(혈연, 지연, 학연)을 통하게 되는데 중국동포의 경우 이와 같은 인적연결망이 형성되지 못했다. 한국에서 특히 학력이나 자격증에 대한 요구조건이 높은 것을 이해하고 고등교육, 기술교육 그리고 자격증 취득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Ⅴ. 맺는 말 한중 수교 18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동포의 1/5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이는 2000년도 중국 흑룡강성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동포의 인구와 맞먹는다. 이처럼 한국체류 중국동포가 많아지게 된 대는 방문취업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방문취업제도 도입 할 당시 제도설립 취지를 재외동포 자격으로 가는 과도기라고 했다. 중국동포는 한국정부의 이와 같은 취지를 잘 이해하고 비록 경제활동에 있어 제한적인 단서가 있지만 잘 따라오고 있다. 그러나 방문취업제도를 시행한지 3년 지난 오늘에 와서 평가해 볼 때 중국동포들을 단순노무자로 고착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동포들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며 이러한 장애요인이 고착화 될 경우 한국에서의 그들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 빨리 ‘방문취업제도’를 졸업하고 국가별 동포차별이 없는 동포체류자격을 취득하여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에서 모범적인 역할과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인적자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란다. pys048@hanmail.net
6    복수국적도 좋지만 영주권제도 활성화 했으면 댓글:  조회:4037  추천:85  2009-08-27
국적법 개정안 공청회를 다녀와서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의 상업중심인 COEX에서 국적법 개정안 공청회가 있었다.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단일국적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현행법을 복수국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우수 외국인재 특별귀화를 신설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자 하는 우수인재에 대해 일반귀화 요건인 5년의 거주기간을 채우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 주소만 있으면 바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적취득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외국인에게 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설될 특별귀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귀화신청자가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든지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자’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여야 한다.  문제는 이에 해당되는 이가 과연 몇 명이 될 것이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공로가 있는 자,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자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 궁금하다. 외국인이 3개월 이상 한국에 체류하려면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외국인등록증에는 체류자격이 명시되어 있는데 그 자격을 보면 대충 그가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예를 들면 E-9(단순노무), H-2(방문취업), F-4(재외동포), F-5(영주권) 등 30여 종류가 있다. 한국체류 외국인 주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동포의 경우 2007년 방문취업제도 신설로 E-9를 ‘졸업’하고 대부분 H-2자격을 소지하고 있다. 작년부터 석․박사 유학생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선별적으로 F-4자격을 주기 시작했고 F-4자격소지자가 많아지면 앞으로 F-5체류자격에 대한 수요가 점차 많아질 것이다. 언젠가 F-5체류자가 많아지고 그 이상의 체류자격을 요구할 때는 국적취득자격을 부여하면 된다. 2008년도 출입국․외국인정책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재 영주권 취득자가 2만8천명이다. 한편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 체류 외국인 주민 중에서 국적취득자가 7만3천명이다. 어쩐지 통계 숫자가 이상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영주권 취득보다 국적취득이 쉬운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국적취득을 학수고대하는 이들에게 죄송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국적부여만큼은 국가의 재량이라고 하는 국적난민과 차규근 과장의 말이 진심이라면, 이 또한 국적부여권을 너무나도 남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와중에 또 복수국적까지 운운하니 어딘가 순서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솔직히 나는, 복수국적을 주는 것도 좋지만 영주권제도를 확대하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절실하다고 본다. 지난 3년간 귀한동포연합총회에서 귀화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도와 귀화교육을 해온 필자로서 대한민국 국적취득자 증가에 일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주권 제도가 잘 되었더라면 국적신청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며 이로 이한 행정부담도 적었을 것이다. 국적취득 지연에 따른 민원이 많아지자 이러한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 들어 월 2000명~3000명씩 대량인원 시험을 보고 있다. 문제는 대량인원 시험이 끝나고 나면 시험 불합격자도 대량으로 속출하는데 그 후유증 이루 말할 수 없다. 시험에 낙방했다고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데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또 국익에 반하는 것도 아닌데, 국적취득 서류심사에 통과한 이들에게는 국적을 주지 못하더라도 영주권은 줄 수 있지 않을까? 금번 국적법 개정안의 초점은 단일국적주의를 복수국적주의로 전환하는 데 있다. 취지는 좋으나 누가 한국 국적을 원하느냐 하는 질문에 있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대상은 특권층에 한정되어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문민 : 귀한동포연합총회 부회장. 동북아글마당 회장.
5    위험한 코리안 드림 댓글:  조회:4020  추천:100  2008-11-16
 위험한 코리안 드림 문민이천냉동창고 화재참사가 일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는 고시원 살인사건으로 동포들의 집단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크고 작은 사고 피해도 적지 않다. 고향을 떠나 멀리서 온 동포들이 위험한 일터에서 불안한 주거환경에서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번 고시원 살인사건의 피해사망자 3명은 모두 50대 초반 중년여성으로 자녀들도 어느 정도 성장해서 든든하고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피해 사망자 중 한분은 한국인과 결혼한 딸의 초청으로 와서 고시원에서 살다가 봉변을 당했다.   부모님을 초청해 놓고도 모시고 살지 못한 죄로 딸은 자책감이 얼마나 컸을까? 또 한분은 부부가 함께 한국에 왔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일념으로 함께 살지도 못하고 남편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아내는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변을 당했다. 코리안 드림의 대가가 너무나도 크다.   2년 전 외국국적동포 취업교육을 할 때 일이다.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 한국에서 취업하게 되면 가입해야 하는 보험들을 정부에서 지정한 보험회사에서 직접 나와 설명한다. 그중 상해보험이 있는데 연령, 성별 그리고 취업하게 될 업종에 따라 보험료가 책정되는데 연세 많은 분일수록 보험료도 많다.   50대의 경우 보험료가 10만원 이상이다. 상해보험은 근무시간 이외에 중대한 질병이나 사고, 사망에 대비한 보험으로 취업하게 되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원하지도 않는 보험을 왜 강제로 가입하라고 하느냐고 하며 불만을 표시하는 동포들이 적지 않았다. 방문취업제도가 시행된 후 굳이 취업을 하지 않아도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면서 상해보험가입에 대한 강제성도 어느 정도 느슨해졌다.   또 지정알선 취업도 가능해지면서 동포들의 취업규제 조항들이 많이 완화되었다. 한국정부는 완화된 취업규제에 따라 동포 스스로 책임 있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취업하게 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할 근무처 신고도 미루고 취업하게 되면 가입해야 할 보험도 미루고 있다. 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동포들의 취업 신고율이 25% 수준으로 실제 취업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상해보험 가입자는 취업신고자의 절반정도라고 한다.   중국동포들이 한국체류 과정에서 문제는 주거 불안 뿐만이 아니다. 중국동포들은 주로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3D업종에서 일을 하다 보니 늘 위험한 일에 노출되어 있다. 산업재해로 장애, 사고 그리고 사망이 꾸준히 늘고 있다. 게다가 임금체불로 극도의 피해의식이 쌓여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08년 9월 현재 외국인 근로자 체불임금이 작년에 비해 51.8% 증가한 95억 원이다.   노동부는 이처럼 임금체불이 급증한 이유를 방문취업 시행으로 동포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동포들의 임금체불액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의 환율급등으로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할 경우 예전에 비해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한국에 오기만 하면 큰돈을 벌수 있다는 얘기는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오로지 일확천금을 위해서 한국에 온다면 위험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오는 것과 같다. 위험한 코리안 드림, 동포들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정부 역시 동포들의 위험수위에 대해 수수방관 해서는 안 된다. 고국을 찾은 동포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못할망정 위험에 처해있는 외국국적 동포들을 외국인 신분이라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재외동포신문 [160호] 2008년 11월 07일 (금) 12:44:02 문민 1658m@hanmail.net
4    반중-반한 감정,이제 그만 댓글:  조회:3878  추천:131  2008-09-09
반중-반한 감정,이제 그만문민며칠 전 모 공영방송 9시뉴스에서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이 도를 넘는다는 보도를 보면서 언론이 너무나도 감정적으로 보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북경에서 치러진 올림픽경기장에서 중국인 관중들이 한국경기에 대한 야유를 꼬집어 전체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데 가뜩이나 감정적인 한국인들의 반중감정을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국민으로 산다고 반한감정에서 피해 갈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민족의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려서부터 ‘가오리빵즈(高麗棒子)’라는 욕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만주 벌판에 이주 간 동포들은 ‘뭉치면 산다’라는 일념으로 마을 단위로 집단거주하면서 벼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가을 추수를 할 때만 되면 이웃 한족들의 ‘약탈’로 동포들은 늘 불안에 떨었다. 한족들은 주로 밭농사를 하는데 가뭄이 심한 해에는 벼 도적이 더 창궐했다. 그때마다 집단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오면 다시는 ‘가오리빵즈’라는 욕을 들을 일이 없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본 일부 중국인들의 행태는 여전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미꾸라지가 한마리가 온 강물을 흐린다’고 몇몇 몰상식하고 소양 없는 국민들 때문에 중국의 이미지만 추락할 뿐이다. 문제는 그들의 이성적이 못하고 소양 없는 언행에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는 처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반중감정은 쉽게 느낄 수 있다. 같은 서해에서 잡은 해산물을 중국에서 수입했다는 이유로 ‘맛 없다’고 하든가 국내산보다 품질이 못하다고 하면서 ‘싸구려’ 취급한다.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 역시 싸구려 취급받기는 마찬가지다. 주로 3D업종에서만 근무하는 중국인근로자들은 직장 내에서 성격이 급한 한국인 동료직원이나 상사들로부터 반말 듣는 것은 다반사이고 임금체불, 직장 내 폭행을 종종 당하곤 한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 중국인을 향해 ‘떼놈, 때놈’, ‘짱께’라고 해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 중국과 한국은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해온 이웃 나라이다. 현대에 와서 한국전쟁 후 40여년동안 양국의 관계가 얼어 있다가 92년에 수교해 이제 겨우 16년이 지났다. 그동안 쌓였던 불신과 오해를 깨끗이 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반중감정, 반한감정 지극히 성숙하지 못한 국민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서로에 대한 반감이 클수록 서로에 상처만 주게 된다. ‘가오리빵즈’라는 욕을 듣기 싫어 한국에 온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오리빵즈’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한국에 오고 싶어도 올수 없었을 때보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의 숫자는 늘어났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인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로가 득이 되고, 서로가 좋으니까 교류가 잦아진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좋은 만남 좋을 일들이 많았고 좋은 감정도 많았을 텐데, 이제 좋은 감정으로만 얘기하면 안 될까.
3    배우지 못한 한국사 댓글:  조회:3427  추천:145  2008-06-13
배우지 못한 한국사문민 귀한동포연합총회 부회장중국동포들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있다. 바로 귀화시험이다. 귀화시험 내용은 대체로 한국의 초등학교 고급학년 수준의 상식들로 특히 한국사에 대한 지문이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며칠 전 귀화시험에 합격한, 중국 목단강에서 온 반경선 씨에게 귀화시험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귀회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한국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지요. 중국에서 배우지 못한 한국 역사에 관한 지문이 몇 개 있었어요.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탈락되었을지 모르죠. 귀화시험을 준비하면서 한국사책도 읽었더니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반 씨는 중국에서 배우지 못한 한국사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귀화시험을 준비하는 중국동포들에게 주말마다 귀화교육을 하고 있는 필자 역시 한국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중국에서 12년간 조선족교육을 받았지만, 아무리 되새겨 봐도 한글을 창시자가 세종대왕이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은 알아도 한국의 마지막 황제는 누구인지를 모르고, 유명한‘삼국연의(三國演義)’의 저자가 나관중이라는 것은 알아도 한국의‘삼국사기’는 어느 세 나라를 말하며, 누가 썼는지도 몰랐다. 중국 지폐에 그려진 역사인물에 대해서 알아도 한국 지폐에 그려진 역사인물에 대해서는 한 명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해마다 달력이 바뀌지만 항상 적혀있는 5.18민주화운동기념일, 6.10민주항쟁기념일 등 역사사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한국으로 귀화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이없어 할 일이다. 그렇다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싶지는 않다. 더욱이 어떠한 이유로도 민족의 역사에 대한 잘 모르는 것에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그러나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수많은 재중동포들이 고국에서 장기체류하다가 귀국할 때까지도 한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다면, 이는 동포들을 탓하기 전에 고국에서는 무엇을 했냐고 반문하고 싶다. 한중수교 16년, 두 나라 관계가 바야흐로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양국관계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 이제는 양국관계에 걸맞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한·중 외교 단절로 40여 년간 방임되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중국에서 살고 있는 200만 재중동포들에 대한 정확히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과 너무 다른 시회체제 속에서 60년대 인민공사운동, 70년대 문화대혁명, 80년대 개혁개방, 90년대 한·중 수교 등 중대한 시기를 거쳐 오면서 나름대로 그들만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만약 재외동포의 역사도 한국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정부는 40년 동안 있었던 재중동포들의 역사를 국사책의 한부분에 적어 넣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현대사 내용을 보면 재외동포들의 역사는 빠져있다. 재외동포가 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국정부가 재외동포들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 역시 문제이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수많은 중국동포들에게 한국에서 기본으로 통하는 국사상식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한국은 과연 재외동포들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묻고 싶다. 이제라도 지난 20세기 50년 동안 있은 재외동포들의 역사를 국사책에 기록하여 재외동포도 민족역사의 주인공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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