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철
http://www.zoglo.net/blog/zhengxinzhe 블로그홈 | 로그인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칼럼/단상/수필

전체 [ 30 ]

10    방취제시험 아무래도 부당하다 (정신철11) 댓글:  조회:4423  추천:114  2007-05-03
방취제시험 아무래도 부당하다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동포들의 고국방문취업을 자유롭게 한다는 취지의 한국방문취업제가 시행초기부터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즈음하여 <흑룡강신문>은 “한국방문취업제 어떤 파장 몰고 올가”라는 주제의  시리즈기사를 8차로 나누어 실었다. 기사를 본 필자는 마음이 많이 아팠고 또 많이 혼돈스러웠다. 왜 동포을 생각해서 제정 실시한다는 방문취업제가 이렇게 많은 물의, 불만과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지? 한국의 해당 정책제정자들은  중국실정 및 조선족사회에 대하여 왜 이렇게도 무지하고 무감각인지? 참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방문취업제의 취지와 동기에 대하여서는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제정과 실행에 관하여서는 많은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 가운데 소위 무연고 동포 대상으로 시행하려는 “한국어시험”이 제일 큰 문제로 되고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 처음에는 필자도 한국어시험이 민족언어, 문자장악에 일정한 기여가 되리라고 기대하면서 꼭 반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어시험을 둘러싸고 너무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방문취업제에 한해서 한국어시험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첫째, 한국어시험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은 거의가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기에  특별히 한국어시험은 치르지 않아도 취직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령 한국어시험을 통하여 일차적으로 한국에 꼭 나간다고 보장하면 시험준비, 과정에서  좀 어려움을 당하여도 사람들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시험합격후에 또 무작위 추첨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소위 한국어시험자체에 큰 기대를 걸지 못하는 한편 신청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시험장소선정에서 조선족이 제일 집결된 동북에 중점을 두지 않은 것은 절대적으로 틀린 처사이다. 여기서 전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시험과 방문취업제에 따른 한국어시험을 분명히 갈라놓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방문취업제에 따른 한국어시험을  중국고시중심에 위탁한 것은 완전히 무리인 것이다.   셋째, 한국어시험에 따른 소위 한국어학원, 훈련반 및 각 종 브로커들의 성행은 조선족사회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는‘악’의 장본인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방문취업제에 따른 한국어시험시행은 이득보다 폐단이 더 크기에 아직 때가 이르다고 본다. 한국어시험을 치르지 않고 직접 신청자에 대한 무작위 추첨으로도 선정할 수 있다. 우리는 신청자에게 있어서 일차적 무작위 추첨이나 한국어시험이후의 2차적 무작위 추첨이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지만 지불한 대가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방문취업제 실시초기에 신청자들의 쇄도를 감안하여 꼭 조건부를 단다면 우선적으로 한국에 한번도 가지 않은 자, 가정상황이 아주 어려운 가정의 중, 청년 등 신청자에 한해서 우선 무작위 추첨을 통하여 선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한국어시험을 꼭 실시한다면 동북지역위주로 시험장소를 정하고 그 지역 민족교육기구을 통하여 진행하는 것이 리치에 맞는 처사일 것이다.   총괄적으로 지금까지 한국의 중국조선족에 관한 일련의 조치에서 보면 행동보다 말이 많이 앞섰으며 “빛 좋은 개살구”마냥 보기는 좋지만 하등의 실리도 없는 저급적인 시행과오를 많이 범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한국당국의 해당자들에게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재외동포정책, 특히 중국조선족에 대한 정책 등을 제정실행 할 때  꼭 사전에 세밀한 조사를 거쳐 중국실정과 조선족사회실제에 부합되는 정책을 제정실시하여 될수록 시행과오를 피면 또는 적게 범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선족문제는 항상 조용히 “내부”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로 이를 가지고 중국정부 상대로 협상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조선족사회에서도 “한국행”을 단지 생활향상의  하나의 기회로 간주하되 절대로 모든 희망을 “한국행”에 걸어서는 안 된다. 과거 우리 선족들이 중국 이주초기 땅도 없고 집도 없었지만 그들의 불굴의 의지로 중국 동북땅을 삶의 터전으로 개척하였고 우리민족은 중국 기타민족 못지 않게 또는 더욱 풍요스러운 생활을 누리면서 우수한 민족으로 중국에서 기타민족의 부러움을 받고 살아왔다. 이러한 성과는  우리민족 전체의 피 타는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다. 이전에 비해 더 유리한 여건을 갖춘 우리는 왜 중국에서 더 튼튼한 기반을 닦고 더 우수한 민족으로 발돋움하지 못 하겠는가? 현재 중국은 분초를 다투며 성장발전하고 있으며 세계 각 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발전은 이미 중국땅에 튼튼히 뿌리를 내린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노력만 하면 중국땅에서 우리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9    한국정책, 이래도 믿어야 되는지? 댓글:  조회:3819  추천:125  2007-04-03
한국의 재중동포정책, 이래도 믿어야 되는지? 정신철중국조선족의 한국진출과 더불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은 지난달의 재중, 재러 동포에 대한 방문취업제를 실시함에 따라 이제는 정리되어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방문취업제와 관련하여 한국어시험도 한국어 위상을 높이고 중국조선족문화보존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질의는 있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한국어 시험장소선정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아래는 몇 가지 생각되는 바를 적으려 한다.   첫째, 한국어시험의 취지는 무엇인지? 만약 방문취업제에 따라 무연고 동포를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한다면 그 장소를 조선족이 제일 집결된 동북지역에 대부분을 두어야 하지 않는가? 현재 국외진출과 산해관이남 진출로 동북의 조선족인구는 이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이 동북지역에 집결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험장소를 보면 동북지역에는 장춘과 대련 두 곳 밖에 없다. 사실 동북조선족인구의 분포상황을 볼 때 연변조선족旼≠翎?제일 집결되 있는 외에 길림성의 길림지역과 통화지역, 흑룡강성의 목단강지역에 비교적 많이 집결되어 있고 도시로는 심양, 하르빈,  길림, 장춘, 대련 등 곳에 많이 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동북지역에 적어도 시험장소를 연길, 목단강,  심양, 하르빈, 길림, 대련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어시험 대상을 무연고동포라고 할 때 왜 그들이 많이 집결된 연변, 목단강 등 지역에 시험장소를 정하지 않았는지? 사실 무연고동포라 할 때  조선반도 북측출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이 제일 집결된 연변, 목단강 등 지역은 완전히 제외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셋째, 선택한 시험장소를 볼 때 이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시험이 아닌가 싶다. 시험장소 11곳 가운데 산해관이남에 9곳으로 북경, 청도, 연대, 천진, 상해 등 지역은 그래도 조선족이 많이 분포되어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 꼭 무리라고 말 할 수 없으나 남경이든가, 중경 등 곳은 원래 조선족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지역의 진출한 조선족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한 자들이 많으므로 꼭 한국에 가려는 자들도 동북지역에 비하면 아주 적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만약 한국어시험대상이 중국인이 아니고 무연고 동포라고 하면 한국어시험장소를 동북지역에 적어도 2/3이상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제안을 내놓는 자에 대하여서는 중국실정에 너무 깜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시도가 있는지 질의하고 싶기도 하다. 중한 수교 15년, 더욱이 중국조선족문제로 하여 한국에서도 그렇게 많이 물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제정자들은 중국조선족실정을 이렇게도 모르는지 참 답답한 일이다. 조금만 유의하면 위의 시행착오 같은 것은 범하지 않을텐데!    
8    한국방문취업제를 둘러싸고 댓글:  조회:3940  추천:117  2007-01-10
얼마 전 한국국회에서 고용허가제 개정안을 공식 통과함에 따라 중국조선족의 한국진출이 더욱 자유롭게 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제도시행은 중국조선족의 한국진출이 더욱 쉽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시행을 위해 사전준비가 잘 되었는가가 문제이다. 즉 다시 말하면 방문취업제의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 또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도 명확치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그럼 필자의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1.선정대상에 대하여 현재 한국에 10여만의 조선족이 있고 또 연인수로 수십만이 한국행을 이룬 현황을 볼 때 일정한 능력을 가지고 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한국행을 이루었다고 본다. 중국에 남아있는 조선족, 특히 농촌에 있는 청장년들은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으며 돈을 쓰고 갈 형편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먼저 가정상황이 어려운 농촌청장년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경제력 등의 결핍으로 장가를 가지 못한 농촌 노총각에 대한 보살핌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는 조선족농촌청년들의 대상자 찾기 어려운 상황을 완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조선족인구증가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본다. 다음은 고급 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 또는 직업학교까지 졸업한 청년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야 한다. 이는 중국조선족농촌아이들의 상급학교진학과 직업교육접수에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지금 많은 조선족아이들이 초급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은 현상을 제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2.한국어 능력시험에 관하여 한국어 능력시험에 관하여 찬성과 반대가 엇갈려 있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어시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중국조선족아이들의 민족언어와 문자를 배우는 열정을 불러일으킴으로 민족문화보존과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시험은 문법보다 대화와 민족문화상식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어 능력시험을 단지 선정의 제반조건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3.선정방법에 대하여 현재 시행방안으로 한국어시험을 통한 무작위 추첨방법을 거론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건대 어느 한 가지에 기울이는 것 보다 종합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구체방법으로 첫째, 조선족언론지를 통하여 선정조건, 방법 등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홍보함으로 일부사람들의 암거래를 차단한다. 둘째, 농촌이 우선적 대상으로 먼저 조선족향촌위원회에 선정대상의 상황소개와 추천을 위탁한다. 세째, 위의 기초하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 지역조선족단체 또는 지성인모임과 지역한국영사관해당인사들이 회동하여 피선정인 상황에 대한 심사와 확인을 통하여 최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위조사건, 부당 행위 등 비리가 생겼을 경우 당사자의 모든 혜택을 취소하는 등 매우 엄격하게 처리하므로 재발을 방지하도록 한다. 4.선정대상에 대한 교육문제 현재 중국조선족농민들은 한국행으로 생활수준을 많이 높이였다. 하지만 힘들게 번 돈을 아껴 쓰지 않은 경향이 심하다. 심지어 동북지역에는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 번 돈을 현지 한족들에게 다 주고 만다”는 말이 흔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중국에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눈에 차지 않아 빈둥빈둥 놀다가 또 한국행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선정대상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에 가서는 부지런히 일하고 될 수록 한가지 재간이라도 터득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중국에 와서는 번 돈을 재생산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해당한 교육기구 또는 단체의 설립도 중요한 일이다. 사실 중국조선족은 한국이란 고국이 있어서 중국 기타 민족보다 행운스럽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이 이것을 잘못 이용하면 폐로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돈이 있는 불량한 소비는 오히려 돈 없는 것보다 못하다 때문이다. 우리 조선족사회에는 한국에 가 번 돈을 돌아와서 탕진해 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본인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선족위상에도 불리하다. 한 가지 현상을 들면 현재 한국에서 번 돈으로 도시에 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순전한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면 무턱대고 집을 마련하기에 현지의 집 값을 높여 한족들의 원망도 듣고 있다.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하다.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한족들에게 다 주면서 또 원망까지 듣지 않으면 안되니 말이다. 우리는 한국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한국에서 번 돈을 가정의 생산성, 생활상승과 민족사회발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 조선족들은 다시 한번 참답게 반성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싶다.
7    도시민족교육의 중요성 댓글:  조회:6172  추천:86  2006-10-16
1.문제의 제기 조선족은 문화를 숭상하고 교육을 중요시하는 민족이다. 과거 그처럼 간고한 이주정착시기에도 마을이 생기면 서당이나 학교가 바로 생겨 글 읽는 아이들의 낭낭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족이 절대다수 차지한 이 땅에서 우리의 농촌 집거지와 수많은 민족학교는 현재까지 민족의 언어문자와 문화를 잃지 않고 고스란히 유지해 올 수 있는 토대이었고 민족사회의 유유한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 토대도 도시진출과 인구감소 등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다. 농민들의 도시진출은 농촌집거지 민족교육약화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되었고 동시에 도시민족교육문제를 더욱 돌출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도시민족교육의 현 상황은 어떻고 문제점을 무엇이며 어떻게 도시민족교육을 발전하는가 하는 등 문제는 전반적인 민족교육문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민족교육, 특히 산해관이남의 도시민족교육에 대한 파악과 연구도 아주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하겠다. 2. 민족교육의 흐름 우리 선조들은 지난 긴 세월에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을 터득하고 자녀의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굶어도 자식만은 공부를 시킨다는 굳은 신념을 안고 공부하자는 자식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과거 우리농촌에는 촌마다 학교가 있을 정도로 민족교육이 크게 보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있었기에 지난 한 세기에 조선족교육은 어느 민족보다 앞장에 설 수가 있었다. 더욱이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이후 민족교육을 중요시하는 우량한 전통과 중국공산당의 정확한 민족정책의 지도하에 조선족교육은 더욱 빛을 낼 수가 있었다. 조선족지역에서는 1952년에 소학교보급을 하였고 1958년에는 중학교교육을 기본상 보급하였다. 그리고 1949년 설립한 연변대학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민족대학이고 1958년에 용정에 설립한 려명농업대학 역시 전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농민대학이었다. 20세기 90년대 중반 연변의 각 대학이 합병하기 이전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농학원, 연변예술학원, 연변사범단과대학 등 5개소의 대학이 있었다. 하나의 지구급 지역에 이렇게 많은 대학이 있다는 것은 아주 의례적이며 중국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중국조선족의 교육열은 민족의 소질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중국조선족의 교육소준은 기타민족보다 크게 앞섰다. 예컨대 매 만명당 인구에서 연구생, 대학생, 중학생 등 소유량을 보면 조선족수준이 기타민족보다 평균 2-3배가 높았다. 3. 도시민족교육의 현황 과거 우리민족교육의 중요한 장소는 농촌마을이었다. 농촌마을은 우리의 상대적인 집거지로 민족의 문화를 보존하고 민족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지이었다. 이와 같은 민족교육의 판도는 과거 몇 십년 동안 여전하였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민족교육의 환경이 전에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에서 나타난 제일 돌출한 현상이 인구이동이었다. 농민들이 시골에서 현성으로, 현성에서 대, 중도시로, 동북집거지에서 산해관을 넘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한 이동은 끝이 없었다. 도시로 향한 인구 대이동이 낳은 중요한 결과의 하나가 농촌 민족교육의 축소이었다. 다른 한면 농촌조선족인구의 도시진출은 동북지역 도시의 민족교육규모를 상대적으로 확대하였지만 산해관이남에는 민족교육을 접촉할 장소마저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변하기 위하여 조선족교육인사들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끝에 현재는 청도, 북경, 천진 등 도시에 몇몇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어 있다. 하지만 거주분산, 정책환경, 학교신축, 재정곤란 등 어려움으로 도시민족교육은 아직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었다. 4. 도시민족교육의 출로 도시화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민족의 도시화과정은 필연적이다. 현재 몇 십만명에 달하는 조선족인구가 산해관을 넘어 중국의 대, 중 도시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만약 동북 3성의 여러 도시에 집결된 조선족인구까지 합하면 우리민족의 도시인구는 이미 상당수에 달할 것이다. 조선족인구의 분산과 민족문화의 약화에 따라 도시민족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크게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민족교육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민족교육은 민족 언어문자의 사용과 보전, 민족문화전통의 유지와 발전 및 민족연대성을 강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여건의 하나이다. 도시화와 더불어 우리의 민족교육은 과거의 농촌중심에서 점차 도시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도시 민족교육의 사명은 더욱 중대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도시 민족교육을 진행하고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이 토론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도시 민족교육의 진행과 발전을 위하여 현재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것인즉: 첫째, 도시민족교육의 필요성과 현실상황에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하여 기초성적인 자료를 작성하여 널리 홍보하고 정부와 민족성원들의 도시민족교육에 대한 중시와 호응을 얻어야 한다. 둘째, 당과 국가의 민족정책 및 민족교육정책을 참답게 활용하여 행정당국에 민족교육의 중요성, 절박성을 호소하고 당의 민족정책을 집행하는 중요한 조치의 하나로 정책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도록 노력함으로 민족교육진행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려야 한다. 셋째, 민족교육은 어디까지나 민족내부의 일로 민족의 전체성원이 이를 고민하고 힘을 합쳐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동북해방이후 조선족민중들이 일떠서 민족학교설립에 모든 힘을 이바지하는 좋은 전통을 이어받아 매 개인이 힘이 자라는 데까지 도시민족교육의 진행과 발전을 성원하고 지원하였으면 한다.
6    우리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댓글:  조회:6042  추천:115  2006-09-22
도시화물결과 “한국바람”은 우리사회에 아주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예전에 생각하면 곧 무너질 것 같기도 한 우리의 전통 집거지인 농촌마을도 많이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에게 희망의 불꽃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흑룡강성 목단강지역 조선족농촌들을 약간 돌아보았다. 여기의 조선족농촌도 기타 지역과 같이 인구, 교육 등 방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마을도 스산한 감이 없지 않으나 농촌을 지켜가고 있는 우리겨레들이 장하게 보였다. 이 자리를 빌어 녕안시 와룡조선족향 영산촌의 일을 좀 적어볼 까 한다. 영산촌은 녕안시에서 41키로, 와룡향소재지에서 15키로 떨어진 아담한 산촌으로 40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촌 이름은 마을의 한 열사의 이름으로 명명한 혁명전통이 있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 와서 제일 인상깊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마을발전을 위하여 뛰고있는 촌지도부 성원들의 어엿한 모습이었다. 촌장 겸 촌당지부서기의 경우 현재 마흔을 갓 넘은 걸걸한 사나이로 19살 때부터 장사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썩 크게는 하지 않았지만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었다. 2000년부터 촌장직을 맡아 마을일에 관심을 돌리고 어째든 마을을 잘 꾸려보려고 노력하였다. 하여 원래 촌의 채무 20여만원을 모두 갚고 현재는 20여만원의 축적까지 있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촌장은 이전부터 하든 장사를 현재도 하고있으며 일정한 수입이 있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유가 있지만 현재 논을 2.5헥타르나 경영하고 있다. 촌장의 말을 빌리면 “마을에서 장가 못 가고 흥정망정 세월만 보내고 있는 총각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들에게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하면 장가도 가고 가정생활도 윤활하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신심을 불러 일르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향건설을 위하여 촌장은 도시와 해외 진출한 영산촌 출신인사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들이 고향건설에 힘을 이바지할 수 있는 길도 구상하고 있다. 영산촌의 회계 또한 젊은이의 본보기로 될 수 있다. 올해 역시 마흔을 갓 넘은 회계는 2001년에 30만원을 대부하여 논 9헥타르를 마련하고 농사짓기에 집념하였으며 현재는 15헥타르의 논을 경영하고 있다. 이외 회계는 촌의 일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촌 지도부의 헌신적 노력과 촌민들의 협력으로 호적인구 1400명이나 실제 800명밖에 되지 않은 영산촌은 지금도 조선족마을의 순수성을 지키고 조상들이 개간한 땅을 자기 힘으로 경영하고 있다. 영산촌이 우리에게 주는 계시를 귀납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촌지도부 성원들이 조선족마을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마을들은 보통 몇 세대를 유유히 이어서 지금까지 건설하여 온 우리의 근거지였다. 촌지도부 성원들이 먼저 마을은 선조들이 개척한 땅에 세운 마을로 우리세대에 와서 무너지면 안 된다라는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마을을 지키려는 마음과 실제적 노력이 있을 것이다. 둘째, 마을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 땅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규모경영의 길밖에 없다. 소수 사람이 마을의 논을 모두 경영할 수 있다면 마을이외의 사람들이 들어 설 곳이 없고 땅이 그들에게 넘어갈 리가 없을 것이다. 셋째, 고향마을을 지키는데 마을의 남은 사람뿐만 아니라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항상 관심과 심혈을 기우려야 한다. 어디가나 잊지 못하는 것이 고향의 정다움과 그리움일 것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단지 고향의 정다움, 그리움에만 집착하지 말고 고향을 위하여 힘을 기여하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남아서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떻게 하면 고향건설에 힘을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등 문제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도시화는 시대흐름의 거세 찬 물결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농경위주인 우리민족도 이제는 농경민족의 탈을 벗고 도시민족으로 발돋움해야 하며 현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 후방”인 농촌집거지 건설에도 등한하여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땅은 영원한 것이고 조상들이 개척한 땅인 전통집거지는 우리민족의 대물림 보배이며 우리민족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혹시 “세계가 지구촌”이라고 운운하고 있을 때 민족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항상 “민족이란 인간공동체가 있음으로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는 것이며 세계인으로 되려면 먼저 훌륭한 애국자와 애족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조선족의 도시진출과 해외진출로 일부 학자들은 더 큰 안목으로 중국조선족을 “세계 조선족”, “동아시아 조선족”으로 구상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의 발전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먼저 중국조선족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바 그것이 날로 축소돼 가는 우리농촌을 국가의 새농촌 건설구상과 더불어 사람은 적어도 원래의 땅을 지킬 수 있고 살기 좋은 마을로 건설하는데 우리 모두 힘을 기울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농촌마을에 영산촌처럼 부지런하고 앞을 내다보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농촌이 왜 피폐화해 지겠는가? 그리고 밖에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전통집거지가 더욱 훌륭히 발전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있고 미래가 보인다.
5    장원한 타산과 지속적인 개척정신이 필요 댓글:  조회:3758  추천:113  2006-06-15
얼마전 흑룡강신문에 실은 “파리 조선족 귀국후 뭘 하려 하나”(2006.06.07)라는 기사에 ‘꿈이 없는 해외나들이, 조선족 언제면 품팔이신세 면할가’라는 질문 아주 인상깊었다. 사실 필자도 이러한 질문을 오래전부터 던지고 싶었다. 한마디 더 보충한다면 우리 조선족이 ‘떠돌이 신세, 품팔이 행세’에서 어서 빨리 탈출하였으면 한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모습 몰라보게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족인구의 도시진출, 해외진출과 갈라놓을 수 없다. 현재 조선족인구의 약 3분지 1이 원 거주지를 떠나 국내 기타지역 또는 해외로 움직이고 있는 사실이 조선족사회의 심각한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 민족성원들이 농촌을 떠나, 지방 소도시를 떠나 대, 중 도시 또는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진보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시대흐름에 발걸음을 같이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 거주지를 떠나는 사람들 ,특히 해외로 향한 로무자들은 왕왕 이렇게 말한다.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입은 것 밖에 해결하지 못한다’,‘농사지어서는 자식공부도 못 시킨다’ 또 ‘좀 더 잘 살려서 역시 밖에 나가야 한다’등등, 물론 이러한 생각 틀리지 않다. 여기서 제출하고 싶은 의문은 현재 해외로무에서 상술의 욕망을 실현하였는가, 또 가령 실현하였다면 그 후에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다시 말하면 우리의 해외로무의 결실은 어떻고 또 미래를 위하여 얼마나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유감스러운 일이 많다. 그 조목들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 로무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데 그친다. 그들은 돈을 벌어 그냥 써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돈이 없을 때는 또 출국을 시도한다. 둘째, 해외 로무자 대부분은 항상 노무자로 자처하고 미래에 대한 구상이 결핍하다. 그들은 우리가 또 뭘 할 수 있나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 터득을 등한시한다. 셋째, 많은 해외로무자들의 가정, 자식 등 현실을 보면 소망달성보다 문제가 더 많다. 만약 위의 조목이 아주 틀리지 않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해외로무자들이 번 돈은 이국에서 각종 학대를 받으면서 긴긴 시간 일을 한 피와 땀의 대가이고, 가족들에 대한 근심과 그리움의 안타가운 마음을 달래면서 일한 대가이며, 특히 자식들을 잘 돌봐 주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의 시달림을 받으면서 일한 대가이다. 이러한 대가에 비해 그 결과 과연 지당한가? 그리고 해외 노무에 따른 가정의 해체, 자식들의 텅빈 마음 및 이에 따른 타락, 부모를 모시지 못한 불효 등 어찌 돈으로만 계산할 수 있으랴! 이에 대하여 우리 한번쯤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족은 민족의 여러 우세로 도시진출, 해외진출에 앞장을 섰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해외진출은 조선족가정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경제발전의 자금축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는 기타민족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우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세 영원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귀중히 여기고 장원한 타산으로 힘들게 번 돈을 가정과 민족 경제기반 닦기에 잘 이용함으로 조선족사회 재발전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외로무를 통하여 자금 축적이 일정히 되어있다. 그리고 우리민족발전에는 기타 유리한 여건들도 마련되어있다. 그 하나는 당중앙의 동북재진흥 정책이고 또 하나는 새 농촌건설의 정책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을 이롭게 활용하여 민족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고 동북아지역개발구상도 민족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을 보면 우리민족 성원들에게 결핍한 것은 장원한 타산과 지속적인 개척정신이다. 때문에 힘들게 번 돈을 더욱 유용하게 쓰지 못하고 흔적없이 날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돈은 향락을 조장하고 의지를 소침하게 하는 장본인으로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년에 우리 선조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동북지역에 생활하게 것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악착스럽게 이 땅을 개척하였기 때문에 정착하게 된 것이고 또 현지사회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불굴의 개척정신이다. 물론 우리에게 개척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개혁개방에 앞장선 것도 개척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첫 단계의 개척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지속적인 개척정신이 결핍한 것은 장원한 타산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이 격렬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자면 반드시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민족의 립지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4    우리의 주체성을 지켜야 댓글:  조회:3693  추천:111  2006-05-20
우리의 선조들이 조선반도에서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동북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한지도 어언간 근 2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 수 세대를 이어 온 조선족은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문화, 교육 등 여러 면에서 앞장 선 어엿한 민족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 이러한 조선족사회도 개혁개방이후, 특히 한국과 활발한 교류가 시작된 후에는 전에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에서 앞선 한국과의 교류에서 조선족은 한국진출과 국내에서의 합작 등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다른 한편 이에 따른 폐단 또한 적지 않게 노출되었다. 그 가운데 민족의 주체성을 점점 잃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가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사회에는 한국을 너무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에게 한국이란 고국이 있는 것은 하나의 큰 우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기반이 중국에 있다는 것마저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재 한국 국적가입자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옳은 처사인지 의문이다. 물론 이들은 한국진출, 체류의 편리를 도모하는데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조선족이 한국에서 림시적으로 돈벌이하는 것은 별문제이지만 한국에 정착하여 생활하는데는 사회, 경제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면 한국에는 조선족의 설자리가 없다. 우리의 기반은 중국에 있다. 우리는 중국에서 각 분야 주류사회에 많이 진입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한국바람에 비단 농민들뿐만 아니라 지식인, 기층 공무원까지도 이에 합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의 많은 기업인들도 거의 한국만을 대상하는 경향이 있어 국내시장과 기타나라 시장 개척에는 등한한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IMF시기 연변경제에 큰 곤혹을 초래한 원인이 한국에 너무 기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조선족은 한국을 떠나지 못 하고 한국과의 연계가 단절되면 즉시 무너질 것처럼 보여진다. 우리의 올바른 길은 중국에 립각하고 중국의 큰 시장을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과의 깊은 혈연, 인연을 충분히 활용하여 중국의 경제, 사회 등 영역의 주류사회진출에 더욱 큰 힘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국에만 집착하여서는 중국 주류사회에 진출할 수 없다. 중국조선족의 미래 한국에만 의탁할 것이 아니다.
3    <화합과 공존>의 이념을 위하여 댓글:  조회:3471  추천:114  2006-01-23
세계화의 흐름속에 화합과 공존의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동한 환경에 처해있는 세계의 각 국가, 각 민족간의 화합과 공존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시일도 오래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겨레 앞에 놓인 현실과제에 화합과 공존 이념의 실천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겨레는 냉전체제하에 남북이 분열되었고 근대 외래침략으로 여러 나라에서 재외동포사회를 형성시켰다. 지금에 와서 남북이 교류하고 화해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지만 분열현상은 개변되지 않았다. 재외동포사회도 부동한 정치, 경제체제하에서 민족동질성이 결핍돼가고 있으며 이질성에 따른 갈등과 불화를 많이 낳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겨레의 내일을 위하여 남북이 통일되고 재외동포사회와 모국과의 윤활한 관계도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화합과 공존의 이념은 서로의 조화를 제시하고 화합과 공존의 실천은 서로의 힘을 합치게 하므로 우리 겨레의 앞날을 더욱 밝게 할 것이다. 그럼 화합과 공존의 과제는 어떠한 것이며 또 어떻게 실현해 나아가야 하는가? 과제의 목적성과 중요성에서 보면 첫째, 남북한의 화합과 공존이고 둘째, 한국과 해외동포간의 화합과 공존이고 셋째, 한국지역민과 재한 조선족의 화합과 공존이며 넷째, 재한 조선족문제해결을 둘러 싼 시민단체간의 화합과 공존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실천성에서 보면 위와 반대로 해당시민단체간의 화합과 공존, 한국 지역민과 재한 조선족간의 화합과 공존 등으로 올라가는 문제해결 방향을 설정하고 우선 서로의 갈등과 불화를 낳는 원인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현재 재한 조선족유학생 네트윅과 가리봉 중국동포타운이 나서서 재한 조선족과 한국 지역민과의 갈등해소와 상호이해의 장을 만드는 실험이 아주 중요한 계기로 될 것이라 본다. 그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한 활동은 곧 다가오는 추석명절에 의 문화학술행사이다. 문화행사는 재한 조선족유학생의 위문연출과 지역민과의 체육경기이고 학술행사는 중국조선족사회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로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의 목적은 재한 조선족의 이미지 개선과 한국 지역민과의 상조, 상생을 도모하는데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작이 있는 법이다. 그 시작이 비록 초라하고 미소하지만 그 목적이 명확하고 행동이 올바르다면 시작이 절반이라고 그 일은 꼭 성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면 앞에서 말한 재한 조선족유학생과 가리봉 중국동포타운의 을 위한 노력도 현재는 아주 미미하지만 시간의 지남에 따라 요원의 불길처럼 훨훨 타올라 한국민과 조선족사회의 큰 호응을 받으면서 묵직한 결실을 맺어리라고 확신한다. 더불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중국, 일본, 미국 등 동포사회에서도 한국인, 조선족, 조선인, 재일조선인, 재미조선인 할 것 없이 모두 서로 협력하고 공조하여 민족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민족의 미래가 더욱 밝을 것이고 세계에서 민족의 위상이 더욱 빛날 것이다. (본 글은 필자가 2003-2004년 한국체류중에 쓴 것이나 현재도 과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띄워 본다.)
2    도시화과정과 우리민족 댓글:  조회:3238  추천:89  2006-01-17
개혁개방이후 중국사회는 몰라보게 변모되었다. 이 가운데 제일 뚜렷한 현상은 도시화과정의 가속화이었다. 과거 중화인민공화국성립직전까지 중국사회는 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낙후한 농업국가로 현대공업생산액은 공농업총생산액의 10%밖에 차지하지 못하였다. 발달하지 못한 공업경제는 현대도시발전의 발걸음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성립이후 중국의 도시화건설은 궤도에 들어섰으나 정치운동에 너무 기울인 탓으로 도시화건설에 뚜렷한 성과를 취득하지 못하였다. 1980년대 이후 본격으로 실시된 중국의 개혁개방은 도시화과정을 가속화시켰다. 하나의 인구현상으로 도시화과정는 인구가 도시로 부단히 집중하는 과정이다. 인구이동의 흐름은 농촌인구의 도시진출이 위주이었으며 이것은 또 도시의 규모를 확대하였고 도시의 경제활동을 더욱 다양하고 활발하게 하였다. 다른 한편 급속한 도시화 진전에 따른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도시화과정의 일반적 영향, 즉 도시인구의 팽창, 교통체증의 증가, 생활시설의 역부족, 도시진출가정자녀들의 교육시스템의 결핍 등을 뛰어넘어서 도시화과정이 중국소수민족사회발전에 주는 영향을 나렬해 보려 한다. 먼저 그 전제를 보면 중국은 한족인구가 절대다수인 다민족국가로 절대숫자를 보면 소수민족인구가 적지 않지만 소수민족이 각기 한족속에 섞이면 바다속의 좁쌀에 불과하다. 때문에 소수민족인구가 자기 집거지를 떠나 도시 진출하는 것은 민족인구의 분산화와 희석화를 말한다. 이에 따른 현상들을 보면: 첫째, 소수민족인원의 도시진출은 현대 시장의식과 새로운 가치관 수립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나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에는 많은 허점이 생기고 있다. 둘째, 도시화발전은 도시인구의 증가와 인구의 집중거주를 현실화하고 있지만 소수민족인구는 더욱 분산되고 희석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셋째, 소수민족인원의 도시진출은 더욱 개방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경제발전의 기회, 선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및 매 개인의 경제수입확대의 가능 등은 있지만 민족인구의 분산화는 민족경제발전과 민족교육실행 및 민족성유지에 많은 제한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고 도시화를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도시화과정은 인류역사의 흐름속에 막을 수 없는 추세이다. 문제는 소수민족 성원들이 전체적인 도시화의 큰 흐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있다. 일부 사람들은 흔히 세계화가 진전되고 세계를 지구촌으로 비교하고 있을 때 국가, 민족 등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며 의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국가와 민족의 소실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겠다. 국가와 민족이 존재하는 한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태여 나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누구이면 어느 인간단체에 속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뿌리가 없는 부평초와 다름이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가 서서히 다가오고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고 있을 때 무슨 민족을 논하랴 하는데 사실 자신의 조상, 자신의 민족 나아가서 자신이 살고있는 나라를 생각하고 않고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세계인으로 될 수 있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물론 현재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과거와 같은 협소한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시장이 있을 수 없다. 그럼 중국조선족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개혁개방이후 특히 1990년대이후 중국조선족사회는 몰라보게 변화하였다. 과거 농경민족인 조선족은 벼농사를 하면서 주위 기타민족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여왔다. 하지만 우리민족이라고 한평생 농촌에 있으라는 법이 없으며 또 그럴 수도 없다. 조선족의 안온한 전원생활은 개혁개방이후 원래의 면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족은 그들이 지닌 문화와 여러 우세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앞장 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구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약 200만명의 중국조선족인구가운데 50-60만명좌우가 농촌에서 도시로, 동북지역 집거지에서 산해관이남지역으로 또는 국외로 진출하였다. 이는 국내 어느 민족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조선족인구의 분포구조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른 문제는 조선족농촌의 공동화(空洞化), 민족교육의 축소, 민족인구의 감소와 분산화, 민족성 약화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발전과정에서 부딪친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인구이동은 도전과 더불어 희망도 부여하고 있다. 조선족인구의 도시진출은 민족문화를 널리 전파하였고 민족경제영역을 넓히었으며 매 개인의 경제실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국외 진출은 민족의 세계적인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동포들과의 교류를 강화하였으며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자급자족위주의 생활양식하에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생활을 하여 왔기 때문에 네트웍이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였다. 그러나 시장경제시대 정보흐름과 물류 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정세에 발걸음을 맞추자면 네트웍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세계가 날로 정보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네트웍형성은 국가와 민족발전에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글로벌시대에 있어서 민족적 네트웍형성은 격렬한 경쟁속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날로 분산화되고 있는 민족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더욱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지금 중국조선족은 중대한 전화기에 서 있다. 조선족이 처한 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적실한 대책의 강구는 아주 시급하다. 그럼 중국조선족에게 무엇이 약세이며 무엇이 결핍한가? 환경론적 각도로 보면 중국은 한족인구가 절대다수 차지한 나라로 한족들은 국내 어느 지역으로 가나 문화의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원래대로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국내 기타지역 진출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문화의 접수와 민족문화의 계승 등 이중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다른 한면 중국현실과 민족자체의 원인으로 중국조선족은 선천의 약점을 갖고 있다. 그것인 즉 세계가 날로 정보화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민족적 중심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못 하고 민족적 네트웍이 결핍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민족인구가 날로 분산화되는 이 시기 가장 큰 약세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나타난 민족발전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저 많은 민족성원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민족교육의 축소를 대비하여 규모있는 집거지 건설의 구상를 내놓고 실천에 옮기는 곳도 있고, 선조들이 개척한 땅과 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하여 조선족가정 특히 어린이 있는 가정의 이사를 환대하는 조선족마을도 있으며, 또 일부 도시지역에서는 코리안 타운 구축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도시에서 민족학교운영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청도 조선족학교, 북경조선족학교 등이 세워졌으며 조선족 기업인들지간의 네트웍도 점차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또 어떤 도시에서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함께 사는 동네에서 서로 협력하여 새로운 조선민족 집거지 형성에 동조하는 기미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민족발전을 관심하는 학자, 전문가들과 민족사업가들은 많은 학술회의를 통하여 민족발전문제를 깊게 토론하고 좋은 대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우에서 보다시피 많은 민족성원들과 여러 민간단체에서 민족발전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재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적 중심의 구축과 네트웍형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민족적 중심이 있고 네트웍이 형성되면 민족인구가 비록 분산되어 각 지역에 흩어져 생활하여도 세계 유태인들처럼 민족성보존과 민족정체성확립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다.
1    인구이동에 따른 영향과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대한 역할 댓글:  조회:3513  추천:80  2006-01-13
1.민족적 네트웍 형성의 중요성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은 각 민족의 발전에 크다란 기회를 주었다. 원래부터 문화소질이 높고 시대적응에 빠른 중국조선족은 이러한 계기를 활용하여 재빨리 농경문화에서 리탈하고 도시화과정과 개혁개방의 앞장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또 민족인구분포의 확산, 민족경제영역의 확대, 민족문화교육의 축소, 민족성의 약화 등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때문에 날로 분산화되고 있는 민족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자급자족위주의 생활양식하에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생활을 하여 왔기 때문에 네트웍이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였다. 그러나 시장경제시대 정보흐름과 물류 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정세에 발걸음을 맞추자면 네트웍이 꼭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세계가 날로 정보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네트웍형성은 국가와 민족발전에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시대에서 있어서 민족적 네트웍형성은 격렬한 경쟁속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민족적 네트웍형성은 중국국내에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범위내에서 민족적 네트웍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조선족은 그가 처한 여러 특징으로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중국조선족의 특징 중국조선족은 비록 조선반도에서의 이주로 시작되었지만 중국에 정착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첫째, 중국조선족은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의 일원이고 다민족국가의 일원이면 또 사회주의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나라의 일원이기도 하며 신속한 경제성장과 종합적 국력의 신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의 일원이기도 하다. 둘째, 중국조선족 선조들은 조선반도의 출신으로 조선족은 현재 한국과 조선이라는 고국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셋째, 지정학적으로 볼 때 동북아세아는 세계강국의 각축속에 깊이 휩싸인 지역이고 또 조선민족이 집중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조선족은 동북아세아의 중심지역의 하나인 중국동북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동으로 한국, 일본, 러시아 및 미국 등 동북아 지역의 중요한 나라들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과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및 미국 등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과도 더욱 밀접한 연계를 형성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특징은 중국조선족이 조선민족 네트웍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3.조선족인구이동에 따른 영향 과거 중국조선족은 중국의 특수한 체제하에 많지 않은 공식적 이동이외 한 지역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하였다. 1980년대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과 개방은 중국인들이 국내 각 지역의 이동을 추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로 향한 발걸음도 재촉하였다. 중국에서 문화소질이 높고 정세적응에 빠른 조선족은 그가 지닌 여러 가지 우세로 개혁개방에서도 국내 기타민족보다 앞장선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국내 기타민족에 비할 바 없는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현재 약 200만의 중국조선족인구가운데 50ꡞ60만정도가 동북 집거지역을 떠나 이동에 가세하였다고 말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아래의 숫자에서 보다시피 하나는 동북지역 조선족인구비례는 1990년의 97.14%에서 2000년에는 92.27%로 떨어졌다. 다시 말하면 1990년 동북3성의 조선족인구는 186.8만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177.5만명으로 감소되었고 기타지역의 조선족인구는 1990녀의 5.5만명에서 14.9만명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통계속에 든 숫자일 뿐 통계에 들지 않은 숫자를 계산하면 동북지역외의 조선족인구가 더 많은 비례를 차지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필자의 여러 차례 현지조사에 의하면 현재 조선족 집거지역의 농촌인구가운데서 약 1/3좌우의 인구가 원 지역을 떠난 사실이 보인다.2005년7월초 필자는 료녕성 대와현 영흥조선족향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선족이 집결된 중앙툰촌과 해빈촌의 인구이동상황을 보면 중앙툰촌의 전체인구 1610명에서 촌을 떠난 사람이 511명으로 전체인구수의 31.7%차지하였고 해빈촌의 전체인구 1315명에서 촌을 떠난 사람이 512명으로 38.9%차지하였다. 그리고 흑룡강성 해림현 해남향의 남라고촌사에 의하면 2002년 마을인구 1941명에서 촌을 떠난 자가 716명으로 36.9%차지하였다(리수학 편저《개척의 70년 발자취--남라고촌사》2002.7). 셋째로 조선족의 국외진출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역시 상술한 촌의 상황을 보면 이동인구가운데 국외진출자의 비례가 중앙툰촌은 41.7%차지하고 해빈촌은 86.7%차지하였으며 남라고촌은 74.3% 차지하였다. 그리고 한국 법무부의 통계와 혼인이동 등 여러 추측에 의하면 현재 재한 조선족이 약 15만명이 되고 일본에도 4-5만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현재 약 200만의 조선족인구가운데서 국내이동이 약 30만ꡞ40만명이 되고 국외이동이 약 20만명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조선족사회의 극심한 변동과 진통은 인구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고국인 한국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조선족의 국외진출에서 보다시피 대부분이 한국이었다. 중앙툰촌의 경우 국외진출자 가운데 한국진출자가 89.6%차지하였고 남라고촌의 경우는 94.9%차지하였다. 사실 “코리안 드림”은 조선족사회의 평온을 허물는 장본인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급속한 인구이동에 따른 조선족 집거지역 농촌인구의 격감, 수많은 부녀자들의 유출, 기타민족에게 경작지의 양도 등은 민족 전통집거지의 축소, 민족기초교육의 약화, 총각들의 혼인의 어려움, 장기출국에 따른 가정파탄의 위기, 도시진출에서 민족성보존의 어려움 등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 민족의 애착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로 근심하고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족 모두의 힘과 지혜를 합쳐서 당면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실천이야말로 민족이 살아 남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4.조선족의 역할과 기여 중국의 개혁과 개방에서 조선족이 앞섰다는 것은 새로운 문제들을 먼저 감수해야 한다는 것과 같으며 동시에 개혁개방의 과실을 먼저 향수하고 있다는 것과도 같다. 현재 중국조선족은 봉착한 문제들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다른 한 방면 또 발전의 희망도 보이고 있다. 도시화, 현대화는 사회발전의 막지 못하는 큰 흐름이다. 인구이동은 중국조선족의 이러한 과정을 기타민족보다 앞서게 하였고 현대의식도 기타민족보다 빨리 터득하게 하였다. 이러한 여건들은 조선족사회의 비약적 발전을 초래하고 조선족이 현대민족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조선족은 민족이 지닌 특수한 우세로 세계화흐름 속에 가세하고 있다. 그 일례로 조선족전체의 약 1/10에 달하는 인구가 현재 중국을 떠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제화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족의 국외이동은 그들의 시야를 넓이고 세계적 감각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또 그들이 다 민족, 다 문화 환경에서 터득한 경험을 살려 세계 기타 여러 나라의 동포들과의 교류를 추진함으로 민족적 네트웍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족의 네트웍형성은 민족의 화합과 공존,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발전,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조선족은 부동한 지역, 부동한 체제하에서 오래동안 생활하여 온 여러 나라 동포, 특히 한국과의 교류에서 많은 갈등과 오해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갈등과 오해도 점점 적어질 것이다. 지금 중국조선족과 한국인과의 화합이 중국에서, 한국에서 서서히 이루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은 한국이란 동일국가와 해외동포들과의 깊은 연계를 잘 활용하여 민족발전의 큰 힘으로 되도록 하여야 한다. 한국과 한국인들도 해외동포에 대한 전통적 시각과 정책을 재정리해야 한다. 과거 중국조선족은 국내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평판 받았고 기타민족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현재 중국조선족은 발전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맞고 있지만 민족전체가 힘을 합쳐 민족적 네트웍을 형성하고 민족발전에 활용하면 여전히 민족의 우수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사회발전에, 민족의 화합에,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와 공존에 큰 힘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2005년11월13일 일본동경에서 개최된 제2차 재일본 중국조선족 국제심포지엄에서 한 발언요지이다.)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