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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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좋은 시

좋은 시 묶음
2019년 07월 19일 16시 41분  조회:1133  추천:0  작성자: 륙도하


채소를 다듬다가 / 강초선

채소를 다듬어본 사람은 알리라
밭에서 갓 캐어 왔다는 채소를 다듬다 보면
먹을 수 있는 속잎보다
먹을 수 없는 겉잎이 더 많았을 때, 속상했던 기억을...

한 뿌리에서 돋아나
속잎과 겉잎으로 갈라지는
채소, 우리네 삶의 가지에도
진짜와 가짜는 태어나는 법
그래, 어쩌면 꼭 필요한지 몰라
속잎을 보호하기 위한 겉잎으로...

진짜와 가짜,
예부터 귀하고 소중한 것은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었던
우리의 조상들
그 얼이 지나친 탓일까
세상 어느 장소 어디를 가도

가짜가 진짜의 주름잡고
화려한 조명발 받는 세상
사라져가는 것은 쓸쓸한 진짜들의 뒷모습
잃어버린 진짜들의 설 자리
바람과 햇살이 부족한
이 땅에서
볓 안되는 속잎마저 말라버린다면
속잎이 없는, 먹을 수 없는
겉잎으로만 자라나는
쓰레기밭을 가꾸는 세상이 될까
그 것 이 두 렵 다



 


비누 / 강초선

그의 몸은
물에 닿으면 반드시 녹는다
그러나
젖은 제 몸의 향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까닭에
한순간의 生이
뜬금없는 거품일지라도
오래 전
세상 눈뜨기 전부터 키워온
제 몸의 향기를
흐르는 물에
아낌없이 게워낼 줄을 안다.





 

 

다른 구멍에 넣다 / 최영철

현금 인출기에 카드를 밀어 넣는데
구멍이 카드를 밀어낸다
자꾸 넣어도 자꾸 밀어낸다
구멍이 자기를 밀어낸다는 걸 알았는지
구멍이 밀어내기도 전에 카드가 먼저 비집고 나온다

몇 번을 그러고 있는데 뒤에 줄 선 아주머니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아차

누가 이 많은 구멍을 만들었을까
현금 카드를 넣는다는 게 전화카드를 넣어버렸다
아주머니가 웃고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경배 - 김소연

 

나쁜 짓을 이제는 하지 않아
나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지

좋아하는 친구가 베란다에서 키운 부추를 주어서
나란히 누운 부추를 찬물에 씻지
좋아하는 친구가 보내준 무쇠 프라이팬에 부추전을 부치지
젓가락을 들고 전을 먹는 동안에

나쁜 음악을 이제는 듣지 않아
나쁜 생각들을 완성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부추를 먹는 동안엔 부추를 경배할 뿐

저편 유리창으로 젓가락을 내려놓는
너의 모습이 보였는데
왜 그렇게 맨날 억울한 얼굴이니

병이 멈추었니
비명이 사라졌니

나의 병으로 너의 병을 만들던 짓을 더 해주길 바라니
예의를 다해 평범해지는 일을 너는 경배하게 된 거니

참 독하다 참 무섭다 하면서
너를 번역해줄 일이 이제는 없겠다

모든 게 끔찍한데
가장 끔찍한 게 너라는 사실 때문에
너는 누워 잠을 자버리지
다음 생에 깨어날 수 있도록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렸지
익숙해져버린 나를 적응하지 못한 채 절절매지
젓가락을 들어 올려
전을 다 먹을 뿐

만약 이 세상이 대답이었던 것이라면
그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더 강하고 더 짙은 이 부추였을까
병이 멈추어버린 병은 어떻게 아픈 척을 해야 할까

부추를 받고 귀여운 인형을 친구에게 건넸지
무쇠 프라이팬을 받고 예쁜 그림책을 친구에게 건넸지

귀엽고 예쁘게
여리고 선량하게

혼자 있을 때마다 나쁜 것들만 떠올리는데
나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아
가지런한 부추들
파릇한 부추들


경배 / (김소연. 2015년 <문학과사상> 여름호.)

ㅡㅡㅡㅡㅡ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풍의 좋은 시를 만났습니다
시인은 아픈 소리를 한 마디도 내지 않고 세상의 아픔을
말하네요 날도 더운데 "그"  초록의 부추처럼 다들 오늘도 싱싱해지시기 바랍니다 오전 근무를 하고 플룻 레슨을 받고 산에 올라왔는데 시 올리느라 잠시 숲속 벤치에
앉았습니다 산새소리와 바람 속에서





한 잎의 온도

            금시아


나뭇잎 한 장, 빙판에 갇혀 있습니다
 
반대편의 아이 하나,
피켓을 들고 침묵합니다
 
이파리 쪽으로 모여들거나 햇살 쪽으로 모이는 온도가 있습니다 초록도 온기도 없는 겨울이 짧은 햇살을 따라 저녁으로 갑니다
 
지구의 시간이 녹아내리고
금요일의 아이들 등교를 거부합니다
 
나뭇잎 주위의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한 잎의 곁도 흔들리는 촛불만큼의 온기가 있습니다 세상의 체감온도가 한 잎의 온도라면
 
금요일의 피켓은
창백한 지구의 어조입니다
 
얼음의 이불 같은 마른 나뭇잎 한 장, 지구를 걱정하는 어린 피켓 하나, 어쩌면 겨울의 숨통이거나 따듯한 봄의 근처들이겠지요
 
어떤 금요일의 약속에는
측정 불가능한 수치 밖의 온기가 있습니다

 

ㅡ『미네르바』(2019, 여름호) 
------------------------------------
금시아 : 1961년 광주 출생.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시집 『툭,의 녹취록』 『금시아의 춘천詩_미훈微醺에 들다』.





한 잎의 온도

            금시아


나뭇잎 한 장, 빙판에 갇혀 있습니다
 
반대편의 아이 하나,
피켓을 들고 침묵합니다
 
이파리 쪽으로 모여들거나 햇살 쪽으로 모이는 온도가 있습니다 초록도 온기도 없는 겨울이 짧은 햇살을 따라 저녁으로 갑니다
 
지구의 시간이 녹아내리고
금요일의 아이들 등교를 거부합니다
 
나뭇잎 주위의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한 잎의 곁도 흔들리는 촛불만큼의 온기가 있습니다 세상의 체감온도가 한 잎의 온도라면
 
금요일의 피켓은
창백한 지구의 어조입니다
 
얼음의 이불 같은 마른 나뭇잎 한 장, 지구를 걱정하는 어린 피켓 하나, 어쩌면 겨울의 숨통이거나 따듯한 봄의 근처들이겠지요
 
어떤 금요일의 약속에는
측정 불가능한 수치 밖의 온기가 있습니다

 

ㅡ『미네르바』(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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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 : 1961년 광주 출생.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시집 『툭,의 녹취록』 『금시아의 춘천詩_미훈微醺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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