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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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허영자시인의 시 댓글:  조회:983  추천:8  2022-03-07
187    시와 인간관계의 본성 댓글:  조회:579  추천:0  2022-02-20
  시와 인간 관계의 본성   ㅡ 이어산 교수   “시를 이렇게 써야 한다.”라는 시 창작법은 사실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시가 지닌 본성에 대한 최대공약수를 공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있으며, 명시로 회자 되는 시의 대부분은 그 본성에 충실하여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읽을수록 맛이 나는 작품들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 초라하고 언어 외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말로 소통하므로 언어를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가장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다.    시는 인간의 말에 최대한 많은 뜻을 축약하여 말 그림으로 보여주는 장르이므로 그 어떤 예술과도 비견 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은유’라는 쟁반에 언어의 보석을 담아내는 일이기에 세상의 모든 철학과 예술성을 집약하는 일이다. 유명 시인들에게 인생에서 중요하고 가장 보람된 일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시를 쓰는 시인’이 된 것을 꼽는 경우가 가장 많다.   모든 시의 출발점은 낭만성과 자기애에 대한 탐구, 항상 동경하는 어떤 것이 마음에 가득하여 삶이라는 집을 아름답고 격조 높게 하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의 조화도 살필 수 있다.  또한 모순어법을 통하여 빛나는 은유를 성립시키므로 시는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시를 쓸 땐 마음은 뻔하지만 어렵다. 이런 현상은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시가 오랫동안 잘 안 되는 원인은 시를 잘 쓰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 시를 배울 때 “욕심을 버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의 시업에서 그것을 깨닫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빨리 깨달으면 그만큼 고생을 덜 한다.   욕심을 버리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기초부터 공부하려는 마음이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오류는 서두에서 언급한, 시가 지닌 본성의 최대공약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본성이란 시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작법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좋은 시를 쓰려고 덤벼드는 것은 씨앗을 땅에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일과도 같다.   오늘부터 시의 본성에 대한 기초를 다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 기초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글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음은 시를 쓸 때 꼭 기억해야 할 기초 몇 가지다.   1. 한자어 안 쓰기 한자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말은 무조건 쉬운 우리말로 풀어서 쓰라. 꼭 한자를 써야 할 경우엔 한글 옆에 병기 하되 한글보다 작게 표기하는 것이 우리글과 말을 사랑하겠다는 시인들의 약속이다.   2. 형용사(감정 형용사), 부사 안 쓰기 기쁘다, 행복하다, 좋다 등의 형용사가 아니라 기쁘고 행복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기쁘거나 슬픈 감정은 독자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대표적으로 쓰지 말아야 할 형용사로는 열심히, 효율적인, 합리적인, 최적화된… 등이다. 형용사 대신 동사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면, 예쁘다 → 예쁘지다 → 예쁘하다 또한 부사는 상황을 가장한다. 매우, 아마, 다만, 진짜, 도무지 등등이다. 시에서 부사를 제거하면 소음이 사라져서 글이 맑아진다. 형용사와 부사 대신 동사, 명사, 대명사만 쓰고도 장면이나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3. 피동형 안 쓰기 능동형으로 써야 문장이 자연스럽다. 보여지다, 쓰여지다, 믿겨지다, 잊혀지다, 꺾여지다(이중 피동사) 예) 내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 내 마음이 착잡하다. 잘 닦여진 도로 → 잘 닦인 도로, 끈으로 묶여진 → 끈으로 묶인 깊게 파진 → 깊게 파인, 배가 뒤집혀 졌다. → 배가 뒤집혔다 (피동 표현→ 능동 표현으로 고칠 것. 피동형이나 피동사 중 하나만 쓰면 되는데 영어에서처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쓰는 이중피동은 현대시에서 멀리해야 할 작법이다.   4. 이중 부정형을 쓰지 말 것. 한 문장 안에 부정 표현이 두 번 이상 나타나게 하지 말 것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진실을 말해야 한다. 어른을 모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모르는바 아니다. → 어른을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 의미하지 않는다. (이중 부정은 의미 전달이 불분명해진다. 뜻 파악에 방해가 된다. 이중 부정을 쓰지 않아야 글이 훨씬 깔끔해 진다.)   5. 접속사 안 쓰기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부사를 쓰지 말 것. 그리고, 그러나, 왜냐하면, 하지만, 그런데… 예) 어제는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나, 하지만,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한가하다. 균형을 이루지 않을 수 없다. →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중 부정을 쓰지 않는 글이 훨씬 깔끔하고 설득력 있는 글이 된다. 접속사가 많은 글은 논리가 부족한 글이다.   6. 조사와 겹조사 안 쓰기 ‘~의’ ~것 조심해서 쓰기 나의 살던 고향은 → 내가 살던 고향은 작가와의 대화 → 작가와 대화 (‘~의’는 일본식 표현)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겹조사) → 그를 사랑했음을 알게 됐다. 내일은 분명 갈 것이라고 믿었다. → 내일은 분명 가리라고 믿었다. ~에 관한, ~에 대한 안 쓰기 건강에 대한 문제는 인류에 대한 문제와 직결된다. → 건강 문제는 인류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 경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 미국 경제를 연구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7. 지시대명사 안 쓰기 이, 그, 저, 이것, 저것, 이런, 저런 등 그 어느, 그 어떤, 그 누구, 그 무엇에서 ‘그’를 빼도 말이 되면 빼라.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8. 띄어쓰기와 맞춤법이다.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전문가인데 이것을 잘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일단 시에서는 낙제다. 요즘은 한글 맞춤법 검사기가 있어서 훨씬 수월하지만, 이것도 100% 믿을 수 없다. 시적 표현을 못 잡아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적 표현도 중요하지만, 띄어쓰기와 맞춤법, 오탈자를 살피는 일이 우선이다.                             시와 인간 관계의 본성   ㅡ 이어산 교수   “시를 이렇게 써야 한다.”라는 시 창작법은 사실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시가 지닌 본성에 대한 최대공약수를 공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있으며, 명시로 회자 되는 시의 대부분은 그 본성에 충실하여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읽을수록 맛이 나는 작품들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 초라하고 언어 외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말로 소통하므로 언어를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가장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다.    시는 인간의 말에 최대한 많은 뜻을 축약하여 말 그림으로 보여주는 장르이므로 그 어떤 예술과도 비견 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은유’라는 쟁반에 언어의 보석을 담아내는 일이기에 세상의 모든 철학과 예술성을 집약하는 일이다. 유명 시인들에게 인생에서 중요하고 가장 보람된 일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시를 쓰는 시인’이 된 것을 꼽는 경우가 가장 많다.   모든 시의 출발점은 낭만성과 자기애에 대한 탐구, 항상 동경하는 어떤 것이 마음에 가득하여 삶이라는 집을 아름답고 격조 높게 하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의 조화도 살필 수 있다.  또한 모순어법을 통하여 빛나는 은유를 성립시키므로 시는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시를 쓸 땐 마음은 뻔하지만 어렵다. 이런 현상은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시가 오랫동안 잘 안 되는 원인은 시를 잘 쓰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 시를 배울 때 “욕심을 버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의 시업에서 그것을 깨닫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빨리 깨달으면 그만큼 고생을 덜 한다.   욕심을 버리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기초부터 공부하려는 마음이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오류는 서두에서 언급한, 시가 지닌 본성의 최대공약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본성이란 시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작법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좋은 시를 쓰려고 덤벼드는 것은 씨앗을 땅에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일과도 같다.   오늘부터 시의 본성에 대한 기초를 다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 기초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글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음은 시를 쓸 때 꼭 기억해야 할 기초 몇 가지다.   1. 한자어 안 쓰기 한자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말은 무조건 쉬운 우리말로 풀어서 쓰라. 꼭 한자를 써야 할 경우엔 한글 옆에 병기 하되 한글보다 작게 표기하는 것이 우리글과 말을 사랑하겠다는 시인들의 약속이다.   2. 형용사(감정 형용사), 부사 안 쓰기 기쁘다, 행복하다, 좋다 등의 형용사가 아니라 기쁘고 행복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기쁘거나 슬픈 감정은 독자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대표적으로 쓰지 말아야 할 형용사로는 열심히, 효율적인, 합리적인, 최적화된… 등이다. 형용사 대신 동사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면, 예쁘다 → 예쁘지다 → 예쁘하다 또한 부사는 상황을 가장한다. 매우, 아마, 다만, 진짜, 도무지 등등이다. 시에서 부사를 제거하면 소음이 사라져서 글이 맑아진다. 형용사와 부사 대신 동사, 명사, 대명사만 쓰고도 장면이나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3. 피동형 안 쓰기 능동형으로 써야 문장이 자연스럽다. 보여지다, 쓰여지다, 믿겨지다, 잊혀지다, 꺾여지다(이중 피동사) 예) 내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 내 마음이 착잡하다. 잘 닦여진 도로 → 잘 닦인 도로, 끈으로 묶여진 → 끈으로 묶인 깊게 파진 → 깊게 파인, 배가 뒤집혀 졌다. → 배가 뒤집혔다 (피동 표현→ 능동 표현으로 고칠 것. 피동형이나 피동사 중 하나만 쓰면 되는데 영어에서처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쓰는 이중피동은 현대시에서 멀리해야 할 작법이다.   4. 이중 부정형을 쓰지 말 것. 한 문장 안에 부정 표현이 두 번 이상 나타나게 하지 말 것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진실을 말해야 한다. 어른을 모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모르는바 아니다. → 어른을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 의미하지 않는다. (이중 부정은 의미 전달이 불분명해진다. 뜻 파악에 방해가 된다. 이중 부정을 쓰지 않아야 글이 훨씬 깔끔해 진다.)   5. 접속사 안 쓰기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부사를 쓰지 말 것. 그리고, 그러나, 왜냐하면, 하지만, 그런데… 예) 어제는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나, 하지만,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한가하다. 균형을 이루지 않을 수 없다. →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중 부정을 쓰지 않는 글이 훨씬 깔끔하고 설득력 있는 글이 된다. 접속사가 많은 글은 논리가 부족한 글이다.   6. 조사와 겹조사 안 쓰기 ‘~의’ ~것 조심해서 쓰기 나의 살던 고향은 → 내가 살던 고향은 작가와의 대화 → 작가와 대화 (‘~의’는 일본식 표현)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겹조사) → 그를 사랑했음을 알게 됐다. 내일은 분명 갈 것이라고 믿었다. → 내일은 분명 가리라고 믿었다. ~에 관한, ~에 대한 안 쓰기 건강에 대한 문제는 인류에 대한 문제와 직결된다. → 건강 문제는 인류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 경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 미국 경제를 연구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7. 지시대명사 안 쓰기 이, 그, 저, 이것, 저것, 이런, 저런 등 그 어느, 그 어떤, 그 누구, 그 무엇에서 ‘그’를 빼도 말이 되면 빼라.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8. 띄어쓰기와 맞춤법이다.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전문가인데 이것을 잘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일단 시에서는 낙제다. 요즘은 한글 맞춤법 검사기가 있어서 훨씬 수월하지만, 이것도 100% 믿을 수 없다. 시적 표현을 못 잡아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적 표현도 중요하지만, 띄어쓰기와 맞춤법, 오탈자를 살피는 일이 우선이다.    
186    이생진시인의 시 댓글:  조회:1379  추천:0  2022-02-20
이생진시인의 시   너는 늙지 마라   이생진 전철을 공짜로 타는 것도 미안한데 피곤한 젊은이의 자리까지 빼앗아 미안하다 ‘너도 늙어봐라’ 이건 악담이다 아니다 나만 늙고 말 테니 너는 늙지 마라 ​ 늙으면 서러운 게 한두 가지 아니다 너는 늙지 마라   있었던 일   이생진     사랑은 우리 둘만의 일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하면 없었던 것으로 돌아가는 일   적어도 남이 보기엔 없었던 것으로 없어지지만 우리 둘만의 좁은 속은 없었던 일로 돌아가지 않는 일   사랑은 우리 둘만의 일 겉으로 보기엔 없었던 것 같은데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나 있었던 일     널 만나고 부터                                     이생진     어두운 길을 등불 없이도 갈 것 같다 걸어서도 바다를 건널 것 같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것 같다   널 만나고 부터는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것 같다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흰구름의 마음                                       이생진 ​ 사람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에서 살다가 땅에서 가고 ​ 구름은 아무리 낮은 구름이라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간다 ​ 그래서 내가 구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 구름은 작은 몸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갈 때에도 큰몸이 되어 산을 덮었을 때에도 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간다.   꽃과 사랑                   이생진     꽃은 사랑의 변명이다 아름답다며 코를 갖다 대는 동기와 동일하다 이런 동일함 때문에 시를 쓴다   하지만 시를 코에 대는 사람은 없다 시는 머리로 읽고 가슴에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는 시드는 일이 없다 그래, 너에게 시를 바치는 일은 너에게 꽃을 바치는 일보다 더 그윽한 일이다   성산포에서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이생진     시 읽는 건 아주 좋다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나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버려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내가 백석이 되어   이생진 ​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 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 오는 날 재로 뿌려 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 만의 밤이었다 ​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 놓고 간 그녀의 스무살 때 치마였다 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 놓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서산에 해는 지고                          이생진     서산에 해는 지고 나처럼 갈 데가 없어 지는 해 가지 말라고 날 붙잡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 길을 동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유혹에 약한 내가 먼저 쓰러진다 해가 지더니 해가 내 옆에 쓰러지고 달이 오르더니 달도 내 옆에 쓰러진다 아무도 일으켜 세우는 이가 없어서 쓰러진 채로 밤을 새웠다 자고 일어나니 따라오던 사람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 어디서 또 만날지 그건 전혀 모른다 그렇게 가고 있다     시집 < 무연고 > 작가정신, 2018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시한잔해요     우리 집 뜰                                  천상병       서울과 의정부가 맞붙은 곳에 자리 잡은 이 집은 가난한 집이다. 그래도 뜰은 볼 만하다. 감나무와 버드나무와 무궁화 꽃이 피며 이름도 모를 잡나무가 있다.   장모님과 여고 삼 년인 영진과 마누라 그리고 셋방 든 홍 씨와 합해서 일곱 명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뜰로서 부끄럽지 않다.   언제나 푸르고 녹색인 뜰 맑고 곱고 아담한 뜰   나는 생각나면 이 뜰에서 쉰다. 그 포근함이여 깨끗한 공기여.   깊어가는 가을밤 -인사동                                        이생진   허무는 일이 한창이다 인사동은 옛집을 허물고 먼 섬은 옛 벼랑을 허물고 뭘 믿고 허무는지 모르겠다 인사동은 모래에 돌을 섞어 철근을 박고 섬은 허리를 잘라 바람을 막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쫒아다니며 막는다 사람의 힘으로 바람이 막아질까 세워놓은 제방이 사람과 한꺼번에 무너진다 오늘만 살고 말 것인지 이쪽에서 허물고 저쪽에서 허무는 바람에 내일이 견디지 못한다 내일이 없는 시를 귀뚜라미가 읽는다 귀꾸라미는 슬픈 시만 골라서 읽는다 깊어가는 가을밤 휴지통 옆에서 시 읽는 소리 내일이 없어도 시는 아름답다     - 시집 『인사동 』 (우리글, 2006)   가난한 시인                                이생진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없이 시간이 아까와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되어 읽는다      ㅡ 시 감상   * 자고로 시인은 가난했다. 아니 가난해야만 했다. 가난해야 시인 같았고 배고파야 시인다웠다. 하여, 시인에게 있어 가난이란 천형과 같은 굴레이거나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인 양 도금이 되었다. 그러므로 감히 배부른 자는 시인이 될 수 없고, 어찌어찌하여 시인이 된다 해도 제대로 된 시나, 이름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천상병이란 시인은 거지나 다름없이 평생을 가난과 더불어 살았으므로, 그의 삶 자체가 온통 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속한 세상일수록 가난한 시인의 노래가 더욱 진실하고 애절한 법이니까. 그래도 가난은 아프다. 시인에게도 가난은 많이 아프다. 가난의 절반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김인육 시인.     가난한 시인                                이생진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없이 시간이 아까와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되어 읽는다      ㅡ 시 감상   * 자고로 시인은 가난했다. 아니 가난해야만 했다. 가난해야 시인 같았고 배고파야 시인다웠다. 하여, 시인에게 있어 가난이란 천형과 같은 굴레이거나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인 양 도금이 되었다. 그러므로 감히 배부른 자는 시인이 될 수 없고, 어찌어찌하여 시인이 된다 해도 제대로 된 시나, 이름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천상병이란 시인은 거지나 다름없이 평생을 가난과 더불어 살았으므로, 그의 삶 자체가 온통 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속한 세상일수록 가난한 시인의 노래가 더욱 진실하고 애절한 법이니까. 그래도 가난은 아프다. 시인에게도 가난은 많이 아프다. 가난의 절반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김인육 시인.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 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 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 쯤에서 태어나 문학할 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 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시집『그 사람 내게로 오네 』(우리글 ,2003)   시를 훔쳐가는 사람                                      이생진     "○○ 시인님  시 한 편 훔쳐갑니다 어디다 쓰냐구요?  제 집에 걸어두려고요"    얼마나 귀여운 말인가 시 쓰는 사람도  시 읽는 사람도  원래는 도둑놈이었다 세상에 이런 도둑놈들만 들끓어도  걱정을 않겠는데  시를 훔치는 도둑놈은 없고  엉뚱한 도둑놈들이 들끓어 탈이다   내 시도 많이 훔쳐가라 하지만 돈 받고 팔지는 마라 세상은 돈 때문에 망했지 시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다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천상병 시인                                      이생진     1 북한산 올라와 건너편 수락산을 보면 천상병 시인 생각난다 어느 해 늦은 겨울 밤 혜화동 로터리 지하다방에서 동인들이 시낭송을 하고 있을 때 젊은 시인 김낙영의 등에 업혀 왔었지 의자에 내려놓자마자 "야, 생진아, 난 니가 스물 다섯 살인줄 알았데, 히히히" 늘 늙어보이는 시인 천상병 그때 나는 쉰 다섯이고 그는 쉰 넷이었는데 그는 나보다 서너 살 더 먹어보였지 자고 일어나면 하늘로 돌아가겠다던 시인 지금은 하늘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가 주는 용돈 이천 원 천 원은 술마시고 천 원은 저축해서 아내랑 먼 여행 떠나고 싶다던 시인 하루에 몇 번씩 펴 보던 저금통장도 놓고 갔겠지   '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던 시인 지금은 누가 술을 사 주는지 지금은 누가 용돈을 주는지 지금은 누구하고 히히 웃는지   2 당신이 타계하던 날 문우 친지들이 내놓고 간 조의금 팔백 오십만 원 처음 만져 보는 거금을 어찌할 수 없어 당신의 장모가 큰 봉투에 넣어 아궁에 숨긴 것을 당신의 아내 목 여사가 그것을 모르고 연탄불을 지폈지 나는 5월 14일 아침 일곱시 이십분경 출근길 라디오에서 이 소리를 듣고 아차했지   '저승에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하던 당신의 말과 백 원 이백 원 모으던 당신이 생각나서 아차했지, 그러나 지금 당신은 타버린 돈을 보고 히히 웃겠지 저승에 와보니 돈이 필요없더라고 히히 웃겠지   (1993)     *천상병의 시에서 **천상병의 시에서      -시집『서울 북한산』 (평화출판사, 1994)   우체국 아가씨                                이생진 ​ ​   우체국 가면서 생각했다 꼭 연인네 가는 것 같다고 가다가 개울을 건너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마시며 생각했다 꼭 연인네 집 앞에 온 것 같다고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난롯가에 앉았던 아가씨가 일어서서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냐고 묻지도 않고 일부인을 꽝꽝 내리친다 봉투가 으스러져 속살이 멍드는 줄도 모르고 꽉꽉 내리칠 때 내 손가락이 바르르 떨었다       - 시집 『인사동 』 (우리글 ,2006)   꽃처럼 살려고                                             이생진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散調)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차디찬 눈보라 속에서도 오롯이 빨갛게 피었다 지는 동백을 시인은 잠시 부러웠던 것일까, 절벽의 아찔함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는 동백이나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지만 팔십 평생을 시작업을 위해 고단한 길을 떠나는 시인이나 모두가 내공이 깊다. 그리고 선천적인 외로움이 참 많이 닮아 있다. 톡톡 동백꽃 떨어진 자리,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185    천상병시인의 시 댓글:  조회:941  추천:0  2022-02-20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천상병시인의 시 천상병은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 천주교 명동성당을 다니다가 81년부터 개신교(장로교) 연동교회로 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동안은/명동 천주성당에 다녔는데/ 그러니까 어엿한 천주교신도인데도/81년부터는/기독교 연동교회로 나갑니다./주임목사 김형태 목사님도/대단히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그동안 두번 설교를 하셔서/나는 드디어 그분의 연동교회엘/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갑니다./교회당 구조도 아주 교회당답고/조용하고 아늑하여 기뻐집니다./아내는 미리 연동교회였으나/그동안 가톨릭에 구애되어 나 혼자/명동 천주성당에 나갔었으나/그런데 81년부터는 다릅니다./한번밖에 안 나갔어도 그렇게 좋으니/이제는 연동교회에만 나가겠습니다./물론 개종은 않고 말입니다./배신자라는 말 듣기는 아주 싫습니다."(연동교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타계했고, 의정부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발표되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제 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상병이 죽을 때까지 10여 년 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작품 목록 《새》 《주막에서》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94년 KBS 1TV 인간극장에서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이 성탄절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연극배우 출신 故 정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천상병, 故 김자옥이 천 시인의 아내이면서 극의 화자인 목순옥 역을 맡았다[3].   학력 일본 효고현 고베 중학교 수료 경상남도 마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중퇴                 천상병의 이야기   김병종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사실 '서울상대' 출신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그러나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시집 를 출간하고…. 유명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화가·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천상병이 떠나버린 인사동은 쓸쓸하다. 야트막한 집들과 필방과 도자기와 그림과 그리고 한국차와 시의 동네 인사동. 모든 것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시대에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어 정겹던 그 인사동. 이제는 그 동네도 반들반들 닳고단 상업의 거리가 되어간다. 인사동이 때묻어 갈수록 시인의 맑고 투명한 정신이 그 때 묻음을 씻어내고 정화시켜 그래도 인사동의 인사동다운 맛을 지켜내었건만, 그 인사동 지킴이 천상병은 새 되어 천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촉수 낮은 '수희재' 전등 밑에서 세상과 인생을 들려주던 '민병산 선생' 떠나고, 인사동을 홀로 지키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마저 천국으로 돌아가버려 인사동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눈발이라도 흩날릴 때 '귀천'을 찾아가는 마음들이 비단 그 모과차의 따뜻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저기 저만큼 어두운 한쪽에 언제나처럼 앉아 있던 시인의 순수가 더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천상병 생각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내 그대 살아생전의 얼굴 본 적은 없네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반평생 넋 나가 살았다는 얘기며 술잔만큼의 웃음과 담배 개비만큼의 구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나 2000년에 시인으로 살아가기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귀천歸天 '간판 못 본 듯 발걸음 옮기네 천상의 시인이었으면 무엇하나 지상의 병 깊은 몸이었던 것을 그대 애꿎게 당한 세 차례의 전기 고문과 생전의 유고 시집 '새'이후 황폐한 나날에 쓴 시들이 쨍그랑!   내 혼을 깨뜨리네 아프고 또 아픈 몸으로 소풍 나온 아이처럼 웃고 또 웃다가 하늘로 돌아간 그대 생각에 나 부끄러워 그 집 앞 얼른 지나쳐 가네.      ​- 이승하 시집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나무   천상병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누가 심었더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도  나무는 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가 심었더란 말이냐?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   ​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 꽃빛                          천상병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시집 < 주막에서 > 민음사, 1995         내가 좋아하는 여자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가까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 귀천 > 도서출판 답게,  1996 *한국문학 영역 총서 2 *     회상 2                        천상병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 귀천 > 답게, 1996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1930 1 29 ~ 1993 4 28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귀천 > 답게, 1996     무명전사(無名戰死)                                 천상병     지난날엔 싸움터였던  흙더미 위에 반듯이 누워  이즈러진 눈으로 그대는  그래도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가    구름이 가는 저 하늘 위의  그 더 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지금 너는 보는가    썩어서 허무러진 살  그 살의 무게는  너를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들의 살의 무게가 되었고    온 몸이 남김 없이  흙 속에 묻히는 그때부터  네 뼈는  영원의 것의 뿌리가 되어지리니    밤하늘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이  그 자리를 수억만 번 와서 씻은 뒷날 새벽에    그 뿌리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네가  장엄한 산령(山嶺)을 이룰 것을 나는 믿나니    - 이 몸집은  저를 잊고  이제도 어머니를 못 잊은 아들의 것이다.     천상병 전집 中에서     김관식 입관   천상병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 놓고 오늘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났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레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1970년 11월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천상병시인의 시 천상병은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 천주교 명동성당을 다니다가 81년부터 개신교(장로교) 연동교회로 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동안은/명동 천주성당에 다녔는데/ 그러니까 어엿한 천주교신도인데도/81년부터는/기독교 연동교회로 나갑니다./주임목사 김형태 목사님도/대단히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그동안 두번 설교를 하셔서/나는 드디어 그분의 연동교회엘/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갑니다./교회당 구조도 아주 교회당답고/조용하고 아늑하여 기뻐집니다./아내는 미리 연동교회였으나/그동안 가톨릭에 구애되어 나 혼자/명동 천주성당에 나갔었으나/그런데 81년부터는 다릅니다./한번밖에 안 나갔어도 그렇게 좋으니/이제는 연동교회에만 나가겠습니다./물론 개종은 않고 말입니다./배신자라는 말 듣기는 아주 싫습니다."(연동교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타계했고, 의정부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발표되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제 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상병이 죽을 때까지 10여 년 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작품 목록 《새》 《주막에서》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94년 KBS 1TV 인간극장에서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이 성탄절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연극배우 출신 故 정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천상병, 故 김자옥이 천 시인의 아내이면서 극의 화자인 목순옥 역을 맡았다[3].   학력 일본 효고현 고베 중학교 수료 경상남도 마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중퇴                 천상병의 이야기   김병종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사실 '서울상대' 출신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그러나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시집 를 출간하고…. 유명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화가·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천상병이 떠나버린 인사동은 쓸쓸하다. 야트막한 집들과 필방과 도자기와 그림과 그리고 한국차와 시의 동네 인사동. 모든 것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시대에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어 정겹던 그 인사동. 이제는 그 동네도 반들반들 닳고단 상업의 거리가 되어간다. 인사동이 때묻어 갈수록 시인의 맑고 투명한 정신이 그 때 묻음을 씻어내고 정화시켜 그래도 인사동의 인사동다운 맛을 지켜내었건만, 그 인사동 지킴이 천상병은 새 되어 천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촉수 낮은 '수희재' 전등 밑에서 세상과 인생을 들려주던 '민병산 선생' 떠나고, 인사동을 홀로 지키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마저 천국으로 돌아가버려 인사동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눈발이라도 흩날릴 때 '귀천'을 찾아가는 마음들이 비단 그 모과차의 따뜻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저기 저만큼 어두운 한쪽에 언제나처럼 앉아 있던 시인의 순수가 더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천상병 생각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내 그대 살아생전의 얼굴 본 적은 없네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반평생 넋 나가 살았다는 얘기며 술잔만큼의 웃음과 담배 개비만큼의 구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나 2000년에 시인으로 살아가기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귀천歸天 '간판 못 본 듯 발걸음 옮기네 천상의 시인이었으면 무엇하나 지상의 병 깊은 몸이었던 것을 그대 애꿎게 당한 세 차례의 전기 고문과 생전의 유고 시집 '새'이후 황폐한 나날에 쓴 시들이 쨍그랑!   내 혼을 깨뜨리네 아프고 또 아픈 몸으로 소풍 나온 아이처럼 웃고 또 웃다가 하늘로 돌아간 그대 생각에 나 부끄러워 그 집 앞 얼른 지나쳐 가네.      ​- 이승하 시집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나무   천상병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누가 심었더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도  나무는 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가 심었더란 말이냐?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   ​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 꽃빛                          천상병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시집 < 주막에서 > 민음사, 1995         내가 좋아하는 여자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가까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 귀천 > 도서출판 답게,  1996 *한국문학 영역 총서 2 *     회상 2                        천상병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 귀천 > 답게, 1996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1930 1 29 ~ 1993 4 28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귀천 > 답게, 1996     무명전사(無名戰死)                                 천상병     지난날엔 싸움터였던  흙더미 위에 반듯이 누워  이즈러진 눈으로 그대는  그래도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가    구름이 가는 저 하늘 위의  그 더 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지금 너는 보는가    썩어서 허무러진 살  그 살의 무게는  너를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들의 살의 무게가 되었고    온 몸이 남김 없이  흙 속에 묻히는 그때부터  네 뼈는  영원의 것의 뿌리가 되어지리니    밤하늘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이  그 자리를 수억만 번 와서 씻은 뒷날 새벽에    그 뿌리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네가  장엄한 산령(山嶺)을 이룰 것을 나는 믿나니    - 이 몸집은  저를 잊고  이제도 어머니를 못 잊은 아들의 것이다.     천상병 전집 中에서     김관식 입관   천상병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 놓고 오늘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났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레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1970년 11월          천상병   (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8.15 광복 후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 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1천원씩 받아 썼던 돈은 공작금으로 과장되었으며, 천상병 시인 자신도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멍들었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천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천상병시인의 시 천상병은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 천주교 명동성당을 다니다가 81년부터 개신교(장로교) 연동교회로 나갔다.   "나는 지금까지 약 30년동안은/명동 천주성당에 다녔는데/ 그러니까 어엿한 천주교신도인데도/81년부터는/기독교 연동교회로 나갑니다./주임목사 김형태 목사님도/대단히 훌륭하신 목사님으로/ 그리고 기독교방송에서/그동안 두번 설교를 하셔서/나는 드디어 그분의 연동교회엘/나갈 것을 결심하고 나갑니다./교회당 구조도 아주 교회당답고/조용하고 아늑하여 기뻐집니다./아내는 미리 연동교회였으나/그동안 가톨릭에 구애되어 나 혼자/명동 천주성당에 나갔었으나/그런데 81년부터는 다릅니다./한번밖에 안 나갔어도 그렇게 좋으니/이제는 연동교회에만 나가겠습니다./물론 개종은 않고 말입니다./배신자라는 말 듣기는 아주 싫습니다."(연동교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의정부시 장암동 자택에서 타계했고, 의정부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발표되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제 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상병이 죽을 때까지 10여 년 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작품 목록 《새》 《주막에서》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94년 KBS 1TV 인간극장에서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이 성탄절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됐는데 연극배우 출신 故 정진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천상병, 故 김자옥이 천 시인의 아내이면서 극의 화자인 목순옥 역을 맡았다[3].   학력 일본 효고현 고베 중학교 수료 경상남도 마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중퇴                 천상병의 이야기   김병종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 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 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사실 '서울상대' 출신이었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그러나 1967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시집 를 출간하고…. 유명한 사건이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나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화가·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 '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천상병이 떠나버린 인사동은 쓸쓸하다. 야트막한 집들과 필방과 도자기와 그림과 그리고 한국차와 시의 동네 인사동. 모든 것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시대에 무채색으로 가라앉아 있어 정겹던 그 인사동. 이제는 그 동네도 반들반들 닳고단 상업의 거리가 되어간다. 인사동이 때묻어 갈수록 시인의 맑고 투명한 정신이 그 때 묻음을 씻어내고 정화시켜 그래도 인사동의 인사동다운 맛을 지켜내었건만, 그 인사동 지킴이 천상병은 새 되어 천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촉수 낮은 '수희재' 전등 밑에서 세상과 인생을 들려주던 '민병산 선생' 떠나고, 인사동을 홀로 지키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마저 천국으로 돌아가버려 인사동은 허전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눈발이라도 흩날릴 때 '귀천'을 찾아가는 마음들이 비단 그 모과차의 따뜻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저기 저만큼 어두운 한쪽에 언제나처럼 앉아 있던 시인의 순수가 더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천상병 생각   이승하     인사동 거리 걸어갈 때 마주치는 찻집 내 그대 살아생전의 얼굴 본 적은 없네   그대 반평생 제정신으로 살다 반평생 넋 나가 살았다는 얘기며 술잔만큼의 웃음과 담배 개비만큼의 구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뿐   나 2000년에 시인으로 살아가기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귀천歸天 '간판 못 본 듯 발걸음 옮기네 천상의 시인이었으면 무엇하나 지상의 병 깊은 몸이었던 것을 그대 애꿎게 당한 세 차례의 전기 고문과 생전의 유고 시집 '새'이후 황폐한 나날에 쓴 시들이 쨍그랑!   내 혼을 깨뜨리네 아프고 또 아픈 몸으로 소풍 나온 아이처럼 웃고 또 웃다가 하늘로 돌아간 그대 생각에 나 부끄러워 그 집 앞 얼른 지나쳐 가네.      ​- 이승하 시집     편지                          천상병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막걸리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쌀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어린애들                                 천상병     정오께 집 대문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돼서 이 나라 주인인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이 있길 빈다.           나무   천상병      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왜냐구요?  글쎄 들어보이소.  산나무에 비료를 준다는 일은 없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란다.  이건 왠일인가?  사실은 물밖에  끌어들이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게 자라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이란 산마다  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것은  누가 심었더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도  나무는 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가 심었더란 말이냐?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오월의 신록                          천상병   ​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 전집] 평민사. 2018     ​ 꽃빛                          천상병     손바닥 펴 꽃빛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시집 < 주막에서 > 민음사, 1995         내가 좋아하는 여자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시집 < 요놈 요놈 요 이쁜놈 > 답게, 1991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가까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 귀천 > 도서출판 답게,  1996 *한국문학 영역 총서 2 *     회상 2                        천상병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 귀천 > 답게, 1996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1930 1 29 ~ 1993 4 28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귀천 > 답게, 1996     무명전사(無名戰死)                                 천상병     지난날엔 싸움터였던  흙더미 위에 반듯이 누워  이즈러진 눈으로 그대는  그래도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가    구름이 가는 저 하늘 위의  그 더 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지금 너는 보는가    썩어서 허무러진 살  그 살의 무게는  너를 생각하는 이 시간  우리들의 살의 무게가 되었고    온 몸이 남김 없이  흙 속에 묻히는 그때부터  네 뼈는  영원의 것의 뿌리가 되어지리니    밤하늘을 타고  내려오는 별빛이  그 자리를 수억만 번 와서 씻은 뒷날 새벽에    그 뿌리는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네가  장엄한 산령(山嶺)을 이룰 것을 나는 믿나니    - 이 몸집은  저를 잊고  이제도 어머니를 못 잊은 아들의 것이다.     천상병 전집 中에서     김관식 입관   천상병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 놓고 오늘은 별 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났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레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을   1970년 11월                      
184    노래 ㅡ 비암산 꽃바다 댓글:  조회:861  추천:0  2020-12-18
183    정호승의 시 댓글:  조회:2043  추천:0  2020-02-02
182    목필균의 시 댓글:  조회:1844  추천:0  2020-01-24
얼굴     목필균   아들과 똑 닮은 여섯 살 손녀가 허리 잘록한 백설공주를 그린다   아버지를 닮은 나와 나를 닮은 아들 아들을 닮은 손녀의 이음줄   쳐진 눈썹, 하얀 피부 외유내강의 성품까지 유전자의 놀라운 대물림이다   아버지가 떠난 길 따라 나도 떠나고 나도 꼭 닮은 부녀가 걸어갈 길은 굽이굽이 넘어갈 세상살이   내가 그리기를 좋아하듯 공주를 그리는 아이를 위해 행복의 타율을 높이는 기도 ​ 매일매일 절절하다   6월의 달력    목필균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골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잘 지내고 있어요    목필균 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며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 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사랑을 정리하며                       - 편지함  목필균 이제쯤  엇갈리기만 하는 너를 정리해야겠다고  편지함을 연다  받은 편지함을 휘저어 보며  과장된 말들을 골라내고  보낸 편지함을 뒤져보며  이별의 예감들을 솎아낸다  이미 한 번 지워진 사연들이  줄줄이 잡혀와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는 지운 편지함  "선택된 메시지를 영구적으로 삭제시키겠습니까?"  예(Y), 아니오(N)  잠시 머뭇거리다  예(Y)를 누른다  다시 한번 가위질 당하는  나만의 이야기들  이제 영원히 놓쳐버린 것을    잡초 목필균   일주일 만에 만난 텃밭은 잡초가 주인이었다 상추사이로 부추사이로 고추사이로 뽑히면 더 안간힘으로 자라는 잡초들 뜯기고 뽑히고 밟혀도 무성히 일어서는 삶의 뿌리들 이순고개넘어서서 호미들고 돌아보니 좋은 날보다 더 기억되는 어려웠던 시간들 캐 낼수가 없어 굽이굽이 고단한 세월 견뎌온 잡초같던 내가 보인다 빈 눈으로 서성거려 보지만  가슴엔 미련이 선명하게 찍힌다 
181    복효근의 시 댓글:  조회:1987  추천:0  2020-01-24
무심풍경 복효근   겨울 감나무 가지가지에 참새가 떼로 몰려와 한 마리 한 마리가 잎이 되었네요 참, 새, 잎이네요 잎도 없이 서 있는 감나무가 안쓰러워 새들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앉으며 작은 발의 온기를 건네주기도 하면서 어느 먼 데 소식을 들려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나무야 참새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것 같아도 안 자고 다 듣고 있다는 듯 가끔씩 잔가지를 끄덕여주기도 합니다 나무가 그러든지 말든지 참새는 참 열심히도 떠들어 댑니다 모른 체 하고 그 아래 고양이도 그냥 지나갑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모두 다 무심한 한 통속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제 길 갑니다 연말인데 벌써 몇 개월 전화 한 통 없는 친구에게 한 바탕 욕이나 해줄까 했다가 잊어버리고 저것들의 수작을 지켜보며 이 한나절에 낙관 꾹 눌러 표구나 해뒀으면 싶었습니다   ㆍ 이녁  /  복효근 그믐 가까운 밤하늘 별들이 좋아 별 보러 가자 했더니 따라 나선 사람   등 뒤로 유성 하나 길게 흘러 "앗 별똥별이다" 하니 "에이, 난 못 봤는데……. 근데 당신이 보았으니 됐어" 한다   내가 먹은 것으로 이녁 배가 부르고 내가 본 꽃으로 제 가슴에 천국을 그리는 사람   나를 스친 풀잎으로 제 살갗에 피멍울이 맺혀 내가 앓기도 전에 먼저 우는 사람아   별똥별 떨어진 자리 또 한세상 같이 건너야 할 무지개다리 하나 걸려 있겠다 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은     복효근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산길에선 정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정상이 어디냐 물으면 열이면 열 조금만 가면 된단다 안녕하세요 수인사하지만 이 험한 산길에서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반갑다 말하면서 이내 스쳐가버리는 산길에선 믿을 사람 없다 징검다리 징검징검 건너뛰어 냇물 건너듯이 이 사람도 아니다 저 사람도 아니다 못 믿겠다 이 사람 저 사람 건중건중 한 나절 건너뛰다보니 산마루 다 왔다 그렇구나, 징검다리 없이 어찌 냇물을 건널 수 있었을까 아, 돌아가 껴안아주고 싶은, 다 멀어져버린 다음에야 그리움으로 남는 다 스쳐보낸 뒤에야 사랑으로 남는 그 사람 또 그 사람 그들이 내가 도달할 정상이었구나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이 산길에 나 하나를 못 믿겠구나 낙엽 ​ 복효근(1962~)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저 찬란한 투 신. ​
180    糖尿病有救了!每天吃它 댓글:  조회:4228  추천:10  2020-01-11
糖尿病有救了!每天吃它,远离并发症,30天血糖稳定在6.0,有高血糖困扰的朋友花2分钟看完受益一生! 千方课堂 2019-03-16 最近,糖友疯传一种神奇的化糖秘方。据说花不了几个钱,但降糖效果出奇的好,转发一次救一命!只要用上它,血糖再不高,并发症全消,吃喝不受限,老糖人变成正常人。只花5分钟,看完一生受用! 真传一句话,假传万卷书。我是一位干了30年内分泌科的地道西医,却对自己的糖尿病,束手无策。 吃过各类降糖西药,打过胰岛素,可血糖仍象脱缰的野马,高居不下。更可怕的是,忍饥挨饿,面黄肌瘦,浑身瘙痒,视力模糊,肝肾功能越来越差,真怕哪天变成尿毒症! 最后,还是咱中医“祖传”秘方救了我的命,让我摆脱糖尿病及并发症的纠缠!为了让更多的糖友,能像我一样重获健康,我决定公布这个神奇的秘方! 我叫王志强,在市医院内分泌科工作30年。在患病之前,我也遇到过成千上万的糖尿病患者,虽然竭尽全力,给每一位患者精心选择降糖药,调整胰岛素剂量,可往往结果还是血糖不断反弹,并发症越来越严重。日积月累,我逐渐对这些胰岛素、降糖药也产生了怀疑。 我属于家族遗传性糖尿病,我父亲就因糖尿病诱发脑血栓去世,我大哥糖尿病导致双眼接近失明,肾功能衰竭,卧病在床近10年。 从二甲双胍、优降糖、美吡达,到卡司平、倍欣……每一代降糖药,我都率先使用,可血糖仍像坐电梯,降得快,弹得更快,走路就像踩棉花,头重脚轻,尿频嘴干,眼前起雾看不清东西,去年我还出现几次心衰,脚肿得鞋都穿不上! 多亏在协和医院工作的老同学,告诉我一个神奇的“化糖秘方”。据老同学讲,这个“化糖秘方”在协和医院做临床,遗传性糖尿病、肥胖型糖尿病、药物性糖尿病,还有眼底、足底、心脑、肝肾出现并发症者100个人里头,有98个人全面变好。 我吃上当天,明显感到嘴不干了,排尿少了,浑身有劲。吃到三四天,血糖就稳定在餐前5.0餐后7.0,眼前不起雾,看报纸不费劲,连吃三个疗程后,血糖稳定再没高,肝肾指标也正常了,原来增大的左心室,康复如初! 我 大哥服用“化糖秘方”效果比我还明显,蛋白尿消失了,接近失明的双眼也能看清东西了,如今他不再依赖胰岛素,能吃能喝,气色红润,不仅血糖一点没反弹, 而且从头到脚的并发症,也一天比一天少!我俩聚一起常感叹:要是化糖秘方再早知道几年,老爸也不会因糖尿病丢了性命!   我们会在48小时之内回电确认信息是否有误,请保持手机畅通,敬请谅解,谢谢!咨询电话:400-8556358 370年前老祖宗留下 天然口服胰岛素   因本人全家、亲朋好友,皆受益于化糖秘方。为此。我对它产生了浓厚兴趣,并进行了深入讲究,这才发现: 它还真不是普通的民间偏方,比西方的胰岛素还早几百年,收录于明崇祯十年(1637年)的《皇家进药底薄》第36卷。化糖秘方,过去专门为达官显贵,皇亲国戚治消渴顽疾。 给皇亲国戚治病可不能马虎,如果治不好不但自己要掉脑袋,还要株连九族。化糖秘方之所以见效快、治疗彻底,全因它配方独特,治法新奇。 老祖宗留下来的经验:治疗糖尿病药材必须好,药量必须足,化糖秘方中个顶个都是名贵好药: 化糖秘方,益气养阴、温阳活血,能有效消化转移多余血糖为能量,快速激活胰岛细胞,从而消除高血糖,消除并发症,被医学专家,形象的称为天然口服胰岛素,并经现代制药技术,改良浓缩后更容易被人体吸收。 花5分钟认真读懂它 吃出来的糖尿病 饿出来的并发症   现在人们生活好了,每天大鱼大肉,举个例子: 胰岛每天只能分解一块肉,你却吃进去5块肉,久而久之胰岛累坏了,必然罢工。而我们吃降糖药也好,打胰岛素也好,都是把糖当成“垃圾”仍掉了,细胞长期得不到营养,处于“饥饿”状态,必然失去生理功能,导致身体机能和组织器官逐渐丧失功能,出现可怕的并发症。 降糖就像压弹簧 压得越紧越反弹   我们把血糖比作弹簧,降糖药、胰岛素就像按在弹簧上的手,手按下去,血糖就能得到控制,手一放,血糖就会再弹起来。弹簧压得越低,反弹也就越高,久而久,弹 簧必定失去弹性。人身体也一样,如果血糖忽高忽低,肯定会导致肝脏、肾脏、胰脏功能衰退……让糖尿病一辈子牵着鼻子走。 从根消除高血糖 三多一少再难找   中 医认为:疾病既然有它的来路,就一定有送走它的去路。胰腺属于中医“脾”的范畴,属于足太阴脾经。因此,治疗因胰腺病变引发的糖尿病(中医消渴症),病根 是气阴两虚、病症是血瘀燥热,治疗上应以益气养阴,清热消渴为大法,目的就是改变高血糖体质,消化血糖为能量才是根本出路。 “化糖秘方”最神奇之处就在于,它是多余血糖的搬运工,吃进多少糖,它就能消化转移多少糖,这样不仅血糖平稳了,五脏六腑的细胞也有营养了,糖尿病自就好了,并发症也就从头到脚全都消失了,以后血糖想高也高不起来。 化糖秘方 健康消糖不反弹三大绝招 绝招1:当天消糖毒,平稳血糖防猝死   别小看“化糖秘方”的消糖效果,方中特有绞胶蓝、雪莲、魔芋、苦瓜、玉竹,每一味都是解毒消糖的能手,进入血液短短30分钟,就能靶向直达糖毒堆积处,就像污水转化过滤器一样,将血液中积存糖毒,过滤转化,快速被组织吸收,患者服用当天,血糖平稳回归6.0以下,有效预防糖尿病高血压、脑血栓、冠心病、心脑猝死发生! 绝招2:消糖活胰岛,停针少吃10年药   医学检测:化糖秘方中葛根、黄芪能益气,虫草、黄精能补虚,天花粉、胡芦巴,温阳活血,强强联合,从中独家萃取出“消糖活胰肽”,它就像放电一样,通过微电流刺激,让受损休眠的胰岛细胞重新苏醒,全面恢复胰岛化糖功能,吃进多少糖,消化多少糖,服用1-2个疗程,就能摆脱胰岛素,扔掉多年降糖西药,血糖平稳不再升高! 绝招3:细胞全激活,从头到脚病不找   化糖秘方,方中杜仲雄花、姬松茸、肉桂、茯苓、桑叶、山楂,个顶个滋养细胞有奇效,它们在消化多余血糖的同时,还能净化血液,软化血管,对心、肝、脾、肺、肾,五脏细胞进行全面修复滋养。 坚持服用3个疗程后,就能让你由不敢吃不敢喝的糖人体质,转变为吃多少糖就消化多少糖的正常人体质。从根儿康复因糖尿病引起发的心脑血管病,肾功能衰竭,糖尿病足、糠尿病眼病、皮肤病等周身并发症。 “化糖秘方”:进入血液,消血糖、扫垃圾;进入脏腑,排毒素,清内脂……所到之处将糖毒统统都带走,消糖稳糖的同时改善自身糖代谢能力,即能降血糖,又能养五脏,还能降脂降压。为此,医学界称它为“消糖之王”,更是“调养之王”! 再不怕降糖西药毒害 8年糖尿病免遭截肢苦 黑龙江农民孙贵田,糖尿病8年,吃遍各种降糖西药,可是这血糖还是忽高忽低,一直治不好,更引发了脚面坏疽,不但什么活都干不了,还面临截肢隐患。 要不是及时用上“化糖秘方”,老孙的脚可能早就不保了。原来血糖18.5mmol/L,血压180/110mmHg,服用1周后,血糖控制在6.3 mmol/L,血压稳定在120/90mmH,晨起盗汗,失眠严重,夜尿多,经常头晕头痛明显减轻。 用化糖秘方3疗程,不仅烂了一年的脚,肉全长好了,更从此摆脱了降糖西药对全身的毒害。 治糖1次胜过降糖10年 实现“汤、糖、躺、烫”金指标苦 服用化糖秘方,白天益气消糖,晚上营养细胞,治养防三效合一,不出三个疗程,让老糖人实现“汤、糖、躺、烫、”四大康复金指标: 汤,指饮食的改变,很多糖友怕吃饭吃多了血糖高,只能喝汤喝个水饱,用“化糖秘方”,你就可以像健康人一样,顿顿能饱餐,再不用担心血糖再升高。 糖,指血糖的改变,“化糖秘方”当天消糖,3天稳糖,空腹血糖值,稳稳控制在6.0以下,让你再无后顾之忧。 躺,指精神的改变,糖尿病人身子没劲,总想躺着。那是因为血糖没被吸收,都被排走了,“化糖秘方”,消化血糖为能量,自然浑身有劲。 烫,指并发症的改变,糖尿病人的脚,麻木迟纯,不小心很容易烫伤,引起感染坏疽,甚至截肢!化糖秘方,不仅能消化血糖,更能滋养神经,恢复手脚神经敏感度,调节内分泌循环,并发症越喝越少,身体越来越好。 老糖人变常人 吃喝玩乐样样行 天津河东区退休干部杨新发,糖尿病15年,天天小米饭,一两多,吃不饱也得受着。夏天,瞅着人家吃西瓜,自己只能干咂嘴,吃不敢吃,喝不能喝,做点儿家务事,上公园溜溜弯儿,都受限制,活动大发点,就上气不接下气,累得直冒虚汗,心跳特别历害。 老杨以前光知道,吃降糖西药,打胰岛素来治糖尿病,可打针吃药不见好,自从服刚用化糖秘方,才五六天,头不晕了,胸也不闷,睡觉特别香。 一个疗程,他就减服一半降糖西药,血糖仍然稳定在6.0,手脚也不麻木了,身上也有劲了。坚持吃了3个疗程后,他就再也不依赖降糖药了,血糖还是正常范围,血压血脂再没高。现在他,吃喝玩乐样样行,彻底摆脱糖人称号! 化糖秘方快十倍 一年药费省百倍 如果您在糖尿病治疗中出现以下情况,请抓紧用化糖秘方: 1. 普通降糖药难以控制病情:说明血液中无法消除转化的糖已经很多,胰岛损伤很严重,同时出现视力模糊,皮肤搔痒,手指尖麻木,伤口不愈合等症状,应及时服用化糖秘方。 2. 长期吃降糖药,肝肾功能出现损坏:化糖秘方,不但能消化血糖,再生胰岛细胞,同时还能排出血液和肝肾等脏器中,多年沉积的药毒,调理内环境,消除并发症。 3. 刚检查出糖尿病:临床上医生不主张吃降糖西药,轻度糖尿病患者,可直接服用化糖秘方。 4. 用降糖西药物产生抗药性,药越吃越不管用:如果再不用化糖秘方,消化多余血糖,激活胰岛细胞,将无药可救! 西药降糖三年多 查出一身并发症 北京海淀区43岁罗大哥,自从得上糖尿病,每天吃降糖药比吃饭还准时,二甲双胍配合瑞格列奈,血糖控制一直也很稳定。可万万没想,年初体检结果一出来,吓出他一身冷汗。 虽然血糖值没再高,可血压、血脂、心率、尿蛋白,各项指标都超标。难怪他最近,总是感觉浑身无力出虚汗,腿脚发麻,心慌失眠,小便味大总尿急。 以前他觉得人到中年,谁还没点小毛病。可听大夫说,养病如养虎,10个糖尿病9个死于并发症,所以控制糖尿病并发症比控制血糖更重要。 自从用上化糖秘方,罗大哥明显感到,头不晕了,眼不花了,手脚不再麻,尿频尿急消失了,浑身有劲,睡眠好。三个疗程后,血糖、血脂、血压、心率、尿蛋白等指标全都回归了正常值,身体一天比一天好! 不再依赖胰岛素 血糖稳定5.5 心脑血栓再没犯 家住西安市小寨西路的47岁李海霞,糖尿病、高血压多年。每天吃降压药、打胰岛素,仍头晕胸闷,视力模糊,手脚麻木。有一次晕突发脑梗,差点丢了命,住院时听病友说,每天打针吃药,时间久了一样还会中风偏瘫患心梗。 没想到服用化糖秘方6天,血糖血压平稳降到正常值,连续服用了一个月,胰岛素、降压药统统不用了,再去医院体检,血糖5.5 mmol/L。血压130/80 mmH,胰岛功能正常,心脑血栓全部消除。 坚持化糖秘方3疗程 惊喜不断…… 化糖秘方,不仅消化血糖为能量,让血糖回归正常值,不再增高,而且坚持用上3疗程以上,身体还可以发生3大变化: 第一:小便变味,浑身有劲:消化血糖的能力增强了,小便中流失的营养没有了,所以尿液变清了,泡沫消了,骚味没了,浑身有劲。 第二:三多少一,再也不找。血糖、尿糖全面稳定,饥饿感、眼干涩、口干口渴、夜尿多、肢体麻木等症状彻底消失。 第三:并发症全消,吃喝不受限。胰岛细胞活力增加,五脏功能逐渐正常,糖尿病引发的眼病、肾病、脑病、心脏病、坏疽,皮肤病、生理障碍等7大病症相继消失,糖尿病人停针停药,能吃能喝,恢复健康生活。 百强药企独家制造 消糖控糖效果用化验单说话 相信大多数糖友,一说到降糖,都有一堆失败的经验和苦水。 但这次,大家千万别把化糖秘方和那些没名没姓,小作坊制造,没有正规批号、甚至添加违禁成份的降糖产品相提并论。 论出身:化糖秘方,系出名门,系全国百强药企,中华老字号,全国独一个,绝没第二个。 论口碑:化糖秘方方,问世以来,深受广大糖友信赖,备受称赞和追捧,受益人群与日俱增。 论品质:化糖秘方,坚持配方独特,选料上乘,工艺精湛,疗效显著之特色,严把质量观,视品质为生命,视责任重于泰山,一百道工序,给您一百个放心。 化糖秘方适合 (一) 遗传型糖尿病:主要由先天遗传代谢缓慢,造成先天性高血糖症 (二) 肥胖型糖尿病:不规律的饮食习惯诱发的,往往伴有高脂血症、脂肪肝、高血压、 冠心病、高尿酸症等。 (三) 糖尿病视网膜病变:出现不同程度视力下降,并伴有眼底视网膜病变。 (四) 糖尿病肾病:出现浮肿,尿中泡沫增多,蛋白尿,肾衰等病症。 (五) 糖尿病神经病变:四肢皮肤感觉异常,麻木、针刺、蚁走感。足底踩棉花感,腹泻和便秘交替,尿潴留,半身出汗或时有大汗,性功能障碍。 (六) 糖尿病反复感染:皮肤感染,疖、痈,泌尿系感染,女性外阴瘙痒。 (七) 糖尿病病足坏疽:经久不愈的小腿和足部溃疡。 【百年药企松茂堂】 松茂堂创办于1912年,民国著名药号,与同仁堂齐名。由李少洲、王祗文和滕敬三合资创办,数十位国家级中医泰斗传承百年医术,专注降糖107年。百年来,无数高官富甲、普通民众患者得到奇迹般的救治,被誉为“国家的荣誉,百姓的口碑”。 探索、攀登永不止步,松茂堂糖尿病研究有限公司已在深圳挂牌上市(挂牌代码:366828),松茂堂“唐力停”得到了中国以及美国食品和药物管理局FDA的认证和中国人民保险担保,如此过硬的实力与背景源于对专业的孜孜不倦和植根于灵魂的责任与使命——心存大愿,让天下无病患。 医者仁心,民之所托。思国之安,积其德义。2017年11月,纪念毛主席诞辰124周年活动筹备组织委员会联合中国文化产业规划网,将松茂堂糖尿病研究院的产品“唐力停本草膳食纤维粉”定为“纪念伟大领袖毛主席诞辰124周年指定用品”。 并由PICC中国人保担保,广大糖友可以放心选用。 松茂堂,担负为患者排忧解难的使命,将百年奇方,快速降糖之法,公诸于众。名额有限,机不可失。 如果您有:糖尿病、及高血压、心脏病、眼病、肾病、糖尿病足等并发症,不妨试一下百年字号松茂堂平糖奇方,多年来松茂堂秉承着“哪怕人间药生尘,惟愿世间人无恙”的从医精神,医好一个患者,造福千万家人。无病一身轻,方便自己的同时,家人无麻烦无负担。 松茂堂特膳平糖方结合了现代诺贝尔医学奖最新发现的胰岛细胞糖脂通道原理,内含多种特效化糖聚合微粒。它的最大特点,就是能全效化糖、平糖。平糖方中的多酚聚合微粒能释放出数以亿计类胰岛素分子,全面提高血液胰岛素浓度。可让血糖快速下降,化解餐后高血糖。方中的提取的熊果酸可以持续的打通,细胞糖脂通道,恢复它正常的结构,修复受损的胰岛细胞,特别有利于化解空腹高血糖。还有平糖方中的牛膝甾酮,化糖酶,它能直接碱化血液中的低密脂和甘油三酯,有效降低心梗,白内障,肾衰预期。让人更安心。这剂平糖古方,已经完成全部37家医学单位近万人的试吃试验,很多人都亲切的叫它糖尿病救星,效果极其惊人。 中医药文化已有千年历史。本草医人、本草救人正是百年药堂松茂堂的座右铭。针对高血糖、糖尿病这一世界难题,松茂堂责无旁贷,联合旗下几十名国宝级老中医,对《松茂堂丸散膏丹配方》这本历代传承下来,记录了松茂堂百年来治病救人奇方的中医药典籍进行重新梳理,结合现代顶级生物科技,终于找到解决糖尿病反复不愈的好方法。
179    한국시 (임영도시 다수) 댓글:  조회:1686  추천:0  2020-01-05
강물에 띄운 편지   이학성     흐르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달무리가 곱게 피어났다고 첫줄을 쓴다.  어디선가 요정들의 아름다운 군무가 그치지 않으리니  이런 밤은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고 쓴다.  저 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도무지 당신의 마음도 알 수 없다고 쓴다.  이곳에 나와 앉은 지 백 년,  저 강물은 백 년 전의 그것이 아니라고 쓴다.  마음을 벨 듯하던 격렬한 상처는  어느 때인가는 모두 다 아물어 잊히리라 쓴다.  그럼에도 어떤 일은 잊히지 않으니  몇날며칠 같은 꿈을 꾸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쓴다.  알 수 없는 게 그것뿐이 아니지만  어떤 하나의 물음이  꼭 하나의 답만 있는 게 아니기에  저물어 어두워가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그러나 강물에 띄운 편지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  ...........................    강물은 멀리 흘러간다. 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길고 큰 강을 시간에 빗대기도 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도 장강(長江)과 유사하다. 휘돌아가는 물굽이가 있다. 앞뒤 사정이 많다. 그 시간의 강물 위에 시인은 편지를 써서 띄운다. 달의 언저리에 월훈(月暈)이 곱다고 쓰며 누군가를 생각한다.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해 생각한다. 바뀌고 달라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난해해서 도무지 풀이할 수 없는 삶의 질문들을 생각한다. 그 질문들에 꼭 정해진 답은 없다. 누구도 하나의 마음이 아니기에. 시인은 반성과 살핌의 긴 편지를 써서 강물에 띄운다. 그러나 이 편지는 꼭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수심(水深)이 깊은 자신의 마음에게 띄우는 서신이기도 하다. 내가 써서 내가 받아보는 편지도 의미가 크다. 따뜻한 말로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문태준 (시인)   2020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풀씨창고 쉭쉭 이주송   멧돼지 한 마리 그 커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산기슭이 들어 있다 노루발, 뻐국새,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벌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 멀리 가고 싶은 풀씨들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면 된다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 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낼 터 씨앗들은 직파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섬에는 국제종자보관창고가 있다 먼 훗날의 구호(救護)를 위해 멧돼지 한 마리 그 쉭쉭거리는 씨앗창고를 기르고 싶다 이 산과 저 산 이쪽 풀밭과 저쪽 풀밭이라는 말 다 멧돼지의 등짝에서 떨어진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나들이로 섞이는 산 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 멧돼지 꼬리에서 반딧불이 날아오르고 꺼칠한 오해 속에서도 극지에서도 풀씨들이 움튼다   [당선소감] “쉬지 않고 묵묵히 시의 길 걸을 것” 치유 위해 내디딘 걸음이 행운 전해줘 이끌어준 분들께 고맙다 말하고파 한해를 돌아보는 천변의 산책길에서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온몸의 통증으로 병원 순례를 하다가 무조건 시집을 읽었던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시에 대한 첫걸음은 살기 위한 길이었고 고통의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치유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렇게 큰 영광으로 이어지다니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아버지가 개간한 산비탈 밭의 농작물은 늘 멧돼지들의 몫이었습니다. 형편없는 수확물 앞에 엄마의 하소연과 저들도 한식구라던 아버지의 뚝심이 엉기는 날이면 할머니 무릎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날엔 멧돼지 등에 올라탄 채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농작물을 지키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멧돼지 발자국마다 애기똥풀이 피었고 개똥벌레들이 잡식동물들의 접근을 막아줬습니다. 잡초와 멧돼지랑 함께 먹고 살았던 유년의 밭은 이제 아버지와 함께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심 곳곳에 멧돼지가 출현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 산비탈 밭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합니다.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쉬지 않고 묵묵히 걷겠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공광규·이종섶 선생님, 시클 고맙습니다. 지켜봐준 가족들 사랑합니다. 오늘도 요양병원에서 자식들만 기다리고 있을 엄마, 당신의 기도대로 생의 가장 큰 선물을 안고 달려갑니다. 이주송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밀고 가는 역량 섬세하며 힘차 … 야생동물과의 상생까지 다뤄 예심을 통과한 21명의 작품은 일정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선자들의 손에 마지막까지 들려 있던 작품은 ‘그랴’와 ‘신기루’ 그리고 ‘풀씨창고 쉭쉭’이었다. ‘그랴’는 ‘그랴’라는 말을 통해 아버지와의 기억을 환하고 따뜻하게 더듬고 있는데, 시를 끌고 가는 힘이 남달랐다. 하지만 시적 긴장감이 아쉬웠고 다른 투고작에서 언어가 조금은 넘친다 싶었다. ‘신기루’는 독특한 비유와 이야기 방식으로 선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모호한 지점이 없지 않았고 동봉한 작품에서 편차가 느껴졌다. ‘풀씨창고 쉭쉭’은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시였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는 풀씨가 아닌 멧돼지의 등에 힘차게 올라타 대지를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씨앗의 모습은 당찼고, 시를 밀고 가는 역량은 섬세하면서도 힘찼다. 선자들은 몇번이고 행간의 여백까지 반복해 읽어나가며 이 시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으나, 마지막 행까지 다 읽고 난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멧돼지의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산기슭이 들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소 덜 다듬어지거나 서툰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노루발, 뻐꾹채,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별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의 이름을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묘한 서정성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쉭쉭거리는 씨앗창고”의 풀씨는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이 극지에까지 초록의 생명력을 퍼트리고 있는데, 이 응모자는 말의 호흡을 나름의 방식으로 터득하고 있는 듯했다. 야생동물과 사람의 상생에 대한 고민과 질문까지 넌지시 덧붙여 던지고 있기도 한 이 시와 더불어 동봉한 다른 네편의 시에서도 신뢰를 주기에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 선자들은 논의의 끄트머리에 닿아 당선작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이 작품들 외에도 ‘피싱’ ‘씨앗 열개’ ‘사후(死後)’ 등의 작품이 논의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면서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끝까지 최선을 다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곽재구 시인 박성우 시인 매미소리/ 임영조   감나무 가지 매미가 악쓰면 벚나무 그늘 매미도 악쓴다. 그 무슨 열 받을 일이 많은지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운다. 조용히들 내 소리나 들어라 매음매음… 씨이이… 십팔십팔 저 데뷔작 한 편이 대표작일까 경으로 읽자니 날라리로 읽히고 노래로 음역하면 상스럽게 들린다.   - 시집『그대에게 가는 길』 12월 / 임영조 올 데까지 왔구나 막다른 골목 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 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 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 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 꽁꽁 얼어붙은 천지엔 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 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 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 뒤돌아보지 말자 더러는 잊고 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 사랑이며 증오는 이쯤에서 매듭을 짓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 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 이 춥고 긴 여백 위에 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자서전 / 임영조 1943년 10월 19일 밤 하나의 물음표(?)로 시작된 나의 인생은 몇 개의 느낌표(!)와 몇 개의 말줄임표(……)와 몇 개의 묶음표(< >)와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둔 몇 개의 쉼표(,)와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아 보류된 하나의 종지부(.)로 요약된다 빨래 / 임영조 옥상에 널린 빨래가 다냥한 햇볕 받아 눈이 부시다 오랜만에 사람을 벗어버리고 찌든 때를 씻어내고 냄새도 털고 날아갈 듯 가볍게 펄럭거린다 이제는 각자 옷 그만 두고 새나 되어 훨훨 날아가겠다는 듯 온 하루 빨랫줄을 잡고 흔든다 바람이 부추기면 신바람이 나는지 쩔쩔매는 바지랑대 혼자 바쁘다 주인의 흉허물을 싸고돌던 한통속 백주에 속속들이 드러나면 저렇게 서로 다른 색깔로 아우성칠까 자중지란 난파된 갑판에 서서 수기를 흔드는 보트 피플들 같다 다시 보면 가을 운동회 날 하늘에 나부끼던 만국기 같은 저 옥상에 넌 빨래를 보면 아직 덜 마른 내 마음이 무겁다 사람도 때를 씻고 무게를 덜면 저렇듯 깨끗하고 가벼울 수 있다면 제멋대로 부시게 펄럭일 수 있다면 젖은 빨래처럼 몸 무거운 날 나도 눅눅한 마음 꼭 짜 널고 싶다 한 점 얼룩 없는 백기로 펄럭 내 멋대로 세상에 나부끼고 싶다 삼월 /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본다.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날                                      곽효환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고래 해체사 ​ 박위훈 ​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호기심으로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혀지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死因)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 [당선소감] 절망의 시간 잊게 해 준 ‘詩밭 경작’ ​ 졸작 몇 편 신춘문예 원고로 보내놓고 십여 일, 조바심에 안달이 난 걸음이 문수산을 향했다. 영하의 기온과 가쁜 숨이 산 중턱을 오를 즈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일시에 가라앉히는 당선소식이 발보다 먼저 정상을 밟았다. ​ 모두가 직립의 삶을 꿈꿀 때 가끔 횡보의 날들을 꿈꾼 적 있다. 혼탁한 정치판만큼이나 시답잖던 내 짧은 사유의 공간에라도 무한 갇히고 싶었던 날들, 그 날들이 시와의 동거였지 싶다. ​ 부지불식간 찾아온 뇌경색, 후유증이 남긴 편마비 그 숭한 짐승과의 양보 없는 드잡이에 지쳐갈 무렵 마치 구원의 손길인 양 두려움과 절망의 시간을 잊게 해준 또 다른 짐승이 詩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형체도 없고 끝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는 짐승과의 싸움 그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강을 건너는 것이기도 했고 무저갱에 갇힌 순한 짐승의 두려운 울음 같은 거였다. 시의 문외한인 내게 문을 활짝 열어준 ‘김포문예대학’ 그 너른 품에서 수삼년 시구와 부대끼던 날들이 언제인지 싶다. 햇병아리들 몇 모여 시의 숲을 해찰대던 ‘달시’의 김부회 시인과 동인들, 무녀리를 자처 시의 끈을 놓지 말자며 서로 경계하며 이끌어주던 ‘반딧불이’ 동아리 샘들, 당근과 채찍으로 詩라는 과육을 맛깔나고 단단하게 단근질시켜준 문성해 시인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 詩밭으로 한 발 더 들어서는 것이 끝없는 미로를 걷는 것이며 기약 없는 약속임을 알기에 기쁨보단 두려움이 앞섭니다. 평생 詩밭을 경작할 것이지만 시를 놓는 것이 여반장(如反掌) 같다는 것도 잘 알기에 나를 더 경계할 것입니다. 이 영광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겸허함을 마음 네 모서리에 친친 두르고 자만이라는 짐승을 가두어 두겠습니다. 사람답게 사람 같은 꼭, 그런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시와 사랑을 품고… ​ 박위훈 : -1964년 출생 -김포문예대학 13-15기 수료 -반딧불이 동인 ​ [심사평] ​ 심사를 하면서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지 않거나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경우에는 논의의 대상에 올려두기가 어려웠다. 또한 한 편의 시를 잘 빚어낸다고 해도 거듭해서 흡사한 사유를 풀어놓거나 작품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어휘로 진행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 우선 다섯 분의 작품을 가려낸 후 다시 숙고했다. ‘블랙의 도시’는 신선한 실험정신이 돋보였으나 그 외 두 편의 작품과의 미학적 편차가 컸다. ‘벽’ 등의 시는 삶의 협곡을 더듬으며 긴장감 있게 시를 전개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투고작들이 전체적으로 고른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세 분의 작품을 두고 고민했다. 문나원의 ‘괜찮은 날’ 외 2편은 개인을 둘러싼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진솔하면서도 과도한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는 점이 신선했다. 작품을 끌고 가는 방향성, 언어배열이 고르고 안정적이었으나 삶의 깊숙한 곳에 시선을 밀어 넣어 숨겨진 비의나 은폐된 문제들을 끄집어내려는 힘이 부족했다. “유리창들은 늘 쏟아지기 위해 거기 있다” “순간은 그러나 얼마나 성공적인 실패를 부르는가” 등의 문장들은 개성적인 아포리즘과 구별된다. 어떤 사유의 지점에서 단정 지으며 머무르기보다는 남달리 치열하게 밀고나가기를 기대한다. ​ 황세아의 ‘징그러운 사과’ 외 4편은 일상화된 생각을 뒤집는 사고의 전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직설적 발설에 비해 비유를 통한 서사의 진행이 자의적인 구성에 갇혀 있었다. 시인의 상상력과 잠재력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것은 정제되지 못한 생경한 이미지의 구조가 아니라 핍진하며 익숙한 현실에서 그것을 다르게 인식해 마지막 문장까지 책임지는 태도라 할 것이다. 시의 표면적 새로움에 휘둘리지 말고 천착해나갈 때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 숙고 끝에 당선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박위훈의 ‘고래 해체사’ 외 2편이다. 사고의 전개와 대상을 응시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웠고 타자와의 접촉에 있어 대범한 기질이 돋보였다. 한 고래의 주검을 통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는 감정은 귀하다. 버틀러는 ‘애도’는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겨 슬픔이 내가 되게 하는 거라고 했다. 이 세계에서 떠밀려지는 존재들과 접촉하며 상처받고 통제할 수 없이 슬퍼하는 자가 시인이 아닐까? 당선작이 기성의 시들처럼 다소 숙련화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점이 아쉬웠으나 패배감으로 끝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높이 보았다. 심사위원 : 배한봉 · 김이듬   무료 / 양광모 따뜻한 햇볕 무료 시원한 바람 무료 이침 일출 무료 저녁 노을 무료 붉은 장미 무료 흰 눈 무료 어머니 사랑 무료 아이들 웃음 무료 무얼 더 바래 욕심 없는 삶 무료   나무 한 그루 / 이정록 내 棺으로 쓰일 나무가 어딘가에서 크고 있다 한 그루 한 그루 뿌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산을 이루는가 하늘의 품은 하도 넓어서 나뭇잎 간혹 새처럼 치솟는다 밑가지를 버리고 순을 틔우는 나무 껍질에 딱딱한 벌레를 감싸며 그늘을 내려놓는 나무는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경험한다 목숨을 걸어야 내 할 수 있는 일 나는 누구의 따뜻한 棺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집으로 삼을 벌레들아 여기 나이테만 촘촘한 괴목이 있다 내 棺으로 쓰일 나무 한 그루 어딘가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  
178    공광규 시 묶음 댓글:  조회:1930  추천:0  2020-01-05
별국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들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는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흰눈/ 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않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별 닦는 나무 공광규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월간『현대시학』2010년 1월호 : 본적 공광규 청양군수가 2014년 개별공시지가 결정통지문을 내가 사는 일산 주소로 보내왔다. 본적인 남양면 대봉리 653번지 지목이 옛날 초가집 두 채 자리여서 대지인 줄 알았는데 밭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여동생들이 고추와 맥문동을 심을 때 사금파리와 기왓장과 모가 부드럽게 닳은 곱돌이 식구들처럼 다정하게 어울리던 밭이다. 혼자된 어머니가 좋아하던 홍화꽃과 도라지꽃이 출렁이고 겨울을 춥게 보낸 언 고구마와 썩은 무를 버렸던 밭이다. 어린 동생이 마당가에 눈 똥을 삽으로 떠다가 묻고 그걸 알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가서 똥을 묻고 오던 밭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비어있자 민들레씨앗이 날아와 해마다 식구를 늘리고 무좀에 찧어 붙였던 쇠비름이 뿌리로 자기 영역을 넓히고 명아주가 거미에게 공짜로 잎과 대궁을 빌려주어 거미줄을 치고 반짝이는 아침 이슬을 매다는 밭이다. 지붕이 없어서 별이 가득 내리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비를 다 받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눈을 다 덮고 벽이 없어서 바람이 무시로 다녀가는 밭이다. 개미와 땅강아지와 귀뚜라미와 지렁이가 모여 살고 산비둘기가 오고 참새가 와서 발자국을 찍고 가는 밭이 내 본적이다.   잃어버린 문장 / 공광규 푸장나무* 향기가 풋풋한 마당 쑥대를 태우며 말대방석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별과 별을 이어가며 썼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 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던 문장 어머니의 콧노래를 받아 적던 별의 문장 푸장나무도 없고 쑥대도 없어 밀대방석을 만들던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 무릎마저 없어 하늘공책을 펼칠 수도 읽을 수도 없는 문장 별과 별을 이어가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덕 그 문장이.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2008) *푸장나무: 떡갈나무의 다른 이름 새벽에 잠이 깨어         공광규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학교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가 사는  아들과 딸 생각이 자꾸 난다 자식들도 내가 젊었을 때처럼 잡히지 않는 미래와  불안을 덮고 잘 것이다 밖에는 고양이가 새벽을 울고 간다 직장에서 쫓겨나 밤이슬을 맞으며 불 꺼진 자취방을 찾아가던 내가 생각나서 안쓰럽다 갑자기 기침이 난다 평생 기침이 심해서 무를 달여 먹고 배를 삭혀 먹던 서늘한 아버지 기침 소리를 닮아서 놀란다 아버지도 이렇게  집을 나가 사는 나와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새벽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어떤 시위  공광규   종이를 주는 대로 받아먹던 전송기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전원을 껐다가 켜도 도대체 종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사무기기 수리소에 전화를 해 놓고 덮개를 열어보니 관상용 사철나무 잎 한 장이 롤러 사이에 끼어 있다 청소 아줌마가 나무를 옮기면서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나 보다 아니다 석유 냄새나는 문장만 보내지 말고 푸른 잎도 한 장쯤 보내보라는 전송기기의 침묵시위일지도 모른다 ㆍ 대전역 가락국수 / 공광규   행신역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내려와 새로 지은 깨끗한 역사 위에서 철로를 내려다보면서 가락국수를 먹고 있다   열여섯 살 때 처음 청양에서 버스를 타고 칠갑산 대치와 공주 한티고개를 투덜투덜 넘어와 부산행 완행열차를 기다리던 승강장에서 김이 풀풀 나는 가락국수를 먹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쉬운 여섯이니 벌써 사십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선로도 많아지고 건물도 높아지고 오고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국수 그릇도 양은에서 합성수지로 바뀌었다 내가 처음으로 옛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러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냄새와 노란 단무지 색깔과 빨간 고춧가루와 얼큰한 맛은 똑같다 첫사랑처럼 가락국수도 늙지 않았다 이런 옛날이 대전역이 좋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도 국수발을 닮아서 좋다 : 얼굴 반찬  공광규(1960~)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어릴때 대가족 속에서 자랐습니다 잘 차린 반찬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인지 돌아보면 이제 기억마져 희미한 내 인생의 한 장면 입니다. 이 시를 접하면서 울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생각나게 하는 시였네요 지금 네 식구 살아도 함께 모여 한달에 밥 한끼 먹는게 힘이드네요   서울역       공광규 서울역 4번 플랫홈에서 부산행 고속열차를 기다리다가 발견한 화강암에 새긴 서울발 이정표 조각물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음각되어 있다 내가 오늘 가려는 부산까지 441 킬로미터 목포까지 414 킬로미터 강릉까지 374 킬로미터 그런데 평양까지는 겨우 260 킬로미터로 표시되어 있다 인천까지는 38킬로미터인데 내가 살고 있는 일산에서 개성까지는 더 가까울 것이다 부산보다 조금 더 먼 신의주가 496 킬로미터 나진은 부산 가는 거리보다 두 배 더 먼 943 킬로미터이다 그렇더라도 고속열차로 간다면 6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내가 못 가본 저곳들은 얼른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대동강 건너 신의주에서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반도까지 나진을 거쳐 광활한 시베리아를 지나 북해의 어디쯤에 닿고 싶다 어느 날 배낭을 꾸려서 떠났다가 몇날 며칠을 묵으며 깨끗한 술 한잔 하고 돌아오고 싶은 곳이다  
177    수필이론 댓글:  조회:982  추천:0  2020-01-05
수필이론 수필의 기법 중 교착법이란   교착법은 두 개 이상의 다른 이야기를 중첩시켜 배열하는 기법이다. 이것은 앞이야기의 끝부분과 뒷이야기의 앞부분을 오버랩(겹침)시킴으로써 인간의 이중성이나 양면성, 또는 서로 다른 인물의 유사성을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이 기법은 앙드레 지드가 발견한 조직법으로서 한 인간의 이중성을 '천사와 악마', 혹은 '현실과 환상' 등의 양면성을 통하여 고발한다. 교착법의 약속은 두 계열 이상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한 계열의 끝부분과 이어지는 다른 계열의 시작부분이 반드시 의미상의 동일성이나 차이성의 형태로 교차(오버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교차되는 내용이 유사성이나 공통성을 지니면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적합하고, 이질성을 지니면 동일한 인물의 양면성을 대조시키거나 고발할 때 어울린다. 참고 문헌: 한국 현대 수필의 구조와 미학
176    한국의 좋은 시11 댓글:  조회:1818  추천:0  2020-01-05
  내 남자 양말을 개다가 / 에해야 남편,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 미웠다 애잔했다 남편 좋아하는 음식 파는 곳을 지나며 지갑부터 꺼내드는 내가 웃기다 남편 좋아하는 색깔 스웨터 보며 발길부터 멈추는 내가 참 그렇다 놀이터에서 애들과 놀아주는 동네 젊은 아빠들 보다 애들 어릴 때  테니스에 미쳐 아빠 테니스 치는 테니스장 철망담 코를 대고 들여다보게 하던 생각에 울화통 확 치밀다가도 이국의 칸나빛으로 노을 스러지고 햇볕 냄새 가득 든 마른 옷 걷어 들여 뒤꿈치 말갛게 닳은 남편 양말 차붓이 개다 보면 문득 남편이 그립다 그.러.다.가. 퇴근하고 들어올 때 굽은 등을 보면 괜히 화가 나는 것이다 그 애잔하고 서글픈 내 남자의 세월 그대로 읽혀져 화가 나는 것이다 등좀 펴고 다녀! 퉁명스러워도 마누라 인사가 반가운 내 남자는 속없이 헤벌쭉 웃는다   삼계탕 / 이정록 시신의 입에 불린 쌀을 넣듯 깨끗한 헝겊에 찹쌀을 싸서 담는다 버드나무 숟가락 대신 굵은 손으로 청주 한잔에 황기 인삼까지 모신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다 이제 목이 달아났으니 소름으로 느껴 볼 수밖에 없다 뱃속에 넣은 반합이라니? 새벽을 열어젖히던 목청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생각 많던 머리도 버리고 가부좌 틀고 누웠다 에고나 뜨거워라 벌떡 일어나 앉으면 사리 그득한 부처의 환생이구나 싶겠지만 스스로 다리 포갠 것 아니라 대추 밤 마늘 쏟아지지 마라 지퍼 채운 전대 끈이었구나 화탕지옥 와불 같다만 발목의 피멍을 보니 야단법석 힘깨나 썼겠다 등짝엔 도리깨로 찍은 용 문신도 있겠다 가스레인지가 불두화 피워올리며 독경을 해도 열반은 육탈이라, 웅크리고 있는 것 다 풀어놓거라 허벅지며 앙가슴에 쇠젓가락을 찌른다 없는 발가락 당겨 사라진 미주알 가리려 애쓰는 동안 허공이 품은 넓고도 아름다워 안개도 풀어놓는다 선학표 쟁반 송학 위에 삼계*의 매듭을 풀어놓는다 *삼계: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한다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미망 세계.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은방울꽃 / 이정록 아버지는 안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서 식구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노모에게 미안하단 말 올리고선 빗줄기 속에 서계셨다. 우리는 마루 끝에 나란히 서서 차렷경례를 올렸다. 아버지 이제 오세요? 어머니가 나오시지 않으면 나오실 때까지, 어머니가 서열을 잘못 찾으면 막내 옆 끝자리에 설 때까지 야간 점호는 계속 되었다. 왜 내가 끝자리래요? 어머니께서 댓 발 입술을 내밀면 빗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당신이 막내보다 귀엽잖아. 찡긋 눈짓을 날렸다. 우리는 그제야 골방으로 기어들었고 어머니의 입술은 은방울꽃 가장 작은 봉오리가 되어 취한 아버지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드리는 거였다. 그런 날 꿈결엔 막내를 임신한 늙은 어미가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는 것이었다.   흙장난 / 이정록 흙장난한다고 혼내지 마세요. 저 무 좀 보세요. 흙 속에서 미끈덩, 저리도 잘 컸잖아요.   엄니의 남자 / 이정록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등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전만 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었는데 가오리연만한 허공이 생긴다 어색할 땐 호통이 제일이라,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헛기침 놓는다 "엄니, 저한티 남자를 느껴유? 워째 자꾸 엉치를 뺀대유?"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자개농 쪽으로 팔베개 당겼다 놓았다 썰물 키질소리 "가상키는 허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읎어야" 신파연명조로 온통 풀벌레 운다   굴뚝연기 / 이정록 굴뚝연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누군가의 차가운 등짝을 덥히고 왔기 때문이지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 이정록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 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 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국산천을 사랑해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   "잘못했습니다" "어찌 북측을 남측으로 옮겨가려 하십네까?"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데서 주웠습네까?"   "신계사 앞입니다"   "요거이 조국통일의 과업을 수행하다가 산화한 귀한 거이 아닙네까?"   "몰라봤습니다"   "있던 자리에 고대로 갖다놓아야 되지 않겠습네까?"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합네까?"   "일행과 같이 출국해야 하는데요"     "그럼 그쪽 사정을 백천번 살펴서 우리 측에서 갖다놓겠습네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네다 통일되면 시인 동무께서 갖다 놓을 수도 있겠디만, 고사이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네까? 그럼 잘 가시라요"   한국전쟁 때 불탔다는 신계사, 그 기왓장 쪼가리가 아니었다면 어찌 북측 동무의 높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리요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해야겠다, 쓰다듬고 쓰다듬는 가슴 속 작은 지붕 조국산천에 오체투지하고 있던 불사 한 채                          시집 [정말] 창비 2010   남의 나이 / 이정록 환갑이 넘으면 남의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허망하게 죽은 젊은이와 한 몸이 되어 황혼 길을 걷는다. 다시 맞은 봄으로 사랑을 불태우기도 한다. 팔순이 지나면 남의 나이를 모신다고 한다. 기저귀 차고 떠난 젖먹이와 둥개둥개 한 몸이 된다. 때도 없이 어리광 부리고 떼쓰기와 삐치기와 사탕을 좋아한다. 아예 똥오줌도 못 가리는 갓난아기로 돌아간다. 그래서 영혼은 모두 다 동갑내기 벗이 된다.   나무도 가슴이 시리다 / 이정록 남쪽으로 가지를 몰아놓은 저 졸참나무 북쪽 그늘진 둥치에만 이끼가 무성하다 아가야 아가야 미끄러지지 마라 포대기 끈을 동여매듯 댕댕이 덩굴이 푸른 이끼를 휘감고 있다 저 포대기 끈을 풀어보면 안다, 나무의 남쪽이 더 깊게 파여 있다   햇살만 그득했지 이끼도 없던 허허벌판의 앞가슴 제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덩굴이 지나간 자리가 갈비뼈를 도려낸 듯 오목하다 시집「의자」2006 문학과지성사 작가의 말 : 나 스스로를 위로할 때, 읽는 시입니다. '내 가슴도 포대기 끈이 묶여있던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쓰다듬어 줍시다. 돌주먹 쥐고, 자신을 쾅쾅 부수지 맙시다.   일생 / 이정록 알로 한 번 알에서 애벌레로 또 한 번 다시 번데기로 한 번 또다시 배추흰나비로 한 번 난 생일이 네 번이야 너처럼 음력 양력 다 따지면 여덟 번이나 되지 난 나를 낳고 나를 떠나보내지   마지막은 아예 상복을 입고 태어나지  [문학의오늘] 2016 겨울호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골목의 번식 김은숙 발밑을 믿지 마세요 골목의 뒤통수는 백 년이 가도 썩지 않아요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한 태아도 봉지에 버려진 조약돌, 툭툭 발길에 채여요 어둠이 눈감아줬다면 당신은 그것을 바람 빠진 축구공쯤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나자마자 봉지 속으로 꼬깃꼬깃 숨겨진 첫울음, 도심에는 한 방향만 암기한 검은 사각형들이 살아요 정육면체 어둠이 검은 시냇물이 되어 흘러요 밤이면 먹물 같은 골목, 징검다리는 없어요 그 안에 더 이상 비밀을 숨기지 못할 때 종착지는 캄캄한 땅속이거나 고래 뱃속이었어요 뭔가를 산란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 지난밤 그 골목은 비좁았어요 집안 어디쯤에서 폐품이 되기 좋은 질긴 산책로를 발견했나요? 창문 밖 골목 저 끝말이에요 봐! 저기! 저것 좀 봐! 소리친 게 당신이었나요? 노을을 뚫는 검은 새떼의 비행은 사실상 누군가 목을 비틀어서 유기遺棄한 비닐봉투였죠 은밀함을 목 졸라 죽일 때는 낯선 저녁 역광 뒤쪽이 최고예요 역광을 믿지 않았던 고래는, 죽은 봉투를 해파리로 읽었어요 그것들은 간혹 뱃속에서 심장을 갉아 먹다 고래의 사인死因이 되기도 하죠 검정을 죽이고 돌아와, 비닐봉투가 피살되었다는 뉴스특보를 보더라도 웃음 짓는 것이 중요해요 한잔의 블랙커피를 삽으로 파고서 떨리는 증거들을 감쪽같이 묻어버리세요 지난밤에는 어둠을 자백하라고 길고양이들이 나를 포위했어요 묻어버린 시간과 폐기한 말들을 뱉어내라고 난리에요 그렇지만 최후의 단서를 들키지는 않았어요 귀소본능이 없는 것은 발명가가 깨트린 새 소리예요 길게 누운 골목, 졸음의 이마 위로 갓 태어난 개똥을 조심하세요 골목 왼쪽, 삐쩍 마른 나뭇가지 꼭대기에 흙을 잔뜩 묻히고 입을 헤- 벌린 깃발처럼 펄럭이는 검은 농담들, 맞아요 어느 아르바이트생이 20원짜리 비닐봉투 도둑으로 몰린 사건 아시죠? 두께도 없고 입구도 없는 혐의는 아메바보다 지루해요 괜찮아요 밀봉된 태아의 캄캄한 몸과 비명도 따지고 보면 고무장갑과 같은 족속 붉어서 아무도 구별 못 해요 매일 밤 태어난 어둠은 막다른 모퉁이에 검은 무덤을 만들고, 아침이면 기지개 켜는 코스모스가 그것들을 화려하게 변호하죠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다양한 목격서사 통해 우리 시대 골목론 새롭게 써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10명의 응모작 37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들 작품을 숙독한 후 5명의 작품을 놓고 거듭 읽었다.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진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공들인 흔적이 역설적으로 기성품을 보는 것처럼 익숙했고 개성이 없었다. 기존의 시 미학에 갇혀 안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는 결코 신인이 될 수 없다. 내용적으로는 올 한 해 국내외에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들이 있었음에도 그러한 곳에 눈길을 보낸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적 충동과 사유에 충실한 작품도 고르기 어려웠다. 이상하다싶을 정도로 개인 서사에 집중하는 시들이 많았는데, 미시적인 시·공간 속에서 사소하다 싶은 세목들을 짚어내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이런 시들을 읽으며 우선 논의한 내용은 시의 소통 가능성이었다. 요설에 가까운 언어 비틀기나 이미지 왜곡 등이 지적되었고, 익숙한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나열하는 무딘 언어 감각도 건강하게 소통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피어라, 숲’ 외 3편, ‘배고픈 이름’ 외 3편, ‘보성 댁 출항기’ 외 2편, ‘간이’ 외 5편, ‘그늘의 곳간’ 외 2편이었다. ‘그늘의 곳간’은 잘 쓴 시였지만, 그 ‘잘’의 의미가 기성의 시 문법에 고루하리만큼 충실하다는 쪽으로 해석되었다. ‘간이’는 외부 세계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으나 시적 대상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함으로써 산문화되고 말았다. ‘보성 댁 출항기’는 입담이 좋았다. 그러나 입담에 산문성이 더해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배고픈 이름’은 잘 짜였고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도 좋았다. 그러나 아귀가 딱딱 맞아가는 시상 전개가 역설적으로 시를 단순하게 만들고 말았다. 심사위원들은 ‘피어라, 숲’ 외 3편 가운데 ‘골목의 번식’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앞서 언급된 시에 비하면 불안정한 면들이 있지만, 자기 목소리에 충실하다는 점이 계속해서 시를 써나갈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특히 ‘골목’에 ‘유기’된 생명체와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목격서사를 통해 이 시는 우리 시대의 골목론을 새롭게 써나가고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시를 써나가기를 당부한다. 허영자 시인·문신 시인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김은숙] "아직 발굴되지 않은 세계를 찾아 천천히, 그러나 불꽃처럼 갈 것“ 누구는 있다 했고, 누구는 없다 했다. 내게 시 쓰기란, 그들이 말하는 있거나 없거나 한 전설을 발굴하는 일이었다. 메마른 종이에 수없이 뭔가를 심고 물을 주었다. 아주 가끔 다른 생각을 했다. 때론 밤을 새웠고, 새벽에도 걸었다. 간혹 뭔가가 보였고 이내 사라졌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시가 무엇인지…. 그러나 길었던 육신의 삶보다 시 안에서 보낸 짧았던 시간이 더 아팠고 반짝였다. 이것은 낯선 영토에서 발굴하는 일종의 고고학 게임이었다. 내 키가 채송화만 했을 때 교실 뒤쪽에 내 시가 붙여졌다. 첫 경험이었다. 그 후, 세상 저쪽에서 긴 세월이 흘렀고 나는 날것의 생을 건너며 성인이 되어 있었다. 시는 환자와의 대화 속에서, 골방에서, 저녁 산책길에서, 출퇴근길에 수시로 고개 들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밤마다 한 줄의 문장으로 내게 오셨다. 기적이었다. 원고를 보내놓고, 습관처럼 책꽂이 속에서 하늘을 꺼냈다. 잔인하게 푸른 형광색 오후에 자주 밑줄을 그었다. 그날 성탄찬양 연습 중에 수화기 저쪽 음성 하나가 나를 잡아당겼다. (학교 안 가겠다던 아이처럼) 난공불락 같았던 시 앞에서 돌아서려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내 손을 잡고 그 벽과 친해질 수 있다고, 시의 눈을 마주 보라고 응원해주신 김명희 선생님. 내가 언어의 껍질을 깨고 노란 부리를 내밀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신 그 믿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뜨겁고 따뜻한 은행나무 도반들과 나를 사랑하는 모든 문우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매일 새벽 기도로 응원해 준 남편(당신의 침묵은 행복한 천둥이었어.)과 가족들, 나의 영원한 고향인 엄마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큰 용기가 필요했던 외출에 흔쾌히 문 열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치명적인 무게의 적막과 동거하겠지만 그때마다 잘 견디겠다는 다짐을 새기며 허브향 촛불을 켠다. 천천히, 그러나 불꽃처럼 가야겠다. * 김은숙 작가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 송파문인협회 이사, 은행나무문학회, 송파수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석: 2020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풀씨창고 쉭쉭 이주송   멧돼지 한 마리 그 커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산기슭이 들어 있다 노루발, 뻐국새,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벌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 멀리 가고 싶은 풀씨들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면 된다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 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낼 터 씨앗들은 직파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섬에는 국제종자보관창고가 있다 먼 훗날의 구호(救護)를 위해 멧돼지 한 마리 그 쉭쉭거리는 씨앗창고를 기르고 싶다 이 산과 저 산 이쪽 풀밭과 저쪽 풀밭이라는 말 다 멧돼지의 등짝에서 떨어진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나들이로 섞이는 산 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 멧돼지 꼬리에서 반딧불이 날아오르고 꺼칠한 오해 속에서도 극지에서도 풀씨들이 움튼다   [당선소감] “쉬지 않고 묵묵히 시의 길 걸을 것” 치유 위해 내디딘 걸음이 행운 전해줘 이끌어준 분들께 고맙다 말하고파 한해를 돌아보는 천변의 산책길에서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온몸의 통증으로 병원 순례를 하다가 무조건 시집을 읽었던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시에 대한 첫걸음은 살기 위한 길이었고 고통의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치유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렇게 큰 영광으로 이어지다니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아버지가 개간한 산비탈 밭의 농작물은 늘 멧돼지들의 몫이었습니다. 형편없는 수확물 앞에 엄마의 하소연과 저들도 한식구라던 아버지의 뚝심이 엉기는 날이면 할머니 무릎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날엔 멧돼지 등에 올라탄 채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농작물을 지키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멧돼지 발자국마다 애기똥풀이 피었고 개똥벌레들이 잡식동물들의 접근을 막아줬습니다. 잡초와 멧돼지랑 함께 먹고 살았던 유년의 밭은 이제 아버지와 함께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심 곳곳에 멧돼지가 출현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 산비탈 밭에서 한참을 서성이곤 합니다. 부족한 제 시를 뽑아주신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쉬지 않고 묵묵히 걷겠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이끌어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공광규·이종섶 선생님, 시클 고맙습니다. 지켜봐준 가족들 사랑합니다. 오늘도 요양병원에서 자식들만 기다리고 있을 엄마, 당신의 기도대로 생의 가장 큰 선물을 안고 달려갑니다. 이주송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밀고 가는 역량 섬세하며 힘차 … 야생동물과의 상생까지 다뤄 예심을 통과한 21명의 작품은 일정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선자들의 손에 마지막까지 들려 있던 작품은 ‘그랴’와 ‘신기루’ 그리고 ‘풀씨창고 쉭쉭’이었다. ‘그랴’는 ‘그랴’라는 말을 통해 아버지와의 기억을 환하고 따뜻하게 더듬고 있는데, 시를 끌고 가는 힘이 남달랐다. 하지만 시적 긴장감이 아쉬웠고 다른 투고작에서 언어가 조금은 넘친다 싶었다. ‘신기루’는 독특한 비유와 이야기 방식으로 선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모호한 지점이 없지 않았고 동봉한 작품에서 편차가 느껴졌다. ‘풀씨창고 쉭쉭’은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시였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는 풀씨가 아닌 멧돼지의 등에 힘차게 올라타 대지를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씨앗의 모습은 당찼고, 시를 밀고 가는 역량은 섬세하면서도 힘찼다. 선자들은 몇번이고 행간의 여백까지 반복해 읽어나가며 이 시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으나, 마지막 행까지 다 읽고 난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멧돼지의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산기슭이 들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소 덜 다듬어지거나 서툰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노루발, 뻐꾹채,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별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의 이름을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묘한 서정성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 “쉭쉭거리는 씨앗창고”의 풀씨는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이 극지에까지 초록의 생명력을 퍼트리고 있는데, 이 응모자는 말의 호흡을 나름의 방식으로 터득하고 있는 듯했다. 야생동물과 사람의 상생에 대한 고민과 질문까지 넌지시 덧붙여 던지고 있기도 한 이 시와 더불어 동봉한 다른 네편의 시에서도 신뢰를 주기에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 선자들은 논의의 끄트머리에 닿아 당선작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이 작품들 외에도 ‘피싱’ ‘씨앗 열개’ ‘사후(死後)’ 등의 작품이 논의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밝히면서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끝까지 최선을 다한 분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곽재구 시인 박성우 시인 물  임영조​(1943~2003) 무조건 섞이고 싶다 섞여서 흘러가고 싶다 가다가 거대한 산이라도 만나면 감쪽같이 통정하듯 스미고 싶다 더 깊게 더 낮게 흐르고 흘러 그대 잠든 마을을 지나 간혹 맹물 같은 여자라도 만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맨살로 섞여 짜디짠 바다에 닿고 싶다 온갖 잡념을 풀고 맛도 색깔도 냄새도 풀고 참 밍밍하게 살아온 생을 지우고 찝찔한 양수 속에 씨를 키우듯 외로운 섬 하나 키우고 싶다 ​그 후 햇빛 좋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증발했다가 문득 그대 잠깬 마을에 비가 되어 만날까 눈이 되어 만날까 돌아온 탕자의 뒤늦은 속죄 그 쓰라린 참회의 눈물이 될까
175    식당 차림표에 보이는 잘못된 표기 댓글:  조회:745  추천:0  2020-01-03
식당 차림표에 보이는 잘못된 표기 1. 누룽지(×)  →  눌은밥(○)  누룽지는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뜻하고, 눌은밥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불려서 긁은 밥을 말한다. 2. 모듬회(×)  →  모둠회(○)  '어떤 목적 아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을 의미한다면 '모임'이 바르고 '어떤 대상을 묶음'을 의미한다면 '모둠'이 바르다. 3. 암돼지(×)  →  암퇘지(○)  ‘수캉아지, 암캉아지, 수캐, 암캐, 수평아리, 암평아리, 수컷, 암컷, 수키와, 암키와, 수탉, 암탉, 수퇘지, 암퇘지, 수탕나귀, 암탕나귀, 수톨쩌귀, 암톨쩌귀’ 등의 단어에서는 거센소리로 적는다. 4. 오돌뼈(×)  →  오도독뼈(○)  씹을 때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난다고 해서 ‘오도독뼈’다. ‘오도독 오도독’은 작고 단단한 물건을 잇달아 깨무는 소리 또는 모양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5. 쭈꾸미(×)  →  주꾸미(○) 6. 아구찜(×)  →  아귀찜(○) 7. 찌게(×)  →  찌개(○) 8. 꼼장어(×)  →  곰장어(○), 먹장어(○) 9. 모밀국수(×)  →  메밀국수(○) 10. 안주 일절(×) → 안주 일체(○) 11. 깡소주(×)  →  강소주(○)   '강-'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강굴, 강된장, 강술, 강참숯 12. 회집(×)  →  횟집(○)  회(膾)는 한자어이고 집은 우리말이고, 그 뒷말 '집'이 '찝'으로 된소리가 나므로 사이시옷을 사용하여 횟집으로 표기해야 한다. (갈비살, 공기밥, 선지국, 순대국, 배추국, 시래기국, 만두국, 김치국, 소고기무국, 고기국) 등도 우리말과 우리말, 한자어와 우리말 합성어이고 그 뒷말들이 '쌀', '꾹'으로 된소리가 나므로 사이시옷을 사용하여 (갈빗살, 공깃밥, 선짓국, 순댓국, 배춧국, 시래깃국, 만둣국, 김칫국, 소고기뭇국, 고깃국)으로 표기해야 한다. 13. 육계장(×)  →  육개장(○)  '개장'은 개장국에서 온 말이다. 개장국은 재료가 개고기, 육개장은 소고기, 닭개장은 닭고기이다. 닭계장이라고 하는 것은 닭 계(鷄)를 연상하기 때문이며 육개장을 육계장(肉鷄醬)으로 잘못 쓰이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이다. 14. 설농탕(×)  →  설렁탕(○) 15. 차돌배기(×)  →  차돌박이(○)  접미사 '-박이'는 '무엇이 박혀 있는 것'을 나타내며 접미사 '-배기'는 '특정한 곳이나 물건'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예) '-박이' : 오이소박이, 점박이 따위       '-배기' : 알짜배기, 진짜배기 따위 16. 떡볶기(×)  →  떡볶이(○)  떡 볶기는 떡을 볶는 행위. 17. 곱배기(×)  →  곱빼기(○) 18. 쥬스(×)  →  주스(○) 19. 창란젓(×)  →  창난젓(○)  창난젓은 명태 창자로 만든 것이고, 명란젓은 명태 알로 만든 것이다. 창난은 알(卵)이 아니므로 창란으로 적는 것은 틀렸다. 20. 고등어졸임(×)  →  고등어조림(○)   ‘졸이다’는 ‘마음을 졸이다’처럼 조마조마한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174    '사실주의적 기법의 시상' 댓글:  조회:1625  추천:0  2020-01-03
'사실주의적 기법의 시상' 시를 대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마음가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형식의 것이든지, 머리이든 마음이든, 때론 가슴이든 시를 대하고 접하는 신체의 부위가 다르다. 위의 시를 조탁한 시인의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 다소의 궁금증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물론 시인의 객관적이고 사실적 관찰이 극도로 예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몹시 곤궁한 노후의 한 인물을 통해서 얘기하려고 했던 의지가 없지는 않았겠으나 그게 아주 차가운 체온으로 느껴졌다. 시인의 너무나 사실적인 관찰 탓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다. 시인의 관찰 대상이 된 노구를 일상의 주변에서 발견하는 일은, 사실 아주 사소하리 만큼 쉬운 일이다. 그 노구들의 모습은 사시사철 조석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을 목도하는 일은 결코 마음 가벼운 일이 아니며 여럿의, 몹시 무거운 상량을 불러 일으키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옛말이 지금도 공감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곤궁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을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어릴 적 부터이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알쏭달쏭한 말이다. 서양의 학문에서는, 특히 경제학에서는  숱한 논란과 처방이 거듭 제시되어 왔다. 실패의 경험이 반복됐다는 의미이다. 거울이라는 역사가 비교적 정확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실패와 성공의 사례를 말이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세상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정치라는 이름으로 백성, 또는 국민, 시민 특히 인민들을 속이고 수탈하고 지배한 사기꾼들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정상배들과 이들에 빌붙어 곡학아세를 목숨처럼 여기는 책상물림들이 그들이다. 현재도 바뀐 것은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구부러진 골목'처럼 노구의 '각'을 지게한 게 어찌 세월, 그 뿐이겠는가. '야윈 뼈 마디'를 삐걱대게 만든 게 어디 세월과 비탈진 골목 뿐이었을까. 저녁, 노구를 차갑게 사실적 수법으로으로 조탁하여 그려낸 화폭 같은 시를 읽는 속내가 솔직히 편치 않다. 시인의 따듯한, 살가운 온기를 느끼고 싶은 까닭이다. 펌 글 ㅡ
173    한국시 10 댓글:  조회:1861  추천:0  2019-12-21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가슴에 묻은 김치국물/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치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치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보면 김치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치 국물 한 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밤의 독서 이장욱     나는 깊은 밤에 여러 번 깨어났다. 내가 무엇을 읽은 것 같아서. 나는 저 빈 의자를 읽은 것이 틀림없다. 밤하늘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 어긋나는 눈송이들을, 캄캄한 텔레비전을, 먼 데서 잠든 네 꿈을 다 읽어버린 것이   의자의 모양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눈발의 격렬한 방향을 끝까지 읽어갔다. 난해하고 아름다운, 텔레비전을 틀자 개그맨들이 와와 웃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잠깐 웃었는데,   무엇이 먼저 나를 슬퍼한 것이 틀림없다. 저 과묵한 의자가, 정지한 눈송이들이,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내 쪽을 바라보는 개그맨들이   틀림없다. 나를 다 읽은 뒤에 탁, 덮어버린 것이. 오늘 하루에는 유령처럼 접힌 부분이 있다. 끝까지 읽히지 않은 문장들의 세계에서   나는 여러 번 깨어났다. 한 권의 책도 없는 텅 빈 도서관이 되어서. 별자리가 사라진 밤하늘의 영혼으로.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읽은 것은 무엇인가?   밤의 접힌 부분을 펴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장들이 튀어나왔다 . 낯선 여자      이향아           거울 속에는 언제부턴가   낯선 여자가 있다.   나보다 한 발짝 빠르게 떠났다가도   나보다 한 발짝 앞질러 돌아오는   날이 갈수록 낯선 여자가 있다.   손님처럼 멀거니 바라보다 지치면   수십 겹 물살 아래 잠적해 버리는   그렇다   내 모든 시름과 눈물   내 모든 번잡과 분망은   바로 이 낯섦이다   공연한 망설임으로 얼굴을 붉히고   손장단 어깨춤에도 신명을 멈춘 것은   그림자처럼 날 추적하는   거울 속 바로 저 여자의   낯선 얼굴 때문이다      이별하는 일이야 너무나 쉽지   검은 휘장 내리고 돌아앉아서   나 몰라, 나 몰라   쫓아내는 일   그거야 쉽지 어렵지 않지   낯선 여자를   오래오래 낯설게   내 눈 속에 품을 듯   녹여버릴 듯   낯설게 낯설게 뚫어야겠다 -시집『종이등 켜진 문간』(문학세계사,1997) ㅤ군산 벚꽃       이향아        너무 늦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와 볼 걸  전주에서 군산 가는 백리 길가에  벚꽃이 미칠 듯이 만발했단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꽃이니까 꽃이겠지 봐야만 알까  기껏하면 구름이겠지  아니면 목이 타는 아우성이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넘치는 눈물  그렸다 허물었다 못들은 척했다  이제야 멋을 내고 군산 벚꽃 보러 왔다  그러나 늦었다  살기가 고달파도 진작 와 볼 걸  헌 신발 끌고서 다니던 길로  억지로라도 그냥 와 볼 걸  그대로 이럴 줄은 차마 몰랐다 ㅤ 진도 냉이             이향아        진도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어느 땅이나 똑 같은 봄 나물이 아니여  진도의 밭 두렁에 쭈구리고 앉아  진도의 냉이를 캐고 싶다  미풍에도 흐느끼는 신들린 냉이  신들린 진도의 코딱지 나물을 캐고 싶다  겨울이 추웠기에 오히려 색이 맑은  진도산 봄나물의 희디 흰 뿌리를  내 오른 손금 위에 얹어 보고 싶다  손금으로 파고드는  진도의  봄 시냇물  풀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군산 벚꽃       이향아        너무 늦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와 볼 걸  전주에서 군산 가는 백리 길가에  벚꽃이 미칠 듯이 만발했단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꽃이니까 꽃이겠지 봐야만 알까  기껏하면 구름이겠지  아니면 목이 타는 아우성이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넘치는 눈물  그렸다 허물었다 못들은 척했다  이제야 멋을 내고 군산 벚꽃 보러 왔다  그러나 늦었다  살기가 고달파도 진작 와 볼 걸  헌 신발 끌고서 다니던 길로  억지로라도 그냥 와 볼 걸  그대로 이럴 줄은 차마 몰랐다 ㅤ   선창가 젓비린내 질퍽거리고  - 목포에서 -    이향아        내가 처음 목포에 갔을 때  앞바다 물새알은 탁구알처럼 영글었다  나는 그 시절  목포 출신 탁구선구 위쌍숙을 사랑했고  그녀는 푸른 바다 물새알처럼 솟았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커서 목포에 다시 갔다  동백꽃 입맞추며 사진을 찍고  선창가 정처없이 흐느적거리면서  이난영 노래도 흥얼거렸다  공연히 다리 뻗고 울고 싶었다  바닷물보다 짭짤한 눈물 몇 방울  그 바다 과녁에 섞어두고서  흔적없이 흔적없이 뒤돌아서 왔다  오늘 다시 목포에 왔다  목포시인 김송희도 뉴욕으로 가고  소문난 집 전복죽을 혼자서 먹으면서  '네 고향 목포는 아무 탈 없고  동백꽃만 몸살하며 지고 있더라'  줄코 줄여 스물 몇자 전보를 치고  유달산 조각공원 석양을 향해  제목없는 묵념을 길게 하였다  선창가 젓비린내 질퍽거리고  뱃고동 악을 쓰고 울었으면 싶었다  위쌍숙을 아시지요? 안부를 물어도  모른다고 절레절레 고개들을 저었다  지금 내가 아무리 출세를 했어도  옛날의 위쌍숙만 어림도 없다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가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ㅡㅡ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 ㅡ위 시는 워낙 유명한 시라서 대중에 잘 알려져 있다 인터넷 공간을 털면 이 시 / 쉬 / 에 대한 감상문 혹은 시노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보다 훨 시평을 잘한 분의 시노트를 가져와 시의 재미와 감상을 도운다ㅡ 이 시는 많이 알려진 대로 정진규 시인의 부친 상가에 갔던 문인수 시인이 정 시인에게 들은 부친과의 회고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회고담은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이다. 이를 듣는 순간 성능 좋은 촉수가 번득였고 이거 잘 하면 괜찮은 시가 한 편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곧장 대구로 내려와 단숨에 초고를 다듬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노구를 꼭 안고서 옛날 옛적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이는 행위가 시인에겐 '몸 갚음'으로 포착되었던 것이다. 일화는 정진규 시인의 것이지만 비로소 시는 문인수 시인에게로 온 것이다.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시에서 '뜨신 끈'으로의 비유는 문인수 시인 특유의 감각을 멋지게 살려낸 대목으로 이후 그의 모든 시에서 전매특허처럼 사용되고 있다. 지금껏 각자가 눈 오줌발의 길이를 끈으로 환산해 잇는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세 번은 왕복하고도 남으리라. 그 '길고 긴 뜨신 끈'은 생명의 존재를 증거 하는 한편 인간의 모든 욕망을 함의한 존재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늙은 아들은 그 끄나풀을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하고 그 아버지의 끈은 이제 '툭, 툭, 끊기'면서 힘겹게 마저 풀리고 있다. 그때 아들은 '쉬!' 추임새를 넣는다. 한번은 길게 또 한번은 짧게. 어릴 적 많이 들어본 이 단음절의 언어를 아들의 가슴에 안겨 다시 듣는다. 쉬이 누어보시라는 추임의 뜻 말고도 우주적 고요를 이끌어내는 말이기도 하고 또 이 밀교의 행위를 빤히 지켜보는 삼라만상을 향해 비밀유지를 당부하는 주술적 언어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한 절절한 울력의 소리였던 것이다. (권순진) ㅡ 출처 네이버ㅡ ㅡ별도 시 노트 ㅡ 위 감상의 시노트는 다른 분의 시노트로 대신했다 굳이 시노트가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시를 접한 분이나 또는 교육수준의 정도면 충분히 그 속뜻을 읽어 내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공부중인 문청인 나는 여기에서 우리가 시쓰기에서 배워야할 몇가지를 논해보고자 한다 시인은 여기서 오줌을/ 뜨신 끈/ 으로 읽고 있다 대단한 감각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끈과 관련된 시들이 몇 편 떠올려지기는 하지만 그건 실존하는 끈 혹은 인연의 끈 탯줄의 개념, 상징 등으로 표현되고 시적으로 확대 사용되었지만 오줌을 /뜨신 끈/으로 읽은 시인의 감각과 시력은 혀를 내둘 정도다 아마 이것은 시인이 천부적 자질이기보다 늘 대상과 사물과 대화하며 어루만진 반복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어떤 함의에서 도출된 결과물이 시인의 직관으로 연결, 발화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위 시의 전문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묘사다 탁월한 묘사력를 보여주고 있다 그냥 텍스트란 언어의 영역이 아니라 그장면을 실제 보고 있는 듯 선명하게 영상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묘사 역시 많은 훈련에서 얻어진 학습에 의한 상관물일것이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가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어떤 동작 행위를 자세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 몸 갚아드리듯 / 정말 깊다 그 행위와 동작의 자세를 시인은 아무나나 상상할 수없는 깊숙한 곳에서 뭉클한 무엇을 끄집어 내었다 / 몸 / 어떻게 이 평이한 한 단어로 행위와 동작 자세 모두를 대변하며 단숨에 절정으로 몰고 가는가 우리가 이 시인에게서 배워야할 또 한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까 평이한 한 단어도 적재적소에 어떻게 제 쓰임새를 다 하는가에 따라서 명암이 갈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쉬ㅡㅡ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마직 결구의 /쉬/ 어휘적 중의성 다의성이 빛나는 부분인데 이건 재치와 직관 그리고 통찰력의 삼위일체다 이러한 부분을 우리는 또 부단한 노력과 훈련으로 배워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고민해 본다 또한 항상 수첩과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고 기록하고 매사 생활에서 조차 시를 놓지 않는 시인의 시는  치열한 시정신에서 창조된 시인만의 시세계다 싶다  위 시는 바로 치열한 시인정신의 결과에서 발행된 보증수표인 것이다[문정완] 잃어버려지지 않는 찾아지지 않는                                           김행숙   폐허에서 극장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어요. 과거 위에 내려앉은 이미지는 날개를 떼어버린 새의 발자국처럼 멀어지기 어려워요. 어디로든 조금씩 걷고, 천천히 걷고, 부리를 땅에 박으면 먹을 게 있다는 뜻일까요?   과거 위에 내려앉은 이미지는 몸통을 잃어버린 날개처럼 꿈속에서만 날아다닙니다. 나는 폐허에서 약초를 찾고 있었습니다. "자, 이 중에 하나는 약초고, 다른 하나는 독초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윽박지르는 노인을 만났어요. 꿈결은 뒤척거리면서 이런 미치광이 노인들이 시간을 시험하기 좋은 무대를 꾸미죠. 그때마다 약초를 원했는데 독초를 고르고, 독초를 원했는데 약초를 고르고, 약초를 원했는데 약초를 고르고, 독초를 원했는데...... 어느덧 나는 한 그루 덤불을 껴안고 활활 타오르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폐허에서 잃어버린 기타를 찾고 있습니다. 기타줄 위에서 손모양이 살짝살짝 변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영혼의 옥타브가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호기심은 새싹같이 움텄고 애벌레같이 꼼지락거렸어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엿보았을 뿐인데, 하나뿐인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눈알을 뽑아 들개에게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뒤돌아서서 검은 장막을 쳤어야 했던 이유를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어요.   - 시집        마른번개들     김행숙   타협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고   발작을 시작한다   숨, 숨을 안 쉬고   숨, 숨을 쉬고   나는 나를 넘나드는 잔인한 불길,   나는 나를 찢고 나와서 또 찢을 테다!   사랑의 화수분처럼   내일 아침을 염려하지 않고 쓰고 쓰고 또 써버릴 테다!   사랑의 쓰레기처럼   완전히 허비하고 교환하지 않을 테다!   나는 시시각각 다른 웃음소리를 낸다   그것이 싸우는 소리라면   협상하지 않고 위장하지 않고 방어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나는 나를 아끼지 않을 테다!   이윽고 검은 동공이 사라지는 순간에, - 시집   저녁   엄원태(1955~) 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 있는데, 못 가는 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이다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 하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이다 종일 빗속을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젖어가는 날개 가진 것들의 젖어가는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없는 것을..... 뽀얗게 우러나는 마음의 뜨물 같은 것을......비가 그 무슨 말씀인가를 전해주었나 보다 육체의 세 가지 전략     서안나      최호일,「나의 과학」    우대식,「이순(耳順)」    이화은,「팬티를 삶으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재주 있는 사람 치고 바쁘지 않은 이가 있던가?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有才豈有不忙客(유재기유불망객) 惟喜無才我獨閒(유희무재아독한) -홍신유(洪愼猷·1724~?),「閒中(한중)」부분        이제 곧 봄이다. 매서운 겨울의 혹한과 추위를 열고 나무는 꽃을 피울 것이다. 홍신유의 “모두 재주가 있어 바쁜데 나는 재주가 없어 홀로 한가하다”라는 한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다. 무장한 겨울은 사람을 여유롭게 하여 시 읽기에 좋은 시간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카프카 역시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쓴 편지에서 독서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어 부수는 도끼 같은 책. 이것이 나의 믿음이야.”라고 쓰지 않았던가.    시를 읽는 맛이란 시인이 보여주는 낯선 이미지와 상상력과 맞대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만난 세계를 동행 하는 것이며, 시인의 쓴 안경을 빌려 쓰고 시인과 함께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번 계절의 시 읽기는 최호일, 우대식, 이화은 시인의 시 세계를 여행해본다. 최호일 시인이 몸을 통해 문명을 비판하고 속도의 시대를 저격한다면, 우대식의 시는 신체 일부인 “귀”를 통해 외부에서 내면으로 이동하는 시선의 역동적 상상력을 맛볼 수 있으며, 이화은의 시에서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가부장적 시스템에 비수를 던지는 칼칼함을 만날 수 있다.       저 허공은 사물이 없는 곳에 두 번 나타난다 소년과 소녀들은 발레를 하고   나는 발레를 피한다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가 없다     스포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반대하고   치통을 앓는다     아직도 역사의 선반 위에서 불타는 사과      저녁이 유리 형제들처럼 투명한 과녁을 모두 빛낼 때   빗나간 바람은 달그락거린다     누군가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두 발은 항상 위험한 폭탄으로 떠 있다   곧 날아오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장밋빛이며 영리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모른다     열한 마리의 고양이와   열한 명의 축구선수들   공이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벽의 세계에서는 벽을 들고 가   벽지에 붙인다     나의 과학은 소리가 나지 않고 겸손하지만   불을 끄고 그 벽에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최호일, 「나의 과학」, 월간 《현대시》 2018년 10월호         최호일 시인은 시집 『바나나의 웃음』을 상재한 이후 시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 세계를 견지하고 있다. 최호일의 시는 독자들을 미지의 감각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나의 과학」은 주체와 객체의 전도를 통해 물질문명의 폐해와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제목이 “나의 과학”이지만 시에서 과학에 관한 설명이나 진술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질적인 사건의 배열과 돌연한 상황을 병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호일 시는 쫄깃한 식감을 지닌다. 신선함과 긴장감을 통해 낯선 세계를 우리 앞에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호일 시는 읽을 때는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막상 시를 분석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시의 행과 행 그리고 연과 연의 비약과 확장과 변주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정황을 따라가 보면, “허공-발레-오렌지-치통-역사-사과-유리창-바람-러닝머신-불행-고양이와 축구선수-벽과 벽지-과학-슬픔”으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행, 행과 행, 행과 연, 연과 연 사이가 비유기적이며 폭력적인 이미지의 결합 그리고 돌연한 이미지들의 병렬식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 10연으로 이루어진 「나의 과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연은 1연과 3연, 6연과 8연이다. 4개의 연에 나타나는 정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1연의 발레와 3연의 스포츠, 8연의 러닝머신에서 시적 화자는 문화센터나 스포츠 센터를 중심으로 시적 사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시의 1연이 유독 눈길을 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 그리고 발레로 이어지는 내용은 돌연하고 폭력적이다. 아마도 “나”가 문화센터 유리창을 통해 발레 하는 한 무리의 소년과 소녀를 목격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은 발레의 동작 중 손을 머리 위로 둥글게 뻗어 허공을 만들어내는 동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발레 교실을 지나치는 과정을 “나는 발레를 피한다”라는 감각적인 진술로 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호일의 시는 하나의 행에도 여백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도 간극이 넓다. 독자들은 시인의 상상력 증폭을 따라가며 그 이질적인 결합에 신선함을 느낀다.       시의 후반에서야 유추할 수 있듯이, “나의 과학”은 “벽지를 들고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를 기여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불을 끄고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이때 “불”을 끈다는 행위 역시 시의 주제를 응축하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다리는 폭탄처럼 터질 듯 위험하고, 고양이와 축구선수 모두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과 축구선수 등의 신체는 벽지 위에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 속에 결박된 육체이다. 과학과 문명으로 건설된 현대사회의 욕망의 구조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속도이다. 시적 화자는 속도 속으로 흡입되어 선택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과 현실의 모순된 시스템을 “나의 과학”을 통해 날카롭게 저격하고 있다.     최호일 시는 카프카의 「어느 투쟁의 기록」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골목길을 따라 뛰듯이 달렸다/ 달려가는 취객처럼/ 발로 공중을 구르면서”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된다   어떤 형식도 괜찮다   벌써 귀가 순해지는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이나 부처님 이런 분들도 크게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내친 김에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   몇 합 겨루지 못하고   낙화의 황홀에 굴복할지라도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도   쨍그렁 쨍그렁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다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 안의 꽃들이여   순백의 어느 한 날을   우리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        -우대식, 「이순(耳順)」. 월간 《시인동네》 2018년 10월호       우대식의 시 “이순(耳順)”은 신체의 일부인 “귀”와 “이순(耳順)”이 시의 중심 모티프를 이루고 있다. 신체어가 지니는 다양한 표현 중 연령을 은유하는 “이순(耳順)”은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나이”를 이른다. 귀가 순해져 나의 말을 많이 하기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겸손해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순에 가까워진 나는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라고 의지를 드러내지만, 이내 “몇 합 겨루지 못하고/낙화의 황홀에 굴복”하고 만다. 이순이 되어 내가 자연이 주는 낙화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고 굴복한다면, 이제껏 내가 세상을 향한 시선이 부드럽지 않고 대적하는 날카로움에 가까웠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순에 들어서서 그간 세상을 향해 휘둘러온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이 녹이 슬었으며, 이제는 순하게 다루고 싶어 한다. 이제껏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칼끝을 내 안으로 거두어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어한다. “낙화의 종년(終年)”을 바라는 이유는 세상을 향해 겨누던 칼끝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자발적 내전 상황이다. 내 안에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들이 무성하여, 시적 화자는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면의 상흔과 맞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상흔은 신체 기관 중 귀의 외형과 연관된다. 귀는 눈이나 코와 입과 달리 칼처럼 뾰족하고 외부로 향해 있다. 곧 나의 귀는 타자를 향해 날이 서 있던 내면의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의 구체적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귀가 순해진다는 의미는 밖으로 향하던 칼날이 내 안으로 과녁을 새롭게 조준하는 내면의 고투이다. 내면으로 향하는 과녁의 변경은  “이순(耳順)”이 전제조건이며, 이를 통해 경청의 힘이 타자를 내면에 들이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칼끝을 나에게 겨누는 것은 곧 세계와의 대결에서 지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격전장을 나의 내면으로 옮겨 타자와의 관계 설정을 재배치하고, 자폐화 한 내면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면 공간의 확장과 과녁의 변경은 곧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타자를 내면으로 들이는 공존의식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의 후반부에서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라는 진술은 독특하다. 시적 화자는 타자와의 공존의 자각에서 획득한 유순함과 현명함을 자폐적인 공간에 설정하고, 뒤이어 귀를 자르고 싶다고 욕망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와의 통로 차단은 “순백의 어느 한 날을”과 같은 순수함의 원형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는 의지이다. 시의 첫 행인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 된다”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관계회복의 결연함은 곧 원형적 순수함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백 톤의 질문          서안나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치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 많은 손을 씻으면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 어떤 생生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유심》 2015년 1월호   틈 김기택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마른번개들             김행숙   타협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고   발작을 시작한다   숨, 숨을 안 쉬고   숨, 숨을 쉬고   나는 나를 넘나드는 잔인한 불길,   나는 나를 찢고 나와서 또 찢을 테다!   사랑의 화수분처럼   내일 아침을 염려하지 않고 쓰고 쓰고 또 써버릴 테다!   사랑의 쓰레기처럼   완전히 허비하고 교환하지 않을 테다!   나는 시시각각 다른 웃음소리를 낸다   그것이 싸우는 소리라면   협상하지 않고 위장하지 않고 방어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나는 나를 아끼지 않을 테다!   이윽고 검은 동공이 사라지는 순간에, - 시집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김미나 달 거미 한 마리 지붕을 밟고 목련나무로 걸어와요 거미의 집을 허무는 게 아니에요. 물웅덩이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솜 트는 기계 멈춰있는 집 앞의 목련나무 꽃송이 안으로부터 달이 솜털을 짜기 시작했나봐요 자동차 바퀴에 찍힌 고양이 울음소리도 되살아나요 솜이불을 짜는 소리 할머니의 귓바퀴에 감겨요 나는 벼락처럼 자라난 목련나무의 꽃과 달의 이빨들이 하나의 틀을 이루는 소리를 생각했어요 먹구름을 집어 삼킨 듯 검게 물드는 것들은 솜틀집 앞 배수구에 걸려있나봐요 그늘 쪽에 얼어있는 지난  봄눈 덩어리들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려요 아직 꽃샘추위는 발끝을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었죠 그러니까 목련들도 밤의 이불을 덮고 싶어 나뭇가지 침대에 꼭 맞는 그믐이 올 때가지 할머니의 꽃상여를 짜듯 깊은 어둠을 지우려고 달의 이불을 짜고 있나봐요 봄눈 녹자 귀신도 볼 수 있다는 물웅덩이엔 달과 목련과 거미가 한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이 고여 있어요 이불 한 채에 그려진 목련나무, 노란 나비들이 먼저 날아와서 날개를 풀고 있었어요   겨울 맛 / 강세화 겨울에는 더러 하늘이 흐리기도 해야 맛이다. 아주 흐려질 때까지 눈 아프게 보고 있다가 설레설레 눈 내리는 모양을 보아야 맛이다. 눈이 내리면 그냥 보기는 심심하고 뽀독뽀독 발자국을 만들어야 맛이다. 눈이 쌓이면 온돌방에 돌아와 콩비지 찌개를 훌훌 떠먹어야 맛이다. 찌개가 끓으면 덩달아 웅성대면서 마음에도 김이 자욱히 서려야 맛이다.  겨울날 - 정호승 물 속에 불을 피운다 강가에 나가 나뭇가지를 주워 물 속에 불을 피운다 물 속이 추운 물고기들이 몰려와 불을 쬔다 멀리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솔씨 하나 날아와 불을 쬔다 길가에 돌부처가 혼자 웃는다  무심풍경 복효근   겨울 감나무 가지가지에 참새가 떼로 몰려와 한 마리 한 마리가 잎이 되었네요 참, 새, 잎이네요 잎도 없이 서 있는 감나무가 안쓰러워 새들은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앉으며 작은 발의 온기를 건네주기도 하면서 어느 먼 데 소식을 들려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나무야 참새가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것 같아도 안 자고 다 듣고 있다는 듯 가끔씩 잔가지를 끄덕여주기도 합니다 나무가 그러든지 말든지 참새는 참 열심히도 떠들어 댑니다 모른 체 하고 그 아래 고양이도 그냥 지나갑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참새는 참새대로 모두 다 무심한 한 통속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제 길 갑니다 연말인데 벌써 몇 개월 전화 한 통 없는 친구에게 한 바탕 욕이나 해줄까 했다가 잊어버리고 저것들의 수작을 지켜보며 이 한나절에 낙관 꾹 눌러 표구나 해뒀으면 싶었습니다   엉겅퀴의  노래   복효근  들꽃이거든  엉겅퀴  이리라 꽃핀  내 가슴  들여다  보리라 수없이  아프고  베인  자리  마다 돋은  가시를  보리라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안고  또 떠나야  하는지 이제는 들꽃이거든  가시돋힌   엉겅퀴 이리라 사랑이거든  가시  돋힌  들꽃이리라 척박한  땅  깊이  뿌리  뻗으며 함부러  꺽으려드는   손길에 선연한  핏  멍울을  보여  주리라 그렇지  않고  어찌  사랑  한다  할  수  있으리 그리고 보랏빛  꽃을  보여  주리라 사랑을  보여  주리라   마침내는 꽃도  잎도  져버린  겨울날 누군가  또  잃고  떠나 앓는  가슴  있거든 그의  끓는  약탕관에  스몄다가 그  가슴 속  보랏빛  꽃으로  맺히리라   #홀로감상하기 의중      성영희 철못은 안을 채우면서 박히고 나사못은 틈을 파내면서 들어간다 박히는 소리로 넘치는 못과 파냈으므로 넘칠 것 없이 꽉 조이는 못, 삐걱거리는 못은 딱딱한 성질 때문이 아니라 의중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고 소리 없이 그 틈을 채우는 못은 물렁해서가 아니라 의향을 가늠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땅에 힘껏 찔러 넣어 자국도 없이 박혔다면 그 속에서는 뿌리가 다시 파랗고 우거진 틈을 내 펼치고 있는 것이겠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도 물보라를 덜어 낸 다음에 그 깊이로 가라앉는다 벽에 걸린 외투의 의중이 나른한 창밖을 내다보는 봄날 오후 위층에서 간헐적으로 못 박는 소리가 난다 삐걱거리는 속내도 아랑곳없이 시계 초침은 쉬지 않고 톡톡 휴일 오후를 박고 있다 무엇이든 잘 들어가지 않을 때는 그 의중을 물어 살살 돌려 줄 것   틈 김기택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첫눈 오는 날/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첫눈 오는 날/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바람이 좋은 저녁/곽재구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람은 내 어깨 위에 자그만 그물침대 하나를 매답니다. 마침 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들이라면 누구든지 그 침대에서 푹 쉬어갈 수 있지요 그 중에 어린 시간 하나는 나와 함께 책을 읽다가 성급한 마음에 나보다도 먼저 책장을 넘기기도 하지요 그럴 때 나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바람이 좋은 저녁이군 하고 말합니다. 어떤 어린 시간 하나가 내 어깨 위에서 낄낄대고 웃다가 눈물 한 방울 툭 떨구는 줄도 모르고 ㅤ그리움에게/곽재구 그대에게 긴 사랑의 편지를 쓴다 전라선, 지나치는 시골역마다 겨울은 은빛 꿈으로 펄럭이고 성에가 낀 차창에 볼을 부비며 나는 오늘 아침 용접공인 동생 녀석이 마련해준 때묻은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생각했다 가슴의 뜨거움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건축공사장 막일을 하면서 기술학교 야간을 우등으로 졸업한 이등기사인 그놈의 자랑스런 작업복에 대해서 절망보다 강하게 그놈이 쏘아대던 카바이트 불꽃에 대해서 월말이면 그놈이 들고 오는 십만원의 월급봉투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팔년이나 몸부림친 대학을 졸업하는 마지막 겨울 그대에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얼굴 한번 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어깨 나란히 걸음 한번 옮긴 적 없어도 나는 절망보다 먼저 그대를 만났고 슬픔보다 먼저 화해인 그대를 만났고 길고 근적한 우리들 삶의 미로를 돌아 어머님이 사들고 오는 봉지쌀 속의 가난보다 오래 그대와 겨울 저녁의 평화를 이야기했고 밤늦게 계속되던 어머님의 찬송가 몇 구절과 재봉틀 소리 속에 그대의 따뜻한 숨소리를 들었다 그대에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쓴다 가슴으로 기쁨으로 눈송이의 꽃으로 쓴다 지나간 겨울은 추웠고 마음으로 맞는 겨울은 따뜻했다 전라선, 밤열차는 덜컹대며 눈발 속으로 떠나고 문득 피곤한 그대의 모습이 내 옆자리에 앉아 웃고 있는 것을 본다 그대의 사랑이 어느결에 내 자리에 앉아 가슴의 뜨거움으로 창 밖 어둠을 바라보게 한다 멀리 반짝이는 포구의 불빛이 보이고 그대의 불빛이 흰 수국송이로 피어나는 것을 나는 눈물로 지켜보았다 그대에게 뜨거운 편지를 쓰고 싶었다 팔년이나 몸부림친 대학을 졸업하는 마지막 겨울 외지에서 사랑으로 희망으로 식구들의 희망으로 쓰고 싶었다 . 구두 한 켤레의 시/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쑥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 주지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 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육체의 세 가지 전략     서안나      최호일,「나의 과학」    우대식,「이순(耳順)」    이화은,「팬티를 삶으며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재주 있는 사람 치고 바쁘지 않은 이가 있던가?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有才豈有不忙客(유재기유불망객) 惟喜無才我獨閒(유희무재아독한) -홍신유(洪愼猷·1724~?),「閒中(한중)」부분        이제 곧 봄이다. 매서운 겨울의 혹한과 추위를 열고 나무는 꽃을 피울 것이다. 홍신유의 “모두 재주가 있어 바쁜데 나는 재주가 없어 홀로 한가하다”라는 한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계절이다. 무장한 겨울은 사람을 여유롭게 하여 시 읽기에 좋은 시간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카프카 역시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쓴 편지에서 독서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어 부수는 도끼 같은 책. 이것이 나의 믿음이야.”라고 쓰지 않았던가.    시를 읽는 맛이란 시인이 보여주는 낯선 이미지와 상상력과 맞대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만난 세계를 동행 하는 것이며, 시인의 쓴 안경을 빌려 쓰고 시인과 함께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번 계절의 시 읽기는 최호일, 우대식, 이화은 시인의 시 세계를 여행해본다. 최호일 시인이 몸을 통해 문명을 비판하고 속도의 시대를 저격한다면, 우대식의 시는 신체 일부인 “귀”를 통해 외부에서 내면으로 이동하는 시선의 역동적 상상력을 맛볼 수 있으며, 이화은의 시에서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가부장적 시스템에 비수를 던지는 칼칼함을 만날 수 있다.       저 허공은 사물이 없는 곳에 두 번 나타난다 소년과 소녀들은 발레를 하고   나는 발레를 피한다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가 없다     스포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렌지를 반대하고   치통을 앓는다     아직도 역사의 선반 위에서 불타는 사과      저녁이 유리 형제들처럼 투명한 과녁을 모두 빛낼 때   빗나간 바람은 달그락거린다     누군가는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두 발은 항상 위험한 폭탄으로 떠 있다   곧 날아오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장밋빛이며 영리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모른다     열한 마리의 고양이와   열한 명의 축구선수들   공이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벽의 세계에서는 벽을 들고 가   벽지에 붙인다     나의 과학은 소리가 나지 않고 겸손하지만   불을 끄고 그 벽에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최호일, 「나의 과학」, 월간 《현대시》 2018년 10월호         최호일 시인은 시집 『바나나의 웃음』을 상재한 이후 시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 세계를 견지하고 있다. 최호일의 시는 독자들을 미지의 감각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나의 과학」은 주체와 객체의 전도를 통해 물질문명의 폐해와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제목이 “나의 과학”이지만 시에서 과학에 관한 설명이나 진술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질적인 사건의 배열과 돌연한 상황을 병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호일 시는 쫄깃한 식감을 지닌다. 신선함과 긴장감을 통해 낯선 세계를 우리 앞에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호일 시는 읽을 때는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막상 시를 분석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시의 행과 행 그리고 연과 연의 비약과 확장과 변주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드러나는 시적 정황을 따라가 보면, “허공-발레-오렌지-치통-역사-사과-유리창-바람-러닝머신-불행-고양이와 축구선수-벽과 벽지-과학-슬픔”으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행, 행과 행, 행과 연, 연과 연 사이가 비유기적이며 폭력적인 이미지의 결합 그리고 돌연한 이미지들의 병렬식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 10연으로 이루어진 「나의 과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연은 1연과 3연, 6연과 8연이다. 4개의 연에 나타나는 정황을 통해 유추해 볼 때, 1연의 발레와 3연의 스포츠, 8연의 러닝머신에서 시적 화자는 문화센터나 스포츠 센터를 중심으로 시적 사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시의 1연이 유독 눈길을 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 그리고 발레로 이어지는 내용은 돌연하고 폭력적이다. 아마도 “나”가 문화센터 유리창을 통해 발레 하는 한 무리의 소년과 소녀를 목격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물이 없는 곳에서 두 번 나타나는 허공”은 발레의 동작 중 손을 머리 위로 둥글게 뻗어 허공을 만들어내는 동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발레 교실을 지나치는 과정을 “나는 발레를 피한다”라는 감각적인 진술로 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호일의 시는 하나의 행에도 여백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도 간극이 넓다. 독자들은 시인의 상상력 증폭을 따라가며 그 이질적인 결합에 신선함을 느낀다.       시의 후반에서야 유추할 수 있듯이, “나의 과학”은 “벽지를 들고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를 기여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의 과학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불을 끄고 몸을 기대면 슬퍼진다”. 이때 “불”을 끈다는 행위 역시 시의 주제를 응축하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다리는 폭탄처럼 터질 듯 위험하고, 고양이와 축구선수 모두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과 축구선수 등의 신체는 벽지 위에 벽을 붙이는 전도된 세계 속에 결박된 육체이다. 과학과 문명으로 건설된 현대사회의 욕망의 구조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속도이다. 시적 화자는 속도 속으로 흡입되어 선택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불안과 현실의 모순된 시스템을 “나의 과학”을 통해 날카롭게 저격하고 있다.     최호일 시는 카프카의 「어느 투쟁의 기록」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골목길을 따라 뛰듯이 달렸다/ 달려가는 취객처럼/ 발로 공중을 구르면서”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된다   어떤 형식도 괜찮다   벌써 귀가 순해지는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이나 부처님 이런 분들도 크게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내친 김에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   몇 합 겨루지 못하고   낙화의 황홀에 굴복할지라도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도   쨍그렁 쨍그렁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다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 안의 꽃들이여   순백의 어느 한 날을   우리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        -우대식, 「이순(耳順)」. 월간 《시인동네》 2018년 10월호       우대식의 시 “이순(耳順)”은 신체의 일부인 “귀”와 “이순(耳順)”이 시의 중심 모티프를 이루고 있다. 신체어가 지니는 다양한 표현 중 연령을 은유하는 “이순(耳順)”은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나이”를 이른다. 귀가 순해져 나의 말을 많이 하기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겸손해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순에 가까워진 나는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라고 의지를 드러내지만, 이내 “몇 합 겨루지 못하고/낙화의 황홀에 굴복”하고 만다. 이순이 되어 내가 자연이 주는 낙화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고 굴복한다면, 이제껏 내가 세상을 향한 시선이 부드럽지 않고 대적하는 날카로움에 가까웠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순에 들어서서 그간 세상을 향해 휘둘러온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이 녹이 슬었으며, 이제는 순하게 다루고 싶어 한다. 이제껏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칼끝을 내 안으로 거두어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어한다. “낙화의 종년(終年)”을 바라는 이유는 세상을 향해 겨누던 칼끝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자발적 내전 상황이다. 내 안에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들이 무성하여, 시적 화자는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면의 상흔과 맞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면의 상흔은 신체 기관 중 귀의 외형과 연관된다. 귀는 눈이나 코와 입과 달리 칼처럼 뾰족하고 외부로 향해 있다. 곧 나의 귀는 타자를 향해 날이 서 있던 내면의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의 구체적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귀가 순해진다는 의미는 밖으로 향하던 칼날이 내 안으로 과녁을 새롭게 조준하는 내면의 고투이다. 내면으로 향하는 과녁의 변경은  “이순(耳順)”이 전제조건이며, 이를 통해 경청의 힘이 타자를 내면에 들이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칼끝을 나에게 겨누는 것은 곧 세계와의 대결에서 지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격전장을 나의 내면으로 옮겨 타자와의 관계 설정을 재배치하고, 자폐화 한 내면 공간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면 공간의 확장과 과녁의 변경은 곧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타자를 내면으로 들이는 공존의식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의 후반부에서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라는 진술은 독특하다. 시적 화자는 타자와의 공존의 자각에서 획득한 유순함과 현명함을 자폐적인 공간에 설정하고, 뒤이어 귀를 자르고 싶다고 욕망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와의 통로 차단은 “순백의 어느 한 날을”과 같은 순수함의 원형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는 의지이다. 시의 첫 행인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 된다”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관계회복의 결연함은 곧 원형적 순수함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백 톤의 질문   서안나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치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 많은 손을 씻으면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 어떤 생生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유심》 2015년 1월호    눈의 방황                                                     조홍래   눈이 여름에 내리면 지구에 이상이 생겼다는 야단법석에 미리 겁 먹고 움츠렸다 겨울에 내린다 혹시라도 겨울이 아니면 어쩌나 조심조심 내린다 제 때에 내리는 건지 알기 위해 바람을 데리고 밤새 슬며시 온다 서로 부둥켜 안고 쌓일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눈의 위치      김행숙   공업용 다이아몬드 같은...... 네 눈알을 굴리면 니 눈꺼풀이 먼저 까지겠고, 쓰라리겠다.   언제나 제자리에서만 구르는 건 공이 아니지. 하늘의 별이 아니지.   저쪽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공중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심심하면 공을 가지고 노는 거야. 그것은 우리 지구인들의 유희.   최선을 다해 눈알을 던져봐. 최고 속도는 불이 되고 재가 되는 속도일까. 야구공은 야구공인 채로 던져지네. 축구공은 축구공인 채로 골대를 비껴가네. 휙, 지나가버려서, "아름다운 곡선이다" 감탄할 새도 없었네.   어떤 룰 속에서 우리는 승리하고, 패배하고, 어떤 빗속에서 오늘의 경기를 쉬게 되는 걸까. 거친 숨을 고르며   너를 보지만, 햇빛 때문에 우리는 우주를 볼 수 없다. 깜깜한 밤에 햇빛이 감추는 우주적인 구체(球體)들의 퍼레이드를 올려다보자. 렌즈를 바꿔도 상자 모양의 별은 없다.   그러니까 우주에 거대한 콘크리트 박스를 별처럼 설치하면, 호기심 많은 외계인이 찾아올 겁니다. 똑똑한 외계인은 말하겠죠. 우주를 견딜 수 있는 직선이라니!   옆에서 듣고 있던 동료 천문학자가 중얼거렸지. "기발한 아이디어이긴 한데, 우리가 정말 외계인을 만나도 괜찮을까요?"   우리끼리 사는 것도 죽도록 힘든데...... 혼자 잠을 자고 혼자서 꿈을 꾸는 것도 이렇게 괴로운데...... 너를 볼 용기가 안 생겨서 혼자 눈알을 굴리고 있는 것도 이렇게 쓰라리고 아픈데......   내 눈빛을 이해하시겠어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먼 곳에서 왔는지도 모르는데...... - 시집       모르는 목소리     김행숙 ​​ ​   모르는 목소리가 아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얼굴은 안개에 감겨 얼굴이 없는 것 같고   같은 안개를 뚫고 모르는 목소리가 내게 달라붙고 있다   어떤 앎이 이처럼 끈적이는가. 모든 앎이 이처럼 끈적이는가   나는 침묵의 계명을 따랐던 교분들을 희뿌연 빛에 비추어 상기하고 있다, 오래전    그 중에...... 그는 법정 서기였다   그는 완벽했다 ​   이제 말을 해도 되는 거냐고 내가 놀라며 물었더니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그의 목소리는 주인을 바꾼 듯이 변해 있었다   또 다른, 모르는 목소리가 아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더 가깝게 걸어오고 있다   나의 이름이 나를 비껴가고 있다 - 시집   눈의 방황                                                     조홍래   눈이 여름에 내리면 지구에 이상이 생겼다는 야단법석에 미리 겁 먹고 움츠렸다 겨울에 내린다 혹시라도 겨울이 아니면 어쩌나 조심조심 내린다 제 때에 내리는 건지 알기 위해 바람을 데리고 밤새 슬며시 온다 서로 부둥켜 안고 쌓일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깜빡했다                                                       조홍래 비누거품이 날리고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온세상이 은빛으로 화안했다 달까지도 반짝이는 소금꽃밭 길을 조신하게 걸었고 하얗게 꽃을 피운 나무들이 거들먹거렸다 역시 하늘님은 위대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마술사다 거기까지였다 가뭄에 원망 좀 했다고 예라이 목욕물을 퍼부었다 하늘님의 각질을 햇살과 땅이 나눠먹기 시작할 때쯤 온 천지가 땟국물로 질척거렸다 그렇다 하늘님이 목욕하는 날 땟가루 뒤집어쓰는 줄도 모르고 좋아한 나약한 인간이란 걸 깜빡했다 뒤끝있는 심술쟁이란 걸 깜빡했다   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시집 (창비,2005)   떠도는 무렵 / 박남준 저 길 끝에 있을까 설레이며 헤매었지 마음속의 길을 버린 지 나 오랜 일이었으나 달려갔었지 별이 내리는 먼 산너머 길에 나서면 길은 언제나 나를 먼저 가로질러 갔고 나 내가 걸어온 길에 갇혀 길 밖에 버려지고는 했다 삶이 내게 드리운 그늘로 무너져가던 무렵이었다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문학동네, 2000)   첫눈 소식 / 박남준     설악의 대청봉에 내렸다는 첫눈 소식  지난 여름 왼손 두 손가락에 물들였던  붉은 봉숭아 꽃물 아직 남아 있는지  살몃 내려가는 눈길  여태 기다려야 할 사랑 떠도는 것일까  손톱 끝에 남아 있는 붉은 꽃물자위 보며  허허로운 웃음이  바람처럼 가슴을 쓸어 내렸다 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구두 한 켤레의 시/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 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쑥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 주지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 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가슴에 묻은 김치국물/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치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치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보면 김치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치 국물 한 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낯선 여자      이향아           거울 속에는 언제부턴가   낯선 여자가 있다.   나보다 한 발짝 빠르게 떠났다가도   나보다 한 발짝 앞질러 돌아오는   날이 갈수록 낯선 여자가 있다.   손님처럼 멀거니 바라보다 지치면   수십 겹 물살 아래 잠적해 버리는   그렇다   내 모든 시름과 눈물   내 모든 번잡과 분망은   바로 이 낯섦이다   공연한 망설임으로 얼굴을 붉히고   손장단 어깨춤에도 신명을 멈춘 것은   그림자처럼 날 추적하는   거울 속 바로 저 여자의   낯선 얼굴 때문이다      이별하는 일이야 너무나 쉽지   검은 휘장 내리고 돌아앉아서   나 몰라, 나 몰라   쫓아내는 일   그거야 쉽지 어렵지 않지   낯선 여자를   오래오래 낯설게   내 눈 속에 품을 듯   녹여버릴 듯   낯설게 낯설게 뚫어야겠다 군산 벚꽃       이향아        너무 늦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와 볼 걸  전주에서 군산 가는 백리 길가에  벚꽃이 미칠 듯이 만발했단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꽃이니까 꽃이겠지 봐야만 알까  기껏하면 구름이겠지  아니면 목이 타는 아우성이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넘치는 눈물  그렸다 허물었다 못들은 척했다  이제야 멋을 내고 군산 벚꽃 보러 왔다  그러나 늦었다  살기가 고달파도 진작 와 볼 걸  헌 신발 끌고서 다니던 길로  억지로라도 그냥 와 볼 걸  그대로 이럴 줄은 차마 몰랐다     잃어버려지지 않는 찾아지지 않는                                           김행숙   폐허에서 극장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어요. 과거 위에 내려앉은 이미지는 날개를 떼어버린 새의 발자국처럼 멀어지기 어려워요. 어디로든 조금씩 걷고, 천천히 걷고, 부리를 땅에 박으면 먹을 게 있다는 뜻일까요?   과거 위에 내려앉은 이미지는 몸통을 잃어버린 날개처럼 꿈속에서만 날아다닙니다. 나는 폐허에서 약초를 찾고 있었습니다. "자, 이 중에 하나는 약초고, 다른 하나는 독초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윽박지르는 노인을 만났어요. 꿈결은 뒤척거리면서 이런 미치광이 노인들이 시간을 시험하기 좋은 무대를 꾸미죠. 그때마다 약초를 원했는데 독초를 고르고, 독초를 원했는데 약초를 고르고, 약초를 원했는데 약초를 고르고, 독초를 원했는데...... 어느덧 나는 한 그루 덤불을 껴안고 활활 타오르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폐허에서 잃어버린 기타를 찾고 있습니다. 기타줄 위에서 손모양이 살짝살짝 변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영혼의 옥타브가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호기심은 새싹같이 움텄고 애벌레같이 꼼지락거렸어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엿보았을 뿐인데, 하나뿐인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눈알을 뽑아 들개에게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뒤돌아서서 검은 장막을 쳤어야 했던 이유를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어요.   - 시집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ㅤ 시집『종이등 켜진 문간』(문학세계사,1997)   헌신 복효근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 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 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 박남준   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본다 마당 한쪽 햇살이 뒤척이는 곳 저것 내가 무심히 버린 놋숟가락 목이 부러진...... 화순 산골 홀로 밭을 매다 다음날 기척도 없이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 마루 위엔 고추며 채소 산나물을 팔아 마련한 돈 백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이 검정 고무줄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지  마을 사람들이 그 돈으로 관을 마련하고 뒷일을 다 마쳤을때 그만 넣어왔다 피붙이도 없던 그 놋숟가락 언젠가 이가 부러져 솥바닥을 긁다가 목이 부러져 내 눈밖에 뒹굴던 것  버려진 것이 흔들리며 옛일을 되돌린다 머지않은 내일을 밀어올린다  가만히 내 저금통장을 떠올린다 저녁이다 문을 닫고 눕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ㅤ 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시집 (창비,2005)   ㅤ
172    서정주 시 묶음 댓글:  조회:1857  추천:0  2019-12-10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곶감   서정주 맨드래미 물드리신 무명 핫저고리에, 핫보선에, 꽃다님에, 나막신 신고 감나무집 할머니께 세배를 갔네. 곶감이 먹고 싶어 세배를 갔네. 그 할머니 눈창은 고추장 빛이신데 그래도 절을 하면 곶감 한개는 주었네. "그 할머니 눈창이 왜 그리 붉어?" 집에 와서 내 할머니한테 물어보니까 "도깨비 서방을 얻어 살어서 그래"라고 내 할머니는 내게 말해 주셨네. "도깨비 서방얻어 호강하는게 찔려서 쑥국새 솟작새같이 울고만 지낸다더니 두 눈창자가 그만 그렇게 고추장빛이 다아 되어버렸지   자화상 (自畵像)                                                 서 정 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신록  ㅡ ㅡ 서정주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171    문정희 시 묶음 댓글:  조회:1756  추천:0  2019-12-10
나의 아내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잔을 끓여다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 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문정희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밤하늘 가득 기어 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 문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 사람, 너는 누구냐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몸의 혈맥을 짜서 너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너는 얼마나 짧기에 이토록 아름다우냐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계속 ㅡ  
170    한국시 9 댓글:  조회:1758  추천:0  2019-12-10
거대한 식탁    반연희   저것은 회전판이 있는 식탁이다 바퀴 달린 접시들이 돌고 있는 휘어진 도로 닭을 가득 실은 트럭이 달려간다 아이들을 실은 버스가 달려간다 접시 위의 닭들이 질주한다 아이들의 혀 위에서 닭을 실은 트럭이 질주한다 트럭이 달려간다 버스가 입을 벌리며 뒤를 쫓는다 트럭이 꼬리부터 먹힌다 버스가 익지 않은 트럭을 뱉어낸다 반쯤 씹혀진 회전판이 멈춰지고 깨진 접시들이 옮겨지고 있다 거대한 식탁의 먹어치워진 오늘이 내일로 대체되고 있다 ―계간 《시와 정신》 2006년 봄호   안개의 나라 / 김광규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귀는 자꾸 커진다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 같은 사람들이 안개의 나라에 산다   생각의 사이 / 김광규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 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 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시집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 2011)   별이 좋은 것은                           이돈권 별이 좋은 것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멀리 있어 달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 총총 다 여미고 빛나는 모습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어둠이 누를수록 더욱 찬란해지기 때문이다 수억만 리에서 달려와 벅찬 꿈꾸게 하는 영롱함 때문이다 별이 안타깝도록 좋은 것은 가까이 갈 순 없어도 바라만 봐도 좋은 너를 닮았기 때문이다 -시집『희망을 사다』(천넌의시작,2019) ㅤ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1912~1996)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1912~1996)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묵상 고정희(1948~1991) 잔설이 분분한 겨울 아침에 출근버스에 기대앉아 그대 계신 쪽이거니 시선을 보내면 언제나 거기 적막한 산천이 놓여 있습니다 고향처럼 머나먼 곳을 향하여 차는 달리고 또 달립니다 나와 엇갈리는 수십 개의 길들이 무심하라 무심하라 고함치기도 하고 차와 엇갈리는 수만 가닥 바람이 떠나라 떠나거라 떠나거라.... 차창에 하얀 성애를 피웁니다 나는 가까스로 성애를 긁어내고 다시 당신 오늘 쪽이거니 가슴을 열면 언제나 거기 끝 모를 쓸쓸함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운무에 가린 나지막한 야산들이 희미한 햇빛에 습기 말리는 아침 무망한 슬픔으로 비어있는 저 들판이 내게 오는 당신 마음 같아서 나는 왠지 눈물이 납니다.   배꼽  노향림 꽃에도 배꼽이 있는가 흔적없이 죽음을 수납하는 꽃들에게는 배꼽이 자란다 열매 꼭대기에 오똑하니 올라 앉아서 방금 떨어진 제 배꼽이 향기로운 전생이었다는 것을 태를 태워 묻은 아득히 먼 고향이었다는 것을 터질 듯한 온 몸으로 보여준다 상처 아문 자리에 봄이 돋고 은빛 금빛 장신구에 보랏빛 티셔츠를 입는 제비꽃들이 일제히 만개한 배꼽들을 열고 깔깔거리는 동안 지상엔 웃음소리들이 수북이 쌓인다 봄이 쌓인다 봉성장날 권달웅 닷새마다 찾아오는 봉성장날은 북적거리는 장꾼들만큼 왁자한 소고기국밥 냄새가 는개처럼 자욱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침 묻혀 쓰던 몽당연필 달각거리는 책 보퉁이를 둘러메고 까불대는 비비새처럼 날아갔다. 농기구 좌판 거쳐 건어물 전 거쳐 엿장수 가이 소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어머니는 나에게 엿 한 가락을 내밀었다. 콩 서 말을 팔아서 산 간고등어 한 손은 내가 들고 호미 세 자루 미역 한 오리 양미리 네 두릅은 어머니가 이고 남은 돈이 맞는지 다시 셈해 보면서 돌아오는 길에는 떼 찔레꽃이 어머니 환한 웃음소리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가물가물 불빛 최정례(1955~) ​ 당신과 이젠 끝이다 생각하고 갔어 가물가물 땅속으로 꺼져갔어 왕릉의 문 닫히고 석실 선반 위에 그 불빛 얼마 동안 펄럭였을까 왕이 죽고 왕비가 죽고 나란히 누운 그들 칼을 차고 금신발을 신고 저승 벌판을 헤맬 동안 그 불꽃 혼자 어떻게 떨었을까 당신 나 끝이야 이젠 우리 죽은 거야 가물가물 마지막 불빛 사윈 다음 또 몇 세기를 캄캄히 떠내려갈까 금관도 옥대도 비스듬히 쓰러졌지 다 무너지고 무너져서 왕비 어금니 하나 반짝 눈떴지 얼마를 헤매게 될까 당신이 있는 세상 거기 그래도 봄이면 새풀 돋겠지 삐죽삐죽 솟고 무성해지다 냇물은 소리치며 돌아 내려가겠지 당신 나 잊고 나도 당신 잊고 ​  산그늘  박규리(1960~) 먼산바라기만 하던 스님도 바람난 강아지며 늙은 산고양이도 달포째 돌아오지 않는다 자기 누울 묏자리밖에 모르는 늙은 보살 따라 죄 없는 돌소나무밭 돌멩이를 일궜다 문득, 호미 끝에 찍히는 얼굴들 절집 생활 몇 년이면 나도 그만 이 산그늘에 마음 부릴 만도 하건만, 속세 떠난 절 있기나 한가 미움도 고이면 맛난 정이 든다더니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하필 그리워져서 눈물 찔끔 떨구는 참 맑은 겨울날   산그늘  박규리(1960~) 먼산바라기만 하던 스님도 바람난 강아지며 늙은 산고양이도 달포째 돌아오지 않는다 자기 누울 묏자리밖에 모르는 늙은 보살 따라 죄 없는 돌소나무밭 돌멩이를 일궜다 문득, 호미 끝에 찍히는 얼굴들 절집 생활 몇 년이면 나도 그만 이 산그늘에 마음 부릴 만도 하건만, 속세 떠난 절 있기나 한가 미움도 고이면 맛난 정이 든다더니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하필 그리워져서 눈물 찔끔 떨구는 참 맑은 겨울날 이사     김나영     이 남자다 싶어서 나 이 남자 안에 깃들어 살 방 한 칸만 있으면 됐지 싶어서 당신 안에 아내 되어 살았는데 이십 년 전 나는 당신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나 당신 밖에 있네 옛 맹세는 헌 런닝구처럼 바래어져 가고 사랑도 맹세도 뱀허물처럼 쏙 빠져나간 자리 25평도 아니야 32평도 아니야 사네 못 사네 내 마음의 공허가 하루에도 수십 번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 하네   절정(絶頂)  이육사 매운 계절(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와인의 체위를 아세요   이향란     햇빛 아래 싱글싱글 맺히는 과일의 본명은 포도이고요 촛불 앞에서 머뭇머뭇, 그러나  군침 도는 고백의 가명은 와인이에요.   드디어 완성됐나요? 그럼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어둡고 서늘한 침대에 뉘여 주세요. 껍질 속 바람과 햇빛이 마음껏 뒤척일 수 있도록  약간 기울여서요.   왼쪽으로 석 달 오른쪽으로 석 달 탱글탱글 꿈의 석 달 정신없이 와 닿을 입술의 석 달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먼지 날리며 달리던 소년의  부릉부릉 심장 박동 소리에 비록 짓이겨지고 으깨졌지만  또르르 동그란 의지와 눈물은 더욱 투명해졌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바라보되 향이 새어나오면 윙크해주세요.   해 저물녘   빙글 돌리고,  빙글 바라보고,  빙글 마시고,  빙글빙글 추는,  물방울들의 춤   너무 크게 움직이지는 않으려고요.  여태 녹지 않은 햇빛을 천천히 녹이는 중이거든요.  새하얀 귀를 붉게 붉게 물들이는 중이거든요.   무덥고 긴 그해 여름을 쪼르르 잔에 따르면 재즈와 치즈의 얼룩이 묻어나는, ​ 스위트하거나 드라이한 와인의 이 오묘한 체위를  혹시 아세요?   월간 《시인동네》 2018년 10월호    저녁의 감정      김행숙   가장 낮은 몸을 만드는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개 앞에 엎드려 착하지, 착하지, 하고 울먹이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계급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일어서려는데 피가 부족해서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현기증이 감정처럼 울렁여서 흐느낌이 되는 것이다, 파도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사람은 사라지고 검은 튜브만 돌아온 모래사장에…… 점점 흘려 쓰는 필기체처럼   몸을 눕히면, 서서히 등이 축축해지는 것이다   눈을 감지 않으면, 공중에서 굉음을 내는 것이 오늘의 첫번째 별인 듯이 짐작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이제 눈을 감았다고 다독이는 것이다   그리고 2절과 같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 시집   P118~P119 ■ 김행숙 시인  - 1970년 서울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강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1999년 등단  - 시집 외 다수'      사람살이와 시 쓰기 ㅡ 이어산    필자는 몇 년 전 새해 첫 강의를 하면서 ‘당.신.멋.져 운동’을 하자고 주창한바 있다. ‘당: 당차게 시를 쓰고, 신: 신나게 시를 쓰고, 멋: 멋있게 시를 쓰되, 져: 져주는 겸손함으로 시를 쓰자는 첫 글자인데 한 동안 시 모임에서 즐겨쓰는 건배사로 인용하기도 했다.    시를 쓰는 일은 우리 삶의 집에 창문을 내는 일이고 그 창문에 품위 있는 커튼을 다는 작업 같다고 강조해 왔다. 시를 쓰더니 그 사람의 언어와 삶이 품격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하자는 말이다. 정제되지 않은 말, 자신의 넋두리나 연민, 비탄조는 그런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좀 더 진취적이고 젊고 밝은 내용의 시를 쓰되 겸손을 잃지 말자고 주장해 왔다.    모든 시인이 좋은 시를 쓰고 유명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걸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좋은 시라고 신춘문예나 유명 시 전문지에서 내어놓는 많은 시 들은 그것의 해석부터가 쉽지 않은 난해함 때문에 오히려 시가 골치 아픈 것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시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되고 일반 독자들에게선 멀어지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시적 감동이란 이해를 전재로 한 독자를 위한 것인데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한 난해함이란 오히려 빈곤과 성취도를 감추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그것은 시가 추구하는 근원적 방향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물론 난해하거나 실험적, 전위적인 시에도 좋은 시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시는 마음속의 불꽃이고 강력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즉 정(情)을 뿌리로 하고, 언어를 싹으로 하며, 운율(韻律)을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하는 것이다. 또한 시는 영혼의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라고도 하는데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다만 시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의 구성 요소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즉 중복된 문장이나 주제와는 간접적이거나 의미로 연결되지 않는 말을 늘어놓은 횡설수설한 형태 등이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보자. ​    갯 모래 머금은    혓바닥 하나 몸을 삼으니    석화된 입이 무기다    발바닥 생을 숨긴 집이다    만입이 다 열려 있어도 적막한    묵언수행    어느 전생의 세치 혀가 저지른 죄업인지    딱딱한 입술 두 쪽에    혓바닥 하나 숨겨 생애를 건너가는 중이다    물속에서 내다뵈는 것은    먼 깜박임    저건 시리우스 저건 좀생이 별    저기에도 생을 기댈 짭쪼름한 물이 있을까    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본다    머나먼 거기    뉘 손짓이 저리 반짝이는지    조개는 날개를 펴듯 움찔 움찔    패갑을 열었다 닫곤 한다       - 김추인, 전문    첫 연의 묘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조개는 입이 열려 있어도 묵언수행 하고 있는, ‘발바닥 생을 숨긴 집’이란다. 그리곤 물 밖으로 보이는 별 중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시리우스별과 자잘한 좀생이별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살이와 이미지로 연결하고 있는데 ‘생을 기댈 짭쪼롬한 물이 있을까’라는 다의적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본다’면서 사람은 희망을 보고 사는 존재임을 다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몸이 무거워서 날지 못하는 새가 인간’이라는 신달자 시인의 강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위 시를 쓴 김추인 시인은 한국예술상, 질마재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고 일곱 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이자 나이에 비해서 시를 아주 잘 쓰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은 위의 예시처럼 시적 대상과의 자리바꿈을 제대로 하고 있다. 벌말이 없다. 읽을수록 맛이 나는 시가 많다. 한번 읽고 나면 뜻이 모두 이해되어서 다시 읽기 싫어지는 내용이 훤히 드러나는 시는 시의 생명이 일회성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    시가 예사말이라면 시를 쓰기위해 씨름할 이유가 없을 텐데 시는 특별한 말이다. 비틀어서 말할 때 시(詩)다와지고 줄여서 말하고 시치미를 떼고 돌려서 말했을 때 더 뚜렷해지는 특성을 지닌다.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 다의적이면서도 사람살이에 긍정적으로 이바지 하는 시를 좋은 시의 기준으로 꼽는 이유도 그래서다. ​ 수평선 / 배한봉 저 빨랫줄 참 길게 눈부시다 태양을 널었다가 구름을 널었다가 오징어 떼를 널었다가 달밤이면 은빛으로 날아다니는 갈치 떼를 널었다가   옛날에는 귀신고래도 너끈하게 널었다는 그래도 아직 단 한 번 터진 적 없는 저 빨랫줄 한라산과 백두산이 가운데 쯤 독도를 널어놓고 이쪽, 저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주는 참 길게 눈부신 저, 한국의 쪽빛 빨랫줄  인생             유자효 늦가을 청량리 할머니 둘 버스를 기다리다 속삭인다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이제는 누군가의 한줄기 햇살이 되고 싶다 허인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사람이 문득 보고싶다 들추면 훤히 상처가 드러 나 서로 어색한 웃음 웃지 않아도 되는 난 누군가에게 매일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별에선가 우등불옆에 오구구 모여들어 함께 목 놓아 불렀던 옛노래 은하의 풀밭에 금 망아지떼 풀어 놓고 죽 어서야 다시 불러 볼수 있는 익숙했던 사람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살아서 한번쯤 다시 불러보고 싶다 모조리 벗고 알몸뚱이 그대로 그라스며 와인잔에 들어 앉아서야 비로소연분홍 유혹이 되는 묵은 포도주처럼 내 남은 인생도 누군가의 달콤한 추억이 되면 얼마나 좋으랴 죽으러 온 세상 참 열심히 살아 미안하다 이제는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에 눈물이 찰랑거리는 한줄기 밝은 햇살이 되고 싶다...   그림   이생진 아무 것이나 아무렇게나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림에서 소리가 나야 하고 그림에서 냄새가 나야 하고 그림에서 무지개가 떠야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하고 가버린 사람을 돌아오게 해야 하고 모두 말없는 고독에서 나온 그림이다   어머니의 지붕 / 이준관 어머니는 지붕에 호박과 무를 썰어 말렸다 고추와 콩꼬투리를 널어 말렸다 지붕은 태양과 떠도는 바람이 배불리 먹고 가는 밥상이었다 저녁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초승달과 서쪽에 뜨는 첫 별이 먹고 나면 어머니는 그것들을 거두어들였다 날씨가 맑은 사나흘 태양과 떠도는 바람 초승달과 첫 별을 다 먹이고 나서 성자의 마른 영혼처럼 알맞게 마르면 어머니는 그것들을 반찬으로 만들었다 우리들 생의 반찬으로! . 낡은 의자 김기택 묵묵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늦은 저녁, 의자는 내게 늙은 잔등을 내민다. 나는 곤한 다리와 무거운 엉덩이를 털썩, 그 위에 주저앉힌다. 의자의 관절마다 나직한 비명이 삐걱거리며 새어나온다. 가는 다리에 근육과 심줄이 돋고 의자는 간신히 평온해진다. 여러 번 넘어졌지만 한 번도 누워본 적이 없는 의자여, 어쩌다 넘어지면,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허공에 다리를 쳐들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의자여, 걸을 줄도 모르면서 너는 고집스럽게 네 발로 서고 싶어하는구나. 달릴 줄도 모르면서 너는 주인을 태우고 싶어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네 위에 앉는 것이 불안하다. 내 엉덩이 밑에서 떨고 있는 너의 등뼈가 몹시 힘겹게 느껴진다.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 , , 등 김기택 시인의 시의 특징은 어떤 대상을 끝까지 추적하며 구체적 섬세한 필법으로 인식한 대상과 대화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낡은 의자를 의인화시킨 시인의 본문의 시세계는 어쩌면 낡은 시대의 시적 장치를 사용한 한물간 서정의 구시대의 작법이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날카로운 시인의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관찰적 자세에서 시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있음을 공감할 수 있다 시가 창조라는 예술의 장르이기 이전에 시는 인간에게 성찰적 기능을 부여하는 거울이라고 가정할 때 시인의 시는 투명하고 맑은 거울로 시대를 비추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김기택 시인은 큰 나무 같은 시인인 것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낡은 의자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표면적으로 바라보면 의자와 시인의 이야기가 시인의 연민에서 시가 축조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자의 관점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서로간에 종속된 존재론에서 시인이 의자라는 무생물에 생명성을 불어 넣어 연민과 동정만을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시대는 빈익빈 부익부가 가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우리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자 노동자와 사주 그리고 계층과 계층간의 갈등  또한 지역과 지역간의 대립이 표면화 되어 이 사회는 분열되고 그 분열된 사회성 속에서 개인의 이기주의는 묻지마의 범죄 유형 으로 날마다 뉴스에서 아픈 우리의 비명들이 쏟아진다 우리사회가 낡은 의자와 주인의 관계 처럼 서로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바라보고 스민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정말 한번 쯤 신명나게 살아 볼 세상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의자가 되어 준다면 그 의자에 앉은 우리의 엉덩 이는 이태리 명품 가죽쇼파보다 더, 더, 더 안락할 것이다 오늘 그대 바깥에 나가거든 누구의 엉덩이를 튼실하게 태워주는 의자가 한번 되어보자 [문정완 ]   국수행 전철에서     김기택     한낮에 국수 가는 전철은 한산하다.   노인은 왜소한 몸으로 7인석 좌석을 다 차지하고 앉아   신문을 쌓아놓고 보고 있다.   한쪽 다리를 좌석 위에 턱 얹어놓고   등을 옆으로 기대고 한껏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편할수록 더 결리는 허리.   최선을 다해 자세를 고쳐 앉아보지만   삶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허리와 어깨는 10초 동안 편안한 척하다가 다시 못 마땅해진다.   하루 종일 타도 공짜지만 다 탈 수 없는 전동차들.   텅텅 비어 남아돌아도 다 앉을 수 없는 좌석들.   아무리 많이 버려져 있어도 다 읽을 수 없는 신문들.   에어컨이 질 좋은 찬바람을 공짜로 퍼주어도   짜증만 나는 쾌적함.   물결치는 숲과 강이 보는 눈도 없이 차창 가득 지나가도   지긋지긋하기만 한 아름다움.   보던 신문을 확 던져버리고 의욕적으로 새 신문을 펼쳐든다.   먼저 본 신문에서 다 본 기사들.   그놈에 그 사건에 그 인생...... 사이에   반라의 모델 사진이 있다!   끊어질 것 같은 수영복 안에서 무엇인가 계속 터지고 있다.   그의 허리가 민첩하게 진지해지고 성실해진다.   너무 정성껏 여자를 쓰다듬어 눈알이 지문이 생길 지경이다.   다시 허리가 아파오자 그것도 금방 시들해진다.   거의 드러눕듯이 앉아본다.   여기저기 쏘아보는 눈알들.   한때는 눈치 보는 것도 스릴이 있었지만   꽉 찬 지하철에서 여자들 틈에 끼어   간이 오그라들도록 엉큼하고 도전적인 짓도 해봤지만   그런 재미조차 싫증난 지 오래다.   처치할 곳이 없어 전철에다 잔뜩 부려놓은 시간.   전동차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느려터지기만 한 시간.   아까 팔당역이었는데 어째서 아직도 팔당역이란 말인가.   전철이 달리면 잠깐 흐르는 듯하다가 멈추면 함께 정지하는 시간.   죽어라 밀쳐도 안 가는 시간.   고집스럽게 한자리에만 앉아 늙기만 하고 죽지는 않는 시간.     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지)에서.   감상;    김기택 시인의 지하철 묘사다, 이렇게 끝낸다면 이 시는 평범하다. 김기택 시인이 정치적으로 지하철을 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다시 읽게 된다. 물론 사회적이고, 참여적이고, 의식적인 언어들이 일상의 관찰인 양,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시인이 내려놓은 그림자 문자는 사실 다른 말을 하는 듯하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의 눈은, 그의 감각은, 그의 정서는 못을 박듯 한곳에 머물러 있다. 그곳에서 그는 사회를 보고, 세상을 읽고, 타성화되고 고령화된 의식과 동작을 읽는다. 타자들과 섞여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침몰해 있는 인간 군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발달한 인간 유형을 관찰한다. 그것이 우리가 몰아가는 전동차 같은 사회다. 젊은 세대에게 미래에게 염치도 체면도 필요 없고, 과거를 존중하는 의례적 칸으로 모셔진 지정석에 앉아, 일견 자유롭지만, 불편하다. 어쩌면 그가 달려온 생이 마치 한 곳에 갇혀 있는 듯한 인상이다.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그의 행동 양상은 사회에서 고립된 섬에서 다 부서진 몸으로, 다 망가진 의식으로 앉아 있는 우리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도시에서 도시로 궤도를 놓은,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의 고립을 묘사하고 있다.    김기택 시인은 사물에 대한 개입과 감정을 내색하는 편이 아니지만, 사실 문자만 그렇지 그의 시는 강력한 주제를 내비치는 것이 특장이다. 그는 그림만 그리는 듯하지만, 독자는 증폭된 내재한 에너지를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아주 친근한 평서문인데도, 그는 탑재한 감정과 의식들을 읽어낼 것을 독자의 몫으로 둔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며 옹호하지도, 찬양하지도 않지만, 그는 이미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자이고, 그가 담겨 있는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무의지적으로 소모되는 인간을 반대한다. 그는 아름다운 언어보다는 적확한 언어로 시를 쓰고, 시를 쓰는 목적이 분명하다. 시는 고통을 읽는 일이고 고통을 이완하는 일이다. 그의 시를 여러 번 읽으면 내가 왜 이 사회에 덩그러니 떨어져 수많은 기계의 조립된 동작에 얹혀 무심히 흘러가는 인간인가를 반성하게 된다. 국수행 전철은 작은 공간을 통해, 사회를, 국가를, 세계를,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 군체가 꾸려갈 미래를 진단하고 암전된 예시로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그는 승객이나, 큰 함선을 몰아가는 함장으로도 보인다. 시의 힘일 것이다.                                              비의 목록 김희업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노점을 지웠다 오늘은 가난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산을 펴자 비가 우산 위로 사납게 달려들었다 우산은 우산 크기만큼만 비를 가려주었다 온다는 소리 없이 집집마다 비가 다녀갔다 섭섭하지만 비를 뒤쫓아갈 필요가 없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보내주기로 했다 비를 모금함 속에 모아두는 엉뚱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재주를 가진 노점이 사라진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에 스며들었는지 한산한 거리가 비로 시끌벅적했다 비에 쫓겨난 봄꽃은 어디서 보상받을는지 생계가 막막해진 봄꽃이 뿔뿔이 자취를 감추었다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에도 바퀴의 노동은 멈추지 않고, 내일도 모르고 앞만 향해 자꾸 달려간다 이런 날,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 사람이 꼭 있더라 저만치 자신을 내팽개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이제 웃음조차 지우려 한다 오늘은 비의 목록에 따뜻한 위로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프로필 김희업 : 건국대 국문과, 서울예대 문창과, 현대문학 등단, 시집[비의 목록]외 다수 시 감상 겨울답지 않게 비가 많이 내렸다. 계절마다 내리는 비는 계절의 색을 짙게 하거나 혹은 계절을 탈색시키거나, 당신은 어느 계절의 비를 좋아하는지? 쏟아붓는 여름 비, 우산 속 울음을 감추지 못하게 만드는 가을비, 따뜻한 봄 비? 아니면 왠지 남의 옷을 걸친 듯 겨울 속 봄 비? 비의 목록을 만들어 보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비에 스며들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비에 씻겨 보냈는지? 보낸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자. 잠시 비가 되어보자.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고독의 깊이 / 기형도(1960~1989) 한 차례 장마가 지났다 푹푹 파인 가슴을 내리쓸며 구름 자욱한 강을 걷는다 바람은 내 외로움만큼의 중량으로 폐부 깊숙한 끝을 부딪는다 상처가 푸르게 부었을 때 바라보는 강은 더욱 깊어지는 법 그 깊은 강을 따라 내 식사를 가만히 띄운다 그 아픔은 잠길 듯 잠길 듯 한 장 파도로 흘러가고 아아, 운무 가득한 가슴이여 내 고통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시소문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김은숙의 당선작을 취소합니다. 당선작 발표 이후 이 작품은 2019년 10월 4일 네이버 카페 에 습작품으로 게재된 김난의 와 상당 부분에서 동일성이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이에 심사위원단은 두 작품을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타인의 창작물을 이용한 점이 상당 부분 인정되어 당선 취소가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김은숙 씨는 “카페 게시판에 올라왔던 김난의 작품을 보지 않았고 게시물을 읽을 수 있는 권한도 없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응모작품은 미발표 창작품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당선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 . . 1월 /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 .골목의 번식 - 김은숙 발밑을 믿지 마세요 골목의 뒤통수는 백 년이 가도 썩지 않아요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한 태아도 봉지에 버려진 조약돌, 툭툭 발길에 채여요 어둠이 눈감아줬다면 당신은 그것을 바람 빠진 축구공쯤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나자마자 봉지 속으로 꼬깃꼬깃 숨겨진 첫울음, 도심에는 한 방향만 암기한 검은 사각형들이 살아요 정육면체 어둠이 검은 시냇물이 되어 흘러요 밤이면 먹물 같은 골목, 징검다리는 없어요 그 안에 더 이상 비밀을 숨기지 못할 때 종착지는 캄캄한 땅속이거나 고래 뱃속이었어요 뭔가를 산란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 지난밤 그 골목은 비좁았어요 집안 어디쯤에서 폐품이 되기 좋은 질긴 산책로를 발견했나요? 창문 밖 골목 저 끝말이에요 봐! 저기! 저것 좀 봐! 소리친 게 당신이었나요? 노을을 뚫는 검은 새떼의 비행은 사실상 누군가 목을 비틀어서 유기遺棄한 비닐봉투였죠 은밀함을 목 졸라 죽일 때는 낯선 저녁 역광 뒤쪽이 최고예요 역광을 믿지 않았던 고래는, 죽은 봉투를 해파리로 읽었어요 그것들은 간혹 뱃속에서 심장을 갉아 먹다 고래의 사인死因이 되기도 하죠 검정을 죽이고 돌아와, 비닐봉투가 피살되었다는 뉴스특보를 보더라도 웃음 짓는 것이 중요해요 한잔의 블랙커피를 삽으로 파고서 떨리는 증거들을 감쪽같이 묻어버리세요​ 지난밤에는 어둠을 자백하라고 길고양이들이 나를 포위했어요 묻어버린 시간과 폐기한 말들을 뱉어내라고 난리에요 그렇지만 최후의 단서를 들키지는 않았어요 귀소본능이 없는 것은 발명가가 깨트린 새 소리예요 길게 누운 골목, 졸음의 이마 위로 갓 태어난 개똥을 조심하세요 골목 왼쪽, 삐쩍 마른 나뭇가지 꼭대기에 흙을 잔뜩 묻히고 입을 헤- 벌린 깃발처럼 펄럭이는 검은 농담들, 맞아요 어느 아르바이트생이 20원짜리 비닐봉투 도둑으로 몰린 사건 아시죠? 두께도 없고 입구도 없는 혐의는 아메바보다 지루해요 괜찮아요 밀봉된 태아의 캄캄한 몸과 비명도 따지고 보면 고무장갑과 같은 족속 붉어서 아무도 구별 못 해요 매일 밤 태어난 어둠은 막다른 모퉁이에 검은 무덤을 만들고, 아침이면 기지개 켜는 코스모스가 그것들을 화려하게 변호하죠     비닐봉지의 원죄 - 김난 시커먼 어둠 저쪽, 번뜩거리는 누들이 분주하다 착지하는 소리마저 종적을 감춘 낡은 새벽 배고픈 눈동자를 어슬렁거리며 굶주린 입들이 검은 선물을 노린다 어떤 것은 벌서 발 바른 무리에게 뜯긴 채 알록달록한 내장을 쏟아 놓았다 며칠 치의 몸이 뱉은 배설인지 물컹한 냄새가 부랑자처럼 떠돌았다 항상 간단한 일상을 담고서 손에서 달랑거리며 존재를 알렸지만 그러나 늘 일회용이라는 불명예를 떨치지 못했다 어떤 날은 검은 동굴처럼 어두운 입구 저쪽에서 미세하게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구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세상의 출구에서 가느다란 숨을 내뿜으며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한 태아가 발견된 날은 이미 오래전이었다 무언가를 품었다가 빈속인 채 연애편지처럼 꼬깃꼬깃 접어지기를 몇 차례 더 이상 뭘 담지 못할 때의 종착지는 늘 땅속이거나 고래의 뱃속이었다 가볍고 미끈거려 초라한 대신 영생을 보장 받기라도 한 듯 아무도 그것의 질긴 목숨을 끊을 수 없었다 노을을 뚫는 검은 새떼의 비행은 실상 비닐봉지였고 심심할 때면 고래의 뱃속에서 심장을 갉아먹고 사인(死因)의 선봉이 되기도 했다 제 몫을 끝내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은 채 폐기된 소멸은 소멸이 아니었다 그가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귀소본능이 없는 것은 발명가가 실수를 한 원죄였다 마당 한 켠, 삐쩍 마른 나뭇가지 꼭대기에 흙을 잔뜩 묻히고 입을 벌린 채 어느 알바생이 20원 짜리 도둑으로 몰린 사건은 혐의 없는 일회용으로 종결되었다고 웅웅거린다   허수아비  .ㅡ. 신달자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국물 신달자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책에 담을 수 없는 여자 / 김관민 미안해요, 당신을 윤리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의 신발을 신발장에만 가두려 했으니 당신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미안해요, 당신을 수학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의 모든 걸 계산하려고 했으니 당신은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미안해요, 당신을 국어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을 그렇고 그런 이야기 속에 살게 했으니 당신은 얼마나 심심했을까요 미안해요, 당신을 음악책에 담으려 했어요 당신의 눈에 들리지 않는 음표들만 늘어놓았으니 당신은 얼마나 짜증났을까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은 책에 담을 수 없는 여자인데 당신은 책이 아닌 이렇게 내 앞에 서 있는데 나는 그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죠 오, 정말 미안해요 또 다시 당신에게서 답을 구하려 했네요
169    한국시 * 댓글:  조회:2357  추천:0  2019-12-06
종이비행기    이선명 종이를 접어 날리는 습관이 생겼다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종이 접어  그대도 바라보고 있을 저 하늘에  그대를 꿈꾸며 나를 보낸다 그대의 마음 가에 닿지 못하고  금새 내 그리움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기운 사랑만을 쫓아 바닥으로 떨어진 종이 눈물  저 나약한 비행기가 그녀에게 갈 수 없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사랑이란 포기할 수 없는 절망  오늘도 나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종이 접어 그대에게 날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오직 이것 뿐  깊어가는 마음만 하늘을 날아간다   다시  이선명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더 크게 부를수록 고요해지는 거짓이 되어버린 말들과 그리움이 되어버린 시간들 불현듯 너는 떠났고 허락도 없이 그리움은 남았다 앉거나 걷거나 혹은 서 있을 때도 내 안에 투명한 방울들이 맺히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 되었고 기억하는 것은 떠난 것이 되어 있었다 내 삶에 낙서 되어버린 한 사람의 이름 어디로 가야 다시 도착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물들기 쉬운 어리석은 사람 한 번의 입맞춤을 위해 힘없이 떠나보낸 시간들을 기억해 본다 쓸쓸히 왔던 길을 돌아서듯 너를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혹 당신이 아니라는 착각 하지만 그래도 후회할 수 없다 뼈가 부서지도록 아픈 이름을 안고 너라는 끝없는 절망을 사랑했다   마른 꽃     이선영    시들고야 말았다  식었다     그대에게서 오래 전 받은 따뜻한 꽃 한송이     벽에 거꾸로 매달린 채 하세월     사랑은 말라붙은 꽃만 남기고  기어이 그대를 벽에 꽂아놓진 못했어도     내 마음 깊은 어디쯤에  딱딱하게 걸려 넘어가지 않는 마른 꽃     속이 다 비고도  바스라지지 않는   세수 / 이선영  어제의 나를 깨끗이 씻어낸다  오늘의 얼굴에 묻은 어제의 눈곱  어제의 잠  어젯밤 어둠 어젯밤 이부자리 속의  어지러웠던 꿈 어제가 혈기를 거둬간  얼굴의 창백함을  힘있지는 않지만 느리지는 않은  내 손길로 문질러버린다  늘 같아 보이지만 늘 새 것인 물이  얼굴에 흠뻑!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늘엔 오늘 아침 갓 씻어낸 물방울 숭숭 맺힌 나의 얼굴이 있고  그러나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하지 않은가  어제는 잔주름만 남겨놓았고  오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짧고도 길어야 할       이선영  그대와 내가 늘 처음처럼 사랑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을 지루하도록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마침내 낯익어서 낯설어져 버린 서로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대와 내가 거문고의 여러 개 줄 가운데 딱 두 줄처럼  끝끝내 묵음으로 울려 왔음을 들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흙 속에 바람 속에 뼛가루로 재로 영영 묻혀 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은  이쯤에서 추억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  사랑의 박제를 만들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대 앞에서 내가, 내 앞에서 그대가 늙어가서는 안되겠기에  사랑과 시는 늙어서는 안되겠기에  사랑과 시를 위해서는 짧았으면 싶지만  생활과 핏줄을 위해서는 질기게도 길어야 할,  당길 수도 늘릴 수도 없는 이  인생이라는 것      花樣年華(화양연화) / 이선영     가장 불행한 얼굴로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이노라고 리첸 부인은 말했다   "정말 많이 보고 싶지만, 먼 후일을 기약하기로 해요" 편지를 써야만 했던 날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고   게임은 거의 끝나가는데 남은 판은 더욱 절박한   사십세   행복은 불행이라는 돌틈에 숨은 작은 샘구멍 불행은 행복의 부서지기 쉬운 살을 감싼 갑각   알겠구나, 평생이 이 뗄 수 없는 연인들과의 부질없는 삼각관계임을!   불행의 적요한 한낮을 화(花)-아-양(樣)-연(年)-ㄴ-화(華) 라디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올 때   불행은 자기가 빠져나갈 틈을 알고 있다   사람이 선물입니다    김민소 하늘이 빛나는 것은 은하수 때문이고 들판이 빛나는 것은 원시림 때문이고 세상이 빛나는 것은 사람 때문입니다. 아픔이 소중한 것은 기쁨과 함께 하기 때문이고 실패가 소중한 것은 성장과 함께 하기 때문이고 세상이 소중한 것은 사람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을 배우게 하고 세상은 나누는 아름다움을 배우게 하고 사람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해줍니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가슴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사람이 선물입니다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 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책 읽는 남자                                     강기원   실직은 질식이다 목을 죄던 것들이 어느 날 툭 끊어졌는데 이번엔 보이지 않는 손이 온종일 그의 목을 조른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보다 더 집요하다 아침마다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집을 나선다 아침 아홉 시 입실 밤 아홉 시 퇴실 매일 밤 늦는 그의 귀가를 기다리며 아내는 야근수당을 기대하리라 도서관 그 자리엔 언제나 그가 있다 책 보다는 창밖에 멍한 시선 자주 보내는 말쑥하고 창백한 높은 도수 너머의 그가 자주 목덜미를 문지르는 그가   아내가 옳다 이동재     아내가 옳다! 젊어선 세상의 정의가 공자나 맹자 예수나 부처의 말씀에 있는 줄 알았다 조금 더 젊었을 땐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에게 있는 줄 알았고 한창 땐 레닌이나 모택동 체 게바라 루카치 마르쿠제 아드르노 벤야민 라깡이나 지젝 자유주의이니 자본주의, 사회주의니 공산주의 구조주의나 후기구조주의 리얼리즘 혹은 모더니즘 하다못해 신자유주의가 옳은 줄 알았다 독수공방, 아내가 외롭게 지새우는 긴 밤 그래도 세상의 정의는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책상 앞에서 헤매던 시절 세상의 옳고 그름이 그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다 마지못해 내는 학회지나 창비나 문지 같은 잡지에 숭고한 뭔가가 있다거나 요사스런 사설(私設邪說)로 가득찬 신문지 쪼가리 속에 찾아야 할 진실이 있다고 진정으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의 진리가 그 어디쯤에 서성이고 있을 줄 알았다 허나 찍히고 짤리고 미끄러지고 터지고 뭉개져 돌아와 식탁 앞에 앉은 어느 저녁 아내는 옳았다 아내가 옳다, 아내가 옳다 아내가 항상 옳다 라고 수없이 되뇌어 보는 중년의 어떤 나, 아내가 역시 옳다, 아내는 여전히 옳다, 무조건 옳다! .   아내의 젖을 보다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 계간《서정시학》2008년 봄호   나의 아내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잔을 끓여다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 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내의 빈자리      정연복 아내가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갔습니다 한 며칠 엄마랑 함께 지낼 작정이랍니다. 첫날은 아내가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둘째 날도 큰 불편 없이 그럭저럭 견딜 만했습니다 셋째 날부터 아내 생각이 나며   홀로 자는 밤이 쓸쓸했습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하루 세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아내가 곁에 있어야겠습니다.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네비게이션   홍종빈     자동차를 몰고 나서면 어느새 아내가 네비게이션 안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또박또박 하느님처럼 말한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안전운전 하십시오. 그녀가 시키는 대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보이지 않는 아내가 다시 말한다. 전방에 과속단속구간입니다. 과속에 주의하십시오. 나는 언제나 길들여진 의식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어디로 갈까 묻지 말고 그림자처럼 오롯이 따라만 오세요. 당신이 한평생 건너온 그 질퍽하고 굴곡진 삶도 거역할 수 없는 내 힘에 이끌려 왔듯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그녀가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세요. 내가 심심합니다. 제발 담배 피우지 마세요. 내 건강에 해롭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내 포로입니다.   하동 ㅡ ㅡ 이시영    하동쯤이면 딱 좋을 것 같아. 화개장터 넘어 악양면 평사리나 아, 거기 우리 착한 남준이가 살지. 어쩌다 전화 걸면 주인은 없고 흘러나오던 목소리. “살구꽃이 환한 봄날입니다. 물결에 한 잎 두 잎…”. 어릴 적 돌아보았던 악양 들이 참 포근했어.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배틀재 토지 동방천 화개… 빨리 빨리 타이소!” 하며 엉덩이로 마구 승객들을 들이밀던 차장 아가씨도 생각나네. 아니면 인호 자네가 사는 금성면도 괜찮아. 화력발전소가 있지만 설마 터지겠어? 이웃에 살며 서로 오갈 수만 있다면! 아니 읍내리도 좋고 할리 데이비슨 중고품 몰고 달리는 원규네 좀 높은 산중턱 중기마을이면 또 어떠리. 구례에는 가고 싶지 않아. 마음만 거기 살게 하고 내 몸은 따로 제금을 내고 싶어. 지아는 지가 태어난 간전면으로 가고, 두규도 거기 어디에 아담한 벽돌집을 지었다더군. 설익은 풍수 송기원이 허리를 턱하니 젖혀 지세를 살피더니 ”니가 살 데가 아니다“라고 했다며?    하여간 그쯤이면 되겠네. 섬진강이 흐르다가 바다를 만나기 전 숨을 고르는 곳. 수량이 많은 철에는 재첩도 많이 잡혔지만 가녘에 반짝이던 은빛 모래 사구들. 김용택이 사는 장산리를 스쳐온 거지. 용택이는 그 마을 앞 도랑을 강이라고 우겼지만 섬진강은 평사리에서 바라볼 때가 제일 좋더라. 그래, 코앞의 바다 앞에서 솔바람 소리도 듣고 복사꽃 매화꽃도 싣고 이젠 죽으러 가는 일만 남은 물의 고요 숙연한 흐름. 하동으로 갈 거야. 죽은 어머니 손목을 꼬옥 붙잡고 천천히, 되도록 천천히. 대숲에서 후다닥 날아오른 참새들이 두 눈 글썽이며 내려앉는 작은 마당으로. ​ ㅡ이시영 시집 『하동』(창비, 2017)   * 분수(喷水)               이경희 난 첼리스트 다칠세라 당신을 금이 갈세라 가만히 포응하면 매지근한 체온에 튀는 스타키토 내 어께에 당신의 머릿카락은 바닷물결 차츰 잠기우는 몸을 안고 흔드는 파도의 요람 내 기인 손가락은 당신의 허리에서 내려오는 엉뚱한 애무처럼 몸저리는 연소에 타는 쏘나기, 쏘나기 소린 내 그이의 분수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손 미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손 미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민음사, 2019)에서     모르는 목소리    김행숙 ​​ ​   모르는 목소리가 아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얼굴은 안개에 감겨 얼굴이 없는 것 같고   같은 안개를 뚫고 모르는 목소리가 내게 달라붙고 있다   어떤 앎이 이처럼 끈적이는가. 모든 앎이 이처럼 끈적이는가   나는 침묵의 계명을 따랐던 교분들을 희뿌연 빛에 비추어 상기하고 있다, 오래전    그 중에...... 그는 법정 서기였다   그는 완벽했다 ​   이제 말을 해도 되는 거냐고 내가 놀라며 물었더니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그의 목소리는 주인을 바꾼 듯이 변해 있었다   또 다른, 모르는 목소리가 아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더 가깝게 걸어오고 있다   나의 이름이 나를 비껴가고 있다 - 시집   용접 / 이석현 온몸으로 젖어 본 사람은 알 수 있지 보안경 너머로 삼천도 불꽃물의 길을 터주면 두툼한 방열복 속으로 후끈 스며들던 고열의 마음들 서로 녹아 넘치도록 혼절해야만 한 몸 되는 힘겨운 접목 뼈와 살을 녹여내는 아픔을 나눈 후 태어난 신생 기억을 가로지르는 고압선에서 나온 수많은 불티들을 온 가슴으로 막아내다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 균열을 살핀다. 마음과 마음을 묶는 일이 얼마나 뜨거운 일인지 시뻘걸게 달아 온 몸으로 젖어 본 사람은 알 수가 있지. -시집 『둥근 소리의 힘』 (문학만, 2010)   갱년기   안현미   국숫집에 와보니 알겠다 호르몬이 울고 호르몬이 그리워하고 호르몬이 미워하고 다 호르몬이 시키는 일이라는 걸   매일매일 죽지도 않고 찾아와 죽고 싶다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국수 가락처럼 긴 사생과 결단의 끝   당신, 내가 살자고 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내가 죽자고 하면 살아버릴 것 같은   국숫집에 와보니 알겠다 크게 잘못 살고 있었다는 걸 크게 춥게 살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따뜻한 국수가 고팠다는 걸     모르는 목소리    김행숙 ​​ ​   모르는 목소리가 아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얼굴은 안개에 감겨 얼굴이 없는 것 같고   같은 안개를 뚫고 모르는 목소리가 내게 달라붙고 있다   어떤 앎이 이처럼 끈적이는가. 모든 앎이 이처럼 끈적이는가   나는 침묵의 계명을 따랐던 교분들을 희뿌연 빛에 비추어 상기하고 있다, 오래전    그 중에...... 그는 법정 서기였다   그는 완벽했다 ​   이제 말을 해도 되는 거냐고 내가 놀라며 물었더니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그의 목소리는 주인을 바꾼 듯이 변해 있었다   또 다른, 모르는 목소리가 아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더 가깝게 걸어오고 있다   나의 이름이 나를 비껴가고 있다 -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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