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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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본 조선족학 건설
2014년 08월 29일 14시 32분  조회:2475  추천:5  작성자: 안성호
  21세기 초의 오늘날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는 모두 자국의 국학 발전을 다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중 한국의 한국학, 일본의 일본학은 이미 한국과 일본이 각각 자국의 전통문화 연구를 추진하고 해외로 자국의 전통문화를 홍보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역시 학계와 정부 차원에서 모두 국학을 중요시하면서 특히 국가차원에서 해외 공자학원의 발전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바, 이는 그만큼 중국도 자국 전통문화의 부흥과 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절강대학교에서 “중국학”(China Studies)이라는 커리큘럼이 정식으로 개설되어 9월학기부터 개강을 하였다. 이 “중국학” 커리큘럼은 중국내에서 최초로 교육부의 공식 인가를 거쳐 중국 전통적인 “국학”(national studies)과 해외 “한학(Sinology)”, 중국연구(Chinese Studies) 등 학과의 기초상에서 설립된 종합적인 학과이다. 분명 성격상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는 전공학문을 포괄적으로 어우르는  일종의 통합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설된 “중국학” 전공에는 주로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여 전통문화교육을 추진하는바 이는 중국도 중국학 건설에 이미 박차를 가해오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중국학, 한국학, 일본학의 중요한 기능은 전통문화 연구를 추진하고 해외에 대한 홍보를 강화함으로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데 있다. 그 출발점은 모두 국민국가의 문화정책으로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전통문화를 선별하여 그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다.

  조선족학의 건설 목적 또한 조선족 연구의 전체적인 학문적 수준을 높여 조선족 사회를 대변하고 나아가서 조선족 사회를  다른 민족 및 다른 나라로 널리 홍보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조선족사회는 대규모적인 인구이동과 다문화 문화우세를 통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높여오고 있다. 이는 한일 양국 학계에서 조선족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연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학계의 조선족 연구는 아직까지 시대적 변화에 따른 대책연구, 민족지 연구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이론에 대한 탐구 등 보다 심화된 연구가 크게 아쉬운 실정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조선족의 정체성, 문화성격 등 문제를 둘러싸고 중한일 삼국 학계에서 이미 적지 않은 논의와 연구가 있어왔다[1]. 조선족 문화론에 대한 토론을 보면 예컨대 정판룡교수의 “며느리론”, 허명철교수의 “사과배”비유로부터 황유복교수의 조선족문화 독립성에 대한 논술, 김강일교수의 조선족 변연문화계통론에 이르기 까지 감성적인 차원에서 이론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조선족 문화의 함의와 성격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었다[2].

  조선족 문화 성격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 조선족 학계에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내지 못한 실정이다. 사실상 조선족 문화의 성격에 대하여 모두가 공감할수 있는 완정한 학문적 연구결론을 도출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무모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개념 자체가 다양화한 서술방법과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인류학자 클럭혼( Kluckhohn)과 켈리( Kelly)는 “문화는 후천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외면적 및 내면적인 생활양식이며 집단의 전체 성원 또는 특정된 성원에 의하여 공유된 것이다” (Kluckhohn & Kelly 1945:98)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 두 학자는 우리가 일반적인 문화를 하나의 개념으로 서술할 때 인류가 창조하여낸 모든 보물 즉 서적, 그림, 건축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외에도 우리가 인간관계, 사건, 자연환경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지식, 언어, 풍속, 예의범절, 논리, 종교와 도덕 등도 문화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개한 민족”이든 “문명인으로서의 우리들”이든 모두다 문화를 산출하고 있으며 걸출한 예술가이든 평범한 평민이든 모두 문화를 창조 계승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위와 같은 보충설명은 바로 문화가 매우 풍부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어 간단히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의 시각에서 조선족학 건설을 논의할 때 하나의 기본적인 전제로서 “조선족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여 살아오면서 풍부한 문화를 창조, 전승하여 왔다. 하지만 조선족 문화 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것이 언어, 풍속, 무용, 음식 등이다. 이는 확실히 조선족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구성부분임을 필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의 시각에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개념이 필요하다. 조선족 문화를 대표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서 필자는 특히 조선족 문화의 토대가 되는 벼문화를 강조하고 싶다.

  조선족사회는 농업이민사회로서 전통적인 지역사회 공동체는 벼 재배업과 수전을 매개로 형성된 것이다. 1870년대에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족들은 추운 동북지역에서 벼재배에 성공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중국 동북지역 벼농사의 주력군이 되였다(衣保中,2002).1930년대 일본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강제적으로 집단부락정책을 강행하였으며 여러 지역의 조선족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집중시켜 군사화 된 관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집단부락의 주요한 기능의 하나는 여전히 수전개발이었다(郑光日,2010).1937년부터 시작하여 일본은 중국 동북지역에 대규모적인 집단이민을 실시하여 주로 능숙한 벼농사 경험을 갖고 있는 한반도 남부지역 농민들을 모집하여 중국 동북지역 각지에서  수리시설을 건설하고 수전을 개발하였다. 만선척식회사는 1933년부터 1940년에 이르는 7년 사이에 도합 2626000엔을 수전개발에 투자하였다(손춘일 1999:357). 일본의 이러한 통치방식은 조선족의 전통적인 거주지역, 거주형태, 이웃관계 등을 개변시켜 조선족 사회가 혈연(血緣)이 아닌 지연(地緣)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였다. 하지만 조선족 사회의 전통적인 생산방식과 경제양식은 그대로 보전될 수 있었다. 벼농사를 기초로 한 풍속습관, 윤리도덕,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조선족사회가 마을을 단위로 지역사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집단부락이 해체되었으며 격동하는 사회정세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국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족 농촌사회는 지역 사회공동체의 해체와 재구축의 프로세스를 겪게 되었다. 필자의 고증과 현지 조사에 의하면 1940년대 말 여러 조선족 마을들은 사실 조선반도 여러 지역 출신 조선족 농민들의 집합체였다(安成浩,2008:36).한 마을 안에서도 한반도 같은 지역 출신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작은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마을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이질감을 줄이고 마을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연대를 강화하는데 있어서 벼농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약, 비료 등 현대적 농업방식이 도입되기 전에 벼농사는 산출, 수입 등 여러 면에서 중국인 농민들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밭농사를  훨씬 초과하였다. 하지만 같은 조선족 마을 내부에 있어서도 경상도 마을 등 남부 출신 주민을 위주로 형성된 마을을 제외하고는 1940년대까지 모든 촌민들이 다 벼농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후 중국 동북지역의 상당수의 수리시설들이 파괴되어 벼농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지역도 적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수리시설의 복구와 유지, 벼농사의 보급 등에는 모두 집체노동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토지개혁 이후에 시작된 농업 집체화는 벼농사의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40년대 말엽부터 중국 농촌지역에서 진행된 농업 집체화 운동은 조선족 마을 공동체의 재형성에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집체화 시기에 정부와 조선족 간부들의 주도하에 진행된 대대적인 수리 시설 정비 사업과 대규모 노동력의 동원에 의하여 과거에 개간할 수 없었던 많은 황무지들을 수전으로 개간할 수 있었다. 경작지 면적이 증가함에 따라 조선족 마을들의 경제상황이 한층 더 개선되었다. 집체화시기에 여러 지역 출신들로 모여진 조선족 마을 구성원들은 집체노동방식으로 함께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었다. 주위에 한족 등 기타 민족들과 잡거하고 있어 조선족 마을은 상대적으로 폐쇄된 사회문화 환경에 처하여 있었다. 이 가운데서 토지의 집체소유, 생산대의 집체노동을 바탕으로 벼농사 수리 체계를 핵심으로 하는 마을 내부의 지연(地緣) 네트워크와 상호 협조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었다.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공동노동과 이익을 공유하는 집체화 체제는 일찍부터 마을에 살고 있던 구성원들은 물론 외지에서 새로 이사 온 사람들도 재빨리 마을 공동체에 융합되어 갈수 있었다.

  조선족사회의 이러한 역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농업생산기술, 마을 공간 이용과 지연조직형식, 인생통과의례의 내용과 전승방식 등을 포함한 조선족의 전통문화는 전통적인 벼재배 생산방식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으며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벼집 공예로부터 농경무 등 집체무용에 이르기까지 의식주행에는 벼문화의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인구의 대규모적인 이동이 있기 전에 조선족 마을들에서 보통 해마다 한가한 여름철에 운동회를 조직하였다. 마을 운동회는 모든 촌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큰 행사로서 마을 구성원들의 응집력을 제고하고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중요한 계기와 수단 그리고 마당이 되었다. 그네, 널뛰기, 씨름 등 전통항목 경기 활동들은 조선족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마을 구성원들 사이, 그리고 촌민과 마을사이의 응집력을 제고할 수 있었다. 운동회에서 진행되는 집체무용 등 또한 민간예술을 전승하는 동시에 구성원들 사이의 조직 협조 능력을 제고할 수 있었다. 이는 벼농사 과정에서의 집체노동, 조직협조성과 상당한 내재적 관계가 있다.

  1980년대이래 조선족 인구의 국내외적인 대규모 이동과 함께 대다수 사람들이 벼농사를 그만두었으며 조선족사회도 농경사회로부터 산업화 사회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벼문화를 기본 특징으로 하는 기초문화는 사람들의 이동과 산업화에 따라 소실되지 않았다. 조선족사회는 글로벌 인구이동 과정에서 음식문화부터 지연관계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벼문화의 요소들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일본 학자 하라지리 히데키(原尻英樹)교수는 일본, 뉴욕, 서울, 의우(义乌), 청도 등 지역의 조선족 사회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청도 조선족 사회에 대한 현지조사를 마친후 2013년8월16일 필자와의 교류에서 조선족 사회가 글로벌 인구이동과 현지적응 가운데서 응용한 최대의 자원은 전근대적인 사회 네트워크임을 지적하였다. 전근대적인 사회네트워크란 바로 전통적인 친연(親緣) 네트워크와 마을을 기초로 하는 지연 네트워크이다.

  조선족 사회가 중국 도시화 발전에 앞서가고 있지만 벼문화를 기초로 하는 문화는 앞으로도 조선족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역사, 정체성, 인구, 민족교육 등 분야의 연구에 비추어 볼 때 벼문화를 기초로 하는 조선족 민간예술, 민간신앙, 민간예의, 풍속 등 분야의 필드조사, 구술사 연구는 여전히 비교적 빈약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상세한 현지조사와 이에 따른 상세한 기초문화에 대한 연구와 기록 그리고 이러한 기초연구를 전제로 하는 이론 연구가 부족하다. 다만 부분적인 연구 성과가 공백을 메웠을 뿐 백가쟁명에 이르기 까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황이다. 이러한 연구의 결여는 학계에서 조선족 농촌사회 벼문화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 일본 인류학자들은 한국 마을을 찾아 가 현지조사를 하면서 한국 농촌의 제사 등 예의풍속의 상세한 과정을 기록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농촌사회에서는 전승자가 없어 많은 풍속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일본학자들이 기록하여 놓은 현지조사 자료들은 오늘날 한국학계의 새로운 연구 및 한국농촌 사회의 전통문화 再演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족 마을들이 차츰 해체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만약 보다 넓은 범위에서 조선족 문화 조사 기록사업을 하지 않는 다면 우리도 자기의 문화를 기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사회구조가 바뀌고 부분적 농촌마을의 해체가 불가피한 현황에서 벼문화를 기초로 한 조선족 문화는 전승과 발전의 위기를 격고 있다. 이로 인하여 조선족 문화의 기초가 되는 벼문화 연구는  필요성과 긴박감을 지니고 있다.

  지방 정부의 지원과 중시를 받고 있는 조선족 문화예술 (예컨대 농악무를 대표로 하는 여러 부류의 무형문화재들)조차  전승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전승위기는 농경사회가 위축되면서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매체인 지역공동체가 해체의 위기에 처함에 따라 기인된 것이다.

  벼문화를 기점으로 하면 조선족 사회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현재 유행되고 있는 사회네트워크 연구는 지연, 친연 네트워크를 전통적인 농촌사회와 연결시키지 않고 다만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하여 벼문화를 토대로 한 집체 협조의식이 조선족 사회네트워크의 자원화 과정에서 일으키는 적극적인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고도로 되는 산업화를 실현한 한국, 일본은 결코 벼문화를 버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설날에 떡국을 먹고 추석에는 송편을 먹는다. 이는 모두 벼문화에서 기원한 풍속이다. 일본에서도 설날에는 찰떡을 먹으며 벼짚으로 만든 장식품을 집집마다 장식하고 있다. 일본천황 또한 해마다 벼농사를 짓는 전통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그만큼 벼문화가 한국 일본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조선족학의 건설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학 건설의 중요한 학과의 하나인 문화인류학이 현재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록과 정리사업들이다. 그 출발점은 벼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기초문화 연구여야 할 것이다. 기초문화를 강조한다 하여서 현실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도시화에 따른 조선족 사회변동, 도시에 사는 조선족 사회연구는 향후 문화인류학의 중요한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족 기초문화에 대한 연구 축적과 이에 따른 이론적인 탐구가 없다면 이러한 현실문제 연구는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과 그에 따른 대책이라는 정책성 연구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학문적 수준을 제고할 수 없다.
 
참고문헌
김강일,허명철 주필:『중국조선족사회의 문화우세와 발전전략』연길:연변인민출판사,2001년.
손춘일:『만주국의 재만한인에 대한 토지정책 연구』서울:백산자료원,1999년.
안성호:「중국 조선족의 현화」,『한민족 해외동포의 현주소-당사자와 일본 연구자의 목소리』학연문화사,2012년 .
황유복:『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연구』심양:료녕민족출판사,2002년.
허명철:『사과배와 조선족 문화』『연변일보』2006년6월25일。
安成浩:『朝鮮族村落の「生成」と「解体」神戸大学博士論文,2008年。
権香淑:『移动する朝鲜族—エスニック•マイノリティの自己统治』,東京:彩流社,2011年。
金颖:《近代东北水田农业发展史研究》,中国社会科学出版社,2007年版。
衣保中:《近代朝鲜移民与东北地区水田开发史研究》,南京农业大学博士论文,2002年。
郑光日:《日伪时期东北朝鲜族“集团部落”研究》,延边大学博士论文,2010年。
Kluckhohn , C. Kelly , W. H. (1945). The concept of culture. In Linton , R. (Ed.), The science of man in the world crisi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pp. 78-106.
 

[1].안성호 2012참조.
[2].허명철 2006; 황유복 2002:101; 김강일,허명철 2001:7,11 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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