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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장군별이 졌다. 별이 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임을 통감하게 된다.
당중앙이 조남기 장군의 서거를 두고 표출한 정중하고 높은 례우는 조선족 장군에 대한 당과 국가의 두터운 신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어 더더구나 장군에 대한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장군생애에 내린 당중앙의 빛나는 평가에서 필자의 눈을 끈 문구는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였다. 아마도 필자의 머리속에 가장 뚜렷하게 각인됐던 장군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였을가?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 평가를 안받침한 장군의 사상적 근간은 투철하고 확실한 민족관으로 정립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민족을 사랑할 수 없으며 민족의 리더로 된다는 것은 더구나 불가능하다는 게 고금중외의 정설이다. 장군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여러 민족 지도자들이 장군에 대한 한결같은 평가가 “민족에 대한 깊은 감정, 민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다.
장군의 민족감정, 민족사랑이 협애한 민족주의와 엄연히 담을 쌓고 있다는 점을 5년간 장군의 비서로 임직해온 전임 연변 주정협 황삭 주석이 반증한 말로 대신한다 ㅡ
“조선족 지도자로서 그이는 자기 민족의 발전을 지극히 관심하여왔습니다. 늘 자기 민족 간부와 군중의 소원과 애로사항을 있는 그대로 상부에 보고하여 해결을 보군 하였지요. 그이는 늘 이런 말씀을 하군 했답니다. ‘연변은 중국조선족이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 고장이기에 조선족의 제반 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점에 대해 한족동지들은 납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연변은 여러 민족이 공생하는 지역이고 한족 또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도 고루 돌봐야 합니다.’”
투철하고 확실한 민족관을 지녔기에 장군이 조선족의 발전과 관련되는 모든 일에서의 관심과 배려는 정당하였으며 내린 결책은 설득력이 있었고 한족을 비롯한 기타 소수민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연변일보》는 조선문판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리유에 대해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ㅡ 한족간부와 한족군중들은 그래도 《연변일보》한문판 말고도 한문으로 된 여러가지 신문간행물을 볼 수 있지만 조선족은 《연변일보》조선문판이 그들의 유일한 신문이기 때문이다. 조선문판을 위주로 한다는 것은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 연변에서 응당 자치민족의 문자로 된 신문을 앞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며 문화대혁명시기와 그 후의 상당한 시기에 조선문판이 한문판의 번역판으로 된 상황을 개변시키자는 것이다.
장군의 《연변일보》조선문판 위주설은 또 인원편제와 운영자금 면에서 우선 조선문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전제하에 조한문을 고루 돌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민족자치를 실시하는 연변에서 조선족의 발전을 우선시하면서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을 고루 돌본다는 장군의 일관된 ‘조선족 우선’ 당위성과 그 맥락을 함께 하고있다.
오늘날 조선족이 교육, 문화, 라지오TV, 신문출판 등 민족문화 많은 분야에서 국가로부터 받고 있는 우대정책 대부분이 장군의 민족사랑으로 이뤄낸 것이다.
오래동안 장군과 좋은 뉴대관계를 맺고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북경의 한 조선족 유명 학자의 말이다 ㅡ
“소수민족 출신으로서 높은 직위에 올라온 후에는 자기 민족과 접촉하면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조남기 부주석은 그런 개념이 전혀 없는 분이셨다.”
사실 그랬다. 공직에 계실 때나 퇴임하신 후에도 수도나 지방이나 고향마을 조선족들의 그 어떤 주문도 무릇 조선족 발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내색도 내지 않으며 발벗고 나선 장군이셨다. 투철하고 확실한 민족관을 지닌 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였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계산된 꼼수에 전전긍긍하면서 자기 민족의 리익과 발전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자기 민족 문화와 관련된 여건은 수수방관하며 선대들이 구축한 민족문화에 팔짱끼고 강건너 불보듯 하는 일부 조선족간부들의 행태를 우리는 가끔 봐왔다. 남의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으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민족발전에 등을 돌린 개별적인 간부의 행실도 좌시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장군의 민족관에 비춰볼 때 너무나 거리가 멀다. 따져보면 이 같은 행태는 자기 민족에 대한 불충이면서 동시에 당의 민족정책에 대한 불충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족에 대한 장군의 깊은 감정과 따뜻한 사랑에는 조선족의 빛나는 혁명투쟁력사에 대한 자부감, 조선족의 혁명유산을 대대손손 전승해야 한다는 절절함이 스며있다.
장군은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인문경지를 조선족 로세대들이 목숨으로 바꿔온 홍색유전인자로, 중국조선족의 영원한 대물림 긍정적 에너지로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미디어 영상물로 재연시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세우고 계셨다.
1946년부터 1948년 3년간 연변에서 해방군에 참군한 인수는 5만 1000여명, 그 중 조선족이 85%를 차지하며 전쟁터에서 희생된 연변의 혁명렬사는 3000여명으로 조선족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3년 해방전쟁은 중국조선족이 중국인민의 해방위업을 위해 지불한 희생이 가장 많고 지불한 대가가 가장 큰 시기로 되고 있다. 이 불멸의 조선족력사는 줄곧 장군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1993년, 장군은 연변TV방송국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력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조선족이 해방전쟁에서 보여준 비장한 혁명영웅들의 형상을 영상화할 데 대해 지시하면서 저세상으로 간 해방전쟁시기 조선족 혁명렬사와 렬사가족, 해방전쟁에 참가한 모든 로병들 그리고 연변 여러 민족들에게 값진 ‘선물’을 드리자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면서 몸소 영상물의 기획과 설계에 구체적인 지도를 주고 자금마련에도 나섰다. 12집 련속 드라마 《초연 속의 수리개》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그 당시 TV방송국 책임자로 있던 필자에게 있어서 이 드라마의 기획, 설계, 촬영, 제작 전반 과정은 장군의 우리 민족 혁명투쟁력사에 대한 진지한 감정, 희생된 선렬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지척에서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조선족에 대한 장군의 깊은 감정과 따뜻한 사랑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였다. 제작이 완료된 후 미숙한 드라마 견본을 자세히 봐주시고 그처럼 기뻐하시며 구체적인 수정의견을 제시해주시던 장군의 23년 전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장군은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하지만 조선족 불세출 장군이 생애 전반에서 보여준 민족에 대한 깊은 감정과 따뜻한 사랑은 불멸의 정신금자탑으로 되여 우리의 민족관을 쉼없이 정화시켜주리라 믿는다. 장군의 민족정신 영원하리라!
연변일보 20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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