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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의 그 언덕에 세운 기념비
2012년 06월 07일 08시 51분  조회:8787  추천:2  작성자: 최균선
                                    동년의 언덕에 세운 기념비
 
                                                   최 균 선
 
                   기나긴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의 동심이
                                          되살아나
 
                  애시적 한달음
                         달아올라
                                  웨치던 그 언덕에
                                          다시 서서
 
                 높은 산 푸른 숲
                        마주향해
                               손나팔 아ㅡ 오ㅡ
                                       웨쳐보면
 
                어제날을 내 모색
                       알아보았노라 아ㅡ
                               변하지 않았다고
                                      또 다시 오ㅡ
                   
                찾아든 어린 시절
                        내 목소리가
                               동년의 메아리로
                                       울려옵니다.
     이 시는 홍용암시인의 동시집《사슴뿔나무》제8집에《동년의 메아리》의 전문이다. 《사슴뿔나무》는 동년의 그 언덕에 네번째로 세운 기념비이다. 열여섯 소년시기 벌써 동시집《꽃무지개》를 눈부시게 걸어놓고 세월의 비바람속에도 색바랠줄 모르는 파아란 동심에 푹 빠져서 끈덕지게 동시밭을 갈아온 시인으로 말하면 네번째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니나 이처럼 다산시인으로 거듭난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본시집에 절대 대부분의 시들은 시인이 동년시절의 절실한 체험에서 시적종자를 잡아쥐고 창작한것으로서 생활정취가 짙고 동심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진실성에 받들려있는 공명대를 근저로부터 튼튼하게 닦고있음을 인차 감촉할수 있다.
    우선《사슴뿔나무》라는 표지제목이 말해주듯이 시편들마다에 회화성이 짙다는것을 우선 지적해야 하겠다. 보통 이미지로 나타나는 시의 회화성은 동시에서는 특히 귀중한바 홍용암시인의 작품에 일관된 특점이다. 시인은 다양한 심상들을 리용하여 형체가 없거나 추상적인것까지도 구상화하고있다. 얼핏 보면 일상적인 진술같지만 보다 구체화되고 감각화되고 있다데서 더구나 이목을 끈다. 말하자면 서술적 이미지와 비유적이미지의 능란한 결합이 시의 생명인 진실성을 살려나가는데 시종 벋침대로 되고있다는것이다.
    홍용암시인의 시에서 회화성은 시각적이미지외에도 청각적, 미각적, 후각적, 등과 공감각이미지로도 잘 나타나고있다. 많은 시들이 그렇지만《말똥말똥》,《잠이 들었네.》《웃는다.》등을 우선 례로 들수 있다. 《웃는다》의 전문을 흔상해 보자.
엄마는
   벙글써
입으로 웃고
    할머니는
가느스름
    눈으로 웃고
바둑이만
    흔들흔들
꼬리고 웃는다.
   시에서 느낄수 있듯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로 쓰이고있다. 이런 이미지는 그 속에 다른 사상이나 관념을 가지고있지 않기에 순수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에서 짙은 회화성을 감수하게 되면서 한가족의 양상들을 재미있게 그려볼수 있다.아놀드는 시를 인생의 비평이라하였다. 시는 그 속에 어떤 의미를 담고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거의 모든 시가 의미에서 완전히 벗어날수는 없지만 특별히 그 의미를 강조하는 시를 사상성이 짙다고 한다. 홍용암시인의 동시에서 또 다른 특색이라면 바로 동시에 담기가 퍼그나 어려운 사상성이다.
   시창작경향이 언제부터인가 자아감각의 표출로 경향을 잡고있는 현시대에 동시의 사상성을 거론하면 웃을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동시가 경직되다못해 작은 정치나팔로 둔갑했던 그 시기처럼 시에서의 사상성이라면 곧 정치와 련계시키는것은 일종 오해이다. 이른바 시에서의 사상이란 개별적사물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계기들에서의 체험과정에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이라 할수 있다. 그만큼 감정은 사상을 포섭하고 있는 생활의 개별적대상에 대한 정서적표현을 요구한다.
   시의 사상성은 그 어떤 이야기의 대상도 아니며 개념을 밝히려는 추리와 설명의 대상도 아니다. 시의 사상은 시인이 느끼는 정서의 대상, 즉 시적대상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예나제나 훌륭한 동시는 회화성, 음악성과 더불어 사상성을 조화롭게 담고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조국을 사랑합시다.》라는 구호식으로 생경하게 드러나지 말아야 함은 두말할것 없다.
   홍용암시에서 사상은 도식적이 아니라《정서적등가물》로 되여있다. 마치 사과속의 영양분이 겉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먹으면 감칠맛이 나면서 영양가가 인체에 잘 흡수되는것처럼 시의 사상적영양이 내재적으로 어린독자들에게 잘 전달될수 있도록 정서화되여 있다. 동시《아기와 지도》를 음미해보자.
                            내가 그린 조선지도
                            아차 깜박 조는 새에
                            아기가 고무로
                            마구 지워놓았다.
 
                            그만에 정신 번쩍
                            눈 부비고 다시 보니
                            내가 그린 분계선
                            삼팔선이 없어졌다.
                            야! 정말 대단해
                            분단된 조선반도
                            아기가 남북을
                            《통일》시켜놓았다.
 
                            하늘높이 우로 버쩍
                            아기를 추켜들고
                            아기 만세 만만세
                            통일만세 만만세!!!
    우리 민족비극의 상징물인《3.8선》은 력사성을 띤 심각한 국제문제이다. 허나 시인의 그 뼈저린 아픔과 그에서 분출되는 피빛사상이 재치있게 동시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그 어떤 형식의 표현보다 더 처절한 사색을 안겨준다. 시는 철부지아기의 《걸작》을 희극적으로 표현하고있지만 시행속에 흐르는 사상은 그렇듯 눈물겨웁다.   시적대상으로 놓고볼 때 그 무슨 애족의 감정이니 시대정신의 전형화이니 하고 어마어마하게 높이 꿰여들수는 없지만 조선반도의 통일은 백의겨레의 지향과 념원, 의지와 신념이다. 그 사상이 후대양성의 립장에서 아이들에게 전달되고있다.  
   어린이들의 사상감정을 론리적으로 표현해서는 그들의 정신세계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지 못하거니와 동시특유의 서정으로 꽃펴나지 못한다. 동시에서의 서정은 생활과 자연에 대한 열애의 서정이며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서정이며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에로 이끄는 서정이며 심령의 꽃밭을 스스로 알차게 가꾸어가도록 인도 하는 계몽의 서정이여야 할것이다.
    따라서 동시창작에서 아이들의 주도적이거나 본질적인 사상감정을 서정을 통하여 느끼도록 하자면 아이들의 숨결과 정서로 표현해야 한다. 아동생활의 본질과 아동의 아름다운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조명한 동시가 읽을수록 깊은 인상과 감동을 주는것은 아동의 정서세계가 진실한 생활의 정서로 노래되였기때문이다.
    아동의 자주적심미욕구가 발현되는 그 시점에서 다채로운 아동생활정서를 진실하게 노래하는것은 동시문학의 첫번째 사명이라 생각한다. 아동의 다채로운 생활을 노래한다고 해서 과장하고 추단하며 미화분식하는 그 어떤 작법도 동시는 배척한다. 그것은 특히 동시에서 형식주의, 자연주의경향을 낳는 기본조건으로 되는 사정과도 관계된다. 동시에서 자연주의는 아동생활과 동떨어져서 순수 자연만을 찬미하거나 아동생활의 이런저런 현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추구밑에 아동생활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것, 우연적인것과 필연적인것을 분별, 선택하지 않고 아동을 생물학적인 자연으로 간주하면서 마치 아동생활의 본질인듯이 분식하는것을 말한다.
    그러나 홍용암시인의 시작품들에서는 아름답고 변화다단한 자연현상이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생활, 성장하는 인간성과 젖과 물처럼 잘 융화되여있다. 동시《봄비》를 하나의 례로 들수 있다.
        어지러워진
            고까옷때문에
                상심해서
                   애기꽃나무 섧게
                      울고있을 때
         지나가던 봄비가
            그것을 보고
                차분히 내려
                   얼룩진 먼지들을
                           말끔히 닦아준다.
      
    시어서 애기꽃나무는 어린이를 비유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아이들의 천성이 봄비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그속에서 옷이랑 얼룩질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냥 봄비속에서 뛰놀면서 차분히 내리는 봄비속에서 구겨졌던 마음의 주름살들이 반듯하게 펴지는것이다. 이외에도《꽃망울》이라든가《꽃망울과 미풍》등을 훌륭한 실례로 들수 있으나 지면관계로 해석은 략한다. 서정적표현에서 형상적비유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것은 아동생활의 본질을 비유의 대상에 맞게 옳게 형상하는가 외곡되게 형상하는가 하는 심중한 문제이다. 동시는 일상적이고 무의미한 생활세절을 흥미본위로 그리는것이 아니며 글장난식으로 엮어나가는것이 아니다. 홍용암시인은 시적형상화에 아주 능란하다. 《잠이 들었네》와《꿈》등을 전형으로 꼽을수 있겠다.
    홍용암시인은 동시창작에서 흔히 범하게 되고 여간 탐구해서는 초월하기 어려운 도식과 반복, 류사성을 극복하기에 각별히 마음을 쓰면서 독창성과 개성을 살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에서 시인의 독특한 동년시절의 생활경력과 기질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적소재들을 다루는것과 관련되기도 한다. 동시《동생과 배와 비자루 》와《그림》,《아이들과 당콩넝쿨》등이 바로 그렇다고 할수 있다.
   시창작일반이 다 그러하듯이 동시는 아동과 그 생활을 화폭으로 펼져보이지 않는다. 어린이들과 그들의 생활에 대한 강렬한 체험에서 새로운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노래하고싶은 사상적충동과 정서적충격을 가지고 시를 쓰게 된다. 이것은 동시란 그 창작출발점에서 개성적으로, 독창적으로 느낀 사상적이며 정서적인 충동을 주정적으로 서정적으로 펼친다는 설명이 된다.
    동시에서는 시인이 체험한 주정을 아동의 심리각도에서, 어른으로서의 주정을 아동화한 서정으로 표현하는만큼 시인에 의하여 발견된 시적소재가 아동적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참다운 의미에서의 동심의 발로로 되지 못하고만다. 동시에서 서정을 느끼는것은 시인자신이 아니라 어린독자들이다. 만약 시인자신이 제나름으로 아무리 정서적으로 감흥된다 하여도 아동들이 읽어보고 자기의 심미취미와 지향과 어감요구 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시이에서의 진정한 서정으로 될수 없다.
    아동현실생활을 체험하고 느끼는 창작개성이 아이들의 미감과 정서에 맞는 아동성격을 띠여야 하며 생활적으로 의의있고 절실한 정감을 발굴할수 있게 하는 아동적인 관점과 견해, 식견과 립장을 갖춘 성격으로 되여야 한다.. 동시시인이 아동생활에 대한 정서적체험이 없이 일반적표상을 그대로 옮겨놓으면서 류사성을 범하지 않을수 없다.
   성인도 그러하지만 아동은 년령특점, 그 심리활동의 특성으로 하여 자기가 직접 체험하지 못한것에 대해서는 표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직접 체험한것의 표상을 가지고 그려보게 된다. 그리하여 동시창작이 어렵다는것이다. 시인이 아동의 립장에서 생활을 정서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우선 근근히 기존체험으로부터 출발한 일반표상으로 근사하게 그려보기때문에 시가 경직되고 류사성을 범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홍용암시인의 시작품들에서 이 점들이 잘 극복됐다고 볼수는 없다. 
       예술적표현으로서의 서정, 동시의 서정은 현실에 대한 시인의 동심적인 정서적체험의 산물이라는것은 상식이다. 동시는 어린이들의 노래. 아동생활의 노래이지만 아동과 그 생활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는것이 아니라 시인이 그것을 동심적으로 파악 하고 느끼고 융화시킨 사상감정을 구체적인 생활계기에서 정서적으로 토로한것이다. 구체적인 아동생활계기에서 정서적으로 표현되는 동시의 서정은 시인에 의해 고안되거나 시인의 잠재의식 혹은 자기의 동년의 체험을 기점으로 류추하는식으로 정서화하는것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파악은 언제나 감성적, 정서적체험의 느낌으로 진행된다는것은 자명해진다. 그만큼 시에서 아동생활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아동의 능동적인 활동이면서도 의식정도와 심미여하에 의존하게 되는데 년령단계, 심리활동에 대한 파악미 달로 하여 제약을 받지 않을수 없게 된다. 그런데 홍용암시인의 어떤 시들을 이런 제약이 무시된채 주관적념원으로 쓰인때도 있다. 례컨대 동시《삼팔》에서 이렇게 읊조리고있다.               
(상략)                 
                       삼팔 삼팔
                       무엇이 삼팔
                       남북 조선지도에
                      《38분계선》이 삼팔
                       삼팔분계선은
                       온 민족이 울고우는
                       원한의 계선!        (밑줄은 필자의것임)
      이런 결함은 시《내가 만약 꼬마경찰이라면》이나《지구우의 념원》에서도 나타나고있다. 동시에서 시적파악은 아동과 그 생활을 동시적으로 감각하고 아동생활과 밀착된 감정, 의지, 심리를 동심적으로 느껴서 받아들인 정서적체험을 통하여 동시 적감흥과 음률(그것이 외재률이든 내재률이든 막론하고)을 얻는 예술적파악이다. 동시적인 감흥은 아동생활속에서 표현되는 아동의 사상감정을 그것이 살아숨쉬는 모습대로 느끼고 받아안은 시인의 아동화된 정서의 감흥이여야 하며 아동심령세계 에서 일어날수 있는 정서의 률조ㅡ운률이여야 한다.
    시는 체험의 문학이며 정서의 문학이다. 동시도 마찬가지다. 시는 감동적인 사실이나 이야기로부터 창조되는것이 아니다. 이 진리는 동시에도 적용된다. 현실에 있는 대상을 아무리 잘 알고있다하여도 그것이 곧 시적소재인것이 아니며 동시를 창작할수 없는것과 같은 도리이다. 시적파악에서 종자는 아동의 가슴에 서정을 꽃피울수 있는   향상적요소가 뿌리내릴수 있는것으로 잡아야 한다. 시의 종자를 잡음에서 홍용암시인은 비교적 독창성과 개성특징을 보여주고있다. 이 점이 아주 고귀하다.
    아동의 내면세계를 정서로 노래하는 동시문학에서도 전형화의 원칙이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 어린이의것이라도 순수한 감정. 순수한 정서는 전형적인것으로 될수 없다. 말하자면 동시의 서정은 언제나 아동의 사상감정에 맞는것으로 되여야 하며 아동심미세계를 집약적으로 구현한것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감정, 정서체험이 순수한 정서적체험으로 되여서는 안되며 사상적충격에서 기인된 아동적인 정서체험으로 되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 경우 시인자신의 느낌보다 일반화된 아동일반의 정감, 정서로 확대하는것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심화된 정감, 정서의 안받침을 전제로 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서정적일반화에서 체험된 사상감정을 서정화한다는것은 아동들의 심목속에 고유한 사상정서적이며 정수로서의 체험으로 생동한 서정을 얻어낸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례하여 제3집에 동시《베개》가 서정의 일반화가 잘된 시라고 볼수 있다.
                       엄마팔이 내 베개
                              엄마팔 베고 누워
                                     옛날옛적 옛말 듣고
                       어떤 때는
                           아빠무릎 내 베개
                                   아빠무릎 베고 누워
                                           자장가에 취하고
                       어떤 때는
                                 동화책이 내 베개
                                         동화책 베고 누워
                                                 책속 호랑이와 꿈에 놀고
                            어떤 때는
                                   내 두손이 내 베개
                                         엄마아빠 없는 밤
                                               두손 베고 쪽잠 자고…
    시에서 볼수 있듯이 어린이면 누구에게나 있을수 있는 생활이요 누구나 흔히 느낄수 있는 정서이다. 시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감각하고 느끼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감정색채를 발판으로 하여 그것을 서정적으로 일반화함으로써 백, 천을 헤아리도록 하게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 쉽게 다가서고 쉽게 감흥을 안겨주는 훌륭한 시로 된것이다. 일반화가 잘 된 시로서《동년의 랑만》이나《고향》《수염》등을 더 들수 있지만 이로서 략한다.
    문학비평은 옥에 티를 지적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감상문에 그쳐서는 안되며 묵결식의 찬가가 되여서도 안된다는 필자의 평론원칙에서 한마디 더 꼬집고 넘어갈 문제는 동시적시어의 구사이다. 환언한다면 동시로서는 손색을 입히는 성인화된 시어들이다. 례하여《천둥같이》,《호시탐탐》《상심》,《바야흐로》, 《측은해》,《유혹》등은 동시로서는 특히 생경한 느낌을 주고있다. 
    홍용암시인이 시집《사슴뿔나무》를 묶을때는 20대의 인생언덕에 갓올랐을 때라는것을 감안할 때 확실의 그의 문학의 길에서 혁혁한 리정비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창작에서 개성적인 시인으로서의 자기의 미학원칙, 시적발견에서의 예술적파악과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서정, 동시의 서정성을 높이는 요소로서의 시어와 운률, 시적구성의 형태 등면에서 미흡한 점을 제기할수도 있다. 그러나 발전적안목에서 홍용암시인은 전도유망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2006년 6 월 3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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