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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자작시) 넋두리 한마당
2012년 08월 09일 16시 04분
조회:1232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1970 년대 ( 자작시)
넋두리 한마당
사랑의 맹세
짧았던가
깊었던가
첫사랑의 단꿈은
산산히 깨여졌어라
달을 두고 하던 맹세
풀잎에 이슬일줄을
련련하던 순정도
저 하늘에 뜬구름일줄
실망은 눈물에 절어들고
분노가 서리발치던들
탓해서는 무엇하랴
어리석음만 짓씹으리
사랑은 내삶의 주제
그러나 전부는 아니여니
갈라면 가렴아, 아예
아픈 바줄 풀어주리라
1970년 8월 2일
사나이여 사나이다우라
사나이여,
사나이다우라
행여 망석중이로
되지 말어라, 빈다
삶에, 또 사랑에도
내 사나이다웠노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도록
사나이여, 사나이다우라
불행에 고통을 볶아먹어도
사나이답게 씹어삼켰노라고
너를지켜 생활을 사랑하며
살아도 죽어도 사나이다우라
1970년 9월 15일
가난을 짓씹으며
내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어
가난아, 이리 지지리 못났냐
소금한근을, 기름반병조차
살돈도 없이 째진것이더냐
모두가 팍팍한 살림이여도
나처럼은 궁상이 아니여라
까래대신 가마짝 펴고누워
얼핏꾸는 꿈도 먼지투성이
가난이 일컬어 청빈이더냐?
소처럼 사시절을 일하건만
빈석마 돌리는 당나귀처럼
어이 가난만 돌려야 하냐?
1970년 10월 30일
사랑이여, 자유여
사랑, 나직히 외워만봐도
설설끓는 가슴을 울리는,
긴여운 잦아들새도 없이
모든 소중한것 안겨주는,
사랑이 인생의 주제라면
사랑이 없이는 못산다면
내 자유 또한 사랑처럼
버릴수 없는 소중한것이,
향기로운 사랑의 꽃다발
뛰는 가슴에 받아안아도
활짝 열린 자유의 대문
순간이나마 닫을수 없노라
1970년 12월 12일
만가
열일곱 꽃나이에 멋도 모르고
동량골 막치기에 시집을 와서
서덜밭 김매기에 꽃나이 찌들며
화전농의 안해로 살아온 어머니여
조금 살만해져 버덕농사 3년만에
《천지개벽》들이닥쳐 남편을 잃고
눈물도 썩는 설음의 한생을 살다가
드디어 이렇게 총총히 가시는구려
70성상 인생의 갈피갈피마다
피눈물로 적시던 어머니시여!
함박눈 쏟아지는 눈길을 가시니
황혼빛 서러워 해가 졌는가요?
눈덮힌 벌판에서 헤매지 마시고
인제 그 일욕심도 다 접으시고
아버님곁에 고이 잠드시옵소서
한많고 고달팠던 세상을 베시고…
1970년 12월 13일 ( 어머니 장례날)
한밤의 궁상
남들은 어찌 사는지 몰라도
나는 두얼굴로 살아갑니다
낮에는 입술이 웃는 얼굴로
밤에는 량피간 패인 얼굴로
어두워야 어둠속에서 나는
감히 나의 얼굴을 찾습니다
졸음도 조으는 깊은 밤에야
슬픈 나를 찾는 인생입니다
꿈에도 긴장을 다스리는 시국
코고는 소리만이 나의 밤노래
아지랑이 같은 내젊은 희망에
미소할줄도 모르는 목숨입니다
일에지쳐 육신은 노그라져도
공상은 힘없는 날개 퍼덕이고
한숨에 탄식에 절망을 덧실은
내 인생의 쪽배, 물이새는 배
어데로 갈가? 떠나가는 내게는
부는 순풍도 역풍도 따로 없고
돛대도 없이 부러진 삿대도 없이
물결따라 흔들리는 일엽편줍니다
이리갈가? 저리갈가? 안개속이라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흘러갈지
바람처럼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처럼
흐르는 넋이여니 흔적인들 있으랴!
내게도 원래는 희망의 쌍돛대도
어엿차 저어보던 놋대도 있은것을
운명의 암초에 산산이 쪼각날제
아, 나는 모든것 놓쳐버렸습니다.
나는 파경노(破镜奴)이던가
옛꿈은 물거품으로 일렁여도
필부의 시린 가슴에 심장만은
살아서 이렇게 세차게 뛰나니…
1971년 1월 16일
오, 동지여, 동지!
동지!누구나 입가에, 귀전에
걸고다니는 흔하디 흔한 호칭
누구나 다 습관처럼 번지건만
내게는 금구가 된 부름이여라.
《아바이동지》라는 말은 있어도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뜨겁게
×××동지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동무와 동지는 그렇게도 달라라,
끼리끼리 합치고 파렬된 시대에
내게는 “동지”란 말 소중하여라
동지, 이보다 더 숭엄한 호칭이,
이보다 가슴치는 부름 또 있으랴,
동지라 부를 때 느껴질 뜨거움을.
동지라 불러줄 때 솟구는 그 힘을
신뢰와 뭉치는 힘의 상징이기도 한
“동지!” 그 위력을 나는 잘모른다.
허투루 동무란 부름은 가끔 들어도
동지가 없음으로 하여 나는 외롭고
동지라 믿을이가 없어 나는 괴롭다
나를 동지라 불러줄 사람아, 오시라
오오, 동지여,《혁명동지여!》
투쟁시대의 믿음찬 부름이여!
숭엄하던 그 호칭을 끝끝내는
한번 불러보지도 못하고말가?
동지여, 동지!외워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그 부름이여!
혼자서라도 불러,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는 그리운 호칭이여!
1971년 2월 23일
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아아, 나에게는,
낮에 마주치는것, 사람들이여도
무리를 떨어져 고독을 호곡하는
여윈 승냥이같이 앙증맞은 나!
여럿이 사래긴 밭을 기여가도
밭머리에 허술한 허수아비같이
무딘 호미날은 풀을 찍어가도
속으로는 내마음의 터밭만 맨다
개보름쇠듯 쇠는 설명절같은때
더더구나 사람, 사람이 그립다
형제들은 천애이역에, 친척들은
초한지계인 계급계선 지키기에,
내집구들에 가마목도 따스하고
내가슴에 높뛰는 심장도 붉건만
이 실락원에는 라르라만 살아서
참지못한 웨침ㅡ아, 사람이 그립다.
1971년 2월 13일 (음력설)
안해에게 쓰는 시
말은 적고 눈물만 헤픈 안해야
나없는 잠간새 많이도 울었구나
내가 누군지 알고도 맺은 인연에
이제와서 속상했으면 어리석구려
사방천지 몰려드는 기시속에서
저주맞은 라르라같은 내존재에
스스로도 그만 화병에 미칠듯이,
그러나 나도 상처깊은 양이라오
사랑이란 인간의 본성을 비추는
거짓없는 하나의 거울이라 할제
내게서 온갖 결함만 비추련다면
당신도 눈뜨고 속히운 천사인가?
모올래 자주 우시는 그 사연이
필연에 대한 자유의 추구라면
엉성한 사랑의 그믈 찢으리다.
그대의 눈물이 가슴은 울리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국 내 처지에
사랑에서 안식을 찾으려하였던
내가 되우나 어리석었는지 몰라
그러는 나도 내가 넘 불쌍하구려
사랑이란 사랑하며 배우는것인줄
당신과 살면서 차차 알게 되였소
안해여, 그만 그 눈물을 거두시지
눈물이 우리 사랑나무에 단비냐?
안해여, 불러보면 정겨운 그 여음
채사라질새도 없이 내가슴 복판에
아름다운 모닥불을 활활 지펴주고
나를 거듭나게 한줄 당신은 모르지
안해여!혼자있을 때에도 이렇게
조용히 외워보면 봄이오는 남산
진달래 반겨웃듯 내마음 꽃피고
다시 새겨보면 고마움에 눈물겹소
밥짓고 빨래고 내정염을 불태워서,
애엄마가 되시고 화풀이대상이라서,
아니, 아니여, 그래서만이 아니라오
먼먼 인생길 혼자는 못갈 나이기에!
울지마시라, 오늘을 울어도 아픈데
묵은 눈물도 우려내는것은 유감천만
사랑나무는 아픔을 먹고 커간다지만
짜거운 눈물속에서 시들가 저어되요.
1971년 3월 3일
아버지가 된다는것
새 생명이 태여나는것, 그것은
울밑에 당콩심어 당콩이 열리고
호박꽃 피여 애호박이 열리듯이
지극히 당연한 생명의 섭리이다.
아들이 자라 아버지로 되여지고
손자가 다시 아버지로 되는일은
자연스럽고 범상한일, 그렇건만
내게는 아버지란 호칭뿐 아니여라
아버지란 인간기사가 되였다는것,
씨뿌리면 씨뿌린대로 거두겠다는
농부의 마음처럼 안되는 자식농사
이제부터 애모쁘게 지어야 하거늘
싸리긁에 싸리난다고 고아대는데
나처럼 못난새끼오리가 되여질지
나처럼 소궁둥이에 지탑군 될런지
그래서 더욱 막연한 내심사로구나
아버지이면 그저 아버지이시던가?
진실로 아버지다워야 아버지이지
하기에 세상에 아버지들은 많아도
손색없는 아버지는 많지를 않다네,
애비가 영웅이면 아들도 호걸인가
오직 변화만이 절대의 진리인것도
드러내놓고 말못하는 엄혹한 시대
내게는 아버지된것도 또 비애여라
1971년 2월 23일
갓서른
갓서른, 어느덧 속절없이
인생의 반고개에 올라보니
걸어온길 묘망한 꿈길같고
걸어갈길 운무속 소로길요
갓서른은 이제 반생반사인데
내 인생려정에 이 리정비는
고개의 길 내리막을 알림인가
숨은 아니차도 다리는 떨릴건가
나그네의 길에 희망봉은 있으되
바이알수 없어라, 오리무중임에
행불행 겹쳐들 꼬불꼬불 오솔길
굽이굽이 몇굽이나 돌아야 할지
세월은 아쉬움싣고 저만치 갔건만
내가 걸어온 발자국은 흔적도 없네
세월아, 네 가도 희망은 남겨두시라
비난수하는 내마음 설워 못보리라.
나그네야, 네 가는 머나먼 길에는
행운은 멀고 해는 서산에 지리라
찾음을 꼬드기는 없을《无》만이
너를 기다려 동분서주하게 하리라
갓서른은 서러운 나이 아니건만
왕성한 시절 생활의 열매 열리고
그리고 차차차 무르익어 달콤함을
고생많던 너에게 던져주길 바랴냐?
아니오, 아닌것을, 정녕 없구나
나에겐 저 먼 앞에도 이 뒤에도
그리고 상하좌우에도 없구나야,
갓서른, 아쉽고 아쉬운 설흔이여!
1971년 12월 30일
산촌의 여름밤에
개골개골…개애ㅡ골 꼬르륵
합창을 하느라 장밤울어싸도
선창도 없느냐? 중구난방에
도무지 곡조가 맞지 않는구나
여름밤 자지러진 늬들 울음은
내게는 듣그러운 소야곡인데
고달픈 꿈도 하품에 지쳤냐?
나의 잠동무 명상아, 이리 온,
오는듯 가버린 풋살구 내청춘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 걸리누나
농부의 신세면 소박하기나 할걸
허망궁리에 허황함만 안고자냐?
별하나 둘, 셋…삼키고 뱉노라면
우멍눈에 눈물이 찔끔 나올듯이
그러나 한사코 울지는 않겠노라
사나이라면 굳세여야 한다기로…
1972년 7월 11일
고총에 쓰노라
삭풍만 설렁 스쳐가는 산허리에
외로운 무덤하나 살풍경 그렸네.
한때는 알뜰한 손길 보듬었을가
지금은 마른잡초만 엉성하구려
죽어서 고이 묻힐때는 효자현손들
눈물로 봉분을 흠뿍이 적셨으련만
지금은 차디찬 망각의 비바람속에
두번다시 버리운 넋이 되여졌는가!
묻자오니, 누우셨는가? 잠드셨는가?
평생을 선행해 적덕하신 분이던가?
일세영달하여 부귀공명 누렸는가?
악명높아 천고저주를 맞은이신가?
앞뒤로 비문을 읽어도 알수 없어라
영화로웠던들, 루루평생 민초였던들
옛그날 가고 흥망성쇠 있는듯 만듯
인생일사에 모든것이 부질없음이여!
애석하구나, 잡초만 묵은 흙무지로
쓸쓸한 갈바람에 락엽만 날리누나
임자잃은 무덤이여, 쓸쓸한 고총이여,
누구에겐들 북망산풍경이 다를가만…
1972년 11월 5일
희망아, 가지마!!!
오, 내게 희망이란 무엇인가?
무주공산 오솔길에 반딧불이?
나그네의 휘청이는 먼 밤길에
동화같은 농가집 창문에 등불?
쫓아가면 도망칠 얄미운 그림자?
체념하면 제좋아 감겨드는 유혹?
가난한자 주은 한쪼각 굳은빵처럼
나에게는 희망이 인생의 찐빵이다.
빵처럼 청춘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비틀기도 하고
호을호을 아지랑이 같기도한 희망…
오, 그래도 희망아, 내게서 떠나지마!
1972년 12월 17일
내 비료를 줏노라
푸름한 새벽이면 새벽마다에
나 젊은아바이가 비료를 줏다
굵은 새끼로 허리 찔끈 동이고
개털모자 나귀귀처럼 펄럭이며
내게는 모범사원 인연이 없어도
줏노라, 마을의 골목골목을 기웃,
지짐이떡같은 마른소똥도 줏고
둥글둥글 언돼지똥도 주어담고…
엽전인듯 한알한알 주어담는 나를
친구들 껄렁하다 비웃기도 하리라
새벽단잠을 똥덩이에 뺏기는 꼴을,
그러나《사상》도 줏는줄 모르지?
비료는 증산의 확실한 보증이라고
량식은 귀중한 사회물질재부라고
그것은 사회주의혁명의 토대라고
보기에 루추한 행동은 고상하다고
아니, 나는 그런 고상한것을 모른다
알고싶지 않거니와 인연이 없기에,
내 비료철학은 더많이 더많이 모아
한공이라도 더 올리려는것뿐이니라
자의식과 목적의지의 옳은 판단에
나는 새벽같이 새벽을 마중나가며
《비료산》을 쌓는 잔재미를 줏는다
제멋에 산다는 싱거운 오기도 아녀
룡정의 골목골목 변소마다 쳤을라니
언인분수레 몰며도 가슴은 높일라니
시내친구의 찬눈길도 피하지 않거니
마을서 줏는 비료쯤은 웃으며 줏노라
1978년 2월 8일
통곡하라
통곡하라, 통곡해도 뼈저리게,
참회하라, 스스로를 잃어버린
너의 그 모든것들을 뒤번지며
참으로 절통하옵거든 통곡하라
원래도 하찮던 너의 명예라도
아초 세우지 못한 존엄이라도
산산이 깨여져버린 꿈일지라도
황소의 영각같이 으앙-통곡하라
평범하나 진실을 살라려했다면
찾을것,굽히지말것, 싸울것을!
생명의 왕성기도 그렇게 병들어
인생의 오솔길에 마냥 헤매는 너
실락원의 실락자여, 너, 라르라여
나날의 퇴적ㅡ생활의 두엄무지에
주저앉아 통곡하니 늦어버렸구나
가슴을 후비듯이 처절히 서러워도,
벗어든 발 강을 건너기 두려우랴
이제 잿물에 세번 삼긴들 어떠랴
쓴맛도 습관되면 쓴줄을 모르나니
차렷!눈들어 멀리보며 앞으로갓!
1973년 2.26
기다리자!
오늘이 못견디게 괴롭더라도
기다리자 ! 참고이기는 인내가,
운명과 씨름하는 인고의 한이,
나로서 살아가는 기술아니냐?
나무밑에 앉아 토끼를 기다림도
태공의 곧은 낚시질도 아니여라
게으름없이 노량 자기를 준비할제
야박한 운명신도 널보고는 있으리
때는 와서 기회님이 너를 부를 때
가라지같이 속없는 너의 존재라면
너 스스로를 탓하며 무릎을 치리라
스스로 돕는자를 하늘도 돕는다거늘
1972년 7월 5일
비내리는 두렁길
비가 내리누나, 나무얼레빗에
빗살같은 비 줄줄이 내리누나
맨발에 삽자루를 지팽이 삼고
미끄러운 논둑길을 휘뚱-휘뚱
《푸름한 새벽에 해지는 저녁에
논물을 보살피며 다니던 논둑이
얼마더냐 》신나도 나는 무감동,
노래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기에…
내가 알고 내가 해놓는 일이란
이른 봄에 이 논판을 갈아엎고
저 논답에 써레놓고 번지치고
쪽지게로 모단이나 지어나르고…
내 얼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비물인지 눈물인지도 잘모른다
논코마다 떨어지는 저 논물처럼
뚤렁-뚤렁 눈물방울 떨어질라나
비내리는 허허 논벌에 뻗어나간
가로세로 얽힌 가르마 논둑길은
갈래갈래 나의 인생길 같은건가
내가 걷는가, 내혼이 걷는거냐?
어정어정, 건정건정, 주춤-주춤
이길로 갈가 저 내둑으로 갈가?
사는게 이리도 멋없이 힘들어도
한가할세라 늘 분주스런 나그네
앞에 오는 비는 비가 아니더냐?
뒤에 내리는 비물은 비물아니냐?
비내리는데 아무도 없는 논둑길
혼자 헤매도는 나는 누구이신가?
작달비 억수로 내려야 쉬는 날은
두세곳 논도랑에 고기채발을 놓고
도롱이에 삿갓쓰고 부른듯이 간다
미꾸라지야, 부디 많이만 내려다오
1972년 9월 18
아들아,
한번 나직히 불러를 보아도
봄눈녹듯 만시름이 풀어지고
망울진 일백꽃이 피여나듯이
기쁨이 절로 웃음으로 터진다.
아들아, 다시 소리쳐 부르면
장강 굽이치는 세찬 물결처럼
내가슴에서 인고의 한과 감내
줄기차게 흘러서 넘치는구나
귀염둥이, 보배둥이, 사랑둥이
얼싸춤이 더덩실 절로 나누나
금돌, 은돌로 쌓은 사랑의 탑
너는야, 내희망의 샛별이란다.
농부의 아들로 태여난 너이지만
나의 분신, 나의 넋, 나의 일체
오로지 너 하나를 위한 촉망으로
살리라, 아무리 고달파도 억차게.
처녀지에 심은 첫사랑의 씨앗이
단열매로 맺혔거니 잘 자라거라
미루어 축복하는 간절한 마음에
부성애가 강물처럼 굽이치누나
1973년 2월 10일 (음력 1월 14일)
용기야, 함께 가자!
청춘은 말이 없고
사랑도 막 시들어
황혼빛 설운 그림자
끌면서 홀로바장이다
노래도 편을 가르는때
몰래 남몰래 외워보는
서글픈 노래 내게 있다
노래아닌 인생의 하소연,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사나이 가슴속에
눈물이 어렸다…
서리서리 정한도 즈려밟고
방울방울 눈물도 삼키면서
어둠의 저 끝, 새벽을 향해
용기야, 떨지말고 그냥가자,
1973년 2월 26일
샘물가에서
아동공정 찾아 더덜털 50리 도보길
길섶 반가운 샘물에 갈한목 잠근다.
용용 애쓰며 솟아 쬐끔 고인 샘물을
어제밤 노루사슴네가 달게 마셨을가 ?
작은 땅구멍으로 샘솟는 정갈한 샘물
욕심이 만약 더 깊게, 넓게 파헤치면
지하수되여 콸콸 용솟으련만, 그때는
샘물이 아니라 실개울이 되여 흐르리
옳거니와, 사람의 감정의 왕국에서도
묵은 옛 감정을 꼬치꼬치 파헤친다면
더더욱 증대되는 정서의 흐린 흐름은
숲을 가르고 조약돌 굴리며 고패치리
바라건대는, 다치지 말지어다. 기쁘게
알맞춤솟아 차분히 찰찰히 넘치는것을,
아서라, 어지러운 뭇손길들아, 멈춰라!
샘물은 제멋대로 솟아서 맑기만한데이
우리 어이 알리, 지심깊은 곳 그 어디서
암층도 뚫고 실개천이루는 미쁜 마음을,
다욕이여, 이만하면 언제건 기껏마시고
거울도 되여 먼지손 씻을수도 있는것을,
그대여, 저같이 용솟는 내사랑의 샘터에
아직도 무엇이 모자라 그리도 불만인가?
밤낮으로 식을줄 모르는 정열의 불가마
너무 뜨거워서 분에 넘친다는 불평인가?
바가지에 물이 차면 흐르지 않더이까?
샘물도 솟아서 고여서 넘치면 흐르나니
예전에 흘러버린 그 샘마저 되돌리려나?
굳어진 과거는 깨보아야 부서질뿐이거늘
샘물은 흐려놓아도 이제 금방 다시
흙감탱이 갈앉히고 맑은거울 하나로
네얼굴, 내얼굴 두얼굴을 비출것인데
정감도 흐렸다 맑아지는 샘물같아야…
1973년 5월 12일
과거사 못잊게소
하도나 못생긴 내 인생살이여서
어스름 깃든 강기슭 버들숲에서
내청춘이 절로도 넘 불쌍해져서
울었소, 소리쳤소, 가슴터지도록
남들은 모르나니 내령혼의 아픔을,
세월의 숫돌에 갈리면 닳아버릴가
참으로 가슴이 찢기는듯 괴롭건만
운다고 발버둥친다고 누가알리요
말마소, 내게도 잊고싶은 과거날에
꿈결같은 푸른 희망이 푸득거렸소
청춘의 정열도 설설설 끓어번져서
자기다운 인생설계에 밤도 새웠소
해는 예이제 동산에 솟아오르기에
래일에 대한 희망의 실날 이어가오
사나이눈물은 눈에 난 물이 아니라
방울방울이 심장서 흘러나온 피라오.
1973년 (양력설)
내감정의 건반은
늘 함께 있어서 권태롭기보다는
보고싶어 그리운것이 더 나으리
이렇듯 잠간의 리별은 서로에게
애틋하던 정을 찾아주기도 하리
화려한 새것도 오래가면 색바래고
노상 먹으면 이밥도 물내난다하듯
꿈같은 향락도 곧 시들해지오리라
습관처럼 되여진 부부사랑도 같제,
떨어져서 사는 그 얼마 동안만은
지나간 모든것 새삼스레 소중하리
슴슴한 애정극도 재연하면 각별해
또 다른 느낌이 반성을 불러오리다
그리움의 저 너머에서 좋았었던
가지가지 일들이 노여움을 씻고
함께 하였던 사소한 불평불만도
인륜지락임을 깨친듯이 알리오리
있는대로 들어내여 빈헛간처럼
마음의 골방을 다 비우지 말고
먼지낀 감정의 건반위 두드리며
추억의 노래를 연주해 보시라예,
때로는 폭포처럼 쏟아지던 정열
때로는 잔잔한 호수같이 깊으리
부부란 만나서 함께 울고웃으며
결말없는 산문시를 지어야겠지요
잘있소, 잘가세요, 인사도 덤덤히
손한번 휙 젓고 그렇게 떠나와서
여기 공사장숙소 찬구들에 누우니
내아들과 당신 내곁에 따뜻하구려
1973년 5월 20일
장인강에 흘려버린 시조가락
뉘라서 반고만이 천재개벽 했다더냐
상전이 벽해됨도 우리 손에 달렸거니
강물을 척 가로막아 인공호수 만드노라.
인중이 승천이라 못해낼일 없는고야
높아가는 언제우에 천군만마 비등하네
장인강 생명수되여 평강벌을 적시리라
산과물 다스리니 우공이산 따로있냐
장인골 골어귀에 만년대계 일어선다
오호라 상전벽해가 여기서 시작되네
열혈의 청년들이 땀을 쏟는 저수공정
그대로 렬화속에 금강들이 모였도다
그언제 다시 온다면 감구지회 깊으리라
1973년 6월 10
농가의 점경
어슬녘, 하지쳐버린 발길로
더털털 일밭에서 돌아오면
불밝은 창가에 고운아가놈
반가워라 고사리손 흔들고
땀흘리며 사는 보람이신가
꽃밥통에 수북한 이밥내음
배부름의 인간상정 부르고
토장국에 피곤도 싹풀어져.
이런 장면에 행복할게라고
얼추 쓴 이글 전원목가라고
유감이여, 전원목가는 애초
농부님네 몫이 아니였거늘…
모내기 성수난다는 노래가락
신나는지 싱거운지 나는몰라
터밭오이처럼 자라는 내아들
안개낀 장래에 담배만 풀-풀…
1973년 10월 7일
설날의 헌시
어찌 명절을 맞을때만이랴
혈친들이여, 천애이역으로
사랑찬 말로 축복을 보냄이
종지부없는 헌시를 엮어감이
어찌타 떨어져 살아서만이랴
한핏줄은 숙명처럼 끈끈한것
그리움의 여울목 세찬물결에
붓을 적셔서 헌시를 쓰는것이,
아니노라, 나날이 또 시시로
씨알마냥 사랑을 무르익히고
다함이 없는 혈육의정때문에
눈물도 글썽, 이리도 헤퍼서…
세월은 무정,무정하게 흘러도
사람은 모르는 그새 늙어가도
한어머니 젖을 먹고자란 우리
하루도 잊으면 가슴비는 우리
형제는 수족같다고 하였거늘
형제애 어찌 린색할수 있으랴
형제자매여, 정나미도는 부름
내가슴에 정찬노래를 새기거늘
혈육들이여, 이러한 우리 사랑을
자랑하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인생의 망망고해를 언제나 함께
어엿차, 한결같이 노를 저어가자.
1974년 12월 30 일
말파리야, 달려라
《북국의 풍광 천리에 얼음얼고
만리에 눈날리네…》를 떠올리며
만주, 천리설원에 달리는 말파리
흩날리는 눈가루는 꽃보라인가
락조도 은빛으로 부서지누나
달려라, 고동마, 내마음 급하다
그 옛날 말갈인의 채찍소리에
천년 동토대가 가슴헤쳤던가?
들뛰는 철혈 고구려무사들의
말발굽에 채운을 휘감았을가
어스름 재촉하는 황혼속에서
력사도 속절없이 저믈었으리
사연 많은 흑토지대여, 너는
흰옷의 개척민들을 기억하냐?
남이랴, 북이랴 아득한 만주벌
가도가도 망망한 빙설의 천리길
그젯날 망국의 서러운 무리들이
찍은 발자국 눈물겨워 생각난다.
1975년 1월 18일 (북안ㅡ 극동)
나는 바보인가
때때로 스스로에 우문이 있어
“나는 타고난 바보이였던가? ”
짓밟힌 자존이 항변하는 우답
“아닐걸, 못생긴 새끼오리일뿐”
우문우답에 앙금처럼 갈앉는 정한ㅡ
나더러 선택은 자유라고 하지마라
노새는 자유선택을 알고 태여났냐?
그러나 나는 재수없는 노새 아니다.
인간에게 참을수 없는 슬픔이 있다면
소외당한 시대의 페물이 되는 일이리
우연히 이 세상에 길손으로 왔건만은
왜들 모두 필연의 출생이라 탓하는가
1975년 2월 26일
산향의 소야곡
구름을 헤치며 달리는 둥근달아래
록파만경 잔물결이는 문전옥답에서
우썩우썩 벼포기들이 아지차는소리
촐랑촐랑 논코의 물소리도 청량하다
밤바람 스쳐가는 저 논답마다에서
소곤소곤 벼포기 속삭이는 소리에
개구리합창단도 귀들을 기울이는듯
푸른 달빛만 고요를 보듬고있어라
노닥노닥기운 덧저고리같던 논판
네모번듯 원전화의 논을 만들때에
언땅도 녹여내던 우리네 구슬땀이
이 밤의 서정을 이어가는게 아니랴
땀으로 걸구어온 논벌이 말한다
하얗게 피여나는 벼꽃이 노래한다
농부일생 무한이여 그 수고로움을
땅이 보증선다. 하늘님이 알고있다.
밤은 깊어서 깊어지고 별빛 고요해
삼라만상도 쥐나라에 잠들어버리고
농가의 처마끝에 새벽이 걸리는데
나의 이 소야곡은 잠기를 몰라하네
1975년 8월 15일
록음이여, 방초여
농부가 쉬는 날은 예이제
강가나 산밖에 더 있으랴
나는 누가 부르기나 한듯
허위허위 늪더기를 오른다
아들놈 돌멩이처럼 붙안고
초개덕이 오솔길 굽이잣아
모아산기슭 잔솔밭 찾아서
두다리 퍼더버리고 앉는다
가쁜숨 몰아낼새도 없이 후ㅡ
담배연기 굴뚝처럼 뿜어내고
산하ㅡ넓은 세전벌 굽어보니
벌판가득 무르녹는 록음이여!
여기엔 철없는 환상도 없고
여기엔 시들한 절망도 없고
공연히 목대세운 파벌싸움도
피를 부르는 무단투쟁도 없다.
오직 한창인 대자연의 잔치와
성숙을 재촉하는 정열이 있다.
마른가슴 푸른빛으로 물들고
일만가지 욕망이 푸덕거리는…
그렇다, 나는 예서 참되고 참된
인성을 되찾아보고 재확인한다
오, 푸르싱싱한 대자연의 정화여!
흐드러진 록음방초여! 승화시여!
1976년 6월 10일
통운이 트도다
체념에도 리유가 없으랴만
기다림은 인생의 예술인듯,
끈진자는 운명도 알아준듯
통운이 튼다. 내게, 드디어!
사람은 옛인연 없지 못할것이,
우연히 만나 성심껏 천거하니
서에서 조력하고 동에서 응하네
ㅡ지성인인 김시룡아바이 고맙수다.
뒤몰리기만 하던 못난새끼오리가
히야! 탈태환골해 백조가 될라시네
새봄깃든 강산에 채운이 비꼈네
바야흐로 두나래펴고 훨훨 날으리
남아 서른다섯, 잃어버린 반생이여!
늦게나마도 소원성취하게 되였으니
운명의 신을 원망할가, 껴안을건가?
생활을 저 끝까지 옹호하며 살리라
세월이 하좋아져 시세를 잘 타거늘
내 꿈에도 바라던 교편을 잡으리라
아, 운명은 얄궂으냐? 공정한거냐?
그동안 나와 롱담이랑을 하였더냐?
1977년 2월 15일
영예의 교단에 올라
동란의 10년, 쑥밭이 되여버린
교육의 동산에 새봄은 좋아라
드디어 영예의 교단에 오르나니
민반교원이면 어떠랴, 가슴벅차!
오랜세월 지탑잡던 투박한 손에
숙망의 분필한대 비스듬 잡아쥐고
칠판에 내이름 석자를 정히 쓴다
드믈긴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ㅡ
그리고 각별하게 고른 내 첫마디가
《학생동무들, 오늘부터 저와 함께
묵어있던 교육의 터밭을 갈아봅시다
-굴레벗었던 들말들이 씨-익 웃는다.
동무들, 아는것이 힘이겠지요? 너무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진 시들한 표정들…
그러나 인생을 준비하는 학생동무들은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것입니다. 》
그리고 밤새워 쓴 서툰 교안을 펼쳤다
나의 교육의 첫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의 후반생의 전환점인 영성중학교여!
백발성성하도록 이 교단에서 살아가리라
1977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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