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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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밀림의 련가
2012년 12월 09일 07시 26분  조회:11538  추천:1  작성자: 최균선
                                          밀림의 련가
 
                            ㅡ생각하는 인생은 희극이요
                                느끼는 인생은 비극이여라ㅡ
 
                                           최 균 선
 
                              나는 운명과 박투하며 살았네.
                              자국자국 한과 눈물로 찍어온
                              가시밭속 서러운 나의 인생길
                              돌이켜 생각하니 가슴 저리네
      
                              나는 운명에 도전하며 살았네
                              사나운  비바람에 휘둘리우며
                              지그재그로 걸어온 내 인생길
                              이제다시 가라면 나는 못가네
 
                                         1. 고동하의 달밤
 
    뿡ㅡ덜커덩, 칙ㅡ푹…
    목재를 실어나르는 가소린차는 드디어 팔가자역을 떠나 좁고 구불구불한 소철길을 호똘거리며 고동하림장으로 달리기시작했다. 이렇게 위태위태하게 달리는 기차는 처음 타보는지라 기분이 별로였다. 화집령을 바라고 산굽이를 기여오르는 기차는 더구나 꿈떴다. 차창으로 울창해진 삼림의 정경이 환영처럼 스쳐갔다.
    목재판이란 어떤곳인지…어른들 말로는 사지판이라 하는데 힘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는것만은 알것같다. 그런 사지판으로 좋아서 가는것이 아니지만 가야 한다니까 울며겨자먹기로 가는판이다. 하긴 모아툰에 이사를 와서 든 집값 180원을 그냥 물지 못해서 원집주인 엄동기가 하루같이 성화를 대는 판에 차라리 목재돈을 벌어다 탁 둘러메치고싶은 역반적인 심정이기도 하였다.
    자그만한 차바곤은 선발대로 들어가는 목재군들의 걸걸한 롱담, 욕지거리로 떠들썩했다. 팔가자역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말을 걸어오던 거구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50대의 령감이 내앞에 앉아 련신 곰방대만 빨고있다가 침을 찍 내뱉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ㅡ애, 긍께이제 니가 목재판 일할러 간다끼가? 허허 요상허디, 늬 열여덜이라고예? 늬 아부지두 답답한 량반일다, 뭐라꼬? 아부지 없다고? 그라모 늬는 고생문 단단히 열렸구마이, 늬같은 종내기가 우예 목재판 다 간다꼬 덤비치기가? 아, 이 내옆에 얼라도 늬맹키로 어리지만 밥하러 가능기라. 아따 사정이 그캐도 한창 공부할 나이에 만다꼬 가노? 늬들은 다 몬갈곳이구머이,…허허, 참…
    전라도사투리인지 경상도말투인지 한마디 건너 알아들을수는 없어도 성미가 걸걸한 령감님이 관심조로 하는 말인줄은 가슴에 뜨겁게 안겨왔다.
    ㅡ 고맙수꾸마, 관심해주어서…저 그런데 어른앞에서 담배피워도 되겠수꾸마?
    ㅡ 아, 긍께 늬고향은 함북도인가베…말끝마다 꾸마랑게 뭔말이꼬? 암튼 니캉 내캉 인자 다같은 목재군잉게 뭐 갠타. 피우거라이, 내사 좀 잘란다.
   령감은 곰방대통을 담배주머니에 넣고는 왕방울같은 눈을 꾹 감더니 잠을 청하는 모양이였다. 그냥 령감곁을 떠나지 않고있다가 차에 올라서도 령감곁에 앉은 낯모를 처녀가 내가 못알아듣는 말을 해석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간접적으로 안면이 트이게 되였다. 초면에 처녀와 허투루 말을 건네는게 실례이겠지만 같이 노가다판으로 들어가는 신세인지라 마음에 가까이 다가선다.
    ㅡ 이분 말씀을 나는 잘 못알아듣겠던데 동무는 어떻게 그리 잘…
    ㅡ 우리 웃집에 사는 아바임다. 그냥 들어서 잘 알아듣슴다
    ㅡ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목재판에 가게 되였소?
    ㅡ 동녀라고 불러도 됨다, 그렇게 된 사정이 있어요. 말하기는 저…
    나는 말끝을 흐리는 처녀에게 캐묻는게 실례인것 같아서 말을 사렸다. 그녀는 나를 직시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더없이 부드럽고 순수하고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여 있었고 치렁치렁한 량태머리는 중들이 가슴에 늘어뜨린 념주처럼 가슴의 볼록한 곳을 가리우있었다. 아직 활짝 핀 얼굴은 아니지만 고요하고 아름다워 순수한 자연미가 너무너무 보기좋았다.
    열덟살이나 되였을가? 얼굴이 하도 해맑아서 농촌태생이라고 믿기가 어려울만 큼 청초하였다. 새초롬해진듯 꼭 다물린 입술, 량볼에 볼우물을 파며 웃을때면 머루 알같은 눈이 먼저 웃었고 눈속에 티없이 맑은 순정이 흘러넘쳤다. 이런 생김새는 단순한 녀인들의 특징을 보여주는듯했지만 진주가 녹아흐르는 듯한 눈에서 내비치는 은연한 빛은 나이보다 너무 일찍 숙성한 처녀애라는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그린듯이 아릿다운 한 처녀의 모습이 눈이라는 창문을 거쳐 내마음의 골방에 통채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런걸 첫눈에 정들었다고 하는것일가?… 
    기차가 다시 꽥ㅡ하고 멱따는 소리를 내는걸 보니 림장조도실(调度室)이 있는 고동하역에 도착한 모양이였다. 목재군들이 수선수선 이불짐서껀 둘레메고 내릴차비를 하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대약진때 인수거도로 유명해진 화집령이 저 만치 보이고 물도 흘러보지 못한 거도가 죽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수림속에로 숨어들었고 동쪽으로 훤히 열린 개활지대에 새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남도령감이랑 목수일을 할줄 아는 장정들은 고동하에서 서북으로 뻗은 소철길 을 따라 70리를 더 들어가고 새초를 베기 위해 남은 우리는 풍막도 치고 화식칸으로 쓸 간이건물도 짓느라 서둘러댔다. 어느새 팔월의 긴긴 해가 저물고 고동하기슭에 밤의 장막이 드리우는듯 싶더니 보름께 달이 화집령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저녁을 대충 얻어먹은 나는 목이멘듯 주절대는 고동하에 발을 잠그고 유일하게 다루는 퉁소로 한곡조 넘기다가 제풀에 싱거워서 그만두었다. 스스로 무슨 목가적기분을 돋구려는것은 아니고 그저 혼자의 애원성이고 밸풀이로 내뿜는 소리이다.
    늦여름 시들해진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밀림의 밤의 소야곡으로는 더 좋았기때문이다. 맑은 물결에 별들이 튕기고 바위숲에 부엉이가 고독을 울어싸고있는 고동하의 달밤은 쓸쓸하였다. 밀림을 비추는 달빛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어둑어둑한 숲뒤의 봉우리들은 “가둘양차”라고 하던 말을 증명해주는듯 사면팔방에 첩첩하다…
    이튿날 낫이랑 내주었지만 산판에 도착하면 준다던 로동신은 언제 주려는지 주지 않았다. 헝겊신 하나를 달랑 신고 떠난 나는 맨발로 새판에 들어서지 않을수 없었다. 아침녁 발이 선뜩한것은 둘째치고 굵고 징글맞은 미추리가 어찌나 많은지 휘두르는 낫에 허리가 동강나 꿈틀거렸고 며칠전에 베여놓은것을 묶을때도 풀밑에 똬리를 틀고있어서 기겁초풍할 지경이였다.
      그렇게 열흘쯤 견디다 못해 광신대대에서 왔다는 두젊은친구들과 의논이 맞아서 도망길에 올랐다. 화집령에서 룡수평역까지 하루에 대였다. 그렇게 도망쳐나왔지만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걱정처럼 천대장이 그밤으로 사원대회를 열고 목재전선 의 “도주병”이라며 한바탕 닦아세우는 바람에 이틀후 다시 집을 떠났다. 팔가자에 도착하니 방정맞게도 며칠전 폭우에 고동하로 들어가는 소철길이 끊겼다고 했다.
    야단이 났다. 주머니엔 얼마간의 잔돈이 남았는데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잔단말인가? 해가 거의 질무렵까지 길거리에서 속을 태우다가 목재지휘부로 찾아들 어갔다. 마침 나와같이 도망쳤던 친구도 하나 와있었다. 지휘부에서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사발을 퍼붓는데는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였다.
    ㅡ네가 도망쳤단 그 자식이냐? 너희들 도대체 무슨 사람이야? 어디라구 함부로 도망친단 말이야? 지금은 옛날 목재판이 아니라 목재생산제1선이란 말이다. 오늘은 초대소에서 자고 래일 생산대로 돌아가라, 마침 각생산대에서 목재소 한마리씩 먼저 들여보내게 되였어, 너희들이 생산대의 목재소를 몰고들어갈 임무를 맡으면 되겠어, 립공속죄도 할겸말이야, 다시 도망쳐봐, 아예 감옥에 처넣고 말테니…
    죄지은놈이 무슨 할말이 있으랴! 이튿날 생산대에 돌아와서 목재지휘부의 명령을 말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통지를 받고 소를 몰고갈 사람을 고르는 중이라면서 차라리 잘되였다고 하였다. 한이틀 엄마곁에서 자고 사흘째 되던날 이른아침, 이틀분 사료랑, 이불짐이랑 쳐맨 소두마리를 몰고 마을을 떠났다…
 
                                                 2. 심산의 밤길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던 그 시절을 산 사람들치고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요 먼먼 밤길을 걸으면서 다리뼈가 맏아들이라는 속담의 뜻을 몸으로 터득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게다. 그러나 나의 밤길은 례사 밤길이 아니다. 혹떼러갔다가 혹을 붙인격이랄가? 아니면 도망친 업보인가? 밤길에도 산속의 밤길,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운 밤길을 가는 체험은 참으로 각별하였다.
    여드레 팔십리라 둥글이는 과시 량반걸음을 하였다. 룡수평서 하루밤 묵고 다시 화집령을 넘어 사흘째 되던날, 고동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판을 향해 길을 재우쳤다. 서북쪽으로 옛소철길을 따라70리쯤 가면 우리 공사의 산판이 나진다고 해서 소들을 채질했지만 길은 축나지 않고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몇십리나 걸었는지 가고가도 산판에 등불은 보이지 않고 어둠만 이 천고의 밀림을 무겁게 휩싸고있었다.
    안내할 이도 없었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가다가는 서고 주밋거리다가 다시 걷노라니 흐릿한 밤하늘인지라 남쪽도 알수 없고 북쪽도 알수 없고 몇리나 남았는지도 알수 없는 외가닥길만 숨박곡질하듯 어둠속에 숨어버리였다. 그냥 갈가? 그래도 한걸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무시무시한 밀림의 밤, 그 고요와 적막함과 으스스 등곬을 파고내리는 공포의 전률은 생전 처음이였다.
    그런대로 힘센 둥글이만 믿고 불안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멀리 수림사이로 한오리 불빛이 새여나와 내눈에 닿았다. 천만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을 쥐여짜면서도 시름은 여전히 바장거리였다. 고요하면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면 더구나 적막한 법이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속에 고요가 뒤따라서고 어둠속에서 움직이며 움직이는것으로 희망의 등불을 부르며 허둥지둥 앞으로 걸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고 하였지만 누군가 걸어서 길이 생겼거늘 막다른 골목에야 이르랴싶었다. 길을 알지 못하여 길이 헛갈렸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발길 시키는대로 소궁둥이에 희망을 얹고 마음이 앞서달렸다. 절망하지 않으면 다른 골령에 들어섰 더라도 다시 돌아나오면 될것이다. 마침내 무주공산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지지 않고 목재군들의 장막이 웅기중기 들어선 개활지에 이르렀다. 숨이 활 풀리였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그곳은 지신공사의 산판이였다. 십여리 골안을 헛탕친것이였다. 그러나 빈궁이 독판치는 그 시대였어도 인정은 푸근했다. 앳된 청년이 겁도없이 허둥댄것이 안쓰러웠던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주던 식당아줌마가 그렇 게 고마울수 없었고 새 날이 밝으면 가라고 극진하게 말리는 인부들의 풋풋한 인정도 가슴뜨겁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약정된 오늘 도착하지 못하여 공연히 야단칠 지휘부의 박창장은 둘째치고 어른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 더 앉아뭉갤수가 없었다.
    골안을 빠져나가서 오른쪽 골로 한 20리 들어가면 광신공사 목재판이 나진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여 떠났다. 인제 방향이 서고 목적지가 정해져서 무서움도 멀찍이 물러섰다. 소고삐를 허리에 매고 련이어 말아문 담배불로 어둠을 쫓으며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산짐승도 잠든 시간, 별빛을 빌어 걷는 길은 인생길이 어떠한가를 암시 하는듯 싶었다. 심산속의 길은 적막을 깔고 누워있다. 캄캄한 산에서 외롭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체대가 덜썩 큰 검정소와 얼룩배기때문이였으리라. 그리고 두려움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내처 걸으면 귀속을 찾을수 있다는것을 밀림이 일깨워준듯 싶었다.
   나는 허위허위 걷고 내상념은 저만치 앞에서 껑충거리였다. 인생길에도 산속의 험난한 밤길이 있기마련이다. 오래동안 돌아설수도 없는 역경에 처한 사람의 인생행로는 혼자 묵묵히 걷는 나그네의 밤길이다. 그러나 나는 휘적휘적 걷고 또 걷는다. 비록 남보다 제일 먼저 새벽을 맞기위한 지어먹은 행보가 아니다. 그러나 밤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라면 새벽은 나에게로 먼저 손짓하게 되여있다.
   이처럼 일단 인생길에 오르면 좋든궂든 내처 걷게 되여있는 삶의 도보요 주막은 멀어도 어디에든 기어이 닿고야 말겠다는 끈기를 지팽이로 삼고 걷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의 길이다. 남이야 지름길로 가든, 탄탄대로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가든 내앞에 놓인 길만을 걸어야 한다. 되돌아설 리유가 없다. 돌아서도 동서남북 세상은 넓어도 내가 가야 할 그 어둠속에 뻗은 불가피면의 밤길이다.
   먼먼 밤길을 걷는것은 어스레한 외눈박이 가로등아래에 소풍처럼 그렇게 기분이 들리는 발걸음이 아니다. 먼길에는 동반자가 있으면 길이 꽤 줄수 있다. 그런데 함께 가다가 곰을 만나서 아무말도 없이 먼저 나무에 올라간 친구같은 그런 동반자라면 홀로 걷기만 못하다. 이미 나진 길이라도 낯선 곳에서 혼자 걷는 길이라면 초행길 이요 더구나 어두은 밤을 헤치며 가야하는 산속의 길은 절실한 체험의 길이다.
    아무도 내다리를 대신할수 없다. 숙명으로 이어진 길이요 그 길을 걷는 주체는 나이다. 안내자가 없다. 나혼자서 걷는다. 눈을 싸맨 나귀가 석마돌을 돌리며 먼길을 떠난듯이 내처 걷는 길일지라도 그냥 걸어야 한다. 몸뚱이가 걷는게 아니다. 인간의 근본지표는 정신으로서 내육체안에 무엇이 있다. 그것은 정신만이 아니다. 나를 앞으 로 떠미는 무엇이 있다. 보이지도 잡을수도 느낄수도 무게도 없는 그것이 무엇일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고 자존의 끈기이다. 인생길에는 그것이 요긴하다…
    마침내 허위단심 우리 우리공사의 산판에 이르렀을 때는 한밤중이였다. 흰자위가 커진 아바이들의 핀잔반 칭찬반을 들으며 잔뜩 얼어든 몸과 피곤을 난로가에 뉘였을 때 안도의 한숨도 침먹은 지네처럼 게나른해졌다. 극도로 지친 나그네에게는 한귀퉁 이 잠자리가 행복의 보금자리였고 등걸잠을 잤지만 꿈도 곯아빠진 숙면이였다.
 
                                                          3, 밀림의 련가
       
    소는 전직사양원들이 거두게 되였으니 나는 할일이 없었다. 명령에 따라 다시 화집령초지에 내려가 이불짐을 풀었지만 신이 없다(기실 그동안 3원주고 로동신 ㅡ찌까다비를 사신었다)는 구실로 화식칸의 잡부로 되였다. 마른나무를 주어다가 패고 불도 때는게 내가 하는 일이였다. 그러다보니 동녀와 더 친숙해졌다.
    동녀는 곁에 사람이 없을 때 환영한다는 뜻인지 원망하였다는 뜻인지 한바탕 푸념질했다. 그러는 동녀가 밉지 않은것은 무슨 심사인가? 동녀는 나의 옷견지도 씻어주고 양말도 기워주었다. 횅창 달이 밝은 밤, 다른 친구들은 트럼프를 치며 육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나는 고동하물소리와 동무하며 퉁소로 심산의 적막을 달래였다.
    그런 밤이면 동녀도 나의 퉁소리에 홀린듯 묻어나와 저만치 비켜앉았다. 실로 목가적인 정경이였다. 그러나 그러는 동녀와 나를 아니꼽게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나보다 두어살 이상인 유신촌에 신철이라는 친구였다. 그는 동녀에게 반해서 혼신이 허궁 떠있던차였다. 그러다보니 나를 드러내놓고 미워했다. 그런 눈치를 모를리없는 나였지만 짐짓 모르는체 하면서도 마찰이 생기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벼르고있었다.
    어느날 밤, 동녀가 고동하버들숲에 숨어앉아 제빨래를 하고있는것을 알고 은연중 가까이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호시탐탐하던 신철이가 따라섰다. 신철이는 직방배기로 자기와 약혼하자고 욱다짐하는듯 녀자를 풀밭에 쓰러뜨리고 손을 놀리기시작한 모양이였다. 나는 퉁소를 불며 그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열이 올라 황소처럼 씨근덕거렸을 신철이가 화닥닥 놀라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이였다. 그러나 나는 동녀가 창피해 할가봐 나서지 않고 퉁소소리로 오래오래 달빛 차거운 밤의 평화를 축원했다…
목재소들이 한겨울 먹을 새초를 다 장만하자 우리 젊은패들은 천수동으로 옮겨가 이전에 늘였던 전화줄을 거두라는 임무를 맡았다. 떠나기 전날 내가 앉은 강가에 동녀가 살며시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린듯이 서있었다. 달빛아래에서 똑똑히 분별할수는 없었지만 애수에 잠긴듯한 눈길이 내 쪽을 향해 있었다.
    고동하급류는 소용돌이치고 고패치며 부글부글 끓는듯싶었다. 천년을, 만년을 흘렀을 고동하 세찬물결은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있다. 문득 산다는게 흐르는 강물같 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고 오욕의 거품이 걷히고나면 결국 침전되여 남는건 자신을 거쳐갔던 기쁨과 슬픔들 그리고 그 대상들. 닿을 인연이면 누가 어찌해도 닿을것이지만 떠나야 할 인연이라면 잡을수 없다는 리치를 이 밤 고동하가 가르쳐주는듯싶었다.
    강물은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가노라, 같이 가자고, 뒤물결이 앞물결을 밀며 흐르는 급류, 출렁출렁 처절썩, 나의 빈가슴 울리며 밤낮을 모른다. 내청춘의 격정도 저리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밤에도 고동하는 흐른다. 두꺼운 어둠 속에서 풀숲에서 잠든 산천어의 지느러미를 쓰다듬으며 흘러흐른다. 은색달빛도 말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동녀도 (내침묵이 강물처럼 흐른다 해도 당신을 말없이 사랑하며 진정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넓은 가슴에 바다를 닮은 마음으로 머물께요)하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련애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시인을 만든다고 하였던가? 녀자들은 아무리 눈물이 헤퍼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앞에서는 절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 저 봐! 동녀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번쩍이고 있잖아?
    부엉부엉ㅡ부엉이 울음소리가 더없이 처량했다. 나는 강기슭에서 물러나와 주위 를 둘러보았다. 산봉우리들이 높이높이 솟아오른다. 산은 검푸른 하늘아래에서 고독을 참아가며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묵묵히, 우두커니 서있을수밖에 없었던 결박당한 노예무리를 련상시키였다. 울분은 쌓이고 쌓이여 삶에 대한 슬픔을 낳고 망연은 자실을 얹어주고 역으로 삶에 대한 더욱 집요한 갈망을 낳아준다. 그리하여 침묵과 고독속에서 노래하는 고동하가 나져서 지금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며 기슭을 차분히 적셔주고있다. 강은 그래서 인류의 생명의 젖줄기로도 되는것이다.
     ㅡ 아이참, 무슨 생각을 혼자서 그리 오래 하나요? 사람이 서있는것 안보여요? 참, 나 그쪽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흔해빠진 동무라고 할수두 없구…
    ㅡ 그럼, 이름을 부를께, 정우라구 말이야,
    ㅡ 아이ㅡ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나이는 비슷하지만…
    ㅡ 그럼 내용만 말하면 되겠네. 하하하…
    ㅡ 웃긴? 천수동으로 간다면서요? 거기 없으면 나는…어떻게 해요?
    ㅡ 걱정마오, 이번에 신철이도 함께 가니까 시끄럽게 굴 기회가 없을터이니…
    ㅡ 높은 전선대에랑 올라간다는데 몸을 주의하세요. 아이, 내가 싱겁게…
    ㅡ 고맙소, 동녀도 진짜 산판에 들어가면 감기에랑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오.
    ㅡ 고마워요, 이렇게 날 지켜주고 관심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나도 동녀에게 늘 고마움을 품고있었다. 가마목에 앉은년이 떡하나 더 먹는다고 화식칸에서 만두하나라도 더 얻어먹기 마련이지만 동녀는 가끔씩 자기몫의 만두를 남겼다가 나를 주군했다. 그게 내게는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만두만이 아니다. 나는 이런게 사랑인지 알수 없었지만 동녀가 그저 좋았고 늘 마음이 따스해지였다.
   …한 보름이면 된다던 일이 뜻대로 끝나지 않아 스므날을 넘겼다. 천수동어귀 마을의 농가에 숙소를 정하고 긴 천수동골안을 오르내리며 전선줄을 거두었다. 우리 절로 “모다까”라 부르는것을 낡은 철길우에 올려놓고 운수도구로 썼다. 먼곳에 갔을 때는 내리막에서 올라앉기도 했다. 제동장치가 없는 도로꼬가 바람이 날라치면 속수 무책으로 가속에 명을 맡길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일을 치고야 말았다.
    늘찬 내리막에 들어서자 모다까는 “어디 한번 호사해봐라”하듯이 냅다구르는 데는 등곬에 얼음이 비껴갔다. 이대로 그냥 가다가는 올리막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슨 사고가 날것같았다. 속도가 더 나기전에 뛰여내리기로 작정했다. 소조장의 명령일하 에 일제히 뛰여내렸다. 량켠에 덤불들이 두툼해서 괜찮으려니 했지만 겁이 많은 문씨가 힘껏 내뛰지 못하여 철길에서 굴러떨어지며 타박상을 입었다. 다행히 뼈를 상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병원도 없는 허허 천수동에서 여럿이 함께 고생할번했다.
    그럭저럭 전선줄을 다 거두었을 때는 10월에 들어섰다. 가을만큼 짧은 계절이 있을가, 여름이 끝났는가 싶으면 어느새 늦가을이다.  천수동의 산천도 가을 끝자락에 섰다. 오색단풍이 짙게 물든 련산련봉, 단풍은 어디서나 단풍이지만 일송정에서나 모아산에서 보는 단풍은 비길바가 못된다. 수십종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심산유곡답게 특이한 절대경이였다. 가을의 절정, 산기슭, 산중턱, 산봉에 민낯을 드러낸 기암과 절벽이 산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단풍과 대조를 이루기도 하거니와 조화를 이루기 도 하여서 내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름해살은 바늘처럼 내리꽂힌다면 열기가 다바랜 가을해살은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게 내려앉는다. 숲속, 아침이 열려오는 그 찬란하고 황홀한 빛의 기막힌 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푸른 음향마저 흐를것같은 10월의 깊은 하늘만이 열이 식어가는 해를 높이 띄우고있다. 나는 어줍잖게 일기장에 서투른 시줄을 끄적였다.
                   
                불붙는 저 단풍은 내마음이런가
                심산속 색채가 고운 시월단풍은
                무정한 서리가 그린 걸작이건만
                나는 어이하여 가슴을 불태우나
 
   봄은 공연히 싱숭생숭해 나는 계절, 가을은 움직이는 계절, 무언가 무르익히기 위해. 다른 한번은 충만된 푸름을 위해서 온다. 그래서 봄에는 처녀들이, 가을에는 남자들이 흐물거리는것일가? 사실, 단풍든 심산속에서 동녀의 얼굴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마치 열련에 빠져있다가 전선에나 나온 전사의 그것처럼 사뭇차게 생각나 면서 시도때도 없이 가슴이 뭉클거린다. 동녀가 내주머니에 편지같은것을 넣어놓고 얼굴이 홍시가 다 되여서 돌아서던 일이 생각나 웃음이 칵 물리였다.
    …지금도 무어라 불러야 내마음에 꼭 들지 몰라요. 그리고 내가 어린 처녀로서 이런 편지를 먼저 쓴다는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 쓰지 않을수 없어요. 전번처럼 간다는 말 한마디없이 훌쩍 도망치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도 천수동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가봐 겁이 났거든요.
    리해하여 주어요. 내마음을, 처음 볼때에는 나이답지 않게 후리후리한 체대에 크지는 않으나 매서워보이는 눈이 좀 서먹서먹했지만 날이 가고 눈에 익어갈수록 떡 벌어진 어깨, 넓고 두둑한 앞가슴, 그리고 장작을 팰때 불뚝거리던 억센 두팔…그 모든것이 무섭고 강한것을 물리치고 외롭고 약한것을 얼싸 껴안아줄수 있는 그런 남자라고 믿어졌어요, 우리 집엔 남자 하나 없고 언니 둘이 있었는데 인제 다 시집을 가서 나는 외롭고 고독하게 컸어요.
    초중생인 나는 수준이 형편없어요, 그러나 이런 편지는 진실한 마음으로 쓰는게지 미사려구로 엮는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줄줄 잘도 내려가네요. 호…남자라는 존재에 어섯눈을 뜬 처녀로서 제일 행복한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사랑을 하고있다는 그것이 아닐가요? 사랑, 정우, 이 두단어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게 하는 단어이고 나의 혼을 빼가는 소리예요.
   얼때기없이 이 목재판에 와서 하냥 걱정이 가슴을 꽉막히게 하고있었는데 오빠를 만나게 된후 마치 하느님이(우리 엄마 교를 믿거든요) 안배해 놓은 연극같아요. 나로 말하면 산다는게 오빠를 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된것 같고 내가 훌쩍 철이 들어버린것 같아요. 웃으면 안돼, 나 거짓말을 모르는 녀자이니까….  
 
                                                   4, 산판의 풍경
 
    산판에 돌아와보니 토장(저목장)은 대강 닦아놓았지만 목재군들이 들어야 할 숙소는 아직 몇채 더 지어야 하길래 분주히 돌아치였다. 나는 남도치령감님의 조수로 귀틀집을 짓는 일을 거들었다. 동녀는 화식원으로 있다보니 따로 만날수는 없었지만 밥을 타는 구멍으로 아침저녁 눈대화는 할수 있었다. 혹간 점심시간에 만나면 큰 나무뒤에 숨어서 몇마디씩 나누고 다 기운 장갑같은것을 건네받군 했지만 그저 좋기만 했다.
    첫눈이 내리면서 각 공사에 목재군들이 꾸역꾸역 들이닥치였다. 골골에 밥짓는 연기, 숙소의 난로연기로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였다. 발구길을 닦는 일이 끝나자 나는 남도령감의 지도를 받으며 채벌군질 한다고 덤벼쳤다. 보통 키가 40-50메터 나가는 아름드리 홍송, 백송, 가문비나무를 도끼질로 깊숙히 턱을 떼고 엉덩이에 쳐맨 개가죽을 깔고앉아 헐씨근 톱질하느라면 무슨 큰 일이나 하는듯 느껴졌지만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싫증이 나고말았다.
    나무를 넘어뜨릴 방향을 잘못잡아서 얼른 넘어가지 않고 그루에서 빙그르르 돌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찔하군 하였다. 그럴때에 무작정 들고뛰면 나무에 딱살을 맞을것이니 침착하게 그루를 안고돌며 나무초리를 올려다 보라는 어른들의 교도가 귀에 못박혔지만 그저 외우면 되는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재수없이 나무가 넘어지면서 맞은켠 나무가지에 걸려 덕대를 지워놓는 날에는 목숨을 내걸고 앞에 나무를 또 재껴야 했다. 진땀이 빠작빠작 나는 일이였다.
    집재가 시작되자 생산대 소이니 내가 부려야 한다는 핑게로 집재군이 되였다. 기실 집재군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욕심낸것이다. 나무를 싣고 굵은 바로 칭칭 동인후 탕개를 단단히 틀어야 한다. 그 모든 일은 남도령감이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그일도 오래하지 못하였다. 웬간히 큰 무티는 두대씩 싣고 너무 큰놈은 땅을 파고 발구도매를 들이밀어 간신히 싣기는 했지만 소가 아무리 버둑거려도 나무가 꿈적하지 않을때가 있었다. 다른 집재군들은 인정사정 없이 소궁둥이가 피터지게 두드려패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할수 없었다.
    더구나 경사도가 강한 빙판길을 내려올 때 사람은 뒤에서서 안전하지만 바들바들 떠는 소가 너무 불쌍해져서 눈물이 다 나오군 했다. 한번은 그리 크지 않은 나무를 실었건만 토장에 들어서는 가파로운 길목에서 얼룩이가 낑낑거리며 한발작도 더 내디려하지 않았다. 뒤에 발구군들이 늘어서서 재촉한다. 나도 성이 나서 어깨에 메였던 둔장으로 얼룩이 궁둥이를 팬다. 그래도 소는 겁이 나서 맴돌뿐이다.
    나는 앞에가서 코뚜레를 거머쥐고 죽어라고 당겼지만 끙끙 소리만 냈다. 커다란 눈에 물기가 가득차 있었다. 소가 울고있는것이다. 소가 운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것 이다. 아니, 나의 얼룩이는 분명 울고있었다. 몰고 들어올때보다 바싹 여윈 몸둥이가 전률하고있었다. 뒤에서 재촉이 성화같았다. 누군가 소궁둥이를 북두드리듯 두드려 팼다. 소귀에 경읽기란 말은 딱맞는 말은 아니다. 얼룩이는 결심내린듯 두어걸음 떼더니 두무릎을 착꿇고 미끄럼질로 내려갔다. 얼마나 엮어빠진 소인가!
    평평한 길에 이른 얼룩이가 뒤에 오는 충격을 어찌 감당하고 그랬는지 앞다리를 훌쩍펴고 일어서는게 아니겠는가? 기적이였다. 그러나 두무릎은 살이 거의 나올 지경으로 되여 붉은 피가 질펀하다. 나는 얼룩이목을 안고 쓰다듬어주면서 저목장으로 들어갔다. 그후부터 나는 돈을 못벌더라도 소를 혹사시킬수 없었다. 혹여 소까 지 잡는 날에는 그 후과가 어떨지 너무나 뻔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알맞춤한것만 골라 싣다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립방수를 올리지 못하였다. 매일 지휘부회계에게 립방수를 보고할 때는 락후분자로 되였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집재할게면 다른 사람에게 소를 넘기란다. 그럴가하고 생각하다가 나날이 여위여가고 마냥 휘청이는 얼룩이가 불쌍해서 차마 남의 손에 맡길수 없었다. 드디어 얼룩이가 지쳐버리자 지휘부에서는 병약자와 함께 하산시켰다. 무슨 일이나 잘 안되는 판이라 뚝심이 있으면 해낼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저목장에 원목을 쌓아올리는 목도군으로 되였다. 물론 누구에 짝지지 않는 목도군이 되기까지는 많이 몰리였다.
    대식품을 먹으며 겨우 목숨을 연명해가는 지방보다는 좀 나은편이였지만 목재군들로 말하면 먹는것이 말이 아니였다. 쏘련에서 들여왔다는 무슨 록두알같기도 하고 풀씨같기도 한것을 섞은 수수밥에 국이란 소금물에 삶은 시래기 한덩이씩 놓아주는게 고작이였다. 겨울이 깊어지자 샘줄기도 숨어버려 물고생이 막심했다. 그래서 눈을 퍼들여다가 녹여서 세수물로 쓰고 밥을 하여야 했다.
    소금국에서는 솔잎냄새가 풍기였지만 두어사발씩 들이키는 사람도 푸술했다. 긴긴 밤 썰썰해진 사람들은 사양원으로 들어온 엄동기가 난로곁에서 두병을 썰때면 몇개씩 후무려서는 난로에 구워먹었다. 손바닥같이 넙적한 두병을 굽는 냄새가 그처럼 구수할수 없었으며 구운두병이 그렇게 맛이 있을수 없었다. 엄동기는 량표를 절약려고 밥을 타내다가는 두병을 섞어서 죽을 쑤어먹었다. 배고픈 고생이야 누군들 다르랴만 그러는 엄동기를 곱게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방에서는 대약진운동이 마침내 흐지부지해졌지만 산판에서는 그 후유증으로 인력으로 “小头木”을 끌어내리는 야간작업이 밤마다 계속되였다. 한공이라도 더 벌려고 열성을 부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지휘부에서 내리먹이는 바람에 억지춘향이 되는격이였다. 동녀도 밤작업에 나서서 한대라도 더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다. 나와 그는 자연스럽게 짝패가 되였다. 그러나 립방수를 적을 때면 나는 그냥 동녀에게 양보하였다. 그것이 고마워서 동녀는 나의 밥사발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었고 장갑이랑 가져다 기워주면서 여러가지로 왼심을 써주었다.…
    목재군들은 물론 소들도 지쳐 하나둘 죽어나갔고 새로 생력군의 소들이 들어왔다. 토비굴같이 기다랗게 지은 귀틀막은 썰렁했다. 쇼루즈(烧炉子)령감이 눈한번 붙이지 못하고 도목나무를 때여 난로가 벌겋게 달아있지만 겉바람이 세차서 난로 가까이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무슨 불을 제정신없이 때는가고 불평이였고 난로에서 멀리 구석진 곳에 누운 사람들은 춥다고 욕설질이였다. 인심이란 참으로 종잡을수 없는것이다.
    나는 난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데다 마침 기둥머리에 석유등이 있어서 얼마간씩 책줄이나 훑을수 있었다. 내가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였다. 후비대로 소를 몰고 들어온 방령감이 량표를 절약하려고 길에서 거의 굶다싶이 했다더니 저녁에 빈속에 “무철알”밥을 우겨댄게 탈이였는지 급성위장염같은 증세를 보이며 배를 안고 맴돌아쳤다. 촉한에 걸려서 그런가고 난로가에 자리를 옮겨주었지만 그새장새였다.
    밤인지라 10리길도 넘는 곳에 있는 의사를 데려올수도 없고 해서 소화제를 얻어 먹인다하며 법석을 떨어도 배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의사질을 하다가 우파로 몰려 쫓겨났다는 의사가 두루 살펴보더니 이대로 두면 곤난하다며 홍문으로 비누물을 불어넣어 “灌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누가 남의 홍문에 비누물을 입으로 불어넣는단 말인가? 사람이 죽는다 산다하며 괴로워하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모두 안타까운 얼굴을 짓고있었으나 아무도 선뜻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대대지휘부 박창장이 들어오더니 한 사람을 지명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온 송권준이라는 한족이였는데 젊어서는 연길별동대에 들어가 삼도만 토비 숙청에도 참가한 사람이였지만 출신때문에 부대에서 밀려나와 다시 농민이 된 사람이 다. 사람이 마음은 고왔지만 조금 교활한데가 있었다.
   상급이라면 껍적 죽는 시늉도 하는 그인지라 “예, 예”하며 의사가 풀어준 비누물 을 고무관즈로 빨아들여 방령감의 홍문으로 불어넣었다. 비누물이 꽤나 들어갔는데도 방령감은 효험이 없는지 그냥 쩔쩔 매였다. 그러다가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숨을 거두고말았다.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졌지만 후사를 처리해야 했다. 그냥 사람 들속에 시체를 뉘여둘수는 없었던것이다.
    급히 관을 짜서 입관시켜야 하는데 관널이 문제였다. 선톱질로 널을 켜내서라도 밤새 관을 짜기로 하였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기승부리며 죽을놈을 나오라고 휘파 람을 불었다. 누가 이 추운밤에 톺틀에 올라가 선톱질을 할것인가? 역시 톱질에 의력 이 텄다는 송권준이가 자원해나섰다. 밑에서 톱을 당겨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결국 내가 나서게 되였다. 나를 찍는듯한 박창장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방령감의 아들인 소학교동창 봉만이 낯을 보아서도 모른체할수 없었다. 그렇게 두어시간 역사질해서 홍송널을 두쪽을 뽑아 대충대패질하고 관을 짜야 했다. 한참 뚝딱거려 관이 만들어진 다음 입관하였다. 몸이 너무 불어서 겨우 넣고 대못질 한다음 밖에 내다놓았다. 그런데 밤중에 오줌누러 나갔던 나그네가 기겁초풍해서 뛰여들었다.
    ㅡ 저, 저 밖에 관널이 돋기고 있수다.
    늙은이들이 시체에 부증이 오면서 그런게라 하였다. 촘촘히 박은 대못이 돋아날 정도이면 가히 짐작이 갔다. 이젠 큰망치로 못을 박아넣어도 그냥 관뚜껑이 들리며 삐걱삐걱 무서운 소리를 내고있었다. 모두 소름이 끼쳐 몸을 떨어댔다. 남도령감이 제안을 내놓았다.
    ㅡ 거시기 법대루라면 안되능기지만 8호쇠줄로 관을 두세곳 묶을수밖에 없당께. 재게 철사를 얻어서 묶어놓음세.
    그의 제안에 따라 몇몇이 나가서 관을 철사로 칭칭 동여놓았더니 관널이 더 돋기지는 않았다. 이튿날, 나와 권준이가 발구에 관을 싣고 고동하역에 가서 가소린차에 실어 팔가자로 보냈다. 그렇게 난 자리인지라 아무도 탐내지 않았던것이다.
                              
                                                5. 생사의 고비
 
    자리는 명당인데 말째인것은 한사람 건너에 자리잡은 신철이가 밤이면 바이얼린을 꺼내 턱에 끼고 활을 당기며 제감정에 도취하는 꼴통이였다. 괜찮게 켜는듯했지만 진종일 고역에 시달리고 추위에 부대끼던 일군들은 질색하는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누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는 판국이였다. 삑삑거리는 소리에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저녁은 보다못해 내가 한마디 하였다.
    ㅡ 어이, 신형, 당신은 제감각이 좋아 고개를 흔들어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장가가 아니란 말이요, 옛말이나 좀 듣다가 잠을 잡시다.
    ㅡ이 새끼, 네가 뭔데 감히 누굴보고 흥소리야,
    현철이가 거칠게 나왔다. 누워있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어둠컴컴한 숙소안이 대번에 긴장이 감돌았다. 말은 내가 먼저 건것이니 해결도 내가 지어야 했다. 문티를 굴리고 목도를 하면서 나는 신철이가 키는 커도 맥살은 못추는것을 보아낸지라 드잡이를 해도 겁날게 없다고 자신하고있었다.
    ㅡ네입은 마구낸 창구녕이냐? 입만 벌리면 누운소 똥누듯 욕설이 나오니? 내가 널 무서워할줄 아니? 하겠으면 어디 밖에 나가 볼가?
    내가 악지 세게 나온것도 있지만 잔뜩이나 불평이던차라 거의 다 내편을 드는 판이 되였다. 입살이 더러운 남도치도 한마디 께끼였다.
    ㅡ남다 자는 이 밤중에 그 무신 지룰들이가? 젊은눔들 노는 꼬라지들허군, 그랑 버르장이 없으면 어떡케 사람질하노? 둘다 종아리 확 부찔러뿌릴라, 어험 !
    아무리 노가다판이라도 이상제하는 챙겨야 하는 판이라 말다툼을 미루기로 했다. 말다툼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더구나 앙숙이 되고말았다. 그런데 결국 꼴을 먹은것은 나였다. 양력설전에 있은 일이다. 동녀가 하루 일을 쉬는 새에 기워준다고 가져간 벙어리장갑을 가지러 화식칸에 갔다가 곧 돌아섰는데 그것이 빌미로 되여 사달이 났던것이다.
    이튿날 국에 조금씩 썰어서 넣어주려고 삶아놓은 큼직한 돼지고기덩이가 감쪽같이 축났던것이다. 그날밤 내가 화식칸에서 무엇을 들고나오는것을 본사람이 있다고 해서 적발비판회에 나서게 되였다. 증명인이란 바로 신철이였다. 재수가 없을라치면 소똥에 엎어져 개똥에 코를 깬다더니 내가 그 꼴이였다. 내가 아무리 청백을 증명하 려 했지만 출신이 나쁘다는 그 한가지 리유로 마구 몰아부치며 탄백을 받아내려는 판이였다. 누구보다도 한마을에서 온 엄씨가 두팔을 걷어부치고 열을 올리였다.
    ㅡ저눔의새끼 원래 나쁜눔이우, 내가 한마을서 살기에 속창을 잘 아는데 저자식 고개는 숙여도 속은 퍼렇게 산놈이라이, 마을에서 비판을 받을때도 한번 잘못했다고 승인하는 법이 없었소. 저 자식이 내가 썰어놓은 두병도 몇번을 후무려서 구워먹기도 했소, 손버릇이 나쁜놈이니 필경 고기를 훔쳤을게요. 이 새끼야, 고기덩이를 어데다 감추었는지 바른대 자백하지 못하겠니? 내 저눔을 그저…
   곁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주먹까지 휘두를 잡두리였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고목 이 벼락을 맞는다더니 속담 그른데 없었다. 그러나 지도부에서 아무리 비판의 불길을 지피려해도 원체 서로 다른 대대에서 온 사람들이고 평시에 서로 척을 진일도 없기에 거지반 반신반의하며 마지못해 앉아있는 판이였다. 게다가  나의 잠자리밑이랑 두어번 뒤졌지만 고기가 없었던것이다.
    ㅡ 보지 못한 도둑놈은 함부루 찍어말하문 안된당께, 증거를 가지고 사람 족치소.
    통말을 잘하는 남도령감이 장훈을 불렀다. 밤깊도록 비판해봐야 거개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게 비판하는 바람에 회의가 싱겁게 되였다. 한이틀 불러내여 꼭 죄가 있어야 한다는식으로 이런저런 갖잖은 일까지 꿰여들고 닥달질하더니 웬영문인지 더 내세우지 않았다. 후에 안일이지만 신철이가 자기를 불러내느라 왔다갔고 정우동무도 기운 장갑을 찾으러 왔지만 문밖까지 함께 나왔노라고 동녀가 증명해나섰던것이다. 일은 그렇게 해명되였지만 동녀는 말밥에 오르면서 처지가 난감하게 되였다.
게다가 지도부의 눈에 나서 식당에서 밀려나 검척원으로 되였다. 강추위속에서 손시린 고생, 발시린 고생을 하는 동녀를 보느라니 가슴이 아팠다.
   돼지고기사건후였다. 신철이는 더구나 동녀에게 행패질하지 못해 안달했다. 눈을 뜰수 없을지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날 점심무렵이였다. 손발이 너무 얼어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 동녀는 집재군들이 좀 뜸해진 틈을 타서 바람막이움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방정맞게도 뒤미처 집재군이 들이닥쳤다. 순서대로 하면 검척을 한 다음에 나무를 굴려서 쌓아야 했다. 내가 동녀를 부르거나 저쪽에 다른 검척원을 대신 시키자고하니 신철이가 픽 랭소를 던졌다.
    ㅡ이 빌어먹을 토끼새끼년은 어데로 바라간거야? 자, 추운데 이 문티를 제꺽 굴려다놓고 점심먹으러나 갑시다. 년이 알아서 처리하지 않을라구 헝,
   저목조의 조장인 신철이가 우기는바람에 모두 덩둘해서 시키는대로 했다. 동녀가 미구에 달려나왔지만 다른 집재군들이 련속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 나무를 미처 돌볼 사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집재군이 자기 나무가 얼마인가 차문하게 되였을 때는 이미 나무무지속에 묻힌뒤였다. 성이 독같이 난 집재군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나왔다. 마음이 여린 동녀는 할수 없이 목재무지로 다가갔다.
    파리길에서 경사진 높다란 언덕을 수평으로 채워나가면서 나무를 쌓아가기에 그 나무는 아래서도 우에서도 재일수 없게 묻혀버렸다. 그러나 동녀는 듥쑹날쑹한 나무 를 밟으며 내려서야 했다. 잠풍한 날에도 위험한데 사람이 막 날려갈지경인 사나운 날씨엔 더구나 위험했다. 내가 대신 재여가지고 올라오겠다고 해도 기어이 제가 잰다 고했다. 눈보라는 더욱 기승부렸다. 팔을 뻗쳐 나무를 재려던 동녀가 발을 빗디디며 떨어지는 찰나 얼결에 삐죽이 나온 나무초리에 허궁달리게 되였다.
    내가 잽싸게 내려가 동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눈보라가 휙 몰아치면서 둘다 평형을 잃고말았다. 내가 먼저 떨어지고 동녀가 내몸에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상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무등걸에 허리를 박아서 한동안 눈속에 누워있었다. 동녀가 울음을 터칠때 우에서 낄낄거리는 신철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의 열흘이나 10여리 길을 걸어서 림장병원에 침을 맞으려 다녀야 했다.
    핑게핑게 도라지캐러 간다고 그낌에 하산하겠다고 신청하였지만 박창장은 오히려 꿰병이라며 웬간하면 일하라고 독촉질했다. 다행히 척추는 다치지 않아 그런대로 일할수 있었지만 그동안 숱한 공을 잃고말았다. 자리에 누어있어야 했던 며칠은 동녀가 밥을 타다가 주었다. 나와 신철이의 사이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팽팽해졌고 언젠가 한번은 둥글쇠싸움이 나야 할 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끝내 일이 터졌다. 큰 목재는 여섯이 아니면 여덟명까지 목도하게 되였는데 큰나무는 방치라는것을 매고 목도하였다. 그래야 올리막, 내리막에 무게게 자연적으로 조절되는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철이가 방치를 매는 날에는 어쩐 셈판인지 무게가 나와 갈경갈경한 조령감이 메는 뒤쪽에 쏠리여 허리가 받아당하지 못할 지경이였다. 맥골을 못쓴다고 늘 구박받던 조령감이 가만히 알려주었다. 신철이가 방치를 맬때 무슨 롱간질을 한다는것이였다. 다음 나무를 멜때 내가 신철이네와 위치를 바꾸자고 하였다.
   ㅡ 왜?
   ㅡ 좌우간 좀 바꾸기우, 우리가 그냥 뒤쪽에서 메야한다는 법이 없지 않소?
   ㅡ 너 무랄이니? 메라면 멜게지 뭔 즌소리야? 즌소리는?
   ㅡ 뭐라구? 다시 말해보라,
   ㅡ 다시 말하자면 너같이 성분이 나쁜 새끼는 내마음대로 짓밟을수 있단말이다.
    개니 돼지니 욕해도 참을수 있지만 성분소리만 나오면 참지 못하는 나였다. 중학교 2학년때도 그랬다. 한어시간에 곁에 애와 구시렁거리다가 선생이 불호령을 내렸다. “정우, 일어섯!” 나는 얼결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나가! 당장! ” 나는 수업을 지연시킬수 없어 복도에 나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복도는 한지나 다름없었다. 변변 히 입지 못해서 잔뜩이나 추위를 타는 나는 한참 서있으려까 금방 온몸이 언명태가 다 되였다. 창피를 무릅쓰고 교실에 들어갔다.
    ㅡ 왜 들어왔어? 시간이 끝날때까지 복도에 서있으란 말을 못들었어?
   ㅡ 듣기는 했지만 너무 추워 얼어죽을것 같습니다. 저 못나갑니다.
   ㅡ 뭐? 이 새끼, 선생과 땅땅 접어들구, 야, 임마 넌 성분이 나쁘다더니 아주 질이 나쁜 놈이구나, 이 자식, 너 공부 좀 잘하면 다야? 나쁜놈의 새끼…
   아이들의 눈길이 내한테 확 쏠리였다. 이런판에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가릴게 없었다. 내입에 생각하지 않던 말이 불쑥 튕겨나갔다.
   ㅡ 에씨, 자기는 쏘련포로병이 돼가지구..
   ㅡ 뭐야? 이 새끼?
    한어선생이 한걸음에 달려내려와 내귀쌈을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ㅡ 왜 때려요? 학생에게 반주임도 하지 않는 말을 해서 됩니까?
   한어선생님은 들었던 손을 내리웠다. 나는 밖으로 뛰여나갔다. 너부죽한 얼굴에 칼자국이 나있고 구레나룻이 짙은 한어선생님은 학도병으로 끌려나갔다가 쏘련군이 만주리로 넘어오자 두손을 번쩍들고 포로되였다고 소문나 있었다. 하학시간이 되자 나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교장선생이 나늘 한바탕 닦아세우고 내보낸후 한어선생님을 비평하는 소리가 귀결에 들렸다. 다음은 체육시간이여서 스케트를 타는데 한어선생 님이 나를 불러 구석쪽으로 끌고가더니 먼저 사과했다.
    ㅡ정우야, 내가 실언했다. 아무 죄없는 어린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참 안됐다. 하지만 너두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였어…
    나는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ㅡ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ㅡ 그래? 너도 잘못을 뉘우치면 됐어, 하긴 너의 그 성격이 내 마음에 들었어…
    한어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혹간씩 공사소 재지에서 맞띄우면 진심으로 인사하였다. 한어선생님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렇게 맺혔던 원한은 흘러간 세월에 떠나가버렸지만 그 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판이다. 나는 우선 참기로 하고 그냥 목도채를 어깨에 걸었다.
    몇걸음 나가던 나는 조령감에게 눈치질하고 불시로 목도채를 어깨에서 탁 내렸다. 그바람에 앞에서 메던 넷이 뒤로 훌렁 나자빠졌다. 신철이가 악을 먹고 달려들며 털모자를 쓴 내머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이제 나도 더 무엇을 고려할게 없었다. 옆으로 훌쩍 비켜서며 목도채로 신철이의 등때기를 후려쳤다. “아이쿠 !”소리와 함께 신철이가 고꾸라졌다. 원래 훗대가 돈독하지 못한 나였지만도 우선 속이 후련했다.
    나의 살기띤 험상궂은 얼굴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 서있었다. 내가 다시 목도채를 추겨드는데 조령감이 내팔을 잡고 극구 말려놓고는 신철이를 눈속에서 안아일으켰다. 신철이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나왔지만 함부로 짓밟을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조금 느낀듯 겁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런 막노는 노가다판에서는 약하게 보일수록 더욱 짓밟히기 십상이다. 거세지는 못해도 악지세게 나와야 아무도 기시하지 못한다는것을 그동안 체험으로 느꼈던것이다.
    쉬는참에 둘이서 따로 떨어져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데 조령감이 이야기를 했다.
    ㅡ 자네에 하는 말이네만 나 젊어서는 조선팔도에서 이름있는 전문목도군이였네.
    우리 짝패가 딱 여덟이였는데 형제의를 맺아 수족같은 친구들이였지. 우리는 전문 기차에 원목을 메여올리는 일을 찾아했네. 한번은 광고가 나붙었네. 무산역에 아주 큰 무티를 기차에 싣지 못하고 2년이나 묵어있었다네. 일본목재경영소에서 아주 많은 돈을 준다고 광고하였지. 그래서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갔네.
    나무는 과연 소문대로 거물이였어, 거의 가슴까지 올라오는 놈이였는데 직경이 거의 90이 나간다던지, 그놈을 차바곤에 메여올려야 했네. 우리는 사흘을 걸려서 받침대서껀 빈틈없이 준비하였네. 무티를 메느날 무산읍에서 숱한 구경군들이 나왔네. 목도채를 어깨에 올려놓으니 나무와 땅사이가 한 한뽐 푼히 되였네. 앞에 선 친구 둘이 차판에 올라서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아이쿠!”하고 비명을 질렀네.
    그러나 허기영, 치기영 하고 먹이는 선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나무는 한걸음 한 걸음 움직이였네. 차바곤에 나무를 돌려서 내려놓자 제일 나이 어린 막내가 졸도하였 네. 병원에 가보니 목덜미에 박힌 주먹같은 썩살이 문드러져 피가 터졌던거야, 그때 그 막내가 목도채를 벗어메치면 뒤에 우리는 다 죽었을거야, 무티가 워낙 이만저만 한 놈이 아니였거든, 그때 돈은 꽤나 받았지만 거지반 그 아우의 치료비에 들어갔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나? 이런 시시한 목도판에서는 되는대로 메면 메는 거지만 목도라는게 말이네 힘을 합쳐 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합쳐야 하는거라구. 그런 데 저 신철이라는 젊은이가 사람이 참 못됐어, 노가다판에서 굴러먹은 내가 저런 햇송아지를 두려워 가만있는줄 아나? 나도 출신때문에 그저 죽여줍시사, 하는거라구, 저애숭이가 심통이 바르지 못한게 분명하니 앞으로 사달이 나지 않게 주의하게…
    조령감과 나에게 각별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역시 천지가 아득하게 눈 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날이였다. 내옆. 제일 바깥쪽에 나무를 굴리느라 둔장질하던 조령감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발이 미끌며 평형을 잃은 조령감이 그만 바람에 휘 감겨 나무무지 사이에 떨어진것이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팍까지 싸인 눈속에서 눈사람이 다된 조령감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나무를 타고 내려가 부축했을 때 조령감은 눈섭이고 수염이고 눈범벅이 되여있었는데 남의 일이라도 가슴이 찡했다. 일이고 나발이고 조령감을 업어 숙소에 가져다 눕히였다. 옆구리를 박아서 켕길뿐 허리는 일없다고 하였다. 조령감은 그렇게 한 열흘 쉬고 나서야 목도판에 나올수 있었다. 그후 조령감은 자기가 가져온 토담 배랑 나누어주면서 남달리 살갑게 굴었다.
    며칠후였다. 나무를 일정한 높이로 쌓아야 하기에 다음 층을 시작할 때에는 끝 머리에 조심조심 올려놓아야 했다. 자칫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지기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라서 모두 헐겁게 여겼는지 힘이 합쳐지지 않았다. 나무가 거의 올라 앉는 찰나 내가 우쩍 힘을 쓰다보니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며 한발을 내디고말았다. 내친김에 경사지게 쌓인 나무들을 건정건정 뛰여넘는데 뒤에서 동녀의 새된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텅, 퉁탕!”하는 소리에 뒤돌아보지 않아도 사태의 엄중성을 직감했다. (인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뇌리를 쳤다. 그 무서운 절망감이 폭발력을 올리뿜 었는지 아무튼 나는 두세 걸음에 나무무지 끝머리에서 2메터쯤 아래에 있는 소철길 위로 힘껏 뛰여내렸다. 사신을 앞세우고 굴러내린 문티가 쿵, 하고 내뒤에 떨어졌다. 철길이 조금 높았기에 홈차기에서 더 튕겨오르지 못했기망정이지 나는 떡돌에 치운 개구리가 될번했다. 정신이 아뜩했다. 짓쫗은 무릎이 아파났을뿐 사지가 멀쩡한것 같았다. 그러나 얼이 나간뒤라 한동안 엎어진채 있었다.
    ㅡ 정우야, 아무데도 상하지 않았지?
    ㅡ 정우동무!!
    조령감의 다급한 소리와 동녀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간신히 머리를 들어보니 모두들 위에서 내려다보며 련신 무어라 소리쳤다. 어느새 뛰여내렸 는지 동녀가 내팔을 잡아 일으키려 애썼다.
   ㅡ아무데도 상한데 없지요? 응? 그렇지?
    나는 천명이라고 생각하며 엎어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릅팍이 쑤셔났지만 극력 아무렇지도 않은체하며 언덕을 올라갔다. 후에 동녀가 알려준데 의하면 그날도 검척 할게 없어 남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무가 굴러떨어질가봐 도비로 잡아당기고 있는듯 했는데 신철이가 손동작을 하는듯 싶더니 나무가 굴러떨어진 그런 위험한 일이 벌어진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가슴이 섬찍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는이상 무엇을 어떻게 캐여볼 계제가 못되였다. 저녁에 낮에 있었던 일을 누가 꺼냈는지 하늘이 도운 목숨이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남도령감은 내무릎을 살펴보았고 우파의사도 요도팅크를 꺼내여 가득 발라주었다. 그후부터 신철이를 지켜보는 나의 눈길은 분명 험악했을것이다.
    얼마후, 쌓아놓은 문티들을 헐어서 기차에 싣는 일을 하던 날이다. 문티들은 쌓 기도 힘들지만 허물기가 더욱 위험했다. 내가 조금 사선으로 끼인 나무끝을 도비로 끄적거려 파내자 원목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나무한대가 철길가에서 지휘하던 신철이 앞에까지 굴러가는 순간 “아이구!”하며 그가 발목을 안고 맴돌이쳤다.
    욱 모여들어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저 아파 죽는시늉만 하였다. 당장 업어서 대대위생소라도 호송해야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해서 상한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말없이 등을 들이댔다. 신철이를 없고 꽤나 먼 숙소로 돌아왔을때는 나의 솜내복까지 흠뻑 젖었다. 의사가 와서 살펴보려 하니 신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다치게도 못했다.
    그렇게 신철이는 엄중환자가 되였고 나는 의무간호원이 되였다. 일을 하고 돌아 와서는 밥도 타다주고 요강으로 쓰는 세수대야까지 섬겨야 했다. 며칠 지나자 앓음소 리는 뜸해졌으나 약을 바르고 칭칭 동인 붕대를 다시 풀어보지 못하게 아우성쳤다. 그렇게 열흘간 누워있다가 송엽장을 짚고 변소출입을 하게 되였다. 지휘부에서 하산 할수 있다는 증명까지 떼주는 바람에 나는 한시름을 푹 놓게 되였다.
    문제는 신철이를 소발구에 앉혀서 70리 떨어진 고동하역까지 실어가는 일이였다. 나는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있어서 호송을 자원 해 나섰다. 걸음가벼운 소를 주어서 길이 잘 축이났다. 앞에서 소고삐를 당기며 걷는 나는 속으로 이 산속에 콱 처박아버리고싶은 생각이 불쑥 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속에서 끓어번진 증오심에 그치고말았다. 
    그러데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은 뒤에 있었다. 늦은 오후에 고동하에 이르렀는데 마침 기차가 원목을 가득싣고 금방 떠나려는 참이였다. 급해맞은 신철이는 내가 부축하기도 전에 굴러떨어지듯 하더니 이불짐을 들고 선불맞은 노루처럼 기차를 향해 내뛰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한참 뛰던 신철이가 내게 대고 소리쳤다.
    ㅡ 야, 이 개새끼야, 그날 네놈이 그 문티에 치여죽지 않은게 다행인줄 알아라. 나는 간다, 그동안 잘 부려먹어서 감사하다. 너 그년과 콱 잘살아라.
    그가 무어라고 자꾸 지껄여댔지만 나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못하고 쇠말뚝처럼 섰을뿐이다. 나는 굶은 속으로 그냥 돌아서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나만 부엏게 속히워 벙어리 랭가슴을 앓은것도 그렇지만 하산증을 떼주 면서 치료를 잘하라고 당부하던 박창장도 속창이 터질일이다. 말씨 한번 걸죽한 남도령감이 듣지 못하는 욕설을 퍼부었다.
    ㅡ 세상에 저런 문딩이 다 있다니? 어허, 나참 디러워서, 그동안 고양이 불알앓는 소리에 잠을 설친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숫구멍까지 솟구친당께. 짜아식, 능구렝이라두 그런 능구렝이 봤나? 암튼 정우, 늬 고생많았다. 그래두 사람은 먼저 착하구 보능기여, 그런 놈의 새끼는 아무데가도 싹수가 없는 놈인게루 업보를 받지 않나 보래이, 어참, 나 제정때 벼라별 노가다판에서 굴러다녔지만두 저런 버러지같은 놈은 못보았당께. 속은 우리가 분하고 분하디. 에익, 칵…   
    사실 지도부에서는 내말을 반신반의 한다고 하였다. 내말이 사실이라면 괘씸한 “도주병”을 다시 잡아들여야 한다고 벼르던차 어디서 어떻게 들어온 소식인지 신철 이네 온가족이 한창 불어치는 조선바람에 두만강을 건너가버렸다고 하였다. 신철이가 꾀병을 앓은 원인이 거기에 있은것이다. 박창장은 닭쫓던개 울쳐다보는격이 되였고 나는 또 한번 인간의 내심속에 들어찬 이런저런 악과 허위를 절감하며 가슴을 쳤다.                                       
                              
                                                     6. 함께 걷는 길                           
 
    춥고 지리한 심산의 겨울도 3월에 접어들면서 따스해지기 시작한 양광에 맥을 못추고 봄기운이 겨울이 누웠던 자리에 서서히 들어서기시작했다. 겨우내 목재를 실어내리던 발구길은 한낮이 되기도전에 눈석임물로 질척거려서 집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건만 하산명령이 없었다. 목재생산임무를 넘쳐 수행해야 한다는것이다. 집재 군들이 소를 다죽이겠다며 쉬는날이 잦아졌다.
    인심도 뒤숭숭해졌다. 채벌군중에 위성을 날리는 날에 70립방을 베여 넘겼다고 황통을 불어 지휘부의 표창까지 받아서 별호가 70립방이 된 사람이 그만 본의 아니게 제형을 죽인 변고가 생겼다. 70립방의 형은 베여 놓은 나무를 따라가며 토막 내는 “절통군”이였다. 어느날 점심무렵 벌목하던 동생이 배가 고프고 맥도 진했는지 《넘어간다.넘어간다.》라는 하산도(下山到)를 웨치지 않고 벙어리채벌을 하는 바람에 바로 아래쪽에 앉아 톺질하던 형이 그만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나무초리에 치여 목마른 죽음을 당했던것이다…
    아래골안에 지신공사에서도 인명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후에 알고보니 내매부네가 있는 승지촌에서 온 오령감이 한낮결에 난로에 땔 강대나무를 베러나갔 는데 날씨가 따뜻한지라 안전모는커녕 털모자도 쓰지 않았단다. 마침 오래 말라있던 강대나무를 발견하고 도끼질했는데 명이 그뿐이였던지 썩은 옹이가 울리면서 거꾸로 떨어져 맨수건을 동인 정수리에 박히는통에 끽소리 못하고 죽었다 한다. 지휘부에서 막판일수록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며 최후의 결전을 동원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
    실어내리는 나무가 없으면 저목장에서 목도군들도 일손을 쉬여야 했다. 남들은 하산준비로 떡구시를 판다 떡메를 만든다 하며 분주했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흥심이 없는 나는 쉬는 날이면 별목적없이 도끼를 차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한나절씩 앉아있었다. 목재생산임무를 초과완수한다고 수종을 가리지 않고 마구 채벌한 밀림은 새봄을 맞고있건만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눈이 녹아버리면서 여기저기 파괴와 아픔이 젖어들고 있는 끈끈한 습기속에 모든것이 탈진한듯 수림은 미동도 없다. 오직 절망적인 하소연과 적막과 공허만이 짙게 안겨들뿐이다.
   목재생산이란게 무어냐? 결국은 삼림을 파괴해버리는 우둔한 짓이 아니던가? 나로서는 생산과 파괴의 오묘한 경제학적인 원리를 알수 없었지만 이제 3십년이 못 되여 이 땅에 림업자원은 결딴나고 말것임을 분명하게 느껴졌다. (까짓걸, 내같은 하층인이 알게 뭐냐, 잘들 해봐라.) 
    나는 체념을 털어버리며 수림깊숙히 걸어들어갔다. 들어갈수록 태고적에 우수가 고즈넉하여 더없이 좋았다. 나는 알지 못할 위안을 받군한다. 눈앞의 리익을 챙기기 에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는 생각하는 략탈자들의 침해를 받지 않고 아직은 순수의 그것대로 남아있는 밀림의 내연성이, 고목들의 침묵과 사색하는듯한 그 자태가 좋았 다. 수림이야말로 대자연의 걸작이며 청산이야말로 대자연의 기념비가 아니던가?
    심산의 나무들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듯싶다. 완고하게 그리고 금욕적으로 기 다리며 세월과 더불어 침묵의 힘을 키우고있을가? 그러나 나무들이 언젠가 닥쳐올  종말을 예감하고 말이 없다고 앞질러 생각하면 공연히 서글퍼지는 마음이다. 도끼에 밑둥이 찍히고 톱날에 허리가 동강나고 그리고 산지사방으로 끌려가서 오리오리 갈리 는 자기네들의 운명을 자각하고있기에 저 가문비나무는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며 저 봇나무는 늘 창백한 모습으로 서있는게 아니랴!
    또 그래서 더 빽빽히 어깨를 겯고 더 키돋움을 하며 애목들을 키워가는게라고 생 각하면 밀림의 그 웅숭깊은 넋이 한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아무튼 아직까지도 숲은 강하고 억세고 저 오래오랜 침묵은 많은 무엇을 의미하고있는게 사실이다.
    나는 하얀 봇나무아래 절로 넘어진 진대통에 걸터앉아 애수와 고독에 흐는끼고 있었다. 내가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마른 나무가지를 밟는 소리가 났다. 이 깊은 숲에 누가 들어왔을가? 화들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동녀가 나무뒤에서 살며시 나타났다.
    ㅡ아니? 동녀였구만, 내가 여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고…
    ㅡ난 요즘 정우동무가 숲에 들어올 때마다 슬며시 따라서군했어요. 그저 멀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을뿐이였어요. 그런데 그냥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혹시 집생각을 하나요? 마을에 사랑하는 처녀라두 두고 왔나요?
    ㅡ이 나이에 처녀가 다 뭐야?
      나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내뱉았지만 동녀에게 정들대로 정들어 상상병을 앓는판이다. 나에게 있어서 동녀는 어쩐지 생소한 사람같지 않았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어덴가 아렴풋한 기억속에 남아 있던 그 사람같았다. 그러나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여직 그냥 옛날만 더듬다가 말군하였다…
      ㅡ참, 동녀도 집에 가고싶겠지뭐? 산에 들어온지도 여덟달이나 되였으니 어째 집생각이 나지 않겠소? 그런데 어떻게 이런 노가다판에 다 오게되였소?
      ㅡ그렇게 되였어요. 집이 하도 구차해서 엄마가 가지말라는것을 내고집대로 왔 어요. 결국은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우리 목재군들이 뜯겨도 너무 많이 뜯긴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저기 회계질하는 신학무가 신철이 삼촌이래요. 그들은…
    ㅡ쉿, 누가 듣겠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근거도 없이 말하다가…
나는 대견한 눈길로 동녀를 한동안 응시하다가 주머니에서 정교하게 만든 나무통을 꺼냈다.
    ㅡ자, 이걸 받소. 준다준다하면서 남의 눈이 무서워서…오늘은 어떻게 만나면 줄가하고 가지고 나왔더니… 전번 고동하에 량식을 실러갔다가 공소부에서 산거요.
    ㅡ 아니? 아이, 고와라. 고급분과 구름이네. 비싸겠는데 날 주자구 샀단말이예요?
    ㅡ 고맙긴, 내가 그동안 너무 신세져서 오히려 고마운편이요. 오빠가 주는것으로 여기고 받아두오.
    ㅡ 오빠라구요? 언제 오빠가 됐는데? 그럼 난 이걸 받을 생각이 없어요.
    ㅡ 왜?…그럼 한 남자가 주는것으로 주면 받겠단말이요?
     동녀는 얼굴이 일년감빛이 되여 입속으로 종알거렸다.
    ㅡ그래요, 그런 마음으로 준다면 아까워서 쓰지 않고 두고두고 보겠어요…
    며칠후 저녁무렵에 하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몇개월을 솔잎냄새 나는 눈녹인물을 먹으며 고역에 지쳐버린 목재군들속에서 70리도 넘는 고동하에 가서 소철을 탈게면 아예 이밤으로 떠나 관지역에 가서 화룡차를 타는게 낫다는 의론 이 벌어졌다. 그러자면 험한 남산령을 넘고 게굴라즈(계관리자산)라는 몇십리 골안을 빠져나가 천수동에 떨어지고 와룡동을 거쳐 관지역까지 200여 리길을 이튿날 오후 두시까지 대야 했다. 하건만 산판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이 한시가 급하다며 아예 저녁을 먹고 그냥 떠난다고 설레발쳤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걸직한 육담을 하는것을 잊지 않은 목재군들이였다. 말하자면 몸이 허약해져 먼저 집에 돌아간 덕신공사의 한 나그네가 역전까지 마중나온 안해와 함께 령을 넘어가다가 골짜기에 끌고내려가 해토무렵의 언땅에 자빠뜨려놓고 몇달 가물었던 운우지정을 쏟았는데 “범의 촉한”에 걸려서 집에 돌아간 며칠만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으니 모두들 집에 돌아가면 “범의 촉한”에 걸리지 않도록 너무 덤벼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로서는 알수 없었지만 한심했다.
…소를 몰고 가야 할 사람들이 남고 모두 너도나도 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나도 덩둘해서 이불짐을 꿍졌다. 다른 사람들은 매우시랑, 떡구시랑 넣다보니 짐이 무거웠 지만 나는 책몇권을 넣은 이불짐 하나뿐이였다. 내가 떠난다니 어디서 소식을 탐문 했는지 동녀도 부득부득 따라나섰다. 남도령감을 따라가지 왜 그러냐고 했더니 늙은이의 길동무인줄 아는가고 성냈다. 밤길을 갈만하냐고 다짐땄지만 한사코 간단다.
   …사실 마음이 급해서 밤길에 나서긴했지만 그렇게 경쾌한 걸음은 아니였다. 동녀는 잘 걷는가싶더니 두어고개를 넘어서부터 휘청거렸다. 그러다보니 앞사람들과 점점 떨어질수밖에 없었다. 단둘이 걷는 심산의 밤길은 무시무시했다. 부엉이 울음에도 와뜰 놀라는 동녀는 나에게 매달려 걷다싶이 했다. 나는 동녀 앞에서는 사내라는 체면을 잃을수 없어 극력 의젓하게 보이려 애썼다.
    ㅡ 아무 소리도 말고 걸음을 재우치오. 저기 어딘가 어른이 나타난것같소. 쉬ㅡ
    ㅡ 아이 무서워, 오빠 어쩔가? 돌아설수도 없고…
   ㅡ 언제는 오빠가 싫다더니 갑자기 오빠소리는?
   ㅡ 아이, 미워라, 언제 그런걸 따질경황이 있나요?
    동녀는 나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으며 좀처럼 걸으려하지 않았다. 등뒤에 서라 해도 그저 오돌오돌 떨기만 했다.
    ㅡ 그리 무서울걸 밤길을 떠난게 잘못이지. 참, 못된 계…
    ㅡ 아니, 정우오빠가 있는데 왜 무서워요? 하나도 무섭지 않네. 자, 가자요!
    나는 피씩 웃었다. 그제야 속히운줄 안 동녀가 내가슴을 주먹질하다가 내킨김에 와락 안겨들고말았다. 나도 얼결에 힘있게 껴안았다. 아무말도 없이 그대로 섰다.
    ㅡ 아이, 정말 맥이 다 빠져서 한걸음도 걸을수 없네. 좀 쉬였다가자요.
    ㅡ 이제 겨우 5십리나 걸었을가? 앞에 간 사람들을 놓치면 나도 길을 모른단 말이요. 그 이불짐 인주오. 내 멜빵을 잡고 눈을 감은채 걸으면 좀 나을거요.
   ㅡ 정말 졸려서 죽겠어요. 여기서 한잠 자고갔으면…
    나는 못들은체 했으나 웃음이 나왔다. 동녀는 거의 매달리다싶이 하며 걸었다. 그렇게 서로 부축하고 끌고하면서 천수동에 들어서니 날이 활짝 밝았다. 동녀가 간장에 졸인 짠지를 넣은 주먹밥을 내놓아 걸으면서 먹었다. 와룡촌에서도 길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다. 동녀가 아니였더면 나는 그냥 빈배로 걷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막 쓰러지려는 동녀를 끌고 오후 두시께 관지역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동녀를 거의 안아올리다싶이 하고 겨우 차에 올랐다.
    동녀는 기차가 떠나기전에 내 어깨에 머리를 얹고 곯아떨어졌다. 사람들이 야릇한 눈길로 보았지만 그런걸 따질 정황이 아니였다. 룡정역에 내리니 동녀의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동녀가 나를 인사시켰다. 모진 세파에 시달린 늙수그레한 동녀의 어머니는 처음에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일별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면구스러울 정도로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그 눈길을 피하며 딴전을 부렸다.
    ㅡ참 이러구 있을게 아니라 어디가서 좀 요기나 합시다. 우린 하루 종일 굶어서 걸었거든요. 제게 량표도 있고 돈도 있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앞장섰다. 정말이지 말할맥도 없었다. 그냥 빈속으로 모아산 아래까지 걸어간다는것은 안될일이였다. 식당이래야 벽돌장같이 시뻘건 수수떡이 있었다. 그나마 늘 사먹을수 있는게 아니다. 동녀모는 나에게 이것 저것 자꾸 물었다.
   ㅡ 총각은 딱 누구를 닮은 모습인데 얼핏 생각나지 않네, 전에는 어데서 살았소?
   ㅡ 예, 저 룡문교건너 룡강촌이 태생지입니다.
   ㅡ 에구, 그렇구나!그럼 부친의 명함이 정묵이지, 자넨 애명이 야조이구?!
   ㅡ 예, 어렸을때는 마을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렀수꾸마.
   나의 확답에 동녀의 어머니의 얼굴에 미묘한 그늘이 얼핏 비껴갔다.
   ㅡ아이구, 그랬구만. 그래 이애가 누군지 몰라보았소? 하기사 야가 여섯살때 토성포로 이사했고 세월이 10여년이나 흘렀으니까 그럴만도하지…쯧쯧….
    나도 놀랐거니와 동녀는 더구나 눈이 올롱해졌다. 아득히 흘러간 동년시절이 불현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ㅡ 아이, 참, 이제보니 오빠구나, 어쩐지…물어본다 물어본다 하면서…그랬구나. 야, 정말 꿈만같네.
   우리는 이렇게 알고나서야 옛그날의 모습들을 다시 확인하며 계면쩍게 웃었다.
   ㅡ 세월이 빠르기두 하지. 너희들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목재판에 다 굴러다니구, 그래 작은 엄마는 지금 생존이신가? 할빈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그리구 형들은 다 함께 있는가?
   ㅡ아닙니다. 할빈에서 식모로 고생하다가 3년전에 돌아갔습니다. 형들은 제각기 다 흩어져있습니다. 큰형은 조선에 나가구 둘째형도 할빈에 있수꾸마.
   ㅡ 에구 그 에미네는 고생두 많더니 끝내 락두 못보구 말았구나. 쯔쯧쯧…그럼 큰 어머니를 뫼시구 있겠구나. 원 저런….
    동녀모는 나를 다시다시 건너다 보면서 어두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집이 잘 살때에는 나의 생모와 형님동생하던 사이였는데 두집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남편들을 전염병으로 잃은데다가 두과부는 일송정아래 서덜밭에서 김도 함께 매고 겨울이면 함께 허드레장사랑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나갔던것이다.
   ㅡ우리 또 만나요. 네?
   동녀의 얼굴은 유난히 흥분에 젖어있었다. 여느때보다 정차게 깜박거리는 정찬눈, 긴속눈섭에 기쁨이 흘러넘치였고 선이 또렷하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입술은 이슬을 기다리는 꽃망울처럼 방싯이 벌려있었다. 천진하고 순결한 처녀들은 사랑이라는 황홀 한 이성지합의 세계에 끌리기만 하면 모든것을 사랑으로 느끼는 법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남자의 머리우에 후광을 씌워줌으로써 백마왕자로 만들어버 린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애정으로 남자를 속속들이 물들이려 한다. 소녀들의 실수란 언제나 착한것이라 밀어부치는데서 온다는것을 모른다. (그래, 산사람이니까 만날수야 있겠지, 그러나 마주보는 청산같을거야…)나는 이렇게 대답하려다가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동녀는 나를 오래오래 눈박아보았다.
                            
                                                 7. 애욕의 피리
 
    동녀모녀와 갈라져서 해저문 강둑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의 머리속에는 흘러간 어린시절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갔다. 두집 어른들이 하도 친하게 지내서 그 런지 나와 동녀도 사이가 자별했다. 눈만 뜨면 서로 찾아다녔고 함께 놀다가도 한이 불속에서 자기도 했다. 너는 각시, 너는 신랑재하며 붙어다니 던 소꿉동무였던 동녀가 그처럼 사랑스러운 처녀로 변한것을 떠올리며 가슴이 클클해 났다.
   비록 새 사회의 테두리밖에 뿌리워진 가련한 두씨앗들이였지만 모든 아이들이 가지는 제나름의 동년세계가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닫는 개꼬리도 밟는다고 먼지속에 나딩굴던 랑만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그런 동녀를, 고향의 죽마고우를 다시 만나게 되였으니 기우가 아닐수 없었다. 유년의 작은 세계는 더큰 세계의 모델이 될수 있다.
   그 친밀성이 동심에 강하게 인상지어지면 질수록 성인생활의 더 큰 세계에서는 그 옛날의 장난과도 같은 세계가 더정하게 느껴지는법이다. 이것은 의식의 발전이 아니라 리성의 발전이라 할것이다. 아무튼 나의 생활에서 동녀와의 기우는 가슴이 설레이게 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깊고 얕은 내심의 상처가 있지만 그 아픔은 저 혼자만이 감내하게 되여있다. 나의 상처를 두고 누군가 동정의 눈물은 흘수는 있어도 나의 상처의 아픔을 체험할수 없고 입술을 깨물어줄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이 내아픔이고 내상처가 되는것처럼 따뜻이 보듬어줄 사람이 어데 있으랴!  
   룡정이 지척이였지만 농사일에 뒤몰린 우리는 그동안 편지가 두어번 오갔을뿐 만 나지 못했다. 동녀는 편지에 새벽농대에 입학했다고 소식을 전해왔고 내가 한번 만나 러 간다고 하는 편지에 아직은 잠시 자기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말라고 하였다. 동성 중학교 나의 동창들도 여럿이 있는데 겨우 학교에 들어온 자기에게 몹시 불리하다는것이였다. 물론 리해하여 달라고 해석을 얹었지만 서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해가 지나고 이듬해 초겨울 재차 고동하 목재판에 들어가 다섯달을 일하고 나오니 3년 세월이 훌쩍 지난셈이다.
   “9.3” 광신공사 운동대회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동녀는 길흥대대 배구선수로 나왔고 나는 유신대대 축구대원으로 출전하게 되였다. 동녀는 배구를 잘 쳤다. 갈켠 한 몸집처럼 동작이 날썌였다. 2일간 운동대회를 하는기간 한번 렬군속식당에 가서 국수를 함께 먹고는 서로 찾을 겨를도 없었다. 운동대회가 끝나서 어둑어둑 날이 저물었는데 동녀가 찾아와 함께 자기 집으로 가자고 끌었다.
   ㅡ 집에 엄마가 별랗게 보겠는데?
   ㅡ 걱정마, 엄마는 지금 저 명동공사 공소부식당에서 화식원으로 가있어요.
   ㅡ 그럼 더구나 못가지,
   ㅡ 누가 밤을 자고가라고 붙들줄 아나베, 피ㅡ
   오래동안 그리워하기만 하던 동녀였는지라 나는 속으로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들 어 온다고 은근히 좋아했다. 식당에서 동녀가 좋아하는 국수를 먹고 길흥촌 7대에 있 다는 동녀의 집으로 갔다. 작은 골목길에 허수룩한 초가집이였는데 그나마 한칸이 그 의 집이란다. 방안에 들어서니 눈에 띄일만한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서발막 대 휘둘러도 거칠것이 없다는 그런 정도의 가난한 살림이였다. 하긴 나도 까래가 없 어서 가마니짝을 쪼개서 방에 펴고 살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아니였다.
   우리는 드디어 방애군이 없는 곳에서 단둘이 마주앉았다. 두눈이 딱 마주쳤다. 한쌍의 흑진주에 다시 한번 눈이 부시였다. 현혹하리만큼 매혹적이라는 표현은 너무 창백하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들말이 네굽을 놓고 들뛰였다. 열기띤 나의 심장의 급 촉한 박동이였다. 뒤따라 전신에 련속 짜릿한 환희의 전류가 굽이치면서 틈새리가 있기만 하면 분수처럼 솟구쳐올라올것 같았다. 공기도 응고되고 시간도 걸음을 멈추고 온 세상이 장미빛에 싸인듯 느껴졌다.
    떨어질줄 모르는 두쌍의 눈길들이 방전하는듯 싶더니 화산용암같은 열기가 뿜겨 나오는것을 서로 확인하며 대방을 녹이고있었다. 간다간다하며 아이 셋을 낳고 간다더니 내사 일어난다 일어난다 하며 어둠을 맞았고 밤길에라도 돌아간다고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야기를 하다하다 밤이 깊어지니 나는 주저앉았고 동녀도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   
   우리는 좁은 가마목에 나란히 누웠다. 이 시각을 위해서 동녀가 당돌하게 이런 밤을 마련한것일가? 그러나 아무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감히 녀자의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볼 계책도 없었고 두렵기도 하였다. 사랑하는 녀자를 지척에 두고 거세여지는 숨을 죽여야 하는 나의 가슴은 끓어도 백도로 끓어 사품치고있었다. 시시각각으로 기습해오는 호기심과 신비와 추구와 만족감 등 온갖 잡념들이 줄끊어진 구슬마냥 흩어지고 다시 한줄에 뀌여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이성과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마음을 다잡는 숫총각이 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동녀를 사랑하게 되였다는것은 기막힌 아름다움을 차지할수 있다는것, 그런 아름 다움을 받아안은 나야말로 량성으로 얽혀도는 이 인간세상에서 녀자복이 있다는것, 아무도 방애할것도 없는 깊은 밤, 생생한 녀자의 몸을 가슴넘치게 껴안고 신비의 처 녀지를 열수도 있다는 욕망에 시간은 달리고 가슴은 벌겋게 후끈 달아오르고있다.
    혈기방장한 젊은 남녀는 좋아졌을 때 아무짓이나 저지를수 있다. 가마안에서 펄펄 끓는 물을 식히려면 퍼냈다, 다시 넣었다 할것이 아니라 아예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개비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꺼낼수 있단말인가? 나는 제좋은 멋으로 자기를 동원하고있었다. 사랑하는 남녀끼리 억제하려는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몸에도 해롭다. 남녀의 감정은 시내물을 막는것과 같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왜냐하면 진실한 감정은 한가지 좋은 점 즉 애정생활을 가미하는 불가결의 조미료이기때문이다. 사랑은 선사하는게 아니라 육체와 함께 바치는 일이다.
    오직 생활자체가 그 어떤 의의를 가질때만이 지식도 명예도 보람이 있는것이다. 농민인 나로서는 사치한 앞날을 지향할수는 없지만 삶의 원초적인 의미만은 느끼며 살권리는 있다. 그런 막연하던 생각이 갑자기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해석해주고 있다. 지금 나의 삶의 가장 진실한 의미는 무엇인가? 왜 생에 대한 애착이 이 시각 더없이 강렬해지는것인가?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의 원천을 찾았다.
    바로 이것이다. 동녀의 말랑말랑한 입술과 아름다운 가슴과 그리고 그 신비의 미개척지였다. 나는 언어의 빈곤증을 느끼고있다. 말은 비록 마음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이성간의 오묘한 감정을 곧이곧대로 형상적으로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천진하고 순결하고 록음방초 우거진 숲속에 밑바닥을 알수 없는 작은 호수를 품고있는 오아시스같은 녀자라고 믿고싶었다. 처음 신비의 갑문을 여는 청년남녀들은 미칠듯 열렬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누가 썼더라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정욕과 흥분에 온몸이 전률할 때 어느 청년이 감정상에서의 은밀한 활동을 하지 않을가? 나는 그의 내의밑으로 손을 넣어 하미과같이 잔뜩 농익은 젖무덤을 보듬어 보다가 손으로 전달받는 향수로는 성차지 않아 옷을 훌쩍 걷어올리고 녀인들에게만 있는 아름다운 가슴의 풍경선을 보고싶었다. 분명 금방 시루에서 쪄낸 잘 부풀어오른 만두빛 같을 하얀 두봉우리, 그리고 그 두봉우리사이에 얼굴을 묻는다…간지럼 잘타는 동녀가 방울새의 울음같은 소리를 내며 가슴을 들먹이였다…
    …동녀의 급촉한 숨소리가 나의 혈관속에 불을 확 지폈다. 그녀의 속살이 파르르 떨리는듯싶었다. 동녀도 나를 힘껏 아래로 당겨안으며 미쁜 신음소리를 내였다. 나의 머리는 터질듯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당장이라도 팡ㅡ하고 터질것같다. 우리는 감정 의 격류속에 빠져들어 자기 완성을 재촉하고있었다. 무겁게 느껴질만큼 부풀어오른 동녀의 젖무덤이 내 가슴아래서 뭉클거린다.
    동녀가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물을 샅샅이 빨아넘기였다. 눈물샘이 터진듯이 살폿이 감은 눈가에 곧 질벅해지는 눈물, 눈물은 짭짜름했다. 나는 그가 괴로워서 그 러는줄로 알고 팔을 풀려고 약간 움쭉거렸다. 내목을 감았던 동녀의 오동통한 두팔 이 힘을 주어왔다. 나는 내심 그의 열정에 놀랐다. 자기를 절제하려던 나의 미동은 잠시였다.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동녀의 가슴에서 한초도 떨어지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상상은 해보았지만 이렇게 너무 빨리 동녀와 살을 섞을줄은 바라지 못했던 나인 지라 더는 놓쳐버릴수 없는 희열이 내육신에 굽이굽이 파도쳐갔다. 농익은 동녀의 육체가 나를 끝없는 무아의 안개속으로 빨아들였다. 녀자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과 더 불어 간간히 탄성이 터져나온다. 너무도 아름차게 안겨드는 격정 그 자체인가?...
    이제 부끄러울것도 구애될것도 없다. 우리는 다시, 또 다시 뜨거운 열정을 불태 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련속 불길을 내뿜는 활화산같은 욕정이였다. 동녀는 지칠줄 모르는듯 나를 받아들이였고 더 깊숙히 빠져들게 하였다. 창문이 희붐하게 밝아서야 우리는 몸을 풀었다. 방안은 썰렁했건만 나는 땀에 촉촉이 젖어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런 가동작도 필요하지 않은듯 무아경지에 잠겨 누워있었다…….
    ㅡ정우오빠, 악몽을 꿨는가요? 어찌 그리 무서운 소리를 내요? 아이, 무서워…
잠기어린 동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밑창없는 환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놀래우기에는 족하였다. 와뜰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내가 한창 미친 환각에 빠져있었고 저도 모르게 짜낸 신음같은 오열이 그녀에게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으르 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을가? 나는 혼자 좋다가 만 자신이 형편없다고 느끼였다.
   ㅡ 아, 내가 꿈을 꾸었나? 꿈을 꾸지 않은것같은데…
   ㅡ 새벽이 오는것같아요. 오빠…나…이렇게 누웠는데 아무 감각도…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해서 결정한것인데…오빠는 감정이 도끼등이였나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할게요. 오늘 나를 다 가져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지금 내가 오빠와 한평 생 같이할수 있는 방법은 이러는것밖에 없었어요.
    엄마는 오빠가 룡강촌 최씨네 널대문집에 아들이란것을 알고 질색해요,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국이 시국이라서 오빠와는 안된다고 딱 말리는거예요. 나도 밑바 닥은 오빠와 다를게 없지만 엄마가 내가 어릴때 성분이 좋은 사람에게 재가한후 지금 내성분은 빈농으로 돼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벌떡 일어나 앉으려는데 동녀의 팔이 내가슴을 눌렀다.
    ㅡ 움직이지마, 그냥 이렇게 누워있어요.
    ㅡ 나도 동녀엄마의 마음을 알고있어. 그렇게 할수밖에 없겠지? 운명같아, 나… 그런데 내가 동녀말대로 하면 후과가 어떻게 될가? 오늘은 동녀가 좋아서 그러자고 해도 곧 후회할지 누가 알게? 내가 혼자 괴로워한줄 너도 알았지? 그러면서도 자는 체하고 내가 폭발적인 동작을 할가봐 경계하였지?
   ㅡ 바보, 이러는 내가 저절로도 부끄러워 죽을지경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동녀가 내 이불안으로 홀짝 건너오더니 내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꼼짝마…) 나는 다시 장소도, 시간도 잊고 고요한 수면위에 누워 함께 떠내려가는듯한 황홀경속에 빠져버렸다. 동녀의 머리카락이 나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다시 질풍노도가 내몸의 밑으로부터 밀려오고있었다. 분명 내밀고있을 그녀의 조그마한 입에서 달콤한 열기가 뿜기고 숨을 할딱거리고있다. 동녀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나를 제몸위에 끌어당기려는 몸짓을 했지만 나는 그냥 부등켜안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ㅡ 야, 오늘 우리 그저 이렇게 하고있자, 더두 말구, 나 이렇게라도 너무 좋아… 지금 일을 치면 쓴죽이 될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린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니? 그리고 정말 모르지 세월이 더 험해지면 너의 마음도 어떻게 별할지…
    나는 스므살 청년답지 않게 스스로에게 자신의 처지를 일꺠우며 피를 역류시키 고 있는 격정의 정수리에 갖지않은 리성의      랭수를 끼얹고 있는것인가?내 얼굴은 분명 보기싫게 이그러지고 있었을것이다. 동녀는 내 가슴우에 엎디여 창문으로 새여드 는 희미한 빛을 빌어 나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그러는 동녀를 올려다보는데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내얼굴에 떨어졌다. 가슴속에는 한없는 비애가 고패쳤다. 그 처량한 기운이 점점 팽창하며 가슴을 조이는듯했다. 동녀는 다시 자기의 풍만한 가슴으로 나를 있는 힘껏 짓눌렀다. 그러면서 연신 ( 바보야, 바보야…)하고 뇌까렸다.
    나의 가슴밑에서 숫처녀의 철옹성을 열어주려던 동녀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르 나 오히려 그 보드라운 손으로 나의 맨가슴을 더듬고있었다. 나는 그러는 녀자를 부서져라 거칠게 휘감았았다. 그러나 짜릿한 부딪침속에서 무언가 폭발하가봐 이를 악물며 그렇게 엉켜있기만 하였다. 육욕은 서정이 아니며 이성에게서 부단히 전달되 는 신비한 감각은 리성을 얼마든지 무너뜨릴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육신은 더 이상 태동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너무 크낙 한 충격에 웅성을 잃고 이발빠진 호랑이가 되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혹시 병신인지도 모르지…)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뜨겁고 쫀득쫀득한 동녀의 입술이 내입을 덮어버렸다. 오래오래…또 다른 욕정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들고있었다…
    ㅡ믿어지지 않을만큼 이상한 남자야, 고마워,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오는 나를 몰라주니 너 정말 괴짜야? 오늘은 좋아, 나 오빠에게 시집가고말테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요. 내가 농대를 졸업하고 우리 같이 살자, 응?!
동녀가 내가슴에서 슬며시 물러나자 나도 일어나서 부엌봉당에 걸터앉아 담배 한대를 뽑아들었다. 동녀한테 온다니까 큰 마음먹고 산 30전짜리 영춘담배다.
    ㅡ 불을 때줄래? 아침을 일찌기 해먹고 우리 함께 해란길로 내려가자. 나 오늘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응?
내가 부엌에 내려가 석탄불을 피우려고 한참이나 부시럭거리는데 동녀가 홀짝 뛰여들어 내곁에 비비고 앉았다. 가뜩이나 좁은 부엌이 꽉찼다. 온 부엌안이 뭉글거 리고 따스한 육감으로 가득차올랐다.
    ㅡ 나무만 때던 촌바이가 석탄불 피울줄이나 알겠나? 자, 이렇게 내가 불을 피워 줄테니 풍구를 살살 돌리며 천천히 석탄을 떠넣으면 돼…
    동녀는 배구선수답게 가벼운 동작으로 부엌에서 뛰쳐나가더니 토기함밖에 쌀을 씻어서 가마에 앉혔다. 가마가 싱싱 끓어번졌다. 검댕이가 묻어있는 내얼굴을 내려다 보는 동녀의 정찬 눈길에 나와 그의 온세계가 담겨있었다. 그옛날 일송정 산기슭에서 달래랑, 밥조개랑 캐놓고 세감지를 놀던 일이 방불히 떠오르며 나는 빙긋이 웃음을 물었다. 동녀도 하얀 두볼에 붉은 볼우물을 파고있었다. 웃음이란 전염되는법이다. 나도 바보처러 벌쭉 웃어버렸다.
    ㅡ 왜 웃어요? 어릴때도 그렇게 웃을 때는 딱 바보같더라니까 호호호…
    ㅡ 우리 그때 먹지도 못하는 밥을 많이도 지었지?
    ㅡ 그때 심술도 많이 부렸지요?
    ㅡ 얘, 밥이 타는것같구나.
    ㅡ 좀 타면 어때요? 가마치랑 나눠먹지뭐, 선밥보다 낫지 않아요?
    인제 제법 유모아까지 해댄다. 내게 이렇게 고운 녀자가 있게 되였다는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와 함께 살며 나를 의식해주는 동녀가 나에게 있다는것은 한평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목수가 재목을 가늠하듯 동녀의 말쑥하고 곱살한 얼굴을 새삼스레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일부러 지어내는것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미안해 하는 표정과 래일을 약속하는 밝은 미소가 9월의 국화꽃처럼 피여있었다.
    사랑하는 녀자가 생겼다는것은 한 청년의 생활과 운명에서 획기적인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하며 현명해질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지…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앞에서 현명해질수 없어도 좋았다. 동녀를 보면 우울한 기분, 슬픈생각, 운명의 장난에 대한 억울한 생각도 잠시 사라지고 그대신 인생을 사랑하게 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할수 있을것만 같았느니 말이다.
    우리는 나란히 집을 나서 룡정발전창 뒤 일컬어 련애공원이란 백양나무숲을 지나 해란촌을 꿰지른 길로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만남이 없으면 우정과 사랑이 없듯이 리별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다. 우리는 룡산다리에 란간에 기대여 조용히 흐르는 해란강물결을 굽어보며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ㅡ 동녀, 출신이니 계급이니, 문벌이니 하는것을 초월해서 불행한 두운명이 서로 결합한다면 어떠한 인생고도 겪어나갈수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도 자기 생명의 빛을 발산할 권리마저 포기할수는 없지, 나를 믿고 따라주오. 개살구, 호박꽃에도 봄볕은 따사로울때가 있으리마 믿소. 동녀가 나와 함께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나의 호소는 절절하였고 눈물겨움도록 진심이였다. 무참히 서리맞은 순정의 동산에 새봄이 오는 기쁨을 가슴깊이 느끼면서 나는 동녀의 손을 꽉 잡아쥐였다. 그렇게 헤여진후 우리는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과 그리움을 체크하군 하였다.
   그렇게 또 일년이 훌쩍 지나갔다. “9.3”명절을 앞둔 어느 날 동녀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여느때보다 얇다란 봉투가 어떤 예감을 안겨주는듯 싶었다. 오가는 련정을 편지의 길이로 흥량할수는 없지만 여태껏 이렇게 엷은 편지봉투를 보낸적이 없는 동녀였다. 나는 편지봉투를 뜯기가 겁이났다. 내가 동녀의 순정과 충성을 의심한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별스러운 감각이 들뿐이다. 과연 길게 쓰지 않았다.
 
      정우오빠,
   
     이렇게 불러보는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콱 죽어버리기도 싶지만 그렇게 강한 녀자가 못된 자신이 저주스러워요. 눈물로 마음를 딖아내고 또 수백번 딖아내도 견딜수가 없어 가슴이 먼저 울고있으니 몇글자 적지도 못합니다.
    오늘 따라 하늘이 새까맣게 흐려있군요. 불붙는 가슴을 찬비에 적시며 눈물를 삼키고 억지로 써요. 내마음에속에서는 언녕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 편지를 정서적으로 쓸 경황도 없고 그렇게 쓸 필요도 없게 되였어요. 내가 왜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해야 하는지 나도 모릅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다 미워집니다. 당신마저도…
    정우오빠, 작별입니다.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꿈에나 생각했겠어요? 그러나 운명은 우리를 여기서 갈라놓는것 같아요, 아니, 모든게 제잘못이에요, 배반 하고 가는 년이 무슨 구실이야 없겠어요. 그러나 나는 배반하고싶어 배반하는것이 아 니라는것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고 묻지도 마세요, 그것을 해석할 힘도, 용기도 없어요, 그리고 해석을 한다 하더라도 오빠는 납득되지 않아할것이고 이미 엎지른 물사발, 아니 내가 잘못해서 떨어뜨린 꽃병이 된 나. 죽을때까지 오빠를 생각하겠지만 만나는 일이 없이 산골에 처박혀 살다가 죽을것입니다.
    부디 좋은 녀자를 만나 행복하시라고 축원할 마음의 여지도 없어요. 내가 좋아서 등을 돌리는것이라면 가면으로라도 축복하겠지만 나 거짓을 말할수 없군요. 너무너무 사랑했던 나의 남자. 그러나 가져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나를 잊어주세요. 눈물 이 자꾸 나서 더 쓰지 못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살면서 좋은 앞날을 개척하기를 빌고 빌어요. 잘있어요.
                      
                                           1963년 8월 21일
                                
                                                                      당신을 사랑했던 동녀
 
   그런줄 모르고 나는 알뜰한 사랑의 정을 보듬으며 동녀를 만날 일만 생각하면서 나날을 보냈으니 내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몽둥이에 호되게 얻어맞은듯 얼이 쑥 빠져버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투끈이란 말인가? 나는 동녀를 내사랑의 천사로 새기 며 나의 에덴동산을 그려보았는데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 녀자의 마음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사랑의 천사란 없는것인가?
    사랑에는 중간계단이란 없다. 사랑이 요람으로 되지 않으면 무덤으로 되고말뿐이다. 나는 동녀에게 저주를 퍼부을수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고 그녀를 저주의 기둥에 매달수야 없지 않은가? 어떤 불안을 앞세운 사랑이였지만 이렇듯 싱겁게 끝날줄은 꿈 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을수도 없이 어정쩡한채 나는 뜨거눈 눈물을 삼킬수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천구백구심삼년 사월, 새해 사범지망생의 면접시험을 보기 전날 점심무렵이였다. 한사무실에 있는 문선생이 수업을 마치고 만났는지 복도에 한 녀자손님이 찾는다고 일렀다. 문을 열고 나서자 눈에 안겨오느니 낡은 코트를 입은 늙수그레한 녀인이 어 줍어하며 마주 다가왔다.
    ㅡ아이구, 믿기지 않은 마음으로 찾아왔더니 정말이였네,
    알듯말듯한 얼굴이였다. 그러나 그녀자의 입에서 내이름이 나오자 그가 누구인지 를 떠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나온 내삶의 궤적이 엿가락처럼 한꺼번에 뒤틀려버리는듯한 허탈감과 고통스러움이 나를 어리둥절하에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깡그리 잊지는 않아으나 다시 기억의 노트에 이름이 올려질 가봐 겁나던 녀자의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동녀였다.
    ㅡ렴치없이 찾아왔지만 제가 동녀라구요, 나는 첫눈에 알아보았는데…
    나는 동녀에게 무어라 말할수 없었다. 수국처럼 탐스럽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이 아니였다. 녀자들이 나이들면 으례히 그러하겠지만 옛날의 아름다운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생고를 많이도 겪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련민의 정이 왈칵 솟아났다. 말아삼킬듯 서글서글하던 눈은 어데로 가고 눈물이 그들먹하게 고인 한쌍의 빛을 잃은 눈은 마주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옛날엔 할낏 쳐다볼때마다 전기에 닿인것처럼 심장마저 쩌릿해났는데 왜 내가 이렇게 무감동의 상태에 굳어지는가? 반가움과 신비의 대신 슬픔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오르면서 울화만 타래쳐올랐다. 나도 무정세월에 언뜻 중늙은이가 다되였지만 동녀에게만은 세월이 유독 잔혹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멍청해 선 내모습과 딱한 표정 을 지은 한 농촌녀인의 모습이 남의 눈에 걸릴가봐 교문밖을 빠져나와 연집강 강둑 아래로 내려가 앉았다.
    ㅡ이렇게 찾아올줄은 몰랐지요? 나도 죽어도 찾아오고싶지 않은 길이였어요. 용 서해달라는 말도 할수 없어요. 다만 에미된 마음은 속일수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우리 막내딸이 도문5중을 졸업했는데 이 사범학교에 온다고 야단이에요. 그런데 키가 표준에 말랑말랑해서 반주임이 정우선생님을 소개해주더군요. 몇해전까지 한교연실에 있다가 연길로 전근해 간 선생이라며 제이름 대고 청들라고 해서…
   내게는 지금 면접시험에서 보지도 못한 동녀의 막내딸을 위해 힘을 쓸것인지 말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나긴 세월의 갈피갈피에 얽혀있을 그녀의 이왕지사를 캐여물을 생각도 없었다. 해보아야 모두가 지난 이야기요 들어봐야 속만 상할 일이 아닌가? 무어라 할말이 없다는 동녀를 넌지시 지켜보는 내마음은 그저 착잡하다는 메마른 단어로 형용하기엔 너무 역부족이였다.
    동녀는 팔도서 살다가 도문시 벽수동으로 이사가고 나그네가 술중독으로 맨날 주정을 패다가 죽은후 도문시내에 들어가 양복점을 하며 산다고, 아들은 대학을 졸업시켰다고 많은 말을 했지만 나는 위로해야 할지, 축하해야 할지 몰랐다. 한때 너 무너무 깊이 사랑했던 녀자의 처경이 불행하게 되여있다면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가? 잘코사니를 불러야 하는가?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처절한것이였다.
    얌치만 군밤처럼 주어먹은 그런 입살 드센 농촌아낙네가 된것같지 않은 동녀였지만 어째 순수의 인간의 정이라도 달아오르지 않을가? 동녀의 시린 가슴에는 삼검불 로 얽혀진 번뇌의 덩어리로 가득차 있을것이다. 그냥 목이 메여하고 숨이 가빠하는 모습이 그것을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젯날 동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싫증을 모르는 끝없는 감각속에서 두심장이 조 화로운 희열을 만들어내는것이였다. 동녀도 아름다운 동경이 폭풍우에 휘말린 쪽배와 같이 뒤집어질수 있다는것을 자각하였으리라. 그녀는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일어섰다. 나는 그를 바랠 성의가 나지 않았다. 강둑길을 따라 휘청휘청 걸어가는 그 의 무너져버린 모습을 보며 나는 망두석처럼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동녀의 편지.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나의 정다운 당신,
    며칠을 벼르고 며칠을 두고 이렇게 쓴 편지를 당신에게 두고가니 읽어주세요. 이 편지를 쓰는 며칠동안 몇십년 동안의 일들이 안개처럼 눈앞에 피여올랐어요. 부끄러 움과 자기 미움은 구름처럼 밀려오고 아름다운 추억은 벌떼처럼 밀려들었어요. 모든 것이 뒤엉키여 한덩어리를 이루는 통에 어느것도 쫓아버릴수 없었어요. 나는 인생을 실패하고나서 진정한 사랑을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깨달았어요.
    이제 말해야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려운 세월 그렇듯 조심조심 지켜오고 소중히 간직해온 처녀의 순정을 열어놓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아들딸 낳고 무더기 사랑을 쏟으면 살아가고 싶었던 이 동녀였습니다. 출신이라는 보이지 않으나 무서운 바줄을 사랑의 도끼로 툭툭 끊어버리고 고독과 외로움을 모르는 순박한 농민의 안해로 살아 도 원망하지 않을 저였어요. 당신이 그렇게 내행복과 사랑을 마련해줄 사람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내인생이 이렇게 꼬일줄을 정말 몰랐어요, 저를 저주해도 좋아요..
    이 동녀가 마음먹고 당신을 배반하려 한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자세하게 쓰면 오히려 구차한 변명으로 생각되겠지만 꼭 당신에게만 하는 호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절규이기도 하니 끝까지 읽어주면 노여움이 조금 풀릴지… 그렇게 제가 생각하지 않은 때, 생각하지 않은 곳으로, 그리고 생각하지 않던 남자에 게 시집을 가지 않으면 안되게끔 악몽을 꾼후 나는 평생 눈물을 삼키며 살았어요.
    내인생의 비극이 막이 열릴 문어귀에서 제가 똑똑한 녀자답게 처신하지 못한 죄값이지요. 일이 그렇게 되니 나는 당신에게 더 무엇을 바랄수 없는 찢어진 녀자가 되였고 수없이 가슴을 치며 짓씹은 후회라도 다 거짓말처럼 들릴거예요.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나서 시들어버린 내사랑의 동산에 새봄이 오는줄로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어 요. 당신이 없는 행복이란 내게 없다는것을 내내 생각하며 이렇게 늙어버렸어요…
    운명은 사람을 잘 조롱한다고 하였지만 내가 인생을 잘못 리해한것이였어요. 당신과 밤을 패며 입방아만 찧고 아침을 함께 지어먹었던 그날, 우리가 함께 집을 나설때 옆집에 아주머니가 보았던거예요. 그걸 후에 우리 엄마한테 얘기한후 일이 심상치 않다며 하루빨리 남자를 찾아 시집을 보낸다고 서둘렀어요.
    엄마의 견결한 반대에 두언니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갈팡질팡하던 때 내가 그만 실신하게 되였으니 나의 몸과 마음은 물이 몽땅 새여나간 나무통처럼 텅비여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터갈라지고 쪼각쪼각 박산나있어요. 다행히 참한 아들 딸들이 있어 위로되지만 애들이 내 아픈 과거를 돌려줄수 없고 내가 사랑한 남자에게 서 받으려던 잃어버린 사랑을 메꾸어줄수 없으니 나는 그냥 괴롭고 슬퍼요…
    왜 그날밤 그렇게 머저리처럼 있었던가요? 사랑하는 녀자를 곁에 눕혀놓고도 혼 자 끙끙거리는 당신의 괴로운 인내를 녀자의 피부로 느끼며 나는 마음의 속옷을 하나 하나 벗어던지며 기다렸어요, 끓고있는 당신의 뜨거운 육체에서 금시라도 폭발할 격정이 봇도랑물처럼 터지리라는 예감에 내살이 포르르 떨리고있었다는것을 몰랐던 가요? 아,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부끄럽고 그래서 더 슬퍼지는것입니다…
 
   더 읽어내려갈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것 같았다. 마른 하늘에 천둥소리, 지진, 때 아닌 안개…나는 머리속이 헝클어졌도 가슴이 답답해 났다. 하늘이 너무 창백하였고 층집과 나무들과 강물이 거꾸로 돌아가는것 같았다. 나는 강둑에 박아놓은 커다란 돌 처럼 그자리에 굳어졌다. 구중천에 날아가버린 황당하고도 허무한 사랑의 꿈, 나는 연거퍼 담배를 붙여물었다. 담배에 암을 초래하는 물질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지골로 되여있다. 너무 여러대를 피워서 입술이 씁쓸해났고 혀바닥이 뻣뻣해 나고 속이 메슥메슥해났다. 동녀가 앞에 있다면 거칠고 거친 욕을 퍼부을것 같았다.
    마음을 조금 갈아앉힌후 편지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잘 알수 없는 몽골문편지나 읽는듯이 간신히 한줄한줄 읽었다. 동녀가 왜 나에게 이런 만장지서를 남겨주었는지 모른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려는 옥생각으로 사범생이 되려는 자기 딸에게마저 관 심의 손길을 거두지 말라는 절절한 내심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로서의 리 유인지 변명인지의 전후사연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9.3”에 또 룡정에서 가만히 만날 기대를 안고있는데 팔도에 있는 잘 아는 집의 남자가 놀러왔다는것이였다. 그는 룡정 토성포에서 살때 이웃이 되여 자기 엄마와 언니동생하며 살던 집의 아들이였는데 그때 벌써 로총각이였다. 동녀는 어릴때부터 친척오빠처럼 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들이 팔도로 이사간후 엄마를 따라 팔도에 가서 살구랑, 왜지랑 가져다 먹군하다보니 무랍없는 사이가 되였단다.
    남자가 자기네 집에가서 왜지도 먹고하면서 놀러가지 않겠는가고 말을 꺼내자 엄마가 적극 나섰단다. 별로 가고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왜지를 먹어본지 오래다며 기어이 다녀오란다. 그래서 그 남자를 묻어갔는데 가고보니 딴판이였단다. 온마을 사람들이 그집에 모여앉아 있는데 자기가 들어서니 시내새기가 이런 산골에 시집을 오려하니 조련찮다는둥 로총각이 어디서 선녀를 데려왔다는둥 하며 치하하는데는 무슨 감투끈이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 남자의 누이되는 아주머니를 끌어 내다 따지니 이미 엄마랑 의논이 된 일인데 모르고 따라왔느냐고 하였다. 지금 한창 약혼택을 내는중이라는 말에 기혼할번 했단다.
    동녀가 길길이 뛰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고집을 쓰자 그 누이되는 녀자가 자기 집에 데려다놓고 해석에 해석을 가하다가 정 마음에 없으면 그저 집안망신을 한셈치 고 밝는 날 곱게 집에 돌려보냈겠다고 구슬렸단다. 그래서 저녁도 굶은채 밤새 흐느 끼면서 잠못들다가 밤중에 가슴이 답답하고 몸의 어딘가 찢기는듯 아파서 깨여나 보니 술내가 진동하는 그 남자가 이미 자기를 짓뭉개고 있더라는것이였다. 동녀가 발악을 하며 뿌리쳤지만 일은 이미 돌이킬수 없게 되였다고 한다…그리고 한달후 자 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것이다.
    …그때만도 처녀가 어떻게 실신했든 한남자에게 몸을 맡겼으면 울며겨자먹기라도 시집을 가야 하던 시대였으니 조금 리해될것같으면서도 이건 무슨 3류소설을 엮는 것같아서 놀림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편지사연은 그러했다. 이제 그녀 를 위해 애석해 하고 분노하고 통탄한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동녀가 자기의 인생을 변명하기 위해 녀자의 잔머리를 굴려 황당한 이야기로 연막을 치려하는것 같 지도 않아서 나는 더구나 어처구니 없었다.
누군가는 사람이 과거를 회억하는 기쁨때문에 살아가고 또 그것때문에 고통도 지워버릴수 있다고 썼더라만 내게는 어느것도 아니였다. 우리의 이번 만남은 실로 황 당하고 진저리쳐지는 만남이였다. 인생길은 선회라고 리해해야 하는가?굽이굽이 돌아 올라가기도 하고 또 에돌아 내려올수도 있는건가?
    이미 해빙이 된 연집강에 산등을 타고 내려오는 봄바람이 훈훈하였지만 내게는 강물이 다시 얼어붙고 나는 그 살얼음 위를 맨발로 헤매는 환각이 왔다. 인생이란 얼마나 고약한가? 동녀의 딸을 가르치게 될수도 있으니 참으로 내 인생은 지그재그라 할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초라한 내모습이 아닐수 없다.
   무릇 사랑이란 유감과 고통만을 안겨준다지만 잃어버린 사랑은 더구나 치명적이 아니겠는가? 어긋난 사랑의 갈림길에서 세월은 많이도 비껴갔지만 나의 사랑의 피난처는 어디에 있었고 내 사랑의 보루는 어디에 있었던가? 어쩌면 숙명이기도 한 우리 의 사랑이라 하겠지만 아름다운 사랑도 이토록 헤여날길이 없는 슬픔이 되는것을 다시한번 새겨주고 간 나의 미운 동녀야, 해저문 인생길은 평안무사하기만 바란다….
 
 
                                   1963년  9월 ㅡ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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