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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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조의 발전양상 (손정정)
2013년 01월 24일 17시 41분  조회:940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摘 要
 
       时调是朝鲜时期具有代表性的诗歌重要形式,时调作为一种诗歌,它以艺术的形式再现了当时社会的政治以及人民生活的真实面貌,是我们考察以及研究古时社会面貌的重要依据。
       关于时调的起源有高丽中期之说,新罗末高丽初之说,高丽末之说,朝鲜初之说,朝鲜末期之说等等各种各样的说法,但是时调的形态真正形成却是在朝鲜时期。朝鲜时期,时调从兴起到发展,经历了很多,各个时期时调都呈现出不同的发展样像,对于时期我们可以从朝鲜前期和朝鲜后期两个方面来观察。对于时调内容本质的变化我们可以从作家层的变化,中心思想的变化,素材的变化,句型上的变化,以及音乐层面上的变化来考察。但是对时调的这些研究总的来说还是要进行在时调的基本特征上来。
对韩国古代文学的重要研究是了解古代人民生活的一个重要方法,而时调则是堪称韩国古代文学的精华的一种文学形式,所以对于时调的继续研究是具有重要价值。
 
关键语:时调 面貌 朝鲜时期 精华 特征
 
                                       초 록
 
시조는 조선시기에 대표성을 띤 시가의 중요한 형식으로서 시조가 일종 시가로 되여진 후 이런 예술형식은 사회적 정치 및 인민생활의 진실한 면모를 재형하였는 바 우리들이 고대사회의 면모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거로 되고 있다.
시조의 기원에 대하여 고려중기에 기원했다는 설, 신라말 고려초라는 설, 고려말설, 조선초기설, 조선말기설 등등 각이한 설법들이 있다. 그러나 시조의 형태의 진정한 형성은 바로 조선 시기로 보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조선시기, 시조의 흥기로부터 발전에 이르기까지 오랜 발전과 정을 겪어왔는 데 각개 시기의 시조는 모두 부동한 발전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기에 대하여 조선전기와 조선후기 두개 방면으로 고찰할 수 있다. 시조의 내용의 본질적 변화에서 우리는 작가층의 변화, 중심사상의 변화, 소재의 변화 문형상의 변화 및 음악상에서의 변화 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 시조의 이러한 연구는 총적으로 말한다면 시조의 기본 특징상에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 고대문학의 중요한 연구 는 고대인민들의 생활에 대해 요해하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시조 가 한국고대문학의 정화로서의 일종 문학형식이므로 시조의 발 전양상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연구가치가 있고 여겨진다.
 
키워드: 시조 면모 조선시기 정화 특징
 
차 례
 서론…………………………………………………………………………….
1. 연구목적과 의의
2. 시조의 발생과 기원의 선행연구
3. 연구 범위와 방법
 본론…………………………………………………………………………………
1.시조의 기원과 발생
1.1조선 전기의 시조
1.2조선 후기의 시조 
2.시조양상의 변화
2.1 작가층의 변화
2.2 이데올로기의 변화
2.3소재의 변화
2.4 연행상의 차이
2.5 음악적 측면에서 시조의 흐름
3. 시조의 일반 특징
결론………………………………………………………………………………….
참고문헌………………………………………………………………………………. 감사의 말………………………………………………………………………………
 
 
                                            서론
 
1. 연구 목적과 의의
한국 문학사에서 시조(時調)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시가이자, 사대부의 시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역대의 평론가들이 시조에 대 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은 시조야말로 뛰어난 한국문학의 유산이며, 그 연원이 아득한 한국의 고유한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조의 흥성기였던 조선조 시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는  심원한 의의가 있다.
2. 기존 연구사 검토
시조의 발생시기에 관한 논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시조가 고려말엽에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시조의 발생시기를 둘러싸고 이와 같은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시조 발생론 자체에 대한 연구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일단 확실한 논거를 확보하고 있는 16세기를 기점으로 삼아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방법과 시각을 동원하여 그 이전 시기를 재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
3. 연구범위와 방법
필자는 조선조 시대 시조의 전개 양상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학설들을 검토하였으며, 시조문학의 당담 층인 사대부와 시조와의 연관성을 찾으며 조선시대 시조 작품들을 섭렵하였다. 또한 사대부 이외 또 다른 시조의 담당층인 기녀들을 중심으로 창작된 기녀 시조도 함께 살펴보았다.
본논문에서는 특히 선행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역사주의 연구방법과 실증 주의 방법으로 조선조 시가문학의 꽃이자 ‘국민문학’이라 평가받은 조선 시대 시조의 발전양상을 문학적 측면에서 재고찰하려 한다.
 
                                               본론

1. 시조의 발생
뿌리 없는 나무가 무성할 수 없듯이 조선조 시조의 발생과 발전 양상을 살펴 보기전에 시조의 발생과 기원에 대하여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순리일 것이다. 시조의 기원설로는 외래기원설, 재래기원설, 그리고 향가에서 기원 했다는 설 등 여러 가자가 있다. 향가가 의미상 3개의 단락으로 되었다는 점이나,〈균여 전〉의 향가에 대한 최행귀(崔行歸)의 언급 가운데 나오는 삼구육명 (三九六名)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시조의 3장 형식과 흡사하다는 데서 나온 추리다.
시조의 발생을 두고 한국 시조형식이 고려 중엽에 발생하였다는 설, 신라말 고려 초엽설, 고려 말엽설, 조선 초엽설, 조선 중엽설 등 각이한 설법이 있으나 시조의 형태가 완성된 시기는 조선시대에 와서라는 주장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조는 고려조 말기에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하나, 시조의 형태가 완성된 시기는 조선시대였다고 하는 것이 주류이다. 하여 필자는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나누어서 이 문제를 살펴본다.
1.1 조선 전기의 시조의 양상
이 시기에는 단종의 퇴위에 관련된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이 자기들의 절개를 읊은 작품들이 많은데,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등의 절의가와 함께 15세기의 시조작품으로 한가롭고 평화로운 경치를 읊은 서경시가 등장하였다. 새로 건국된 조선왕조가 안정되면서 사대부의 여유 있는 생활이 시조의 소재가 되고, 낙관적이며 관조적인 사고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시조의 주제를 이루었다.
자연미를 감상하면서 유교적인 충의를 노래하는 것이 이 시기 시조의 특징이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4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평화로운 삶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은혜라는 뜻의 종장이 반복되는 연시조로서 그 뒤 계속된 서경시의 한 전형이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건국 당시의 공훈으로 권위를 유지해온 옛 세력 에게 도전하는 신흥세력의 역량이 축적되자, 조선왕조의 정치사를 지배하 는 이른바 붕당정치가 전개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시조에 반영되어 신흠(申欽)·이항복(李恒福) 등의 작품에서는 붕당정치로 인해 인재들에 대한 애석함, 서경덕(徐敬德)·권호문(權好文) 등의 작품에서는 자기수행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적인 자성(自省) 등이 주제로 나타났 다. 이들 유학자들은 붕당정치에 패배하고 먼 곳에서 귀양살이를 할망정 군주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시조는 세 방향에서 각기 우수한 작품을 산출하 였는데, 그 하나는 이황(李滉)의《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 (高山 九曲歌)》로, 여기에서는 정치적 이념과 태도가 저변에 깔린 채 자연에 투영된 인생관의 한 극치를 시조가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정철(鄭澈)의 《훈민가(訓民歌)》처럼 유교적 윤리관을 주제로 하되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부류이다. 그리고 황진이(黃眞伊)로 대표되는 기녀들의 작품으로서 구체적 이고 인간적인 애정의 형상화가 시조시형을 통하여 이루어진 시들이 있다.
1.2 조선 후기의 시조의 양상
17세기의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사람인 윤선도(尹善道)는, 4계절마다 각 10수씩, 총 40수로 된 연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 간결하면서도 품격이 돋보이는 표현으로 세속의 자연을 시적인 흥취로 엮어 자연과의 교감을 승화시켰다. 조선 후기 시조 의 표현기교는 <어즈버,아희야, 두어라> 등의 감탄사를 쓴 영탄적인 방법과, 전원의 서경을 서술적인 방법에 의해 묘사한 것으로 크게 구별된 다. 조선왕조의 지배계층인 유학자들에 비해 피지배계층인 서민들은 유학 자들의 미의식을 수용하는 한편 사설시조에서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소재를 선택, 희극미를 창조하였다.
사설시조는 사실적 묘사와 상징적 은유로써 표현기교를 바꾸고 있고 애정 , 패륜·육감·거래(去來)·수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사설시조의 발달과 함께 시조의 발달과정에 있어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평민 가객(平民歌客)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대개 문벌이나 지위가 낮고 사회적 으로 크게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끊임없는 연수를 통하여 시조의 작법과 창법을 전수하였을 뿐 아니라, 가단(歌壇)을 이루어 시조집을 편찬 함으로써 시조문학의 항구적 발전을 꾀하였다.
18세기 초반 일군의 가객들과 가단활동을 한 김천택(金天澤)은 가단 구성원들의 협조로 시조집《청구영언(靑丘永言)》을 엮었고, 김천택이 이끄 는 가단의 일원이 었던 김수장(金壽長)은 36수의 사설시조를 창작한 사람 으로《해동가요(海東歌謠)》를 엮었다.《청구영언》《해동가요》는 19 세기 후반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 이 엮은《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작품 수가 많고 편차체제가 정연하여 3대 시조집 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신흠(申欽)과 윤선도(尹善道)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윤선도는 시조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서 손꼽힌다. 그의 작품 <어부사 시사(漁夫四時詞)>는 4계절마다 각 10수씩 총 40수로 된 연시조인데,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 간결하면서도 품격이 돋보이는 표현에 뛰어났으며, 속화된 자연을 시로써 승화시킨 대표작이다.
  조선 후기의 시조에서 나타나는 가장 커다란 변화는 사설시조의 등장이다. 조선조 유교주의가 고려의 고속가의 인간적 성정에 대한 반명제로 나타났다고 하면 18세기 중엽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사설시조는 유교주의의 반발로 나타난 것은 좋은 대조 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등장한 실학사상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시조가 지닌 3장체의 형식적 특성은 살리면서, 초장과 중장에는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이기는 하지만, 일부 비판적 유학도들은 정형률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에 의하여 사설시조를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사설시조의 발달과 함께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발달과정에 있어 가장 주동적인 구실을 하고 있는 평민가객(平民歌客)의 출현이다. 이들 평민가객 들 중의 한 사람인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한 시조집 <해동가요>에는 17, 18세기에 걸쳐 활약한 가객 56인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이들은 대개가 문벌이나 지위가 낮은 인물들이며, 사회 적으로 크게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로서16세기 이래 시조의 창작에 참여한 기녀들과 함께 시조문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는 바 이들의 업적을 세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로, 이들은 끊임없는 연수를 통하여 시조의 작법과 창법을 전수하고있다.
둘째로, 이들은 사설시조라는 새로운 시형을 발굴하고 발전시켰다. 현전 하는 사설 시조는 그 대부분이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이고 또 가객들이 창작한 작품도 평시조 가 대부분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18세 기의 평민가객을 대표하는 김수 장이 36수의 사설시조를 창작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당시의 문학과 음악은 이들 평민가객에 의하여 발달하였고 동시에 이들의 독자적인 미의식인 희극미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이들은 가단(歌壇)을 형성하고 시조집을 편찬함으로써 시조문학 의 항구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다. 김천택은 시조집 <청구영언>을 편찬하 였고, 김수장은 시조집 <가곡원류>를 편찬하였다. 이들이 편찬한 <청구 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는 다른 시조집들에 비하여 수록한 작품수가 많고 그 편차체제(編次體制) 가 정연하여 3대 시조집이라고 일컫고 있다.
2. 시조의 변화
시조의 변화는작가층의 변화, 이데올로기의 변화, 소재의 변화, 연행상 의 차이, 음악적 측면에서의 시조의 흐름  5방면을 포괄한다.
2.1작가층의 변화
조선 전기의 시조 향유층은 대체로 양반 계층이고 당대의 명공석사 (名公碩士)에 해당한다. 초기 작가로 일컬어지는 이색(李穡)이 그러하고 정몽주(鄭夢周)도 그렇다. 그들은 노동의 현장에서 육체의 괴로움을 겪는 서민도 아니고 이별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처지도 아니다. 주자학을 도입 하여 유학적인 이데올로기와 교양을 갖춘 인물들이다. 따라서 시조의 내용도 다분히 관념적이고 조학적인 것이 많았다. 
조선 전기 또 주목된 다른 시조의 향유층은 당시의 기녀들이다. 기녀들의 시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양반 사대부의 시조와는 다르다. 기녀 시조는 남녀의 애정 문제 를 포함한 인간의 정서를 진솔하게 그려내어 시조의 내용과 표현에 생기를 불어넣고 서정시로서의 성격을 한층 더 발전시켰으며, 여성만이 지닌 섬세한 감정으로 진실 하면서도 절실하게 사랑을 노래한 까닭에 더욱 감동적이고 여성 특유의 우아한 정서 를 전달하고 있으며,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시적 언어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런 점 에서 기녀 시조는 시조의 내용과 표현 영역에서 근대 문학에 빨리 근접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기녀들의 시조가 유교의 도덕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 된다. 기녀들의 시조는 남녀의 애정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표현 하고 있다. 조선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인간의 감정을 억압하고 윤리와 도덕을 강조한 탓에 인간의 정서적인 측면을 도외시하는 일이 많았는데, 기녀들의 시조에는 그러한 면을 넘어 서서 인간의 진솔한 정서를 긍정적인 자세로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기녀시조는 상실의 상황에서 노래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시조 담담층인 사대부 시조와 비교된다. 말하자면 황진이의 시적 정서와 사대부의 시적 정서는 판이하다. 한편 기녀 시조는 이별이 제재라는 점에서 고려가요와 상통하는데 고려가요가 이별의 순간을 노래한다면 기녀시조는 현재적인 이별의 상황을 노래한다. 시적 화자의 의식 면에서도 고려가요가 님과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고 있다면 기녀시조는 수평적 관계로 보고 있다. 황진이의 한시 한 수를 예로 들어보자.

밝은 달 아래 뜨락 오동잎 다 지고
서리 내려도 들국화는 노랗게 피어있구나.
누각높아 하늘과 지척의 거리
사람은 취하고 남겨진 술잔은 천이라
흐르는 물 차가운데 거문고는 화답하고
매화가지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와라
내일 아침 그대... 나...이별후
정은 물결따라 멀리멀리 가리라
 
또, 발화의 차이에서도 고려가요는 이별의 순간에 발화하는 것으로 직접 적이고 절박 한 발화가 이루어지는 반면, 기녀시조는 이미 지나간 과거 이므로 자아를 성찰하고 더불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간접적으로 발화 한다. 요약해 말하자면 기녀 시조는 이별 상황, 언술 방식, 태도, 갈등의 해결 등은 여요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그것을 변용시킨 셈이라 할 수 있다.
  기녀 시조는 세련된 표현 기교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 국어를 잘 구사하였 다는 데 그 의의가 있으며, 내용면에서는 남녀간의 애정 및 인간 의 정서를 솔직 담대하게 표현하였다는데 초점을 둔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다는 연모의 정을 황진이만의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또한 기녀들이 시조를 짓고 향유했던 문화는 시조 작가층의 확대와 더불어 시조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상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조 를 조선 중기에 이르러 기녀들도 짓고 읊었다는 점은 후기의 가객 및 평민층으로까지 시조 작가층이 확대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한 것이며,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기녀 시조는 시조 문학 변모에 큰 역할을 하였 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2 이데올로기의 변화
고려가요는 불교적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어두움을 체념과 취기(醉氣)로 넘기려 한〈청산별곡〉이나, 이별의 안타까움을 하소 연한〈서경별곡〉이나 가시리도 불교적 인연과 관련을 지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조에서는 군주에 대한 충성이 주제를 이루었고, 망국의 시점에서 방황하는 지성의 갈등을 읊었다. 전원의 한가로운 삶은 군은으로 감사하게 여기는 유교적 가치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으며, 중화(中華)의 높은 문화를 숭상하였다.
15세기 조선의 애국주의 장령 김종서(金宗瑞ㅡ1390-1453)의 시조와 이 순신장군의 시조를 예로 들어보자
삭풍은 나모(나무) 끝에 불고 : 김종서(1390-1453) 시조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조선시대 4군6진을 개척한 김종서 장군의 호방한 기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일장검을 짚고 서 거칠 것이 없이 탁 트인 기상을 노래했다.
※ 이순신 시조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 시조는 임진왜란 때의 陣中作(진중작)으로, 선조 28년(1595)에 지은 것이다. 우리 옛시조 중에서 武將(무장)의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순신의 작품은 깊은 우수와 고뇌를 담고 있다. 조정은 전란중인데도 파쟁을 일삼고, 나라의 운명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때, 홀로 적군에 맞서고 있는 장수의 마음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절대적인 열세 에서 몸을 일으켜 한 나라를 구해낸 한 장수의 위해한 힘의 원천에는 이러 한 깊은 우수와 고뇌를 노래할 수 있었던 정서와 지성이 있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광식 『우리 옛시조 여행』(가람기획) 에서)
2.3 소재의 변화
작자 계층이 다르고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이 소재에 대한 관심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시조의 소재는 사대부들의 서정이 중심이 되고 그들의 생활이나 관심사가 중요 소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소재의 변화 역시 새로운 표현도구를 요구할 것은 당연하다. 강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데는 사랑의 괴로움을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표현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소재의 변화는 또한 이념과 작가층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에 이러한 상호작용이 새로운 장르의 개발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4 연행상의 차이
시조는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어지는 현장에서 노래로 불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불려진다는 점에서도 고려가요도 같다. 그러나 그 불려지는 양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고려가요〈동동〉이 연주되는 과정을 『악학궤범』에서는 아박(牙拍)이라는 항목에서 초입배열도 (初入配 列圖) 다음에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그 자리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이 적절하게 지어 부른다. 이렇기 때문에 특별히 무희나 창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부르면 된다. 이 점이 고려 가요의 연행과 다른 것이다. 고려가요의 연행에 필요한 복잡한 악기의 반주가 아니라 장고 하나나 무릎 장단으로도 시조는 불려졌다. 이러한 데 사용하기 위하여서는 새로운 장르의 창조가 필요하였다. 그것은 그 연행이 소박하다는 데 있어서도 고려가요와는 다르지만 그런 소박함이 바로 이 장르를 생성하게 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2.5 음악적 측면에서의 시조의 흐름
시조는 시가장르로서 음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아직까지 시조의 기원과 발생시기에 관해 많은 이설이 공존하고 있지만 음악과의 연관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성호경은 “고전시가들이 대체로 가사가 중심이 되고 악곡(선율)이 부수적인 것이 되는 문학 위주의 양상을 많이 보인다.
  음악에서의 시조는 시조시(時調詩)를 노래하는 전통 성악곡이다. 본래 시조는 성악곡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노랫말인 단형시를 지칭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므로, 그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흔히 시조창이라고 한다.
  시조창의 발생은 조선조 영조대의 학자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 (石北集)에 일반 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사람은 이세춘(李世春)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시조는 가창 (歌唱)되었기 때문에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는 전통가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곡 (歌曲)이라는 곡조로 불린 것이 가장 오랜 창(唱)이다. 이 가곡과는 달리 영조 연간에는 시조창이 나타났다. 오늘날 불리는 시조창은 크게 평시조·중허리시조 [中擧時調 (중거시조)]· 지름시조[頭擧時調 (두거시조)]·사설시조로 구분된다. 시조창 은 경제 (京制)· 영제(嶺制)·완제(完制)라 하여 지방적 차이가 있다.
초창문개설태진(初唱聞皆說太眞)
               
                지금여한마외진(至今如恨馬嵬塵)
                내자장안이세춘(來自長安李世春)
 
조선 후기의 풍류방에서 전승된 시조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장악원의 음악유산을 후대에 전승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왕직아악부에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왕 직아악부에 아악부원양성소가 설치되면서 그곳에서 아악사장 이하 장악원의 후예들은 새 세대들에게 구한말의 국악 을 교육시켰다. 그런데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에서 1930년대부터 정악이 교과과정에 삽입되었고, 하규일과 임기준에 의해서 시조·가곡· 가사가 아악생들에게 전수되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3. 시조의 일반 특징
시조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로서 초장,중장, 종장의 3장으로 되어있으며 형식에 따라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로 나뉜다. 시조는 읊거나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시조는 한국 시가 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생명력을 지니면 서 가장 풍성한 유산을 남겨준 문학형태이다. 엄밀히 따지면 시조는 노래로 불리었기에 음악 곡조의 명칭이라 할 수 있으며 근대에 들어와서 창가, 신체시, 자유시 등이 나타나면서 그와 구분하기 위해 3장 45자 내외의 특정한 형태를 갖춘 이 시형을 음악상의 명칭인 시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시조의 일반 특성을 다시 조목식으로 살펴보자.
시조의 특징을 조목식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시조의 형식: 3장(초장, 중장, 종장) 6구 12음보(45자 내외)로 되어 있다.
②시조의 율격: 각 장은 4음보의 율격이다. 3·4조
③시조의 형식상의 제약: 종장의 첫 음보는 반드시 3음절이어야 한다.
①평시조: 기본 형식의 단형 시조(短型時調)이다.
②엇시조: 평시조보다 어느 한 구가 길어진 시조이다.
③사설시조: 평시조에 비해 2구 이상이 길어진 장형 시조(長型時調). 특히 중장이 거의 무 제한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④연시조: 2수 이상의 평시조가 모여 한 작품을 이룬 시조를 말한다.
 
                                                  결 론
 
시조는 한국 시가 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생명력을 지니면서 가장 풍성한 유산을 남겨준 문학형태이다. 시조의 역사가 곧 한국시가의 역사라 할 만큼 우리의 문화 유산으로서, 시조는 한국문학연구의 보배로운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시조는 한국인이 지닌 정신생활사의 일환으로서 전통적,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중요한 양식이다.
전통적 가치를 지닌 시조는 한민족의 생활, 사상, 역사가 살아 숨쉬는 시이기 때문에 시조의 특질은 곧 한민족의 특성이 된다. 또한 시조는 한민족의 미의식이 빚은 특성 적 양식이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곧 한민족 시가의 이념과 미의 식을 이해하는 길이다.
시조는 한국 사람의 심경에 가장 적합하고 또 한국 사람의 정신적 생활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당한 시형식이였다. 그만큼 현존하는 한국 고시가의 어느 양식보다도 작품수가 가장 많다. 그래서 시가사적으로나 작가 분포로 보아 시조는 한민족의 성정에 가장 알맞은 양식이였다는 고증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시조는 향가, 속가, 가사와 같이 과거의 역사물로 끝나지 않고 현재도 창작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조는 조선조 오백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창작되고 또 향유되었던 문화이다. 그러나 시조는 조선시대로 끝나지 않고 현재에도 그 창작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조선조 때 시조를 가리켜 '고시조'라 하여 근대 이후의 시조와 구별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조가 현재에도 그 창작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변혁과 발전을 통해 시조의 전통이 지속적으로 계승, 창조 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시조의 발생과 발전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이를 통해 한국 시조 문학의 발달사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1. 권두환, 「시조의 발생과 기원」, 『고시조 연구』, 국어국문학회편, 1997.
2. 김대행, 『시조유형론』,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6.
3. 김병국, 「시조의 발생 시기」, 『한국문학사의 쟁점』(장덕순 외), 집문당, 1986.
4. 정재호, 『한국 시조 문학론』, 태학사, 1999.
5. 이연숙, 「시조발생에 대한 한 고찰」, 『국어국문학지』16집, 문창어문학회, 1979.
6. 한국시조문학론 정재호  태학사
7. 시조문학연구론 이정자 국학자료원
8. 제4판 한국문학통사2, 지식산업사, 조동일
9. 국문학개론, 새문사, 김광순외
10. 국문학개론/김광순 /새문사/2003
11. 한국 시가문학의 탐구/전병욱지음/1999
12. 시조유형론 / 김대행 /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 1994
13. 한국문학통사2,3/ 조동일 / 지식산업사 / 1994
14. 이찬욱, 「시조의 형식과 미의식」《어문연구》 111호, 2001
15. 시와 시조 창작론 /이정자/ 국학자료원
 
 
감사의 말
본 논문의 과제를 설정하고 집필을 끝내고 논문답변을 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최균선 교수님의 사심없는 방조와 직접적인 지도하에 마침내 순리롭게 탈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교수님에게 심심한 사의와 경의를 올리는 바입니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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