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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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후의 랭정과 반성
2013년 02월 06일 09시 25분  조회:852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작자설명
 
아래에 졸문은 20여년전에 쓴것으로서 어찌보면 묵어도 되게 오래 묵은 “된장” 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오랜 화제라해서 곧 낡은 화제라할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에도 진행형의 화제일경우에는 더구나 그렇다. 꿈은 깨였으나 정서는 그냥 남아 있다는 말처럼 새 시기문학의 충동뒤의 여파는 의연히 진행중이지만 진행 결과에 대한 단계적인 반성은 심화되지 못하고 또 20년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보통 30년(1978년부터 2008년)간의 문학을 “중국의 새 시기문학”이라 칭하는데 문학사연구에서 아주 의미로운 수자이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의 시간계산이 아니 라 하나의 개수(概数) 즉 어림수라 할수 있다. 문학의 새봄을 맞아 깨여나서부터 번 영에 이르고 탐색으로부터 곤혹에 이르기까지 굽이도 많고 기구한 려정을 걸어왔다.
문학사적서사에서의 시간좌표는 부동한 자리매김 방법이 있는바 력사적단계만으 로 나누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새 시기문학은 의연히 진행중의 발전단계에 처해있 고 상대적인 독립성을 가지고 개방성을 자체의 특점으로 하고있는데 말하자면 서방 문학 내지는 세계문학을 향하여 개방하고 새 시기문학자체의 개방성을 체현하고있다.  
한마디로 새 시기문학의 개방성은 정체성특징으로 되고있으며 현대성관념과 문학 성서사도 모두 개방성특점을 가지고있다. 새 시기문학은 다각도적으로 총화할수 있으 나 일종 “속성(速成)”문학으로서 몇백년의 세월속에서 이룩된 서방의 문학성과 중국 문학의 기특한 “잡교” 의 산물이라고 개괄되고있다. 사실 30동안 “우량종”도 더러 나오긴 했지만 문학의 “잡교” 혹은 “접목”은 아직도 시험중이요 보다 주렁질 결실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 시점에서 랭정한 반성이 다시 요청되는것이다.
    새시기 30년간의 중국문학속에 우리 민족문학의 새 려정과 변화, 성과, 미흡한 점 등에 대하여 회고하고 반성함에서 무엇보다 주요하게 문학사조의 인입과 수용 자세를 선색으로 문학창작, 문학리론, 문화비평 등을 한꼬챙이에 꿰여들어야 할것 이다. 새 시기의 주요한 문학사조와 문학혁신운동을 넓은 사회문화배경속에서 빗질 하고 금을 내는것은 복잡하고 거창한 작업이다.
    돌이키면 비교적 중요한 문학사조, 문학운동과 문학쟁론을 비롯하여 상처문학, 반성문학, 문학의 자주성, 몽롱시, “현대파” 쟁론, 뿌리찾기문학, 실험문학, 신사실주 의소설, 건달(痞子)문학,“인문정신”등에 대한 대토론중에서 이른바 도덕리상주의, 신생대문학, 사인화창작, 육체창작, 80후창작, 현환문학 등등에 대한 심입된 분석을 거쳐 성과를 긍정하고 오도되여 빚어진 시행착오들을 금긋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문학현상에 대한 평가에는 문학자체에 침적기가 수요되고 독자계의 열독과 평가에서도 역시 시간적“거리”와 더욱 넓은 참조시야가 수요되였기때문에 재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어경에서 졸문이 새 시기, 우리의 민문학의 충동뒤의 반 성에서 일정하게 유조한 실마리가 되지 않을가 거듭 반성해 보는바이다.
이 몇년래 중국문단에는 “문학의 타락 혹은 바야흐로 소실되는 문학”이라는 론조 가 류행되였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론조에 맹종하고있고 심지어 소수의 전업 작가들도 문학에 대한 원유의 신념이 흔들리였다. 본문은 새 시기, 30년의 문학발전 에서 전10년을 재고찰하려는 시점에서 창졸하게 집필하였던 학습체득과 나름대로의 소견이기에 오늘도 일정한 참조가치를 가진다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다.
 
 
 
2008년 9월 20일
 
 
충동후의 랭정과 반성
 
    최 균 선
 
1
 
력사는 인간을 희롱하기 일쑤이다. 장장 10년, 전대미문의 황당한 문화대토벌에 쑥밭이 되여버렸던 중국의 문예계에 마침내 새봄이 도래하였다. 그러나 한시기 원기 를 회복하지 못하고 진통기에 처한 문학계에는 일종 문화기갈이 만연되였다. 바로 이 무렵, 오래동안 봉페되여 있던 문화교류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자 열풍마냥 서방 문화사조가 중국의 대륙에 맹렬히 충격해들어왔다.
이 특정된 력사시기에 좌적문예사조의 비리에 억압되였던 심령들이, 메마르고 뒤틀렸던 령혼들이 심사숙고와 리성사유를 거치기도전에 구미문화의 세찬 충격속에 휘말려들었다. 문학계에《변법》이 일어났다. 감응반응은 용속사회학에 대한 역반심리 를 극치에 달하게 하였으며《선각자》들을 충동의 절정에로 떠밀어올렸다.
이러한 충격파는 산해관을 넘어 연변문단도 진동시켰다. 그리하여 니체의 초인간 철학, 싸르트의 실존주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피아제의 발생인식론, 마슬로의 신인본주의, 서방 신맑스주의 등등 생경하고 유혹적인 술어들이 류행되였으며 창작계, 평론계에 현대 의식열, 방법열, 표현기교열이 비등하였다.
자아의식의 각성, 개인가치추구, 생명의의의 탐색속에 서방의식에 대한 모호, 흡인, 선망이《선각문학》의 기본정서로 되였다. 전통적사실주의문학에의 충격과 침투는 부단한 갱신의 욕망과 심화를 자극하면서 우리 민족문단에 개방주의체계를 수립할 조짐을 보였다. 특히 의식의 흐름, 비정절화, 무성격소설…등으로 인간의 고유한 잠재 의식, 몽롱의식 등 비리성성분을 파헤치거나 생활을 다시각, 다각도, 다층차, 다측면 으로 반영하려 시도한 시, 소설들이 선을 보였다.
인간의 심리상태를 립체화하려한 이런 소설들에서 과거, 현재, 미래, 환상, 현실, 몽환경이 자유련상을 교차시키면서 시공계선의 돌파도 시도되였다. 이런 표층적인 다원화의 번영에는 뿌리를 박지못한 급진적작가들의 내심의 아픔이 스며있었고 찾음 을 앞세운 배회심리와 초조가 엿보였지만 그러한 현대주의수법의 인입은 어디까지나 타방의 기성성과에 대한 선택이였고 모색을 위한 실험이였을뿐 창조는 아니였다.   
새 시기,10년문학은 한마디로 일종 “속성(速成)”문학으로서 몇백년이란 오랜 세월속에서 이룩된 서방의 문학성과와 중국문학의 기특한 “잡교” 열의 산물이라고 말할수 있다. 서로 충돌하는 이런 문화인소들은 자연히 우리 민족문학의 령지에도 침투되였으나 호경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본위문화와 외래 문화간에 어느것이 주류적문화이고 차요적문화인가라는 쟁론이 가심화되였다.
풍향이 바뀌자 문단은 랭각되였으며《랭각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랭각 되였다. 작가들은 침묵하고 문단은 사색에 잠겼다. 문학저조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가지 사정도 있겠지만 몇년래 인간실체에 대한 발굴과 자아표현열에 빠져 문학은 자체의 귀중한 가치를 매몰해버렸기때문이라고 말할수 있다. 어페일지 모르겠지만 현대주의를 새시기문학의 미래, 주류라고 확신하던 일부 문예리론가들도 어리둥절 해져 판단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자기변명 비슷이 새시기10년간의 문학을《다원화 문학》이라고 개괄하고있다.
원래 열점이 많다는것은 흥분점이 많고 사상이 활약되고 갱신의식이 강하다는 설명이 되기도 하겠으나 일면 개성의 포기, 주차의 불분명성, 자기 기점의 상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충동자체가 사상은 아니였던것이다. 정서도 문제의 반영일뿐 문제의 해결이 아니였다.
력사와 시대는 외래의것을 우상으로 맹종한 문학으로 하여금 충동후의 랭정을 회복하고 반성을 진행할것을 촉구하고있다. 묻노니, 우리에게 절박히 수요되는것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불필요한것은 무엇이였던가? 철학사고? 리론체계성? 현대의식? 세계적안광? 남은것은 민족집체무의식과 맹목성이 낳은 실락감이 아닐런지…우리의 문학은 어데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할것인가?
 
2
 
한시기 대대적으로 《현대예술관념》을 수립할것을 제창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아표현》과 《개성》에 대해 의론이 분분하였다. 개성을 론한 창작방법을 놓고 보면 흔히 서구라파의 현대파작품을 거울로 삼고있다. 현대주의냐? 현대파냐? 구미문학 사가들이 사용한 의미를 보면 《현대파》는 《현대주의자》로서 본세기초에 출현한 일종 신흥문학경향인바 일찍《현대주의》라는 명칭으로 류전되였다.
지금 우리 문단에서 애용하는 현대파가 19세기 프랑스상징파시가로부터 목전 구미에 류행되는 황당파, 흑색유모아, 그리고 암시적으로 말하여 사실주의창작방법이 아닌 이외의 모든것을 가리키는것이다. 그런데 불가사이한것은 현대파를 새로운 창작 방법으로, 좌표계로 추대하는 사람들이 그 창작방법은 긍정하면서도 그것의 철학 기초(사상성)는 부정하였다는것이다. 그러고보면 해석이 저마끔이라 아니할수 없다.
일찍 30년대에 중국의 문단에도 현대주의가 한시기 고창되다가 령락해버렸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다시 열을 올리였는데 결국은 자기 중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보는 서방세계는 쌍망원경으로 본 세계이다. 리론도 작품도 모두 제2, 제3의 도경을 거친 간접리해에서만 가능했다.
현대주의작품창작에서도 그것의 외재표현형식 방법에만 매료되여 아리숭한 이미 지, 무질서한 시공간, 종잡을수 없는 의식의흐름, 신비한 상징 등을 그대로 옮겨놓음 으로써 귀족화의 상이탑을 세우려 하였다. 하여 평론계에서 돌파, 성과작이라고 할 때 독자들은《너는 너대로 칭찬하고 나는 내 재미대로 읽는다》는 비정상적인 문학현상을 낳았다. 서방현대파문학의 산생은 시대의 선진과학문화의 발전, 생활절주의 가속화 에 의하여 인간의 심리, 사유활동이 복잡화된 결과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것이 산생된 시대적배경, 상응한 문화적조건을 잘 고려했어야 했다.
어떻게 실제에 운용할것인가? 하는것은 여하히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로서 우선 그것의 가행성과 효익을 전제로 하고 그것의 정신을 배울것인가? 형식을 답습할것 인가를 확정하여야 한다. 창조의식, 신선한 감각 그리고 새로운 창작방법이 꼭 현대 주의에서 온다고 할수는 없다. 기실 전통적수법에서 의식의흐름수법이 사용되였다.
 
3
 
현대소설이라면 현대의식을 떠올리게 된다. 현대의식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흔히 들 변혁의식, 경쟁의식, 자주의식, 반역의식, 우환의식, 항쟁의식, 지구의식, 우주의식 등등으로 조목을 나누어 그 의미를 한정하는데 무근거한것은 아니지만 고립적으로 놓고보면 역시 요령부득이다. 왜냐하면 고대중국의 굴원의 작품에도 강렬한 항쟁 의식이 침투되여 있었고 두보의 한생과 그 작품에 우환의식이 깔려있었으며 조설근 의《홍루몽》에도 반역의식이 맥맥하기때문이다. 로신의 소설, 곽말약의 시에 담긴 의식은 무엇인가! 홍명희, 최서해의 작품들에 담긴 의식은 이류에 해당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현대파》라고 부르지 않는다. 결국은 번다하고 새로운 명목일뿐 현시대의 특유의 변이를 체현한것이 아니다.
변이란 공인하다싶이 응당 의식의 주체와 대상간의 호상련계속에서 표현되여 나와야 한다. 이 주체는 곧 현대화의 물질문명건설의 서렬에 들어서기 시작한 중국 사람(조선민족)들이며 그 대상은 우리 앞에 놓인 부단한 변화속의 현실—물질세계 이다. 만약 주체와 대상중 어느 하나가 적응성이 결여된다면 현대의식의 소위 각성은 리념화, 공식화로 되고말것이다. 따라서 현대의식의 주도는 마땅히 중국인민, 나아 가서는 전인류의 근본리익과 념원을 체현하는 력사적과정으로서 합법칙적이고도 규률적인 발전법칙이 있는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우리 민족의 현대의식을 담은 현대문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방현대문학과 엄연히 질적으로 다를수밖에 없다. 설사 비슷한 점이 있게 되더라도 근근히 표면적일것이다. 우리도 초월이 갈구되여야 한다. 그렇더라도 중국 대지와 서방세계의 부동한 인문환경 및 문화배경, 부동한 예술정신 등등에서 기인 되는 창작상의 기본차이를 무시하지 못할것이다.
현대주의가 현대주의로 되는것은 단순히 표현방법, 창작기법, 형식에서 결정되 는게 아니라 인민의 생활과 의식실태, 문화관념에 의존한다. 일종의 문예사상이 일정 한 시대, 일정한 국토내에서 주류로 되느냐 마느냐는 문예사조 자신의 념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환경의 제약성에서 좌우지된다.
우리의 문학은 아직도 생활을 진실하게 인식하고 진실하게 현실을 재조하는 사명을 거부할 리유가 없는바 력사적사명감에 상응한 창작사상, 창작심리, 창작방법 만이 문학을 구할수 있다. 황당한 현실은 존재하지만 황당한 창작사유란 있을수 없다.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이 생활에 대한 그 어떤 주관의식의 리념화에서가 아니라 생활 자체에 대한 진실한 파악을 하고 핍진하게 표현한다면 그 속에 작가의 개성이 있게 될것이며 민족문학도 흥기할것이다. 즉 현대의식으로 생활의 본질을 파악하고 시대 상을 부각할때야만이 우리의 문학이 스스로 현대주의문학이 될수 있다는것이다.
 
4
 
선택은 일종의 자유이다. 동시에 일종의 한정이기도 하다. 발전적안광으로 본다면 곤혹과 방황은 새로운 선택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선택의 기점은 우리의 문학을 새로운 실천령역에로 떠밀어줄것이다.
반역의 시대인《5.4》시기에 중국문학은 서구라파의 비판적사실주의를 받아들였고 건국후에는 쏘련의 사회주의사실주의를 도입하여 중국문학의 발전을 도모했다. 현재 우리 민족문학의 참조계는 어디에 있는가? 문학의 현대화는 시대발전의 필연적 추세이다. 하지만《현대파》로서는 우리 문학의 상록수를 무성하게 할수 없다는것이 실천에서 증명되였다. 사실은 언제나 웅변보다 나은법이다. 표현방식이 좀 괴이하다 해서 현대적인것일수 없다. 가령 형식, 표현기교와 수법에서 서방화하는것이 곧 현대 화라면 그 특징은 마치 형식에만 고유한것으로 착각되고 오도되기 십상이다.
이 몇년래 서방현대주의문예사상의 충격과 문단에 나타난 문학현상을 두고 사실 주의가 더는 나갈데 없게 되였고 전통적사실주의의 전형리론과 창작방법은 사명을 다하였다는 경향이 성했는데 결론이 너무 급급했던것 같다. 고리끼가 말했듯이 문학 은 개인의 일이 아니다. 현재 진정 《현대파》를 알고 읽고 즐겨읽으며 공명하는 독자 가 얼마나 될가! 물론 오늘에 이르러 흰 안료와 검은 안료만으로 그림을 그려서는 안된다는것을 우리 모두 알고있다.
그러나 현대파를 찬양하든 반대하든 표현, 형식면에 립각하여 혁신이냐? 돌파냐? 하지 말아야 한다. 서방현대파문학은 일련의 우점과 함께 자기의 치명적인 약점도 실천에서 드러내였다. 반리성주의라든가 문학의 사상의의와 미학 가치를 도외시하고 실락감, 불재감에 빠진 원시적성욕, 광란적심리표현 등은 사회 경향성과 심미심리와는 근저로부터 탈절된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자률의식과 지구적 타률의식의 반복적인 충격파가 다원적이고 아롱진 문학세계를 펼치는 필연적추세에 직면하여 인민작가로 서의 자세를 바로잡고 사상의 견실성, 명랑성을 확보하는것은 매개 작가들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이다.
 
5
 
목전 우리 문학이 새로운 진통기에 처해있다는것은 자타가 공인하는바이다. 따라 서 작가군의 위기감도 자족한 서방현대파작가들의 고독과 허무한 자아실락감에서 나온 그런 위기감과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다. 당면 우리의 문학이 직면한 준엄한 문제 는 순수성의 추구, 자아표현의 부자유, 형식과 기교의 파악미달에 있는것이 아니며 문학위기는 한시기 광범위한 접촉면을 개척, 확보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존공간을 축소시킨데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
10년문학을 반성할 때 우선 전통문학이 현대문학에로 전화하는 내재적기재를 찾지 못하였고 서방예술경험을 자신의 창작경험으로 융화시킬《촉매제》를 마련하지 못하였음을 자인해야 한다. 자유의 문학은 자기를 잃는 망연자실의 문학이 아니며 무가치한 자아표출의 문학이 아니며 더구나 신조류모방문학이 아니다.
우리 민족문학의 혁신과 발전도상의 장애가 사실주의창작방법에 있다고 모자를 씌우는것은 편파적이며 불가사의한 론리다. 아직 우린 방법상 사실주의를 충분히 창조리용하지 못했을뿐이다. 생활에 대한 진실한 묘사는 문학창작의 필수조건이며 법칙이기도 하다. 작가가 만약 이 법칙의 요구를 기피한다면 훌륭한 작품이 나올수 없다. 고골리나 똘스또이같은 대가들마저 자신의 허위적신념에만 의거하고 생활에 대한 진실한 묘사를 거부했을 때 빈약한 형상을 창조했던 사실이 기록되여 있다.
예술창작의 시각을 인간의 일반 리념으로부터 인간의 심층의식에로 심입시킬 필 요성은 의심할바 없다. 혹자는 인간의 성격과 내심세계의 심미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다각도적인 투시 등이 현대주의수법에서만 가능하다고 고집할수 있는데 그것은 무리 다. 주지하는바 사실주의는 문학의 복잡다단한 발전과정에 구체적으로 형성된 력사 산물로서 발전하는 자기의 속성을 상실한것이다.
우리의 작가들은 사실주의를 문자 그대로 잘만 리용한다면 다양하고 유익하고 가능한 모든 수법들을 무한히 발견, 리용할수 있다는것을 확신해야 한다. 사실주의 문학의 정수는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섭취리용할것을 기다리고있다.“위현대파”는 우리 여기서는 부평초의 운명을 면할수 없다고 단언하고싶다.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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