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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생활의 론리 ㅡ《사랑했나봐》로부터 ㅡ(수정보충)
2013년 02월 12일 19시 08분  조회:8985  추천:2  작성자: 최균선
                                  허구와 생활의 론리
 
                            ㅡ《사랑했나봐》로부터 ㅡ                   
                                
                                         真 言 최 균 선
 
    무릇 드라마는 다른 쟝르처럼 생활속에서 엮어지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속에서 생활을 본다. 드라마가 100% 생활의 재현은 아니라도  생활의 본질, 인성의 내막, 사회의 모종 현상을 조명하게 되여있다. 드라마가 생활보다 더 고상하고 아름다운것은 생활을 보다 집중시키고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하였기때문이다.
  《사랑했나봐》는 2012년 10월 15일부터 MBC에서 월요일~금요일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되는 아침드라마이다. 소개에 의하면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뒤엉킨 운명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와 아이와 사랑을 찾아가는 한 여자의 악전고투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한다.
    그러나《사랑했나봐》는 마치 “내 마음이 그랬던가?”하는격의 불확정인 심리바탕에 그야말로 “자기도 모르는” 생명활동의 미확정성을 예시하고 시작되였다. 기획의도는 닥쳐오는 불운앞에도 물러서지 않고 한 아이의 엄마이자 사회에서는 편집자로 “우뚝”서는 한윤진을 그린다고 했지만 결국 “선천적인 약자”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악녀 선정이가 전반 극정을 틀어쥐고 나가는 예상외의 주인공으로 부상되였다. 혹시 최선정이가 작가의 내심의 리상형인물이고 작가의 인생궤적이 이럴가 의혹이 간다.
    그런 전형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반면인물ㅡ윤진의 모든것을 빼앗고 지키기 위해 온갖 음모궤계(범죄)가 진행형인데도 녀성으로서는 있을법도 한 량심상의 갈등따위는 아예 배제되고 잠시잠간의 불안감만 가지고 악행의 대도행진, 녀자로서는 심리소질이 기특할 정도로 “좋다.” 그러기에 종횡무진하며 거침없이 자기“행복”을 가꾸는데 오히려 그가 사악의 전형으로서의 주인공이 되고말았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반대가 아닌가? 아니면 원창작계획인가? 자가당착인가?
    전형환경은 모두 바보, 지력저능아, 한녀자의 손에서 놀아대는 무뇌자들을 만들었기에 악녀로서는 너무 “완미 ”하게 부각되고있다. 특이한 총명과 실천력으로 경찰들도 헛개비되고, 병원도 의도대로 주물러대여 한국병원에 의사나 호사는 무원칙한백치들만 있는 모양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따져보면 80여집이 거의 선정이가 새록새록 악행을 저지르고 아무 거침없이 성사하는 내용이다. 원래 별로 대단치 않은 녀자로서 가담가담 애로도 있을법한데 완전완미한 “녀강자”로서 악행의 극치를 이룬다. 똥싼놈이 와달랑한다는 말은 있지만 그것도 유만부동이다. 참으로 선정이 같은 악녀가 가지가지 악행을 저질러도 돈만 쑤셔넣어주고 거짓말 하면 곧장 그대로 동작하는데 아무리 무질서한 사회라해도 그건 아니다. 규진이는 상등바보로 부각되는데 한국에는 선정이같은 악녀만 사는가? 그게 작가가 파악한 현실인가? 그게 작가의 예술취향인가?
    이는 작가의 사유모식으로서 허황한 상상력이 아닐수 없다. 소개에는 인생의 결정적전환점에서 윤진과 선정사이에 서게 되는 주현도(형상화된 바보), 거짓과 배신의 상처를 딛고 사랑을 이루는 백재헌의 운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하였지만 구멍이 숭숭하다 못해 진실의 벽이 통채로 무너지고 황당과 허무만 남아있다. 이쯤되면 이야기전개는 불가능해진다.
    진행상황으로 보면 현실과 탈절되여 별내용도 없고 드라마고유의 수법인 비약된 스토리의 진행도 전혀 안되여 질질 끌면서 허수아비 형상들을 조합하고있다는 직감을 줄뿐이다. 드라마도 밀도가 강구된다. 내용과 내용, 장면과 장면들의 이음이 어수선하고 지리멸렬하고 “사랑했나봐”를 지양하는 주제에 혼선을 빚는다. 알심은 넣었겠지만 캐릭터들도 색채가 선명하지 못하다. 현대 한국사회에 선정이처럼 막무가내한 악녀가 보편성을 지닌것이 사회적본질인지 어떤지 곤혹만 남겨준다.  그럴 수는 없지만 가령 그게 보편적인 사회현상이라면 정말 앞날이 암담하지 않을수 없다.
    오해일지는 모르되 한윤진은 그저 예나뿐인 본능적인 이기주의자로 각인되고 현도는 순진한지 태생바보인지 핫바지저고리로 선정이의 악행을 조장하는 장치적인 인물이다. 백실장도 군에까지 갔다와서 패기와 랭철한 판단력이 있는 강하고 똑똑한 남자로 부각하려 한것같은데 드라마의 진행중에서는 선정이와는 상대도 안되는 헛똑똑이다. (사실 쉽게 넘뜨릴 녀자가 아니기에 유진이더라 모든것을 포기하라고 권고하는데 결국 연약무력한 인물로 락인찍힌다.) 이것은 작자가 소기한바가 아닐것이다.
    유아독존이고 안하무인이며 독선주의자인 최선정은 어디에서나 무불통지하고 무소불위한듯 횡포무도하게 노는데 그외 등장인물들은 극정의 발전에 별로 요긴치 않은 존재들이다. 특히 사장은 그 모든 음모와 술수와 비리가 드러난후 결재자가 될듯 싶은데 너무 바보스럽게 꾸며놓았다. 시청자의 의견들을 두루 읽어보면 김흥동감독은 “짜증이 나지 않는 드라마로 만들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한다.
     드라마작가도“모든 사람이 드라마 같은 삶을 살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이 무엇인지, 센 코드를 지녔는지에 기준을 두기보다는 마음을 따라가는 것에 중점을 뒀다. 드라마가 끝날 때는 인물들이 얼마나 성장하고 얻는지, 어떤 사랑을 찾아갈지 끝까지 시청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라며 포부를 밝힌바 있다고 하는데 무릇 소설이든 영화이든 일단 부각된 인물형상은 작자의 의도에 따라 죽고사는게 아니라 생활의 론리. 객관적발전론리에 따라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될수 있다.
    그 근거로 세계문학대가들의 창작경우를 들수 있다. 례브 똘쓰또이의 “안나 까레니나”의 인물설정과 성격적인 변화는 작가가 사전에 변경시켜 긍정적인 인물로 부각했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까레니나가 기차에 뛰여들어 자살하는 결과는 결코 자기의 창작의도가 아니였다고 말하면서 애석해 하였다. 뿌쉬낀의 유명한 운문서사시인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따지야나의 결혼을 시인 자신도 개탄하였다는것은 작가도 자기가 이미 세상에 내놓은 인물의 운명을 주재하지 못한다는 실증이 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작가의 발상은 좋다할수 있되 스토리전개는 장면마다 거의 비현실적이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거기서 거기니까 얼마든지 류추할수 있는데 우선 돈을 사랑해서 리기의 극도에서 별대책도 없이 아이를 빠꿔치기한것으로 설정되는데 상식적으로 이런 설정은 처음부터 억지이다. 문학ㅡ드라마는 인간의 생활표상을 재료로 하므로 이런 재료들이 예술정체로 얽혀질 때  반드시 상호조합되는 자체의 규정성에 부합되여야 한다. 드라마를 쓸정도의 작가라면 알아야 할 상식이다.
    딸의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는 도덕적, 량심적인 구실이 선행되지만 모성애보다 더 소중한게 돈이라는 론리는 아무리 돈이 만능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전통미덕이 소실된 현대녀성이라도 녀자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없지못해 있다 고 할세 그런 형상이 사회민중의 삶과 인생태도에 보태주는게 과연 무엇인가? 시청자 모두가 멍청이가 아닌이상 설득력을 잃을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악의 형상이 역으로 시사하는 미적가치의 추구도 제로가 되고만다.
    이런 스토리, 그런 악녀의 형상으로 인류의 감정에서 가장 숭고한 감정인 모성애, 사랑 등 고귀한 단어를 오염시키지 않는게 작가적인 안목이고 판단이라 생각한다. 만약 이 드라마가 외국(해외 동포사회는 제외)에 나간다면 한국녀성들의 인간성에 대해 오해를 살 소지가 너무 많으며 한국사회를 이상하게 비틀어놓는 반작용밖에 놀게 없다고 본다. “아기 바꿔치기”,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공통된 수법인 “뺑소니조작”, 사건의 시말, 전후관계 등 사건조사에서도 상식적인 그 과정은 생략되여있다.
    그저 선정이가 조작한대로 규진이를 집어넣고 합의하는것이 능사인듯 처리하는 경찰들의 행각에서 한국경찰들은 법률상식도 없는 등신들인듯싶다. 작가의 주관의도가 현실과 너무 탈절되여서 싱거운 느낌이 앞선다. “두 올케의 남자를 좋아하는 시누이”의 형상에 서 한국에서는 불륜적인 애정관도 선양되는가? 곤혹을 안겨준다. 드라마가 83회까지 전개된 이 시점에서 과연《사랑했나봐》가 처음부터 방향미실이 아니였는가? 그렇더라도 굽이돌이를 돌아서 차차 가다보니 방향을 잡을수도 있겠다싶어도 시종 초점을 잃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인제는 너무 멀리 왔기에 돌아서도 방황미실이다
   최선정이가 본질적으로 모성애가 뭔지 모르는 녀자, 돈에 미쳐 량심, 도덕, 사랑도 때묻은 지페에 돌돌 말아서 내던질 패덕녀, 그가 저지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그리고 매번 멋지게 성사되는 나쁜짓도 상상을 초월하는게 아니고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는 그런 일이여야 하는데 드라마 고유의 현념도 아니게 비현실적으로 자꾸 배배꼬아가며 분량을 늘인다는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할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아무도 지어 사회를 리드하는 공권력도, 사회결약도 선정이앞에서는 무맥하며 오직 선정이만이 필승불패의 녀왕으로 옹근 사회결구우에 군림하여 호령질하며 그 호령질은 잘도 먹혀들어간다.
    두서너집을 건너뛰여도 앞뒤를 대강 이어서 련상할수 있을정도로 거의 한달째 그냥 제자리에서 맴돌고있는 스토리전개력 등을 질타할 시청자들이 많을것것 같다. 작가가 시종 긴장감을 도모하려고 하지만 고무줄도 탄성의 한도를 넘게 잡아당기면 끊어지고 말듯이 한없이 늘어지는 전개에서 “박시은이가 언제까지 바보처럼 시련만 받게 하려는지…”동정보다 역증을 불러오게 되면 이런 설정은 실패를 의미할뿐이다. 사실 늘어지는 전개로 시청자들이 원성을 사고있다고 한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윤진이 공장에서 시련을 겪는 부분은 아주 류사성 패턴으로 진행되여 군더더기로 되고있다. 사회를 상대로 하려는 이야기에 핵심이 없기때문이 아닐가? 매일매일 집필하고 촬영하는것이라면  “그냥 연장할 계획인가?”의심할 정도이고 사건이 종심에로 접근하는듯 싶다가도 엉뚱한, 잡다한 장면으로 번져지여 시간끌기가 되여 혹평을 면치못할것이다.
    스토리의 론리적발전 시점에서 윤진의 복수가 언녕 시작되여야 하지만 지금껏 말로, 시늉만 할뿐이여서 아무래도 선이 악을 이기지 못한다고 오도하는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만 가지게 된다. 진실감을 상실하고 등장한 규진이가 교도소에 수감된 일주일 동안 진전된 사건은 없다. 선정이는 초인이기나 한듯 두렵다는 윤진이, 머리나쁜건  그렇다치고 본능적인 악마저 거세해버린 주인공 윤진이의 형상부각은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를 말해준다. 그런데도 그냥 전개하려하니 억지가 되였다.
    허구적인 인물이라도 현실적바탕이 없는 인물인 최선정은 실감이 없지만 직감상에서 각인되는 그 존재자체가 세상과 사람들을 괴롭히는 있을법한 인성악이라 거론할 가치가 없이 그저 불량한 심리음영만 던져줄수 있다. 마감에 윤진이를 돌변적으 로 정의의 수호자로 내세세우겠지만 의도적이 되고만다. 모든 사물의 발전은 인과관계로 맞물려야 하니까.
    작가는 그것을 시청자의 조급함으로 탓할 리유가 없이 과유불급으로 진행되고있다. 순진무구한 귀여움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별 뚜렷한 목적, 방향성도, 실천력도 없이 그저 옹고집쟁이로 시사되면서 작자가 소기한 창작목적을 등지고 말았다. 한국 식으로 말하면 “증말 짜증나…”가 공통심리일게다.
    그런 억지설정에도 차질이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심혈을 랑비한듯싶다. 작자가 이런 인물을 부각해서 무엇을 계발하고 인도하자는건가? 그저 떠오른 감각을 조합해서 재미나 느끼라는건가? 제아이를 버린 아이엄마도 인간이길 포기했지만 최선정처럼 앞뒤 분간없이 자기딸하고만 잘먹고 잘살겠다는 생각 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엄마는 인간도 아닌데…그리고 아이아버지는 차던지고 그의 씨는 한정없이 곱다는 모성애는 공통된 녀성감정상 비론리적이다.
    최선정이는 리기주의가 낳을수 있는 그런 변태적인 품성의 소유자만 아니라 범죄의 달인이다. 2월 12일, 아침에는 유진이를 살해하는 지시까지 내리는듯, 등신 도진이는 반대하는듯 하다가 결국 집행하여 “절정”을 도모하는듯 하는데 결국 또 질질 끌기위한 다른 계기로 될듯싶다. 선정이는 “너희들은 끝장났어”하고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치며 눈을 반짝인다. 그런데 후에 보면 유진이는 가질것 다가진 선정이가 왜 자기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작가는 이런 바보를 만들면서 무슨 재미를 보는것같다. 그리고 선정이가 백재헌에게 왜 나에게 이러는가고? 후회하게 될거라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이다. 여기서 작가의 인생관, 가치관이 어떤가를 드러낸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죄를 짓고도 피해자와 협의하면 풀어주는 그런 법이 있다는 우스운 관념을 가지게 되고 사장인지 하는 사람은 빈통이여서 매사 두드리면 빈소리가 나오게 하였는데 사건진행을 결재할 인물을 바보로 만들고 나중에 인물처리, 사건처리가 바쁘니 일부 기억력상실(신경중추에서 기억구는 칸칸이 나누어져있는가? 충격의 성질에 따라 어느 한칸의 기억만 잃는다는 발상은 너무 유치하다. 작가는 사회, 독자에게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이 지워져있는데 작자는 작정하고 청중을 가지고 놀고있다.
   모든 유리한것을 선정에게 집중시켰지만 결국 과유불급이 되였다. 아무리 감각을 따르는 시대라도 “마음을 따라가는것에 중점을 뒀다.”고 한 그“전형수법에” 경악하게 된다. 악인도 예술형상이지만 선정이 같은 악형상으로 선에의 지향성이 달성불가능이면 바람직하지 않다. 인물형상들이 생활의 진실의 토대에서 부각되지 못하고 진실한 전형환경이 아니기에 드라마는 길어도 정서적감흥은 제로일것이다.
    생활의 론리는 추상사유의 론리와 다르다는것은 작가가 아니여도 알아야 하는 삶의 도리이다. 생활의 론리는 생활내용 자체의 호상련계와 호상제약속에서 체현되여야 한다. 드라마는 생활의 론리를 분식하는것이 아니며 마음대로 뜯어고치는것이 아니다. 예술상상이 생활을 초월한다는것은 능동적으로 창조한 생활 즉  “제2의 자연”,혹은 “제2의 생활”을 가리킨다.   드라마창작에서 표상의 분해와 재조합은 자유이지만 시종 생활의 제약을 벗어날수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벗어나도 엄청나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기에 무리수를 둘수밖에 없다. 작가의 조작된 생활의 론리에 따라 움직이여야 하는 배우들마저 연기가 억지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배우들의 잘못은 아니다.  잘못이라면 엉망이 된 예술질서에 자기 진실한 감정을 융합시키려 애쓴 예술활동의 참여이다. 배우들은 왜 고달프고 억지가 될수밖에 없는가?
    예술상상은 인물의 성격규정에 부합되여야 하는데 선정이란 인물은 만인지상의 인물로, 사회결약도 이겨내지 못할 필승불패의 초인으로 설정되였다. 어떻게 설정되든 적어도 부동한 성격들은 생활의 규정성에 부합되여야 한다. 그러나 선정이만은 례외로 되였다. 선정이의 형상이 작자의 우상인지? 아니면 작자의 가치척도, 가치기준, 가치취향인듯싶다. 어떠한 성격이든 그의 발현과 발전의 생활적, 감정적 원인이 있게 되는데 선정이는 오직 자기 딸을 부자집계승자로 만들기 위한 그 하나의 목적으로 녀자에게 있을법한 사랑도 인간성도 륜리도덕의 계선도 헌양말로 되여진다. 선정이가 지고무상의 존재로 호령질하고 모두가 속히우고 온 사회결구가 그녀가 짜나가는대로 짜지는 어처구니없는 구상은 독자들을 선의적인 분노에로 이끈다.
     미의 본질은 참된것과 착한것의 통일이고 감성과 리성의 통일로서 거짓된것, 악질적인것으로부터 참된것을 지양하도록 충 동하는것이다. 미적체험의 심도로 말할 때 순수한 쾌감으로 충만된 표현보다는 반대로 악의 형상이 주는 감수는 더 강렬하 다. 부정인물들의 그 야비하고 잔악한 품성들에 대해 분개하고 증오심을 가지게 되고 진, 선, 미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것이 바로 심미기능의 또 다른 측면에서의 력동적인 효능이다.
    생활속의 추악한것들이 어떻게 예술미의 일부분으로 바뀌는가? 작가가 이런 추악한것들을 “마술사의 지팽이”로 한번치면미적인것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예술가의“련금술”이라 한다. 그러나 최선정이같은 인물형상은 그게 아니다. 이렇듯 심미의식은 단순한 정관적인 관조의식이 아니라 동시에 평가의식으로서 그에는 인류본성의 보편성경향이 전제로 된다. 바로 그래서 매일 아침 방영되는《사랑했나봐》에 대한 시청의견들이  분노와 증오, 질타로 도배질되고있는것이다. 그것은 모든 선량하고 정의적인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정감의 분출인것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이 드라마의 제목은《미쳤나봐》가 제격일듯싶다. 작자가 윤진이라는 인물형상을 설정할 때 미적인 속성을 지닌 인물들이 겪는 운명적고통을 표현하여 비장미, 거기서 드러나는 거짓된 사회현실, 비틀어진 인성, 억압속에서의 모지름, 부당한 지배에 항거하는 리념가치를 긍정하려 했는지는 몰라도 구성된 드라마에서는 그것의 사돈에 팔촌쯤 되는것도 시사하지 못하고있다.
    모든 인물을 선정이의 악행을 조장하고 기고만장하게 기탄없게 만들기위 위한 움직이는 장치로 설정한 작자의 스토리구성이 아무래도 비정상인것같다. 왜냐하면 부동한 성격의 인물지간에 필연적으로 생활규정성의 상호관계가 체현되여야 하는데 최선정=작가의 관념에서는 배제되여있다.  생활의 총체적인 발전추향에 스토리, 성격변화가 순서점진적으로 전개되여야 하는데 작자는 임의대로 헝클어놓고 어깨와 허벅지를 붙여놓고 팔과 발가락을 붙여놓고 귀와 입을 한데 집어매는 식으로 사건을 전개시키고있다. 원래 평론할 건덕지도 없는 한국시청자들의 표현대로라면 막장드라마인데 작가는 생활의 론리를 마구 짓밟으며 멋대로 나갈 권리도 없거니와 그냥 그렇게 가다가는 돌아설길 없이 낭떠러지에 추락하고 말것이다. 말하자면 실패작으로 무효로동임을 선고하게 되였다는 말이다. 역시 또 하나의 한계를 보여주는것이라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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