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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가야할 길
2013년 07월 17일 08시 37분  조회:8331  추천:1  작성자: 최균선
                                     걸어온 길, 가야할 길
 
                                            최 균 선
 
    길이란 무어냐?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수 있도록 땅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길이라고 해석하고있다. 길ㅡ하면 직접적의미와 파생의미로 된 뜻이담긴 길이 무수하다. 크게 나누면 륙로, 하늘길, 바다길로 나눌수 있는데 오솔길, 큰길, 잿길, 외딴길, 벼룻길, 황토길, 서덜길, 두메길…두렁길, 고샅길, 사잇길, 뒤안길, 자드락길, 등굽이길, 굽이길…에움길, 지름길, 두름길…
발에익은, 늘 걷던듯이 걷는 건늠길이 있고 자칫 엎어질듯한 가파로운 비탈길, 소잔등처럼 밋밋한 언덕길, 가시가 총총하여 나아갈 틈이없는 푸서리길, 비내리는 광야의 길, 눈보라길…추상적의미로 좋은길, 나쁜길 등 이루다 렬거할수 없으나 아무튼 길은 갈수 있고 올수 있으면 다 길이다. 그러나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고 했듯이 길이 아니면 가지고 말라는 조상님들의 가르침만은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길을 내기전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을수 있는 공간이면 다 길이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첫발자국을 내면 길이라 이름했다. 길은 자초에 어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냈지만 또한 되돌아오기 위해서도 닦아졌다고도 할수 있겠다. 갈래갈래 갈린길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그만큼 사통팔달의 의미도 있지만 자유롭게 오고가기 위해 낸 길에 나중엔 우리 스스로 얽매이고말았다.
    선사들은 묻는다.《어디로 갈것입니까? 어디서 오십니까?》그러나 대답할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았다. 인간은 자기들이 만든 길우에서 방황하게 되여있고 또 그래서 대개 안내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선인들은 지혜로운자의 길은 흉금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밖에 있다는 고훈을 남기였다.
    촌사람들은 자기가 가보지 못한 곳엔 길이 없으려니 생각하고 어디로 걸어갔던지 돌고돌아 길은 오직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만은 확실하였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남이 걷지못한 길, 길아닌 길을 걸어본 사람이 잘난사람이 된다. 먼 덕이밭으로 오가며 풀속을 걷는것은 공연한 수고로움이다. 이미 굳어진 수레길을 걸으면서 편리함에만 자족한다. 그러나 개척의 희열이 발밑에 깔린다는것은 모른다. 한평생 고향길에서만 맴돌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길이 열릴 공간이 없다.
    관습처럼 아는것만 알뿐이였던 우리는 생눈길을 걸을때도 앞사람의 발자국을 딛고싶어한다. 그리고 그냥 다니던길만 다니고 갈림길 많아 헛갈리는 초행길보다 사람들이 걸어서낸 길, 그것도 앞에서 걸어가는 대렬의 뒤꽁무니를 따르는데 습관되였다. 하지만 쫓기는자는 언제나 긴장을 놓을수 없다는것을 모르고 순리를 어기는일은 아시당초 생각도 아니한다.
   사회라는 이 크낙한 공간에도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길이 갈래갈래 뻗어있다. 하지만 오래동안 우리들의 리념속에는 크게 두갈래 길이 갈라져있었다. 이른바 최고의 경지라는 사회주의길과 멸망에 이르는 자본주의길이였다, 무조건 한길을 따르 면 더없이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이요 반대의 길을 가려한다면 치욕스러운 반동의 길, 멸문지화의 길이였다.《그길로는 갈수 없다》는 소설처럼 길은 하나로 정해졌었다.
    자본주의길이란 무엇인지 똑똑히 알지 못하면서도 맹종했다는것을 깨닫게 된것은 많은 댓가를 치르며 세월이 많이도 흐른뒤였다. 그때 오직 하나의 리념을 안고살아야 했던 우리 마음속에 틀고앉은것은 순복공구론이였다. 순응이 불원이면 타도였다. 그렇듯 격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때때로 사이비와 곤혹을 안겨주던 영광의 길, 조류의 꼬리를 물고 맹종하는것이 아닌지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도전적으로 나올 선구자적인 이단자는 꿈에서도 태여날수 없었다.
    비겁과 맹동에 대해 조소할줄아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채찍이 몰아가는대로 몰켜가는 양떼처럼 순종에 길들여졌다.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징이였고 살아있다는 증거였지만 현상에 안주하거나 일신을 상하지 않으려고 중용지도에 매달린 삶이였다. 병대신 병과 비슷한것, 아픔대신 아픔 비슷한것에서 위안받으며 자기를 마비시켰던 우리들. 그것이 역시 그 시절에 존재하는 생존기술이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잘살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놀라운 인내를 길러왔던것인가? 밤길을 끝까지 걷는자만이 제일먼저 새벽을 맞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출구가 묘망한 미궁같은 리념의 턴넬을 걸었기에 모두가 각오의 지각생이였다고 해야하리라. 이런 반추는 스스로 무안하고 민감하고 위험스러운 회상일수도 있다. 조심스러운 회심의 미소로 떠올릴수도 없는 맹랑한 세월은 돌이킬때마다 우리의 속을 긁어놓는다.
    도(道)란 곧 길이다. 하늘에는 천도가 있고 땅에는 땅의 도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의 도가 있는데 천도와 지도는 우주의 섭리이나 인도만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도 있고 동서의 차이도 있고 변화가 있다고 어떤 스님이 설교했다. 인생길이란 본래 고 달프고 힘든 가시밭길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인생려정은 왜 그리도 험난했고 한과 눈물로 얼룩져야 했는지? 찢어지게도 가난한 이 땅에 태여나 새 순같은 청초한 나이에 숙명에 매달려야 했는지? 그것은 우리 세대들의 정한일것이다.
    마침내 모든것은 변한다는 진리가 상전벽해를 불러왔을 때 꿈결에도 얼비치지 못했던 리념의“초한계선”을 넘어 제좋을대로 걸을수 있는 광명한 대로가 열리였다. 처음엔 오리무중에 빠진듯하였다. 그러나 유일한 영광의 그길도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절대불가이던 “치욕” 의 길을 따라 치부의 꿈산으로 치달아오르게 되였으니 력사가 절대권력과 롱담한것인가?
    우리가 이미 걸어온 길, 지금 걷고있는 길은 무슨 길인가?  이제 남은것은 잘 살수 있는 길만을 열심히 걸을일로서 불문률이다. 두갈래로선투쟁은 식후한담거리도 아니다.“그길로 갈수 없다”는 호매롭던 슬로건도,“우리는 큰길로 걸어가네. 의기 분발하고 투지앙양하여라”던 노래도 다 바람처럼 스쳐가버린 시대의 선률이였던가?
    옛길이 세월따라 없어지고 새로 닦는것이 길이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라했다.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가 된 세상, 사람마다 돈나오는 길이면 칼산도 불바다에 뛰여든다. 여기에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않고 목적한바를 이루면 불문에 부친다는 욕망이 담겨있지만 왈가왈부할 사람도 없다.
   형이상학이든 “형이하”이든 력사의 흔적으로 남아있지만 우리들의 발자국은 기억속에서 사라진 오늘, 이제 걸어갈길이 요긴하다. 사회정영은 소수이고 높은곳이라해도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인생길은 한 시점에서 다른 한 시점에로 부단히 전환하는 연장선이다. 그 시점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지나오고 장차 지나갈 수많은 사람, 지나올 수많은 사람들로 길은 어제로부터 오늘에 이르고 다시 래일에로 뻗어갈뿐이다. 지쳐도 그냥 걷고 간이역에 머물고 다시 떠나는 길일뿐이다.
    어느 길로 가든 자기 자유이다. 길은 자초에 방황을 앞세우고 두발로 내였다. 아무도 당신의 다리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걷고싶으면 그냥 걸어라. 그러나 자족의 동산을 지나서 자멸의 늪으로는 가지는 마시라. 아직도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조상들의 유훈은 실효성이 있다. 가지말아야 할 길이라면 돌아서야 함에도 요행을 따라가다가 낭떠러지도 보지 못하는것은 행보는 무모한 행보이다. 남새스러운 걸음 새가 풍조가 된 시대라도 탐욕의 사잇길로는 용왕매진하지 마시라.

                                                    2009 년 4 월 2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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