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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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14)인생의 종착역에서는…
2014년 06월 28일 08시 36분  조회:5140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인생의 종착역에서는…
 
                                                                     진 언
     
    인생에 대한 비유는 각양각색이다. 인생궤적을 포물선에 비유해도 합당다면 동년은 기점이요40대는 최고점이요 로년은 종점이다. 드디어 달려온 인생궤적을 돌아보면 불혹이라는 말그대로 감개무량함과 더불어 더욱 많은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생을 총화하는 적시(适时)는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러 숨벅차던 가슴을 어루쓸며 죄이기만하던 마음의 탕개를 활 풀어놓게 되는 만년이라 할것이다.
    지나온 일들을 돌아보고 평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인생관을 세운다는  30대 이립(而立)을 훌쩍 넘어서40대 불혹(不惑)에 경험이 쌓여 스스로 자신의 잘한 일, 못한 일을 판단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지만 오히려 인생에 회의를 품게 되고 (知天命) 50대에는 세상의 리치를 알고 모든 만물은 홀로 존재할수 없기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함을 깨닫고 자신과 우주의 존재를 알고 자연에 순응하게 된다지만 항간에 말처럼 저도 모르게 쉬쉬해짐을 느낀다. 한갑자 돌아오는 와중에 모든 소리를 리해하고 순하게 듣는다는 60대 (耳順)에는 자기 인생마당이 회색으로 도배질된다. 이는 년령단계에 대한 대략적인 궤도를 제시할뿐이다.
    사람마다 지성으로 터득하면서 그대로 차곡차곡 챙길수는 없는 일이다. 늙으면 성찰할것도 없이 곧 감각적으로라도 감동에 가슴끓이지 않고 랭철하게 인생마당을 비질하게 된다. 뒤우뚱거리며 인생길을 시작하던 동년의 모습이 어제런듯 삼삼해지고 물덤벙불덤벙하던 소년시절을 생각하면 회심의 미소가 지어지고 혈기방장하던 젊음을 돌이켜보면 덧없는 청춘을 흐느끼며 인생무상의 진속을 가슴으로 받아안게 된다.
    인생길 굽이굽이에 이런저런 경관이 펼쳐졌지만 그것을 풍부하고 다채롭다고 말할수 있으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할것이다. 수도없이 스쳐지난 낯선사람들의 덤덤한 눈길도, 동업자들의 무랍없는 눈길도, 혈육, 친지들의 지어먹지 않은 미소랑 다 인생 의 풍경이라도 누구나 겪는 체험이기에 유달리 다채로울것도 없고 풍부할것도 없다. 성공자라해도 좋고 범부속자라해도 좋고 세월은 누구에게 시간을 더주거나 덜썩 갈라내지 않으나 욕심도 가끔 털어내면서 걸어야 고달픈 인생행로에 걸음이 가벼울수 있다는것은 만년에야 터득하게 되니 인생이 곤혹스러운것이다.
    인생의 종착지에서는 무심히 지여 어깨에 내려앉는 락엽에도, 제멋에 겨워 날개짓하는 산새에도 감동이 일렁이지만 자별나게 좋아지는 물건도 없고 특별히 미워지는 사물도 없다. 인생의 종착지는 사면팔방으로 바람이 스쳐가는 언덕위에 정자와 비슷하다고할가, 청풍에 마음속의 온갖 먼지를 날려보낸 탓인지 마음이 청정해진다. 불합리고 비리한 세속사정에 분개하던 일도, 눈꼴사납던 인정세태도, 명리를 탐내여 수단을 가리지않던 쟁투의 현장도, 아부를 게바르던 그 얄궂던 얼굴들도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해서는 다 부질없고 뜬구름같이 속절없다.
    옛말에 죽어가는 새의 울음소리는 애처롭고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은 선량하다고 하였는데 석양의 언덕에서 마음이 한껏 여리여지고 정에 약해지고 동정심이 많아진다. 그 나이에도 사람이 착해지지 않는다면 천성으로 악한 사람이 분명하다. 공자는 인생의 의의는 소신껏 생활하면서 자기의 방식으로 인자(仁者)의 경지에 이르라고 가르쳤다. 말하자면 사람을 사랑하고 생활을 사랑하라는 뜻일것이다. 인성은 그 과정에서 체현되는것이다. 공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은 인덕(仁德)이 있고 인성이 있어야 참된 사람이 된것이라 하였으되 진인(真人)이란 참으로 불세출이라 하리라.  
    사람은 늙어진후에 가장 아름다운것은 가슴에 정회(情怀)를 품은 모습일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은 한갖 자기 인생목적을 달성하는데 수단일뿐이라면 금빛야차에 나을것이 없다. 가슴에 정회(情怀)를 품은 사람이라야 따스한 가슴으로 인애를 보듬으 며 살아갈수 있다. 아니라면 일생에 한일이 명리에 동분서주했다면 소금짐을 지고 강을 건너다 잔꾀를 터득하고 그다음 솜을 지고 강은 건너며 같은꾀를 부렸다가 골탕을 먹은 당나귀에 다름없다는 자각에 더욱 인생의 허무를 안게 된다.
    인생의 종착역에 퍼더버리고 앉은 로옹은 천진하고 소박해지다못해 되려 아이가 되여진듯하고 허황하던 랑만도 자연으로 회귀시킨다. 이제 남은 일은 “인생비망록” 을 한장한장 번지며 주해를 다는 일뿐이다. 그런데 일생의 비망록을 한대의 연필로 기록한다고 할 때 처음엔 뾰족하던것이 차차 닳고 닳아서 뭉툭해진대로 써왔음을 발견하게 되고 살아왔다는것은 어찌보면 수수께끼 맞추기와 같았음을 느끼게 된다. 다음은 그 다음은…하는식으로 정답을 찾지 못한다.
    사람은 늙으면 천연적인“철학자”로 된다. 사람마다 저마끔의 생활방식이 있고 가치기준이 있으며 사유모식이 있고 행위준칙이 있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이것저것 나무릴 리유도 없어지는것을 왜 지난날에는 옴니암니 내기준으로 흥량했던가싶어지며 면괴스러워지기도 한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거나 시각을 바꾸어 보았더라면 가히 리해될수 있었을것을 왜 그러지 못했던가? 아무튼 이 모든것에 대한 성찰은 인생의 막바지에서만 거둘수 있는 수확이리라.
    로신의 말처럼 현명하게 세속적이 되였는지 세속적으로 현명하였는지 스스로 판단할수 있다면 흔하지 않은 지성인이라 할것이다. 니체는 “사람은 곧바로 날수는 없다. 언젠가 날기를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것을 배 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생길에서 순서점진의 과정철학을 말하는것이다. 달리표현하면 인생은 마치 자기와 이 세상과 평형을 잡을수 있는 물건을 들고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면서 시대라는 외바줄을 타기와 같다고 할수도 있겠다.
    그래서 인생을 구생불득이요 구사불능(求生不得,求死不得)이라고 함축하듯이 삶이란 그것과 끝까지 겨루어야 하는 전제를 달고 주어진것이라 할것이다. 그리고 또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더라만 흔들리지 않은 인생의 쪽배란 아무도 타보지 못하고 욕망이란 미지의 대안에 행운을 부리고 만족타령을 부른 사람도 없는것이다.
    인생을 거의다 살고나서 평생 바깥경계에만 마음이 쏠려왔음을 성찰하게 될 때 인생의 허무함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외재세계, 외재물에 쏠리는 그 마음으로 인생가치를 해석하고 그것을 추구해온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욕망의 대문만 활짝 열어놓았으니 잡다한 유혹들이 밀려드는것을 말려내지 못한것이다. 하여 마음은 걷잡을수없이 흔들리였고 형용하기 어려울만치 고달프게 인생을 영위해 온것이다.
    호메로스는 신을 빌려 자신을 현실밖에 두는 태도를 보이면서 서술자의 신분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사와 인간세상의 불행을 노래했다면 성인 맹자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때로는 우환이 사람들을 생존하게 만들고 안일과 향락이 오히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철학을 강의한다. 호메로스와 맹자는 다른 시공과 시각에서 출발하여 똑같이 적극적인 인생태도로 사람들이 경험해온 불행과 우환속으로 함께 걸어들어오고있다. 그러나 그런 철리를 터득하기까지는 인생의 비탈길을 많이 톺아야 한다.
     암담한 일생이라도 상상만큼 비참하지 않았기에 사는데까지 살아간다. 덕성으로 살다가 죽어서 사람들이 기린다면 더 바랄게 무엇이랴, 아무리 빨리하던들 노상 늦은 후회인데 희로애락으로 범벅이된 인생에 개탄한들 어쩌랴, “생은 과오일뿐 죽음이 지식이다.(실러)”그리고 쉐익스피어의 말처럼 명예로운 후퇴를 해야 마땅하다. 어즈버, 석양도 다하지 못한 사명감에 얼굴을 붉히거늘…

                                                2009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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