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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이번엔 “비자루교사”라?
2016년 01월 19일 09시 47분  조회:4612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이번엔 “비자루교사”라?
 
                                     진 언
 
      사람은 오래 살다보면 별 해괴한 참변도 다 보게 되는 법인가보다. 지난해“인분교수사건”으로 사람들을 경악케 하더니 이번엔 학생 여럿이 달려들어 비자루로 교사를 때린 사건이 터져 한국내에서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 다시 높아지고있다. 얼핏 듣기만해도 불가사의한 “빚자루교사”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23일 경기도 이천의 한 특성화고교에서 기간제 교사가 남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해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천시 A고교 1학년 교실에서 남학생 3명이 기간제 교사 B(39)씨를 폭행하고 같은반 학생들이 이를 촬영해 (소셜 네트워크서비스)에 게시하면서부터이다. 기간제교사 B씨는 수업출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바자루를 휘두르고 욕설질했다.
     비정한 사건뒤에 충격적인것은 폭행에 가담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 교실에서 일어났으면 다른 학생들도 있었을텐데 아무도 만행을 말리지 않았다는것이다. 정의는 늘 지각하지만 결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기 스승이 모욕당하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어서 수수방관했다면 역시 가증스러운 넋들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학생의 인권이 보호받을수록 교권이 추락한다면 이률배반인가? 망조가 든것인가?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학생,학부모 교권침해사건이 5년사이 2만6천여건에 달한다는것이다. “2011~2015년 교권침해 현황”에 따르면 이중에 폭력과 욕설이 1만6485건으로 전체 62%에 달했고 수업진행방해 5538건(21%), 기타 3165건(21%), 폭행 436건(2%) 순으로 나타났다.” 교권이나 학생보호권은 인권이 아닌가? 상술한 통계는 인권수호가 아주 잘되고 있다는 역설인가?
      언발에 오줌누는식으로 문제가 생기면 법안만 만들고 문제아 딱지만 붙이면 해결될것이라는 소아병적인 진단은 벌써 재발을 심어놓고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고훈을 고집할 현시대가 아니지만 “사도존엄”이라는 관념이 희박해졌다해도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인간의 기본도의도 모르면 과시“似人不人 (그 모습은 사람과 같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이라 할것이다.
      학교 징계위원회에서, 학폭위에서 심사를 하고 징계위원회에서 이 학생들에 대해서 자퇴를 시킬것이냐, 아니면 일정한 징계를 주고 학교를 다니게 할것이냐 의론이 분분한데 교사들은“교실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했는데 퇴학을 안시키고 존치를 시킨다는 말이냐, 학교를 다니게 한단 말이냐”하고 분개하고있다  
     반대로 일부 외연에서는 “아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보내버리면 이 학생들은 어디를 가느냐, 반성의 기회를 주고 다시 학교를 다니게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고 한다. 속담에 내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따가운줄 안다고 국외인들이 셈평좋게 군자연하고 나서는데 대해 국내외를 막록하고 교원으로서는 거부감이 앞설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권보호법”이 무난히 국회를 통과했단다. 국토가 다르더라도 다같은 교원으로서 박수를 보내고싶다. 그런데 교권보호법이 없어서 일어난 사건 일가? 교권보호법이 시행되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만행이 근절되고 교원의 권리 를 보호받을수 있는가? 그저 몽둥이도 아니고 땅바닥을 쓰는 비자루에 얻어맞고 여지없이 추락된 교원사기와 자긍심을 회복해 제자사랑과 교육에 매진할수 있는가?
      나도 앞당겨 학교에서 밀려난후 연길시내 사립학교들을 두세곳 전전하면서 스스로 비애를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여서 공연히 신경이 곤두선다. 그때 내가 맡은 반에 대부분 학생들이 부모가 외국에 돈벌이 나가면서 내팽겨친“락오자”들이였는데 공부하기 싫어서 초중을 졸업한후 거리를 떠돌다가 부모의 압박에 혹은 때늦은 후회심을 안고 출로를 찾으려고 모여온 아이들이였으니 가히 상상하고도 남을것이다.
      조밭이 있으면 가라지가 있고 논에는 돌피가 있는 법이다. 오래동안 굴레벗은 망아지들이라 못되게 놀고 도무지 말이 들어가지 않는“구제불능아”들도 적지 않았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평생 정규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순돌이들의 왕이 되였는데 굴레벗은 망아지같은 어떤 애들을 보며 소귀에 해금타기나 아닌가? 내가 천여원 돈때문에 구차스럽게 놀지 않느냐? 하며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많았다.
     《 론어(论语)》에"唯上智与下愚不移"이라는 구절이 있다. “오직 상등의 총명자와 하등의 우둔한 자는 성정을 개변시킬수 없다.”면서 이 두 부류의 사람은 가르칠수 없다고 했다. 공자님 말씀이야 틀릴수 있으랴마는 저저히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인생의 락을 누릴수 없고 아이보기가 울지 않는 아이만 볼수는 없다.
      농부에게는 척박한 땅이이 없다는 말처럼 교원에게는 가르치지 못할 학생이 없다는 높은 교육정신을 구비해서 아니였다. “랑자회두 금불환(浪子回头金不换)이라고 하고 북데기속에도 알맹이가 있다고 걔중에는 머리좋은 아이들도 있었는데 새로이 앞날을 개척하겠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을 저버릴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불량한 애라도 아버지, 할아버지같은 초빙교원들이 사람되라고 못살게 굴어도 그런 선생님을 때린다는 생각은 아마 죽었다가 깨나도 못했을것이다.
     “사도존엄(师道尊严)”이라는 개념은 중국에서 한시기 비판받았고 심지어 봉건사회에서의 사생관계의 잔여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후의 교육실천은 그런 관점에 대해 다시 검토하게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학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슬로건의 내함이 부단히 확대되고 곡해되여“오직 불합격교원이 있지 불합격의 학생이란 없다. 학생은 영원히 정확하다. 학생은 바로 하느님이다”에로 치달아올랐다. 마침내는 “사도존엄”의 사생관계가“생도존엄(生道尊严)”으로 바뀌고말았다.
    맞는가?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에 이른것뿐이다. 사생관계는 응당 평등해야 한다는 관념은 오직 인격의 령역에 적용될수 있으며 인격평등을 가리킨것이다. 10여 년전 연길시내의 모중학교에서도 싸가지 없는 몇몇 불량학생들이 자기 학교의 교원을 때린 사건이 있었는데 교원들이 저저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였다.
     “사도존엄”이란 결코 시대의 발전으로 하여 내버리는“쓰레기”가 아니다. 사도존엄이란 본래 교원이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것을 가르키는 말로서 곧 교원이 우선 존중 받아야 전수하는 도리, 지식, 기능이 존중을 받을수 있다. 후에는 교원은 장엄하다는 의미로 인용되였다. 하긴 교직도 뛸데없는 일종 직업인것은 사실이다. 세상에 어떠한 직업이든지 본질상에서는 복무성을 고유하고있다. 그러나 부동한 직업에는 부동한 복무형식, 부동한 복무자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교원으로 말할 때 학생을 존중하는것은 아주 필요한것이 아니라 필수적인바 학생을 위해 복무하는것은 역시 천직이다. 그러나 교원의 복무는 상업령역에서의 복무가 아니다. 교원의 복무는 학생들의 인생준비에 향도자로서의 복무이며 계발하고 인도하는 복무이다. “교육복무원”이라 해도“하느님인 학생”에 대해 필요한 약속과 관리가 요청된다. 그러나 이 경우, “사도존엄”이 무조건적이 아니라는것은 명기할 필요있다.
     “비자루교사”로부터 학생이 교원을 ××같이 안다면 이는 교육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옛말에 매듭지은자가 그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를 가르치는 스승에게 감히 비자루를 휘두를 때는 개잡은 포수같다가 징벌받게 되니 비겁하게 변명하는데 그 본인들을 위해서라도 마땅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잘못을 덮어주는것이 관용이 아니다. 이젠 돼지굴짓고 내버린 돌같은 신세여서 별상관은 없지만 타산지석이라고 이국의 기괴한 풍조가 밀려들지 않기를 기원한다. 

                                               2016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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