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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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둑나무아래에서
2016년 03월 17일 08시 57분  조회:426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가둑나무아래에서
 
                                                       최 균 선
 
    모아산기슭 내가 살던 마을 뒷산에 버릇처럼 눈길이 끌리던 참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해저물도록 덕이밭에서 김을 매고 더덜털 돌아오다가 그 나무아래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가둑나무라고도 부르는 그 참나무를 볼때마다 못생긴, 늘 아프게 살아야 하는 내 인생이여서 상념도 멋대로 뻗었는지 모른다.
    야산에 절로 나서 제가 생긴대로 자라는 가둑나무일지라도 앓음도 있고 아픔도 있고 설음도 있을것이라며 마치 시인이라도 된듯이 스스로 싱거운 애상에 잠기군 하였다. 푸르던 영화의 한시절이 가고 미구에 라목으로 되여 겨우내 차디찬 회초리 찜질을 당하면서도 말없이 새봄을 기다려야 하는 나무들의 지조가 어이 의롭지 않으랴!
    어떤 나무이든 지구를 생명의 요람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멀어진 삶을 사는 동안 인류는 나무의 존재가치를 잊기시작했다. 자연의 만물은 우리 삶을 위해 리용가능한 자원일뿐이라는 사고가 나무에 대한 무분별한 활용으로 이어지면서 나무는 그들이 만든 세상에서 급속도로 사라지고있다. 나무가 없는 자연계를 상상할수 있으며 나무가 없는 인간의 진화가 가능했을가?
파란잎새가 돋는것은 봄소식에 묵은 꿈을 깨는것이다. 연록의 잎이 파르르 흔들리는것은 봄바람을 반기는 나무의 속삭임소리다. 진초록 물드는 나무잎은 엽록소때문 이 아니라 태양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고…추운겨울에 헐벗고 서서도 태양을 원망하지 않고 무더운 여름에 무겁도록 잎이 무성해지면 태양에 감사할것이다.
    찬서리내린 가을, 빨갛게 단풍든 나무잎에서 시인 사백은《록색의 생명에도 더운 피가 있었음을 서리맞은 후에야 나는 알았다.》고 읊었다. 그 더운피도 식은듯 마침내 조용히 지는 락엽의 쇠락을 우리는 락엽귀근이라 이름한다. 그러나 그것을 고마운 대지에 분신으로 사랑을 표현하는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될가? 영화의 시절은 가고 사색의 겨울, 헐벗은 나무는 이제 다시 오려는 봄날의 꿈을 키우며 참고 견디는 인고의 자태라고 생각하면 너무 감상적일가?
    나무는 모진바람 휘몰아쳐도 억세게 서있으려 하고 외세의 강타를 이겨내지 못해 쓰러지지 않으면 소신껏 서서 죽는다. 살아도 나무이고 밑둥을 잘리여 오리오리 쪼개져도 나무라는 이름을 잃지 않는다. 넋도 몸도 나무이기때문이다. 겨울나무는 스스로 혹한의 고문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게다.
    밝은 빛으로 가득찬 세상, 푸른하늘과 흰구름,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무가지와 살랑대는 푸른잎들…태고적,아직 어두운 물속에서 살고있던 작고 미약한 생물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나무였다니 너무나 신선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나무가 인간을 매혹하며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우 리의 관념속에 깊숙이 새겨진 나무의 미덕때문이 아닐가?
    애젊었던 그시절, 고동하림장 잡목속에 유별나게 빼여난 아름드리 가문비나무에 톱을 걸어놓고 아무런 감촉도 없었는데 천생 못생긴 가둑나무에서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이게 아닌데…”라는 뇌까림 소리가 절로 새여나왔다. 돌이켜 생각하면 가문비나무에서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속세에 환멸감을 느낄줄도 아는 사나이다운 사나이의 헌걸찬 모습을 련상하게 된다.
    엄동설한풍에 속까지 얼어서 서슬푸른 도끼날의 일격에 쇠소리를 내던 쇄스래라는 나무를 어렵사리 베여눞히고 식은땀을 들이면서 역경속에서도 앙가슴이 뛰는 오돌찬 사람. 돌아가는 세상이 사색의 계절인지 재생을 꿈꾸는 봄날인지 구별할줄 알아서 경우에 따라 버틸줄도 거부할줄도 아는 그런 사람을 련상해 보게도 된다.
    나무앞에서 천차만별의 인간상을 읽는것이 무리일가? 이런저런 여러 수종의 나무들을 읽으면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강경한 사람, 인고의 한을 의지력으로 련마하는 사람, 적자생존의 섭리를 잘 알아서 스스로를 갱신할줄 아는 그런 사람. 불모지에도 바위틈에도 뿌리를 박고 자기 나름의 생명찬가를 엮는 가둑무같이 억척스러운 사람을 동경해보기도 하였다.
    비틀어진 참나무가 조상의 산소를 지킨다. 바르게 잘생긴 소나무는 쓸모가 있으니 누가 베어간다지만 실제로는 못쓸것같은 가둑나무가 자기 역할을 다하고있다. 그런 나무에서 사람도 겉만 보고 과소평가하면 안된다는 미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평생 나서 자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곳이 옹근 세계로 생각하면서 세상에 갈래갈래 길도 많고 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우물안의 개구리 의 시각과 별반 차이없는것이다.”라는 말은 맞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할수도 있다.
    끝까지 산을 지키는 못생긴 나무처럼 거룩한 바보가 자기를 지킨다. 거룩한 바보가 지조를 지킨다. 거룩한 바보가 끝까지 혼잡한 세상에 남는다. 그루터기가 되기를 원치않는다면 못난나무로 거룩한 바보로 되여지라. 스스로 못생긴 자신때문에 기죽지 말고 오히려 못생긴것에 감사하며 행복임을 알수도 있겠다. 못생긴 사람들의 고통을 리해할수 있는 사람이 된것만으로도 자족하면 안되는가? 못난 인생일지라도 량심과 성실을 무기로 세상과 대화해야 자기다운 인생이라 할수 있으리니…
     “나무는 그 열매로 아나니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수 없고 찔레꽃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못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는 유럽의 격언이 새삼스럽다.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이다. 꽃을 피우지 못하고 떫은 도토리만 가득 맺는 가둑나무는 못생긴 나무이다. 그러나 못생겼다는 거기에 그로서의 매력이 있는것이다.
    스스로 못낫다고 자인하면서도 어떤 안위를 찾는다면 자기속임일가? 자신심을 가진다는것은 그만큼 삶의 의욕을 가지고 있다는 표징이다. 인생을 나쁘게 추단하지 말고 밝게 보려는 시선도 가져야 하겠다. 가둑나무는 참나무로서 뿌리는 일편단심 아 래로 아래로 뚫고들어가고 줄기는 전심전의로 향상하여 하늘을 겨누며 치솟는다. 그런 나무를 두고 무방비상태이고 때론 억울함을 당하고 숙명에 매여 일생을 마치는 불우한 사람들을 련상해도 무리는 아닐듯싶다.
   스스로 자신을 못난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할 일만을 묵묵히 하는 이들이 그들이 다. 오늘도 못난이들은 역경을 겪어도 꾹 참고 제 역할을 다 하고있다. 소리가 커야 하고 힘이 세야 하는 판국에 못난 사람들은 더욱 초라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리고 늘 무시당하기 일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위대한 국민들이며 한나라의 초석들이다. 진정 이 못난이들이 력사를 창조했다는것을 누가 모를가?
    스스로 바보이기를 원하는 바보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것은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소원하는것이요 개탄할 일은 세인의 눈에는 그저 어리석은 사람을 생활이 축복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리익을 챙기고 자기 살길을 찾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언젠가 골탕을 먹게 되여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하여 스스로 우자의 길을 선택 하였던 옛시인 원적은 미친 바보인체하였기에 잔명을 보존할수 있었다는 력사사실은 생존지책의 일종임에는 틀림없으나 참으로 슬픈 섭리이다.
    무수히 많은 부동한 얼굴들의 뒤에는 제각기 다르고 복잡한 종종의 인생현상이 숨어있다. 마치 울창한 밀림속에 수십백종의 나무들이 서있다는것을 겉으로는 볼수 없듯이, 정체적으로 울울한 인생의 현장에 저저의 생명나무들은 이 땅에 여러수종의 나무들과 흡사하지 않으랴!        

                            2006년 5월 10일 ㅡ2015년 12월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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