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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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영광이 되도다
2017년 07월 02일 20시 26분  조회:3200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죄”가 영광이 되도다

 
                                                            진 언
 
    2009년 7월 30일 남방일보(南方日报ㅡ广州)에 이런 글이 실렸다. 제목이《성농 업청, 부농을 핵심으로 농업현대화를 추진하자》인데 문장의 골자가 이러하다. “성농업청에서 청무회의를 소집했는데 성위15기전체회정신과 왕양(汪洋)서기가 성농업청에 내려와 한 연구보고정신을 전달했다.
    회의에서는 진일보로 금융위기배경하에서의 우리성 농업농촌경제발전형세와 새 시기 농업개혁의 발걸음을 더욱 빨리하여 성향발전에서의 새로운 요구에 발맞추고 부유농민(富农民)을 핵심으로 농업현대화와 새농촌 건설에 박차를 가하자…(하략)” 
    물론 “부농”ㅡ부유한 농민은 구부농과 구별이 있겠지만도 글자그대로 부유농민이란 원뜻은 변하지 않는다. 하다면 계급투쟁밖에 모르던 때라면 대역부도한 일이다. 오래동안 착취자, “복벽을 꿈꾸는” 적대세력으로 저주의 기둥에 매달았던 “부농”을 핵심으로 농업발전을 촉진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말이다.
    리념과 시대변천에 따라 하나의 개념의 의미가 달라지는것은 력사의 발전인가? “개률”인가? 례하여 시대의 물결에 멀리 떠내려간 낡은 개념인 “부농(富农)”은 그때도 부유한 농민이지만 지주와 더불어 착취자의 대명사로 되여 타도되였고 그 후대들은 사이비하고 황당한 련좌제로 격세유전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한자로 (富农)이란 계급성분의 부호로 되였지만 기실 박래품으로서1920년대에 로씨야로부터 인입한 전문술어이다. 부농이 지주와 함께 타도된것은 “착취”라는 인소 때문이다. 맑스주의 관점에 의하면 땅을 소작주고 농민들의 로동성과를 나누는것은 착취행위로서 사람을 고용해서 수익을 얻는것과 같다는것이다. 지금은 없는가?
    기실 중국이든 로씨야든 농민들사이에 서로 돈을 빌려쓰고 농망철에 일군을 고용 하는것은 농업생산과 농민생활에 늘 있는 일이다. 다만 부유한 농민들만이 이 방면에 서 상대적으로 고정적일 따름이다. 로씨야인들이 부유한 농민들속에서 보통농민을 갈라내 부농(кулак)이라는 이 개념을 창조했던것이다.
    중국특유의 소농경제가 조성한 적은 토지를 점유한 특점은 특기할바이다. 농업생 산경영에서 능력이 있는 농민들이 직접 밭갈고 씨뿌리며 땀흘려 일했지만 력사의 이변으로 지주버금으로 타도당하였다.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실제상 중국의 절대다수의 농촌지구에는 구쏘련식의 소위 “농촌자산계급 (부농)”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구쏘련에서 말한 부농이란 근대로씨야 농민중에서 주요하게 자본주의 경영방식을 운용한자 즉 고용로동력으로 생산한 량곡을 상품으로 시장에 내다팔아 리익을 얻는 전통적인 지주처럼 땅세로 수익하는 농호가 아니였던것이다.
    전통관념속에는 천하의 까마귀는 다검듯이 천하의 부농들은 두번째로 극악한 자들로 락인찍혔다. 만약 인간군체를 좋은 사람, 나쁜사람이라는 개념으로 나눈다면 부농들속에도 두가지 류형의 사람이 있게 된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미명으로 일률 나쁘다는 일면만 강조되여 곧 주적의 동의어로 굳어졌다. 그리하여 지주부농, 반혁명분자, 나쁜분자, 우파를 통털어 “검은 5류분자”라 하였고 부농은 이 검은무리들의 엄연한 “둘째”가 되였던것이다.
    아이러니한것은 부농에도 신부농이 있었는데 “신식부농”이라 하였다. 당시 항일근거지의 광대한 농민들에게 감조감식의 정책하에 적극생산하고 근로치부할것을 호소하였다. 하여 수많은 빈고농민들이 이에 향응하여 신근한 로동으로 빈하중농으로부터 신중농 혹은 신부농으로 되였다. 항전이 결속된후 계급모순이 사회주요모순으로 상승하였는바 이는 당시 새로운 사회성적인 난제로 부상되였다.
     당시 정책상 신구부농을 구별하라고 하였다. (《류소기선집》상권 388페지) 그러나 실제집행상 한몽둥이에 때려눕혔다. 례하여 동북지구에서는 신부농들이 투쟁받고 재산을 몰수당하였다. (《임필시선집》411페지) 이리하여 근로치부하여 신부농이 된 농민들이 억울하게 생각하였으며 정치와 생산에 대한 적극성이 타격받았다. 임필시는 해방전쟁시기 토지개혁의 “좌”적사상을 규정하였는바 신부농의 문제는 당시로서는 토지개혁문제였지만 본질은 부유해진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데 있었다.
    학자들은 임필시의 사상과 주장은 개혁개방후 일부분 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지고 나중에 공동히 발전하는 정책에 보귀한 력사적경험이라고 긍정하고있다. 그러나 력사는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다. 60여년후인 오늘, 현대부농들이 륙속 출현되였다. 새 사회에서 개인이 능히 70년 토지사용권을 살수 있다. 1980년대초에 헌법에서 이미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을 인정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백만부옹만도 102만명이란다. 그러니 부유한 농민- 부농은 또 얼마겠는가? 중국현대판 “지주”들에 비하면 구사회의 지주부농들의 재산, 생활소비, 문화층차는 큰무당앞에 새끼무당에 불과한것이다.  
    그때는 못살아서 영광스러웠는데 지금은 못살면 수치라 한다. 하여 돈이 많으면 사회공헌도 크다하고 몸값도 높다. 일부 부정축재자의 재산은 한 부유농민의 몇만년 농사수입보다 더많다. 경제학리론에서 말하는 재부를 추구하는 기회는 비슷한데 매개인의 결과는 부동하게 된다는 사실이 실천적으로 증명되였다. 이처럼 생활능력, 경제 두뇌는 “영광스러운” 빈궁을 달리 풀이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60여년래 부농의 변천사는 60여년을 랑비한것이 아닌가? 신구부농의 본질적인 구별은 나변에 있는가? 우리는 60여년전으로 돌아가는가? 물론 구부농으로부터 “현대신부농”의 출현원인,과정, 결과는 다르다고 할진대 구부농들도 다수가 로동하였으니 론리적으로 발바닥에 털이난 부농이 있을리가 없다. 지금은 나라적으로 빈곤호를 부축하고 부유농민이 되라고 권장하는데 왜 제피땀으로 치부한 구부농은 (착취성분이 있었더라도) 천추에 용납못할 죄인이 되여야 했는가?
    가진것이 그때는 왜 죄악이였고 지금은 만민이 부러워하는 공로자인가? 더구나 출신은 선택이 아닌데 자제들마저 련좌죄에 시달려야 했는가? 개별적인 좋은 부농들이 있었다 해서 모든 부농들이 좋았다고 말할수 없듯이 실재한 “악질부농”들로 하여 소유의 부농들을 다 부정해서도 안된다. 이면에서 력사는 장난질하였던것 같다.
    이런 유모아가 있다. 개혁개방초기, 한 간부가 미국농업을 고찰하고 돌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중미량국의 가장 큰 구별이 무엇이던가고 물었다. 그 간부는 중국에서는 지주부농을 멸살시켰는데 미국에서는 “빈하중농”을 소멸한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비록 우스깨삼아 한 이야기지만 사실을 말하고 있지않는가?
    2천여년전 맹자는 “有恒产者,始有恒心”이라고 하였는데 뜻인즉 재산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라야 일에 책임감이 있다는것이다. 한것은 자기 재산에 책임져야 하고 자기 가정에 책임져야 하며 자기의 명성에 책임져야 하기때문이다. 오늘도 “누가 가난하면 누가 영광스럽다”거나 “누가 부유하면 누가 죄악적이다” 등 관념으로 “현대 지주부농”들을 판정한다면 력사발전을 거슬리는 언어도단이 될것이 분명하다.
    지금 천문수자의 재부를 가진 “신자본가”들이 숱하고 옛날 지주,부농들은 꿈에도 생각못할 “신지주,신부농”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임자의 명칭이 바뀌였을뿐 재부를 축적했다는것, 잘먹고 잘산다는 부자의 본질은 변한게 없다. 구빈농이든 신빈농이든 삶살이가 어렵다는 현상도 다를게 없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천하의“죄”가 최대의 영광으로 되였으니 리념에 따른 개률인가? 곤혹일세.   

                                                       2012년 2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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