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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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선녀바위의 전설
2018년 08월 17일 21시 15분  조회:267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선년바위의 전설
 
                                                             최 균 선
 
                                                                                 1
 
    속절없는 세월은 어느덧 18년을 넘겼다.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의 은혜받은 꽃이라는 의미에서 혜화라고 이름지은 딸애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서화라는 사람이 다녔다는 지구의 미술학원에 입학하였다. 혜화는 어머니가 왜 한사코 미술학원에 지망하라는지 그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자기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한 어머니의 소원대 장차 화가가 되리라 작심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인물화에 조예가 깊다는 서화라는 교수가 한 농촌처녀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본따서 그리게 하였다. 혜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상화의 얼굴이 자기 어머니와 신통히 닮아있는데가 어머니가 밤낮으로 쳐다보며 눈물짓던 그 초상화와 너무 비슷하였던것이다. 크면서 매일 보아왔던것인데다가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여느때보다 그림이 잘 되였다. 서화교수도 잘 그렸다고 칭찬했다.
      친구들도 어쩌면 그렇게 쉽게 잘 그려낼수 있느냐고 부러워하자 혜화는 얼결에 자기 어머니의 침대가에도 이와 똑같은 초상화가 있어 너무 익숙하였기때문이라고 자랑삼아 해석했다. 친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방학에 집에 가면 꼭 가지고 와서 확인시켜 달라고 다짐땃다. 방학이 되여 초상화를 학교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보이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펄쩍 뛰였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 몰래 그림을 꿍져넣고 학교로 달려왔다. 동학들은 그림을 보며 감탄성을 지르다가 서화교수에게 가져다보였다.
    서화도 혜화가 처음 놀란것처럼 웬간히 놀라지 않았다. 서화는 혜화를 가만히 불러내여 그림의 출처를 캐여물었다. 사연을 알게 된 서화는 돌아서서 눈물을 삼켰다. 학생들에게 그리게 한 초상화는 비록 당년에 그린것이 아니였지만 너무도 잊을수 없는 인물이였기에 그때의 직감을 애써 살리며 다시 그린것인데 성미술전람에서 특등상 을 받았다. 너무도 가슴아파서 학생들앞에 내놓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자 기 학생에게서 꿈에도 잊어본적이 없는 자기의 그림을 보게되다니…
                          
                                                                                 2
 
…무슨 혁명이 일어난다고 두메마을마저 술렁술렁하던 어느 봄날, ㅂ대학미술 학원을 다닐 때,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고 언제부터 지청구질하던 미화를 데리고  하 늘아래 첫동네라는 백두산기슭의 선녀동에 사생하러 내려갔다. 풍경화도 그릴겸 예로부터 미인이 많이 낳았다는 선녀동에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산꽃처럼 싱싱하고 고전적인 미를 가진 시골처녀를 찾을수 있다면 인물화를 그릴 타산이였다.
   하루 한번 통하는 뻐스를 용케 잡아타고 선녀동에 내리여 취한듯 산천경개를 살펴보니 과연 명불허전이 아니였다. 련산련봉이 평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골골에 벽 계수가 합수하여 마을앞에 맑은내를 이루었고 뒤산 층층바위에 살구꽃이 흐드러져있고 집집에 오얏나무에 하얀꽃이 봄뜻을 자랑하고있다.
    “천산과 만산에 홍장 찬란하고 앞시내와 뒤시내에 흰깁을 펴인듯,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천고의 절개요, 복숭아꽃 살구꽃은 순식간 봄이라. 기괴한 바윗돌은 좌우에 층층한데 절벽사이 폭포수는 이 골물 저 골물 합수하여 와당탕퉁텅 흘러가는 저 경개 무진 좋을시고…”라고 묘사한 “토끼전”에 한 절구가 절로 떠올랐다.
    현대문명의 해살이 이 골령에도 비추고있으나 아직 인간의 손길에 파괴되지 않은채 고색창연하여 별유선경이 이렇든가, 특히나 소문을 많이 들어왔던 선녀봉꼭대기에 선녀암이 지켜보는 마을도 초가집일색이지만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산수좋은 곳에는 시골가녀들도 많으리라는 제좋은 생각에 서화가 빙그레 웃자 미화가 무슨 제좋은 궁리를 했기에 바보처럼 웃음을 흘리고 섰느냐고 퉁을 놓는바람에 자아도취에서 깨여나 마을로 들어가는 수레길로 발길을 옮기였다.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있는 허술한 농가가 첫눈에 들어서 잡담제하고 찾아들어갔다. 여름해살이 살처럼 내리꽂힌다면 봄날의 해살은 나비의 날개처럼 내려앉는다던가. 5월도 저무는 때라 한낮의 해살이 자그만한 뜨락에 가득차서 열기를 뿜고있다. 뜨락에 가득한 온기가 노란병아리의 털처럼 보드랍고 아늑하다. 주인을 찾으니 뒤울안에서 병색이 짙어있으나 한창때는 산골에 미인이였을 녀인이 주춤거리며 나왔다.
    그녀는 경계하는듯한 눈길로 느닷없이 찾아든 웬 신사숙녀를 가늠하며 어정쩡해 하였다. 미화가 자기들은 미술학원에 대학생들이라는것, 여기에 그림을 그리려왔다 고 전후 사연을 곧이곧대로 말하고 소개신을 내놓으며 돈도 섭섭하지 않게 드릴터이니 한 이틀만 숙식을 제공해 달라고 사정하였다.
    “글쎄유, 루추한 우리 집으로 말하문 귀한 손님들인데 여느집과 달라서 제마음대로 손님이랑 척척 받아들일만한 처지가 못돼유, 그러다가 무슨 말썽이라도 생길가봐 그래유, 마을에 들어가서 빈하중농들의 집을 찾아보세유, 이 마을에 사람들은 집집이 모두 인심이 후해서 받아줄겐데유, 그리고 우리 딸애가 어찌생각할지…”
   서화는 말끝을 흐리는 주인의 표정을 보며 무엇인가 짚이는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눌러앉고싶어져서“그럼 받아주시는것으로 알겠으니 첫눈에 든 이 집에서 신세를 좀 집시다”하고는 가방이랑 퇴마루에 벗어놓으며 설레발쳐댔다. 점심때가 되였는지 한 숙성한 처녀가 마당에 들어섰다. 묻지 않아도 이 집에 딸이 분명했다.
   미화가 눈이 휘둥그래 서있는 처녀의 두손을 와락 잡고 아까하던 말을 곱씹어 하며 역시 좋은 인연이라며 수선을 떨었다. 수집을 타는지 녀자는 서화쪽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력연했다. 시골처녀가 낯선 청년앞에서 머금을 법한 원시적수태가 예민한 통찰력은 가진 서화의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봄볕에 그을리기는 했어도 수련꽃같이 흰 살결밑으로 푸른 피줄이 어슴프레 보일만큼 살결이 맑은 처녀였다. 두볼은 한창 붉게 익어가는 복숭아처럼 홍조가 물들어 있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건만 진붉은 입술은 석류화를 련상시켰다. 그것은 전류였다. 아직 이성에 대하여 그렇게 골몰해 보지 않았던 자신의 몸과 의식에 팽팽한 긴장과 충전을 일으키게 하는 매혹 그 자체였다.
    저녁을 먹으며 미화가 비난수해서야 겨우 모델로 되겠다는 답복을 받아냈다. 해가 뜨면 일밭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을 붙잡고 있을수는 없어서25촉이 될가말가한 전등불아래에서 먼저 초상화부터 그리고 밝는날 점심짬을 타서 자연을 배경으로 수채화를 그리기로 약조했다. 서화는 미술가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정열로 이름이 선 아인것처럼 이 시골의 가인을 가진 재간을 통털어내여 그려갔다.
    …맵시있게 빚어서 붙여놓은 당실한 코, 산양의 눈을 방불케하는 커다란 눈, 가늘지만 선명한 반달눈섭, 우정 길게 잡아당겨놓은듯한 속눈섭이 검은 눈동자를 순간 순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는것이 너무 매력적이였다. 그것은 흡사 어느 화첩에서나 볼수 있는 정교롭게 새겨진 불면 종이장에서 날듯이 깐지게 생긴 그녀를 보고 젊은 사나이가 느끼는 그러한 자연발생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활짝 피여난 한떨기 아름다운 꽃처럼 맑은 얼굴에 잔잔한 홍조가 비낄때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갈아앉혀 주었고 그 얼굴에 비낀 고운 심성이 더구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화는 감각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그린 초상화를 선아에게 선물로 주고떠났다. 대학생남자가 그려준 초상화를 받은 선아는 그 청년이 헤여지며 가슴속에 새겨준 그 눈길을 잊지 못하고 공연히 가슴을 설레였다. 시골내기로, 더구나 여의치못한 집에서 태여난 그로서는 언감생심이였지만 속일길없는 녀자의 본능으로 서화가 기다려졌다. 서화는 같이 온 처녀가 없는 틈에 다시 오겠다고 가만히 약속했던것이다.
    며칠후 서화는 약속대로 찾아왔고 선아의 어머니앞에서 사위로 삼아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그렇게 가연을 맺은 둘이는 대번에 련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와 그녀는 애욕의 피리를 마음껏 불어댈수 있는 그런 상태에 있었다. 충분히 성숙한 그들의 정 열은 흔히 정열을 식혀주기 마련인 정욕의 향락으로 하여 꺼지기커녕 오히려 더욱 세 차게 불타올랐다. 아마도 사랑이란 향락에 대한 감사의 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모양 이다. 선아로서는 장차 어찌될지 생각하고싶지도 않아서 그저 감각에 자기를 맡겼다.
    원래 함께 왔던 미화도 서화를 사랑했다. 그런데 서화가 늘 혼자 선녀동에 간다 는 사실을 안 그녀는 서화에게 천둥같이 화를 내며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표시해 왔던 자기의 감점을 털어놓고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알았으랴, 서화가 선녀동에 한번 가면 며칠씩 묵새기며 선아의 배속에 불행한 사랑의 씨를 심어놓았다는것을, 그 런줄 모르고 한사코 서화를 남편으로 삼는다고 윽윽 별렀던것이다…
 
                                                                          3                
 
    그무렵, 선아는 곧 다시 오마하고 약속하던 서화가 오지 않자 속이 바질바질 탔다. 배가 자꾸 불러갔기때문이다. 그녀는 서화에 직접편지는 못하고 봉투안에 봉투를 넣어 미선이앞으로 편지를 보내고 또 보냈지만 종시 회답이 없었다. 순진해빠진 그 녀가 자기편지를 한번도 서화에게 전해지지 않고 불살라진다는것을 어찌 알수 있었으랴, 그저 자기 혼자만이 무리에서 버림받은 외기러기라고 슬퍼했다.
    그녀는 지금 천길나락끝에 서있는것같이 꿈속에서마저 전률하였다. 그녀는 이제 밑창없는 동굴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무고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세상은 그의 곪아터지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말썽부리가 좋아하는 아낙네들이 속심을 눈치챌가봐 겉으로는 평온한제 하지만 속은 그대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무엇을 끓이는지 이젠 알수도 없었다. 증오인가? 미련인가?
   고운 봄 맑은날 층층이 흘러가는 꽃구름이라도 저도 모르게 한쪼각 음영을 던진다는것을, 그리고 폭우도 실어올수 있다는것을 왜 자초에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가… 리별이 리별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비애라는게 없을것이다. 가령 생각도 생명없는 바위처럼 굳어진다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것까지를 포함하는것. 꽃핀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것까지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만남의 성찬을 위해서는 아무리 큰 허기와 감동이라도 참아야 하는가? 그것은 실로 무섭고 비장한 일이였다. 보다는 원한과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였다. 리별뒤에 오는 잊을수 없는것이 훨씬 고통스럽다.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그녀로서는 그저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곱씹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그처럼 엉망인채로 고르롭지 않게 뛰고있었다.
    순진해 빠진 농촌처녀들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볼수 있는 두가지 사랑의 방법을 가지고있다. 말하자면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과 관능적인 사랑이다. 관능적욕구를 채 워보고싶은 생각에서 남자를 가졌던 녀자는 거개 정신적사랑이란것을 믿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통해 남녀간의 순결한 육체적결합에서만 사랑을 추구하는 처녀가 돌연 정신적사랑에 눈이 떠서 육체적관계만이 능사가 아니였다는것을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녀 겨우 초중을 나온 시골처녀이지만 잘 알고있었다.
    서화는 선아가 눈을 뜨자마자 생각하는 존재였고 잠들기전까지는 한시각도 떠나지 않은 존재였다. 사랑에는 중간계단이 없다. 사랑은 요람으로 되지 되지 않을 경우엔 관으로 되고만다. 그는 지금 사람들 무리속에서 여느 녀인들과 다를게 없이 살고 숨쉬고 일하고 밥을 먹고 웅성에 시달린다. 그는 남자란 무슨 의미인지 알수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서화라는 멋지게 생긴 화가만 있었다.
    선녀바위밑 소나무아래에서 그들은 더없이 친근한 마음으로 가슴속깊이 숨겨졌던 비밀들을 무랍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에 두심장이 하나로 융화되여 한시간후 에는 벌써 서화의 넋이 은혜의 넋으로 되였고 은혜의 넋이 서화의 넋으로 되여버렸다. 그들의 물음과 대답은 그냥 사랑이란 이 보금자리에서 합치되여 있었다. 마치도 오또기가 아무리 번져놓아도 제자리에서 일어나듯이 말이다.
    자기를 포근히 껴안으며 타는듯 입술을 자기 입술에 포개던 서화의 눈에서 애원하는 절절한 마음을 본능으로 다 읽어버렸다. 그녀는 이 남자앞에서는 도저히 저항 할수 없음을 가슴으로 느끼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무조건 순응하는듯한, 그를 향한 뜨거운 사모의 정이 고패지고있음을 느낄 때 이 남자에게 자기를 다 내주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어도 후회되지 않을것 같았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는 가시나무우에도 누울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는 소나무에서 흘려내리는 송진내와 어데선가 숨어서 뿜어내는 버섯의 향기와 나무가지새로 엿보는과 햇빛과 무한의 우주와 그리고 작열하는 정열의 속삭임이 있을뿐이다.
    남자가 한낮의 양광아래 그대로 드러난 젖무덤과 사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미동도 하지 않을 때 선아는 이젠 자신의 일체를 내주었으니 이 남자의 안해가 되고 도시생활을 할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미처 할 사이가 없었다. 스스로 몸속 어딘가 열기에 휩싸이는듯 싶어지며 입에서 단내가 확확 뿜겨나갔다…여느 녀자와 다르련만 성숙속에 미숙이 있었다, 초경험과 욕구, 숫처녀의 아리숭함과 20대중반의 성숙한 웅성의 몸부림이 육신을 깡그리 불태우고 있다는 감각뿐이였다.
    남자가 몸을 뚫고들어왔다. 처음이면서도 신비하고 절박한 마음들이였기에 서로 상대방을 집요하게 흡인할뿐이였다. 시간도 굳어지고 태양도 빛을 잃었다. 진할줄 모르는듯 격렬한 몸짓이 그녀를 끝없는 꿈길로 이끌어갔다. 마침내 작열도 끝나고 정적 이, 슴슴한 침묵이 깃들었다. 기이한 정적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몸에서 불덩이가 서 서히 빠져나갔는듯 느껴졌다. 선아는 흐느끼듯 남자를 죽어라 끌어안았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순정을 바친 녀자의 얼굴, 그 몸가짐은 여느때보다 수집은 법이다. 그저 살아있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으로 여기던 선아에게 있어서 서화를 사 랑하고 몸을 바친 그후부터 인생이 이처럼 아름다울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몸을 바침으로써 자기 인생도 행복해질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인가? 이 세상에서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부터 자신이 어느 처녀들보다 행 복하다고 생각할수 있는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녀자는 한번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잘못 사랑했는지도 반성해보지도 않는법인가? 그는 매정하게 소식도 주지않는 서화였지만 그냥 아름다운 추억만 안고 혼자 웃고 울었다. 리별의 괴로움이 눈물로만 씻겨진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리별의 아픔이라는게 없었을것이다. 오랜 리별기간 눈물젖은 그리움을 달래는것이 선아에게는 참을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하루같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 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이 하루의 내용이였다.
    시골에서는 패풍의 흙탕물에 사람이 빠져죽는 경우가 있다. 살벌하던 비상시대, 마을아낙네들의 눈총질에 온몸이 숭숭 구멍이 날지경이였다. 궁리궁리하다가 마을에 는 남자네집에 갔다고 소문을 내고는 몇십리 떨어진 외할머니네 집에가서 해산했다. 딸이였다. 서운하긴 했지만 남자의 성씨를 따서 서혜화라고 이름지었다. 다행히 인정 사정에 밝은 촌에 주임이 얼렁뚱땅해서 혜화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였다. 한시름 놓은 선아는 남부끄러운 처녀과부로 되였지만 평생 “남편”을 기다리기로 마음굳혔다.
    세월은 락엽처럼 쌓여갔고 묵어가는 세월의 락엽속에 그리움으로 타버린 애간 장이 묻혀있다. 밤이면 밤마다 추억의 잎새가 어둠속에서 애달프게 울고있다. 세월의 맷돌은 괴로움도, 아픔도, 기쁨도, 미움도 다 갈아버리여 나중에 망각이라는 앙금을 갈아낸다더니만 그녀에게는 그런 망각의 매돌이 없었다. 마음이 마르면 눈물도 마르는 법이다. 선아에겐 이젠 눈물이 없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도 밤마다 꿈을 꿨다. 그러나 슈제트도 없고 주제도 없는 난삽하고 지루한 꿈이였다.
    …혁명의 불길이 고조에 이르러 각파벌의 쟁투가 무단투쟁으로 번지였던 어느 날, 서화가 느닷없이 잡혀갔다. 평시에 그렇게 이를 갈던 미화였고 이른바 반혁명으로 몰린 빌미가 된 일기장을 자신이 제공했지만 가슴이 섬찍하면서도 그보다 더 극렬한 질투심때문에 량심의 가책도 눌러버렸다.
    마음씨 착하고 순진한 시골처녀의 인생을 망가뜨린것은 서화탓이라면 서화의 소식을 선아에게 한번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첫번째 선택도, 두번째로 서화의 인생을 철저히 짓밟은것도 혁명각오였다고 자신을 변명했다. 그러나 10 년도형을 받았다던 서화가 시대적광란이 끝나고나서 곧 억울한 안건을 시정할 때 무죄로 풀려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 미화의 량심의 마지막 방선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돌이켜 생각하면 스스로 면괴해져서 죽을 맛이였다.
    더구나 혁명적인 사랑을 한다고 죽자살자하던 남자가 혁명기간 도를 넘은 비행을 너무 많이 한탓으로 잡혀들어가고 나서 역시나 처녀과부로 늙어가는 처지가 되였으니 인과보응이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는것을 절감하며 후회를 짓씹고있다. 서화가 그려 준 자기의 초상화를 매일 쳐다보며 남자를 기다릴 시골녀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에 게는 그저 초상화가 아니라 사랑의 초상화, 사랑하는 남자 그 자체일것이다.
    평생 한남자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허망한 사랑에 지쳐버렸을 녀자, 이런 불행한 녀자가 그의 정신기둥이였던 남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것을 알면 어떻게 될것인가? 역시 죄책감앞서 질투심이 꼼지락거리는것을 말릴수 없었다. 아아, 다같은 녀자의 마음이건만 자신은 왜 이리도 못돼먹었을가? 그녀는 가슴을 탕탕 두드려댔다.     
    시골녀자의 후반생이 궁금해서 정한과 그리움이 얽혀있는 선녀동으로 가보고싶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서화가 풀려나오는 길로 그리로 가지 않았다면 순박해빠진 녀자는 서화가 자기를 그냥 내버린것으로 알고있을것이다. 미화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서화가 원래 자기와 언약이 있은 남자였기에 다 용서하고 혁명적동지로 결합했으니 다시는 서화를 찾지 말고 새로운 선택을 하라고 편지했던것이다.
    그리고 서화에게는 그 녀자가 흑룡강성 어느곳에 한족사람한테 시집을 갔노라고 소식을 들여보냈다. 서화가 그 소식을 믿고있었다면 선녀동으로 가지 않았을것이라고 자신을 위안해 보기도했다. 이제와서 자기가 저지른 용서못받을 죄를 달리 어찌할수 없다고 생각하며 선택을 잘못하고 잘못 살아온 자신을 감출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4
 
    서화는 5년남아 인간이하의 고역에 시달리면서 한시도 선아를 잊은적이 없었다. 누가 보낸편지인지 잘 모르지만 선아가 먼곳으로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도 그냥 잊을수 없었다. 채석장에 끌려나가 일에 지쳐 돌아오면서도 선아가 낳았을수도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죽지말고 버티리라 강심을 먹은 그였다.
    입이 열개라도 말할수 없고 말했다해도 믿어주지 않고 강다짐으로 죄장을 만들어 옥살이를 시키는 자들이 이갈리게 증오스러웠지만 벙어리 랭가슴을 앓듯 할수밖에 없 어 자기 인생에 언녕 체념하고있었다. 실낱같은 전깃줄은 타고 서로가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동물들의 공동체. 하나가 아닌 여럿이서 군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집단형성, 참새떼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참새떼를 받치고 있는것은 보기만 해도 위태위태한 전선줄이다. 전선줄은 참새들에게 쉼터이다. 사람에게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쉼터가 있었으면 작히나 좋으랴, 하늘마저 활짝 열리는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삼키기가 몇번째인가, 그녀는 한창 득세하여 우쭐거리던 ××가 자기를 따르는 미화를 떼여내기 위하여 작간을 꾸민것으로 짐작하며 절치부심하면서 나가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벼르기만했다. 그러면서도 미화가 그런 악독한 짓거리를 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구멍이 펑 뚫린것같은 허탈감이 자신의 리성을 멍하게 만들었다. 자기의 마음은 유리로 만들어진것인가? 비록 수정처럼 고귀하지 않지먼 그렇듯 투명하고 쉬이 깨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의 심신은 강압과 고역속에 저도모르게 한마리 목조당나귀가 되여버렸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릴 때 준비한 우산은 상식이라면 청천하늘에서 벼락맞은것은 자기였으니 이 무슨 저주맞은 운명이란 말인가!
    아무리 자신을 반성해보아도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였는지 종잡을수 없었다. 뒤숭숭하던 소문이 마침내 현실로 되여 리상이고 사랑이고 우정이고 구중천에 날려 보내고 오로지“혁명”이라는 두글자를 가슴에 새겨야 하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숭고한 예술의 전당이 하루밤새에 아수라장이 되여버렸다. 교정내에서도 여러 파벌의 반란파조직이 묶어졌다. 그러나 부농집에 딸이라는것을 알고나서도 선아에 대한 사랑이 자기 리상과 목숨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였다. 황차 이미 도덕과 량심 상에서라도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음에랴,
    그래서 선아를 생각해서라도 살벌한 소용돌이속에서“소요파”가 되기로 작정했다. 남들이 투쟁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되여있는 동안 그는 선녀동으로 갈수 있는 기회를 찾느라 천방백계를 다하였다. 물론 그판에 화판을 들고 어정거리는것은 정신나간 짓이여서 그림그리기도 집어치우고 무위도식하는 판이였다.
    한편 서화에게서 배신당했다고 절치부심한 미화의 사랑은 증오의 불길로 타번졌다. 그녀는 일컬어“정강산반란파”에 참가하여 미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혁명 의 렬화속에서 청춘을 불태우려 한다고 선언했다. 혁명적련계를 지으려고 “대장정”을 하느라 남자들과 함께 렬차에서 딩굴며 전국각지를 다녔고 천안문광장에서 불멸의 태양을 우러러 눈이 다 붓고 목이 쉬여도 다함없는 충성심을 불사르며 들떠있었다.
    이렇게 이판사판 하는때에 서화도 그냥 무풍지대를 찾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강산파”와 수화상극인“장정파반란단”에 일시 투신하기로 하였다. 그는 밤낮으로 대자보를 쓰고 선전화를 그리느라 분주히 돌아치다보니 가슴은 불붙듯 하였지만 당중앙을 보위하고 위대한 령수를 보위하는것이 천하대사인지라 사심을 잠시 죽이지 않을수 없었다. 미화네파와 서화네파는 설전으로부터 드디어 무단투쟁의 준엄한 대치상태에 이르게 되였다. 녀자가 한을 먹으면 오뉴월에도 서리차다고 했던가, 서화와 미화는 개인적으로도 불구대천의 원쑤로 되였다.
    미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껍데기혁명을 하는 서화로서는 이게나 그게나 피장파장으로 생각되여 그저 남의 눈에 나지않도록 행동하기에 신경을 썼다. 그런 살판치는 나날에도 젊은남녀들은 본성으로 이성을 찾고 즐기였다. 미화가 ××와 붙어다닐 때 서화는 선녀바위밑에서 선아가 들려주던 전설을 되새겨보는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옛날 이 깊은 골짜에 한 총각이 어머니가 살았다. 하루는 총각이 다병한 어머니에게 달여서 대접하려고 약촐를 캐가지고 돌아는데 느닷없이 해가 가리워지면서 비구름같은것이 몰려오는듯싶었다. 그래서 비가오려나보다 하고 큰 바위밑에 들어섰 는데 그것은 비가 아니라 옷자라같은것이 훨훨 내려오는것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상에는 있음직하지 않은 선녀같은 녀자였다. 녀자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였다.
    녀자는 웬총각을 먼저 서있는것을 보고는 수집은듯 얼굴을 가리였다. 이름이 바위라는 총각이 큰 맘먹고 이제 곧 해가 지겠는데 이런 심산속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자는 천궁에서 내려왔다고 하였다. 들어본즉 원래 옥황상제의 시녀로 있었는데 그만 잘못을 저질러서 인간세상에 내침을 당했다고 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했다.
    총각은 이 산에는 인가라고는 자기집뿐이라며 꺼리지 않으면 함께 내려가자고 하였더니 말없이 따라나섰다. 총각의 집에서 며칠 묵으며 인간상정을 알게 되여 차라리 잘되였다 생각하는데 바위어머니가 우리 바위의 색씨가 되여줄수 없겠는가고 청들었 다. 그런데 선녀는 아무대답도 아니하고 고개만 파묻었다. 그때 총각은 다 삼아놓은 짚신을 선녀에게 내주며 맞는지 신어보라고 하였다.
    선녀는 말없이 받아서 신어보더니 딱맞다고 하며 매우 좋아했다. 바위어머니가 천상배필이여서 하느님이 점지해주신 색씨이니 바위와 정혼하고 셋이 오손도손 사는 게 어떠냐과 다시 간청했다. 선녀는 "저는 1년이 되면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허혼할수 없나이다”하고 눈굽을 찍는것이였다. 총각도 슬피 울었다. 그러건말건 바위어머니는 정한수 한사발 떠놓고 달빛아래에서 혼인을 맺아주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절절한 사랑을 받으며 알콩달콩 살게 되였는데 어느새 일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어느날,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선녀는 무서워서 남 자의 품에 안기며 바들바들 떨었다. “웨 천둥소리에 이리 놀라는거요?”하고 바위가 물으니 "저 천둥소리는 옥황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요"라고 말하는 선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총각은 "걱정마오. 하늘이 저리도 머나먼데 여기까지 붙잡 으러 올라구, 나만 믿고 안심하시오”
    그동안 인간세상에 정이 들대로 든데다 마음씨고 고운 남편을 떠나기 싫은지라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작심했다. 천둥이 련속 세번이나 울렸다. 그래도 하늘 로 올라가지 않았다. 대노한 옥황이 냉큼 잡아오라고 내려보낸 천신이 선녀를 잡아끌 고 산우로 올라가자 총각도 한사코 따라올라갔다. 선녀와 총각은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죽자고 서로 부등켜안았다. 천신이 그 정상이 갸륵하여 혼자 천궁에 돌아가 선녀가 이미 속세의 인정에 깊이 물들어 바위라는 총각과 부부인연을 맺었으니 이미 몸을 더럽힌바라고 아뢰였다.
    천둥같이 노한 옥황상제가 우뢰신을 시켜 당장 큰 벼락을 내리라고 명했다. 이윽고 “꽈르릉, 번쩍!”하며 련신 번개가 내리쳤다. “옥황님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번개를 내려보내니 이미 인연을 맺은이상 당신을 버릴수 없어요. 차라리 두몸이 하나가 되여 이대로 바위라도 되여버립시다.”하며 남자의 품에 스며들기라도 하듯이 더 꼭 껴안았다. 벼락은 그쳐지만 선녀와 바위총각은 머리 둘에 몸이 하나인 커다란 바 위로 굳어져버렸다. 산아래서 맺지 말아야 할 짝을 맺어주었다고 땅을 치는 바위어머 니의 대성통곡이 구곡구천에까지 울려퍼지였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이 이 바위를 선녀바위라고 이름지었는데 선녀바위에 치성을 드린 부부는 금슬이 좋아진다고 원근에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단다. 서화 는 출신을 잘못타고 난 하늘선녀라면 자기는 벼락을 맞으면서도 녀자를 지켜준 바위총각이 되여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군했다. 그리고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한 순결 한 처녀에게서 사랑을 받는 몸이 되여 그녀에게 남녀의 신비한 애정의 장막을 걷어주는 첫남자가 된다는것은 행복과 더불어 신성한 책임감도 느끼게 하였다.
    남녀가 격정에 휘말려 금구를 깨뜨리는것은 너무나 례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사랑의 시련을 받아본 일이 없는 순진한 마음을 빼앗는것은 아무 방비도 없고 수비군도 없는 도시를 점령하는것처럼 싱거운 일이다. 농촌처녀, 특히 마음이 어지면 어질수록 더 쉽게 몸을 내맡기는 법이다. 이런 녀자들은 자기의 몸을 받침으로써 그 남자를 영원히 자기것으로 만들었는가고 착각하기 일쑤이다.
    선아와 함께 뜨겁게 달구던 숲속에서 그 몸짓, 파르르 떨던 입술, 애처로운감도 주었다. 서화는 선아가 열어주는  미궁속으로 잠입하고나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깨 달았다. 처음 체험해보는 전률속에서 녀자의 의미를 체험했다. 그는 순정을 바치는 녀인의 철옹성을 정복했다는 희열과 더불어 일종 자책감감이 갈마들기도 했었다.
    이름도 정나미돌고 이름처럼 한없이 탐스러운 시골처녀가 생각밖에 서화의 생활 에, 내심세계에 뛰여들었고 서화는 그저 받아들인 피동적인 위치가 아니라 극력 끌어 당긴 셈이다. 시골의 처녀 선아는 하나의 크고 무거운 행성처럼 서화의 감정의 자기 마당을 소란시키였고 그의 생활궤도를 휘딱 개변시켜버렸던것이다…
 
                                                                                    5
 
 단단히 기억했다는것은 결코 영구함을 의미하지 않으며 잊었다고해서 이미 발생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서화는 그동안 자기를 기만해왔다. 악마가 순결했던 자기를 비틀어 놓았다고 저주하고 참회하면서도 사랑의 사신이 천사에게 웃음을 던지고있는 환상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겪어냈다. 만구할수 없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허무, 삶의 커다란 허무로 비애의 구덩이를 팠다. 거기에 들어섰다는것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것과 같다. 허무의 종합체를 이루고 또 이루는 그 모든 부산하고 황당했던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이 얽혀서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산다는것은 세월과 함께 사랑과 희망을 곱게 땋아내려가는것이라면 이게 무슨 날 벼락을 맞은 도깨비란 말인가? 여기서는 희망도 없고 인권도 없다. 오로지 억눌리는 인간존엄과 기시와 학대뿐이다. 고달픈 꿈속에서 기갈이 든 한마리 양이되여 녀자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다. 그는 지금 막 발정난 황소가 두발을 번쩍들고 암소 등에 업히듯 녀자를 두팔로 덮쳐본다. 눈부신 양광아래 아무 꺼리낌없이 드러나있던 그 호함지던 젖무덤에 묻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남녀의 만남은 우연적이지만 갈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착오적인 시간에 잘못된 만남이였고 잘못된 대상이라면 말이다. 선아의 선택이 잘못되였는가? 나의 선택이 잘못되였는가? 그러나 서화는 가슴깊은 곳에 새기고 또 새기였다. (그대여 당신이 너울쓰는 날 내가 절에서 중의 가사를 입는 날이 될것이다. 당신이 살다살다가 불행하다면 서슴치말고 나를 찾아오시라. 설사 내가 너무 늙어서 걸을수 없는 지경이라도 당신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리라. 이것이 내가 기다리는 결과이다.)
    머리속으로는 얼마든지 좋은 말을 만들어낼수 있다. 역경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지는 않으나 지혜롭게 한다고,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 고통의 숨결속에서 령혼은 발육된다고, 고통을 주지 않는것은 쾌락도 주지 않는다고, 곤난이란 위대한 마음을 키워주는 유모…등등, 그러나 억울한 수난자에게 그런 말이 먹혀들것인가? 누가 세상엔 절망하는 약자는 있어도 절망할 처경은 없다고 하는가? 절망은 청춘과 희망을 좀먹는다. 절망은 아무리 강한자의 의지라도 꺾어버린다. 절망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심리병인것이다.
    그가 절망속에서 오락가락할 때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진실이 그를 잊지 않았던가, 그는 풀려났다. 그것도 무죄로 풀려났다. 나오고나서야 알았지만 학 교때 그를 무척 아끼던 ㄷ교수가 밖에서 정책락실을 위해 뛰여다니면서 각고의 노력을 해준 덕분이였다. 변화란 무서운것이다. 변화란 절대 진리였다. 하건만 그 자신은 무슨 변화를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세월이 흐르기만 기다렸을뿐이였다. 참혹한 옥생활은 그에게 인내를 배워주었고 시련은 그를 철학가로 만들었다…
    그는 ㅂ미술학원에 당당한 조교로 남게 되였다. 자기를 지옥에 밀어넣은 장본인이 미화라는것도 알아냈다. 그러나 복수를 할수는 없는 일이다. 죽여치워도 성차지 않을 일이였지만 악몽은 이미 꿀대로 꾸었고 마침내 악몽에서 깨여났는데 그런 악착 한 녀자로 하여 또 다시 불구덩이에 뛰여들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무엇보다 급한것은 선아의 행방이였다. 선녀동에 다녀왔다.
    선아는 거기에 없었다. 원래 허술하던 선아네 초가집도 무너져있었다. 그는 실망을 안고 돌아섰지만 사랑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비록 맹세하지 않았지만 선아가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믿고싶었다. 맹세는 말에 지나지 않고 말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선아는 속깊은 정으로 맹세한 녀자가 아니였던가?
    사실이 어떻게 해명되였든 꼬리표에 달린 선입견은 검질기였고 서른살이 넘은 로총각인지라 대상자가 얼른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애써 가정을 이루려고 생각 하지 않았다. 어덩덩 세월의 화살은 어느새 사십세고개에 꽂혔다. 사십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고 누가 말했던지 그는 결혼을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또 한차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서화에게 일격을 가한것이다. 혜화에게 출생지를 물어보니 선녀동이라 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을 물었더니 선아란다. 아버지 가 누구인가 물었더니 모른다고 한다. 미화의 말이 딱 맞는것은 아니였지만 어렸을적에 흑룡강에 이사가서 자라다가 중학교를 다닐때 연변에 다시 나왔고 어머니는 선녀 동에서 홀로 살고있다고 했다. 혜화가 자기의 딸이였다. 이 무슨 천방야담인가!
    혜화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학교뒤 산에 올랐다. 저물어가는 하늘은 미치광이 화가가 잡다한 색갈을 제멋대로 칠해놓은것만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궁리도 떠오르지 않아 멍청이처럼 그냥 앉아있었다. 첩첩한 산릉선이 검은 빛갈로 그어진 하늘위에 초생달이 신비로운 쪽배처럼 걸려있다. 어떤 감탄도, 표현도 부족할 령롱한 달빛, 그 달빛으로 청산은 문자표현을 비웃는것만 같았다.
    구멍이 펑 뚫린것같은 허탈감에 리성마저 멍해졌는데 기상천외로 찾아든 행운은  꽃구름을 타고 공주를 찾아가는 왕자처럼 들뜨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선아가 겪었을 인생고를 상상하니 가슴속에 안개비같은것이 서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던 일희일비가 구름처럼 낮게 드리우며 눈에서 시큼하고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마침내 그는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선녀동으로 달리는 장도뻐스, 차장으로 들리나니 꽃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이 넘쳐난다.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꽃바람 불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저 꽃들의 매력!서화는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선아만은 늙지 않고 전설 속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빌고빌며 가슴을 어루쓸었다…
                                  
                                                       2014년  <송화강>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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