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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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구름에 실어본 명상
2018년 09월 28일 16시 34분  조회:4145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구름에 실어본 명상
 
                                                  최 균 선                                 
 
    푸르게 열린 가없는 하늘가에 떠가는 구름은 옛날에도 무한히 좋았건만 맨날 일밭에서 헤매두드리던 젊은시절엔 지글거리기만 하던 해가 구름에 가리우면 서늘해져 반가웠고 때로는 비구름으로 드리워 작달비를 쏟아부으면 일손을 쉴수 있어 고맙기만 하던 떼구름, 그러나 점심때 잔뜩 촐촐해진 배가 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구름이 꽃피는지 구중궁궐을 짓는지 별로 흥심이 없었다.
     후반생에 도시에 훈장이 되였지만 노상 시간에 쫓기다보니 좁다란 도시의 하늘이나마 여유롭게 바라보며 구름에 사치스러운 명상을 담아보지도 못하였다. 드디어 교단에서 물러나 빼놓은 낫자루같은 사무한신이 되여지니 맑게 개인 하늘에 정처없는 구름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아마도 허무한 인생을 절감하는 로옹의 고질인듯,
    간간이 구름이 비끼면 석양의 하늘은 가관이다. 진분홍 하늘가에 양털같은 구름, 자연이 만든 환상적인 조화, 석양에 불타버릴듯한 구름이 없다면 무한히 좋은 석양이라도 저렇듯 이채롭지 못하리라. 석양에 물들어 신묘한 색깔로 채색되여 있는 구름의 형상은 메마른 내 가슴에도 서정의 샘이 솟게 하고…정적상태가 무엇인 모르는듯 무시로 변하는 구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명상이 나래친다.
어찌 생각하면 구름은 예측불가한 변화의 상징물인것 같다. 창망한 우주공간 그 어디에서 정처없이 떠돌던 구름일가, 실체가 없는듯 실존하는 하늘에 류랑자같은 구름은 저혼자 구중궁궐 지어놓고 선녀들을 불러들이는 조화도 부리다가 별을 스쳐온 바람에 몰리여 양떼처럼 여기저기 떠돌면서 때로는 반가운 단비도 뿌려주고 때로는 천둥에 놀라고 번개에 찢기였다가 울분을 쏟아내듯 사정없이 폭우를 쏟아붓는 구름…
    흔히 뜬구름같은 인생이라 인생무상을 한탄하지만 구름속에도 미학이 있는것이다. 구름의 여유로움의 지혜, 욕심이 없기에 언제나 가벼워 어디든 갈수 있는 자유로움, 세상의 순리를 따르듯 바람에 자유롭게 흘러흘러 갖가지 무늬로, 만나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변화무쌍한 구름…아이때는 비암산 칼벼랑위에도 걸터앉던 고운 구름이 나를 홀리더니 지금 저 변화무쌍한 구름이 로옹을 “철학가”로 만들어준다.
    뜬구름같은 인생이고 하는것은 정해진 귀속이 없다는 뜻에서 하는 말인지…저 하늘에 구름이 아름다운것은 변화무상하기때문이 아닐가, 무엇인가 짓고 허무는데 자유자재한 구름, 사진을 찍고 싶어도 부디 찍지마시라, 방금전의 구름은 지금의 구 름이 아니다. 끝없이 불려가면서 목화꽃도 피우고 꽃대궐도 짓다가 하늘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흘러가버린 구름, 방랑이 아름다움임을 가르친 구름이여!
    나는 너를 스승이라 부르겠다. 멋모르고 인생길 떠나 허위단심 걷고 걷다가 자갈밭, 비탈길 가시덤불길 헤쳐온 다리가 무거워서 이제 좀 쉬여갈가 두리번거리는데 시간은 기다리지 않겠노라며 재촉질이 성화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 넉넉히 잡고 석양이 비낀 인생길 막바지에 앉아 걸어온 길 뒤돌아보니 찍어놓은 발자국 보이지 않고 허탈과 허무형제만 헐씨근 뒤쫓아 온다. 생명이 푸들치던 그 시절엔 세월이 더디게 흐르는것 같아서 “세월아, 네월아, 어서 가자”고 조바심을 가지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이제 속절없이 아쉬움과 후회만 쌓이고 덧얹히고 일모도원(日暮途遠)만 새삼스럽다. 소모되는 생명이라 말려낼수 없음에도 “세월아, 너만은 좀 쉬염쉬염 쉬면서 저만치 내 뒤를 따라오렴아.” 하고 비난수하는 내가 스스로도 한심하다. 세월을 거슬러 자연생명을 연장시키면 만사대길이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한탄하는것은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욕심을 부렸기때문이고 자기 과거를 잊고 앞날에 너무 많은 기대치를 걸었기 때문이고 허송한 시간이 너무 많았기때문인데 세 월을 탓하니 얼마나 부질없느냐?
    공수래공수거 인생인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자꾸 채워가려고 아글타글 하였는데 결국 채워놓은것이 무엇인가. 삶이란 끓여서 식힌 한컾의 물과 같이 수시로 마실수 있으면 족한것이다. 다른 사람이 마시고 있는 여러가지 색소를 넣은 음료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아무리 입맛을 돋구어도 내앞에 놓인 한컾의 물처럼 갈증을 더 말려주지 못한다. 주어진것에 만족하는것 그것이 확실한 만족인게다.
    구부러짐은 뒤틀림을 의미한다. 아무 돌이나 부싯돌이 될수 없고 무조건 나무를 비벼댄다고 불이 일지 않지만 각자 만년을 나름대로 가꾸기에 따라 남과 다른 정경이 그려지리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힘들이지 않고 놀며놀며 얻을수 있는 유일한것이 무료함이다. 유일한 무중생유는 오로지 꿈속에만 있다. 낮꿈에 긴 하품만 나온다는것은 생명이 시들해졌다는 징표로서 자기 학대와 다름없다.
    나는 자신에게 설파한다. 로옹이여, 저 구름에 모든것을 실어보내라. 사심없이 공평한 저 구름은 매일 저렇게 하고 있는데 네 마음속에 얽히고 서린 온갖 욕망은 다 버리지 못하니 자신도 곤혹스러운게 아니냐, 네 인생의 황혼도 저토록 아름다울수만 있다면 초로인생이라도 유감스럽지만은 않을것을, 일생을 아무 허물없이, 부끄러움 없이, 유감이 없이 산 사람이 없겠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뒤모습은 아름다운데 우왕좌왕 방황하는 네 모습은 민망스럽다 하리라.
    마음을 비워낸다는것은 공허해진다는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아무런 추구도 없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졸음을 부르는 여름날 산곡간 나무그늘아래 풀밭에 누워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유유히 떠가는 흰구름을 바라보는것은 결코 시간랑비가 아니며 무료함을 달래는데 하책인것도 아니다. 리기심의 극치를 달리는 현시대, 수염같이 자라는 자사자리만 죽여 주어도 홀가분한 삶이라 하리라.
    청사에 길이 남을 생은 아무나 사는것이 아니니 인생일사 사소한 면들을 돌이켜 본다. 로약자를 기시하는 마음은 없었는가? 가난한 사람과 갈 길이 저문 길손을 문전박대 하지 않았는가? 겸손과 덕행으로 사람을 위하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았는가? 과거, 지난 해, 지난 달, 지난 주간, 아니 어제도 량심을 지키며 살았는가 자문해 본다. 현재 인생학년이 몇학년 몇반이든 인정미 풋풋하게 여생을 살수 있어도 더 바랄것 없을것이다. 인생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자. 인생의 진실한 의미는 수많은 디테일에 있거늘…                 
 
                                                     번거로움 떨쳐 단순해 지자
                                                     시시비비에도 애끓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소신을 다하며
                                                     순리 따라 처처 살아가는 삶
                                                     바람에 구름이 흘러가듯이
                                                    거침없고 분식도 없는 여생
                                                    그것이 자기다운 만년이것제. 
 
                                                                          2018년 4월 25일    (2018년 9월 21일 제 6면에 발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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