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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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를 쓰는 방법.7
2008년 10월 30일 09시 15분  조회:1907  추천:54  작성자: 최룡관
 

제7장 이미지와 시적상관물


  이미지시를 창작함에 있어서 시적상관물을 리용하는것은 현대시를 잘쓸수있는 하나의 중요한 도경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미지시작시법을 시적상관물을 어떻게 설정하는가로 이야기하려 한다.

    <<시를 읽는 젊은이들을 위하여>>란 글에서 루이스는 <<시는 항상 사물과 사물을 비교한다>>고 지적하였다. <<사물과 사물을 비교>>하는것은 시의 제일 기초적인 작업이라겠다. 어떠한 시를 쓰나 비유요, 상징이요, 은유요, 제유요 하고 여러가지 수사법들을 거들지 않으면 안된다. 수사법들의 리용은 사물과 사물을 비교하기 위한데 있다는것은 중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나의 시적대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미지시는 그것을 표현할수있는 사물이나 사실을 대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물이나 사실을 일컬어 시적상관물이라고 한다.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시를 쓰는것은 현대시를 잘 쓸수있는 기본고리라겠다. 사물시를 쓰든 관념시를 쓰든 형이상시를 쓰든 시적상관물을 떠나서 쓴다는것은 현대시의 예술을 떠나서 쓴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것이라고 하겠다. 시적상관물을 떠나서 시를 쓰면 <<사물과 사물의 비교>>를 하는것이 못되고 이미지 작업이 안되고 낯설기에 도달할수 없고 직설의 배설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적상관물을 발견하는것이다>>고 엘리어트는 <<해믈릿론>>에서 점을 찍어놓았다고 한국의 문덕수는 말하고있다. 현대시를 읽어보면 엘리어트가 한 말이 하나의 진리임을 심심히 느끼게 된다. <<예술이라는 형식>>으로서의 <<유일한 방법>>, 둘도 아닌 딱 하나인 이 방법은 이미지시 창작수법의 핵이며 기본이라고 말할수있겠다.

  말라르메는 정조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서서히 대상을 환기할것이라고 하였고,  리처즈는 이질적사물의 <<밸런스 (균형)>>라고 하였고, 루이스는 <<은유는 일종 지름길>>이라고 하였고, 김춘수는 <<리상적인 짝을 찾아주는것이 상상>>이라고 하였다. <<대상의 환기>>, <<밸런스>>, <<지름길>>인 <<은유>>, <<리상적인 짝>> 들은 모두 시적상관물에 대한 결론성적인 정확한 말이라고 하여도 무방하겠다. 대상의 환기도 두가지 사물이나 사건을 련계시키는 일이고 밸런스도 이질적인 두가지 사물이나 사건을 련계시키는것이고 , 은유도 두가지 사물이나 사건을 련계시키는 일이고 리상적인 짝도 두가지 사물이나 사건을 련계시키는 일이다. 시적상관물은 간단한 언어들의 련계로도 표현될수있고 시구로도 표현될수있고 한편의 시로서도 표현될수있다. 시적상관물은 모든 수사법을 집대성한 예술적기법이라 해도 좋고 예술을 생성하는 오작교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박진환은 <<사물-변용-대용-이미지>>라는 그라프적인 방법을 제공하고있는데 이것은 시적상관물의 도해를 그린것이라 해도 좋고 이미지 탄생의 순서를 배렬한것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내 생애를 커피 숟갈로 되질해 버렸다>>

  <<수술대위에 누운 마취된 환자처럼/저녁하늘을 배경으로 사지를 뻗고있는 지금>>

  엘리어트가 <>에서 창조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이러한 이미지들은 시적상관물의 전범이라 하겠다. 하루하루 그럭그럭 허송하는 생애를 <<커피 숟갈로 되질해 버렸다>>는것으로 대용하였고, <<저녁하늘을>> <<수술대위에 마취된 환자>>로 변용하였고, <저녁하늘>>과 <<사지를 뻗고있는>> <<수술대위에 누운 마취된 환자>>는 <<지금>>이라는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즉 얼빤하고 흐리마리한 사회상황을 예술화한 시적상관물이라겠다.


 <<진리의 청혼자-그대는?>>.

이렇게 그들은 비웃었다-

<<아니다! 한 사람의 시인에 불과하다!

간교하고 약탈군이고 몰래 접근하는 짐승이다

속이지 않으면 안되는

알고서 일부러 거짓말하는 짐승이다

먹이를 노리고

화려한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도깨비로 만드는

스스로 수확물이 되는 짐승이다.


  니체의 시 <<광대에 불과하다! 시인에 불과하다!>>의 한 대목이다. 시인을 <<진리의 청혼자>> <<략탈군>>, 여러가지 <<짐승>>이라고 한것은 현대시, 시인을 표현하는 시적상관물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현대시 시인들이 전통을 부정하면서 전문적으로 낯설게 하는데서 얻어진 칭호라겠다.

  시적상관물은 이질적인 사물의 동일성을 추구하여(어떤 때는 그 미비한 동일성도 관계하지 않고) 이미지화하는데 그 특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바로 <<짝>>을 맞추는 <<지름길>>이며 예술의 <<유일한 방법>>이라겠다. 이 <<지름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아래와 같은 몇가지 방법으로 걸어갈수 있다고 필자는 모색해 보았다. 색깔에 의한 시적상관물 설정, 모양에 의한 시적상관물 설정, 움직에 의한 시적상관물 설정, 소리에 의한 시적상관물 설정, 속성에 의한 시적상관물 설정, 의인(의물)화에 의한 시적상관물 설정, 이 여섯가지 시적상관물 설정을 한가지 한가지씩 풀어보기로 하자


제1절 색깔에 의한 시적적상관물


  색깔, 우리들의 눈을 흥분시키고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어주는 색깔이다. 색깔, 이 세상의 단조로움을 극복해주는 천사이다. 모든 시각적사물은 색깔을 지니고있다하겠다. 하늘은 하늘의 색깔이 있고 해는 해의 색깔이 있고 달은 달의 색깔이 있고 별은 별의 색깔이 있다. 대지에서 살고있는 모든 사물들도 색깔이 있다. 산은 산의 색깔, 강은 강의 색깔, 흙은 흙의 색깔이 있다. 개구리도 파리도 모래도 풀도...죄다 자기의 색깔이 있다. 색깔은 특정된 사물의 특성을 나타낼뿐만아니라 존재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물들은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색깔이 변하기도 한다. 제일 잘 변하는 것은 인간의 색깔이라 하겠다. 백색인종, 황색인종, 흑색인종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사람마다 때에 따라 수요하고 추구하는 색깔이 달라 련속부절히 옷을 갈아입으며 색깔을 변화시키고있다. 예로부터 색깔은 인간의 장식의 수단이였고 희로애락 발로의 징표이기도 하였다. 색깔의 함의는 한없이 풍부한 것으로서 한입으로 다 말할수 없다.

  색깔은 시라는것이 탄생한 날부터 시인의 추구의 대상이였을것이다. 현대시인들도 례외가 아니다. 현대시인들은 색깔의 근사성으로부터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이미지 만들기를 즐긴다고 하겠다. 색깔은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현대시가 탄생되는 하나의 샘이라겠다. 시인들은 이 샘을 파서 맑은 샘물에다 구름도 띄우고 새도 띄우고 나무도 그려보고 산도 그려보고 바람도 스치게 하고 얼굴도 비춰본다.

  색깔로 찾은 시적상관물은 막강한 에네르기를 갖고있으며 현란한 이미지를 그려주고있다겠다.


바다는 자신을 마신다 바다는 자신을 먹는다

바다의 창백한 피는 생각하는 피이다

바다는 스스로 변화를 꾀하며 춤추는 영웅을 위해

자신을 풀어헤친다

바다는 포말속에서 뒹군다

그런가 하면 눈을 뜨지 않은 채로도

바다는 바다의 노예를 죽도록 괴롭힌다

바다의 노예들에게 자신을 떠맡긴 후에

나는 이와 같이 실감나는 파멸을 경외한다

클레오파트라도 살로메도

결코 이와 같이 파란 드레스를 걸쳐보지 못했을걸

이토록 증오에 고무된 심장은 갖지는 않았을걸

바다는 큰 술통을 갖고 있다 거둬들인 포도로 그 큰 술통이 가득하다

바다는 청록의 눈을 가졌으며 각빛깔을 뜬 눈을 가졌다

바다는 스스로 마신다 바다는 자신에게 먹힌다

심지어는 포도재배자들도 먹어치울 태세다


  옥스퍼드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후 <<시는 비밀의 무기이다>>고 선언한 장꼭도의 시 <<바다>>의 전문이다.

  <<자신을 마시고 자신을 먹고>> <<자신에게 먹히는 바다>>에는 무슨 비밀이 뭍혀있는가? 그 바다는 <<큰 술통을 갖고있는>> 바다이며 <<거둬들인 포도로 그 큰 술통이 가득한>> 바다다. 이제 비밀이 열리였다. <<포도재배자들까지도 먹어치울 태세>>를 가진 바다는 다름아닌 포도주의 시적상관물이다. 이 포도주의 시적상관물이 어찌하여 바다로 설정되였는가? 색깔의 비슷함에 의하여 설정된 것이다. 바다도 푸르고 포도주도 푸르다. 그러니깐 <<짝>>이 무어진것이다. <<바다는 자신을 마신다 바다는 자신을 먹는다>>는 첫 시구를 얽었을 때 우리는 당혹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자신을 마시고>> <<먹는>> 바다도 있단말인가? 하는 의문이 불쑥 뛰여나온다. 하지만 이 <<바다>>가 포도주의 시적상관물이라는 단정이 내렸을 때 시인의 기발한 착상에 깜짝 놀라게 된다.

  놀람보다 심각한 것은 이 시의 내함이라겠다.

  술의 마술을 쓴것같은 <<바다>>는 파멸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시인의 심정의 발로가 아닐가. 자신을 마시고 먹히우고 먹어버리는 <<바다>>는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피>>이다. 이 피는 <<춤추는 영웅을 위해>> <<자신을 풀어헤칠>>뿐만 아니라 자신을 <<노예들에게>> 내맡기고 <<노예들을 죽도록 괴롭히기>> 위하여 거대한 파도로 <<뒹군다>>. 이집트 프롤레아오스의 최후의 녀왕이며 재치와 미로로 유명했던 녀왕인 클레오파트라도 <<걸쳐보지 못했던>> 귀중한 <<파란 드레스>>, 헤룻왕의 이붓 딸로 왕의 생일잔치에 황홀하게 춤추고 요한의 머리를 베여가지는 소원을 이룩했던 실로메도의 증오보다 더 <<증오에 고무된 심장>>을 가지고있는 바다, 그 푸른빛 바다의 눈은 죽은 눈이 아니라 원본을 들여다보는 <<각빛갈을 띤 눈>>이다. <<눈>>은 보고있다. 자신만 먹히우는것이 아니라 <<포도재배자들까지도 먹어치울 태세>>를 가진 바다를. 이 세상의 모든것을 파멸하고있으며 파멸에로 몰입시키고있는 바다를 <<눈>>은 보고있는것이다. 바다-포도주, 포도주-바다 그것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어쩔수 없이 파멸에로 치달아 오르고있는 세상을 시인은 포도주-바다를 통하여 각인시키고 있다하겠다.


은행나무그늘엔

노란 음부들이 떨어진다

은행잎파리에도

내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본다

적어놓은 어휘들도

제법 노란 발음을 한다


  양영문의 <<은행산조>> 전문이다. 깔끔한 맛이 나는 이 시는 단조로운 같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는 시라겠다.

  가을 은행나무잎들은 노란 물이 들어 가을의 시간을 타고 한잎 두잎 땅에 떨어진다. 이러한 노란 은행나무잎을 시인은 <<노란 음부>>로 변형시키고있다. 시인은 음부라는 청각적언어에 비실재적인 노란색을 올리여 <<노란 음부>>라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있으며, 색깔을 맞추어 노란은행잎의 시적상관물로 떠올리고있다. 시인은 일반적인 어휘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놓는다>>. 그러면 <<어휘들이>> <<제법 노란 발음을>> 하면서 떨어진다. 시인의 기지와 묘미가 황홀하게 안겨오는 색갈에 의한 시적상관물설정이라 하겠다.

  시인은 간결하고 깔끔한 <<은행산조>>로 회귀의 아름다움이라는 엄청난 뜻을 깔아두었다하겠다.


설쇠는 날에

애들이 터지운 폭죽이

어쩌면 4월의 비속에서

또  불꽃을 튕길가

떨리는 연분홍치마에

차분히 스며드는

비의 이미지

살짝 화장한

예쁜 웃음이 어줍게 떠오른다

비속에서 

어떻하면 즐거울수 있을가

눈부신 색조로

어색하게 그리는  풍경

비가 멎으면

아름다운 해님앞에서

수집음을 머금고 사라지리


   김학천의 시 <<진달래>> 전문이다. 시인은 진달래의 색깔을 고리로 잡고 놓지 않으면서 <<폭죽>>으로, <<불꽃>>으로, <<살짝 화장한 예쁜 웃음>>으로, <<어색하게 그린 풍경>>으로 연해연방 변형시키고있다. 시인은 진달래를 통하여 비와 진달래의 교감을 노래하고있는것이다. 어찌보면 남녀의 사랑의 장면을 스케치한것인지도 모른다.


........................

정녕 하늘이 알아본게다

억만개 진주가

낟알로 맺혔구나

--오, 사막의 태양

이 세상 망각의 한 끝에

억만개 태양을 걸어놓고

하늘과 마주 웃는

내다, 사막의 주인이다

그 예날 누구는

해를 쏘아 떨궜다지만

해를 심어 떨구는 그 재간

20세기 신화의 주인-

아무렴, 장수 왔다 울고 갈테지!

하늘의 해가 못닿는 구석

하루길에 지쳐 잠들제

나의 태양은 야직을 선다

하늘땅이 바꾸는 그 대거리

삭막한 이 세상에서

아예 밤은 썩 지워버리자

진주농사 해농사-

빛으로 적어보는 아름찬 소출

이제 줄줄이 고압선따라

해살처럼 뻗어갈 힘의 원동력

홰치며 일어서는 이 사막에서

거짓 아닌 전설도 만풍년이다!

아무렴,

나는 -

해를 심는

-감농군!   

                  

    호방한 정서와 격정으로 끓어번지는 김철시인의 <<해를 심는 감농군>>의 앞부분 세개련을 잘라버린 시문이다. <<화력발전소실기>>라고 부제를 달고 씌여진 이 시는 발전소창업자들에 대한 극찬으로 가득 찬 서정시이다. 발전소창업자들의 노력의 성과인 전등불을  해라고 읊으면서 해의 창조자들을 감농군이라고 하였다.

   이 시에서 김철시인은 어찌하여 전등불을 해라고 지칭하였는가가 문제이다. 전등불을 해로 둔갑시킨데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한가지는 전등불빛과 해빛의 빛이 비슷한 색깔에서 류추되였다고 할수있고 다른 한가지는 전등불도 동그랗고 태양도 동그란 모양이기때문이다. 이 두가지 리유중 주요한것은 빛이다. 그러므로 가히 색깔로 찾은 시적상관물이라 하여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전기불이 해로 되었으니까 화력발전소로동자들은 전기를 만드는것이 아니라 해를 만든다고 할수있다. 그럼 해를 심는 감농군이라는 언어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가가 문제로 나서게 된다 이 시의 주인공들은 화력발전소로동자들인데 시인은 감농군이라고 한다. 이것은 성질에 의하여 변형되는것이므로  다섯번째를 잘 새기면 저절로 풀릴 문제이기에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이쯤하면 관심있는 독자라면 시를 다시 읽어보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알수있으리라 믿는다.


제2절 모양에 의한 시적상관물


  사물의 색깔처럼 사물의 모양도 시인의 눈길을 끈다하겠다. 시인은 누구보다 사물의 모양과 친하려하며 사랑하려 한다. 사물의 모양은 시인을 흥분시키며 시인의 령혼을 자극한다. 사물의 색깔처럼 사물의 모양도 시인에게 있어서는 신비한 존재이다. 천차만별의 사물의 모양을 보고 시를 쓴 시인도 헤아릴수 없이 많거니와 시의 수량은 더욱 헤아릴수 없이 많을것이다.

  모양은 사물의 특성의 하나이며 존재방식의 하나라겠다. 모양이 없는 사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양은 각각으로 자기 독특한 생김새를 갖고있으며 나름대로의 미를 발하고있다. 길고 짜르고 둥글고 넙적하고 두텁고 얇고 삼각형, 릉형, 장방형...규칙적이기도 하고 불규칙적이기도 한 모양의 종류와 양상은 끝이 없으리라. 모양은 색깔보다 상대적으로 고착성이 강하고 변화가 적다하겠다.

  사물의 모양의 상사성은 시인이 시적상관물을 포착하고 끌어내는 또 하나의 원천이라 하겠다.


한밤중 고요한 부두위

밧줄 드리운 높은 돛대 끝에

달이 걸렸고, 그렇게 먼 것은

놀다 잊은 어린아이의 풍선뿐이다


  이미지시에 철학적 뒤심으로 나섰다는 흄은 생전에 시험작 다섯편을 썼다고 하는데 이 <<부두위>>의 전문은 그중의 한편이다. 정서적인 표현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미지만 떠올렸다하겠다. 간결한 넉줄의 시속에 모양에 의한 시적상관물을 찾아놓은것으로 시는 끝을 내고있다. <<돛대끝>>에 높이 걸린 달이 장난에 미쳐서 놀다간, 그만 잊어버리고 간 <<어린아이의 풍선>>이라는것이다. 달도 모양이 둥글고 풍선도 모양이 둥글다. 두 사물이 다 모양이 둥글다는것으로부터 시적상관물을 설정한것라겠다. 혹자는 이런 시도 시인가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런것도 시이다. 시일뿐만 아니라 이미지시의 하나의 전형으로 될수있는 시이다. 시란 길어서 시인것이 아니고 짧아서 시가 아닌것이 아니다. 우리는 파운드가 7년이란 긴긴 시간에 <<지하철 정거장에서>>라는 두줄의 시를 써낸것을 앞에서 읽어보았다. 흄의 <<부두위>>라는 넉줄의 시를 읽으면 바람이 잦은 아늑하고 아름다운 그림같은 바다가의 부두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 풍경속에서 부두를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게 된다. 또 이질적인 사물의 동일성을 추구하여 <<서서이 대상을 환기>>시키는 묘미가 어떤것인가를 터득하게 된다. 특히 청년도 아니고 장년도 아닌 어린아이, 그 천진한 어린아이의 풍선은 순수성의 추구라겠다. 이 한장의 풍경화는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아있을것이다.

  릴케의 <<눈물단지>>라는 시를 읽어보자.


다른 단지라면 술을 담겠네 다른 단지라면 기름을 담겠네

벽이 그리는 텅 빈 배에 말일세

나는 치수야 더 클것도 없지만 호사는 으뜸이라

쏟아지는 눈물을 받을가해서 패인 몸일세

술이라면 단지에 더 괴겠지 기름이라면 더욱더 맑아지겠지

하지만 눈물은 어찌되는가ㅡ 눈물덕분에 내 몸 무거워지고

앞이 더 안 보이고 굽은 등에서 반짝이다가

필경은 깨질것만 같더니 텅 비고말았네


  장미의 시인이라 불린다는 릴케는 <<눈물단지>>란 무엇가를 끝까지 밝히지 않은채 종지부를 찍고있다. <<술단지>>도 아니고 <<기름단지>>도 아니고 <<벽에 그리는 텅 빈 배>>이고 <<패인 몸이고>> 눈물이 <<굽은 등>>에서 반짝거리며 <<몸>>을 무거워지게 하는, 종당에는 <<텅 비고>>마는 사물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눈확이라겠다. 얼굴에 패여들어간 타원형의 눈확과 속이 비인 <<단지>> 는 모양에서 비슷한 점이 없다고 할수 없다. 그리고 푸른 바다에 떠있는 빈 쪽배와도 상사성이 없다고 할수 없는 생김새다. 눈확은 몸의 일부분이며 <<패인 몸>>의 일부분이다. <<굽은 등>>은 눈확의 언저리, 휘우듬한 눈확의 언저리, 휘우듬한 등, 여기에 바로 동일성의 초점이 있다하겠다. <<눈확>>의 시적상관물로 <<술단지>>, <<기름단지>>, <<텅 빈 배>>가 등장하고 <<눈언저리>> 시적상관물로는 <<굽은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시적상관물들은 모양에 의하여 설정된것이라 하겠다. 시인은 이런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면서 눈물로 인한 <<호사>>의 <<으뜸>>과 <<몸>>의 <<무거워짐>>을 진술하는것으로 눈확의 희비극과 인간 또는 인생의 희비극을 노래하고 있다하겠다.

  한국의 최선령시인이 쓴 <<아침>>이라는 시도 모양에 의한 시적상관물의 설정이 잘된 시라하겠다.


                   아침

                   리선령


암흑의 물결을 타고

선인장의 비장한 가슴으로

이어서는바다


뱃길을 잃은 마녀

해심에서 나와

암초위에서 백기를 든다


차가운 정적의 쟁반위로

구근(球根)처럼 내미는

지구의 여린 얼굴


황금의 수레바퀴는

알몸의 부끄러운 그림자를 벗기는 하늘의 손거울


간밤에 신음하던 참새의 꿈이

금붕어비늘이 되어 반짝이는

나의 바다여


   시 <<아침>>에서는 모양으로부터 초점을 맞춘 시적상관물이 련마다 나타나고 있다. 1련에서의 <<선인장 가슴>>은 모양과 색깔로 혼용된 파도의 시적상관물이고, 2련에서 <<백기>>도 모양과 색깔이 혼용된 파도의 시적상관물이고, 3련에의 <<쟁반>>은 모양으로 인한 바다의 대용이고, <<구근>>과 <<여린 얼굴>>은 둥그런 모양에 의한 <<아침해>>의 대용이고, 4련에서의 <<황금의 수레바퀴>>와 <<하늘의 손거울>>은 또 모양에 의한 태양의 대용이다. 마지막 5련의 <<금붕어비늘>>은 모양과 빛으로 찾은 파도의 대용 즉 시적상관물이라겠다.

  이러한 변용, 대용, 이미지화는 모두 모양의 동일성으로부터 떠올린 시적상관물들의 흐름을 이루고있다. 그 흐름속에 장쾌한 아침바다를 노래하는 시인의 사랑과 숨결이 합류하고 있겠다하리.

    이번에는 리상각시인이 어떻게 모양을 리용하여 변형하는 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리상각시인은 <<아침에>>라는 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


아침에 

리상각


산이 아침에 커다란 초불을 켜들고

기도를 드린다

새들이 젖은 날개를 털며

짙푸른 숲에서 합창을 한다

축복받은 이들이 산마루를 바라고

새삶을 창조하고 있을 때

산은 그 초불을 하늘에 띄운다.


    김철시인은 전기불을 해라고 하였는데 리상각시인은 아침해를 초불이라고 한다. 김철시인이 색깔로 변형을 하였다면 리상각시인은 모양으로 변형을 하였다고 하겠다. 아침에 동산에서 금방 솟아오른 태양이 둥그렇다는것을 우리들은 다 알고있다. 밤에 초불을 켜놓으면 둥그스럼한 불이 빛을 뿌린다는것도 우리는 알고있다. 어상사한 이 둥그스럼한 모양을 시인은 변형의 조건으로 설정하고 있는것이다.

    리상각시인의 시 <<아침에>>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해 볼봐가 있다는것을 알아야겠다. 시적상관물을 설정한다음 어떻게 전개시키느냐이다. 리상각시인은 아침과 관계되는 사물 새와 기도를 떠롤리면서 새는 숲과 관계있으므로 숲과련계시켜 쓰고, 기도는 축복받는 사람들과 관계있으므로  축복받은 이들을 시에 끌여들이고있다. 그것들의 관계를 시인은 새롭게 해석하고있다고 하겠다.


제3절 움직임에 의한 시적상관물


  움직인다 해도 달도 지구도. 움직인다 강도 산도 바다도. 움직인다 나무도 풀도. 움직인다 바위도 모래도 바람도. 세상 사물이 모두 움직이였고 움직이고 있으며 영원히 움직일것이다. 일상적인 눈길이라면 벼랑은 움직이지 않는 전형이라겠다. 허나 벼랑도 움직이고있다. 벼랑밑에 가보라, 바위사태 돌사태를 만나지 않는가. 이것들은 벼랑의 움직임속에서 붙어있지 못하고 떨어져나은 벼랑의 산물이며 부스러기이다. 바람이 스치고 비에 씻기고 세월의 가고옴에 따라 벼랑이 움직인 증명물이다. 우리들의 가녀린 시력으로 보아내지 못할뿐이지 벼랑이 움직이지 않는것은 아니다. 사물은 운동하며 운동속에서 존재한다하겠다.

  사물의 움직임은 예로부터 문학가들이 몰라서는 안되는 현상이였다. 어느 한 사물의 움직임에 대하여 어느만큼 알고있는가는 문학인들의 소질을 가늠하는 자대라고도 할수있겠다. 움직임을 많이 알수록, 움직임에 대한 상식이나 견식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해박하고 학식있고 조예가 깊다하겠다. 소설가도 좋고 시인도 좋고 극작가도 좋고 그들 모두가 사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있으며 사물의 움직임속에서 무엇인가 터득하고 깨우치려 한다. 글을 쓰는 자체도 움직임의 표현이라겠다. 모든 작가는 사물의 움직임을 그리워하고 사물의 움직임을 사랑한다.

  현대시 시인은 사물의 움직임을 새롭게 보아냈을 때 시를 쓰지 않고는 잠들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움직임도 색깔이나 모양처럼 현대시를 낳는 원천이라겠다.

  사물들의 움직임은 이미지시가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 될 한가지 중요한 조성부분이다. 사물의 색깔이 표현되지 않은 경우와 사물의 모양이 표현되지 않는 경우의 시는 있을수있으나 사물의 움직임이 표현되지 않는 경우의 시는 있을수 없다하겠다.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찟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정지용의 시 <<바다.2>>의 앞부분이다. 바다의 썰물을 노래한 시이다.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왔다가 밀려가고있는 상황을 <<푸른 도마뱀떼>>라고 하였다. <<재재 발리여>> <<꼬리가 이루/잡히지 않는>> <<도마뱀떼>>, <<흰 발톱에 찢기여>> 생기는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썰물이 밀려가는 모습을 세세하게 이미지화하고있다.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는 밀려간 썰물에 의하여 드러난 모래와 자갈이 깔린 바다가이고, <<흰 발톱>>은 이런 바다가에 와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의 물결이라겠다. 이 시에서 주역을 일으키는 시적상관물은 <<푸른 도마뱀떼>>이다. 기타 시어들인 잡히지 않는 <<꼬리며>>, <<흰 발톱>>이며 <<생채기>>며는 <<푸른 도마뱀떼>>에 의해 파생된 시적상관물이며 이미지라겠다.


밤의 파도-바다의 양과 돌고래가

히아신스의 가벼운 짐을 지고

장미 월계수와 트래배 어린이

텅 빈 으스트리아 궁전의 둘레에 바람을 일으킨다


밤의 파도-두개의 조개가

물살을 헤치고 바위위로 떠오르며

화려한 머리띠며 자주빛덩이를 억수로 퍼붓는다

바다의 중앙으로 흰 진주는 다시 굴러간다


   독일 벤의 시 <<밤의 파도>의 전문이다. 밤의 파도의 시적상관물을 <<양과 돌고래>>(2련)로 설정하고있다. 파도가 해안을 향하여 하얀 갈기를 나붓기며 퍼렇게 솟구치며 무너지며 또 솟구치는 것을 <<양과 돌고래>>라고 하였고 물결이 해변의 바위로 치달아오르는것을 <<두개의 조개>>라고 은유하고있다. <<희아신스의 가벼운 짐>> <<화려한 머리띠며 자주빛덩어리>>, 그리고 <<흰 진주>>는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빛깔에 의하여 잡은 시적상관물이라겠다.

  정지용과 벤은 다 같이 바다를 쓰고있으며 파도를 쓰고있다. 하지만 두시인의 눈길은 다르다. 정지용은 바다의 시적상관물을 <<푸른 도마뱀떼>>로, 벤은 <<양과 돌고래>>로 각각 설정하였고 정지용은 부서지는 파도의 시적상관물을 <<잡히지 않는>> <<꼬리>>와 <<흰 발톱>>으로 설정하였지만 벤은 <<히아신스의 가벼운 짐>> <<화려한 머리띠며 자주빛덩이>>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였다. 정지용은 종적인 추구를 하였고 벤은 횡적인 추구를 하였다. 정지용의 시야는 한사물에 머물러있지만 벤의 눈길은 여러 사물을 휩쓸고있다.  정지용의 이미지는 하나를 파고들지만 벤의 이미지는 폭을 넓히기 위하여 이미지를 자주 바꾸고있다. 정지용은 화폭의 묘미를 추구하는데로 몰입한다면 벤은 거창한 화폭을 펼치는데로 돌입한다고 할가


감별없는

노란 부화상

자연산

가을 병아리떼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록음의 철망을 빠져나와

날개짓 종종 걸음으로

길을 읽고 헤매는

집단탈출


   한숙희의 <<은행나무잎>>이다. <<노란 부화상>>은 단풍든 은행나무를 색깔로 찾은 시적상관물이고(혹은 은행나무잎이 모록이 떨어진것을 보고) <<가을 병아리떼>>는 가을바람에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노란 잎들의 시적상관물이라겠다. <<록음의 철망>>은 은행잎들이 푸르렀을 때를 변용

형해서 대용한것이라겠다. 이쯤하면 내용을 리해할만한 수수께끼는 모두 풀어놓았다고 하겠다.

   

푸르른 벼개봉밑에서

푸르른 뱀 한 마리 푸르르게 기여나온다

수억만번도 더 떨어진 락엽을 헤치였건만

아직도 푸르른 꼬리가 다 나오지 않았다

푸르른 뱀은 그냥 푸르르게 기여가고

당신이 꼬였던 이브는 어디로 가고

이브가 속였던 아담은 어디로 갔는가

푸르르게 기여가는 푸르른 뱀이여

태초에 잘못한것은 아니였던가

한여람쯤되는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였어도

푸르르게 열였던 하늘에 푸르르게 열였던 땅에

오늘처럼 때자국이 어룽거리지 않았을수도

당신도 언녕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며

휴식의 향연을 맛보았을수도 있었으리

이제 또 어디 가서 이브를 찾으랴

푸르르게 푸르르게 기여가는 뱀이여

아직도 꼬리가 다 나오지 못한 푸르른 뱀이여

   움직임으로 시적상관물을 찾은 필자의 졸작 <<해란강>>이다. 해란강이 굽이굽이 휘돌아 흘러가는것을 보고 <<푸르른 뱀>>이 그냥 기여가고있다고 필자는 상상하고 움직임으로 해란강의  시적상관물을 <<푸르른 뱀>>으로 설정한 것이다. 형용사 <<푸르른>>을 자주 반복한 것은 <<푸르른>>이란 이 언어가 물과 뱀의 색깔에 대한 표현도 있겠지만 언어의 부드러움과 률동에 대한 추구에서 였다. <<푸르름>>과 <<때자국>>은 완전히 상반되는 뜻을 가진 언어표현으로서 세상이 깨끗했으면 하는 바램을 표현한것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시를 쓸 때 같은 제목을 쓰더라도 내용과 형식이 이미 쓴것보다 꼭 달라야 하고, 제목의 가지고있는 기성적함의와 이미지가  꼭 달라야 한다는것을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시인만이 발견한 세계를 써야 하는것이다. 해란강에 대한 시는 많지만 해란강을 <<푸르른 뱀>>이라고 한 시인은 아마 없는것으로 알고 이렇게 시적상관물을 설정하고  나름대로 한번 노래해 보았다.

    시적상관물의 부동한 설정에 따라 감각이 다르고 감수가 다름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현대시는 무엇을 썼는가보다 어떻게 썼는가를 더 중시함을 알아야겠다고 생각된다.

  이미지시는 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시하겠다고 하겠다. 형식의 새로움으로부터 내용의 새로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새로운 형식은 기필코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시를 낳게 마련이다. 이미지자체가 내용이고 이미지자체가 시이다. 그러므로 이미지는 꼭 새로운것이여야 한다. 새로운것이 아니면 내용을 중복하게 되고 새 내용이 없으면 언어장난을 치게 된다.

               

제4절 소리에 의한 시적상관물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의 U, 청색의 O

모음들이여

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내밀한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변을 윙윙거리는

굉장한 파리떼들의 털투성이의 검은 코르셋

자랑스러운 빙하의 창 백인왕

산형화의 흔들림

I, 적색, 내 뿜는 피, 화가 났을 때나

회개의 감흥을 느낄 때 아름다운 입가의 미소

U, 원형, 록색 바다의 신성한 전율

동물들로 씨뿌린 방목장의 평화

O, 이상한 날카로운 소리로 가득찬 지고의 나팔세계

와 천사가 가로지르고 있는 고요함

-오, 신의 눈의 보라빛 광선 오메가여

   랭보의 시 <<모음들>>의 전문이다. 랭보자신도 위대한 발견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적이 있다는 <<모음들>>이다.

   A가 어덯게 검은 색갈이 되고, E가 어떻게 흰색갈이 되고, l가 어떻게 붉은 색깔이 되고, U가 어떻게 초록색갈이 되고, O가 어떻게 청색이 되는가? 랭보는 무엇이라고 답변할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 모음들의 시적상관물을 찾을 때 발음에 초점을 멎추었겠다고 생각된다. 구라파시인들은 운률을 특별히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겠다. 운률의 새로운 조합도 시라는 견해가 있는 구라파이다. A, E, l, U, O, 하고 소리를 내면서 그 소리로부터 색채를 끌어내였다고 함이 적당하리라고 맏어진다.

  랭보는 모음소리의 시적상관물로 색채들을 떠올린 다음 그 색채들로부터 다시 새로운 사실들을 떠올리고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중 삼중의 시적상관물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있다 하겠다.

  A를 검은색상으로, 검은 색갈로는 털투성이 파리들의 <<검은 코로셋>>을, E는 하얀 색갈로, 하얀 색갈로는 <<물거품>> <<천막의 순진함>> <<빙하의 창>> <<백인왕>>  <<산형화의 흔들림>> 등 여러가지 시적상관물을 연해연방 라렬하였고, L는 적색으로, 적색으로는 <<피>>와  <<아름다운 입가의 미소>>를 찾았고 ,U는 초록색갈로, 초록색으로는  <<바다>>의 <<전률>>과 <<동물들로 씨뿌려진 방목장의 평화>>를  찾았고 , O는 청색으로, 청색으로는 울부짖는 <<지고의 나팔세계>> 와 << 천사가 가로 지르고 있는 고요함>> 과 <<신의 눈의 보라빛 광선의 오메가 (끝이라는 뜻)>>를 찾았다. 전반시가 파편문체라겠다. 모음들의 소리를 통하여 <<파리떼>>로부터 시작하여 동물, 식물, 강, 바다, 인간, 천사, 신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세계를 굉장하게 그려놓았다하겠다.

  현대시는 이질적인 사물들의 동일성을 추구하면서 은유적인수법라렬만으로 훌륭하한 시가 태여나고 있음을 보아낼수있다고 하겠다.

   소리는 현대시가 시적상관물을 찾는 또 하나의 중개자임을 랭보의 시를 통하여 보아냈다. 세상사물은 모두 소리가 있으며 그 소리는 색깔이나 모양이나 움직임처럼 그 사물의 특성의 하나로서 존재를 알리는 신호이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소리를 내는 사물을 보지 않고도 번개가 치는구나 새가 우는구나 개가 짖는구나 강물이 흐르는 구나........ 하는 여러가지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움직이면서 여러가지 소리를 내고있는데 어떤 소리는 우리가 들을수있고 어떤 소리는 우리가 듣지 못하고있다. 듣지 못하는것은 소리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의 귀가 부실하기때문이다. 의사들이 청진기를 끼고 가슴을 대보는것은 귀로 들을수 없는 가슴속의 소리를 들어보려는데 있으며 그 소리에서 가슴속에 있는 기관들의 모병을 확인하려데 있는것이다. 시인도 <<청진기>>를 끼고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리에 의하여 설정되는 시적상관물은 어떤 류사성의 추구라기보다 시를 쓰는 시인의 나름대로의 상상력의 산물이라겠다. 다시 말하면 어떤 확실한 근거에 의거하는것이 아니라 시인이 하고싶은대로 설정하면 되겠다고 함이겠다.

종소리

눈이 부신

강물로 흐르네

내 안을 따라

나즉이 흔들리는 목선에

가락 높낮음 결의 교응마다

파도는 일렁이네

해지는 수면은

억만사금파리 뜨는 눈

  (두련삭제)

구름처럼 흐르는

여백을 벗어 다가앉는

쾌청의 산수화

치마빛 진달래

개나리 내음 이랑진 기와집 따라

가슴마다 알맞게

피여오르는 아지랑이의

살아야 할 우리 그 노래의 흐름은

하나의

강물로 흐르데

    이병기의 시 <<환희>>다.

    우선 <<환의>>의 시적상관물을 <<종소리>>로 찾았고 <<환희>>의 대용에 쓰인 이 <<종소리>>의 시적상관물을 <<강물>>로 설정하였다. <<환희>>의 대용에 쓰인 이 <<종소리>>는 진짜 종소리인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의 표현이거나 어떤 절대자에 대한 표현이라겠다. 이병기시인은 <<종소리>>에 대한 시적상관물을 <<강물>>로 떠올린후 내내 강물에 대한 진술을 하고있다하겠다. 이 <<강물>>도 <<종소리>>처럼 마음속의 강물이며 상상속의 강물로서 <<환희>> 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비실재적 대상물일뿐이다. 시인은 강물을 통하여 이미지를 한장한장 번져보고있으며 <<강물>>의 의미를 <<흔들리는 목선>>으로부터 <<억만사금파리의 뜨는 눈>>을 거쳐  <<쾌청의 산수화>>, <<치마빛 진달래>>, <<개나리 내음>>, <<아지랭이>>로 확충시킨다. 이러한 확충은 실은 시인의 에티오피아에 대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설계라고 하겠다. 이 리상국에 도달하자면 <<강물로 흐르며>> <<살아야 할 우리>>다. 현대시인의 리상은 언제나 지평선이다. 바라볼수는 있지만 도착할수 없는 현실로  하여 그리움과 사랑을 안고 꿈만 꾸어야하는 슬픈 족속이 현대시인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 시단의 현대시 대표의 한사람이라고 불리는 한춘씨의 <<낡은 타악기>> 한편을 더 보자.


숨가쁜 기차가

산모퉁이를 넘는다

두갈래 레루장을 흔들며

모든 것이 낡은대로

소리내는 타악기가 굴러간다

큰 딸의 기별을 받고

빈 손으로 찾아가는 할머니

들고 갈것은 모성애 하나뿐

이빠진 사기그릇처럼 말이 없다

해거름 실어 여위여지면서

한줌의 한숨을 손으로 질러넣고

시름을 풀지 못하고있는데

바람개비 도는 동구역 질러

어둠속에 묻히는 기차

인고가 침전된 각질속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없다


    한춘씨는 낡은 타악기를 달려가는 기차로 상상하면서 이 시를 써내려가고 있다. 타악기가 기차로 탈바꿈하는데는 레루장우로 굴러가는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이다. 타악기소리와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리는 소리의 음색과 률동에서는 별로 같은 점은 없겠지만 소리라는 면에서는 같은 사물이라고 할수있는것이라겠다. 한소리를 다른 한소리로 옮겨놓는것도 소리로 찾는 시적상관물의 한가지 설정방법이고 소리를 통하여 한사물을 다른 사물로 이동시키는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겠다. 한춘시인은 이 시에서 이 방법들을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는것이다.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고있는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인고가 침전된 각질속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없다>>고 시인은 탄식한다. 오케스트라라하면 자연히 웅위롭고 화려한 음악세계이겠지만 렬차에 앉은 할머니한텐 그런 세계가 차례지지 않았다.  인고가 쌓이고 쌓여 단단한 껍데기로 되었는데 그 깨여지지 않는 인고의 껍데기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살아가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밑바닥에서 밟히며 인생을 살아가고있는 사람들의 축도가 아닐가.


익어가는 달빛이 아플가

차마 못밟아

가던 길 멈춰선

나무 한그루

흐르는 달빛에 흐느적거려

해묵은 심사를 파아랗게 젖힌

한포기 물초

한가닥 피리소리

휘휘 저어서

감아올린 옛꿈은

언제면 저 달속에

하아얀 들국화로

눈이 시게 피여볼가


   <<추억>>으로 우리 시단의 현대시문을 열었다고 하는 김정호시인의 시 <<아리랑>>의 전문이다.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전통가요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력사의 한 장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정서이며 문화이다. 이 노래소리를 김정호시인은 두가지로 변형시키고 있다. 첫째로는 소리를 사물로 변형시키고 둘째로는 소리를 다른 소리로 이동시키고 있다. 아름다운 달빛을 밟기를 저허하여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있는 <<한그루 나무>>가 아리랑이라 하고 달빛에 몸을 저으며 옛날의 마음을 파랗게 펴놓은 <<한포기 물초>>를 아리랑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사물로의 변형은 소리를 사물로 둔갑시킨것이라겠다. 하늘을 저어서 옛꿈을 감아올리는 <<한가닥 피리소리>>로 변형시킨것은 두번째에 속하는 변형이라겠다. 소리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겠는데 김정호시인은 이 두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여 아리랑을 노래하면서 <<하얀 들국화>>(이것도 리상을 표현한 시적상관물)로 눈부시게 피여날 미래를 동경하고있다.


제5절 속성에 의한 시적상관물


   세계는 사물로 구성되였고 사물들은 죄다 자기의 속성이 있다. 사물의 속성은 5관을 통하여 뇌에 반영된 감각을 종합, 분석, 추리하여 내린 사물성질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물의 색갈, 모양, 소리, 움직임들은 5관을 통하여 뇌에 반영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사물의 속성의 외적 표현이라 하겠다. 외적표현이 있으면 내적표현이 있기마련이다. 내적표현은  외적표현처럼 감각할수있게 드러나는 표현이 아니다. 내적표현은 드러남을 고찰한후 내린 추상적인 판단이나 관념이다. 이런 판단이나 관념을 속성이라고 하겠다.

   <<봄이면 꽃이 핀다>>는 개념은 봄의 속성의 한가지를 표현한것이라겠다. 이 개념은 <<봄>> 이나 <<꽃>>을 지시하는 언어인 것이 아니며 <<봄>>과 <<꽃>>이라는 언어는 봄의 속성을 나타내는 언어의 재료로 충당되였을 뿐이다. 한 사물에는 한가지 속성이 있는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속성이 있기마련이다. 속성은 한류형의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법칙을 반영하지만 한사물의 속성의 표현은 여러가지 형태라겠다. <<물은흐른다>>하고 물의 속성을 한마디로 나타낼수 있지만 표현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유유히 흐르기도 하고 세차게 흐르기도 하고 잔잔히 흐르기도 하고 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결은 하얗게 부서지기도 하는데 그 부서지는 표현도 천태만상이다.

   현대시는 속성을 중시하며 속성으로부터 시적상관물을 설정하기를 즐긴다. 색깔, 모양, 움직임, 소리 등은 일반적으로 은유에 의하여 시적상관물을 드러내지만 속성으로부터 착안하여 설정된 시적상관물은 일반적으로 상징에 의하여 표현된다. 때문에 속성으로 찾은 시적상관물은 상징적상관물이라고 하여도 틀린다고 할수는 없겠다.


한편의 시가 태여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숱한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숱한 사랑하는것을 사살하고 암살하고 독살해야 한다

보라

사천의 날과 밤하늘에서

한마리 새의 떨리는 혀가 탐나서

사천의 밤의 침묵과 사천의 날의 역광선을

우리들은 사살했다.

들으라

비내리는 모든 도시 용광로

한 여름의 방파제와 탄갱에서

굶주린 한 아이의 눈물이 있어서

사천날의 사랑과 사천의 밤의 련민을

우리들은 암살했다

기억하라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는것을 보고

우리들 귀에 들리지 않는것을 듣는

한마리 들개의 공포가 탐나서

사천밤의 상상력과 사천날의 차가운 기억을

우리들은 독살했다.


   일본의 다무라류이지의 시 <<사천의 날과 밤>>의 전문이다. 니체의 시 <<광대에 불과하다! 시인에불과하다!>>에서 시인을 <<짐승>> 이라고 표현한것과 일맥상통하다 하겠다. 다무라류이지는 <<짐승>> 이라는 언어를 쓰지 않았을뿐이다. 오히려 짐승보다 더한 도깨비를 현대시라고 노래했다고함이 더 어울리리라 , 어찌하여 이런 무시무시한 언어로 현대시를 말하게 되는가?

   현시대는 <<죄악>>이 많고 크다겠다. 현시대는 전시대의 랑만주의시도 동시대의  사실주의시도 모두 부정한다. 현대시는 사물을 떠나고 관념을 떠나고 인간을 떠나고 언어를 떠나고, 현실을 떠나서 자기의 궁전을 건설한다. 이 궁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궁전이며 낯선궁전이며 현실과 모순충돌을 일으키는 불협화궁전이다. 이 궁전으로 들어가려면 표를 떼야지 아무나 들어갈수있는 곳이 아니다. 표는 누가 파는가? 현대시가 판다. 현대시를 알면 표는 스스로 생기게 된다.

   다무라류이지의 <<사천의 낱과 밤>>은 바로 이런 현대시의 상징주의시 가편이라겠다. <<사천>>이라는 수자의 등장은 다무라류이지가 현대시를 10여년간 탐구하면서 써왔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질것 같다. <<사살>>, <<암살>> <<독살>>이라는 언어는 다른 류파와의 철저한 결렬을 표현한것이라고 하겠다. 2련의 <<한마리 새의 떨리는 혀가 탐나서>>는 새로운 이미지 탐구에 대한 현대시의 추구를 상징한것이고,  3련의 <<굶주린 한 아이의 눈물>>은 이제까지 성취와 창조에 추호도 만족하지 않고있는 시인의 초상화라고 하면 될것이고, 4련의 <<한마리 들개의  공포가 탐나서>>는 보이지 않는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것을 듣게 하려고 애쓰는 시인의 불타는 노력과 진지한 탐구의 상징이라고 리해하면 좋을것 같다. 이쯤하면 시의 모든 내용이 풀리리라 믿어진다. <<사천의 날과 밤>>은 현대시에 대한 다무라류이지의 굳센 믿음과 그속에서의 열광적인 분투를 표현했다 하리라

  은유의 수법으로 기술한 현대시는 무엇이 무엇이라는 명백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상징적인 시적상관물로 시를 관통시킨 현대시는 그런 딱딱한 맛이나는 문체격식이 아니다. 이것도 속성으로 찾은 시적상관물의 특점이라면 특점이겠다.

   한국 신세훈시인의 <<목쉰 연가>>를 보자.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천번을

만번을 찍었거니

결국 사랑하는 나무는 비참히 쓰러졋네

섰던 세월의 태양이 아무리 그리워도

누워서 밤이슬을 맞게 되는것은 누워서 어둠안으로 죽어가는것

나도 사랑하는 나무옆에 넘어져

오랜 잠들 때까정 넘어져

한 천년을

한 만년을

하늘의 별에 대고 얘기할련다


   관념을 이미지한 관념이미지시라 하겠다. <<열번찍어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없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홍윤기 비평에 의하면 이 시의 부제를 <<사랑하는 나무>>라고 달았는데, 시인은 자기의 시세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초부가 거대한 나무를 찍어넘기는 식으로 천번만번, 아니 무수한 각고를 거듭하여야 한다는것으로 해석하고있다. 이 외에도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이미지화한것이라겠다. 노력은 천재를 낳는다는 말이 있다. 찍어서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있다한들 <<천번을 만번을  찍어서 >>넘어지지 않는 나무야 어디에 있으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고 또 하면 꼭 성공한다는 의미겠다. 문제는 그런 끈질긴 노력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의하여 결정되는것이다. 태산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지>> 않는가.

   1련의 마지막줄 <<결국 사랑하는 나무는 비참히 쓰러졌네>>는 노력 끝에 일이 성공되였다는것을 나타내는 아이러니적 시구이며 성공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반어적으로 노래한것이라겠다. 2련의 마지막줄 나무가 <<누워서 어둠안으로 죽어가는것>>이라는것은 완성을 의미한다. 넘어진 나무는 썩어서 흙이 되여야 한다. 흙이 되는것이 바로  <<어둠안으로 죽어가는것>>이다. 흙이 되여야 나무는 사물적 한생을 종결짓고 영혼의 영생을 획득하게 된다. 흙이 되는 것은 자연속에서 나온 사물이 자연이 부여한 최후의 의무을 가장 성스럽게 완정하게 완성한 표징이다. 그런 뜻의 실현을 위하여  <<나도 사랑하는 나무옆에 넘어져 오랜 잠들 때까정 넘어져서>> <<하늘의 별에 대고>> <<천년을 만년을>> 얘기하려 하는것이다. 최후의 완성을 위한 시적화자의 정진정신을 보여준것이라겠다.

  성질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쓴 우수한 시들은 우리의 시에서도 흔히 볼수있다. 지난 80년대 중반으로부터 립체시라는 기발을 들고 시창작에 정진해 왔던 김파의 시 <<항로>>를 살펴보기로 하자


항로

김파


물속에 누워있던 파도들이

거울을 깨고 일어선다

갈피에 끼인 녹슨 시간이

죽은 비늘로 뒤로 밀려간다

바람이 돛폭 안고 갈 때

하늘이 찢어지며 신음하고

어둠이 아픈 기침을 한다

땀에 절은 쩝절한 항로

지금쯤 얼마나 달려왔는가

피안의 저쪽

물새의 하얀 울음소리가

멀리 화살로 날아가는데, 벌써

머리칼에 가을서리 물들고

내 숨결이 조금씩

흰빛으로 증발하고 있다


    김파의 시 <<항로>>는 인간이 어떻게 태여나고 어떻게 살아가고있는가를 고요한 항구에서 떠난 배가 어떻게 달리고 있는가와 비교하면서 두사물의 성질에 모를 박고 시를 구사하고 있다. 시인은 살아가는것이란 배가 항구를 떠나서 달리는것과 같다고 증언하고있다겠다. 첫두행은 인간의 탄생을 그린것이고, 3,4행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밀려나는 낡은것의 사멸을 그리였고, 5,7행은 일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간난신고를 그리였고, 2련에서의 첫두행은 인생의 간난신고를 극복하며 억차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였고, 나머지는 한생을 바쳐 리상을 추구하여 왔으나 그에 닿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져야 하는 슬픔을 쓰고있다. 배는 태여난 그날부터 파도를 헤치다가 일생을 마치고 인간도 태여난 그날부터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가다가 소원은 있으나 성취하지 못하고 모든것을 접어야만 한다. 이면에서 배와 인간은 비슷한 성질이 없다고 할수 없는것이다. 시인은 바로 이와같은 류사성을 착안하고  <<항로>>를 썼으리라 추측해 본다. 이 시에서 시인은 알찬 이미지들로 시를 엮어내려가서 독자의 가슴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있다. 시에 씌여진 언어 거개가 거듭나이를 하면서 새롭게 태여나고 새롭게 조합되면서 다각적인 양상을 보이고있어 이미지의 새로움이란 어떤것인가를 보여주고있다고 하겠다.


강아, 흰가슴 여미지 못한채

죽어서 얼음이 되었던 강아

쫓겨갔던 물새들 기슭으로 돌아오고

앙상하던 버드나무 새움이 트는구나

또다시 나는 본다

너의 파도의 장쾌한 옛모습을

또다시 나는 듣는다

너의 출렁이는 환락의 노래소리를

승냥이떼처럼 불을 털며덮쳐들던

미친 눈보라 자취를 감추고

죽어서도 쩡쩡 짜개지던 너의 가슴

비단결 새살로 아물어 푸르구나

어제날 두꺼운 얼음밑에서

도란도란 누구와만 나누던 귀속말

오늘은 와-와- 가슴 터져 말하며

하늘아래 자유로이 흘러가누나

나는 안다 강아, 네속에 가득차

끓으며 사품치는 그 많고많은 말을

나는 안다, 풀려내리는 해빙기의 강아

너는 정녕 반짝이는 무수한 눈물방울

지금 내 가슴속에 흘러들어

가슴벽 세차게 때리며

너는 우는구나 강아!

너는 웃는구나 강아!


   우파에 걸려 청춘을 잃어버렸던 조룡남시인이 해방을 받고 토해낸 감격의 시편이다. <<해빙기강변에서>>라는 시제목부터 빼았겼던 인생을 다시 찾는 기쁨을 떠올릴수있는 심상치 않는 내함을 포함하고있다. 얼음속에 갇혀 한겨울을 소리 한마디 쳐보지 못하고있다가 봄을 맞아 얼음을 깨고 다시 자신의 활력을 펼치게 되는 물!  사회의 잔학을 엄청나게 받으면서 살다가 자유를 획득한 시인의 생명! 이 두사실 사이에 속성으로 말할 때 비슷하다고 아니할수 없다. 바로 여기에 시적상관물의 설정가능성이 있는것이다. 이 시에서 물과 물에 대한 모든 묘사와 언어는 억울했던 사람을 지칭하는 상징물이고  겨울에 대한 모든 묘사와 언어는 훌륭한 사람에게 반혁명이라는 모자를 씌우고 다스리던 가혹을 상징한다. 르네르상스의 시대가 이 세상에 군림한지도 수세기가 지난 20세기중기를 넘어서면서 우리나라에 신을 모시는 유치한 년대가 있었다. 특징적인 환경에서 억울했던 사람들의 해방된 심정을 자신의 체험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토해낸 <<해빙기의 강변에서>>이다.

 

제6절 의인(의물)에 의한 시적상관물


  의인(의물)화의 수법은 우리 몸에 젖어있는것이라겠다.

  의인(의물)법을 기초로 시적상관물이 설정되여 이미지를  구성하는것은 문구에서 동안뜨게 나타나는 의인적수사법과는 차이가 있다 하겠다. 전자는 대상물을 가리키는것이고 후자는 이미지시의 수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의 순한 마음은 자연과 자연물과 인간의 평등을 요구하고 서로의 사랑을 요구한다. 요구한다는것은 평등이 되지 않고 사랑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겠다. 현대인간은 인간과 다른 모든 자연물과의 평등과 사랑을 너무 무지하게 짓밟고있는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서양의 예수나 중국의 유가는 세상만물은 이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이간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불가나 도가의 사상가들은 인간을 자연의 몸에서 사는 <<이나 써개>>라고 하면서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인간과 기타 자연물과의 평등과 사랑을 주장하였다. 오늘의 인간은 탐욕으로 팽창되여있다. 인간은 자연의 파괴자 략탈자, 통치자로 추락되여 자연의 원쑤로 활약하고있다겠다. 한 인간이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는것처럼 인류도 공룡과 같은 훼멸을 향하여  걸어가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점에서 의인(인물)에 의한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이미지를 만드는것은 의의가 작거나 가볍다고는 할수 없겠다. 현실과 현실인간을 떠난다는 이미지가  의인 (의물)적인 시적상관물을 설정함으로써 인간으로 다시 회귀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밖을 나섰더니

얼굴이 붉은 농부처럼

붉으레한 달이 울타리너머를 보고 있다.

나는 말을 건네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어

도회의 아이들처럼 얼굴이 희였다.


   흄의 시험작 5편중의 한편 <<가을>>의 전문이다. 달을 <<얼굴이 붉은 농부>>로 별을  <<얼굴이 흰>> <<도회의 아이들>>로 변형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마들고 있다.


기운 썩 좋은 낯 붉은 아이들

아우성치며 벼랑 타고 오르는 소리

성대 썩 좋은 아이들

온통 산에 불 지르는 함성이다.

아니 온 몸 속속들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이윽고 분출하는 화산이다

불타는 산속에서 나도 불 붙어

고래고래 웨친다


   홍윤기의 시<<단풍>>의 전문이다. 시각적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호상 전의되고 교차되면서 씌여진 이 시를 정한모시인은  <<단풍>>의 이미지를 멀리 정관하는 눈이 아니라 안에서 용솟음치며 끓어오르는 힘 즉 역동적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였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


   한국의 30년대에 홍윤숙과 함께 녀류시인의 쌍벽을 이루었다는 노천명의 <<사슴>>이다. 인간을 의물화한 우수작이라겠다. 노천명은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낸 시인이라며 <<사슴>>에다 자신의 <<고고한 모습>>을 투영시켰다고 홍윤기는 평하고 있다.

   의인(의물)화에 의하여 설정된 시적상관물의 이미지시는 리해에 큰 장벽이 없으므로 세세한 해석을 가하지 않는다. 의인화에 의하여 씌여진 이미지시는 그속을 파보기전에 우선 마음이 통하는 감이 든다. 그만큼 서로 대등한 자격으로 대화하는것이라 하겠다. 의물화는 의인화와 틀린다. 의물화는 의인화보다 암시성과 몽롱성이 더 강하다고 하겠다. 어떤 경우에는 난해성까지 초래할수 있겠다. 특히 어떠한 감정의 편린을 의물화 하였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 우리 시들에서 한수를 뽑아 이미지작업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비는 

하루밤사이에 

손가락이 잘리웠다

비는 

하루밤사이에 

두다리가 끊기웠다

비는

하루밤사이에

옷을 몽땅 벗기웠다

비는 

하루밤사이에

머리 하나만 댕그라니 남았다

손가락을 자른이는 바로

자신이 적셔주던 수풀이였다

다리를 끊은이는 바로

자신이 키워주던 삼림이였다

옷을 벗긴이는 바로

자신이 가꿔오던 초원이였다

비는 한바탕 울고싶었으나

비는 눈물이 다 말라버렸다

비는 부른다

비는 처절하게 부른다

초원에서 

삼림에서 

사막에서

망그러진 세계와 마주하고

그의 손가락을 부른다

그의 다리를 부른다

그의 옷을 부른다

소리소리 그 부름소리

사람의 마음을 잡아비튼다


   남영전씨의 <<비>>의 전문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는 그 무슨 손가락이요 다리요 옷이요 머리요 하는것들이 없다는것은 코풀레기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학에서 의인화수법이 이채를 돋굴뿐만아니라 시에서는 한가지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비를 통하여 불상한 인간을 보기도 하고 인간에게 파괴당한 자연의 참상을 읽기도 하면서 동정과 사랑 련민 등을 감수하기도 한다. 2련을 통하여 비가 겪는 참상은 환대를 받아야 할 사물들한테서 곡경을 당하는것을 읽으면서 격분과 슬픔이 동시에 폭발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인류력사에 흔히 있는 일들이며 우리들 주위에서 심심잖게 볼수있는 일이 아닌가! 마치 우리주위에서 불상하게 살아가고있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자매의 누구인것만 같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참상을 격지 않고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아갔은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게 된다. 의인화에 의하여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시를 쓰면 다른 이미지시보다 친절하고 감동적인 감을 주게 되는것도  설정된 사물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때문이리라.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 방법은 이외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이 여섯가지 방법을 착중하여 설명하였을 뿐이다. 이 여섯가지 방법은 어떤 근거를 잡으면서 한 방법이다. 그러나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데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하는것들이 있다. 이미지시란 현실을 초월하여  쓰는것이 중점의 하나인데 무슨 근거가 필요한가? 이 말은 맞는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것은 지적인 지위를 삭감해 버리는것으로서 우리들이 연구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당대 영미 초현실주의 시들은 이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환상적이고 몽상적인 이미지를 제작해 내고 파편문체를 많이 쓰는데  필자는 그런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너무 천박하여 여기에서 피력하지 못하는것을 과제로 남기면서 독자들이 량해하기 바란다.


제7절 령감에 의한 시적상관물


  령감에 의한 시적상관물의 설정은 감각의 물화와는 다르다. 감각은 아직 리성화되지 않는것을 물화는것이으로서 상징어나 상징구에 속하는것이라고 할수있지만 령감에 의한 시적상관물의 설정은 한수의 시를 어떻게 쓰는가에 관계되며 령감을 어떻게 시로 만드는가와 관계되는 중요한 고리라고 생각된다.

    령감은 고층차사유의 표현으로서 어떤 사물의 필연적인 느낌일수도 있고 우연한 떠오름일수도 있다. 량자중에서 필연보다 우연이라고 함이 그래도 더 적절할것 같다. 우연히 떠오른 령감을 두가지 부류로 나눌수있다. 한가지는 어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떠오르는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어떤 사물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 관념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관념으로 떠오른 령감을 그대로 써놓으면 현대시가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을것으로 알고있다. 관념으로 떠오른 령감이란 사물의 이미지가 새롭게 떠오른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에 대한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 추상적개념으로 떠오른것을 말한다. 이 추상적개념이 아무리 새롭고 철리적인것이라 하여도 그대로 써놓으면 좋은 시가 안된다. 그것을 이미지로 다시 가공하여 써놓았을 때 비로소 좋은 시가 되는것이다. 아래에 주요하게 이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가을에 오곡이 무르익고 과일이 주렁지는것은 하느님의 은덕이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릴케는 <<가을날>>이라는 시를 이렇게 쓰고있다.


 가을날

  릴케


주여, 때입니다. 여름에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에서 결실을 명하십시오.

열매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여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송이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것입니다.

잠자지 않고, 책을 잃고, 긴 편지를 쓰고

그리하여 락엽이 뒹구는 가로수길을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헤맬것입니다.


   가을의 풍성함은 하느님이 은총이라는 주제를 담은 릴케의 시이다. 이 시는 령감이 관념으로 떠올라서 쓴 시라고 할수있다. 이 시를 쓸 때 릴케의 뇌리에 떠오른것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산생하고 발전하고 사멸하는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이런 주제를 표현하는것이 가을철이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되여 내용을 가을로 잡았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복합이미지의 수법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노래하고있다. 릴케는 령감을 씀에 있어서 관념에서 관념으로 간것이 아니라 관념을 이미지화하고 있는것이다. 시는 이렇게 어떤 관념적인것을 쓸 때 론리적으로 전개하는것이 아니라 이미지적으로 시의 집을 짓는것이라겠다

  겨울이라고 하자. 눈보라 휘날리는 겨울에 춥다는 생각쯤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눈보라치는 겨울추위가 봄을 만든다는 생각은 누구나 다 할수있는 상상이 아니다. 추위가 봄을 만든다는것은 시적령감에 속하는것이며 새로운 관념에 속하는것이다. 눈보라에서 받은 관념을 어떻게 이미지시로 만들것인가? 아래와 같이 시를 썼다고 하자.


(A) 눈보라 눈보라

    윙윙 울부짖는다

    바위도 얼어터진다

    털모자 없이는 한걸음도 내 디딜수 없다

    하지만 나는 사랑한다 눈보라를

    아, 눈보라여 봄을 만들어내는 사랑이여

(B) 눈보라 너는 겨울의 왕자

    너는 봄의 남편

    초봄의 언덕에서 신부를 맞을제

    신랑의 말등에서 보이지 않을 슬픔이여

(C) 눈보라 펄럭이는 날

    겨울나무 숲에 가면

    풀무소리 들린다


    줄기속에서 불길이 펄펄 일고

    망치소리 뚱땅뚱땅


    웃도리 벗어부친 신동들

    땀을 벌벌 흘리며

    푸른 잎을 벼리고있다.


  우의 A, B, C에서 A보다 B가 좋고 B보다 C가 좋다는것을 우리는 알수있다. A가 제일 차하다고 생각되는것은 눈보라라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써놓았기때문이다. 특히 제일 마지막행 <<아, 눈보라여 봄을 만들어내는 사랑이여>>는 관념적으로 떠오른 령감을 직설적으로 써놓았기 때문에 루이스가 지적하였던것처럼 <<불순물>>이 되었다. 이미지시는 이런 <<불순물>>이 나타나는것을 용허하지 않는다. B와 C는 그렇지 않다. 시인이 받은 관념적인 느낌을 상징과 은유 즉 이미지로  표달하였기때문이다. C가 B보다 낫다는 리유는 C는 B보다 더 셈세한 필치로 감성이 강하다는데 있겠다. 아무리 좋은 령감이래도 물질운동으로 재구성되지 않고 섬세한 필치가 따라서지 못하면 피와 살이 없는것이 되거나 여윈것이 된다.

  령감을 이미지화한다는것은 령감을 새로운 사물이나 새로운 사실이나 새로운 사건으로 재구성하는것으로서 모름지기 중시를 돌려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총적으로 령감의 시적상관물을 설정하여 이미지를 만드는것은 중요한 기법의 한가지이므로 능숙하게 장악하여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종언


   종합해보면 아주 간단한 도리인것 같다. 이미지시란 현대시다. 현대시는 이미지다. 이미지시의 핵심은 변형이다. 이 변형을 위하여 사유와 언어가 따라서야 한다.

   사유는 새로운 짝을 맞추는 작업이다. 짝을 맞춘다는것은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것이다. 시적상관물을 설정하는 방법에는 색깔, 모양, 움직임, 소리, 속성, 의인화, 령감  등 일곱가지가 있다.

   언어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재료이다. 이미지시의 언어다룸은 주요하게 아홉가지로 한다. 성질이 다른 언어조합이 첫째요, 두사물의 공간과 시간 줄이기가 둘째요, 두사물의 짝을 바꾸기가 셋째요, 추상어와 구상어 결합이 넷째요, 은유적언어사용이 다섯째요, 색갈올리기가 여섯째요, 공감각이 일곱째요, 감각의 물화가 여덟째요, 류의미와 종의미가 아홉째이다. 사유와 언어는 서로 침투하고 융합되여 변형을 이룩하면서 이미지시를 제작한다고 하겠다.


 



참고서


까마귀-리상각시집

별들의 울음소리-종합시집

중국조선족문학선집(시선집)

금잔디-김성휘시집

무지개는 뿌리내릴 곳을 찾는다-한춘시선집

하얀 메아리새-김파시집

두사람의 풍경-리삼월시집

달빛의 언어-김정호시집

청자기의 꿈-김동진시조집

고향마을 동구앞에서-조룡남시집

그리움 삼만리-김응준 미국기행시집

나, 진짜 바보이고싶다-김철시집

뻐꾸기는 철없이 운다-김철시집

백의 넋-남영전작품집

꽃의 의미-석화시집

20세기 마지막 밤-김학송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리임원시집

백두산은 독한 술이랍니다-최룡관시집

푸른 종소리-박화시집

중국고전문학작품선집-허룡구


              ++++++


시론-문덕수

오늘의 시작법-문덕수

현대시학-홍문표

시론-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김준오

현대시작법-오규원

시의 리해와 작법-김춘수

현대시를 이렇게 쓰자-박진환

한국현대시해석-홍윤기

한국현대시해설(상,하)-조남익

조선고전문학선집3-시조집

한국명시집-김희보편저

달과 자유-정지용시수필집

타는 호소-굴원시집

적-한춘섭시조집

사라지는것들을 위하여-문덕수시집


       +++++++


현대시리론-서양론문종합집

현대시구조-후고.프리드리히

알바트로스-보들레르등 언론종합집

문예비평의 원리-I.A.리처즈

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릴케

시를 읽는 젊은이들을 위하여-루이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훗살

문심조룡-류협


       ++++++


세계명시선-김희보편저

축제의 노래-로르까시집

이보다 더 쓸쓸할 때는 없다-G.벤시집

고요한 시-G.벤시집

지옥의 격언-블레이크시집

안개-샌드버그시집

삶-엘뤼아르시집

몽마르뜨르의 축제-j. 꼭도시집

지하철정거장에서-E.L파운드시집

이국여인에게 바치는 시-S.J페르스시집

태양-니시자키 준자부로시집

누가 사랑에 관해서 말하리-랭보시집

나는 한 개의 별입니다-헤세시집

고독-릴케시집

방랑자-니체시집

겨울에-클라클시집

밤의 찬가 -노발리스시집

깨여진 약속-하디시집

악의 꽃-보들레르시집

황무지-엘리어트시집

태양-니시자키 준자부로시집

비라보다리아래 세느강이 흐른다-아폴리네르시집

농부-무라노 시로오시집

나르시스는 말한다-발레리시집

디종의 영광-로렌스시집

유예된 시간-바흐만시집

시월의 노래-토마스시집

시간의 흐름-크롤로우시집

애니벌리-포우시집

목신의 오후-말라르메

당대구미시선-왕가신 등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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