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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력과 감수력
―리혜선의 《외로운 기다림》을 평함
/최삼룡
어찌 보면 아무리 격변기라고 하여도 생활은 별다른 변화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것 같다. 매일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매일 같은 시간과 공간에 같은 직장으로 통근하고 매일 숙달된 동작을 자꾸 반복하는 로동에 참가하니말이다. 그러나 생활은 그 밑바탕으로부터 변화하면서 앞으로 내달리는것이다. 격변기의 생활은 더구나 이러하다. 만약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사회의 진보는 운운할 나위가 없을것이다. 하기에 재간있는 작가라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생활에서 본질적인것을 투시하고 포착하고 그것을 복잡하고 다종다양하고 색채현란한 생활현장에 대한 민첩한 감각을 통하여 재현할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작가에게는 직업적으로 보통사람보다 더 민첩하고 풍부하고 독특한 감수력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H·A 텐은 《예술철학》에서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피력한바 있다.
《예술가는 사물앞에서 반드시 독특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사물의 같지 않은 자극에서 특수한 인상을 얻을수 있어야 한다. 즉 태여날 때부터 재간있는 사람의 감수력은 적어도 어느 한갈래에서는 민첩하고 세밀할것이다. 그의 청신하고 믿음직한 감각은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세세한 층차와 관계를 가려내고 포착하게 할것이며 하나의 소리에 서로 처량함과 웅장함을 가려내게 할것이며 하나의 몸가짐에서도 영준함과 쇠퇴함을 가려내게 할것이며 서로 보충되고 이어져있는 두가지 색체에서도 화려함과 소박함을 가려내게 할것이다. 그는 이러한 능력으로 사물의 내부에 심입할수 있으며 남보다 더 강한 민감성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데 개인에게 고유한 이 선명한 감각은 정지되여있는것이 아니라 전부의 기능에 미치여 그것들을 진동시킨다.》
녀류소설가 리혜선의 신작 《외로운 기다림》 (《천지》 1991년 5월호)을 읽고 제일 말하고싶은것이 바로 작가의 생활본질에 대한 투시력과 생활현장에 대한 감수력이다.
독자들에게 큰 흥미를 자아내기는커녕 도리여 답답하고 갑갑하고 따분한 느낌밖에 주지 못할것 같은 남의 나이를 벌써 스물이나 잡수신, 그러니깐 80이 된 시할머니의 생활에서 작자는 거대한 생활과 하나로 이어져있는 본질적인것을 투시해냈다.
시할머니는 워낙 며느리와 함께 살았는데 갑자기 며느리에게 노여운 일이 생겨서 손비의 집 즉 작품에서 《나》의 집에 옮기게 되였다.
손비 집에 옮겨온 뒤 세상을 뜨실 때까지 시할머니는 제나름대로 살았다. 시할머니는 손비와의 력사거리감을 회피하지도 않고 80평방 현대화 아빠트의 당신에 대한 외면에 대하여 숨기지도 않고 《나》가 당날치기로 신고 버린 긴 양말목을 풀기도 하며 돈도 좀 달라 시계도 차보고싶다 뭘 먹고싶다고 임신부보다 더 잔사설을 많이 하면서 살아간다. 표면적으로 보면 시할머니의 생활은 매우 따분하고 아무 변화도 없이 고리타분한것 같지만 곰곰히 음미해보면 퍽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쑈왕과 쑈장이 한때 연출한 《특집프로》와 자기의 며느리에 대한 태도의 미묘한 변화에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처음에는 쑈왕이 불쌍한 남자라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그래두 저렇게 아이까지 달린바에야 그런대로 살아야지.》하던 시할머니가 쑈왕의 죽음앞에서는 《저 젊은이두 죽자구 그랜걸 가지구 좋아하던 체네 하구 좋아해봤으문 한가지 원은 끄구 가겠구나.》고 완전히 의식이 다른 판단을 내린다. 또 《흥, 나이 오십을 먹구두 시집 비위나서 야단이야. 나원, 오래 사니깐 별꼴 다 본다.》면서 며느리에 대하여 《쌍년》이라고 하면서 쌍욕을 퍼붓던 시할머니가 당신의 림종을 앞두고는 《자네 시에미더러 그 사람하구 살라 하게.》라고 손비에게 부탁드린다. 시할머니의 이런 태도는 전후가 모순되며 리념상에서 서로 충돌되여 아울러 시할머니의 의식의 변화를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시할머니의 이 성격변화는 실로 미묘하지만 거대한 변화이며 령혼내부의 심리갈등을 심각하게 보여주는 변화이며 획시대적인 변화라고 볼수 있는것이다. 이와 같이 리혜선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적인 생활현장을 통하여 우리곁에서 부단히 변화되며 앞으로 흘러가는 생활의 본질을 심각히 제시하였다.
생활의 본질을 투시하고 반영한다고 하여 리혜선은 결코 인물을 우상화하거나 생활을 가식화하지 않고 우리들의 의식중에 여전히 뿌리 깊이 남아있는 보수적이고 고루하고 퇴영적인 일면을 은만하지 않음으로써 개혁과 보수, 개방과 페쇄, 진취와 퇴영이 대립되고 융합되고 교차된 현실생활을 진실하게 재현할수 있었다.
시할머니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상시와 돈과 시계를 잘 갖춰가지고 먼저 저승에 간 남편과 아들놈을 만날 생각에 여념이 없다. 그는 당신의 체면까지 잃어가면서 손비와 돈을 달라고 하고 시계를 차고싶다는 거짓말로 저승에 가서 아들을 줄 시계를 마련한다. 시할머니의 이러한 완고부화한 봉건의식은 아무래도 건전한 인간의 생명욕구를 압제하게 되는것이다. 시할머니와 그 며느리의 충돌도 우리는 이런 시각에서 리해해야 된다. 시할머니의 이런 낡은 의식은 바로 네가지 현대화에로 나래쳐갈 우리의 날개를 무겁게 하는 중요한 중하로 되고있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시할머니의 성격특징은 이 몇마디로 개괄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저승에 가서라도 생전에 시계를 차보지 못한 아들이 시계를 차보게 하겠다는 갈망은 그자체로서는 허황하고 미신적이고 봉건적이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 평생을 잘 살아보지 못한 한을 저승에 가서라도 풀어보겠다는 우리 인민들의 원초적인 생명욕구의 풋풋한 표현이라고 볼수 있으며 또 이렇게 완고부화한 시할머니가 림종전에 성격이 미묘하게 변화되는것은 격변기의 우리 생활은 정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나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어떤 당위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작자는 나중에 시할머니의 상시 등 유물이 담긴 낡은 트렁크를 박물관에 보존시키는것으로 격변기의 생활에 적응하고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우리는 의식가운데 모든 보수와 페쇄와 퇴영을 력사로 되게 해야 한다는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있다.
리혜선은 이 단편소설에서 생활의 본질에 대한 투시력을 과시했으며 또 생활의 현장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예민한 감각에 기초한 예술감수력을 과시하였다.
《고독한 기다림》에서 작자의 감수력은 주로 《나》 즉 시할머니의 손비의 관찰과 감각과 판단으로 표현되고있다.
이제 시할머니에 대한 묘사를 보자.
《하이얀 택시로부터 하이얀 치마저고리에 하이얀 코신과 하이얀 머리의 로인》, 《하이얀 틀이에 시선을 주며 곱게 물었다.》, 《비오는 날 베란다에 하얀 로인이 서있는 모습이란 사뭇 처량한 정경이다》, 《백지처럼 하얀 얼굴에 거문버섯 기미들이 차겁게 돋아있다》, 《할머니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주름살마다 피기를 잃고 씻은 나무뿌리처럼 하이얗다. 이마에서 물집같은 땀방울이 희부옇게 빛난다.》
이상 인용은 죄다 《나》의 눈에 비낀 시할머니의 모습이다. 아주 신선하며 진실하며 시할머니의 원래모습을 그대로 잘 보여주면서도 또 작가의 의식과 작품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있다. 특히 작가의 《흰색》에 대한 색채감각은 아주 독창적이며 핍진적인 예술경지에서 우리를 매혹시키고있다. 《흰색》은 여기서 《백의동포》의 상징으로도 되며 《말끔하다》는 의미도 나타내며 《아무것도 없다》, 《신기하다》는 거의 허무에 가까운 정서를 미묘하게 나타내면서 고독하게 내내 무엇을 기다리는 현대지성인의 심태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주고있다.
작자의 세밀한 관찰력과 예민한 감각은 전편 소설에서 《소도구》의 구실을 하는 시할머니의 낡은 트렁크에 대한 묘사에서도 훌륭히 고시되고있다. 이 트렁크의 외형에 대한 묘사, 이 트렁크에 담긴 물건, 그리고 이 트렁크에 대한 시할머니의 거의 단념을 못하고 떨어질수 없는 그 애착심에 대한 묘사 그리고 나중에는 박물관에 가서 되는 트렁크의 력사적인 운명에 대한 묘사를 전편소설에서 유기적인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세부묘사로 볼수 있다.
이외에도 군더더기 같아 보이는 생태환경에 대한 세부묘사도 그 독특한 형상성으로 우리의 눈길을 모으고있다. 《나》의 고귀한 베란다의 처마가 되여버린 7층집의 《세계지도》가 그려진 누런 이불과 그 주위를 공작새털같이 고운 나래를 투명하게 날리면서 날아예는 쉬파리, 그리고 《나》의 집 맞은편 강뚝의 낚시군의 회색태양모와 낡은 자전거에 대한 묘사는 작품의 문화적색채를 짙게 하여주면서 우리모두가 기다리는것이 구경 무엇인가를 재치있게 암시하여주고있다.
우리는 지금 시할머니의 가슴에 뿌리깊이 남아있는 보수, 페쇠, 퇴영을 밀어버리며 거대한 변화를 치르는 개혁과 개방의 위대한 견변기에 살고있으며 내내 무엇을 기다리는 기대감과 갈망을 안고 열심히들 살아가고있다.
격변기의 이 거대하고 미묘하고 복잡한 변화를 보아내고 우리의 날개를 무겁게 하는 락후하고 고루하고 고리타분한 낡은 의식을 예리하게 투시하고 그것을 생생한 생활현장에 대한 감각을 통하여 독창적인 예술형상을 창조해내는 작가는 행복할것이다.
자아감각이 언제나 좋고 안온하게 살며 글을 쓰기에 주위의 변화되는 생활을 모르고 그것을 예술감각으로 감수하지 못하고 내내 남을 반복하거나 자기를 반복하는 작가는 슬픈것이다.
물론 시할머니의 성격변화에 좀더 구체적인 계기가 안받침되고 좀더 풍부한 사회내용이 그려졌으면 좋았겠다는 욕심도 없지 않지만 총적으로 리혜선의 신작 《외로운 기다림》의 성공을 축하하는 바이다.
보다 행복한 인생을 갈망하고 보다 훌륭한 소설을 기다리는 필자른 결코 고독하지 않다. 이것은 리혜선의 신작 《외로운 기다림》을 읽고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199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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