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룡
http://www.zoglo.net/blog/cuisanlong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나의카테고리 : ¼나는야 인생 감독

민족의 수난과 개체의 기억 그리고 문체혁신의 몸부림
2011년 06월 28일 11시 05분  조회:839  추천:6  작성자: 최삼룡

민족의 수난과 개체의 기억 그리고 문체혁신의 몸부림

                               -강효근론

 


                             최삼룡

 


  들어가는 말

 


 강효근(康孝根, 1935~)은 조선족문단에서 일가를 이룬 저명한 소설가이다.

 그의 근 100편에 달하는 소설작품은 그 풍부한 생활내용과 선명한 지방특색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높은 령 깊은 골》,《바람은 가슴속에 멋는다》,《객귀》,《귀책》 등 단편소설과 《정신있소》,《좀벌레․부평초․<세기병>》, 《신음하는 음영》, 《둥지를 떠난 새》,《살아 숨쉬는 상흔》 등 중편소설 그리고 최근에 출판한 장편소설 《산 너머 강》은 사상내용 및 예술형식에서 모두 우리 문단의 수작으로 평할수 있다.

 1964년 단편소설《영각소리》를 발표하여서부터 근 반세기가 되는 작품활동으로 이룩한 강효근의 이러한 성과들은 거개가 조선족의 20세기 수난과 밀착되여있는  창조주체로서 강효근의 생생한 인생기억의 재생과  고향ㅡ길림시 조선족의 풋풋한 삶의 현장에 깊이 뿌리내린 선명한 지방특색으로 매력적이다.

 본 론고는 강효근의 근 반세기 되는 작품활동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고찰하고 그의 대표작들의 제재와 인물, 사상의식성향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조명하면서 강효근 소설의  문학사적 자리매김을 시도한다.      

 


 1. 민족의 수난과 강효근의 소설

 


 강효근의 소설작품의 제재는 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 민족공체의 20세기 비운과 끈끈하게 밀착되였다.

 조선족이라는 이 공동체가 형성되게 된 객관적인 원인은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라 지난 세기초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침략이다. 일제의 침략에 파산된 농민들이 생존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 조국을 등지고 만주땅에  이민으로 왔었으며 그들을 중심으로 점차 조선족사회가 형성되게 되였다.

 강효근의 가정도 역시 살길을 찾아 황해도 재령을 떠나 길림시 복흥리에 자리를 잡고 『황해하숙』을 꾸리며 살아왔다. 강효근자신은 비록 길림에서 태여났지만 여렸을 때부터 고향을 떠나 조국을 등지고 길림으로 온 이민들의 피눈물의 현장을 보면서 자랐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하였던것이다.

 수난의 시작은 바로 고향을 떠나 조국을 등졌다는데로부터 시작되고 이민을 왔으나 궁핍한 생활과 민족의 수난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강효근의 소설에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반복적으로 나오는것은 당연한것이며 이민 온 다음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궁핍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반복적으로 나오는것은 당연한것이다.  

 단편소설《동틀무렵》에서 녀주인공 순임의 부친은 바로 조선에서 3․1독립만세를 불렀고 체포되여 옥살이를 하고 석방된후 발붙일 자리가 없어 남부녀대하여 압록강을 건너 서란현에서 100여리 떨어진 태평툰이라는 마을에 와서 자리를 잡았으나 옥중고생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고 어머니와 둘이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단편소설《객귀》의 주인공 명흥만의 고향은  울진에서 얼마 멀지 않는 죽변이라는 고장이었다. 거기에는 금란이라고 부르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인면수심의 계부의 수작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난데없이 들이닥친 일본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그 장본인이 바로 계부의 짓인것을 알게 된 명흥만이는 한주먹으로 금란이 계부를 때려눕히고 찾아온곳이 바로 송화강이 S형으로 감돌아흐르는 길림시였다.

 그러나 일제의 눈을 피해 여기 길림으로 찾아온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바꿀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수 있었겠는가. 결국 송화강 나루터의 고독하고 쓸쓸한 배사공일밖에 더 차려진것이 없다.

 이 나루터에서 배사공으로  있으면서 그가 하는 일이란 결국 객지에서  비명으로 사망하여  무주고혼이 된 객귀를 안장하는 일뿐이였다. 그중 한 객귀는 송화강 풍만수력발전소 현장에서 떠내려온 익사체다. 송화강에 처넣어진 로쇠해졌거나 앓아서 로동력을 상실당한 인부였다. 또 한 객귀는 겨릅댕기처럼 강말랐다 해서『써우즈(瘦子ㅡ말라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비렁뱅이다.  또 다른 객귀는 일본놈에게 끌려와 일본군의 위안부로 있으면서 온갖 인생고를 다 겪고  매독에 걸려 이제 고향에 돌아갈 타산이였던 위안부, 명홍만이가 자기의 첫사랑 금란이로 착각한 녀자였다. 나중에 객귀를 매장하던 그도 객귀로 되고만다.    

 중편소설《세월은 흘러》의 주인공이면서 화자인 《나》가 어머니와 함께 만주에 이민 온것은 세대주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내 떠돌이로 사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진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이것 또한 일제식민지치하에서 농업의 파산과 농민의 궁핍이라는 명제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수 있는것이다. 그들이 만주에 와서 겪는 삶의 궁핍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삼촌이 사는 곳이라고 신의주를 지나 할빈에 닿고 다시 오상현을 거쳐 서란현 어느 산골 황가툰으로 찾아왔지만 먹는것은 끼니마다 머얼건 강냉이 죽이였다. 

 장편소설《산 너머 강》에서 일준이와 순자의 비참한 운명의 시작도 바로 고향을 떠나고 조국을 등진데로부터 시작되고있다. 순자는 바로 왜놈들이 전문 처녀애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말로는 만주의 어느 병기공장에 보낸다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만주의 일본군의 위안부노릇을 한다는 소식에 아버지와 더불어 여기 만주로 건너왔던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힘껐 일하고 배 부르게 먹고 발편 잠을 잘데가 없었던것이다. 그들 부녀 둘은 북으로 북으로 자리를 옮기다가 닿은 곳이 바로 치타이허라고 부르는 탄광이였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겨우 일자리를 찾았으나 얼마 안되여 탄광이 무너져 비명에 죽음을 당하고 순자는 고아로 된다.

 조선족의 초기 이민시기와는 한세기도 저 떠러진 21세기의 어느 조선족로인의 쓸쓸한 만년을 재현한 소설《일그러진 석양》에서도 강효근은 모름지기 주인공의 고향이 황해도 재령이였다는것을 밝히고있다.

 1945년 8 ․ 15 해방전의 생활을 조선족의 이민생활의 첫 단계라고 한다면 1945년으로부터 1949년 10 ․ 1 건국까지 를 조선족이민들의 두번째 단계라고 할수 있다.

 이 시기의 길림 조선인들의 생활에 대한 반영은 강효근의 소설작품의 주체를 이루고있다.

 사실상에서 이 시기는 길림의 조선족들뿐만아니라 2백만으로 헤아리던 재만 조선인들의 생활이 말그대로 십자로에 처한 시기였다. 게다가 길림은 지정학적으로 북만과 동만과 남만을 련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군사상의 요새지대였다. 하기에 해방공간에서 길림의 여러 력량, 여러 당파, 여러 계층의 투쟁은 다른 지구에 비하여 더 치렬하고 다 첨예하고 더 복잡할수밖에 없었다. 국민당과 그 아래의 직계부대와 토비 등 군사력량과 , 공산당과 그 아래의 동북민주련군(후에 제4야전군) 등 군사력량의 생사투쟁외에 여러가지 주의와 구호를 내건 여러 조직과 종파들의 리익을 대표하는 조선인해방동맹회, 한국교민회 등  정치조직들 사이의 투쟁과 공산당의 로선정책을 집행하는 와중에 생긴 좌적인 편향의 영향을 받으면서 길림시의 조선인들은 해방공간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격으로 새로운 수난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것이다.

 첫째, 쏘련군의 만행.  해방공간에서 첫 가해자는 쏘련군이다. 이런 이야기는 강효근의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것이 일본이 무조건투항을 선포한 다음 일본인에 대한 쏘련군의 비인도적인 만행에 대한 고발이다.  

 


 8․15광복을 맞아 좋은 세월이 도래하리라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국은 점점 란국란시로 변해갔다. ……

 따발총을 멘 이상한 말을 하는 군인들이 순이내 하숙집으로 돌입했고 그 즉시 칸칸이 문을 열고 눈이 벌개 살피였다.

 《야뽄스끼 마담 니예뚜?(일본녀인 없는가?)》

 《여긴 하숙집이외다. 일본녀인이 있을리 만무하지요.》

 순애 어머니는 딱 잡아떼였다.

 그때였다. 고방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군인의 한놈이 와락 고방으로 다려갔고 고방문을 활 열어젖힌다. 고방벽쪽에 딱 붙어선 한 사람이 전신을 덜덜 떨고있었다.

《야뽄스키마담, 호로쇼!(일본녀인 참 좋군)》

 아끼꼬(秋子)는 남자로 가장하느라 장발머리를 박박 깎고 광목천으로 젖무덤을 칭칭 감았다. 군인들의 수색을 피해 뒤고방에 숨어있었다. 이 모든것은 순애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진행되였다. 가석하게도 수포로 돌아갔다.

 《오바상,다스게데!(아줌마 구해주세요.)》

 아끼꼬의 음성은 절절했다. 솟용이 없었다. 군인들은 그녀를 끌어내여 빈칸으로 끌고 들어갔고 륜간을 진행했다.  한놈이 그짓을 하면 다른 놈들은 따발총을 들고 보초를 섰다.

 


 이것은 소설 《귀책》에서 아끼꼬가 당하는 이야기고 장편소설《산너머 강》에 하루꼬(春子)가 당하는 이야기가  씌여져있다. 다르다면 륜간을 당하는 녀자가  일본녀자가 아니라 남편이 남편이 어디 가고 혼자 사는 녀자이다.

쏘련군이 사라지자  토비 등 지방의 악세력이 만행한다.

장편소설《산너머 강》에서  일제놈의 강제병으로 끌려 갔다가 8․15해방과 함께 태평촌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하일준의 입은 옷과 신발까지 빼앗아내는놈들이 바로 토비들이다.

장편소설《산너머 강》에서 고향을 찾아 조국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에 나선 태평촌의 하일준, 오순자, 옥치복, 박인덕, 마상훈 등의 꿈을 여지없이 짓부신놈들이 바로 〈사팔뜨기〉를 대장으로 하는 토비무리였다. 

하루 아침에 이 몇 가정의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세기적인 꿈이 깨여졌을뿐만 아니라  전 재산이 모조리 략탈당하고  심지어는 치복의 부친과 상훈의 아들은 참살을 당하고 오순자는 토비들에게 붙잡혀가게 된다. 이로부터 상훈이는 공포증으로 인한 정신이상이 오고 옥치복의 가치관에는 심각하고 미묘한 변화가 생기고  오순자의 인생은 더 비참하고 복잡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강효근의 어머니가 길림시 복흥리에서 꾸리던 《황해하숙》이 철저한 훼멸을 당한다. 강효근의 여러 편의 소설에서 이 《황해하숙》의 이야기는 반복된다.

중편소설《강 건너 꽃구경》에서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묘술되였다.

 


도끼 날창, 식칼을 치켜든 어중이 떠중이들이 우리 집으로 밀려들어 소유의 가장집물을 ,어머니가 장장세월을 두고 한감두감씩 장만해놓았던 란국란시가 녀려되여 천반우 연복가지밑에 숨겨두었던 우리 4형제의 례장감까지 몽땅 털어갔다. 학도병으로 끌려간 큰형이 즉었는지 살았는지 감감무소식이였다.……어머니는 세상을 뜨고말았다.

 


단편소설 《귀책》에서는 이렇게 씌여졌다.

 


 쏘련군이 사라지자 그를 대신한것은 국민당이였다.

 화액(禍厄)은 불시에 들이 닥쳤다. 어중이 떠중이들이 칼, 날창, 되를 들고 순애네 하숙집으로 쳐들어왔다.《왜 이러지요?》

 순애 아버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연을 물었다.

《위만때 네놈들 2등국민으로 우쭐했지? 꼬우리빵즈(조선놈새끼) 꾼단!(썩 물러가라.)》

 막무가내녔다. 순애 아버지를  옆으로 밀어제친 놈들은 닥치는대로 부수고 까뭉개였다. 유리창은 산산이 박산나고 문짝은 볼모양이 없이 각이 물러났다. 전부 그런것은 아니였다 쓸모있는 가장집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몽땅 털어갔다.

 


이 사건후 순애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세상을 뜨고 홀로 남은 순애는 살길을 찾아 태평촌으로 이사간다.

 


장편소설 《산너머 강》 제9절 〈해는 서산에 저물고〉에는 이 사건이 이렇게 묘사된다.

 


 그때 출입문이 탕! 소리를 내며 열리였다. 이게 웬 일일가? 도끼와 식칼과 날창을 든 어중이떠중이들이 폭풍처럼 몰려들었다. 닥치는대로 마스고 부시였다. 유리창이 챙그랑  깨지고 미닫이문이 와당탕 부서져 나갔다.

 -왜들 이러우?

 재령댁이 급히 그들을 막아선다.

 -꼬우리빵즈같은게 몰라 물어?

 그중의 한 놈이 사팔눈을 지릅떠 보인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시우?

 -빠루디 재웠지, 밥 해먹였지?

 사팔눈의 눈동자가 중간으로 모여들며  갈범처럼 으르렁거린다. 귀향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행패를 가하고 순자를 랍치해갔던 <사팔뜨기>였다.

 -빠루라니? 조선에서 살지 못해 만주로 온 나그네들을 재웠을뿐인데 그것도 잘못인가?

 이번엔 재령댁 바깥량반이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꼬리방즈 2등 국민같은게 흥. 왜놈들께 붙어 그만큼 호의호식했으면 됐다. 이젠 우리 말등국민도 호강해보자. 저리 비켜!

 <사팔뜨기>가 불호령을 지르면서 바깥량반을 냅다 찬다. 그바람에 구심을 잃은 강범수는 저만치로 밀려나가 쓰러진다.

 략탈이 시작되였다. 유용한 가장집물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놈들은 수년을 두고 한푼 두푼 모아 정성껏 장만하여 천정에 감추어두었던 아들의 혼수감까지 모조리 들추어내였다.

 -날 죽여라, 이 날강도들아!

 악밖에 남지 않은 재령댁은  바락바락 대여들었다.  녀인의 반항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든 재물을 략탈해갖고 뿔뿔이 돌아갔다.

 -이모 정신 차려요.

 말선이가 이모를 끌어안아 일구었다. 재령댁의 머리는 헝크러져 흩어진 쑥대밭처럼 되였고 볼과 이마에는 상처가 여러 곳이였다. 그녀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 엉망이 된 집안을 멍청히 바라본다. 완연히 넋잃은 사람이였다. 그러다가 돌연 가슴이 터지는 소리를 내였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다고... 아, 아-
재령댁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방성대곡을 풀어헤친다. 슬퍼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가슴이 아파 울었다.

 


 이 계렬의 소설에서 제일  돋보이는것이 중편소설 《동틀무렵》이다.

 갖 해방된 길림부근의 상촌이라 부르는 마을에 서로 사랑하는 운봉이라는 남자와  순임이라는 녀자가 있었는데 울라깨의 조선인 치고는 제일 큰 부자이며  지방자위대 대장인 황금산의 아들 치복이가 순임이를 욕심내지만 순임의 결사적인 거절로 야욕을 채우지 못한다.

 순임은 그야말로 가난의 꾸레미를 송두리째 끌어안고 알탕갈탕하면서 인생길을 걸어온 불상한 녀자다.  그의 부친은 3․1독림 만세를  불렀고 체포되여 갖은 곡경을 겪었다. 석방되였어도 고향땅에 발 붙일 형편이 없어 남부녀대하여 압록강을 건넜다. 후에 아버지는 옥중고생이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고 어머니 슬하에서 온갖 고생을 겪으며 학교문앞에도 못 가보면서 일에 쪼들려 살아왔다.

 그런데 운봉이가 서란현성에서 100리 떨어진 태평촌에 고모부의 상사(喪事)에 갔다오니  자위대의 략탈중에  아버지는 죽었고 순임이는 치복의 겁탈을 당하였다. 분노에 떨며 강팡질팡하던 운봉은 의용군을 찾아간다. 의용군에 들어간 그는 길림해방전투의 준비로 상툰에 먼저 파견되여 국민당의 곁다리드를 없앨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성한다. 연후에  순임이를 찾았으나 길림해방전투에서 순임을 만날줄이야! 순임이도 의용군에 참가하였던것이다.

 부상당한 운봉이는 순임이를 만난 흥분과 자책과 자기의 정찰에서 불찰로 부대가 받는 손상에 대한 안타까움 등 복잡한 심태로 수류탄묶음을 들도 적의 보루를 짓부시고 장려한 최후를 마친다.

 어찌 보면 장편소설《산 너머 강》의 추형이라고 접근할수 있는 이 소설에는 해방전 길림지구 초기이민들의 수난과 해방공간에서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같은 운명을 고도로 압축시켰다고 할수 있다.

 국민당이 패망한 다음에 진정한 해방의 은인 공산당이 왔다. 우선,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 밭을 가는자에게 땅을 준다는 세기적숙망을 이룩하는 력사의 새 아침이 여기 조선인들에게도 찾아오는 순간이다. 지주를 타도하고 땅을 분배하는 위대한 토지개혁이 시작되였다.

 그러나 조선인들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강효근은 명석한 두뇌를 보지(保持)하면서 력사를 깊이 있게 투시하고 력사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치면서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수많은 수난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려주고있다.

 장편소설《산너머 강》에서 작자는 제 10장 《다사했던 그해 봄》으로부터 제18장 《신음하는 광야》까지 전편소설의 아주 많은 편폭을  할애하여 태평촌의 토지개혁운동과  토지개혁중에서 겪은 민족의 수난에 대하여 쓰고있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것은 박인덕과 김응삼과 오순자의 죽음이다. 

 박인덕은 표준적인 농민이다. 풋풋한 인생체험으로부터 소가 농민에게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깊이 터득한 그는 모든 밑천을 다 털어넣어 집에 소 한마리를 매여놓았다. 그런데  태평촌 농회의 좌적인 결재에 의하여 이 소를 빼앗기게 되며 이에 억울함과 분을 참을수 없는 박인덕은 밤중에 우사에 들어가 칼로 소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응삼은 비교적 복잡한 인생경력을 겪은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동만에서 항일투쟁에 참가하고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이른바 반민생단투쟁중에서  잔혹한 투쟁을 받다가 최후에 해방을 받고 당의 지시에 따라 길림에 와서 위장자수를 한  당의 비밀공작자이다. 후에 조직과의 련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그는 길림시에서 리어꺼를 끄는것으로 호구하면서 8․15해방전까지 생계를 유지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자 인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였다고 기뻐하였으나 결국 당년에 자기를 길림에 파견한 상급조직의 책임자 최사령원을 찾지 못하여 안달아하는판에 토지개혁중에서 변절자라는 죄명으로  총살을 당한다. 

 오순자의 죽음은 더구나 복잡하다고 할수 있다.

 그날 귀향길에 올랐다가 《사팔뜨기》에게 붙잡혀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쳐나온 순자는 장덕칠에 의하여 기생집 명월관에 팔려가게 되고 옥치복에 의하여 명월관을 벗어났으나 다른 살길이 없어서 막걸리선술집을 꾸려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여 순자는 태평촌사람들에게 갈보, 매춘녀, 화냥년으로 몰리다가 토지개혁때에는 투쟁대상이 되는것이다. 하기는 순자의 직접 죽음은 치렬한 계급투쟁 즉 환향단 지주 황금산과 토지개혁공작대로 파견되여온 해방군과의 생사박투가 초래한것이지만 토지개혁중에서 집행된 좌적인 조치와 혁명열정이 넘치는 농민들의  망동에 그 근본 리유가 있는것이다.

 여기서 꼮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순자의 사랑하는 남자, 소설의 주인공 하일수의 순자에 대한 편견이다. 그는 순자가 기생으로 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짜고짜로 태도가  변해버리는바 순자가 월명관과 맺은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찢어버린다.

 다른 하나는 토지개혁이 시작된후 지주 황금산의 아들 황경춘이 딴 심보를 가지고 순자네 선술집에 몇번 다녀간데 대하여 크게 문장을 지은것이다. 태평촌 부녀회주임으로 활약하는 말순이는 원래부터 순자를 갈보, 매춘녀, 화냥년이라고 생각하던차에 토지개혁이 시작되니 순자를 투쟁대상으로 점 찍어놓고 순자가 황금산과 내통한다는 요언까지 날조한다. 알수 있는바 니 소설에서 순자의 죽음은 역시 깊은 의미가 있는것이다.

 토지개혁중에서 장덕칠의 처 옥심이는 황경춘의 첩으로 되여 임신한 죄로 투쟁을 맞아 죽으며 순박한 농민 마상원과 남편을 읽은 박덕칠의 안해 백영도는  정신착란이 오며 길림의 이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수많이 한 황해하숙 재령댁도  정신병이 발작된다. 이 모든것은  토지개혁때 받은 민족의 수난으로 읽을수 있다.

 토지개혁도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도 건립되고 조선족은 정치상에서 중화의 56개 민족의 하나로 여기에 정착되였다. 나라의 떳떳한 주인으로 되였고 살림도 점차 궁핍에서 해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였으며 자기의 발전과 진보의 길에서 조선족은 중화의 56개 민족중 선진민족의 위상을 부상하여왔다.  

 그러나 민족의 수난의 력사가 끝난것은 아니다. 특히 1950년 6 ․ 25전쟁의 폭발, 건국하여 1년도 안 되여 터진 조선전쟁은 또 조선족의 생활에 예상하지 못했던 수난을 가져다주었다. 강효근의 소설에 전쟁과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묘술이 많은것은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단편소설《귀책》의 주인공 순애는 결혼 3개월만에 남편 박기순이 자원하여 지원군에 입대하여 조선에 나갔는데 전쟁 3년간 편지 한통 없고 정전되였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순애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아들을 키우면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는다. 박기순은 3․8선 부근의 전투에서 타박상을 입고 포로로 되고 팔을 절단하고 한국에 남게 되였던것이다.

 장편소설《산 너머 강》에서 주인공 하일준이와 리호원 옥치복 , 최만수 등은 갑자기 상급의 비밀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나가 인민군에 편입되고  전쟁중에서 최만수는 희생되고 하일준이와  리호원과 옥치복은 포로로 되였다가 정전후 제가끔 갈라진다. 외다리가 된 리호원은 북에 남고 옥치복은 고향을 찾아 남에 남고 하일준은 태평촌으로 돌아온다.

 중편소설《바람은 가슴속에 멎는다》의 주인공 승증렬은 지원군에 입대하여 조선에 나가 싸웠는데 천마산 무명고지 전투중에서 련장의 명령을 받고 물 구하러 산아래 내천으로 내려갔다가 부상을 당하고 포로로 되였다.

 중편소설《살아 숨쉬는 상흔》에 화자 《나》의 친정아버지도 지원군으로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는데  바로 철원일대 무명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전투에서 복부관통상을 받았다. 총탄에 의해 끊어지고 뒤틀어진 창자를 끊어내고 바로 잡고난 결과는 창자가 짧아져 항문과 도저히 련결이 안되였다. 방법이 없는 방법으로 왼쪽옆구리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다 창자의 한끝을 이어놓고 그 주변을 비닐봉지로 감싸놓았다. 대변을 받는 곳이였다. 이렇듯 처절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 아버지는 죽지못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 소설의 다른 주인공 민대식의 운명도 역시 화자의 아버지와 별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그는 하일준이나 승정렬이와 다른 리념과 체제에서 산다는것이다. 철원 무명고지에서 지원군과의 싸움에서  다리를 부상당하고 절단수술을 한 그가 고향에 찾아갔을 때 부모는 폭격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소속부대가 무명고지의 전투에서 전멸되였기에 그의 신원을 증명할 사람이 없고 또한 그가 부산당한 다리를 수술한데는 군병원이 아니고 어느 로인네 집에서였다. 하기에 지금까지 유공자대우도 못받는 처지다.

 민대식이 남북정상회담같은것은 정객들의 놀음이고 백성은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라는 생각이나 화자의 자기 아버지를 피해자라고 한다면 자기는 피해자의 피해자라는 생각은 도리가 있는 생각들이라고 할수 있겠다.

 전쟁은 승리의 개선가를 울리기도 하고 전투영웅을 낳는 마당인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류혈의 마당인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비명의 사망과 수많은 몸과 마음의 잔폐자를 만들어내는 전쟁에 총칼을 들고 직접 참가한 군인들이 겪는 고생에 대하여서는 더 말할것도 없지만 전쟁은 마찬가지로 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을 주고 또 전쟁은 끝나도 그 후유증은 오래가거나 옥은 영원히 가셔낼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게 되며 한 가정의 고통과 한 민족의 수난과 직결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포로 승정렬의 전후의 생활을 재현한  중편소설 《바람은 가슴속에 멎는다》와 군인가속 순애의 전쟁시기와 전쟁후의  생활을 재현한  단편소설 《귀책》은 우리 소설사에서 뚜렷한 한획을 그은  성과작으로 꼽을수  있다.

 승정렬은 전쟁포로였다.

 장편소설 《산 너머 강》의 주인공 하일준이도 역시 전쟁포로였는데 그가 돌아온 태평촌에의 생활을 작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버스를 타고 도보로 걷고 한나절이 걸려서야 드디여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산과 들 그리고 수목들은 그닥 변함이 없고 당장이라도 찌그러질듯한 오두막도 올망졸망 그대로였다. 변했다면 마을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를 외면하면서 백안시했다.

"포로병으로 거제도인지 어딘지에 갇혀있었다며?"

"군공을 세울대신 그게 뭐야."

"토지개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이더니만  업보를 받은게지."

이러루한 말들이 그의 귀를 쑤시였다. 사람들의 공론이 처음에는 몹시 거슬렸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사선에서 헤면서도 태평촌이 그리워 불원만리 찾아왔거늘 왜들 이러지? 그러나 반감은 잠순간에 불과했다. 듣고 듣다가 곰곰 따져보면 그네들의 역설이 누구를 비하해 그런것은 아니였다. 실제 사실이 그렇고 그런걸 누굴 원망할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터에서 귀환한 병사들에게 모두 적절한  일터를 마련해 주었건만 유독 일준에게만은 두고 봅시다, 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현실은 무정했다. 포로병이라는 꼬리표는 멸시와 기시의 대명사였다. 오로지 포로병이였다는 그것으로 머리를 들수없었던  일준에게 그 모든것은 무자비한 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장편소설 《산 너머 강》보다 10여년전에 발표한 중편소설 《바람은 가슴속에 멎는다》의 주인공 승정렬의 형상은 바로 전쟁후 하일준의 형상이다.

봉합된 아래턱이 들쭉날쭉한데 턱 전체가 왼쪽으로 삐뚤어진 흉상을 한 승정렬은 전쟁포로의 꼬리표를 달고 고향 빠후툰으로 돌아왔는데 ������온 동네가 백안시(白眼視)했다. 어마지두 악연히 놀라며 뒤걸음을 쳤다. 담장우에 도사리고앉은 구렝이를 만난것처럼, 물고에서 꿈질거리는 거마리를 본것처럼. 처녀들만 기겁한게 아니다. 동년배들도 그와 사귀기를 꺼려했다.������ 뒤간을 피해 에돌아가듯 그를 외면했다. 게다가 쇠파리같은 배두천의 작간에 의하여 그는 더구나 비인간적인 괄세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찾아가서 한번 자기의 신세를 하소연할데도 없고 가슴에 가득 찬 고뇌를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것이 바로 포로의 가련한 처지다. 마을에서 그의 생활을 보살피는 사람은 부농가정출신의 점례 하나뿐이고 한번은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점례를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체 할 때 구해준것도 죄가 되여 온갖 비방과 욕설을 먹으며 나중에는 살인죄까지 들쓰고 20년 도형을 받게 된다.

《귀책》의 주인공 순애는 결혼 3개월만에 남편을 항미원조 전선에 내보내고  시아버를 모시고 어린 아들을 키우면서 몹시 어려운 나날을 보낸다.  거기다가  금강촌부녀회주임이라는 직무까지 맡고보니 ������문제를 보고 판단하는 각도는 모두 로고대중의  리익을 앞세워야 했고 정부의 호소라면 무조건 찬성하여 일변도(一邊倒)해야 했다.������ 하기에 순애가  받는 정신압력은 누구보다 더했던것이다. 그런데 남편 박동규는 전쟁 3년 기간 내내 편지 한장도 없고 정전이 되였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소식 한마디도 없다.  그러다가 금강촌 농업합작사 주임 겸 당지부서기인 허상권과 정사를 치르게 되고 임신까지  하였으나 허상권은 자기의 리익에 따라 처사하며 순애에 대하여 책임지기는커녕 순애가 동네 벙어리와 관계하여  임신을 하였다는 요언을 날조하고 시아버지는 ������넌 원래 그런 년이였냐? 화냥년!������,������패가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최후통첩을  내린다. 아들이 있고 시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쫓겨난 순애는 갈팡지팡하다가 무작정  걸어서 왕바거우 입구에 들어서 쓰러졌는데 거기서 『산동빵즈』 왕취예즈의 구원을 받아 생명을 유지했을뿐만 아니라 해산도 하고 나중에  왕취예즈의 고향, 산동에 가서 몇십년을 살았다. 보기 싫어도 떨어질수 없었던, 정이 없어도 함께 살아야 했던 운명이였던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끈이 나는것이 아니였다. 순애가 시아버지에게 두고온 아들도 자라고 그의 곁에서 자란 딸도 자라 대학에 갔는데 둘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여버렸는데 해서는 안되는 그들의 결혼을 말려내는 방법이 없게 된것이다.

 이렇게 전쟁이 낳는 고통은 전쟁판에만 있는것이 아니고 전쟁기간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군인가속으로서 순애는 이루 다 말할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며 한평생을 그 후유증에서 허덕여야 하였던것이다. 

 민대식의 남에서 생활은 다리가 없이 북에 남은 리호원대대장 혹은 포로로 되였다가 요행 살아넘아 북을 거쳐 길림 태평촌으로 돌아온  일준이와 공동점이 없지 않다. 바로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라는점에서 같다. 의식형태와 제도 혹은 리념과 체제와  관계없이 그러하다.

 정당정치의 후과는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문화의 양상. 작가의 기본 사상 혹은 작품의 핵심주제는 이러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작품을 모두어 개괄해보면 이에 대한 강효근의 생각은 하루 이틀간 생성된것이 아니다.

 


 2. 정신없는 남자들과 바람난 녀자들


 정체상에서 강효근의 소설은  20세기 조선족의 생활과 끈끈하게 밀착되여있으며  20세기 력사의 매 단계에 겪은 조선족의 생활을 진실하게 재현하고있는바 어느 한 시간단의 생활도 홀시되지 않고있다. 이리하여 강효근의 근 100편의 소설에서 창조된 인물형상들은 한 계렬을 이루고있는것이 특징적이다.

 앞절에서 우리는 이민초기로부터 8․15해방까지, 그리고 해방공간으로부터 조선전쟁의 승리까지 조선족의 생활이 강효근의 소설에서 어떻게 반영되였는가는 고찰하였다.

 그후 1957년년부터 좌적인 로선과 방침이 실시되다가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수정주의라는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은채 국제상에서 반수정주의운동을 전개하고 국내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계급투쟁을 전개하다가 드디여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대혁명이라는 명의의 문화에 대한 대토벌이 진행되였으며 중국인민에게는 정치, 경제, 문화 제 분야에서 전면적인 대재난이 들씌워졌다.

 중편소설《몹시 추웠던 겨울》에서 공진태와 수련이의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와 중편소설 《둥지를 떠난 새》에서 소연이와 태섭이의 사랑의 곡절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며 역시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다음 력사의 수레바퀴는 돌고돌아서 문화대혁명이 결속되고 새로운 력사시기가 시작되였으며 점차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체제가 정립되기 시작하였으며 경제의 급속도의 증장과 더불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 문제가 해결되였다. 그러나  조선족사회에도 예견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생성되였다. 시장경제의 물결속에서 농촌잉여로동력의 도시진출, 한국진출 등 인구의 대이동과 아울러 조선족의 인구가 부증장하고 조선족자연촌이 급속도로 해산하게 되였으며 조선족문화가 안으로부터 무너진다는 절규가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이런 와중에 조선족들속에서도 숫한 정신없는 남자들과 바람난 녀자들이 나타났다. 

 강효근은 작품활동중에서 줄곧 이 문제에 대하여 촉각을 세웠는바 그의 전부의 소설중에서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들의 이야기외에 가장 인기를 모으는 이야기가 바로 전신없는 남자들과 바람난 녀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중편소설《정신있소》는 이 부류의 소설로 가장 먼저 창출된 작품으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

 이 소설의 벼슬에 미친 주인공 왕월금은 자기의 몸을 팔면서 어깨가 칼에 찍히우면서도 은행의 거금을 지켜냈다는 가짜 ������영웅업적������을 조작하여 승급의 계단을 만드는데 성공하여 출남과 과장으로 되였고 이제 한급 더 높은 주임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비루한 수단으로������천원사건������을 조작하여 온갖 방법을 다해 무고한 수복이를  해친다. 그 결과 주인공 수복이는 첫사랑마저 빼앗기는 등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다. 소설의 결미에서  결국 왕월금의 음모는 들통나고 수복이는 루명을 벗으며 우연하게 한 아름다운 처녀의 순수한 사랑도 얻게 된다는 이 소설의 핵심은 정신없는 녀자 왕월금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제목이 《정신있소》로 되였을뿐더러 소설에 주인공들의 대화중에 ������너 정신있니?������혹은 ������당신 정신있소?������,������정신 나간 말씀������,������정신있는 말이요?������,������아니? 정신 있어요?������,������동부, 정신있소?������등  말이 몇번이고 반복되는데 이 한마디 말은 바로 이 작품의 주제어라고 할수 있다.

 《정신있소》라는 이 제목의 뜻을 제대로 나타내자면 ������정신있소?������일것이고 이것은 또������정신없다������를 강조하는 반문일것이다. ������정신없다������란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의 단어조합이다.

 사실 정식으로  통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강효근의 소설에서 ������정신있소?������ 이 말은 이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에서도 아주 많이 쓰이고 있다. 이것은 강효근의 소설에 정신이 나간 사람 내지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하나의 표지로 된다.

 중편소설《 좀벌레, 부평초,〈세기병〉》,《유혹의 한계》,《신음하는 음영》,《둥지를 떠난 새》 등 작품이 묘술하는 이야기는 모두 정신없는 남자들 혹은 녀자들  바람난 녀자들 혹은 남자들의 이야기로 개괄할수 있다.

 여기서 《좀벌레, 부평초,〈세기병〉》을 먼저 보자.

 에기 정신없는 사람은  은행판사처의  신용대부과 과장 김철식이다. 그는 행장, 부친 김익선의 등살에 기대여 모름지기 자기의 리익을 챙기느라 아무짓이나 다 한다. 그는 동방무역공사에 거액의 대부금을 받을  여건이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대부금을 주고 그 돈으로 자동차 매매를 하여 수만원의 리익을  챙기고 원칙을 견지하면서  상황을 상급에 진실하게 반영하는 두남에게 모진 타격을 가한다. 동방무역회사의 경리가 목매여 자살하는 등 사태가 이미 다 기울어졌는데도 그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단말마적으로 날띤다. 정말 제 정신이 나간 남자이다.

 이 소설에 정신 나간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그가 바로 은행판사처 출납과에서 일하는 옥란이라는 녀자다. 학교를 졸업한지 2년밖에 안되는 그녀는 은행이라는 좋은 강위를 리용하여 생활을 향수하기에 급급하며 채색텔레비를 갖추고 라사외투를 입을 환상에 잠기며 결국 원칙성이 강한 약혼남 두남이를 무맥한 남자, 전도가 없는 남자라고 판단하며 은행의 행장의 아들, 신용대부과 과장, 김철식에게로 마음을 옮겨 출납과로부터 신용대부과로 전근하는 야망은 실현하지만 결국 결혼의 가망성도 없이 그에게 정조를 빼앗기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두남이를 버리고 제 정신이 아닌 철식이를 찾아간 옥란이 역시 정신이 나간 녀자, 불행한 녀자이다.

 중편소설《둥지를 떠난 새》의  은행의 신용대부과 과장 오종필이 역시 정신없는 남자로서 손색없는 사람이다. 그는 시장부 비서장 아들이며 검찰원에서 꾸리는 《거룡실업유한회사》 총경리와 짜고들어 은행의 돈을 움직여 돈벌이를 하며 허희복이라는 처녀에게 직업을 소개한다면서 임신시키고 심지어는 안해와 딱친구, 안해와 같은 집체호출신의 마학실이라는 녀자에게  대부를 해주고 통간을 한다. 그외에도 남의 자금을 잘라쓰고 그것이 들통나자 깡패들을 고용하여 자금임자를 부시는 등 권력도 있고 류망이기도 하고 색에 빠지기도 한 오독이 겸비한 정신이 나간 남자이다.

 이 중편소설에 마학실이라는 녀자는 강효근 소설에의 바람난 녀인들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 이 녀자는 잘살아보기 위해 같은  집체호출신의 소향의 남편, 은행의 신용대부과 과장 오종필에게로 접근하여 대부금을 해결하여 소매점을 꾸리고 돈을 벌어서 기쁜  나머지 그 감사로  사슴의 그것을 공개적으로 소향을 통하여 종필에게 선물하며 복잡한 인생의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소향에게 오종필과 헤어지라고 하던 그녀는 나중에는 오종필, 친구의 남편과 통간도 서슴지 않는다. 역시 바람난 녀자. 제 정신이 아닌 녀자다. 

 중편소설 《신음하는 음영》에서 지섭이라고 부르는 그 남자, 박물관에서 일하는 혜정의 남편도 정신이 나간 남자이며 혜경의 대학동창생 백현미, 나중에 동창생 혜정의 남편마저도 도 쟁취해내는 이 녀자 역시 바람난 녀자다. 그녀는 ������지금은 모든것이 일회용이야. 라이터, 위생저가락, 플아스틱컵, 어느게 일회용 아닌게 있어?남자와의 사랑도 일회용이야.������라고 말한다. 

 중편소설 《유혹의 한계》에서 모 방직공장 공급판매과 과장 효식이는  안해 정희,  한 집체호 경력의 첫사랑 월선, (효식의 아들을 낳아서 키우고있는 녀자), 그리고  표준부속품공장의 판매원으로 자처하고 나타난  미향이. (������거추장스럽게 남편을 해선 무얼해요?������라고 말하는 녀자,  알고보니 무직업자이고 털실, 자동차, 표준부속품 등 상품의 투기도매로 살아가는 녀자다) 세 녀자앞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가는데 역시 제 정신이 아닌 남자고 세 녀자중 미향이는 역시 가장 대표적인 바람난 녀자이다.

 등등. 이제 더 례를 들지 않아도 강효근의 소설에서 정신없는 남자들과 바람난 녀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알수 있을것이다.

 물론 이런 인물형상들에 체현된 창조주체의 동기는 다양한바  사회에 만연되는 부정부패와 비리, 그리고 도덕수준의 하강에 대한 고발도 있으며 만성타락의 길에서 부식되는 령혼에 대한 질타도 있으며 민족의 생존상황과 문화상태에 대한 자아성찰의 의지도 있다.

 


  3. 강효근 소설의 문학공간

 


 강효근의 근 100편에 달하는 소설작품은 우리 소설문학의 발전사에 큼직한 한획을 그었다고 평가할수 있는바 그가 창조한 재령댁, 명흥복, 하일준, 승정렬, 순애, 오순자 등은 민족의 수난과 끈끈하게 밀착된 운명의 소유자자들로서 우리 소설발전사에서 독창적인 비반복적인 성격으로서 영원할것이다. 그리고 또 강효근이 창조한 정신없는 남자들과 바람 난 녀자들의 형상과 여러가지 주객관적인 여건에 의하여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형상은 비록 우리 소설발전사에서 전혀 새로운 인물형상이라고 할수는 없어도 자체의 매력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강효근의 소설은 지난날 가치평가를 공평하게 받지 못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는데 창조주체의 측면으로 보면 자체의 약점이 있기때문이다. 길림에서 나서 자랐고 일생 대부분 시간을 길림에서 살아온 강효근은 우리 말에 대한 문학적구사력이 좀 부족한것이 문제로 되였으며 일부 소설작품의  스토리의 류사성이 작품의 매력을 떨어뜨렸으며 일부 이야기모티브 즉 화소(話素)의 반복이 읽는이들에게  신선감이 없다는 인상을 남겨주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강효근의 중요한 문학공간으로서의 길림시에 조선족문학비평의 결석 내지 지각이다. 다시말하면  강효근의 작품활동이 제때로 되는 평론문학의 각광을 받지 못한것이 그 첫번째 원인이다. 다음 더욱 중요한 원인은 평론가 내지 문학사가들의 의식에 존재하는 결함에 있다. 그것은 즉 문학창작의 현장이나 문학풍경을 고찰하거나 문학발전사의 주선을 그을 때 시간의 흐름을 중시하고 공간의 상태를 홀시한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 쉽게 말하면 어느 한 시간단 혹은 려사단계의 문학사를 고찰할 때 대표적인 작가 한두분 연구하면 나머지 여러분은 시간의 저쪽에 파뭍기우고 마는것이다. 이러한 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음직임이 중국의 철학계와 문예계에도 이미 나타나고있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 평론계도 충분한 중시를 돌려야 한다.

 다음 강효근의 작품계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정신없는 사람들과 바람 난 녀자들에 대한 소설은 강효근이 평생 직업이였던 은행생활에 바탕을 두고있다.

 중편소설《정신있소》의 왕월금은 은행 출납과 과장이고 김철식은 신용대부과 과장이고 《둥지를 떠난 새》의 은행 신용대부과 과장 오종필이도 신용대부과 과장이다. 그리고 많은 바람난 녀자들, 된장덩이에 날아드는 오유월 시파리들처럼 신용대부과를 찾아온다. 이것은  평생 은행에서 일해온 강효근의 인생경력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마지막으로 강효근 소설에는 무시로 작가와 기자 혹은 화가 신분의 화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 또한 강효근의 인생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1995년 정년퇴직한 강효근은 직무에 매여달린 시간과 정력의 한계를 벗어나 작가의 신분으로 완전히 자유롭게 문학을 공부하고  사회조사에 참가하면서 작품활동에 종사할수 있었다. 이렇게 보는 세상은 은행직원의 시각에서 보는 세상과 틀릴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강효근의 작품활동의 대상은 전례없이 넓어지였다. 이런 맥박에서  강효근의 소설에서 작가, 기자, 화가로 등장하는 화자도 강효근의 인상기억과 끈끈하게 밀착되여있음을 리해해야 할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사유는 두가지 갈래로 나누어 펼쳐져야 한다.

 첫째, 강효근 소설과 강효근의 인생기억에 대하여.

 이 문제는 문예리론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고금중외의 많은 미학가들이 문학과 예술은 생명개체의 기억 내지 민족공동체의 기억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모든 문학은 죄다 자서전이라는 결론도 내린바 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당신의 인생기억이 문학창작의 바탕으로 되게 화려하고 풍부하고 충실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문제가 있으며 더욱 중요한것은 창조주체가 그것을 자기 작품활동의 문화적자원으로 삼을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것이다. 이 방면에서 강효근의 소설은 역시 우리에게 주는 계시가 크다.

 둘째, 강효근 소설의 지방특색에 대하여

 강효근은 1935년 길림시 복흥리에서 태여났다. .

 강효근은 어느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문우들은 나를 누구에게 소개할 때마다 한결같이 길림에서 온 소설가 강효근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길림 출생이고 거기서 소년시절을 보내였다. 길림은 확실히 나의 고향이다. ……

 길림의 복흥리(福興里)라면 무서운 빈민굴이다. 제정때부터 우리 백의 겨레들이 많이 모여 살던곳이다. 우리 집에서는 바로 여기에다 『황해하숙』이라는 하숙집을 꾸리였고 그 경영은 주로 어머니몫이였다. 오로지 어머니의 부지런함으로 하여 당시 우리 집생활은 그다지 유족하지는 못했지만 먹고 입고 살수는 있었다. 그러더 8․15해방을 맞게 되였다.……

 우리 집에선 조상들의 뼈가 뭍힌 황해도 송화군으로 돌아가려 했다. 공교롭게도 호시절속의 단꿈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때면 림표가 령솔한 제4야전군이 길림시에 본부를 둔 국민당 제88사와 사활적인 대결을 하고있던 시절이였다. 치렬한 전운이 휘말림속에서 안동과 도문으로 통한 철길이 끊어져 어디든 갈수 없었다. 우리 집식구 모두가 꼼짝 못하고있는 어느날 난데없이 어중이떠중이들이 식칼, 도끼, 날창 등을 번뜩이며 하숙집으로 처들어왔다. 불의의 습격이였다. 그들은 닥치는대로 족치면서도 쓸만한 가장집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가지고 갔다. 우리 집은 눈 깜박할새 빈털털이로 되여버렸다. …어머니는 결국 원한을 풀지 못한채 저승으로 가시고 말았다. ……

 고향에 대한 추억은 가난에 쪼들린 불행 대개 그런것이였다. 그래서 더더욱 잊지 뭇하는 모양인데 그것들은 또  고스란히 나의 체험으로 되여 나의 소설에 반영되였다. 중편소설 《강 건너 꽃구경》에서는 하숙집이 몽땅 털린 사실이, 단편소설《객귀》에서는 하숙집에서 조선인 형사가 원인불명으로 죽은 사실과 복흥리 곳곳에 깔린 사창(私娼)의 사실이, 중편소설 《귀책》에서는 왜놈이 망한 뒤 미처 일본으로 귀국하지 못한 일본녀인을 어머니가  여기 하숙집에 숨겨두었던 사실들이 그대로 서술되였다.������(《기억속의 고향》, 산문집《저문 들녘 노을처럼》,한국학술정보〔주〕2005년 12월)

 


 좀더 조심스럽게 접근해보면 강효근의 많은 소설의 이야기는 길림시와 길림시부근, 송화강연안의 마을들에서 펼쳐짐을 보아낼수 있다. 

 강효근 소설의 이 공간에 대하여 우리는 보다 심층적으로 리해할 때가 되였다.

 전에도 문화학에 지역문화라는 개념이 있었으며 문학비평에 지방특색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런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여도 우리는 강효근 소설의 지방특색 내지 지역문화적 내함에 대하여 높이 평가할수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인식은 여기에 멈춰서는 안된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바슐라르(Bachelard)의 《공간시학》이 출판되고 70년대로부터 프랑스의 레페불(Hernri Lefevre)이 《공간의 생산》, 푸꼬(Foucault)의 《권력의 지리학》 등이 출판된후 문화지리학과 지리적상상이라는 개념이 생성되였으며  중국의 문학리론계에도 요즘『공간전향』이라는 개념이 류행되고있는데 여기서 전부  해석기는 불가능하지만 한두마디로 개괄하여본다면 이들에 의하면 문학공간은 생존체험의 심도공간이라는것이며 문학공간의 생성원은 생존에 대한 작가의 내재적체험이라는것이다.

 아주 쉽게 표현한다면 전통적인 리론은 시간을 중시하기에 공간적인 존재가 홀시되였으며 게다가 시대정신 등 추상적인 개념의 만연으로 형이하학적인 공간존재로서의 생존체험이 더구나  홀시되였다, 그러므로 시간성, 사회성, 공간성을 정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공간생산을 중시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중국의 문학사 연구에서도 중국문학지도 그리기 작업이 시작되고있다.  

 이렇다면 우리는 강효근의 소설에서의 길림이라는 이 공간에 대하여 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파악하여야 할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강효근 소설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명석한 인식이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강효근의 소설에 대한 연구에서와 문학사에서 강효근의 소설작품에 대한  자리매김에서 새로운 의식이 수요된다고 생각한다. 

 강효근처럼 자기 고향에 대하여 집착하고 자기 고향을 사랑하고 자기고향의 력사와 삶의 현장에 대하여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소설가도 우리 문단에 드문줄 안다.

 례를 들면 룡정은 조선족이민 초기 개척지로서 또 해방전 위만주국시기 조선족이민들의 문화중심지로서 력사가 있고 유물이 많은 곳이지만 유감스러운것은 소설로 길림과 송화강을 다루는 강효근이처럼 소설로 룡정과 해란강을 다루는 소설가가 몇이 되지 않은줄 알고있다.

리근전의 장편소설《고난의 년대》,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은 이 방면의 시도가 보이는 작품이지만  강효근의 길림과 송화강에 대한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해야 할것 같다.

 특히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강효근의 소설에서 길림이라는 문학공간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일부 력사에 대한  재해석이 진행되였다는것이다. 길림시 조선족의 초기이민사, 해방전쟁시기 조선족의 투쟁사, 항미원조에서 조선족의 희생 그리고 일부 건국으로부터 문화대혁명전까지 17년사 등의 력사에 대한 재해석에 주목된다. 물론 이런 력사에 대한 재해석은 력사학자로서의 재해석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재해석이다.

 《객귀》의 중요내용은  송화강 나루터에서 배사공으로 일하는 주인공 명흥만이 객지에서 귀신이 된 무주고혼을 안치하는것인데 그중 하나는 당년에 그렇게 으르딱딱 날뛰던 왜놈장교『코수염』의 시체를 안치하는것이다.

 할복자살한 『코수염』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것은 악한 짓에 대한 업보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까마귀들이 시체에 붙어 다닥다닥 붙어살점을 쫓고있을 때 그냥 버려둘수 없었다.

 


 『코수염』도 실은 객귀의 신세로 타관땅에 외롭게 버려진 시체였다. 무리들의 동정과 도움을 받지 못하고 군드러진채 까마귀의 밥이 된다는것은 가연스러웠다.

 명흥만은 『코수염』을 『써우즈』옆에 묻어주었다. 장례에서 치루어야 하는 수시(收屍)호혼(招魂), 발상(發喪)같은 절차는 없었지만 그래도 수으(壽衣)만은 입혀서 묻었다. 그것이 광목으로 된것이 아니고 넝마쪼각을 무어서 만든 수의라 할지라도 말이다. 부디 안식하라는 말을 남기고 토굴집으로 돌아왔다. 

 


 문학은 원쑤의 시체를 놓고도 생각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강효근이야말로  바로 길림 송화강연안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원쑤의 장례를 지내는  명장면을 재현할수 있었다.

 력사에 대한 재해석은 소설《귀책》에서 한시기 그렇게 득세하던 당지부서기 허승권과 패가망신시켰다면서 며느리를 좇아내던 박재덕이를 지옥에 처넣고 군인가속으로 다른 남자를 했다는 죄로 숫한 욕을 본  순애를 천당에 보내는데서도 잘 나타나며 《살아 숨쉬는 상흔》에서 총칼을 마주하고 우리와 생사박투를 벌린 원쑤였던 민대식의 눈물겨운 인생에 대한 풋풋한 묘술에서도 잘 보인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료녕대학 송위교수의 문학공간에 대한 한마디 결론이 생각난다.

 


 문학공간은 단순한 물리공간장소를 재현하거나 심리공간의식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생존깊이가 닿는 체험공간이다. 宋偉 《後理論時代的來臨》(文化藝術出版社, 2011년 1월, 제 1판) 330頁

 


4. 문체의 혁신을 위한 몸부림

 


강효근의 소설창작의 방법은 사실주의방법이다. 이점에 대하여 강효근자신이 여러번 강조한바 있다.

 


 아무튼 전 사실주의의 기법에서 벗어날수 없었어요. 물론 전에 론했던 사실주의의 내용이 변화갱신되면서 새로운 내용이 가첨된것은 사실이고 또 소설이 독자들에게 기법상의 취미성과 활력을 주자면 형식의 다양성과 기법상의 취미성이 절실히 필요하지요. (강효근 《나의 문학 나의 량심》, 중편소설집《둥지를 떠난 새》, 료녕민족출판사 10월 314폐지)

 


 강효근씨가 스스로 말한것처럼 강효근의 소설은 기본상에서 사실주의적 창작방법에 의존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변화하는 양상을 과시하면서 자기의 독창적인 풍격을 과시하고있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싶은것은 강효근의 소설에서 시종 매력을 끄는 남성적인 풍격과 북방대륙의 숭고미다. 강효근의 성공적인 중단편소설에서 부각된 남주인공들의 성격에서 풍기는 헌헌장부의 모습과 진정한 사나이의 정신에서 발산되는 남성미는 더 말하지 말고 그의 소설의 갈피갈피에서 그려진 북방대륙의 땡볕과 강물과 눈보라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중국조선족문단에서 희귀한 명품이라고 칭찬할만 하다. 더 전개할 편폭이 없지만 필자는 여기서 특히《높은 령 깊은 골》에서 사냥군 덕보령감과 메돼지의 생사판가리 싸움을 상기시키는바이며 《웅크린 꿈》에서 녀주인공 마인선과 범죄분자 오광섭과의 결투장면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는 바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2005년에 발표한 졸문《삶의 현장에 대한 심층조명》에서 언급한바 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힘주어 내세우는바이다.)

 이 두 편외에도 중편소설들과 최근 출판한 장편소설《산 너머 강》에서 부각된 많은 남주인공들의 형상은 모두 강효근 풍격의 남성미로 필자의 주목을 끈다.

만약 강효근씨의 문체의 혁신을 위한 몸부림이 없다면 이러한 독창적인 풍격은 불가능하였을것이 아닌가.

 다음 《정신있소》를 비롯한 많은 소설에서 강효근의 고심한 문체실험이 돋보인다.

 


  왕월금에겐 공교롭게도 희고 흰 백지 한장뿐이였다.로임진급시험에서 락제를 맞았고 주택도 령이 동그란 닭알을 낳았다. 빈털터리밖에 차례지지 않았다. 저금소에서 주산알을 퉁기는 운명을 개변할수 없었다.

 《흑, 흑흑》

 《왜 그러우?》

 《죽었으면 좋겠어요.》

 《당신 정신 있소? 어서 병원으로 가기요.》

 《병원에서 운명을 고쳐준대요?》

 《먹고 살았으면 됐지 운명타령은?》

 《사람값을 못하며 살아선 뭘해요?》

 《그렇다고 국가주석이 되겠소?》

 《남에게 눌려 더는 못살겠어요. 흑흑!》

 우연과 필연이 력사를 엮는가 보다. 그런 월금에게 대운이 금문을 활짝 열었다.

 

 이것은 중편소설《정신있소》에서 임의로 선택한 한 단락이다. 

 여기에는 인물의 운명에 대한 평가도 있으며  언어묘사 즉 인물들의 대화도 있으며 바야흐로 전개되는 사건에 대한 교대도 있다. 그런데 대화의 주인공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데 대한 교대는 전혀 없다. 그리고 누가 말하였다 하는 식의 교대도 없다. 읽는이들은 자기의 주관판단으로 누구와 누구의 대화겠구나 라고 생각할수 있을뿐이다. 이러한 서술에 대한 생략은 소설은 묘사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새삼스러운 인식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묘술에서도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하면서 큰 비약을 시도하고있 추상적인 언어와 구체적인 언어를 재치있게 활용함으로써 소설의 취미성을 한층 더해주고 그 함의를 파악하는 감칠맛을 더해준다. 

 다음 이상과 같이 인물들의 대화에서 비약을 많이 하는것처럼 진행되는 인물들의 행위도 많이 비약시킴으로써 읽는이들의 사유를 활성화하고 전체 문본의 신식량을 크게 할수 있었다.

 시종 사실주의창작방법에 의존하는 강효근이지만  최근 그의 작품에는 자연주의 묘사도 가끔 보이며 흑색유모어적인 수법도 자주 보인다.

 례를 들면《객귀》에서 송화강나루터 배사공 명홍만의 삶의 모습은 그 환경묘사나 의식주에 대한 세절묘사에서 모두 자연주의적인 방법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으며《귀책》의 서두에서와 결미에서 천당과 지옥에 대한 설정은 사실주의 창작방법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창조주체의 모지름을 단도직입적으로 과시하고있다. 

 


 나가는 말

 


 강효근은 길림의 소설가다. 그는 길림사람으로서 길림에서 태여났고 길림에서 성장했으며  길림에서 일생을 살았고 길림의 이야기를 쓰고 역시 길림의 동포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

 그의 50여년 작품활동은 조선족문학사에 뚜렸한 한획을 그었다. 창조주체의 개인기억의 재생으로 특징되는 강효근 소설은 개성적인 문학공간과  생활과의 가까운 거리로 매력적이다.

 그가 창조한 백의겨레의 수난사에서 나타난  수많은 희생자들의 형상과 새로운 시대의 변화속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정신 나간 남자들과 바람난 녀자들의 형상은 우리 소설문단에서 독창적인 형상이며 우리 소설사에서 단단하게 자리매김을 할수 있는 형상들이다.   

 그는 사실주의방법에 대하여 비교적 투철한 인식을 갖고있는 소설가로서  사실주의 핵심리념에 대하여 동요가 없지만 역시 사실주의 방법의 한계와 자기 창작수준과 문학적으로 준비된 주관상황의 한계에 대하여 비교적 일찍 보아내고 문체혁신을 위하여 처절한 몸부림을 해온 소설가이다.

 강효근은 사상이 있는 소설가이며 역시 독창성이 있는 소설가이며 성과가 있는 소설가이다.

 


                                                      〓끝〓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 민족의 수난과 개체의 기억 그리고 문체혁신의 몸부림 2011-06-28 6 839
4 《중국에 〈되놈〉은 없더라》 漢文판 출판을 축하합니다 2011-06-22 8 823
3 최룡관의《이미지시 창작론》독후감 2009-12-02 32 853
2 투시력과 감수력 ―리혜선의 《외로운 기다림》을 평함 /최삼룡 2009-07-17 41 855
1 [평론]박선석의 소설과 농촌사회학(최삼룡) 2009-01-04 53 113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