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凍土남북,창조적 단절 없이 창조적 미래는 없다
2013년 03월 23일 11시 39분  조회:4981  추천:1  작성자: 이승률

[시론] 창조적 단절 없이 창조적 미래는 없다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연변/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

1. 창조적 의식전환의 함의

 

지난 11일 연례적으로 훈련해왔던 '키 리졸브'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시작되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정전협정의 효력을 백지화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전면전 대응을 운운하면서 연일 협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24시간 비상태세를 유지하고 육해공군의 총력 대북 감시에 돌입하면서 다시 한번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노라면, 과연 남북관계에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것이 진정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상황을 타파해나갈 새로운 돌파구는 없을까. 지난주 연변과학기술대학 2013년도 신학기 교직원 수련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신 곽선희 목사님(평양과기대 설립재단 이사장)의 설교내용에서 힌트를 찾았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과거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면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기독교 윤리를 국제관계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비록 종교적인 개념이지만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기 위해 과거의 모든 덫으로부터 창조적 단절과 혁신이 있어야 된다는 개념, 즉 ‘창조적 단절 없이는 새로운 미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개념을 우리 외교안보의 새로운 모델로 적용해 보고 싶다.

 

북한은 이제 엄연히 핵 보유국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 안정과 공동 번영의 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그동안 유지해왔던 중국 지도부의 기존 대북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자국 내 학계, 일반시민에 이어 군부에서까지 북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중국으로서도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 일이 시급해지고 있다.

 

북한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힘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공조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적 지역 주도권 다툼, 일본의 극단적인 우경화, 러시아 동진정책까지 그야말로 협력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져 있는 냉전적 질서 속에서 어떻게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일 터인데 여기에 과거를 뛰어 넘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창조적 의식전환(Creative Paradigm Shift)’의 개념을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2. 한중일 FTA 협상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시작

 

먼저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와 협력기반을 강화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도 핵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 그 대책으로 독자적인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것은 자칫 한미동맹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더욱이 대만과 일본 등 핵무장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핵우산 전진배치 전략이다. 때마침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에 참여한 미국의 핵잠수함 등이 훈련이 끝난 뒤에도 한반도 인근에 한동안 잔류하는 것으로 미국의 핵우산이 제공될 예정이다. 여기에 미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일부 전술핵이 한반도에 재배치된다면 북한의 핵위협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한미동맹 강화의 기반위에 국제사회의 협력이 ‘그물망’처럼 짜여져 다자협력안보의 틀을 갖추는 일이 필요한데, 이 경우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따라서 중국이 선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협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면에서 중국과 한국은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으로 상당한 갈등관계에 있다. 즉 한국은 중국의 북한 체제 안정을 위한 지원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 포위를 위한 전술적 의도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어떠한가.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정신대, 역사교과서 문제 포함), 독도 문제 등을 이유로 서로가 날선 공방을 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 아베정부의 국내 정치용 우경화 조치가 도를 넘어 한국을 일방적으로 적대시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미국 정부의 적극적 지지 아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였지만 독도방문 건으로 분쟁이 격화되면서 불발에 그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북한문제 해결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어 한미동맹과 결합된다면 확실한 대북한 및 북핵 방어막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위에서 제시한 창조적 단절을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양국의 오해의 골을 끊어내고 대북정책의 합의점을 찾아 창조적 미래를 위한 활로를 열어야 한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 독도분쟁 등의 문제가 더 이상 양국 간의 미래 발전에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창조적 단절이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 일본은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겸허히 수용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조치(한국의 독도 실효지배권 인정 등)를 취하고 한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 대해 관대함을 보여주는 대승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창조적인 미래의 활로를 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일본과 중국 역시 영토 분쟁 등 힘겨루기를 단절하고 공존공영하는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우호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기대를 현실화하는데 있어서 앞으로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협력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합의점을 찾는데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필자의 소견으로, 여러 가지 방책 가운데 이 시대의 강력한 소프트 파워인 ‘초국경적 경제협력’으로 다자문제를 풀어가는 일이 가장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이라 믿어진다. 구체적으로 말해 먼저 한중 FTA를 성사시킨 다음 그 기초 위에 한중일 FTA 및 환경의제협약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연속적으로 조기 추진하는 일이 그 관건이되지 않을까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해당 국가들 간의 교역을 극대화하는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지역 정세 속에서 외교안보와 갖가지 기후환경자연재해에 대한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수준까지 확산된다는 점에서 북한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는 매우 유효한 대안이 될 것이라 본다. 이것은 갈등과 분쟁을 단절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 질서로 전환 시켜 창조적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할 것이다.

 

실제적으로 한중 FTA를 조기 성사 시키고 그 후속 프로그램으로 한중일 3국간 다자협력의 틀을 중층구조 형태로 구축하면 지리적으로 그 중간 위치에 있는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말해 한중일 간에 전략적 경제협력동반자 관계를 확고히 해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을 자연스럽게 ‘선한 이웃’으로 참여시켜 국제화의 길을 걷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례를 들어 나진, 신의주 등 북중 접경지역에서 진행되는 북중 경협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고 나중에 2차적으로 러시아, 몽골, 일본, 미국도 합류하면서 도로, 철도, 항만,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가스 파이프라인 등 물류교통망 및 에너지·건설 인프라를 연결해 나간다면 냉전 구조의 적대적 관계와 이데올로기의 이질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국제협력의 틀(공조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쌓아가며 정상국가로서의 길을 걸어간다면 이는 곧 창조적 미래의 지평을 여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될 것이다.

 

지난 14일 중국 당정군(黨政軍)의 국가최고권력을 모두 승계한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정부에 우선적으로 원하는 협의사항이 한중 FTA를 통한 경제협력이라고 전문가 들은 말하고 있다. 일본 역시 북한의 핵보유로 직접적인 군사적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국의 이익을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명백해 지고 있는 만큼 한국 및 중국과의 실질적인 경제협력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 당면 과제임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각국의 기대와 신뢰를 반영하는 포괄적인 제도적 장치로 내세울만한 대안이 바로 3월말부터 첫걸음을 떼는 ‘한중일 3국 FTA’ 협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출구전략으로 평가할만하다.

 

3.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추진 전략과 행동철학

 

유엔 안보리 제재와 국제금융제재를 통해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북한에게 ‘더이상 도발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당사국인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은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인도적·경제적 교류를 재개하는 투트랙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핵우산 전진배치, 일부의 전술핵 재배치 등 중국과 북한으로 하여금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압박을 직접 느끼도록 하는 강경정책과 함께 NGO를 포함한 민간교류 및 인도적 지원과 개성공단과 같은 산업공단 조성 등의 인도적·경제적 교류의 온건정책이 함께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이러한 투트랙 정책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돌입한 듯하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11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겠지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작동되도록 하는 노력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고, 이와 같은 맥락으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아무리 상황이 엄중해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대화가 있어야 하며,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영유아 및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태의 사과 없이도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와같은 5.24조치의 단계적 완화 역시 창조적 단절이라 볼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러한 온건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추가 핵실험 같은 도발행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점을 북한에서 확실히 인지하고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결국 북한 스스로가 우리 정부로 하여금 대북지원을 할 만한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에게도 역시 필요한 것이 ‘창조적 미래를 위한 창조적 단절’인 셈이다. 북한의 핵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동시에 자신을 자멸의 길로 인도하는 위험천만한 패착이 될 뿐이다.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성공으로 최근 입지가 강화된 북한 군부의 강경일변도의 고립정책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추구하는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은 결코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인민을 궁핍하게 만들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무모한 핵개발 및 군사 도발을 단절하고 정상국가로서의 창조적인 미래를 위한 새로운 의식전환(paradigm shift)의 단초를 조속히 마련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베버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정치경제사상적 교훈은 바로 이러한 ‘창조적 단절’을 통한 ‘창조적 미래’의 창출이다.

 

16세기 초 영국 성공회의 종교박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과감히 떠난 영국 청교도들의 행동철학 즉 ‘천직’으로서의 직업관과 소명론은 그 후 미국의 건국정신을 이루고 근대자본주의 사상체계의 기초를 확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청교도)의 혁명적 결단과 행동철학이야말로 전체주의적 사회체제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인류 역사의 위대한 ‘창조적 단절’의 대표적 사례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

 

한반도의 북녘 땅, 저 엄혹한 현실의 동토(凍土)에도 이러한 ‘창조적 단절’을 통한 창조적 미래 가치의 실현-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행복이 회복되는 새로운 창조질서의 물결이 봄날처럼 성큼 가깝게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2013. 3. 18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연변/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 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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