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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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닦아라, 미래는 꿈꾸는 게 아니라 달려가는 것이다
2009년 03월 20일 13시 36분  조회:3499  추천:30  작성자: 이승률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길을 닦아라, 미래는 꿈꾸는 게 아니라 달려가는 것이다 

 

작년 봄 일본 큐슈에 갔을 때 마침 3월 1일이었다. 일본 땅에서 3.1절을 맞기는 처음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던 그날 오후, 전 큐슈지역 철도청장을 역임한 이시이 요시타카 (石井幸孝) 회장을 만났다. 나가사키현 출신인 그는 정년퇴임을 한 뒤,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를 이끌며 한일간 FTA성사를 위한 민간경제협력 및 항만교류 업무를 위해 뛰고 있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이시이 회장을 만난 나는 한 달 전에 일어로 번역해서 보내준 나의 졸저 <동북아 연합의 꿈>을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성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나의 주장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모델 창출방안 즉 한ㆍ중ㆍ일 3국을 ‘한 몸’으로 연결ㆍ입체화 시키는 상호주의 관계구조를 높이 평가했고, 또한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인프라인 한일해저터널과 철도연계망 확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동의해주었다. 더불어 이시이 회장은 이 일이 막대한 시간과 자금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삼국 간 관계자들의 심도 깊은 교제와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례 포럼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 예로서 그는 2000년도에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를 설명해주었다. 당시 일본 철도공사가 주관했던 행사는 네덜란드 덴 하그역에서 중국 북경에 이르는 장거리철도여행플랜이었는데 그는 각 국가 간 노선도까지 직접 그려가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참고로 일본 큐슈 지역은 일본 개화기인 1860년대부터 네덜란드와 활발한 교류를 해왔고, 지금도 면적과 인구, 개인소득이 비슷해 여러모로 서로에게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관계다. 

이시이 회장이 말한 유럽과 아시아 대륙 간 철도대장정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1980년대 말 일본 국철이 민영화되자 큐슈의 철도공사와 네덜란드 철도국은 더욱 밀접한 교류를 해왔는데, 마침 2000년도가 양국 간 교류 4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양국 철도당국과 전문가들이 모여 2000년 9월과 10월 사이에 네덜란드 수도 덴 하그에서 출발해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타쉬켄트, 알마티, 키르키스탄(옛 실크로드 지역)을 거쳐 중국 북경 역에 도착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이루어냈다. 모두 11개 국가를 거쳐 24일 동안 달려온 이 철도대장정은 침대칸이 딸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였으며, 여행 참가인원은 일본인 60명, 네덜란드인 40명이었다.

당시 이 기념행사는 개인이 200만엔(¥)의 경비를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유럽과 중국, 러시아ㆍCIS 국가 간의 철로 폭이 달라 도중에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이 국제간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무난히 성공시킨 양국 철도청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했었으나 불행히도 그 다음해인 2001년도에 영국에서 열차테러사건이 발생하자 후속계획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이시이 회장은 늘 마음속에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거쳐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신 실크로드 철도 대장정’ 을 꿈꾸어왔다.


그는 실제로 큐슈 철도청장 직을 퇴임한 후 후쿠오카와 부산을 오가는 쾌속선 ‘제트포일’을 운행하는 항운사의 초대 사장을 기도 했다. 1987년 당시 초기에 배 한 척으로 시작했던 쾌속선 사업이 이제는 본격화되어 7척의 배가 매일 8회 왕복 운행하는 황금노선으로 발전했다. 이시이 회장은 이 쾌속선의 운항으로 부산과 후쿠오카는 이미 1일 생활권으로 변했다고 평가하며 부산 여성들이 후쿠오카 텐진(天神) 백화점에 쇼핑하러 오는가 하면, 후쿠오카 샐러리맨들도 생일파티를 하기 위해 아침 8시에 후쿠호카를 출발해서 2시간 50분 만에 부산에 도착서 점심에는 한국식 갈비를 먹고 오후에는 쇼핑을 한 뒤, 저녁에는 자갈치 시장이나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한일 해저터널이 완성되고 철도와 차량이 자유왕래하기 전까지는  부산-후쿠오카 구간에서는 비행기보다 오히려 쾌속선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균 한 해에 60만 명가량의 여객이 오고가고 있으며 이제 곧 연인원 100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한 개 항로의 쾌속선 운항만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지역 항만도시가 일일생활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마치 동북아연합의 서막이 민간차원의 수요에 의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설레임도 있었다. 부산과 후쿠오카 항로는 고대 일본으로 건너갔던 한반도 ‘도래인(渡來人)’ 들의 항로가 아니던가? 세월은 가고 사람은 바뀌어도 길은 여일하게 남아,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일간 평화 교류의 통로가 되어온 사실이 남다른 감회로 전해져왔다.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동북아연합체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한국에서 속 시원히 생각을 나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역시 한일해저터널의 시대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 시대가 언제 열릴 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시이회장은 그저 앉아서 미래를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그저 꿈꾸고 있지 많은 않았다. 미래로 가기 위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또한 그의 페리호로 한국과 일본을 오간 사람들에게 한일해저터널 시대를 기대하도록 했고,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삶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생생한 사례를 선사해주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일해저터널건설의 밑 걸음이 될 것이고, 장차 동북아공동체를 여는 동력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 문득 오늘이 3.1절이라는 사실이 다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의 강제적인 국가주권침탈에 항거하며 목숨 바쳐 독립만세를 외쳤던 날. 그 아프고도 자랑스런 기억이 있는 날에, 하필이면 나는 일본 땅에, 그것도 일본의 개화기 때 일본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부국강병을 주장하며 한반도강점을 주도했던 인물들을 대거 배출시킨 큐슈 땅에 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큐슈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야망에 불탔던 일본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바로 그 땅에서 나는 동북아시대에 한국이 선진국의 꿈을 품고 힘차게 비상할 수 있는 활주로를 닦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탈냉전, 탈이념 국제협력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국제시민으로서, 진정한 한국의 선진입국을 위해서는 이 날을 한ㆍ중ㆍ일 3국이 ‘삼자가 하나’ 되듯 한 몸으로 거듭나는 공동체 역사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기념일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국경에 갇히지 말고, 과거에 묶이지 말고,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는 큐슈를 이국의 섬으로 외면하지 말고, 해저터널를 통해 오히려 한반도의 일부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서로의 상처와 한계를 치유해주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배우고 용납하는 역사를 함께 써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동북아의 장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날의 선조들이 피 흘려 지킨 조국을 반드시 동북아의 주역으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을 위해 끝까지 나는 이 활주로를 놓을 것이다. 아니, 그 옛날 독립만세를 외치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처럼 차라리 비상하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내 자신이 활주로가 되고 싶다.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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