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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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이난섬에서 느끼는 한겨레의 숨결
2007년 10월 05일 20시 42분  조회:3608  추천:87  작성자: 차한필
중국속에 일떠서는 한민족(1)

하이난섬에서 느끼는 한겨레의 숨결

차한필 한겨레신문 기자



중국 최남단 하이난섬에도 한겨레는 숨쉬고 있었다



중국 맨 아래쪽에 위치한 면적 3.4만 제곱킬로미터의 하이난(해남)섬은 1500킬로미터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200만제곱킬로미터의 푸른 해역에 풍부한 수산자원, 수천종의 열대식물이 자라고 있는 자연환경보호 지역으로 최근 사계절 휴양지로 본격 개발이 되면서 중국인들이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환상의 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400여명의 중국동포와 한국동포가 정착하고 있는 하이난에는 해마다 6만여명의 한국 관광객이 다녀가고, 삼성광케이블이 하이쿠(해구)보세구에 5억여위안을 투자해 기업활동을 하는 등 한겨레의 자취가 점점 짙어가고 있다. 적도의 불볕 더위 아래 몰아치는 해풍에도 꺾이지 않는 야자수처럼 하이난섬에 뿌리를 내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을 더듬어본다.

 


일제 때 징용의 한이 서린 곳

 


중국의 제주도로 불리는 최남단 하이난섬은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다. 2차대전 당시 1940년 초 일제는 하이난섬을 중국 본토 침략과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아 한반도에서 1000여명을 징용해 도로공사, 공항건설, 터널공사 등에 투입해 결국 완공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1945년 완공과 더불어 패전을 눈앞에 둔 일제는 이를 감추기 위해 징용한 한인들을 모두 생매장하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이 끝난 뒤 벌어진 중국 내전에서도 군사적 요충지인 하이난섬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중국인민해방군 43군 소속의 수십명 중국동포들이 목숨을 바쳐 해방을 이룬 이곳 하이난은 이렇듯 우리 민족의 피가 짙게 스민 고장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부터 중국동포들 진출해


이곳에 우리 겨레가 찾아들기는 약 15년 전, 1990년대 초부터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광둥(광동)성에 속한 미개발 섬이었던 이곳은 중국 최초의 개혁개방도시 선전(심천)을 비롯해 연해지역에서 잇따라 개혁개방 성과가 나타나자 중국 국무원의 결정에 따라 1988년 하이난성으로 승격됐고, 동시에 전국 최대 경제특구로 승인됐다.

이에 따라 장밋빛 개발전망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곳은 ‘노다지판’으로 알려졌고, 1990년대 초부터 ‘10만 하이난 진군’을 불렀다. 일확천금을 노린 이들과 함께 들어온 중국동포들은 한때 20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선전과는 달리 하이난은 지리적으로 대륙과 떨어져 있는데다 시장 규모, 물류 등의 문제로 제조업 진출이 불가능해지면서 장밋빛 청사진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무작정 하이난으로 흘러들어온 중국동포들은 대부분 다단계판매 조직에 가입해 각종 화장품, 보건품, 금시계, 가전제품 등의 판매에 나서 친척, 친구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상당수는 힘든 일거리를 아예 외면해 결국 오도가도 못하며 한국동포 교회 등에서 ‘식객’으로 있다가 연해지역으로 빠져나갔다.

 


한-중 수교로 정착에 성공한 중국동포 많아

 


하지만 그때부터 이곳에서 버티며 섬나라의 새 주인으로 정착한 사람도 적지 않다.

고교 졸업 뒤 1990년 해남에 첫발을 내민 헤이룽장(흑룡강) 무단장(목단강) 출신의 김미자(36)씨는 외국호텔, 일본회사 등을 전전하며 힘든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1992년의 한-중 수교는 김씨에게 더없는 기회로 다가왔다.

수교 뒤 사계절 온화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 풍부한 수산물, 값싼 골프장 등 이곳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한국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났다. 그는 1997년 한국적 캐나다인과 합작해 여행사를 설립했다. 이어 하이쿠에 첫 한국요리점 ‘한강정’(漢江婷)을 차렸다. 이어 산야(삼아) 해변의 산하이티엔(산해천)호텔(5성급) 안에 한식당 한강정을, 하이쿠에 한강정 3호점을 열어 경영하고 있다. 하이난성이 한국 제주도와 자매결연을 맺을 때는 통역을 맡아 하이난성 정부의 대외교류에 일익을 담당했다.

또 그는 한국의 전통음식과 궁정요리를 선보인 ‘하이난한국미식문화축제’를 2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해 ‘대장금’ 열풍을 하이난에까지 불러일으켰다.


섬지역 특성을 살려 수산물 경영에 나선 중국동포도 적지 않다. 헤이룽장 하얼빈 출신의 남명동(39)씨는 저장(절강), 광둥 일대서 수산물 가공공장을 세워 연간 1000만달러 대일본수출을 해왔다. 1990년대 후반 산야경제개발구에 냉동공장을 세워 칼치 등을 수매가공해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밖에 10년간 해남성 정부 소속 관련기구, 방송, 대외무역, 의료위생, 교육 등 분야에 중국동포들이 전근해와 뛰어난 실적을 보이며 자리잡고 있다. 랴오닝(요녕)성 조선족사범학교에서 30년간의 교직을 마치고 하이쿠에 온 허창환 선생은 ‘한국어학교’를 꾸려 이곳 사람들을 상대로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하이난을 터전으로 삼는 한국기업 및 동포도 점차 늘어


이렇게 천혜의 땅 하이난섬엔 여행사, 음식점, 유흥점, 통신 및 수산물가공업 등에 종사하는 중국동포와 한국동포가 약 400여명에 이른다. 1990년대 후반 한국과의 항공편이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 관광업 관련 업종이 30여개로 주를 이루고 있다.

2004년도 한국 관광객은 약 6만명(외국관광객 가운데 1위)이었으며, 2005년 9월 한국과의 항공편이 추가 개통돼 한국 관광객이 연간 10만명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된다.

관광업과 시내 음식점, 유흥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말고도 하이난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아 찾아드는 한국동포도 늘고 있다.

 

몇해 전 관광을 왔다가 이곳 열대농장에 눈독을 들여 투자에 나선 김용선(54)씨. 경남 진주 출신인 그는 산야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산지 350여무(1무는 중국평수로 약 1000평, 한국평수로 약 300평 정도, 미국 평수로 약 1아르, 30년 임대)를 개간한 망고농장 주인이다. 중국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도전하는 바람에 정착하는 동안 여러 차례 돈을 사기를 당하며 좌절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곳에서 알게 된 연변 출신의 중국동포 도움으로 농장을 일군 뒤 특히 재배가 어렵다는 파파야재배기술까지 터득했다.

 

한국 기업의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2004년 첨단기술을 갖춘 ‘삼성광케블’이 하이쿠보세구에 생산기지를 건설해 터를 닦은 이후 한국기업의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액이 5억위안에 이르는 이 회사는 연간 실적이 5.4억위안을 넘어 하이난성 정부의 각별한 관심 속에 최우혜정책 특혜를 받고 있다.

 

또 최근엔 하버드대 출신인 이동우 공룡박사가 “하이난 티엔아이하이커(천애해각) 쪽엔 공룡 발자국이 엄청 많은 등 이곳이 공룡의 집단 서식지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공룡테마파크 및 전시관 건립을 하이난성 정부 관계자와 논의하고 있다. 이 박사는 미국에서 쥬라기공원 영화에 사용된 공룡 모형을 제작해 납품한 팀의 일원으로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22차례 공룡전시회를 연 공룡 전문 큐레이터이다.

 


최근 부동산 투자 붐에 동포들의 참여도 두드러져

 


최근 하이난섬이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 개발 붐이 일면서 아파트 등에 대한 투자가 붐이 일고 있다. 특히 상해와 선전 등지의 부자들이 별장으로 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주택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몇해 전부터 동북지역 중국동포들이 하이난 관광길에 오르며 이 지역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철 모진 추위가 넉달 넘게 이어지는 북방에 비해 온화한 기후에 아늑한 해변경치 그리고 요양지를 방불케 하는 거주환경에 매료된 동포들은 앞다퉈 아파트를 사서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한국동포들도 골프관광과 휴양 등을 위해 이곳에 투자에 나선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해마다 10월에 와서 이듬해 3월까지 머물며 지내는 동포들이 늘어 이곳 동포들과 함께하는 명절모임, 해변놀이를 벌이는 등 한겨레 나름의 전통과 문화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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