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이민 초기 선조들이 갖은 고초와 박해 가운데 이곳 황무지와 습지를 개간해 생명의 양식인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논을 만들어나가고, 민족 정신의 양식인 ‘우리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세워나가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우리 민족과 떼어 이를 수 없는 것이 바로 ‘쌀’이요 ‘우리말과 글’이다.
이 쌀을 얻기 위해 선조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이 땅에 들어와 죽을힘을 다해 춥고 메마른 벌판에 물을 끌어다 ‘논농사’를 지어 벼 재배 북방 한계선을 새로 그으며 정착에 성공해 오늘에 이르렀다.
벼 농사법으로는 모내기와 바로뿌리기(직파)가 있다.
쉽게 옮겨 심을 수 있는 벼의 특징을 이용해 못자리에서 기른 모를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는 수리 시설을 제대로 갖춰야 하고, 모판 만들기, 육묘, 모내기 등에 따르는 노동력과 농자재 비용이 더 들어가는 단점이 있는 반면, 바로뿌리기에 비해 모를 못자리에서 집중 관리․보호할 수 있으며, 옮겨 심을 때까지 논을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고, 논에 물 대는 기간을 줄여 관개수량을 절약할 수 있으며, 벼 재배 관리와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모내기가 널리 보급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논에 물을 대고 바닥을 고른 다음 볍씨를 뿌리거나, 밭 상태의 논을 고르고 볍씨를 뿌리는 바로뿌리기 방식을 이용했다. 최근 들어 농촌의 노동력 및 규모화 문제로 바로뿌리기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잡초 없애기, 벼 쓰러짐, 적은 소출 등의 난제가 많은 재배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한겨레 사회 어디까지 왔나’ 특별기획을 취재하면서 우리 ‘민족의 모내기’가 성공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 <벼>의 배경인 이민 초기 개척시대엔 우리 선조들이 이곳에 난제가 많은 ‘바로뿌리기’ 방식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면, 오늘날 광동, 화동, 산동지역 등 연안지역에 대거 진출한 중국동포와 한국동포들은 비교적 좋은 여건을 갖추고 큰 장점을 가진 ‘모내기' 방식으로 새로운 한겨레 사회를 형성해나가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 기업과 중국동포의 진출이 서로 맞물리면서 마치 ‘이앙기’를 갖춘 기계화 방식으로 모심기를 하는 것처럼 민족의 터 잡기가 더욱 수월해지고 빨라진 모습을 보여 한겨레 사회에 대한 전망을 무척 밝게 했다.
앞으로 중국 전역에 뻗어나갈 성공적인 민족의 모내기를 위해서는 좋은 모를 길러내는 ‘못자리’의 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설 <벼>에서 못자리에 대한 해답도 찾아볼 수 있다.
그 못자리는 바로 불타 없어져도 다시 세운 학교 즉 ‘우리말과 글‘을 지켜나가는 민족 정신일 터이다. iwbbac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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