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균 광둥조선족기업가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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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균 광둥조선족기업가엽합회 회장(오른쪽), 왼쪽은 연합회 상무부회장이며 비서장인 김용씨. |
“중국 대륙 땅끝에서도 같은 핏줄끼리 결혼하고 싶어 하고, 된장국에 쌀밥을 말아먹고 싶어 하며,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향수를 간직한 동포들이었습니다.”
2003년 10월 ‘광둥 중국동포 체육대회’ 행사를 치르며 느낀 최용균(41, 사진) 광둥조선족기업가연합회 회장의 이곳 동포에 대한 감회다.
“많은 동포들이 연합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동포모임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은 내실을 다질 때입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이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실무진을 구성해 동포들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내실 다질 때...청사진 마련 뒤 실천할 터
연합회 현황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조용하면서도 야무지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그의 태도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품성을 느낄 수 있었다.
1986년 헤이룽장(흑룡강)성 하얼빈공대를 졸업한 뒤 이곳에 국가배치를 받아 선전공업발전총공사에 근무를 하다 독립한 그는 지금 전자신호를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가진 ‘심천승합테크놀로지’ 총경리(사장)로 성공한 기업가로 자리잡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진흙탕 바닥에 천막집과 판잣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며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오늘의 선전이 많이 발전했다”고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오늘의 중국을 이뤄낸 개혁 개방시대 초기 정착민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심천에는 중국 전역에서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일본기업이 들어오면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조선족들이 취업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한국기업이 몰려오면서 본격적인 진출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선전과 광저우를 중심으로 중국동포가 수만명에 이르면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중국동포들이 늘어나다보니 현지 한족을 중심으로 동포에 대한 좋지 않는 면만 들춰내는 일이 일어났다. ‘모두들 교회에만 모여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술을 마시고 싸움질을 한다’ ‘질이 낮은 사람들만 와 있다’는 둥 근거도 없고 터무니없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중국동포 이미지 개선 위해 기업가연합회 만들어
“2003년 초 중국동포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뜻있는 기업가들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연합회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광둥조선족기업가연합회’의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젊은 기업가들이 동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한 기업가 모임은 선전에서 주도하고 이후 광저우와 둥관, 혜주 등에서 자연스럽게 합류해 연합회로 만들어져 현재 10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연합회는 지부별로 축구팀을 조직해(현재 15개 축구팀) 매주 축구시합을 하며 회원 간의 우의를 다지고 있다.
그는 “연합회가 구성된 뒤 가장 먼저 한 행사가 이곳에 퍼져 있는 조선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없애기 위한 ‘중국동포 체육대회’였다”고 말했다.
“2003년 10월1~3일 열린 운동회는 대성황이었습니다. 광둥지역에 흩어져 있던 5만명의 동포 가운데 5천여명이나 모여들었죠.” 그때의 엄청난 열기를 전하며 동포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내일의 중국동포 사회를 구상하는 그의 자세에서 민족의 앞날을 밝게 점칠 수 있었다.
시급한 민족 교육 및 문화 활동 적극 지원 방침
그는 또 “동포들이 몰려들면서 아이들 교육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으나 우리말과 민족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시설이나 기관이 전혀 없다”며 “앞으로 이를 위한 단체나 개인이 나서면 연합회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곳에 함께 살고 있는 한국동포와의 교류와 관련해 “현재 한국인(상)회와는 각종 행사에 서로 초청을 하는 등 비공식적 교류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업운영 차원에서 좀더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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