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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곧 그의 얼굴인 시인
- 한영남의 특집 인상
장춘식
글을 통하여 한영남이라는 이름을 안건 꽤 오래 되였지만 정작 만나본것은 최근의 어느 문학상시상식장에서였따다.시상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서도 그는 줄곧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조금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요즘 문학인의 모임치고는 보기드문 풍경이였다. 그만큼 그는 문학에 푹 빠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짙게 받았던것이다. 이번에 쓴 글들을 읽어보니 그 런 인상이 어느 정도 현실로 느껴지기도
한다.
옛사람들도 시언지(诗言志:시는 뜻을 표현한다)라고 했으니 글속에 글쓴이의 사상이나 성격,기호,의식 등 개인적인 모습이 나타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그러나 한영남처럼 글이 곧 그 얼굴인 시인은 그리 흔치 않은것 같다.
나는 한영남에 대해 잘 모른다.최근에 한번 만난외에는 작품도 별로 읽지 못했다.그러나 그의 창작소감<<바람아 불어라 나는 간다>>를 읽으면 그냥 일문지하(一文之下)에 인간 한영남, 그리고 시인 한영남을
다 알아버린것 같은 느낌이 든다.그 만큼 글속에 글쓴이의 성실성과 진지함이 배여있다는 말이 되겠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서 한 시인으로,작가로 성장하는 동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스승과 ,친구와 문우들,그리고 문학사조들,선배문인들의 두루거론됨으로써 오늘의 시인 한영남이 있게 되기까지 그에게 밑거름이 되괴 자양분이 된 모든 요인들을 솔직담백하게 고백하고있는것이다.
그러한 성실성과 진지함은 수필에서도 잘 드러난다.<<애연가의 정조>>에서 한영남은<<애연가들은 나름대로 스스로<정조>를 지키는데 대개 상식이다.비싸든 싸든 나는 이 담배만 피운다는 고집을 내세우고 열심히 한간지 담배만을 선호>>한다고 하고는 자기만의 흡연습관을 자백한다. <<남들이 중시를 돌리지 않던 이른바 새로운 담배들을 찾아다녔다.>>는것.어쩌면 수집가적인 취미인지도 모르지만 새로 나온 ,혹은 남들이 보지못한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고 친구들이 모인 장소에 갔따가 척 내놓으면 모두들 첨 보는 신기한 눈매로 담배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의 눈길을 바라보는 나는 무슨 큰일이나 한것처럼 속이 후련해나기도 했따.>>는것이다. 담배의 맛보다는 담배에 관련된 문화에 애착하고 있다는 말로 리해해도 무방할것이다.그러나 그러한 흡연습관은 혹 희신염구 즉 낡은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한다ㄱ는 비난을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일까? 한영남은<<담배에 대한 배신은 상상할수도 없다./그리고 담배에 대한 정조는 절대로 지키지 않는 반면 내 삶의 정조를 꾸준히 지키면서 살아갈 작정이다./시에 대한 내 애정만큼이나 담배를 사랑하니깐.>>라고 수필을 끝맺는다. 담배에 대한 사랑과 시에 대한 애정을 등치시킨 반면에 흡연습관에서의 희신염구와 삶에 대한 정조지키기는 대조시킨다. 앞의 창작소감과 련관시켜 생각해보면 한영남에게 있어 시 혹은 문학과 삶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할수가 있다.
그러한 문학=삶의 이미지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주인공이 문학에 인생을 맡긴 남성으로 설정되여있는것이다.<<여기까지 서놓고나서 그는 이게소설이 될수 있겠냐고 머리를 갸우뚱 했따.그래서 이웃에 앉은 동료인 선미양한테 틈을 타서 슬쩍 보여주며 의견을 들었다.>>소설에 나오는 이런 문장들도 같은 분위기를만들어준다.그런데 이런 소설의 분위기는 <<그런데 언젠가 쓰기 시작했떤 소설이 하나 미완성으로 남았길래 그걸 정리하면 될듯싶어서 다시 읽어보았따.그래서 완성된게 <섬둘레 가는 길>이다.>>라는 <<창작소감>>의 술회와 맞물려 작가가 지금 소설을 쓰고있음을 독자에게 반복 각인기켜준다.이런 서사기법은 한영남이라는 작가본읜의 삶과 문학의 일치성을 강조하는 의미외에 문학은 곧 삶의 표현이라는 객관적인 의미를 독자에게 일개워주는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설은 그렇게 독자에게 고백하고나서 다시 기자인 작가 한영남의 직업적인 삶과 결ㄴ결시킨다.자신이 작성한 톱기사가 부장이나 총편집선에서 부정되였을때 뚫린 구멍을 메꾸느 자신만의 비결 ,즉<<톱기사2세>> 비법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그러던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 정신팔을 여러번 들먹이며 <<강원도>>라는 두리무실 삶의 법칙과 섬을 탈출하려는 정신팔의 탈출 욕구가 그것이다.그러나 섬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정신팔의 탈출욕구는 섬을 탈출해봐야또 섬일 뿐이라는 <<강원도>>의 지적에는 힝없이 무너진다.그래서 아마 소설제목이 <<섬둘레 가는 길>> 로 되여있는지도 모른다.기껏 답답한 삶을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알고보니 자신이라는 섬과 다른 사람이라는 또다른 섬이 근접한<<섬둘레>>에 위치한 상태라는 것이다.그리고 소설에는 <<어처구니들의 이야기1>>라는 부제목이 달려있다.
우리 삶의 참모습이 그러하다는 말로 리해해도 무방할것이다.어디 가서 돈벌이하며 굴러다니다가 나이 들어 멋부리며 편히 살고자 신문사 기자가 되여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신문사 상하 모두를 매수하는, <<시시한 인간>> <<강원도>>지만 그래도 원칙있고 지조있게 산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어딘가 통하는데가 있어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다는것. 이것은 우리의 현재 삶이 그렇고 그렇다는 말이나 다름이없다.현재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인생관이 투영된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삶을 달갑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담배와 더불어 묻어나는 라이타는 분명 어떤 노래방 전화번호가 또렷하게 밝혀져있는 선미양만치나 예쁘장하고 말쑥한 새 라이타였다.>>라느 결구의 표현에서 우리는 이점을 확인할수 있다.일회용라이타를 달포나 쓸 정도로 변해버린 정신팔이라는 주인공이 다시 헤픈 정신팔이로 되돌아갔기때문이다.
사실 소설의 앞부분에 나오는 주인공의 헤픈 씀씀이에 대한 묘사는 일종의 장치라 할수 있다.<<그는 돈이란 필요이상도 필요이하도 아닌 존재로 알고있었따.>>는 표현은 주인공의순수에의 지향ㄹ성을 드러낸것이고 일회용라이타를 달포나 썼다는것는 그런 수수에의 지향이
흔들린다는 말이 될것이다.소설의 이야기가 그 라이타이야기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 낡은 일회용라이타를 잃어버리고 새 일회용라이타를 얻는다.<<강원도>>의 두리뭉실 론리에 끌려가는것 같다가 다시 순수에의 지향을 되찾아가는것이다.
이른바 시장화사회에서 문학인이 겪는 갈등은 세속적인 삶과 순수에의 지향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그런 문학인의 심적인 갈등을 직접 드러낸것이 이 소설이다.그런 문학인의 심적인 갈등을 직접 드러낸것이 이 소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문제느 있다 .갈등을 객관화 시키지 못한것이다.한영남이시인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것인지도 모른다.주제의식을 사건속에 용해시키지 못하고 기본적으로는 서술자의 심리적인고백을 통해 표현한것이다.거기에 다분히 시적인 구조와 은유의 결합이 가미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소설이라기보다는 산문으로 쓴 서사시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이 작가의 숙제가 될것이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로 되돌아와사 보면 한영남은 원래 그런 시인인지도 모른다.글이 곧 그의 얼굴인 시인,혹은 글속에 그자신이 통채로 드러나는 시인이 한영남인것이다.
얼마전에 만났던 한영남의 인격과 여기 올라온 글 세편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할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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