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9월 28일에 강서성 영신현 향신에서 하환문의 맏딸로 출생한 하자진(贺子珍)은 원명이 계원, 자진(自珍)이다. 1926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녀는 영신현공청단위서기, 중공길안현당위 부녀운동위원회 서기직을 담임하다가 1928년에 정강산에서 모택동과 결혼했다. 하자진은 모택동과 결혼하여 3남3녀를 낳았는데 그중에서 리민이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자녀이다.
하자진은 1929년 3월에 맏딸 양월화(원명 모금화)를 낳았는데 후에 전투에서 후퇴하면서 황망히 한 백성의 집에 맡겼다가 1973년에 찾았다. 하자진은 1930년에 남자아이를 낳았지만 요절되였다. 그후 1932년 11월에 모안홍(모모)을 낳았는데 장정을 하기전에 한 백성의 집에 맡겼는데 모택담이 사망된후 행방불명이 되였다. 하자진은 1935년 2월에 딸 왕수진을 낳았는데 장정도중에 행방불명이 되였다. 그 이듬해 하자진은 딸 모교교(리민)을 낳았다. 그후 1937년에 모택동과 리혼하고 이듬해 10월에 모스크바에 가서 아들 료와(로씨야이름)를 낳았는데 얼마 안되여 요절되였다. 하자진은 만년에 병으로 상해에서 치료를 받고있다가 1984년 4월 19일 17시 17분에 사망되였다.
1953년 3월에 강서성 성장 소식평은 중공중앙조직부 부부장 안자문이 북경에서 보낸 긴급전보를 받았다. 전보는 1934년 10월에 서금의 백성에게 맡겨놓았던 모택동의 아들 모모를 찾아줄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였다. 전보문을 읽은 소성장은 얼마전에 상해에 거주하고있는 하자진도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서금에 두고온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하자진은 아이의 아명을 모모라고 지었다. 장정을 시작하기전에 하자진은 모택동의 동생 모택담에게 부탁하여 모모를 당지의 백성에게 맡기게 했다. 모택담과 하자진의 녀동생 하이는 부부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택담은 조카를 한 백성의 집에 맡겨놓은후 전투에서 사망되였다. 모택담이 사망되였기에 모모가 어느 지방의 어느 백성의 집에 맡겨놓았는지 하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이는 언니의 아들을 찾으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하이는 모모를 찾으려가다가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되였다.
소식평은 즉시 서금적의 로홍군인 강서성 민정청 청장 주개전을 불러 모모를 찾는 임무를 맡겼다. 주개전은 또 우대무휼처의 청년간부 왕가진을 불러 모모를 찾는 임무를 맡겼다.
서금에 도착한 왕가진은 먼저 서금현의 현장과 부현장 그리고 홍군 녀전사 황장교를 찾았다. 사흘후 서금현 현장 류휘산은 로홍군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17명의 로홍군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저마다 당시의 정황을 회상해보았다. 그들은 홍군이 장정을 하기전에 어떤 홍군간부가 어느 백성의 집에 아이를 맡겼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모모가 어느 곳에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있었다.
왕가진은 촌마다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달반이나 되는 동안 70~80개의 촌을 돌아다녔지만 모모의 향방을 찾지 못했다.
그후 왕가진은 서금현당안관에서 력사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는 1934년의 《서금현지》에 “공산당의 괴수 모적(毛贼) 택동이 아들을 서금의 마을에 맡겼다”는 기록을 보고 모모가 확실히 서금에 남았다는것을 확신했다.
어느날 엽평향정부에 거주하던 왕가진은 두 농민과 한담하다가 주방촌의 주성태농민이 당년에 홍군의 아이를 부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왕가진은 이튿날에 주성태의 집으로 찾아갔다. 주성태와 그의 안해 황월영은 1934년 9월말에 자신들이 홍군의 아이를 맡아서 키웠다고 대답했다. 국민당이 쳐들어오자 주성태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 아이의 이름을 길에서 주어왔다는 뜻으로 “도래(道来)”라고 지었다. 그들은 19년동안 주도래를 자신들의 다섯 친자녀보다 더 애지중지 키우면서 중학교까지 공부시켰다. 그런데 두달전에 그들부부가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남경에서 왔다는 주월천이라고 하는 중년녀인이 남경군구공군사령부의 소개신을 가지고 와서 모모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데려갔던것이다. 주월천의 남편은 중앙쏘베트구역 순시원이였던 곽보청인데 1933년 2월에 복건성 녕화에서 사망되였다. 주월천도 아이를 서금에 맡겨놓았는데 이번에 서금현 민정부문의 일군과 함께 주성태네 집에 찾아와서 다짜고짜로 주도래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남경으로 데려갔다.
왕가진은 세심한 사람이였다. 그는 주성태부부에게 주도래의 사진이 있는가고 물어보았다. 황월영은 주도래가 방금 남경에게 부쳐보낸 사진이 있다면서 왕가진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진을 본 왕가진은 깜짝 놀랐다. 사진의 주도래는 모택동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너무 흡사했기때문이다. 황월영은 주도래의 편지도 보여주었다.
주도래는 편지에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너무 그립다고 하면서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집으로 가서 이전처럼 당신들과 함께 살고싶어요. 남경의 어머니는 절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녀동생만 고와해요. 녀동생도 나를 촌티가 난다면서 싫어해요”라고 썼다. 왕가진은 의심스러웠다. 그 남경의 어머니는 오래동안 헤여졌던 친아들을 찾았는데 왜서 랭대하는걸가? 도래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것을 발견하고 그런 반상적인 행위를 저지르는것은 아닐가? 주도래는 분명 모택동을 닮았는데…
세심한 왕가진은 또 주월천이 도래를 데려갈 때 도래가 아기때 입던 옷을 가지고갔는가고 물어보았다. 황월영은 남경에서 온 녀인은 이전에 도래를 맡길 때의 물건을 하나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도리대로 말하면 그렇게 귀중한 력사물증을 어머니가 가져가지 않을수 없는 일이였다. 왕가진은 의심스러운 점을 성민정청의 주청장에게 회보했다. 주개천청장은 이 일을 소식평성장에게 회보하고 소식평성장은 또 전보로 중앙조직부에 회보했다. 중앙조직부에서는 왕가진과 황월영에게 남경으로 가서 주도래를 데리고 하자진이 있는 상해로 가라는 임무를 맡겼다. 하자진이 직접 주도래를 보고 확인할수 있게 하려는것이였다.
왕가진은 서금에 가서 황월영을 데리고 함께 남경으로 가서 주도래를 찾았다. 1953년 6월중순의 어느날, 왕가진과 황월영이 주도래를 데리고 상해경비구에서 방공사령원직을 맡고있는 하자진의 오빠 하민학의 안내를 받으며 상해에 있는 하자진의 거처로 갔을 때 하자진은 첫눈에 모모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모모예요! 나의 모모예요”하고 말했다.
하자진은 1932년 11월에 복건성 장정복음병원에서 모모를 낳을 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산후 14일후 아들을 보러온 모택동은 “아이의 이름을 모안홍이라고 하고 아명을 모모라고 합시다”고 말했다. 황월영이 모모를 맡았을 때 모모가 입었던 아기옷을 보여주자 하자진은 자신이 직접 한뜸한뜸 바느질하여 지은 옷이 맞다고 확인했다. 하민학이 모모를 데리고 부대의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본 결과 혈형도 하자진과 똑같았다.
모모의 신분이 특수했기때문에 모모는 10여일후 북경에 있는 중앙조직부의 초대소로 호송되였다. 초대소에서 모택동과 하자진의 딸 리민은 아버지의 모습을 그래도 빼여닮은 모모를 보자마자 친절하게 “오빠”라고 불렀다. 주은래, 주덕, 사각재, 동필무 등 중앙쏘베트구역에서 전투했던 로혁명가들과 등영초, 강극청, 사맹기(帅孟奇) 등 녀성혁명가들이 선후로 모모를 찾아보고는 모두 모택동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똑 같다면서 기뻐했다.
그런데 이 일을 알게 된 남경의 주월천이 중앙조직부의 초대소로 찾아와서 “주도래는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을 다른 사람이 데려가면 난 여기서 목을 메여 죽을테야”하고 울고불며 떠들어댔다. 그 바람에 이 일을 더 “확인”해야 했기때문에 주도래는 모택동이나 하자진에게로 가지 못하고 사맹기의 저택에 들어갔다.
주도래는 그해 9월에 청화대학부속중학교에 들어가 공부했고 1957년에 시험에 합격되여 청화대학에 입학했다. 졸업후 그는 국방과학연구단위에 배치되여 과학연구에 종사했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1966년 하반년에 문화대혁의 폭력투쟁이 시작되였을 때 주도래는 남경에서 폭력배들에게 맞아 사망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황월영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럴줄 알았더라면 그 아이를 북경에 보내지 말았을걸 그랬어. 우리 집에 남아서 농사나 지었더라면 목숨만은 살아있었겠는데”하고 한탄했다.
주도래가 누구에게 맞아죽었는가 하는것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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