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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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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이 리종인을 암살하려고 한 내막
2014년 10월 18일 15시 53분  조회:6274  추천:3  작성자: 넉두리

장개석이 리종인을 암살하려고 한 내막

 
(번역)




 
 
1948년 11월 2일에 동북해방군은 료심전역에서 동북국민당군 47만여명을 섬멸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해방군의 사상자수는 6만 9000여명밖에 안되였다. 며칠후 국민당중앙정치위원회 비서장인 진포뢰(陈布雷)가 자살했다. 국민당의 제1문필가로 불리우는 진포뢰는 장개석의 모사였다. 장개석은 료심전역에서 참패당하고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진포뢰가 사망되자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했다. 게다가 리종인(李宗仁)의 계계(桂系)세력이 점점 커지고있었다. 장개석은 재삼 생각하던끝에 가장 큰 장애인 리종인을 제거해버려리고 마음먹었다. 비록 리종인은 20여년을 금란지교(金兰之交)로 지내오던 절친한 사이였지만 장개석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사정없이 제거해버릴 각오가 되여있었다.
얼마 안되여 국민당 국방부 보밀국 운남정보소 소장 심취는 보밀국 국장 모인봉이 보내온 긴급전보를 받았다. 즉시 남경에 와서 새로운 임무를 접수하라는 명령이였다. 심취가 남경에 도착한 그날 오후에 모인봉은 초대소에서 그에게 리종인을 암살하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다음 모인봉은 심취를 데리고 남경중앙군관학교에 있는 장개석의 저택으로 갔다. 장개석은 두 사람에게 임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말하고나서 비밀을 절대 밖에 루설해서는 안되며 행동을 시작하면 꼭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개석은 왜서 리종인을 제거하려고 했는가? 원래 장개석과 계계(桂系)는 합쳤다 헤여졌다 하면서 여러가지 모순이 서로 겹겹하게 얽혀있었다. 1927년에 장개석이 남경정부를 건립한후 독제를 실시하면서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바람에 다방면의 불만을 일으켰다. 그때로부터 장개석과 계계의 관계는 날따라 악화되였다. 당시 계계군은 남경사방의 세력을 통제하고있었다. 백숭희(白崇禧)는 공개적으로 장개석에게 대들면서 장개석이 하달한 무한작전명령을 거절했다.
장개석은 다시 일어선후 계계의 대부분 군사력량을 와해시켰다. 그후에도 장개석과 계계의 다툼은 끊임없이 계속 되였다. 계계는 광서일대에서 세력을 키우면서 다시 일어설 기회를 노렸다. 1930년에 풍옥상(冯玉祥)과 염석산(阎锡山)이 련합하여 장개석을 반대하자 계계도 풍옥상, 염석산과 합작하여 장개석을 반대했다. 하지만 후에 장학량이 봉계(奉系)군을 거느리고 와서 장개석을 돕는 바람에 성세호대하던 반장개석련맹은 실패하고 말았다.
1936년 6월에 광동에 둥지를 틀고있던 월계(粤系)군의 대표 진제당(陈济棠)은 장개석이 항일하지 않는다는 명의를 빌어 계계와 련합하여 장개석을 반대했다. 1937년에 전국에서 일치하게 항일해야 된다는 형세에 따라 계계는 장계석의 중앙군에 귀의했다. 1948년 3월에 위기를 맞은 국민당은 제2기국민대표대회를 열고 민주헌정(宪政)을 실시하기로 함과 아울러 헌법규정에 따라 대통령을 선거하고 대통령제를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은 이미 장개석으로 정해놓았기에 대통령선거는 형식뿐이였다.
장개석은 “부대통령후보는 국민당중앙에서 지명한다”고 규정했다. 리종인은 중국주재 미국대사 스튜어트(司徒雷登)의 지지하에 부대통령선거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리종인이 부대통령선거에 참가하는데 대해 장개석은 처음에 태도가 애매했다. 리종인은 장개석이 동의했다고 오해하고 선거사무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런데 장개석은 갑자기 손과(孙科)를 부대통령후보로 지명했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국민당의 중요인물을 내세워 리종인이 선거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리종인은 포기할수 없다고 강경하게 태도를 표시했다. 그러자 장개석은 직접 리종인을 찾아가서 선거를 포기하라고 말했다. 리종인이 그럴수 없다고 하자 장개석은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지하지 않으면 당신은 당선될수 없소. 그러니 주동적으로 포기하는게 현명한 선택이 될거네.”
“그야 두고봐야 알지요. 제가 꼭 당선될겁니다!”
리종인은 강경한 어조로 대답했다.
장개석은 유명한 독재자여서 부하가 자기의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데 리종인은 장개석의 앞에서 언성을 높였을뿐만아니라 감히 그의 뜻을 어기기까지 했던것이다. 결국 리종인은 선거에서 4차의 투표를 통해 손과를 이기고 부대통령으로 당선되였다.
리종인이 당당하게 장개석과 맞설수 있은것은 미국의 지지가 있었기때문이다. 장개석의 반동통치가 곧 붕괴되려고 하는것을 본 미국은 중국이란 식민지를 잃지 않기 위해 새로운 괴뢰를 내세워 인심을 잃은 장개석을 대신하게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당시에 장강이남에서 의연히 비교적 큰 실력을 유지하고있는 계계를 선택했다. 미국은 계계수령 리종인을 지지하여 부대통령에 선거되게 한후 필요시에 장개석의 후계자로 되게 하려고 했던것이다.
계계가 기세가 등등하여 압력을 가하자 장개석은 자신의 정치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리종인을 제거하려고 결정했다. 장개석이 직접 나서서 심취를 불러 암살임무를 포치한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리종인을 이가 갈리도록 미워했는가를 알수 있다.
장개석의 명령을 받은 특별행동소조에서는 리종인을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주밀하게 세웠다.
당시 계계군의 일부분이 안휘에 있었다. 특별행동소조에서는 광화문외공항부근에 잡화점을 차려놓고 특무를 파견하여 감시하게 하면서 리종인이 비행기를 타고 남경을 떠날 경우 모인봉에게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면 모인봉은 준비해놓고있던 전투기로 공중에서 리종인의 비행기를 격추한후 비행기사고로 위장하기로 계획했다. 리종인 등이 기차를 타고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행동소조에서는 강남역부근에 작은 판자집을 사놓고 특무를 파견하여 담배가게를 차려놓고 그들을 감시하게 했다. 그외 항주로 통하는 탕산부근의 도로옆에 음식점을 차려놓고 도로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게 했다.
특별행동소조에서는 또 리종인의 저택 맞은쪽에 작은 술집을 차려놓고 리종인의 일거일동을 감시했다. 그리고 모인봉은 리종인이 남경을 떠나려는 기미가 보이면 쫓으면서 도중에 저격할수 있도록 속도가 가장 빠른 차량 두대를 특별행동소조에 보내주었다. 장개석은 남경에서 손을 쓰게 되면 꼭 자신의 최후결정을 기다려야 하지만 남경이외의 지방에서 손을 쓸 경우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즉시 사격하라고 특별행동소조에 지시했다.
리종인은 비록 반대분자를 대하는 장개석의 음험한 수단에 대해 잘 알고있었지만 미국이 뒤에서 지지해주기에 장개석이 감히 자신에 대해 경거망동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개석의 본성에 대해 잘 알고있는 계계의 다른 요원들은 장개석의 음모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챘다. 12월 24일에 황소횡(黄少竑)은 상해에 가서 성탄절을 쇤다는 핑게를 대고 남경을 떠났다. 그는 떠나갈 때 정사원(程思远)을 보고 “내가 알건대 장개석과 계계의 관계는 특별히 긴장해지고있는 모양입니다. 만약 두률명(杜聿明)이 거느린 부대가 포위망을 뚫고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장개석은 정치위기를 맞게 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덕공(德公—리종인을 가리킴)의 안전이 위험하게 될수 있습니다. 덕공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그 당시 정사원은 장개석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있지 않을것이라고 여겼다.
1949년 1월에 해방군은 회해전역에서 장개석의 정예부대를 전부 소멸했다. 그러나 아직도 큰 세력을 가지고있는 리종인은 이 기회를 틈타 장개석에게 은퇴를 강요했다. 이때문에 특별행동소조는 가장 긴장한 단계에 진입했다. 그때 장개석은 잠시 은퇴하고 리종인에게 상태수습을 맡길것인지 아니면 리종인을 암살한후 자신이 계속 자리를 지킬것인지를 줄곧 고려하고있었다. 모인봉은 날마다 심취를 불러 장개석이 명령만 내리면 곧 손을 쓸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하고있으라고 명령했다. 당시 심취와 진경천, 왕한문은 모두 독을 바른 탄알을 재운 두 자루의 권총을 준비하고있었다. 이런 탄알이 몸의 어떤 부위에 명중되든 상대는 혈액중독으로 사망될수 있었다. 오덕후도 자신이 세운 낡은 서점에서 암살행동을 엄호하기 위해 톰슨기관총(汤姆逊机枪)과 작탄을 준비하고 대기하고있었다. 만약 리종인이 외출하지 않을 경우에 암살명령이 내리면 그들은 리종인의 저택에 진입하여 저격하려고 계획했다. 만에 하나의 실수도 없도록 하기 위해 모인봉은 남경전등회사에서 일하는 특무 2명을 암살행동에 협조하도록 배치했다. 이 두 특무는 변압기를 수리한다는 구실을 대고 담장밖의 변압기우에 서서 가방에 휴대한 총으로 리종인의 침실, 주방 등을 향해 사격하고 담장안으로 진입하여 저격할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1월 하순에 시국이 더욱 위급해지자 장개석은 내외압력을 이기지 못해 리종인에게 대통령대리직을 맡겨 국면을 지탱하게 하고 자신은 은퇴(隐退)하기로 결정했다. 장개석은 잠시 암살을 중지하라고 지시한후 자신은 옛집 봉화(奉化)에 은거하면서 막후에서 지휘했다. 1월 20일에 모인봉(毛人凤)은 심취(沈醉)를 불러서 특별행동소조의 암살행동을 결속지으라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리종인을 암살하려던 음모는 막을 내리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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