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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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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의 부인 오약란이 사망된 내막
2015년 10월 24일 15시 58분  조회:5678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주덕의 부인 오약란이 사망된 내막
 
(번역)



 
1903년 8월에 호남성 뢰양현의 한 소지식분자의 가정에서 출생한 오약란(伍若兰)은 1925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리고 1928년 3월에 주덕과 결혼했다.
1928년 4월 하순에 주덕의 부대를 따라 정강산에 오른 오약란은 군정치부 선전부장직을 맡았다. 그녀는 선전대원들과 함께 근거지의 매 지방마다 선전표어를 붙이면서 군중들을 동원하여 혁명정권을 건립하고 토지혁명과 무장투쟁을 조직하는 일을 도왔다. 현재 정강산우의 모평촌, 당남촌 등지의 담벽에는 아직도 그녀가 석회물로 썼던 굵직한 표어가 그대로 남아있다. 당지에서는 지금도 그녀가 군중들을 도와 토지를 나누어주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1929년 1월에 광서와 강서의 국민당이 제3차포위토벌을 실시했을 때 오약란은 전적위원회(前敌委员会)의 명령대로 홍4군주력을 따라 포위를 뚫고 산에서 내려와 강서 남부를 향해 출발했다. 그 시기에 홍4군 로농운동위원회 부녀운동회 과장직을 맡고있던 오약란은 험난한 후퇴길이였지만 앞장서서 전사들을 이끌고 선전표어를 붙이기도 하고 자체로 글을 써서 선전하기도 하면서 전체 관병들의 투지를 고무격려했다.
부대는 심오현 수하촌으로 전이할 때 국민당군에 포위되였다. 긴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군부를 엄호하기 위해 주동적으로 권총패를 거느리고 적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다가 불행하게도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적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였다.
국민당군은 주덕의 부인을 포로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 그녀를 강서성의 강주로 호송했다. 적들이 높은 벼슬과 금전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온갖 혹형을 다 가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죽어도 굴복하지 않았다. 적들은 또 주덕과 관계를 끊겠다고 선포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구슬렸다. 그러자 오약란은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고 강물이 꺼꾸로 흐르지 않는 한 주덕과 나를 갈라놓을 꿈도 꾸지 말라”고 소리쳤다.
적들은 그녀의 입에서 한마디도 알아내지 못하자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해 그녀는 26살이였는데 세상에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영웅적 이야기와 그녀의 이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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