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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과 하나의 해동국
2009년 05월 16일 14시 47분  조회:2459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금강산이 <<남문빗장>>을 굳게 닫아버리고 이남의 주인들마저 외면해버리더니 이제 그 문을 활짝 열고 온 세상에 그 아름다움을 수줍게 드러내보일것 같다. 민족의 비운을 가셔버리고 룡왕의 뜻이 다시 동그랗게 이루어질듯한 기쁨속에 두해전에 금강산을 탐승하던 정경이 새삼스레 어떤 민족적인 소망과 아픔과 함께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일제의 구두발에 짓밟혀 만신창이 되여 신음하던 한반도는 독립투사들의 선혈로 상처를 씻었으나 마침내는 세계정치세력의 대결의 희생품으로 두동강이 나고말았다. 세계지도우에서 한반도는 38도선이라는 지리학적인 위도선을 남북동포 서로가 넘을 수 없는 38선이라는 사회장벽으로 다시 그려넣었다. 그리하여 서해안쪽은 지리학적인 38도선보다 조금 내려와 그어졌고 동해안쪽은 지리학적인 38도선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 그어졌다. 하나의 강원도가 38선에 의해 쪼개지면서 금강산과 설악산마저 한 산맥의 정기를 타고났음에도 전장의 망루마냥 서로를 경계하며 대치하고 서있는듯싶다. 아니 세계렬강들은 그 높은 장벽을 허문대도 넘을 수 없는 무형의 <<38선>>을 그어놓았다. 그런데 그 무형의 <<38선>>이 세계 렬강들의 낙서로 그어졌다해도 평화의 반성시대에 들어선 오늘 우리의 자세는 또 어떠한가. 하나의 반도에서 살면서도 생리별의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리산가족들, 다 같은 금강의 정기를 타고났고 금강산맥을 혈맥으로 금강의 맑은 물이 피로 흐르면서도 서로가 반목하고 적대시하는 해동국의 후예들, 우리는 지금까지 렬강들이 정치대결로 낙서한 <<38선>>을 민족의 숙명적인 운명선(命運線)처럼 받아들이고 렬강들이 심어놓은 이데올로기적 대결의식과 눈금자로 서로를 가늠하면서 천하에 용서할 수 없고 포옹할 수 없는 원수처럼 대항적인 눈총을 쏘면서 서로를 비난하고 배척하고 강박하고 괴롭히고 탄핵하고 매를 들면서 대결해왔다. 가정적 의미를 매겨보면 꼭 친형제간에 원수치부해온 것이다. 오, 우리는 천륜을 어긴 대역무도(大逆無道)의 악과(惡果)를 빚고있다. 까마귀도 공문저문날 반포할줄 안다는데 하물며 효로 세상을 경탄켜 한 우리 민족이 한 피줄을 타고난 형제가 반목하는 비극을 공연하고 있으니 이 세상 수치가 아닐손가!
그런대로 지금은 금강산의 <<남문빗장>>을 열고 남북이 손을 잡고 금강산을 개발하고 있으니 이제 그 문을 활짝 열고 주인만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계 제일금강, 아니 유일금강의 아름다운 용태를 자랑하게 되리라. 그러나 아직도 이남의 주인은 금강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 여객일뿐이다. 순위차로 여객선에 올라 무형의 <<38선>>을 에돌아가야만 하는 여객아닌 <<여객>>들의 마음은 얼마나 시리고 아플가. 과연 자연의 극치에 감동하는 희열을 안고 돌아올 수 있을가.
전설에 따르면 산천을 나라마다 나누어주는 바다룡왕의 창고에는 원래 여덟개의 금강이 있었는데 해동국의 사람들은 마음에 티끌하나 없고 무궁무진한 슬기와 용맹을 지니고 있기에 바다룡왕은 열길 깊은곳의 모래알 하나까지 헤일 수 있는 맑은 물과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천태만상의 메부리들로 천하 제일경을 이룬 제일 금강을 해동국에 주었다고 한다. 바다룡왕이 남은 일곱 금강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간에 마음이 보석처럼 다듬어진 다음 찾아오면 내주겠노라고 하였으나 금강산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산천의 정기를 타고난 해동국의 후예들이 금강산과 설악산사이에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높은 장벽을 쌓아놓았다. 룡왕님이 준 복을 서로가 나누지 못하게 둘로 갈라진 해동국, 그것이 안스러운지 금강산과 설악산의 봉이봉이마다에는 그냥 바다룡왕이 한숨으로 토해낸 입김이 자오록이 감돌고있다. 하긴 그래서 바다룡왕이 나머지 일곱 금강은 아예 어느 나라에도 주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제 금강산은 천하에 요행 남은 둘도 없는 제일의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아, 행운이라고나 할가. 비록 금강산과 설악산을 하나의 코스로 이어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한반도의 북단에서 금강산까지, 남단에서 설악산까지 려행하는 자랑을 한 몸에 지닐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뭐니뭐니 해도 금강산 려행은 복 받은 민족의 긍지와 릉욕의 민족적 아픔이 교감하는 력사적 체험으로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진다. 그것은 신선세계에 온 듯한 황홀한 경치와 민족의 분단이라는 현실이달고 쓴 맛이 되는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냥 밝은 마음과 경탄의 심정으로 려행을 할 수 있은 것은 금강산은 과연 세상에서 제일가는 명승이고 이런 산천의 정기를 타고난 <<해동국>>의 후예들은 틀림없이 자기의 무궁무진한 슬기와 깨끗한 마음을 동원하여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금강산의 기상으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었기때문이다.
* * *
우리 일행 넷이 금강산을 찾은 것은 1996년 6월 중순이였다. 우리가 금강산 휴양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해가 잠자리를 찾아 서쪽산길을 막 넘어선 때였다. 우리는 방에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베란다로 달려갔다. 아직 잔빛이 하늘을 밝혀주고 있어 저 멀리로 붓끝처럼 생긴 문필봉이 금방 금강산의 전설을 쓰고난듯 신비를 실은 부드러운 재빛 안개속에 검푸르게 서있고 그 서쪽으로 하관음봉이 팔을 쫙 뻗친 관음련봉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베란다에 서서 금강산에서의 첫 샤타를 눌렀다. 휴양소터가 있는 온정구역은 금강산탐승의 중심지로 되여 있어 이제 전설적인 금강산탐승은 여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먼 려로에 지치고 허기진 몸들이였지만 이날 저녁식사는 모두가 그냥 길을 재촉하는 나그네의 심정이였다. 밥술을 놓자 누구도 방으로 가려는 생각이 없는듯 약속도 없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휴양소앞을 지나는 포장도로를 건너 숲을 빠져나오니 만상계, 한하계를 거쳐 동쪽으로 흘러가는 온정천이 맑은거울처럼 누워있는데 물속의 모래알마저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정갈했다.
우리는 신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부치고 온정천에 발목을 잠궜다. 맑고 시원한 온정천은 장딴지를 적시는 정도로 얕았으나 그대로 금강산의 정기를 실어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고 정신을 분발되게 하였다.
우리는 이날 밤, 래일의 명승지탐승에 흥분된 마음을 달래지 못한채 그만 잠을 설때리고 말았다. 방을 같이 한 나와 임선생은 둘 다 애주가들인지라 아예 기분을 잡아 술을 마시며 밤을 밝혔다.
<<자, 이선남이 금강산을 찾아 밤새도록이 술을 즐기노라.>>
임선생의 풍치있는 말이였다.
<<래일 금강산에 또 이선암이 생기겠네요.>>
내가 슬쩍 받아물었다. 둘은 즐겁게 웃었다.
이튼날 아침, 탐승을 맡은 녀안내원이 우리한테 소개되였다. 장씨성인 녀안내원은 동방 례의지국의 녀성답게 곱게 머리숙여 인사했다.
<<그냥 안내원동무라고 불러주셔요. 오늘 하루종일 탐승하느라면 몹시 지칠거예요.>>
부드러우면서도 <<금강산처녀>>답게 상쾌한 목소리였다.
<<저희들을 위해 수고하시겠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부탁합니다.>>
<<처녀동무, 우리팀에서 이 친구가 유일한 총각이니 많이 보살펴주십시오.>>
임선생이 나를 가리키며 하는 롱담에 녀안내원은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웃더니 활발하게 롱을 받아넘겼다.
<<아니, 저가 보건대는 총각이 아닌것 같은데요. 총각이면 더구나 할 수 없구요.>>
<<건 왜서요.>>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는데 내가 한마디 했다.
<<참, 선생님도 한심합니다. 다 되는 밥에 물붓기가 아닙니까.>>
<<건 또 무슨 말인데?>>
<<제 보건대 말입니다, 안내원동무도 처녀는 아닌것 같은데요.>>
그러자 녀안내원은 또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얼굴표정을 봐서는 알아맞춘듯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이까지 있는 녀자였다. 그런데 금강산의 산수가 좋아서인지 나이보다는 퍽 어린모습이다.
<<아하, 젊은 사람들끼리 맞추는 눈길이 다르구만.>>
알아맞춘다는 뜻인지 애매한 말로 탐복하는듯한 걸직한 롱지거리에 모두들 웃었다. 탐승은 이렇게 출발전부터 유쾌한 기분이였다.
탐승길에서 녀안내원이 천하절승 금강산에 대해 소개하면서 우리한테 들려준 첫 전설이 <<타무왕의 금강산려행>>이였다. 긴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이렇다. 이 세상에 나라가 처음 생겼을 때 먼 남방의 어느 한 바다가 나라의 왕 타무가 신하로부터 멀고도 먼 해동나라 조선에 금강산이라는 천하제일 명승이 있다는 말에 려행길에 올랐다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풍치가 다 펼쳐진 것을 보고 산천을 나누어준 바다룡왕을 찾아가 불공평을 항의하자 룡왕은 <<뜨는 해의 빛이 있어 노을 곱듯이 깍듯한 례의범절만이 맑은 아침과 일맥상통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제일금강은 해동국에 주었으나 아직 일곱개의 금강이 남아있으니 어느 나라 사람이든간에 마음이 보석처럼 다듬어진 다음 찾아오면 기꺼이 내주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해와 달이 수억만번 바뀌였어도 금강산은 아직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인간세상에 하나밖에 주지 않은 금강산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요, 그런 천하절경을 받은 우리 민족은 복 받은 민족임을 자부하는 이야기이다.
조물주의 창조력을 집대성한듯 천태만상을 이룬 기암련봉, 필필이 비단을 풀어내리는 폭포, 현란한 진주보석을 담은듯 조약돌이 깔린 맑고 푸른 담소, 그리고 서늘한 바람에 가슴 깊이까지 흘러드는 푸른 숲의 싱그러운 향기는 과연 선경에 들어선듯한 느낌이다.
보석같은 마음이 있어야 가질 수 있다는 천하절승을 자랑하는 민족, 그 산천의 정기를 타고나 무궁무진한 슬기와 용맹을 떨치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한편 나머지 일곱개 금강을 더는 인간세상에 주지 않은 바다룡왕의 마음은 무엇일가 하는 궁금증도 마음 한구석에 찾아든다.
녀안내원이 계속하여 들려준, 신계사의 종소리와 요지경같이 천변만화하는 금강산의 황홀한 경치에 앞못보던 소경이 빛을 보고 적막강산이던 귀머거리가 소리를 듣고 <<꿀먹은 벙어리>>가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였다는 <<극락고개전설>>, 박씨로인이 만냥산삼을 캐여 그 돈으로 밭을 사고 과수원을 마련하여 금강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도왔다는 <<만냥골에 깃든 이야기>>, 금강산도사가 욕심사나운 공지주놈을 망하게 하고 그가 만들어보낸 매가 지금도 금강산으로 들어오는 첫 입구에 있는 낮은 봉우리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는 <<매바위전설>>들은 금강산은 마음이 보석처림 깨끗하고 신선한 생령들만 살고있는 성스러운 곳임을 말해주며 금강산을 찾은 속세의 인간들에게 모든 영욕과 욕심을 버리고 금강의 정기를 받아 보석처림 깨끗한 마음을 가질 것을 예쁘게 일깨워준다. 찾아온 사람마다 금강의 성스러운 기상을 보고 가슴우에 손을 얹게 되는 것이니 동해국 사람들의 수정같이 깨끗한 마음을 헤아려 제일 금강을 보내준 바다룡왕이 더는 인간세상에 금강을 주지 않은 결론에서 어떤 실착감같은 것을 읽을 수 있을듯 싶어 괜히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련주담의 물처럼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금강의 폭포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녀안내원의 금강산전설을 듣노라니 우리는 그냥 선경을 거니는 황홀한 기분이였다.
<<저기 저 옹달샘이 망장천옹달샘이래요.>>
녀안내원이 갑자기 손을 들어 깎아지른듯한 바위를 가리키는 바람에 우리의 시선은 그리로 쏠렸다. 바로 앞에 깎아지른듯한 바위가 초병처럼 앞을 막아섰는데 그 바위중턱의 틈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새여나와서는 옹달샘을 이루고있었다.
여기에는 먼 옛날 금강산에서 쇠바위라는 총각과 어여쁜 옥분이라는 처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살다가 어느덧 일흔살이 되여 허리가 굽고 다리힘이 빠져 지팽이를 짚게 되였는데 이 옹달샘을 마시고 다시 청춘이 되여 함께 오래오래 잘 살았다고 하는 <<지팽이를 잊어버리게 한 샘>>이라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아, 우리도 젊어져 본다.>>
우리는 네 한모금 내 한모금 맑고 시원한 샘물을 받아마셨다.
<<자네같은 젊은이가 마시면 아예 어린애가 되고 말텐데.>>
임선생이 나를 놀려주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동심이 되고싶은 마음인데요.>>
세속의 때를 다 씻어버리지 못할바엔 차라리 다시 깨끗한 동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네 안해가 알아주지 않을라구.>>
<<동심을 찾은바에야 그냥 여기서 살지요, 인간세상에 내려가면 또 오염되고 말겠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옥분이같이 예쁜 처녀도 없는데 그러다가 총각으로 늙으면 어쩔라구.>>
<<안내원동무도 한모금 하시지요.>>
나는 임선생의 롱을 슬쩍 피해 능청스럽게 안내원한테 롱을 걸었다.
<<그러다가 어린애가 되면 어쩔라구요.>>
<<하하, 자네가 그만 김치국부터 마셨구만.>>
임선생은 내가 보기좋게 꼴먹었다고 손가락질 했다.
<<아니, 그런데 선생님은 벌써 흰머리가 없어지고 이마의 주름살도 펴졌습니다. 이거 야단났네요. 집에 돌아가면 사모님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네 한마디 내 한마디 우스개를 하면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옥류동의 입구인 <<금강문>>에 채 가지전에 휴식터가 있어 우리는 여기서 잠간 숨을 돌렸다.
<<저 앞에 바라보이는 것이 세존봉인데 웅긋쭝긋한 봉말기마다 기암괴석이 여러가지 모양을 나타내고 있어요. 저기 저 바위가 무슨 모양을 나타내는지 어디 한번 맞춰 보세요.>>
녀안내원이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바위 하나를 가리키며 우리 일행에 물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러가지로 맞춰보았으나 그냥 맞춰내지 못했다. 이리저리 뜯어보던 내가 어쩌면 토끼같네요 하자 녀안내원이 손벽을 쳤다.
<<맞았어요. 하긴 젊은분이 다르시군요.>>
<<제가 망원경을 걸었지 않았습니까>>
나는 내가 건 안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머리쪽은 토끼처럼 두 귀가 뻘쭉한데 몸은 거부기처럼 넙죽하여 신통치가 않군요.>>
그런데 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녀안내원은 손벽을 치며 탄복했다.
<<정말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여기엔 <처벌받은 토끼>라는 토끼바위전설이 있어요.>>
그러면서 녀안내원은 우리한테 이 바위에 깃든 그럴듯한 전설을 재미나게 들려주었다. 금강산이 천하절승이라는 소문이 하늘 나라에까지 전해져 선녀들이 팔담에 내려 목욕을 하고 옥녀세두분에서 곱게 얼굴을 다듬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성미 급한 토끼가 옥황상제한테 절절한 소원을 터놓아 마침내는 승낙을 받았는데 금강산에 내려온 토끼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그만 보름달이 되기전에 돌아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노한 옥황상제는 예전에 달리기에서도 룡궁의 거부기한테 진 토끼를 거부기몸집에 토끼머리모양을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대개는 이러한 전설이였다.
청산류수마냥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고난 녀안내원은 이렇게 말끝을 맺었다.
<<토끼는 옥황상제의 처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달나라에서 고달프게 절구를 찧고있는 것보다는 절승경개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그리하여 세존봉중턱에 꿇어앉아 금강산의 경치에 심취된 토끼는 날이 가자 그냥 그대로 하나의 바위로 굳어지고 말았어요.>>
너무도 그럴듯한 전설에 우리는 손벽을 치며 찬탄했다.
<<참 멋지군 그래.>>
<<그러고 보니 과연 머리는 토끼처럼 귀가 뻘쭉하고 몸은 거부기처럼 넙죽하구만.>>
옥류담, 련주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구룡폭포, 구룡연, 만물상, 삼선암, 보는 것마다 가관이지만 그중에서도 상팔담은 과연 자연미의 극치였다.
상팔담을 보려면 전망대인 <<구룡대>>에 올라야 하는데 산세가 매우 험하고 가파로왔다. 위태롭거나 길을 내기 어려운 곳들에는 쇠사다리를 고정해놓았으나 어떤 곳은 계단이 많고 가파로와 손잡이를 붙들고 올라가도 다리에 힘이 뻗쳤다. 우리 일행에서 내가 제일 젊은지라 다른 사람보다 앞섰으나 60살을 바라보는 임선생도 등산에는 만만치가 않았다. 묘향산관광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아예 손을 들었으나 임선생만은 나와 함께 비로봉중턱에 걸려있는 이선남폭포까지 올라갔는데 별로 숨도 차하지 않았다. 금강산을 제집 나들듯하는 녀안내원도 전혀 얼굴조차 붉어지지 않고 선녀런듯 가볍게 발을 디뎠으나 뒤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살피느라고 우리들과 떨어졌다.
<<이러다가 좋은 귀동냥을 다 놓쳐버리겠습니다. 우리도 걸음을 좀 늦춥시다.>>
<<괜찮아, 오금도 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제 이야기를 들을 경황이 다 있겠어. 빨리 올라가서 쉬였다가 차분한 마음으로 듣는게 더 좋지.>>
<<참 선생님은 아직 근력이 좋으십니다.>>
<<그러게 집에서도 내가 일주일에 사흘방아는 문제없다고 하지 않았어.>>
<<글쎄요, 이렇게 힘들 때는 지팽이로도 쓸 수 있겠습니다.>>
<<아직은 숨차지 않아.>>
나와 임선생이 구룡대에 올라 한참을 쉬여서야 뒤에서들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다.
전망대에 늘인 사슬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밑에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절벽사이로 골짜기가 깊숙하게 패였는데 그 밑바닥에 구슬같이 맑고 파란 물을 담은 크고 작은 소들이 한줄로 구슬을 꿔여놓은듯 이어져 있었다.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여민 해빛에 상팔담은 그대로 령롱한 구슬이 되여 반짝거렸다. 황홀하고 신비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팔담 웃쪽의 산허리에서부터 뽀얀 우유빛 안개가 서리더니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상팔담의 신비를 덮으려는듯 엷은 면사포를 펼쳤다. 깊은 골짜기는 순식간에 안개속에 사라져버렸다. 뽀얀 안개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전망대에 서있는 우리는 구중천에 둥둥 떠있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안개는 서서히 상팔담의 물구슬이 비단필을 짜는 구룡폭포쪽으로 밀려가고 골짜기는 다시 자기의 신비를 드러냈다.
<<야, 과연 장관이로구나.>>
<<야, 이렇게 흩어지는 안개속을 뚫고 아득하게 내려다보니 과연 내가 신선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니까>>
<<참,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그야말로 선경이로구나.>>
<<너무 흥분하지 말고 안전에 주의하세요.>>
녀안내원이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아, 날개라도 있었으면 그냥 저 담소로 날아내리고 싶다니깐.>>
참으로 그랬다. 너무도 특이한 경치는 이거 신선나라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저 황홀하기만 했다. 나의 무딘 필력으로는 묘사한다는 것부터가 오히려 그 아름다움에 손색이 갈듯했다. 세상에 유명한 <<금강산팔선녀>>전설도 바로 여기에서 펼쳐지거늘 인간세상에서 하늘의 선녀가 반해버릴만한 곳을 또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인간과 요원한 곳일 수록 티없이 깨끗하고 풍요롭다. 옥류담, 련주담, 비봉폭포, 무봉폭포, 구룡폭포, 구룡연, 상팔담, 이루다 형용할 수 없는 신비의 절승. 거룩하신 조물주여, 우리 <<해동국>>에 이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자연의 극치를 창조해주셔서 두손모아 감사하나이다.
금강산은 하루이틀에 다 돌아볼 수 없는 천하절승이다. 만이천봉우리마다 전설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 만이천날을 두고 돌아보아도 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바위를 돌아서니
물물 산산 가는곳마다 신기하구나
릉파루다락에서 글깨나 한다는 량반들의 허황한 빈소리를 듣고 지었다는 김삿갓의 즉흥시는 달리 더 표달할 수 없는 생동한 시어로 금강산의 자연미의 특징을 일괄하였다. 과연 금강산의 나무와 바위와 물과 봉이마다가 신기하기만 하다.
바다룡왕이 인간세상에 하나밖에 주지 않았다는 금강산, 보석같이 티없이 깨끗하고 선녀같이 신선한 생령들만 살 수 있다는 금강산, 그것이 우리의 산이니 우리는 보석처럼 마음이 다듬어진 민족인가. 과연 이 민족이 모든 영욕과 욕심을 버리고 금강의 정기로 보석같이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면 바다룡왕이 나머지 일곱 금강을 인간세상에 주지 않은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제일 금강을 준 민족에 대한 유일한 선택과 믿음때문이리라.
그러나 웬 일인지 오늘까지도 나는 그 때 금강산의 녀안내원이 들려주던 옥황상제바위에 깃든 전설 <<감투 빼앗긴 옥황상제>>를 자주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삼복더위에 금강산의 만이천봉우리를 돌아보고난 옥황상제는 금강산의 천백개의 벽계수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구룡연을 보자 하늘의 상제라는 체면도 잊고 벌거벗은 몸으로 소에 뛰여들어 목욕하다가 선녀의 날개옷같은 관을 빼앗기고 벌을 받아 세존봉중턱에 맨머리채로 굳어져버렸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깨우쳐야만 할 것 같다. 례의도덕에 어긋나고 욕심을 부리면 하늘의 옥황상제라도 금강신의 문죄를 받게 된다.
금강의 정기를 타고난 금강의 주인들, 이런 <<주인 의식>>을 한번쯤은 키워보자. 우리는 보석같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을 찾아 인간세상에 하나밖에 주지않았다는 금강산의 주인이다, 우리는 보석같이 티없이 깨끗하고 선녀같이 신성한 생령들만 살 수 있다는 금강산의 주인이다, 우리는 수정같이 맑고 모든 영욕과 욕심을 버리게 하는 금강의 망장천옹달샘에 마음을 헹구어낸 인간세상 유일금강의 신성한 주인이다. 이제 그런 주인의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고 룡왕을 감동시켜 제일금강을 가졌던 <<해동국>> 선민(善民)의 통합의지와 금강의 맑은 물을 피로 통하는 하나의 륜리를 되살려보자.
인제 세계렬강들의 패권다툼과 이데올로기의 치렬한 부딪침으로 우리의 옷에 묻었던 더러운 피자욱과 우리의 몸에 난 깊은 상처를 성스러운 금강산의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용맹과 합심과 근면과 창조적인 민족의 정기를 되살려 진정 금강의 주인된 통일민족의 밝은 모습을 온 세상에 자랑해보자.
금강산으로 간다, 금강의 정기를 받는다, 보석처럼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다듬어 과연 제일 금강, 아니 유일 금강의 신성한 생민이 된다.
바다룡왕이 제일 금강을 인간세상에 나누어줄 때는 한반도가 하나의 <<해동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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