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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의 바위틈에 돋아나는 가냘픈 굴절의 민족문학
2009년 05월 16일 15시 10분  조회:2886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정인택의 소설들에서 읽어낸다




1. 들어가는 말


한국 근대문학은 일제의 식민정치와 불행한 인연을 맺으면서 아슬아슬하게 걸음마를 뗐다. 그만큼 한국 근대문학은 식민정치와의 조우 속에서 탈식민주의의 민족정신을 고양하면서도 억압과 탄압과 죽음의 위협을 시시각각으로 감내해 왔다. 문학이 한 국가 내에서도 그 제도적 투명도에 따라 겪는 시련이 틀리겠으나 특히 국가 주권과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생사가 달려있을 때 문화의 선구로서 문학은 중점탄압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사적으로 우리 나라 문학을 통관해 볼 때, 전통적 생명을 거의 잃고 최악의 경우에서 질식 직전에 처했던 시대가 일제말 소위 암흑기가 아니었나 한다. 일본 軍國主義가 거국적으로 침략전에 광분할 때 식민지였던 우리 나라가 그 와중에서 평탄할 수 없었던 것은 자명했다. 더구나 韓日合邦 후 계속 핍박을 받아오던 우리 문학인지라 전통적 고유문학의 여맥을 이어갈 기력은 다하여 40년대에 이르러서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군국주의의 총칼로의 압박, 거기다가 이에 아부하는 친일 군상의 발호로 전통문화는 빈사상태에 이르렀고, 문학계는 그야말로 암흑세계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1)


이 시기 문학을 문학사적으로 자리매김하는데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일제의 황민화정책의 본격화로 인한 시국순응의 친일문학이 반도 전체를 압도적으로 휩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말살정책에 의한 문학용어의 비민족어사용 즉, 일본어사용이다.

여기서 논리전개는 잠시 접고 문학창작 내지 문학일반 뿐만 아니라 국권찬탈과 민족동화를 목적으로 하여 일상생활의 상용언어마저 일본어를 국어로 강요하고 여러 가지 극단조치까지 들이댄 당시의 선택할 수 없는 극한상황에서 문학용어문제는 특정시대의 특정현상이었다고 배려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연구자세라고 하겠다. 요는 그렇게 창작된 문학작품들이 우리의 문화, 풍속, 인정, 정감 등을 담고 있나 없나 하는 것이다.

일제 탄압정책 하에서, 그것도 국권상실과 민족몰락이라는 암흑기의 극한 상황에서의 우리 문학을 두고 그런 순진한 유토피아를 망상하면서 조금만 친일적(그것이 위장된 것일 수도 있고 강요당한 장치일 수도 있는데) 요소만 있으면 그대로 친일문학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그래서 작가 내지 문학사에 빚지는 것일 수 있다. 그런 확인을 거친 작품이 이제 친일문학인가 아닌가를 다시 검증 받아야 할 것이다.

문학용어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작품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 처절한 현실극복의식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매몰되어 가는 우리 문학사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주는 눈물겨운 작업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일제말 암흑시기 민족의 언어마저 상실되던 극한 상황에서, 군국주의의 시국정책에 의한 문화정치의 강압 하에서 피식민 주체의식을 주장 내지 입증할 수 있었던 것보다는 집단 내지 민족의 죽음을 아프게 체험했던 경험을 발굴해 내는 작업은 그래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여기서 그런 시점으로 정인택의 작품을 거론하게 된 것은 이른바 ‘신체제’ 이후 중견작가로서 식민주의에 협력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다는 지적과 함께 친일문학으로 욕보고 있는 그의 일부 작품들이 아무래도 연구자들의 오독과 식민피해의식에 의한 과잉판단이 없지 않다고 생각되는 까닭이다.

이에 대한 재검토를 통하여 그 본래의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는 것은 한 작가 작품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도 관계하겠지만 그에 앞서 벌써 암흑기 바위틈을 비집고 가냘프게나마 문학사적 맥을 이으려고 싹트던, 굴절된 우리 문학의 원색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위장된 전쟁찬미와 효를 통한 평화의 갈망―「돌아보지 않으리」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강요한 황민화, 창씨개명, 언어말살정책 등이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고착되고 드디어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일본 본토는 물론 한반도까지 전시상태에 처한 상황에서 광적인 전쟁문학 내지 전쟁찬미의 문학은 일제와 친일파들에 의해 그냥 국책문학의 대표적 주제로 되었다. 죽음으로 천황에 보답하고 국가를 위해 영광을 빛낸다는 군국주의 사상을 국민사상으로 뿌리내리게 하려는 전쟁찬미의 문학은 그리하여 전형적인 친일문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작품의 전형으로 정인택의 「돌아보지 않으리」(『國民文學』, 1943, 10.)를 손꼽고 있다.


“광적인 전쟁찬미는 당시 軍 報道部에서 제일 바람직하게 생각한 제1급의 작품에 해당한다. 이런 작품의 전형적인 것이 鄭人澤의 <돌아보지 않으리>였다. 표제부터가 출전하면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詩句의 일부다. 즉, 나라(일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되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인 것이다. 당시 중견작가였던 그가 이유는 여하간에 이런 작품을 써야 했다는 사실은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2)


“이 작품의 표제나 내용에 있어서 일본정신, 즉 군국주의를 찬양한 표본적인 작품이었다.”3)


광적인 전쟁찬미의 문학, 그것도 “군국주의를 찬양한 표본적인 작품”이니깐 친일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말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런 비평의 시각은 주인공이 “전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위문품과 千人針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내용과 공을 세우지 못해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것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라는 것과 “편지를 陣中報告 형식으로 써보낸 그의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다짐하고 있다.”4)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

편지의 특성상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전한다는 의미에서 어찌하면 “공을 세우지 못해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것”을 누누이 내비친 듯도 하지만, 그러나 “편지를 진중보고 형식”으로 써보낸 점에서 보면 입대하여 “일년하고도 삼 개월”이 되도록 “전지에 온 것은 이름 뿐, 공을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무엇 하나 나라를 위해 쓸모가 없는 자신”5)이라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편지는 사실적으로는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다만 자신이 공을 세우고 나라 위해 죽음을 당하면 어머니더러 어떻게 해주셔요 하는 가정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주셔요 하는 가정에는 그렇게 하시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을 전제함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조국, 사랑, 평화 등을 상징하는 어머니를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작가의 내면적 추구와 작품의 저변에 깔린 창작원리를 읽지 않으면 이 작품의 진의를 밝혀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형상은 조국, 사랑, 평화를 상징한다는 것은 문학작품의 원형창조에 속하는 것으로서 논리전개가 필요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전지에 온 것은 이름 뿐, 공을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무엇 하나 나라를 위해 쓸모가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 어머니 앞에서나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심정”이라고 하면서도 그것보다는 “어떻든 간에 혼자서 쓸쓸히 빈집을 지키고 계신 어머니를 일 년 동안이나 위로하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불효를 한 것”이고 “무거운 죄”6)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또 죽음을 마주한 아들을 두고 “지기 싫어하시는 성벽이 있는” 어머니께서 “이제까지의 잘못된 관습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씩씩한 군국의 어머니가 되어”7)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은 그렇지 못한 어머니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죽음, 당신이 제일 힘적게 의지하고 지팡이로 생각하고 바라는 장남인 내가 죽는다는 것, 어머니는 그것을 정말 진심으로 마음속으로 바랄 수  있습니까?8)


내가 나라를 떠날 때에

“어머니 이제 동경 구경을 시켜 드릴께요. 벚꽃이 한참 피어 있는 동경 구경을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니깐 어머니는 껄껄 웃고 있는 나의 얼굴을 아무말없이 멍하니 쳐다보고 계셨지요. 그 말의 의미는 내가 죽는다는 말입니다.9)


주인공의 어머니는 “나라를 위해서 죽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것이 주인공은 “안타깝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잘못된 관습을 벗어”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씩씩한 군국의 어머니가 되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와 내지의 어머니를 비교함으로써 주인공과 주인공 어머니의 신분확인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싸움터에 나가 영광스럽게 죽는 것, 그것은 보람있는 나라에 생을 누린 남자로서는 무엇보다도 자랑스런 일이요,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어머니에 있어서 결코 슬픔 일이 아닙니다. 탄식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그 이상 없는 명예요, 기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지(內地, 일본 본토)에서는 전사한 유가족의 집을 찾아갔을 때,

“이번에 큰공을 세우고 명예의 전사를 하셨다니 정말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10)


충과 효의 일반적인 이치를 역설하면서도 내지 어머니를 통한 주인공과 주인공 어머니의 신분적 차이를 확인하는 작가의 “엉큼한 속생각”을 우리는 무심하게 흘려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나라에 충성하고, “씩씩한 군국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내지”인한테는 충효의 발현일 수 있으나 식민지인에게는 억압적으로 강요당하는 강박관념일 수밖에 없다.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전지에 온 이름뿐인 주인공이 어머니에 대한 불효에 무거운 죄를 느끼면서도 충효를 운운하면서 어머니의 잘못된 관습을 지적하는 풍유적인 서술은 문학에 대한 식민독재가 극단화 된 시대상황에서는 절묘한 예술적 처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 이제 징병제를 맞아 미친 듯이 기뻐하고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징병제 만세를 부르고 현제 만세를 부르는 것 또한 비명에 가까운 허탈증세일 것이다.

식민지 청년들마저 전쟁의 대포 밥으로 내모는 징병제 만세를 부르고 그런 “위대한 마음을 내려주신” 천황폐하의 만세를 부르고 징병제에 의한 희생물이 될 현제의 만세를 부르는 주인공의 심정은 과연 격동인가. 히스테리인가. 어머니와의 서신에서 내지인과의 신분적 차이와 그로 인한 이질적 심리를 드러낸 주인공이 오히려 징병제를 맞아 “정신없이 기뻐하는 모습”은 크나큰 정신적 압력 끝에 마침내는 미쳐나고야 마는 그런 광적 증상임에 다름 아니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무엇을 부르짖었다고 너는 생각하니, 현아 “반도 징병제 실시 만세”라고 외쳤다. 여러 사람들이 소리를 합쳐서 말이야. 형은 드디어 참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 쓰러져서 주위에 아랑곳없이 엉엉 울었단다. 부끄럽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11)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고는 듣는 사람의 상상 밖으로 “반도 징병제 실시 만세”를 외쳤다는 표현은 식민지인의 강박관념과 억울한 운명에 대한 처절한 외침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심정은 또 충성에 대한 과장된 심리반응으로 나타난다.


축하한다. 이말 밖에는 갑자기 더할 말이 없다. 전적으로 나(너?-인용자)는 행운아다. 타고난 복이 대단한 놈이야,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네가 스무살이 되면 영광스런 부름을 받는거다. 황공하옵게도 천황이 팔다리로 생각하는 반도출신의 너에게 황송하게도 위대한 마음을 내려 주신 거다. 한번 죽음으로써 이 군은(君恩)에 보답하지 않고서는 저승이 두려워진다. 현아 힘을 내라. 악마의 방패가 되어 형의 시체를 뛰어넘어 싸워다오. 광대무변한 성은(聖恩)에 보답하는 길은 그것 하나, 다만 그것뿐이다.12)


“한번 죽음으로써 이 군은(君恩)에 보답하지 않고서는 저승이 두려워진다.”, 즉 저승이 두려워질 정도로 선택 없이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강요되는 죽음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賢은 친일적이고, 일본화한 표본적인 인물이었다. 그 농촌의 번영을 위해 대학에 갈 것을 포기하고 高等農林學校에에 진학했다가 지원병으로 입대한 사람이다. 그는 농촌을 갱생시키는 것이 이 민족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민족주의 학생이 많았던 고등농림학교생으로 인물을 설정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느 각도에서 보면 민족의식이 농후한 高農學生을 광적인 친일파로 만들어 젊은 학생들의 사상을 근원적으로 뒤흔들어 놓으려는 작자의 악랄한 수법이 아니었나 한다.13)


이러한 급급한 결론은 연구자의 선입견이 객관성을 잃게 하여 주관적인 해독으로 작가의 입장을 친일 쪽으로 몰아 부친 것이 아닌가 한다.

“민족주의 학생이 많았던 고등농림학교생”이고 “농촌을 갱생시키는 것이 이 민족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주인공이었기에 이미 전지에 담은 몸이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불효에 무거운 죄의식을 느끼고 내지(일본 본토)의 어머니와 그의 어머니의 신분적 이질성을 절실하게 느낌으로써 지원병제를 징병제로 몰아가는 시국에 “정신없이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술한 내면구조의 합리성이 확인될 때 우리는 오히려 작가의 그 교묘한 위장술에 탄복조차 할 수 있을 것이다.



3. 일녀와의 애정문제 뒤에 숨겨진 민족의식―「껍질」14)


조선을 식민지화하던 그때로부터 일본은 영토의 확장과 함께 한국인에 대한 정신적인 황민화에 방법과 수단을 총동원하였다. 이런 황민화정책은 동아공영권 실현을 위한 내선일체라는 퍽 듣기 좋은 주장을 내세우던 데로부터 끝끝내는 일본을 표방하는 국체명징(國體明徵)을 공공연히 강조하면서 고압적인 동화정책을 펼쳐나가기에 이르렀다. 이는 황국신민서사요, 신사참배요, 창씨개명이요, 국어사용(일본어사용)이요 하면서 황민화정책이 실질적인 발전단계를 걸쳐 최종적인 세뇌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결과이기도 하려니와 특히는 태평양전쟁이후의 전시상황으로부터 조선을 병참기지로부터 내지와 상부한 인력, 재력 지원의 후방기지로 일체(一體)화하려는 조급한 정서의 발로였다.


이른바 이와 같은 시국정신을 철저히 실행하기 위하여 일제는 전쟁의 인력동원에 한국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지원병제, 징병제를 실시하는 한편 문화적으로는 침략전에 모든 초점을 집중하여 문학에조차 정책적 요구를 강요하였다.


문학작품의 시국화는 당시 문인에게 가해진 굴레였다. 1941년경까지 순수작품이 나오기는 했지만 발표하는 데 많은 부담이 되었고, 군의 감시를 받으며 잡지의 발행인의 고뇌는 심각한 것이었다. 편집후기의 논설문 속에는 직접적으로 고통을 호소한 것이 非一非再했다.”15)


군국주의의 시책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조치로 문학도 문인협회와 같은 친일적인 문인단체의 결성에 더불어 시국정책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고 문인들은 시국물 생산에 조직적으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런 시국적인 문화정책으로 말미암아 “1942년경부터는 이성을 잃은 채 전쟁을 찬미하고 일본정신을 부르짖는 논설․소설․시 등이 쏟아져 나왔고, 그 정도가 광적일 정도로 격렬했다.”16)

군 보도부나 총독부 도서과가 직접 검열에 나서서 작가의 사족을 얽어매는 바람에 문학은 군국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시녀로 철저히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전쟁찬미와는 다른 소재를 다룰 수 있은 것이 일녀(日女)와의 연애이야기였다.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황민화시책에 일조하는 시국물로 허용된 것이다. 그러니 역시 시국적인 문화정책에 의한 주제확정이라고 할 것이다.


“<<國民文學>> 창간호에 발표된 <아자미의 障>은 前述한 성격의 작품으로서 대표적인 것이다. 비중 있는 중견작가 李孝石의 作이요, 더구나 창간호에 발표되었다는 점 등, 당시 소설의 한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17)


연구자는 작가가 “여기서 조선남자와 일본여자와의 通婚을 통해 내선일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제시”25)하였다고 하면서도 “이 작품에서 각별히 흥미를 끄는 것은 작자가 朝日通婚을 통한 내선일체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선인 우위에서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은 신문기자와 여급이라는 신분설정부터가 그러하며 동거생활을 하는 동안 현이 아자미에 동화되기보다는 아자미가 현의 취향에 더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6)고 작가를 변호해 나선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러한 변호는 설득력이 없는 것이고 달걀 속에서 뼈를 찾아내는 부질없는 짓거리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부정적인 판단은 논리의 자가당착에 빠진 이 연구자의 스스로에 의해서 내려지고 있기도 하다.


“현과 아자미가 서로 일치되어 가는 과정은 식습관이나 고유의 의복 등, 주로 풍속적인 면을 통해 형상화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늘’과 ‘한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자미는 처음에 마늘 냄새를 무척 싫어하지만 마늘을 끊지 못하는 현을 차츰 이해하고 그의 취향에 익숙해지기로 맘먹는다. 또, 아자미는 기모노나 양장보다도 한복이 몸매를 잘 드러내주기 때문에 가장 좋다고 예찬한다. 이에 대해 현도 한복차림의 아자미를 놓고 같은 핏줄의 한 사람임을 절감한다. 결국 이 작품의 작가가 생각하는 내선일체란 식생활이나 옷차림을 바꾸는 따위의 단순하고 소박한 차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국 여성의 관대한 아량과 적극적인 이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18)


여기에서 보다시피 아자미가 현의 취향을 따라주는 것은 “지배국 여성의 관대한 아량과 적극적인 이해에 의해 주도”되어 근근히 “식생활이나 옷차림을 바꾸는 따위의 단순하고 소박한 차원”의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관대한 아량”을 보일 수 있는 지엽적인 것이나 문제는 주인공 현이 이미 황민화에 철저히 세뇌가 된 인간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현은 식민지의 지식인이지만 식민지 조국에 대한 인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제의 탄압에 의해 자신이 다니던 신문사가 문을 닫는 마당에도 그것은 오직 아자미와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만 파악될 뿐이다.”19)


더욱이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과 부친사이에는 아무런 심리적 갈등도 없는 충돌만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이 이미 “조국에 대한 인식”을 버리고 민족의 아픔에서 ‘해탈’되어 식민지인으로 전락되고 황민화에 철저하게 세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민족성과 조국을 상징할 수도 있는 부친과의 충돌에서 주인공은 아무런 심리적 갈등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분노와 대결에 몸 달아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을 두고 “前述한 성격의 작품으로서 대표적인 것이다. 비중 있는 중견작가 李孝石의 作이요, 더구나 창간호에 발표되었다는 점 등, 당시 소설의 한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20)고 결론을 내리면 이는 틀림없이 친일문학의 한 대표적인 유형에 대한 확인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작품 중에서도 우리는 일녀와의 애정문제 뒤에 숨겨진 민족의식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그런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유형의 작품이 친일문학의 대표적인 유형만이 아님을 실증해주게 될 것이다.

『일제말 암흑기 문학연구』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정인택의 소설 「껍질」역시 일녀와의 통혼을 다루고 있으나 실제 갈등구조를 보면 주인공과 부친의 심리적 갈등이 주선을 이루면서 작품의 플롯을 형성하고 있다. 그만큼 소설은 벌써 단지 시국에 부응하여 일녀와의 통혼을 주제로 내선일체나 동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이 겪는 시대적 아픔을 은근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식민주의와 협력-일제말 전시기 일본어소설 선집1』에 수록된걸 보면 이효석의 「아자미의 障」과는 또 다른 오독(誤讀)에 의해 잘못 해석되거나 식민피해의식에 의한 과잉판단에 작품의 진의를 올바르게 확인 받지 못하고 매몰되지 않나 생각된다.

일녀와의 통혼을 다루었으니 당시 일제의 시국정책에 부응한 소설이라고 낙인찍기에는 소설의 주인공이 앓고 있는 시대적 아픔은 너무도 심각하고 깊은 것이고 주인공과 부친의 심리적 갈등은 단순한 사건적 충돌만이 아닌 상징의미가 짙게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효석의 「아자미의 障」에서 주인공한테 아버지는 다만 장애물일 뿐이고 주인공이 아버지에 대한 태도는 아무런 심리적 갈등도 없는 분노와 경멸이었다. 마치 내선일체의 시국에 일녀와의 통혼은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인 듯 싶다.

그러나 「껍질」에서 일녀와의 통혼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주인공과 아버지의 갈등은 시대성과 민족성을 읽어낼 만한 ‘중대한 문제’였다.

근대의식이 일제의 식민주의정책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식되던 당시에 우리의 민족의식은 봉건윤리도덕에 의한 가부장제적 가치질서이었다. 따라서 부성은 곧 나라나 민족성의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요, 부성의 몰락 내지 부재는 식민지 조선의 애달픈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성의 이런 상징적 의미 때문에 일녀와의 통혼을 한 주인공 또한 황민화와 내선일체로 동화되어가던 우리 민족의 현장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아버지와 주인공은 하나의 민족의 두 화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근대의식과 일제 식민정치에 의해 떨어져 나가는 민족성의 ‘껍질’이 아버지라면 일본에 동화되어 가는 민족의 현장모습이 바로 주인공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주인공이 겪는 불효자의 반성은 우리 민족 스스로가 감내하고 있던 동화에의 거부와 민족성 고수의 몸부림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주인공은 시종일관하게 아버지와의 모순갈등 속에서도 불효에 대한 반성에 마음이 앞서고 지어는 그런 자기는 ‘대역죄인’이라고까지 마음속으로 외친다.


“...당신이 가도 소용이 없을 거야.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면서까지...그게 효도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21)


결국 아버지한테 말려들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의자에서 일어나 반항이라도 하는 듯한 몸짓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자신이 한심해졌다. 아버지도 벌써 60을 넘었으니 해마다 쇠약해져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 여생이다. 결국 나중 생각이 이겨 불쌍한 아내의 모습 대신 늙은 아버지의 손발이 눈에 아른거렸다. 난 정말 불효자다, 속은 거라고 해도 괜찮지 않은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22)


잠깐이었지만 속았다, 당했다, 등등의 생각에 이런 비상수단을 쓰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고 의심도 하지 않은 자신이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혁주는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 숙 없었다.

그 잠깐사이에 저렇게......벙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늙으시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혁주는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23)


어두컴컴한 등불 밑에서 일부러 정면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던 혁주는 은색으로 빛나는 백발과, 가느다랗게 떨리는 힘줄 투성이의 마른 손, 눈물이 가득한 퀑한 눈, 지도처럼 잘게 패인 주름 등이 모두 자신의 불효 때문인 것만 같아 어떤 말이라도 따르겠습니다 라는 소리가 나올 뻔했다.24)


이처럼 작품 전편에 시종일관되는 주인공의 불효에 대한 반성은 마침내 자신을 ‘대역죄인’이라고까지 자책하게 한다.


자신이 집에서 멀어지는 만큼 아버지의 생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나는 아버지를 죽인 대역죄인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25)


불효를 반성하던 주인공이 마침내 자신을 ‘대역죄인’이라고까지 마음속으로 외칠 때 그 갈등의 내면적 의미는 확장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다만 추론이 아니라 작품에서 묘사를 통하여 발전되고 있다.


학주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눈물 너머 어슴푸레한 어둠 속의 하얀 덩어리를 바라보다가, 당황하여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닦았다.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인 다음 침착한 걸음걸이로, 그러나 돌격하는 심정으로 성큼성큼 가족들 앞으로 나아갔다.

응접할 겨를도 없이 인사말을 쏟아 붓는 가족들과 친척들, 마을 사람들을 대하고 학주는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 꾸밈없는 소박함으로 젖어 가는 자신이 오히려 기특했다. 바로 전까지 머리를 가득 채웠던 불쾌감과 반감을 잊고 여유롭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 방문을 열었다.26)


끝없는 들판 한 가운데에 있는데 해가 저문 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었다. 아버지를 죽일 것인가, 시즈에를 살릴 것인가? 단지 이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중대한 문제였지만......그러나 결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심연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만큼 잡다한 시사가, 제시가, 의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맹목적으로 자신이 믿고있는 길을 갈 뿐이었다.27)


“하얀 덩어리”를 바라보면서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자기와 아버지의 갈등은 “생각만으로는,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주인공 스스로 “맹목적으로 자신이 믿고있는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동화되어 가는 민족의 현장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근대의식과 식민정치란 쌍둥이에 의해 여지없이 떨어져나가면서도 한사코 고수하려는 민족성의 ‘껍질’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각은 역시 지극히 민족적이라고 할 것이다.


아버지의 딱딱한 껍질에 부딪쳐 튕겨 나갈 사람이 여기 또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껍질을 깨부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는 그 껍질을 등에 진 채로 그 무게에 눌려 부셔질 것이다. 대역죄인이 눈앞에 또 하나 있었다.28)


언어마저 잃어가던 일제 말 암흑기에 민족성의 ‘껍질’은 떨어져나가고 현장인은 대역죄인이 되어버리는 민족비운의 참담한 한 폐이지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4. 모범국민 위에 군림하는 남편의 정체―「청량리 교외」29)


“일제말기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황민화’의 당위성 강조에 있다. 이 시기의 친일문학은 따라서 ‘內鮮一體의 政策文學’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선일체’의 문학, ‘國體明徵’의 일본적 국가관을 체득시키는 문학, ‘국민사기의 진흥’을 고무 찬양하는 문학, 그리고 ‘국책에 협력’하는 문학을 지향했다.”30)


이러한 시국적인 문화정책이 문학창작에 직접 손을 뻗쳐 광적인 전쟁찬미, 일녀와의 통혼, 모범국민형상 등 극히 제한된 주제에로 창작영역을 좁혀갔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이른바 국책문학의 색채를 지닌 듯 하면서도 어딘가는 민족의식을 자각한 작가의 창작원리가 굴절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국민문학』 창간호에 실린 정인택의 소설 「청량리 교외」는 당시의 시국적인 문화정책에 따르면 모범국민모델을 형상화한 작품인 듯 하다.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별로 그런 색채가 뚜렷이 도드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부분에 와서 여주인공이 애국반 반장이 되어 “부지런히 집회에 나가기도 하고, 호별로 방문을 하기도 하고, ‘국민총력’과 ‘정보’ 등의 잡지를 열심히 읽기 시작”31)하면서 “정말 보람있는 일”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때로부터 소설은 시국에 동참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국을 설명하기도 하고 국민방공의 필요성을 가르치기도 하고 실제로 지도를 하기도 하고......한 집 한 집 이를 되풀이하며 몇 십 호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내의 표현대로 ‘녹초’가 되는 것이었다.

저녁에는 녹초가 되어 돌아와도 다음날 아침의 아내는 놀랄 정도로 기운이 펄펄 났다.

“요즘 굉장하네”

내가 야유를 하면,

“정말 보람있는 일이거든요.”

라고 말하면서 피곤에도 굴복하지 않는 아내였다.32)


그러나 총 3절로 나뉘어진 소설에서 2절에서만 아내의 반장형상이 묘사될 뿐 1절에서는 인문학원과 아이들이 묘사되고 3절에서는 갑돌이와 인문학원이 다시 기본 화제에 오른다.

우선 1절에서는 “인문학원의 처량한 모습”과 거기에 다니는 아이들과 친숙해지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청량사 기슭의 완만한 경사 중간의 파밭에 둘러싸인 조그만 분지에 페옥처럼 인문학원의 처량한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항상 초라하게 서 있어 창고로 생각할 정도로 쓸쓸한 모양새였다. 처음 이사 왔을 때에는 창고치고는 마당이 너무 넓다고 생각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전혀 손보지 않은 마당은 산길처럼 자갈 투성이었다. 교사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비가 새는 모양으로 제대로 유리가 끼워져 있는 것은 교원실 뿐이고 나무판자는 여기저기 뜯어지고 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으며 녹이 슨 양철 지붕에는 당장이라도 잡초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교원실 옆에 높이 매달려 있는 종이 이런 모습과 더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그 곳이 이 부근에 유일한 초등교육기관인 인문학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한심하고 씁쓰레한 기분을 금할 수 없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인문학원은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우수에 잠기게 했다.33)


순식간에 조용해진 우물가에서 아내는 허리를 구부리고, 나는 선 채로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음이 따뜻한 순간이었다.34)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우리 집 마당은 점점 인문학원의 일부처럼 되어 갔다.35)


어두침침한 교실에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도 열심히 교과서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웠다. 나는 당황하여 발길을 돌리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필사적으로 빌고 싶은 생각뿐이었다.36)


1절의 이러한 묘사가 결코 소설의 사건발전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앞세우면 벌써 주인공들의 성격발전은 인문학원의 운명과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을 것임을 복선으로 암시해주는 것이다.

2절에 와서 집중적으로 아내가 애국반 반장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3절에 와서 다시 갑돌이네와 인문학원에로 화제가 돌아오는 전체적 구조로 보면 작가의 창작원리는 아무래도 모범국민형상창조에 있지 않은 것이다.

인문학원 아이들과 친해지고 갑돌이라는 아이를 알게 되었지만 아직 그곳 주민들로부터는 “좋게 말해서 경원, 나쁘게 말해서 이단시” 당하던 여주인공이 그들과 친숙해지고 특히 갑돌이 어머니와 가까이하게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해 인문학원을 수축하고 회생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바로 애국반 반장을 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들이 그들과 더욱 친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내가 청량리 애국반 제X구 제X반 반장이 된 것이었다”37)


청량리 사람들과 자주 접하다보니 그 사람들도 우리 집에 찾아오는 발걸음이 잦아졌다. 그 중에서도 거리 상으로 우리 집과 가깝기도 한 갑돌이네와 가장 친해져서 집안의 조그만 일도 감추지 않고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 대개는 아내가 갑돌이 어머니의 상담역이었지만...38)


“여보, 저 인문학원 어떻게 안 될까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갑돌이 어머니 이야기, 당신도 들었지요?”

“들었어.”

“이 부근 사람들 모두 저렇게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지금의 인문학원으로는 너무 불쌍하잖아요.”

“......”

“저 학교는 4학년까지밖에 없대요. 그래서 졸업을 해도 뭐가 없대요. 가난한 사람들뿐이지만 저대로 두면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가만히 있자 아내도 잠시 입을 다물고 뭔가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지혜를 좀 빌려주세요.”39)


보다시피 2절에서 벌써 여주인공은 애국반 반장으로 그 곳 주민들과 자주 접촉하는 중, 특히 갑돌이네와 친하면서 인문학원을 수축 회생시킬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결말까지 주인공의 성격을 발전시켜 나가는 주요 모티프가 인문학원 건설일진대 기어이 모범국민형상창조로 소설의 친일경향을 꼬집는 것은 식민피해의식의 과잉반응이 아닌가 싶다.

송민호는 “이 작품은 기성다운 작자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묘사가 수준급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또 “戰時下 국민으로서의 모범적인 모델이 설득력있게 제시된 것이다.”40)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유진오의 당시의 작품평을 인용하여 작품을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愛國班의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하여 차츰 시국에 대해 눈뜨게 되는 가정부인을 그린 작품으로 솜씨 좋게 매듭지은 것은 퍽 호감이 갔지만 남편 되는 사람의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남을 깔보는 태도가 마음에 거슬린다. 그는 마치 하나님처럼 높은 곳에서 자기 아내의 거동을 쭉 지켜보고 있는데 그가 무슨 자격이 있어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 독자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 작가는 무슨 주제를 선택해도 파고드는 힘이 부족한 듯하다.(유진오, 「국민문학이라는 것은」, 󰡔국민문학󰡕, 1942. 11-재인용)41)


이 평론은 그 자체가 벌써 친일성향이 아주 짙다. 시국정책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면서 작품의 우열을 가름하고 있는 것이다. 여주인공을 모범국민형상으로 확인하면서 그러한 “자기 아내의 거동을 쭉 지켜보고 있는” 남편의 자격까지 질문하고 있다. 그 가정토대로 보아서 남편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고 세대주로서 당당하게 가정의 움직임을 리드해 가는 ‘모범남편’임에 틀림없는데 문제는 모범국민형상을 창조하면서 주인공더러 보다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도록 하지 못한 것이 못마땅하고 “하나님처럼 높은 곳에서 자기 아내의 거동을 쭉 지켜보고 있는” 남편의 “남을 깔보는 태도가 마음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결국은 “愛國班의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하여 시국에 대해 눈뜨게 되는” 모범국민형상에 손상을 준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범국민형상창조는 시국정책에 강요당한 위장일 뿐이고, 정체 모를 남편은 벌써 당시 시국정책에 의한 형상모델 유형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실 “하나님처럼 높은 곳에서 자기 아내의 거동을 쭉 지켜보고 있는” 남편은 작품의 인물들을 주재하는 작가의 심리전달을 적지 아니 담당하고 있는 듯 하다.

서두에서 벌써 남편인 ‘나’는 “거름 냄새에도 익숙해”지고 “이 교외의 악취에서조차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 번잡한 풍경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42) 아무리 해도 시국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러면서 또 애국반 반장을 하는 아내를 격려는 하면서도 애써 인문학원의 수축 회생에 마음을 돌리도록 의식적으로 리드해간다.


바빠서, 아니 그보다는 여름방학으로 아이들이 장난이 없어지자 갑돌이나 인문학원의 문제는 아내의 뇌리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의 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그 문제로 옮겨질 거라 생각하며 나는 끈기 있게 대가 되길 기다렸다.

나는 나대로 각오도 있고 자신도 있었지만 아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아내의 손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싶었다.43)


그러다가 아내가 인문학원 운동장에 방공호를 파려고 계획하는 것을 보고는 “방공호보다 더 중요한 걸 있고 있는 거 아냐?”고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했다.”


“한심하군.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당신이 모범적인 애국반 반장이라는 것은 인정해.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돼. 적도 그렇지만 우리들의 일에는 앞과 뒤가 있어. 아니 옆도 있어. 수도 없이 많단 말야.”44)


이 시점에 와서 남편은 아내의 “애국반 반장”까지를 들먹거리며 가난한 아이들을 잊고 인문학원 수축과 회생을 잊고 있는 걸 질책한다.

전쟁찬미니, 내선일체니, 모범국민이니 하는 전시체제하에서 남편의 이와 같은 형상은 지극히 반상적이지 않을 수 없고 그 “태도가 마음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남을 깔보는 태도”가 바로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는 작가의 “엉큼한 묘기”가 아닌가 싶다.



5. 맺는 말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발아하고 성장한 한국 근대문학은 태어나면서부터 식민억압과 민족동화의 위기 속에 질식의 고통으로 몸부림쳤었다.

그러다가 일제말 암흑기에 가장 몸서리치는 죽음의 행진을 하게 된다. 황국신민서사, 신사참배, 창씨개명, 국어사용(일본어), 지원병제, 징병제 등을 하나 하나 실행하여 한반도는 내선일체(內鮮一體), 국체명징(國體明徵)의 황민화정책에 이제 민족성은 상실되고 일본인에 의해 한민족이 멸망되는 동화적인 동조동근(同祖同根)을 운운하기에 이르렀다. 생활일상용어조차 일본어사용을 강요당하던 시기에 문학용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전시체제하에 문화정책이 군국주의로 기조를 이루면서 문학도 조직적인 친일단체에 의해 조정되고 국책문학으로 통제되어갔다. 『국민문학』이 유일한 발표지였었다는 사정은 민족문학의 가냘픈 운명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일어로 창작되고 친일문학만이 생존할 수 있었던 시기에 과연 우리 문학사에 주소를 남길 만한 작품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텍스트가 생성하는 생산적 의미보다는 객관적으로 강요되거나 표면구조에 의해 나타나는 기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객관세계 내지 환경에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고 문학의 특성상 교묘하게 위장되는 내면적인 기의를 불행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식민지배통치의 시국정책을 다룬 텍스트에 한해서는 더 많은 예리한 심층분석이 요청되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호응하고 천황을 위해 죽으려는 인물, 일녀와의 통혼을 통하여 내선일체, 동조동근과 황민화를 반영하는 인물, 시국정책을 적극 실천하면서 모범국민형상을 보여주는 인물, 이런 것들이 당시 이른바 국민문학에 억압적으로 강요된 ‘시대형상’이였으나 문학작품에서 그런 형상창조가 썩 잘 되어있지 않거나 그 표면화된 그림의 내면에 보다 예술적으로 숨겨진 의미가 담겨져 있다면 이런 텍스트에 대한 ‘오독’은 가능성에 앞서 벌써 텍스트생산성에 의해 요청되는 것이다. 이는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병 증세에 대해 여러 가지로 진단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아직은 깊은 연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조금은 당돌한 것인 줄 알면서도 우선 작품감상을 통한 느낌으로부터 출발해보자는 소박한 마음에서 정인택의 소설을 읽고 얻은 소감을 적어둔 것임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여기에서 거론된 정인택의 작품들은 앞선 연구자들의 오독과 식민피해의식에 의한 과잉판단으로 하여 적어도 그 진의가 잘못 확인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재검토는 한 작가 작품의 본래의 주소를 찾아주는 작업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에 앞서 벌써 암흑기 바위틈을 비집고 가냘프게나마 우리 문학사적 맥을 이으려고 싹트던, 굴절된 우리 문학의 원색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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