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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원리로 승화되는 시대인식
2009년 05월 16일 15시 28분  조회:2661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백석의 시를 읽고

     


1. 새롭게 시와 친해지면서


  백석의 시를 마주하면서 전혀 특이하고 지극히 개성적인 시풍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우선 짙은 평북방언에 질려 워낙 시의 감상력이 무딘 탓으로 마음에 번거로움만 앞서면서 도무지 시가 읊어지지 않았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新里 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 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 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이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여우난골族」(전문)

 

 그런데 거듭거듭 음미할수록 마치 어둔 곳에 차츰 눈이 밝아지는 듯, 그 어려운 방언의 표상적인 장벽을 넘으면서 일종의 토속적인 생활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되고 신기한 방언들이 언술을 통하여 시적 운율을 조성하면서 고향의 서정을 토로한다.

이와 함께 또 거의 시마다에 등장시키고 있는 식물(음식물)과 동물들은 비유, 원형상징, 변용 등을 거쳐 가장 원초적인 존재방식과 가장 원색적인 생명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결국 백석의 시는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시인의 인생보고서답게 이미지즘적 모더니즘을 극복하고 시적 상상력을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가장 민족 풍토적인 전통적 삶에 뿌리를 내리고 이야기적 텍스트 속에 가장 원초적인 삶과 가장 원색적인 생명모습을 담아 독특한 시적 이미지를 창조해 내었다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역행>>적 행위 속의 민족성 확인


“白石詩의 全作品을 놓고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어와 시양식상의 특질이다.”1)

우선 시어의 특징은 별로 대비할 만한 대상 없이 거의 독창이고 독행적인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거의 모든 시작품을 통해 구사되고 있는 방언들이 시의 천당에 스스럼없이, 지어는 “뻔뻔스럽게” 좌석하고 정착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가령 김소월의 경우도 평북 정주방언을 시어로 사용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제된 문학용어를 체질적인 것으로 하면서 어투에 지방적인 정서를 가미하는 형식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백석의 경우에는 텍스트구성과 이미지 창조의 언술행위의 기본구성요소가 벌써 “평북지방의 고유한 명사나 또는 그 지방 특유의 감각어들이다.”2) 그러면서도 어투에서는 한결같이 표준어를 지켜가고 있다.

바로 표준어에 의한 현대문학의 틀 속에서 자기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려는 여기에서 우리는 백석의 방언구사가 지극히 의도적이고 현실대응적임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 창작에서의 이와 같은 일관된 개성추구는 달리 해석할 수 없겠거니와 그 시대에 모더니즘적 경향의 시와 더불어 리얼리즘의 흐름 및 초현실주의 시들이 시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자신은 장학생의 신분으로 일본 동경유학을 했고 귀국하여 󰡔조선일보󰡕 기자와 󰡔여성󰡕지 편집 및 영생여고보 교원 등 문화적인 사업에 몸담고 있었다는 경력마저 이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듯 하다.

아무튼 그가 시인으로 자리 매김하던 시기가 바로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암흑한 나날을 보내던 193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초였다는 역사적 현장을 감안할 때 고집스럽게 방언을 구사한 <<역행>>적 행위는 지극히 민족성을 고수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단 주류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문화인 신분에서도 타락한 듯한 현세도피적인 “방언수집”은 내면적으로는 민족성이 고스란히 지켜지고 응집되어 있는 전통적인 삶의 현장을 재현시키려는데 숨은 시도가 있었다고 진맥되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을 소재로 하고 현대문명을 해부하는 데에는 방언이 아예 필요 없다. 그건 칼 차고 삿갓 쓰는 격이다. 반대로 현대적 언어로 토속적인 풍물이나 전통적 삶을 시로 보여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실도피적인 소극적인 자세이거나 민족을 외면하고 전원목가적인 안일한 삶을 추구하는 생존방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백석의 시에서 방언과 토속적인 풍물과 전통적인 삶은 전일적인 유기체를 이루면서 민족성이라는 개념을 시적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촌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촌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꿰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히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고방」(전문)


시집의 첫 시라서 그냥 살펴보니깐 부성내지 남성-할아버지 삼촌 나와 사촌 등 파리 떼 같은 손자아이들은 할머니 어머니 등 기타의 혈연들이 부재한 경우임에도 축소된 완전한 가족부락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말짱 남성주인공들이 등장한 것도 특이한 것이거니와 그럼에도 가족성원의 결손이라거나 어떤 가난과 재난으로 인한 아픔 같은 것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과 함께 오붓하게 종족번식의 자연섭리대로 살아가는 원초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삶의 현장을 그대로 열어 보인 것이다. 그토록 평화롭고 화목하고 따스한 삶이다.

근대의식이 일제의 식민주의정책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식되던 당시까지 만도 우리의 민족의식은 봉건윤리도덕에 의한 가부장제적 가치질서였고 따라서 부성은 곧 나라나 민족성의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요, 부성의 몰락 내지 부재는 나라를 잃은 식민지 조선의 애달픈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백석의 시를“女性偏向․非合理性․反近代主義가 파시즘이라는 남성(英雄)숭배사상, 일제의 근대주의에 대결하는 방식으로 이해”3)하는 것은 자칫 백석의 시를 시대를 지각하지 못한 비논리지향으로 낙인찍을 수 있다. 가부장제적 봉건윤리도덕의 가치질서가 파괴되고 부성의 몰락 내지 부재가 일제의 근대주의를 표방한 식민지정책에 연유한 나라상실을 상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모성의 초월적 기능을 숭배하게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식민지시대 피지배민족의 역행심리를 수동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 하고 단일화 하고 비 논리화 하는 폐단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뒤에 나오는 백석의 시들에서 이 시처럼 남성 주체로 되면서 그처럼 정서가 온화하고 평화적이고 따스한 삶의 현장을 펼쳐 보이는 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이 주체로 되는 시들에서도 결국은 부성의 부재로 오는 두려움이나 가부장제적 가족주의 윤리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느 山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 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밑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山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어 다람쥐처럼 밝아먹고 은행여름을 인두불에 구워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워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병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메추라기를 잡아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어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혀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아도 먹을 물이다

                                                    「古夜」(전문)


전체 시는 사실 하나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지만 첫 연에서는 우선 부성의 부재로 오는 두려움을 그리고 있다. “산비탈 외따른 집”이나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는 것이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배가 타관 가서 오지 않”은 탓, 즉 부성이 부재한 사실이 마음에 던지는 공포감이다.

첫 연에서 부성의 부재로 인한 두려움을 말하면서 그 뒤 전체 시에서는 하나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는 시인의 “앙큼한 시도”는 어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마저 항상 “부성”의 부재로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고 있는 식민지인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인 듯싶다.


황토 마루 수무나무에 얼럭궁덜럭궁 색동헝겊 뜯개조박 뵈짜배기 걸리고 오쟁이 끼애리 달리고 소삼은 엄신같은 딥세기도 열린 국수당고개를 몇 번이고 튀튀 침을 뱉고 넘어가면 골 안에 아늑히 묵은 영동이 무겁기도 할 집이 한 채 안기었는데


집에는 언제나 센개 같은 게사니가 벅작궁 고아내고 말 같은 개들이 떠들썩 짖어대고 그리고 소거름 내음새 구수한 속에 엇송아지 히물쩍 너들씨는데


집에는 아배에 삼촌에 오마니에 오마니가 있어서 젖먹이를 마을 청눙 그늘 삿갓을 씌워 한종일내 뉘어두고 김을 매러 다녔고 아이들이 큰마누래에 작은마누래에 제구실을 할 때면 종아지물본도 모르고 행길에 아이 송장이 거적때기에 말려나가면 속으로 얼마나 부러워하였고 그리고 끼때에는 부뚜막에 바가지를 아이들 수대로 주룬히 늘어놓고 밥 한 덩이 질게 한 술 들여트려서는 먹였다는 소리를 언제나 두고두고 하는데


일가들이 모두 범같이 무서워하는 이 노큰마니는 구덕살이같이 욱실욱실하는 손자 증손자를 방구석에 들매나무 회초리를 단으로 쪄다 두고 따리고 싸리갱이에 갓진창을 매어놓고 따리는데


내가 엄매 등에 업혀가서 상사말같이 항약에 야기를 쓰면 한창 피는 함박꽃을 밑가지째 꺾어주고 종대에 달린 제물배도 가지째 쪄주고 그리고 그 애끼는 게사니알도 두 손에 쥐어주곤 하는데


우리 엄매가 나를 가니는 때 이 노큰마니는 어느 밤 크나큰 범이 한 마리 우리 선산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것을 우리 엄매가 서울서 시집을 온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노큰마니의 당조카의 맏손자로 난 것을 대견하니 알뜰하니 기꺼이 여기는 것이었다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전문)


어느 한 논자는 백석시에서 “이러한 女性偏向은 시집 이후에도 계속되어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님」(󰡔文章󰡕, 1939.3)에서 절정을 이룬다. 일가들이 범같이 무서워하는 이 노큰마니(증조할머니)는 그 손길 아래 수 많은 손자 증손자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야말로 위대한 母性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4)고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래도 이 시에서 그런 결론을 얻어내기가 힘들다. 전체 6개의 연으로 구성된 시는 앞의 5개의 연이 끝매듭이 “는데”로 되어 열거를 이루면서 마지막 연에 와서 “것 이었다”로 매듭짓고 있다. 특히 3, 4연과 5연이 대구법으로 되어있어서 결국 6연은 그 인과관계를 푸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구덕살이같이 욱실욱실하는 손자 증손자를 방구석에 들매나무 회초리를 단으로 쪄다 두고 따리고 싸리갱이에 갓진창을 매어놓고 따리”면서 나한테는 “한창 피는 함박꽃을 밑가지째 꺾어주고 종대에 달린 제물배도 가지째 쪄주고 그리고 그 애끼는 게사니알도 두 손에 쥐어주곤 하는”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이 노큰마니의 당조카의 맏손자로 난 것을 대견하니 알뜰하니 기꺼이 여기”기 때문이었다. 역시 노큰마니의 “권력”은 역으로 부성의 부재를 암시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맏손자로 난 것을 대견하니 알뜰하니 기꺼이 여기는” 가부장제적 가족주의 윤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3. 이야기적 텍스트에 담긴 생명미학


시에서 어떤 이념적인 것을 상상력에 의해 이미지화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중간층으로서 이념적인 것을 원리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특정 집단지간의 정신적 대결로 충돌하는 이념을 뛰어넘어 보다 원초적이고 원색적인 생명원리를 밝혀내는 것이 예술의 본체론적 추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원초적인 삶과 가장 원색적인 생명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인간탐구이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에서 방언과 토속적인 풍물과 전통적인 삶은 이야기적 텍스트를 통하여 전일적인 유기체를 이루면서 민족성이라는 개념을 시적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으며 나아가서 정신, 의지 내지 이념적인 것마저 이야기 속에서 삶의 의미 내지 생명의 가치로 환원시켜 확장된 시적 이미지를 창조한다.

흔히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지나친 격동이나 흥분이 없이 차분하게 흥미롭거나 신기하거나 인상적이거나 충격적인 사물, 사람, 사건을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러한 사물, 사람, 사건이 시에서 이미지 창조의 상관물 또는 이미지 창조의 정서적이고 경험적인 유대로 되려면 역사와 시대와 사회의 본질적인 속성과 연대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런 작업을 백석은 식물(음식물을 포함), 동물을 통한 평화와 생명에의 동경, 동식물의 원형상징 또는 문화상징을 통한 생명원리(삶의 윤리) 내지 현실감각에의 접근, 동물의 원색적인 생명본능과 모습으로부터 인간사회를 증언하는 등으로 점진하고 있는 것이다.


1) 인간을 시적 주체로 하면서 식물(음식물), 동물을 대상물이나 생활현장의 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과 동일 층위에서 다룸으로써 평화로운 삶과 자연 회귀적인 원초적 생명의식을 보여준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여우난골族」(일부)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山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가즈랑집」(일부)


이런 시구들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자연의 생물이라는 동일한 층위에서 다루어짐으로써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생명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과 같은 경우로 명절이나 민속에 놓이는 풍성한 음식물들이 나오는 시구들에서도 풍성하고 다양한 음식물을 통하여 친자연적인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두 즐겁다

풍구재도 얼룩소도 쇠드랑볕도 모두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살찐 쪽제비 트는 기지개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소리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줌 싸고


개들은 게모이고 쌈짓거리하고

놓여난 도야지 둥구 재벼오고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 가고

장돌림 당나귀도 울고 가고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두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두들 편안하니

                                              「연자간」(전문)


이 시에서는 달빛, 거지, 도적개, 베틀과 같이 생명 없는 것에까지 생명을 부어넣으면서 원초적이고 평화로운 삶과 친자연적인 존재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도 시적 주체는 인간이다. 거지라는 단어 외에 인간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시적 초점은 어디까지나 삶을 즐겁게 바라보는 인간의 심상과 정서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2) 동식물의 원형상징 또는 문화상징을 통해 생명원리 내지 삶의 윤리를 밝힘으로써 현실감각에의 접근과 사회와 세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수박씨 호박씨를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의 구름도 黃河의 물도 옛임군의 땅과 나무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수박씨, 호박씨」(일부)


여기서 수박씨, 호박씨는 앞의 시에서처럼 삶의 한 대상물이나 생활현장의 한 배경으로 인간의 삶과 동일 층위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문화상징물로 되어 인간의 삶 자체의 모습을 좀더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역사와 의식과 인정을 돌이켜 본다.

시 「杜甫나 李白같이」에서도 중국의 대보름 음식인 “元宵”와 우리의 “떡국”을 떠올리면서 이국 타향에서의 시적 주인공의 쓸쓸한 심정을 토로한다. 이국 타향에서 정월 보름날에 “때 묻은 입던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아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면서 떠올리는 것이 떡국이다.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떡국을 떠올림은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제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전문)


이 시에서의 모닥불은 원형상징이다.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모닥불(불), 모든 것을 따뜻하게 해주는 모닥불(불), 모여서 이야기가 오고가는 모닥불은 타오르는 생명력이요, 평화로운 삶이요, 사연 많은 역사이다.


3) 동물의 원초적인 생명본능과 원색적인 생존모습으로부터 인간을 반성하거나 비인간화된 인간사회를 증언하기도 한다.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보다 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藥이 있는 줄을 안다고


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七十이 넘은 노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山나물을 추었다

                             「절간의 소 이야기」(전문)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藥이 있는 줄을 안다”는 소의 신령함 앞에서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갈팡질팡하는 인간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처연히 떠오른다. 칠십이 넘은 노장은 “수양산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마침내 이를 터득하였던가. 그러고 보면 현실도피와 염세적인 냄새도 나는 것 같지만 정신, 의지 내지 이념적인 것마저 이야기 속에서 삶의 의미 내지 생명의 가치로 환원시켜 가장 원초적인 삶과 가장 원색적인 생명모습에서 확장된 시적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고 확인하면 이는 인간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탐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느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修羅」(전문)


거미가 “나”로 대표되는 인간과 같은 층위에서 동일시되고 새끼를 찾는 어미거미, 어미를 찾는 새끼거미의 슬픈 모습이 인간과 사회현실에 투사적으로 접근하면서 동식물을 통해 창조하는 이미지의 속성이 보다 뚜렷하게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시인이 가장 원초적인 삶과 가장 원색적인 생명모습을 통해 원리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 시대와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 등이 이 시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4. 시를 덮으면서


백석의 시집을 여러 번 번져가고 번져오면서 상술한 바와 같이 다듬어지지 못한 인식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아직 시에 대해 낯설다기보다는 시를 잘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수준에서 이런 이미지포착을 할 수 있은 것은 오히려 백석의 시가 그만큼 시적 언어와 시적 상관물과 사회, 시대적인 인식이 유기적으로 통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백석의 시에서 방언과 토속적인 풍물과 전통적인 삶은 전일적인 유기체를 이루면서 민족성이라는 절박한 시대적 개념을 시적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장학생의 신분으로 일본 동경유학을 했고 귀국하여 󰡔조선일보󰡕 기자와 󰡔여성󰡕지 편집 및 영생여고보 교원 등 문화적인 사업에 몸담고 있었던 백석이다. 그런 그가 모더니즘적 경향의 시와 더불어 리얼리즘의 흐름 및 초현실주의 시들이 시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시대에 <<역행>>적으로 고집스럽게도 방언을 구사하고 사회현실과 떨어진 오지의 원초적인 삶을 시적 대상으로 잡은 “개성추구”를 어떻게  진맥할 것인가.

그가 시인으로 자리 매김하던 시기가 바로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암흑한 나날을 보내던 193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초였다는 역사적 현장을 감안할 때 고집스럽게 방언을 구사한 <<역행>>적 행위는 아무래도 민족성을 고수하고 시대적 인식을 생명원리로 승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단 주류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문화인 신분에서도 타락한 듯한 현세도피적인 “방언수집”은 내면적으로는 민족성이 고스란히 지켜지고 응집되어 있는 전통적인 삶의 현장을 재현시키려는데 숨은 시도가 있었다고 진맥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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