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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 새문사, 2002.8
2009년 05월 16일 21시 50분  조회:2449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엄창섭, 󰡔��한국현대문학사󰡕��, 새문사, 2002, 8


제5장

1930년대의 문학


1. 1930년대 성숙기 문학의 개관


1930년대 성숙기 문학의 개관에 앞서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시대적 배경은, 1931년 일본 제국은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등 군부 독재를 더욱 강화해 갔으며 국제적으로 더욱 군비를 구축하여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조성된 파시즘 노선을 확립하려는 시기로 제시된다.(232)

문학사적으로 접근하여 볼 때, 30년대 한국문학은 KAPF의 해체에서 비롯된다. 이의 해체는 어디까지나 일본 군국주의의 강압에 의해서 비롯(232) 된 것이지만, 문학이 언제까지나 정치의 예속화와 목적의식에만 종속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30년대의 우리의 문학이 종래의 투쟁적인 민족주의 문학운동이나 계급주의에서 탈피하여 문학 본래의 기능과 목적에 관심을 새롭게 하는 기틀을 마련해 준 점은 획기적인 사건이다.(233)

우리 현대문학사에 있어 1910년대를 문학과 사회의 계몽시대라고 한다면, 1920년대는 동인문단-개인적인 모색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1930년대는 우리 현대문학의 터전을 굳게 확립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지적되는 세 가지 문학의 특질을 고찰하면, 하나는 문학활동에 참가한 문인들이 숫자적으로 대단히 많아진 점이며, 둘째는 서구문학의 수용이 보다 직접화되고 그 영향이 보다 증대된 점, 그리고 셋째는 작품창작의 기술적 세련과 문예이론의 전문화라고 할 수 있다.(233)

문학사적으로 1930년대 후기는 1936년~1940년까지로 분류할 수 있다. 30년대 후기의 문인들은 언어가 자기 언어의 선택구조로 되어 시대적인 방언처럼 만은 갈래를 가져 왔다. 젊은 세대에서는 프로문학적인 현실참여의 문학관을 부르짖는 문인군(文人群)의 추세도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30년대 전기의 영향을 받은 인생파 시인의 시정신과 청록파의 자연 귀의적인 시관과 우회적인 절망의식을 표백하는 시인들의 시정신으로 일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234)


2. 문학사적 배경과 그 특성


1930년대는 문학사적으로 보아 1910년대나 1920년대에 비해 여러 가지 중요성을 지니는 시기이다. 그 중요성이란, 일차적으로 1930년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언급하였듯이 KAPF의 해체에서 시대적 중요성이 암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234)

“조선 민족의 계급적 해방”을 내세웠던 KAPF의 맹원들이 일제 군국주의의 강제에 의해 1931년 신간회(新幹會) 해체 사건과 더불어 제1차로 검거됨에 따라 1930년대의 문학은 진정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문학으로 그나마 자리 매김을 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234)

문학 외적인 요소를 되도록 배제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지향하는데 목표를 두게 된 것이 바로 1930년대를 접하면서였다. 여기서 비중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사회적 문단의 형성문제일 것이다. <<소년>>, <<청춘>> 등을 중심으로 발달되기 시작한 동인지 중심의 문학 활동은 1920년대까지는 계속돼 왔으나, 1930년을 전후하면서부터는 양상을 달리하며 문단이 점차 특수한 직업사회로 변형되어가기 시작했다. 최남선․이광수를 비롯한(234) <<창조>>, <<폐허>>, <<백조>>, <<금성>>, <<영대>>, <<개벽>>, <<조선문단>>을 통해 활동한 시인․작가들이 모두 동인지 중심의 문단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문학활동이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자각이나 역사의식의 전환에 의해, 마침내 소수의 동호인 그룹으로서 한 국가의 문학 또는 문단을 대표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사회적인 문단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235)

특히 이와 같은 상황에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분리는 현저하게 나타난 이 시기의 양상이다. 일반적으로 1920년대까지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확연하게 구분짓는 데는 다소의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1920년대까지는 최남선․이광수의 계몽주의적 문학의 영향이 동인지 문단시대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은 확연하게 구분될 수 없었다. 즉 1920년대까지는 문학의 대중적 요소와 순수문학적인 요소가 분리되어 평가되지 않았으며,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 그나마 분리되어 평가되기 시작했다.(236)

아울러 순수문학의 등장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이 시기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자로서의 계기가 된다.(237)

이 시기 문학적 특징은 예외 없이 순수문학적 성격을 비교적 반영한 점과 현대문학적 성격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건 사회주의 입장에서서건 사회 참여가 용납될 수 없던 당시의 객관정세의 변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순수문학의 입장이야말로 당시와 같은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상황에서 한국문학의 존립을 가능하게 한 유일의 거점이 되었다는 것이다.(237)

이처럼 1930년대에 등장한 순수문학적인 요소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한국현대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요소로 점차 그 틀을 형성해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순수문학의 등장의 동기는 카프의 제1차 검거와 연계성이 있다. 사회가 점차 폐쇄상태로 죄어들자 여기에 대응하는 문학의 응전력(應戰力)은 순문학, 역사소설, 자기고발 등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237)

특히 현대문학적 성격으로의 전환에 있어서는 앞에서 기술한 바 있듯이 1920년대까지의 우리의 현대문학은 근대문학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곧 3․1운동 이후에 전개된 자연주의, 낭만주의, 탐미주의, 민족주의, 상징주의 등 문예사조의 혼류는 모두 근대 문예사조에 속한 것이(237)며, 시에 있어서의 주정적․서정적 창작태도는 서구의 근대문학을 모방한 것으로 인식된다.(238)

또한 소설에 있어서의 외면적․객관적 묘사와 평면적 구성은 모두 그 문학적 성격이 근대문학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근대문학적 성격은 1930년대에 접어들어 현대문학적 성격으로 점차 변모되었고,(238)


3. 순수문학의 형성과 양상


순수성이 무엇인가? 라는 다양한 인식에 따라 여러 가지 뜻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광의적인 해석으로는 소설․희곡․시 등을 다른 인문과학(人文科學)에 견주어 순수문학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엔 창작문학(創作文學)이라는 뜻으로 순수성은 즉 창작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점에 비해 협의의 의미로는 문학의 계몽성, 목적의식 등을 배격한 예술지상적(藝術至上的)인 문학을 지칭함이며, 이때의 순수성은 예수성과 동일하다. 단, 시대에 따라 순수성의 내용이 양상을 달리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① 1919년 <<창조>>파의 김동인은 이광수 등의 사회문제 제시나 사회개조를 위한 계몽성을 반대하고 인생문제의 제시를 주장하였는데, 이때의 순수성은 사실성 내지 유미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순수문학은 민족적 계몽주의를 배제한 사실주의 문학을 의미한다.

② 1930년의 <<시문학>>파와 1933년 9월에 결성된 ‘구인회(九人會)’ 작가들의 문학을 순수문학이라고 한다. 시문학파의 순수시 운동과 구인회의 기교적․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은 카프의 조직 세력을 등에 업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정치적 목적의식을 반대하고 일어난 것이다. 이때의 순수성도 예술성 내지 기교성을 의미하나, 프로문학에 대한 반동의 입장에 서는 것이 그 시대적 특성이다.

③1938-39년에 문학의 순수론이 대두되었는데, 유진오의 󰡔��현대 조선문학의 진로(동아일보, 1938.12)󰡕��와 󰡔��순수에의 지향(문장,1939.6)󰡕��이 발표되고 이에 대한 김동리의 󰡔��순수문학의 진의(문장, 1939.8)󰡕��, 김환태의 󰡔��순수시비(문장, 1939.11)󰡕�� 등의 반박문이 발표된 데서 발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1945년, 즉 광복 후 순수논쟁은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조선문학가동맹 측과 청년문학가협회 측의 김동리․조연현 등의 불꽃 튀는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239)

이상과 같이 순수문학은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하지만 그 공통점은 문학의 계몽성, 선전성, 목적의식 등을 배척하고 인간성의 옹호에 입각하여 문학의 자율성, 예술성, 그 독자적 세계를 옹호하는 문학으로(239) 인식할 수 있다.(240)

또 하나 우리가 확인하여야 할 문제는 순수문학 대두의 배경에 대한 점검이다. 1930년대의 순수문학이 대두하게 된 배경은 정치적 배경, 문화적 배경, 문단적 배경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① 정치적 배경: 이 시기 사회적 현상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팽배해진 국제적 파시즘의 물결과 함께 3․1운동 이후의 문화정책이 만주사변 이후 무단정책으로 환원해 가기 시작했다. 일체의 사상운동이 금지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문학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하거나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거나 자유주의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곤란했으며 문인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예술지상의 심미적 문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일본 군국주의의 암흑 속에서 사회의식이 결여된 도피문학으로 순수문학이 대두하였다고 볼 수 있다.

② 문화적 배경: 문화적 배경으로 순수문학의 대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한글학회가 중심이 된 거대한 문화운동인 한글 운동이다. 조선어학회가 주동이 되어 1933년 󰡔��한글 맞춤법통일안󰡕��을 공포하게 되자 반만년 이래 처음으로 우리 언어가 질서를 찾게 되었다. 이러한 한글 운동이 문단에 끼친 영향은 문학의 직접적인 표현 수단인 언어와 문자에 대한 문학인들의 새로운 관심을 촉구하게 되었다. 특히 이 같은 시대적 현상에 있어 1930년 <<시문학>>파의 언어에 대한 감각적 추구와 모더니즘의 언어의 시각적 배려 등이 이 같은 환경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으로는 1920년대 말에서부터 1930년대 초까지 출간된 잡지의 영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발표지면의 확대는 통속적인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구분 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독자들은 문학의식의 성숙으로 종래의 도식적, 선동적 문학을 타기하고 보다 차원 높고 또 전문화되고 세련된 문학을 요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작자는 문학의 전문화로 문학을 보다 객관화하여 기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자세를 지녀야 함도 지속적으로 일깨우기 시작하였다.

③ 문단적 배경: 김동인을 중심으로 한 예술지상주의자들이 최남선․이광수의 계몽주의 문학을 반대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계몽주의(240)적인 것이 문학사의 가치평가에 있어서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은 1919년, <<창조>> 동인들로부터이다. 시문학파에서는 문학을 다른 사회적 영역과 순수한 예술적 영역으로 독립시켰으며, 서정주․김동리 중심의 <<시인부락(詩人部落)>>에 이르러서는 문학의 예술적 가치를 본질적으로 추구하였다. 이런 점이 곧 순수문학의 대두의 배경인 셈이다.

다음으로는 1930년대에 접어들어 KAPF 등의 목적문학의 한계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곧 1920년대 한국문학을 지배한 프롤레타리아트 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이 그 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성을 드러냈다.(241)


4. 현대시의 다양화와 동인지


1) 시문학파(詩文學派)


30년대 문학에서 크게 주목되는 것은 순수성을 문학의 지표로 삼은 시문학파이다. 시문학파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자기 언어의 미학을 시화한 순수서정을 새로운 전통으로 천명하며, 정치적․사회적 목적의식에(241) 사로잡혔던 종전의 시, 즉 카프의 색채를 지닌 시를 배격하고, 시 본연의 예술성을 추구했던 시인들의 유파를 지칭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시는 곧, 언어의 탐구로서, 시란 언어의 발견이요, 창조이며 언어를 떠난 곳에서 시가 존립할 이유가 없음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었음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다.(242)


2) 구인회(九人會)


3) 삼사문학(三四文學)


순수문예동인지인 <<삼사문학>>은 1934년 9월 1일 창간된 연희전문 학생(247)들이 주동이 되어 조직한 시동인지이다. 발행 겸 편집은 신백수(申百秀)가 담당하였고, 처음엔 4․6배판에 60페이지 분량의 프린트로 발간했고, 3, 4호부터는 국판 체재의 인쇄물로 발행한 것이 특색이다. 이 동인지는 당시의 문단에 새로운 쉬르리얼리즘의 바람을 불어넣어 시단을 풍성하게 하는 공을 남겼다. 비교적 신주지적인 경향의 시세계를 특징으로 하였으며, 현실을 깊이 관조하고 현실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자기를 현실화하려는 의지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주요 필진으로는 이시우(李時雨), 최영해(崔暎海), 홍이섭(洪以燮), 유치환(柳致環), 장응두(張應斗) 등이 참가하였다.(248)


4) 시인부락(詩人部落)


<<시인부락>>은 1936년 11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가 주간을 담당하며 창간한 시전문 동인지였다. 비록 이 동인지는 1937년 12월에 5권을 발행하고 종간되었지만, <<시인부락>>의 중심 멤버였던 서정주(徐廷柱), 김동리(金東里), 오장환(吳章煥) 등의 문학적인 활동이 두드러져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몫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문학>> 동인들이 창작상 기교적인 면을 중시하였다면 <<시인부락>> 동인들은 인간 자체의 인간적 고뇌를 중시한 것으로 대별된다.(249)


5)문예월간(文藝月刊)


1931년에 창간된 <<문예월간>>에는, 일상생활의 시정을 노래한 시인들의 작품이 많이 발표되었다. 고차원적인 자연과 자기와의 조화를 위한 염원의 세계가 뚜렷이 나타난 문예지였다. <<시문학>>의 후속으로 발행된 잡지다. 당시 문단의 조류는 문학적 정신이 충만해 가는 젊은이들이 민족적인 자기위상을 지키는 시인가 작가를 원하고 있는 분위기였다.(250)


6) 문장(文章)


1939년 2월에 창간되어 1941년 4월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폐간될 때까지 국판 200페이지 내외로 통권 36호를 문장사에서 월간으로 간행하였다. 주간은 이태준(李泰俊)으로 일본 강점기말 문학잡지로서는 민족성과 서정성을 그 나름으로 올곧게 고집하며, <<인문평론>>과 함께 마지막 교두보의 역할을 수행한 잡지이다. 1930년대를 장식하는 순문예지인 <<문장>>은, 우리 민족의 문학을 지키고 꽃 피우는 터전 역할을 분담했다. 민족문학의 등불 같은 역을 맡았던 <<문장>>은, 30년대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와 시사에 있어서, 황금전적(黃金田的)인 의미를 지닌다.(252)


7) 신동아(新東亞)


<<신동아>>를 통하여 활동한 시인들을 보면, 30년의 어느 문학지보다도 많은 시인들이 지면을 활용했다. 여기에는 문학의 유파나 세계의 흐름을 통한 것이 아니고, 동아일보사의 발행으로 우리나라 신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 소설, 수필, 문학평론 등 많은 문학작품을 실었던 것이다.(262)


8) 학등(學燈)


9)문학(文學)


<<문학>>에 발표된 시작품 중에는 우리의 현대시사에 영원히 빛날 작품이 발표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볼 필요가 있다. 1934년 제2호에는 김영랑(金永郞)의 문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제5호에는 신석정(辛夕汀)의 <산(山)으로 가는 마음>이 발표되었다.(265)


10) 조선중알일보(朝鮮中央日報)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는 그 당시 시평을 했던 김기림이 이 작품을 보고 ‘한국의 현대가 이로 인하여 50년을 앞섰다’고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이 <오감도>에서 느끼는 것은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얻고, 소화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266)


11) 시원(詩苑)


1935년 2월 10일에 창간된 시전문지로 발행인 겸 편집인은 오희병(吳熙秉)이다. 당시의 한국시가 너무 상징적이고 고답적(高踏的)이라는데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건설을 주도한 잡지이다. 다행스럽게도 당시의 모든 중견시인들은 이 잡지에 참여하고 비교적 폭넓게 활동하였다.(267)

일단, 이 잡지는 짧은 기간을 통하여 5권이 간행되기는 하였지만, <<시문학>>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순수 시전문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268)

<<시원>>은 오일도(吳一島)가 사재를 털어 간행한 순수시지이다. 무엇보다 이 문학지의 문학사적 공적이라면, <<시문학>>과 같이 참가한 다수의 시인들이 시어(詩語)를 자기 개발화 하고 자연을 이지화(理智化) 한 점과 또 현대감각의 표현에 알맞은 시어를 선택한 점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268)


5. 詩人들의 역할과 作品의 경향


1) 김영랑의 시와 고아한 서정

2) 오일도(吳一島)의 시세계

3) 김광섭(金珖燮)의 시와 우수(憂愁)

4) 김광균의 시와 공간적 조형

5) 김현승(金顯承)과 기독교적인 세계

6) 유치환(柳致環) 시의 사변성(思辨性)

7) 김용호(金容浩)의 시 세계

8) 서정주(徐廷柱)와 관능의 시학

9) 조지훈(趙芝薰)의 탐미(耽美)와 선미(禪味)

10) 박두진(朴斗鎭)의 초월적인 시

11) 박목월(朴木月) 시의 향토성


6. 1930년대 小說의 추이


1) 30년대의 소설문단


비교적 현대문학의 절정기인 30년대에 접어들어 우리나라의 소설문단은 이인직(李人稙)으로 대표되는 신소설 시대와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의 2인 문단시대, 그리고 20년대 문예사조의 혼류 시대와는 달리 어느 한두 유파가 주조를 이룬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 문학동인(文學同人)이라고 하는 집단적 활동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작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작품을 창작하고 발표(317)하는 풍토가 점차 조성되어, <<소년>>, <<청춘>> 등의 잡지를 통한 최남선․이광수 시대와 <<창조>>, <<백조>>, <<폐허>> 등 동인 집단에 의한 창작활동이 지양되고 독자적인 작품활동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문학활동의 집단화가 해체되어 가시 시작한 데에는 KAPF의 해체와 이본 군국주의의 정치적 탄압이 주요 역할을 하였다. 30년대에 접어들어 신문을 비롯한 <<시문학>>, <<시인부락>>, <<삼사문학>>, <<문장>> 등의 잡지가 속속 출간되면서 다행스럽게도 발표지면이 점차 확장된 데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계급주의 문학이나 민족주의 문학 등 목적의식의 문학이 점차 사라지게 되자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는데, 이것은 30년대 소설문단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이다.

이 같은 순수문학의 양상은 프로문학의 방법론을 반대한 김동인․염상섭에 의해 일찍부터 준비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순수문학의 형태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당연한 현실문제에 등한시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일제의 탄압에 대한 민족적 울분이나 현실문제에 대하여 등한시한 나머지 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보였다.

결국 순수문학은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지고한 예술성만을 주장한 나머지 문학 독자의 욕구 충족이나 문학의 사회적인 공리성에 대하여 일체 무시하는 자세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반 독자들과의 이해의 폭 또한 부족하였다. 이러한 대중적인 욕구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방인근, 윤백남. 김말봉, 김내성(金來成), 김영수(金永壽), 정비선 등의 대중소설의 대중화로 차별화 할 수 있다.(319)


2) 30년대 소설의 주제


(1) 불안의식의 표출


하나의 시대사조라 할 수 있는 불안의식, 특히 지식인의 불안 심리를 주제로 한 소설에는 채만식(蔡萬植)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비롯하여 기타의 작품들이 지적된다. 이 불안의식을 표출한 소설은 주로 지식인의 불안과 비애, 고난과 빈궁,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319)


(2) 민족의식 고취와 전기문학적 역사소설


1920년대 후반기의 역사소설은 주로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한 것이었다. 특히 역사의식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이나 민족성을 찾으려는 주제성이 소설의 주조를 이룬다.(320)


(3) 농촌문학의 등장


(4) 감상적인 소설


당시 감상적인 경향의 소설로는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의 <불원(不遠)의 여상(女像)>(1932), <불우선생(不遇先生)>(1931) 등이 있으나, 허무와 서정의 작품세계 속에서도 시대정신의 호소력을 유지하고 있음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322)


(5) 풍자소설의 등장


(6) 토속과 인생의 관조


토속적인 서정과 인생을 음미․관조하는 경향은, 비교적 30년대 소설의 공통된 특징으로 지적된다. 이 계열의 작품 중 가산(可山)의 <메일꽃 필 무렵>은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린 향토성 짙은 작품이다.(323)


(7) 자의식 세계의 표출


인간의 심리 내면과 자의식의 세계를 표출한 소설은 서구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이러한 주제의 소설을 대표한 작가는 이상(李箱)이다.(324)


(8) 사실적 경향의 소설


이러한 경향의 소설은 주로 작자  자신의 신변이나 시정의 세태를 그린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대체로 이러한 소설은 외부세계를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9) 통속소설의 등장


1930년대에 통속소설이 등장한 것은 이 무렵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 분리되는 경향을 보이면서부터였다. 즉 30년대의 순수문학이 지나치게 사회적 공리성을 도외시한 작가 개인 중심인데 비해 독자와 보다 친근할 수 있는 필요에 의해서 통속소설 또는 대중소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325)


3) 1930년대의 작가와 작품


(1) 이효석과 향토 서정


(2) 유진오(兪鎭午)와 동반작가


(3) 이무영(李無影)과 농민문학


(4) 박영준(朴榮濬)과 농민의 삶


(5) 김유정(金裕貞)과 해학


(6) 이상(李箱)과 자아의식


(7) 김동리(金東里)와 신인간주의


7. 평론문학의 성숙과 향방


1930년대에 접어들어 순수문학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됨에(339) 따라 평론문학도 1920년대와는 달리 문학의 흐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갔음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평론은, 이른반 해외문학파에 대한 프로문학파의 비판에 대한 정인섭(鄭寅燮)이 「조선문단(朝鮮文壇)에 고(告)함」(1931)을 발표함으로써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340)


제6장

일제 감점기의 문학


1. 문학의 양상과 동향


이 시기의 문학은, 1937년을 전후하여 1945년 해방 이전까지로 구분 지어진다.(342)

1941년을 전후하여 그들의 패전이 점점 가까워 오자 종전의 전시체제를 보다 강화하여 계엄적 체제로 변경시킴에 따라 사회․문화적 제 현상도 변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가면 속에서 국어․국문의 사용금지와 창씨개명, 신사 참배 강요 등 야만적 탄압정책이 극에 달한 무렵부터 조국광복 이전까지의 문학을 우리 현대문학사에 있어 일제 말기의 문학으로 구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본 장에서 설명하려는 일제 말기 문학의 시간대는 편의상 1940년대 초에서 1945년 8․15 이전까지의 문학을 지칭하기로 한다.

그 이유는 1930년대 후반의 문학에 대해서는 앞장에서 설명하였기 때문이다.(342)

문학사적 시각에 있어 1944년까지를 일제치하의 문학으로 하고, 45년부터는 해방후의 문학으로 대별하는 방법은 보편적이다. 한국 현대문학의 사적 흐름을 일단 연대별로 나누어, 그 특성을 10년을 1기로 삼았기 때문에 40년대의 문학사의 실제 서술은 2기로 나누어 기술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비교적 다수의 비평가나 문학사가들은 여기 제1기(40년~45년)를 가리켜 암흑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일제가 한국의 모든 저력을 전쟁도구화하기 위해 가혹한 방법을 다하여 창씨개명을 비롯하여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였기 때문에 암흑기라고 칭할 수 있을(343) 것이다.

더욱이 한국 문학이 한국의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표현수단인 언어가 말살 당한다면 사실상 한국 문학은 존재할 수가 없으므로 암흑기라는 말도 당위성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우리 언어로 된 창작 양상은 미약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존재했다. 많은 시인들이 절필하였거나 친일시로 변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시인들은 끝까지 우리의 문화이며, 역사요, 민족의 혼인 언어를 수호하면서 시작활동을 필연적으로 전개했다.

윤동주(尹東柱), 이육사(李陸史), 심연수(沈連洙) 시인의 ‘저항시 활동’이나 만주에서의 망명시 운동이 이를 입증하여 준다. 따라서 이 시기가 비록 암흑의 시기라고 볼 수 있을지라도 큰 틀에 있어서는 저항의 시기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굳이 암흑기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붓을 꺾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기회주의자이거나 소극적인 도피주의자들에 대한 시각일 것이며 객관적으로 수긍하기에는 이론(異論)이 제기될 것이다.

이 시기에 주요한 김동환, 김소운, 김용제, 최남선, 임학수, 김안서, 김종한, 노천명, 모윤숙, 김경린, 김철수, 김동림, 주영섭, 정지용, 김기림, 임화, 이하윤, 김상용, 서정주 등 많은 시인들이 변절했거나 아니면 친일문학으로 기울어진 데 비해, 대조적으로 김동명, 김영랑, 신석정,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윤곤강, 김상옥 등이 붓을 꺾고 고향에서 은신한 채 지조를 지켰다. 그러나 이 무렵 만주 간도에서는 유치환, 이학성, 김조규 등 몇몇 시인이 모여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망명시단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국내에서는 김광섭이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까지 당했다.

뿐만 아니라, 윤동주, 이육사, 심연수는 끝까지 저항운동을 벌이다가 마침내 해방의 문턱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몇몇 시인들이 붓을 꺾고 낙향 은신을 했고, 또 문예지 <<인문평론>>․<<문장>> 등이 폐간 내지는 전향했다고 해서 국내의 몇몇 학자들처럼 일방적으로 암흑기의 문학을 배제할 수는 없다.

비단 정상적인 창작활동 내지는 문단이 구성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시기에 불과 몇몇이지만 저항시 운동을 벌였고 또 언어학자들이(344) 끝까지 한글 수호를 위해 투쟁한 점을 수긍할 때 이 시기를 저항기라고 인식하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345)


2. 1940년대 전기 시(詩)의 양상


1) <<문장>>과 현대시


1930년대가 20세기 전반기 한국 현대시의 찬란한 개화기로서 수많은 시사에 빛나는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면 순문예지인 <<문장>>은 30년대를 마무리하면서 40년대의 출발을 약속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시의 말살을 기도하는 일제의 야만적 탄압에 항거하기 위하여 민족적인 시정신을 수호하려는 신념에 의해 출발했다.(346)

2) 시인의 변절과 친일문학

3) 망명시(亡命詩)와 간도시단(間島詩壇)


<<문장>>과 <<인문평론>>이 1941년 4월에 폐간되고, 1942년 최재서가 <<국민문학>>이라는 친일문예지를 발간하자 지조 있는 시인들은 저항을 하든가 아니면 낙향하여 절필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도 친일시가 아닌 민족시를 줄곧 발표한 곳이, 바로 만주접경지대에 있는 간도이다. 30년대부터 일부 뜻있는 시인들에 의해 신경, 용정(龍井) 등 만주에서 동인지 <<차편(此編)>>을 통한 시작활등이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40년대에 이르러서는 󰡔��재만시인집(在滿詩人集)󰡕��과 󰡔��재만조선인시집(在滿朝鮮人詩集)󰡕�� 등이 발행되어 점차 활성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특히 간도에 있는 <<만조일보(滿朝日報)>>를 중심으로 문인들이 모이게 되고 마침내는 망명시단이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모윤숙, 유치환, 윤동주, 윤영춘, 박귀송, 이학성, 박팔양, 김조규, 손소희 등이 활약하고 있었다. 모윤숙은 북향회를 조직하여 동인지까지 발행했으며, 이학성은 󰡔��재(349)만시인집(在滿詩人集)󰡕��을, 김조규와 박팔양은 󰡔��재만조선인시집(在滿朝鮮人詩集)󰡕��을 펴냈다. 도 이 무렵 <만선일보(滿鮮日報)>에 심연수(沈連洙)는 <려창의 밤>, <대지의 여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곳 간도 출신의 시인으로는 윤영춘, 윤동주, 박귀송과 강릉 출생의 심연수가 있다. 윤동주는 일찍 이곳을 떠나 국내에서 시작활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박귀송은 일본서 조도전(早稻田)대학을 마치고 <<시인문학>>을 편집하다가 간도에서 주로 시작활동을 했다. 심연수(沈連洙)는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를 졸업하고 신안진과 용정에서 교편을 잡았다.(350)

이 무렵의 시에서 별다른 저항의식은 찾아 볼 수 없으나 망국 지식인의 심상을 여실히 나타낸 시편으로 박귀송의 <추억>이 있다.(350)

윤영춘(尹永春)은 윤동주가 1945년 2월 일본 복강(福岡)형무소에서 옥사한 뒤, 그 비(碑) 앞에서 <조충혼(弔忠魂)>이란 시를 남긴 시인이다.(351)


4) 암흑기의 별(李陸史․尹東柱․沈連洙)


40년대 전반기에서 저항시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이육사와 윤동주 두 시인으로 논의되었으나, 여기서는 민족시인으로 새롭게 조명된 심연수로 인해 이 시기를 결코 암흑기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저항기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353)


3. 小說文壇의 양상과 親日文學의 특성


먼저 당시의 소설문학의 양상이라면, 일제의 야만적 행위가 그 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 1941년을 전후해서 문학 또한 암흑기의 극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1941년에 이르기까지는 그나마 동아․조선 양대 일간지가 있었고, <<문장>>, <<인문평론>> 등 우리 문학의 발표 지면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이들 발표기관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긴 했지만, 1941년에는 이것마저 자진 폐간이란 명목으로 발간을 중지 당하여 우리 문학계는 사실상 전멸해 버리고 만다. 곧 문인들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배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절필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현상이었다.(362)

1941년을 전후하여 치욕스런 암흑기에 접어들자 우리 문학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상실한 채 해방될 때까지 다소 공백기에 접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363)


4. 평론문단의 오류와 논쟁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국민문학이란 이름으로 평론문학에 있어서도 일본 정신을 수긍하려는 문단의 조짐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시초는 <<국민문학>>의 창간호에 게재된 최재서의 평론 「국민문학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환경 아래 당시의 여러 문인들이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였으나.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364)

한마디로 일제 말기의 문학은 이육사․윤동주․심연수의 저항시를 제외한다면 완전히 공백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내선일체 의식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거나 일제에 아부하거나 하는 평론이 모두 치졸할 뿐만 아니라, 비평의 본령이나 비평의식을 상실한 비평작태의 오류가 범람한 탈선의 시대였다.(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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