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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구호-한국근대소설연구
2009년 05월 16일 22시 05분  조회:2889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조구호, 󰡔�한국 근대소설연구󰡕�, 국학자료원, 2000

이향소설과 같은 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문학작품들은 그것이 생산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제강점기의 이향은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대응이자 삶의 단면이다. 그리고 이향소설은 그런 문제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므로 개별 작품에는 어떻게든 역사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향의 시대적 배경과 이향소설을 상호 의존적이고 소통적인 관계로 검토할 것이다.(18쪽)

이향의 양상을 살펴보면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한 애국지사들의 망명과 일제와 그들의 앞잡이들에 의한 경제적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간 농민들의 이농으로 크게 두 유형으로 드러난다.(21쪽)

일제는 조선의 농촌을 그들의 항구적인 식량공급지로 만들기 위하여 1908년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여 일본의 자금으로 조선의 농지를 매입하는 한편, 일본 농민을 조선의 농촌으로 이주시킨다.(조기준, 일인 농업이민과 동양척식주식회사, 한국근대사론 1(지식산업사, 1985), 64쪽-인용자 재인용) 그리고 토지조사사업을 빌미로 전국의 토지를 수탈하기 시작한다. 이 사업은 단순한 토지조사가 아니라 일제가 우리 나라를 식량공급지로 만들기(28쪽) 위한 토지 약탈사업이었다. 토지는 생산의 토대이고 생존의 근거이므로 수탈의 제 일 대상이었다. ‘일제는 한반도를 그들의 영구적인 식민지로 지배하기 위하여 조선인 중소지주․자작농․자소작농 등 농촌사회의 중간층을 몰락시키고, 농촌사회를 일본인 및 조선인 대지주와 그 소작인으로 양분하여 농촌에서의 민족자본가 계층의 성장을 저지하는 식민지 농업정책을 꾀하여’(강만길, 일제하 농촌빈민증가의 원인, 동양학 14집(단국대 동양학연구소, 1984), 160쪽-인용자 재인용)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수탈했다.(29쪽)

정책이주란 만주사변(1931) 이후 일제가 넓은 농토와 풍부한 자원을 지닌 만주를 지배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조선 농민들을 만주로 이주시킨 것을 말한다.(고승제, “만주농업이민의 사회사적 분석”참조 윤병석 외 편, 한국근대사론 1(지식산업사, 1977)-인용자 재인용)(36쪽)

일제강점기 이향소설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농민들의 이농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 소설들이다. 당시의 이농은 식민지 통치아래 민족이 겪었던 고난의 참상을 잘 말해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 등 일련의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가난한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궁핍한 상황과 이농민들의 삶은 당시의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이농을 다룬 소설은 주로 이농의 원인을 부각시켜 궁핍한 현실을 고발한 것이 한 부류를 이루고, 또 하나는 만주나 일본 등지에서 이농민들이 겪는 고난을 그려 민족의 수난을 묘사한 것이다.(94쪽)

앞의 유형에 속한 작품들은 고향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쫓기어 가는 암담한 모습과 일본 등지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속아서 가는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고, 뒤의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이농민들의 삶의 모습에 따라 ‘좌절과 절망’하는 것과 ‘각성과 저항’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95쪽)

앞에서 농민들잉 고향을 떠나게 되는 이향의 역사적 배경을 일제의 착취와 수탈이라고 했다. 일제의 수탈과 억압에 대대로 지어먹던 토지를 빼앗기고 정든 고향에서 내몰리게 된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가는 곳은 간도로 대표되는 만주였다. 당시 굶주린 조선의 농민들에게 간도는 ‘기름진 땅이 널려 있고 산림도 울창하여 나무 걱정도 없어 열심히만 하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이상향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105쪽)

간도는 고향에서 내몰리게 된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망의 땅이었다.(105쪽)

간도 이주민들의 고난상을 그린 작품들은 이주 초기의 극도의 궁핍으로 절망적 세계에서, 생존을 위하여 목숨을 건 소금 밀수를 감행하는 세계로 전개되고, 또 수전 개간으로 정착을 하게 되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광복투쟁기 소설의 흐름의 한 갈래를 보여주는 것이며, 간도 이주민들의 정착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140쪽)

어느 한 시대에 발표된 문학 작품의 세계가 그 시대를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시대가 지닌 삶의 총체적 분위기가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148쪽)

이향소설과 같이 일제의 가혹했던 검열에도 불구하고 민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형상화한 데에는 작가의 현실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49쪽)

경향문학은 당대의 사회적 모순의 근본 원인이 계급 몬순에 있다고 파악하고, 문학을 매개로 한 조직적인 실천을 내세운 문학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1925년 조선 프로레타리아예술가 동맹(KAPF)을 결성하고, 박영희․김기진․최서해․조명희․이기영․한설야․임화․김남천 등의 작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류보선, 민족과 계급-리얼리즘 소설의 두 좌표, 「민족문학사 강좌 하」(창작과비평사, 1995), 94-97쪽-인용자 재인용)(153쪽)

일제는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에 중일전쟁을 도발하면서 전체 아시아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을 더욱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군사력과 경찰력을 증강하여 조선민족의 일거수일투족까지도 감시하며 수많은 애국지사와 저항적인 민중들을 검거․투옥․학살했다. 출판물에 대해서는 1931년 카프회원들에 대한 제일차 검거를 필두로 하여 검열을 강화하고, 작품의 발표를 방해하며 삭제 개작을 공공연히 강요하였다. 1935년 카프의 강제해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일제의 문화적 탄압은 프로문학은 물론이고 그 외의 문학을 포함한 모든 민족문학의 위기를 초래했다. 과거 어느 시기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155쪽)

재만 조선인 문학은 1930년 이후 1940년대에 걸친 일제강점기 후기에 만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국내에서는 민족문학의 최후 보루였던 <<동아일보>>․<<조선일보>>에 이어 <<문장>>과 <<인문평론>>마저 폐간되고 친일의 황도문학이 위세를 떨치고 있던 사정을 감안하면 그 문학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156쪽)

1941년 태평양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아 각종 잡지들을 폐간하고 우리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작가들은 노골적인 친일행위와 친일문학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이에 어떤 작가는 그 강요에 굴복 당하고 어떤 작가는 글쓰는 행위를 중지하고 어떤 작가는 투옥 당하고 어떤 작가는 국외로 탈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실로 우리 문학사의 암흑기에 놓여진 것이었다.(157쪽)

어느 일정한 시기의 문학작품에서 어떤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은 그 시기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하겠다.(200쪽)

광복투쟁기에 간도 이주의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일본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에 의한 수탈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랑이민이다.

둘째,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망명이민이다.

셋째,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략하기 위하여 꾀했던 이민정책에 속아 대륙침략의 제물이 된 정책이민이다.

당시 간도이민은 대부분은 첫 번째와 세 번째 경우에 속한 유랑이민과 정책이민이었고, 두 번째 경우에 속하는 망명이민은 극히 소수였다.(201쪽)

유랑이민과 정책이민은 이주 동기로는 구분할 수 있겠으나, 그들이 이주하게 된 배경은 크게 다를 발 없이 일제의 수탈에 의한 경제적 궁핍에서이다.(201쪽)

일제는 한반도 식민통치의 전 단계로 1908년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고, 이어 토지조사사업을 빌미로 전국의 토지를 수탈하기 시작한다. 토지는 생산의 토대이고 생존의 근거이므로 수탈의 제일 대상이었다.(201쪽)

그리하여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는 1918년 이후에는 대다수의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일제는 토지수탈에 이은 2단계 식민지 정책으로 산미증식운동을 강행하여 민족의 주식인 쌀을 수탈하여 농민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한다.(202쪽)

일제는 1932년 허수아비 정부인 만주국을 세워 겉으로는 민족협화와 樂土 만주를 부르짖으며 이민을 장려하는 한편, 안으로는 대륙침략을 획책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하여 고난을 겪은 것은 만주국 건국 이전이 되어야(216쪽) 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인이 작용한 때문인지 「농군」과 「벼」에서 만주로 이주하는 이주민의 모습은 고향에서 내몰린 초라한 행색이 아니고, 이주민의 생활도 가난에 찌들어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처지도 아니다. 이들 작품에서는 수전 개간의 고난이 중점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217쪽)

「농군」, 「벼」 등에서 드러나는 조선이주민들의 고난상은 1920년대의 최서해의 「홍염」, 「기아와 살육」 등에서 그려진 바와 같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은, 일제의 검열이라는 족쇄도 한 원인이 되었겠지만, 1930년대 이후는 이주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의 이주민들이 어느 정도 정착할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간도 이민소설은 이주 초기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몸부림을 치던 단계를 지나, 목숨을 건 소금 밀수를 감행하기도 하다가, 수전 개간으로 정착하게 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광복투쟁기 소설의 흐름의 한 갈래를 보여주는 것이며, 간도이주민들의 정착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218쪽)

문학작품이 역사적 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형상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광복투쟁기에 이루어졌던 우리 민족의 간도이주는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이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민족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간도 이민소설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219쪽)

작가가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성실하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그것이 문학적 가치는 아닐지라도 작품을 평가하는데 참고자료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수길 초기소설이 이루어진 역사적 상황과 그의 만주생활을 살펴보는 것은 작품 연구를 위한 예비적인 작업이라 하겠다.(222쪽)

이와 같이 다소 여유 있는 생활을 누렸다고 해서 작가 자신이 40여년의 일관된 작품이라고 밝힌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주제의식이 부정되거나 왜곡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하에서 민족이 겪어야 했던 현실을 함께 아파하고 타개하려고 노력한 투철한 역사의식을 지닌 작가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현실과의 괴리도 이러한 그의 생활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229쪽)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만주 이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참상을 전달하거나 고발하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사느냐”를 견지해온 작가적 소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시대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왜 그러한 수난을 받아야 했는지를 밝혀야 하고, 나아가 어떻게 그와 같은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가를 구조적으로 천착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근본적으로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 통치에서 비롯되고 있는데도 「새벽」에서는 이에 대하여는 언급되지 않고 단지 이주민들의 고난상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234쪽)

오직 벼, 벼 앞에는 아무런 희생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벼」 201쪽

어른들은 이내 틀에 익숙해 졌으나 저항력이 없는 어린애들은 설사를 하다가 죽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벼에 좋은 물이므로 어린애 하나 둘 죽는 것은 결코 큰 일이 아니었다.

-「벼」 241쪽

이것은 재만 조선인들의 삶의 진실일 수도 있겠으나, 이 작품에서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 중의 하나다. 「벼」를 위하여는 어린 자식의 희생까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외면이다. 이러한 태도는 곧 민족이라는 개념도 벼 앞에서는 자리할 수 없게 되어 만주국의 건립 이념인 이른바 <오개족 협화>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희생도 무릅쓰고 감행하는 수전 개간이 결국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시선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235쪽)

작품 「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새벽」에서와 같이 가족단위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매봉둔 주민전체의 문제로 민족적 차원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236쪽)

「새벽」의 박치만과 동일한 계보를 이루는 인물 한익상의 횡포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이주사회에 기식하는 전형적인 착취형 인물로 인하여 이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수난상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난은 한익상이 제거됨으로써 해소되고 있다는 것이 「새벽」이나 「벼」에서와 같이 개인이나 집단의 힘으로 극복될 수 없는 고난이 아니라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에서 제기된 것과는 다르다고 하겠다.(239쪽)

「토성」은 작품의 배경이 만주국 건국 이후라는 데서 앞의 세 작품들보다 신중한 논의가 요구된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만주국은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하여 세운 허수아비 정부임으로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 수용하고 있는가에 따라 작품의 성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안수길 초기 소설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큰 쟁점이 있다면(239쪽) 바로 이점이다. 작품의 내용이 일제의 허수아비 정부인 만주국의 이념에 연계되어 있다면, 그것은 곧 친일적인 성격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장덕순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인용자) 그리고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시대 영합적인 요소를 일제의 가혹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다면(민현기의 경우-인용자), “당대의 한국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강렬한 민족의 지향의지를 형상화한 작품 중의 한 편”(이재선의 주장에 따라-인용자)이라는 평가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240쪽)

작품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이복형제인 학수와 명수 사이에 금전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새벽」, 「벼」, 「원각촌」 등에서와 같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하여 갈등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명수네 일가의 만주 생활은 「새벽」, 「벼」 등의 작품에서 보았던 고난상이 아니다. 소작생활을 열심히 하여 수전 4상(垧)을 마련할 수 있었고 학수가 장사 밑천으로 수전 문서를 처분하기 전에는 명수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또한 만주국 건국 이후에는 황폐한 농촌을 갱생시키기 위하여 갖가지 특전과 혜택이 베풀어지고 아편의 재배까지 허용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아버지와 명수가 적극 수용하여 열심히 농사를 짓고 비적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토성을 쌓고 자위대를 편성하여 명수는 부단장이 된다.

여기서 이주민의 생활상은 변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주국의 이념을 적극 수용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에서 보이는 일제의 허수아비 정부인 만주국의 설립과 정치가 미화되고 있는 것과도 연계된다.(240쪽)

① 만주에는 새나라가 탄생하였고 간도에는 새 정치가 배프러 졌다.

-「토성」 72쪽

② 이제는 어두운 정치가 아니었다.

정부에서는 다시금 농촌의 갱생을 위하여 한 가지 특전이 배프러 졌다.

-「토성」 73쪽

③ 반만 항일의 완매한 꿈을 채 못 깨치고 처처에 준동튼 패잔비도 황군 장병과 ...(중략) ... 협화회 특별 공작대의 선무공작으로 일편 섬멸되고 일편 귀순하여...

-「토성」 86쪽

④ 자위단의 애로 청년단도 조직되어 주민은 당국과 함께 이 새나라 건설의 파괴자를 방어하고 응징하는데 한 덩어리가 되었다.

-「토성」 86쪽

위와 같은 요소들은 강압적으로 강요된 사항이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시대 영합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241쪽)

현실 긍정의 자세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새마을」-인용자) 「토성」에서부터 드러나는 이주민의 생활은 수난의 모습보다는 현실을 긍정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강조하며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목축기」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242쪽)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이주민의 생활상과 「목축기」에 드러나는 이주민의 생활상을 비교 검토해 보면 「목축기」의 중심인물 찬호는 앞의 작품들에서 보았던 인물들과는 여러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찬호의 신분은 수의사 면허를 가진 전문학교 출신의 전직 교사이며 많은 인부를 거느린 목장의 경영주이고, 둘째, 막내동생이 찬호가 근무하던 학교에 교원으로 오게 된 것으로 보아 여유있는 가정 형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현 당국에서는 찬호의 와우산 목장을 목축부락으로 인가하였고, 목축 자작농으로서의 자급자족 경제를 세워나감에 갖가지 편의를 제공하여 앞의 작품들에서와 같이 이주민으로서 겪어야 할 갈등의 요인이 전혀 없다. 그런데다가 찬호는 근면 성실하여 목장 일도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염상섭이 말한 「새로운 경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찬호의 생활은 더 이상 이주민의 생활이 아닌 만주에서 터전을 잡고 만주국의 정책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만주국의 한사람의 모습인 것이다.(244쪽)

작품의 발표연대가 늦을수록 이주민의 생활상은 만주국의 이념에 순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목축기」에서는 더 이상 이주민이 아닌 만주국의 정책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만주국의 한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안수길의 초기 소설들이 재만 조선인의 생활을 발굴하여 민족이 겪는 고난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은 「토성」 이전의 「새벽」에서만 해당된다. 「벼」에서 보여진 친일적인 경향은 「토성」에서부터 만주국 건국 이념에 순응하는 시대 영합적인 경향들로 나타난다.(244쪽)

작품연구에 앞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작가의 전기를 살펴보니, 안수길은 투철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창작에 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다. 그것은 안수길 자신이 밝힌 바 있는 ‘내게 허용되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만주 이주민들이 겪는 고난의 모습을 보여 주려했다’는 창작의도에서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새마을」, 「목축기」, 「토성」 등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만주국 건국 이념과 부합되는 내용들에서도 알 수 있다고 하겠다.(245쪽)

그리고 작품세계의 특징으로는 만주에서 조선이주민들이 겪는 고난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작품들에서 그리고 있는 이주민들의 고난상이 창작 년도가 늦은 작품들에서 보다 약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새마을」, 「목축기」 등의 작품들에서 그려진 이주민들의 삶은 조선이주민들이 겪는 고난상이라기 보다는 만주국의 국책에 순응하면서 만주국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점에서 안수길의 초기 소설들은 일제의 식민지 입식정책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거나 친일적인 요소를 부분적으로 그리고 있어 민족문학으로 떳떳이 자리 매김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우리말로 작품활동이 불가능했던 때에 우리말로 재만 조선이주민들의 참상을 다소나마 증언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부분도 있다고 하겠다.(245쪽)

여기서는 ‘등장 인물의 성격과 행동이 가족적인 질서안에서 특징 지워지고, 2대 이상 몇 대에 걸친 연대기적 서술이 가계 중심의 서사형태를 지닌 것’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렇게 ‘가족사소설’을 규정해 보면, 「북간도」는 구성상 가족사 소설의 양상을 보인다. 등장인물의 특성이 가족적인 질서에서 대를 이어 전해지고 서사구조도 이한복일가를 중심으로 연대기적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309쪽)

소설의 인물중심 연구는 작품자체가 제공하는 정보(작품자체가 제공하는 정보로는 육체적 외모, 동작, 버릇, 습관, 타인에 대한 행동, 말씨, 자신에 대한 태도, 그 인물에 대한 타인의 태도, 물질적인 환경, 과거, 이름 또한 비유 등의 외변기법 등을 들 수 있다.(로비 매콜리/죠오지 래닝, “인물 구성”, 김병욱 편․최상규 역, 󰡔�현대소설의 이론󰡕�, 대방출판사, 1984, 251-291쪽)-인용자 재인용)를 토하여 인물의 성격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주치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어떻게 실현해 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작품의 의미를 밝혀나가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물중심 연구는 작품 속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당대의 사회․역사적 지평으로 투사될 때 작품의 의미가 보다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물의 성격을 통하여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규명하고, 이것을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 연관 지워 봄으로써 작품의 의미와 작품의 바탕이 되고 있는 작가의 역사의식이 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313쪽)

힘 없는 정부의 백성인 조선이주민들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민족의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주체성을 지키는 길 밖에 없다.(318쪽)

1부에서는 서술자의 시선이 이씨가에 고정되어 있어, 이씨가 인물의 이동에 따라 장면이 이동되는 단선적 서술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하여 장편소설의 일반적인 특징인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가는 다양한 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고, 작품의 배경인 북간도는 조선이주민들의 공동의 공간으로 자리잡지 못하게 된다.(319쪽)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세 명의 소년이 그들의 조부가 보여준 성격을 닮고 있다는 것이다. 장치덕의 중도주의를 닮은 현도는 감자서리를 하자는 의견만 제시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으며, 최칠성의 순응적인 태도를닮은 동규는 청인지주 동가네 밭이라며 두려워하고, 창윤은 한복의 대담성을 닮아 앞장서 행동하다가 붙잡히게 된다. 이렇게 인물의 성격이 대를 이어 가족적인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서 「북간도」가 가족사적 구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321쪽)

한복의 죽음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주체성의 결과로 창윤에게 민족의식을 싹트게 하는 계기가 된다.(321쪽)

정수가 가족과 떨어져 독립지사들과 기거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게 됨으로써 가족적인 질서에서 벗어나게 되어, 창윤과 정수 사이는 이가 빠진 것처럼 연결이 잘 되지 않고,(윤재근, “안수길론”(하), 현대문학, 1977. 10호, 261쪽-인용자 재인용) 1․2․3부와 4․5부가 별개의 작품처럼 되어 버렸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김윤식, 󰡔�안수길연구󰡕�, 정음사.1986, 177쪽-인용자 재인용) 그러나 정수의 항일독립 투쟁은 한복에서 창윤으로 이어지는 이씨가의 유전적 특징인 주체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수의 성격형성에 가족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해서 가족적인 특성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수를 가족적인 질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창윤과 정수라는 두 인물을 통해 용정과 대교동이라는 두 공간적 배경에서 항일투쟁과 이주민의 삶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씨가의 3대 인물이자 2․3부의 중심인물인 창윤은, 작품의 4․5부에서 중심인물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앞의 1대․2대의 인물들과 같이, 소설의 장면(326쪽)에서 사라지지 않고 용정의 외곽지역인 대교동-훈춘 등지에서 이주민드이 겪는 고난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만주침략야욕이 노골화됨으로써 청인들에게 일본의 앞잡이로 오인받게 되는 조선이주민들과 청인 사이의 갈동, 마적과 청국 군경의 횡포에 시달리는 고난의 모습 등이 창윤을 통하여 제시된다. 그렇지만 창윤을 통하여 드러나는 이주민들의 삶은 항일투쟁과 무관하지 않다. 항일투쟁이 확대될수록 수난의 정도도 심해진다. 독립군을 색출한다는 빌미로 자행되는 갖가지 탄압이 형상화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보았던 서술자의 시선이 중심인물에 집중됨으로써 일어나게 되는 단조로운 사건의 전개를 피하고, 역사적인 현장을 다각적인 방법으로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작품의 1․2․3부가 발표된 이후 4․5부가 5년 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작품에 대한 작가의 충분한 검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327쪽)

정수가 소년병으로 항일무력투쟁에 참가하지만 이야기는 항일투쟁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하느냐에 맞추어지지 않고, 봉오골전투와 청산리전투 등의 역사적인 사건을 서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 정수의 역할은 한복과 창윤에 비하여 크게 위축된다. 소설의 무대가 비봉촌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용정이라는 실제의 공간으로 이동되고, 등장인물의 관심도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북간도 이주나, 청국의 착취에 수난을 겪게 되는 이주민 문제에서, 항일독립투쟁이라는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되어 용정의 기미만세의거, 봉오골전투, 청산리전투 등의 항일투쟁의 역사적 사건들이 서사구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327쪽)

「북간도」의 특징중의 하나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설 속의 사건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제1부의 함경도 육진지방의 대흉작이나 역사적 인물인 어윤중, 백두산 정계비 등에서부터 4․5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을 소설 속의 사건으로 등장시(327쪽)켜 놓고 있다. 이것은 1․2․3부에서는 비봉촌이라는 허구의 공간에서 이주민들의 삶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에 반하여, 4․5부에서는 용정이라는 실제의 공간에서 항일투쟁을 부각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용정이라는 실제의 공간은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 부각되고, 항일투쟁이라는 주제는 만주일원에서 전개되었던 실제의 사건들과 결부되지 않고는 크게 의미를 지닐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심인물 정수가 열네살의 소년으로 등장하고 있어 정수의 행위는 항일투쟁의 역사적 사건들을 주동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역사적 사건에 따라 결정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인물의 이상적인 삶은 항일투쟁이라는 주제에 흡수되는 모습을 보인다.(328쪽)

정수의 자수행위는 소년병으로 항일독립투쟁에 참가했던 정수의 성격이 철저하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으로(김윤식,󰡔�안수길연구󰡕�, 정음사, 1986, 223쪽-인용자 재인용) 작가의 주제의식을 흐려놓게 된다. 이에 대하여 의지와 좌절이 거듭되는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신동한, “민족의 수난을 딛고 서는 용기”, 󰡔�한국소설의 문제작󰡕�, 일념, 1985, 285쪽-인용자 재인용)며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중심인물인 정수의 행위가 작가의 주제의식의 형상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면 정수의 자수는 작품의 주제를 흐려 놓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4․5부의 주제인 항일투쟁의 올바른 전망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온 이주민들의 삶에 대한 진지하고 철저한 물음이 던져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329쪽)

북간도를 중심으로 만주일원을 떠돌던 이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자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기만 하고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작가의식은 역사적 현실을 보다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것은 1910년 이후 북간도 농업이민은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1931년 만주사변 이후의 만주는 일제의 만주국 건설이라는 식민지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정수의 자수는 만주국 건설이라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부합되는 행위에 다름아니라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329쪽)

일제의 만행에 짓밟힌 민족의 쓰라린 역사를 안수길은 담담한 필치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점이 「북간도」가 지니는 최대의 장점일 것이(330쪽)다. 중심인물의 삶과 연결되지 않은 사건들이지만 민족이 겪은 수난을 곳곳에서 담담하게 형상화하고 있어 만주 이주민들의 수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331쪽)

결국 「북간도」에서 중심인물 이씨가 4대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민족의 수난기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북간도를 중심으로 만주일원을 떠돌던 조선이주민들의 고난상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중심인물인 이씨가의 삶의 모습은 아들→손자→증손자로 대를 이어가면서 가족적인 차원에서 이주민 집단촌으로,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어, 「북간도」는 가족성장소설의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발전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331쪽0

「북간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를 이어 가족사적으로 등장하고 있어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니, 이한복가를 중심으로 전반부는 최칠성가와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통하여 북간도 이주민의 수난상이 제시되고 있고, 후반부는 장치덕가와 상이한 삶의 태도가 비교되면서 이주민들의 삶이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331쪽)

이한복 일가 4대는 아들(장손)→손자(창윤)→증손자(정수)로 대를 이어(331쪽)가면서 가족의 생존을 위한 노력의 북간도 이주, 이주사회에서 우리 것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난상,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독립투쟁들이 차례로 전개되어 「북간도」는 가족성장소설의 모습을 보인다.(332쪽)

3대의 인물 창윤은 청국인들 사이에서 조선이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점을 고민한다. 제고장은 제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자주적인 노력이 강구되지만 청국 정부의 압력과 청인들의 착취에 그의 노력은 무위로 끝나게 된다. 창윤은 청국의 착취와 압력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일구어놓은 터전인 비봉촌을 떠나게 된다. 이것은 곧,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이주민들의 수난의 형상화이자 민족이 겪는 수난의 상징이기도 하다.(332쪽)

정수의 항일독립투쟁은 한복에서 창윤으로 이어지는 이씨가의 유전적 특징인 정의감과 주체성 지키기가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비롯한 북간도 이주민들이 겪은 고난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의 국권을 되찾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정의감과 주체성에 다름 아닌 것이다. 또한 민족이 잃은 국권을 되찾을 때 이국에서 푸대접 받는 이주민의 삶을 청산하고 국가라는 가장 아래서 가족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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