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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가 옥으로 다듬어지기까지
2013년 06월 28일 08시 24분  조회:1511  추천:1  작성자: 홍천룡
•예술의 이야기•

돌멩이가 옥으로 다듬어지기까지

홍천룡


중국에는 “화벽수주”(和璧隋珠)라는 성구가 있다. 거기에 첫 두글자 “화벽”에는 이런 옛말이 깃들어있다. 춘추시기에 초(楚)나라의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투둘투둘한 돌멩이 하나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이 세상에서 보기드문 옥돌이라고 인정하였다. 나라의 백성으로서 일편단심을 지닌 그는 그것을 초나라 려왕(历王)께 바쳤다. 그것을 본 려왕은 그것이 돌멩이지 어디 옥인가고 대노했고 언감생심 나라의 임금님을 속였다고 그의 왼쪽다리를 잘라버렸다. 후에 초무왕(楚武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곁사람들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또 그 옥돌을 바쳤다.

초무왕 역시 돌멩이라고 여기고 한쪽밖에 없는 그의 오른쪽다리마저 잔혹하게 잘라버렸다. 후에 개명한 초문왕(楚文王)이 즉위하니 변화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밤낮없이 대성통곡하였다. 그 까닭을 알게 된 초문왕은 사람을 시켜 그 돌멩이를 까고 제련하고 다듬어보게 하였다. 반복적인 가공을 거쳐 마침내 더없이 귀하고 정결한 옥이 나왔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인내심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결과였다. 돌멩이가 옥으로 되기까지는 이처럼 간난곡절을 겪게 된다. 그걸 보아내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걸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걸 가공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무생명적인 옥이 이럴진대 유생명적인 인간이 무재로부터 인재로, 더 나아가서는 천재로 되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간난곡절을 겪어야 할가!

전번 날 작품전을 벌린다고 한국으로 떠나는 동창생 신만호씨를 만났다. 그는 수십년간 과외로 서양화를 전공해온 “토배기 화가”였다. 크게 이름을 날리지 못했지만 그는 자기가 전공하는 서양화에 아주 큰 자신심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늘 이런 말을 하군 했다.
“내가 혼을 빼서 그린 작품이 그 어느 땐가에는 세계화단에서 빛을 보일게다. 그것이 나의 생전이 되겠는지 사후가 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날이 꼭 오게끔 죽을 때까지 붓대를 놓지 않을거야!”

그의 제일 큰 꿈은 세계적인 문화대도회지 빠리에 가서 한번 개인작품전을 꾸려보자는것이다. 그걸 위해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도 화실에 몸을 잠구고 혼신을 다 바쳐 그렸고 또한 그릴것이다.

신만호는 식구가 열한명이나 되는 대가정에서 넷째로 태여나 가난하게 살아왔다. 늘 배를 곯아 마을주변의 채마밭에 기여들어 가지며 오이며 훔쳐먹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적도 여러 번 된다. 그때 그 시절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자랐다. 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 요인은 어느 한 “봤다-꿍!”이라는 숨바꼭질 놀음에서였다. 술래에게 들키우지 않겠다고 어느 한 집의 창문밑으로 기여들다가 순간적으로 방안을 피끗 훔쳐보던 그의 눈이 홀연 휘둥그래졌다. 그는 앙증스레 창문에 매달려 방안을 완전히 시야에 잡아넣었다. 방안 벽체에 거폭의 그림이 걸려있었던것이다. 그처럼 크고 황홀한 그림을 그는 처음 보았다. 그는 술래가 쫓아와서 “만호, 봤다-꿍!”하고 소리치는것도 모르고 그 그림에 얼을 빼앗겼었다…

그 집이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의 저명한 화가 석희만선생님네 저택이였다. 어릴 때에는 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희구하게 보이는 것이 어린 심령에 충격을 주게 된다. 그 그림에서 충격을 받은 만호씨는 그때부터 그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숙제공부는 뒤전에다 쓱- 밀어놓고…자기절로 자기의 몸속에 있는 “옥”을 발견한 셈이였다.

세상에서 제가 그린 그림이 제일 멋있다고 여긴 그는 동학들 앞에서도 자랑했고 선생님 앞에서도 자랑했고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도 자랑했다. 헌데 그들이 모두 그의 붓대를 “잘라버리자”는 “려왕”이였을줄이야!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고소장”이 날아들었고 부모들의 “빗강대”에 볼기가 부어났고 동학들의 조소가 그칠새 없었다. 허지만 그의 그림 그리기열정은 점점 더 죽가마처럼 끓어번졌다. 그에게는 일주일에 한시간밖에 없는 도화(图画)시간이 제일 재미있는 학과목이였다.

헌데 그도 시기를 잘못 만난 것 같다. 소학교 5학년때부터 “문화대혁명”이 터지면서 도화시간이 취소당했다. 최저한 미술에 대한 상식도 배울수 없게 되였고 전반 사회적으로 미술을 한낮 심심풀이장난으로 우습게 여기게 되였다. 한창 배울 때 토대를 닦지 못한 것이 만호씨에게는 큰 허점으로 남게 되였다. 마치도 초무왕이 변화의 오른쪽다리를 잘라버린것과 비슷한 정경이라고나 할가!

허지만 세월은 한쪽으로만 기울며 흐르는 것이 아니였다. 신만호씨한테도 초문왕과도 같은 귀인이 어깨를 툭 쳐주시고 가신 적이 있다. 바로 방안 벽체에다 거폭의 그림을 걸어놓아 신만호씨의 호기심을 당겨주셨던 석희만선생님이시다. 만호씨는 석희만선생님의 둘째 아들 석아룡씨와는 송아지친구였다. 그런 연줄로 자기의 창작품을 석희만선생님께 뵈이고 가르침을 받을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그의 어깨를 쳐주시며 “어물쩍하구나. 노력하면 될거야!”라고 격려해주시군 하셨다. 거기에서 큰힘을 얻은 만호씨는 집체호에 내려갔을 때나 시내에 들어와 건축회사에 다닐 때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붓대를 놓은 적이 없었다.

전문학교를 나오지 못한 그는 남보다 열배이상의 노력으로 분투해야만 한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후에는 아예 직장까지 버리고 나와 서양화창작에 몰두하였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로임이라곤 일전한푼 없다. 부인의 로임에 매달려 세 식구가 살아왔다. 그 생활이 어떠했겠는가를 상상해볼수가 있다. 허지만 그는 그림을 그릴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며 늘 랑만적인 분위기에 빠져 논다.

1992년 7월에 서울 롯데미술관에서 중국동포 서양화가 신만호의 첫 초대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작품은 36점이였고 5일간 진행되였다. 두번째 전시회는 그해 11월에 경북 포항의 시그너스호텔에서 열렸다. 경북매일신문사에서 주최하였던것이다. 한국화단의 많은 전문가들도 “대륙풍이 물씬 풍기는 표현과 색채의 조화가 잘 어울려져 특색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신만호씨의 한국행 제3차초대전도 역시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앞으로 그가 꼭 우리 민족을 위해 좋은 걸작을 내오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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