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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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에 걸린 “팡즈”와 “말라깽이”
2013년 07월 22일 10시 20분  조회:1254  추천:0  작성자: 홍천룡
•수필•

영양실조에 걸린 팡즈 말라깽이

홍 천 룡


전번 날, 학교 때 우리 반주임이시였던 한선생님네 꾸린다는 “신라원”사우나탕에 들어가 본적이 있다. 시설도 구전했고 뒤따르는 서비스도 상쾌할만큼 흡족스러웠다. 들어내여 보일건 다 보이고 씻어내야 할건 다 밀어버리고 볼거리도 보고 먹거리도 먹었다. 늘 입고다니던 옷견지들을 다 벗어버리고 알몸뚱이로 사람들앞에 스스럼없이 나선다는것이 어딘가 좀 민망스러운 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순간적이였을 뿐, 너도나도 다 알몸이고 보니 민망스러울것도 없었다. 참, 묘한 세계였다. 아, 원시사회에서도 야인들은 아마 이렇게 …

실내는 뜨거운 수증기로 이루어지는 얇은 안개로 묘하고도 몽롱한 분위기를 이루고있었다. 그 몽롱한 분위기속에서 분주스럽게 얼비치는 사람들의 라체가 동적인 예술품이였다. 생활이 풍요로워진 오늘날 사람들의 몸체는 대개 보기가 좋았다. 유들유들한 살집이 감싸준 몸체에는 뼈의 형태가 기본상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개중에는 혹간 특이한 “풍경”을 이루어 보이는 “걸작품”도 있었다. 무우처럼 툭실한 다리로 남산처럼 축 처진 배를 지탱하면서 휘우뚱거리는 거동도 표현되고있었다. 보기에도 숨차오른다. 더욱 가관인것은 그런 비만인들이 시트가 없는 마싸지침대에 네각을 팔자로 벌리고 척 들어 누운 모습이였다. 희여번듯한 몸체가 눈을 풍요롭게 해준다. 안마사들이 저 몸체를 어떻게 다루나 궁금했는데 생각보다는 달랐다. 때밀이수건을 낀 안마사들의 손이 그 몸우에서 대패질 하듯 오르내리니 연신 “으야야-”하는 신음이 발설되면서 살결이 푸들푸들 떨렸다. 근육질이 강한 피부보다 지방질이 두텁게 낀 피부가 마찰에는 연약한가부다.

이런 풍경과는 달리 피끗 스쳐보아도 소슬하게 으쓱 움츠려지는 “속사편”도 있었다. 저가락 같은 다리에 가슴뼈가 아릉아릉하게 내비낀 사람들도 혹간 비츨거리며 나타나군 했는데 그 걷는 형태에서 벌써 절각거리는 뼈소리가 방불히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마가을 늦바람에 앙상한 나무가지가 소연하게 울어예는 소리를 듣는 감각이라 할가! 그런 사람이 달각거리며 마싸지침대에 오르면 어딘가 처연해보인다. 건장하고 뚝뚝하게 생긴 안마사들의 억센 손아귀에서 어떻게 배겨낼가 하는 근심이 앞섰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독수리가 병아리를 잡아채듯 갈구리 같은 손아귀가 마른 뼈대를 부셔내듯 몸체를 주물러놓는데도 오히려 간지럽다는듯 미소를 피우며 “야, 좀 더 쎄게! 원 계집애들 손인가!”라고 조롱질이다…

사우나탕에 들어가서 흔히 눈으로 사생할수 있는 스케체이다. 뚱뚱한 사람과 여윈 사람, 뚱뚱한 사람이 여윈 사람을 부러워할 때가 있고 여윈 사람이 뚱뚱한 사람을 부러워할 때가 있게 된다.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사람으로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지고있고 여윈 사람은 여윈 사람으로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지고있다. 어느 한 시기에는 뚱뚱한 사람들의 뚱뚱한 몸집이 “죄”가 되여 몰리운 페단도 있었다. 근대에 와서 우리의 생활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적이 두번 있었다. 한번은 공화국건립전후였고 한번은 개혁개방전후였다. 전자의 변화는 정치생활의 계급적지위의 변화였고 후자의 변화는 경제생활의 실질적향상의 변화였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이데올로기통제하에 모든것을 계급관점으로 분석처리했기에 해괴하고 우습꽝스러운 일들이 많았었다. 아이들가운데 누가 좀 통통하게 생기면 “지주놈새끼”란 별명을 달아주고 “똥딸보, 똥딸보, 지주뱃때기 나간다!”고 놀려주기도 했었다. 기실 그 시기에는 영양부족으로 몸에 살이 오른 아이들이 별반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장기간 저질음식의 편식으로 말미암아 단백질결핍으로 인한 부종이 와서 퉁퉁해보였던것이다. 그런데 잘먹어 살이 찐 지주의 형상에 비교되여 그런대로 억울한 별명을 얻어가지게 된다. 당시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스크린막에 부각되여 나온 지주의 형상은 대개 돼지처럼 살이 피둥피둥 진 모습들이였다.

배를 쫄쫄 곯던 세월이라 배가 좀 나온 사람을 보면 달라는것 없는데도 소리없는 질투가 생겼고 시샘이 났었다. 음식이 단조롭고 먹어야 할만큼 먹지 못하는 세월에 영양실조로 몸이 퉁퉁 붓기는 뚱뚱보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한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배가죽이 등에가 붙은 말라깽이들도 적지 않았었다. 헌데 계급적안광으로 볼 때 말라깽이들의 형상도 그닥 광채롭게 비껴들지 않았다. 언제나 “개다리”, “앞잡이” 혹은 “보지고 같은 변절자”의 반면 이미지로 전락되군 했었다. 그래서 개처럼 주인에게 꼬리질 치며 주인의 턱찌끼만 얻어먹느라 뼈다귀처럼 말라빠진 놈들이라고 “개뼈대”란 별명을 달아줄 때도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개뼈대”란 별명을 가진 아이들이 몇이 있었다. 그때 그런 세월에만 있을수 있었던 별명들이였다. 요즘 세월에 그런 별명을 달고다니는 아이들이 있는가?

개혁개방이 되면서 우선 먹는 문제부터 해결되였다. 30여년동안 잘먹으니 모두들 살집이 좋아졌다. 아래배가 비죽이 나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이들도 영양이 좋아 통통하게 자라난다. 보기에도 귀엽다. 인간생활에서 먹는것도 큰 복이다. 먹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이 또 어디 있으랴? 없다! 그래서 먹을수 있다는건 다 먹어본다. 단조로운 편식이 없어졌다. 그다음 맛있는걸 골라서 먹게 되였다. 맛있는것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그다음에는 맛있는 가운데서도 영양이 풍부하고 몸에 좋다는걸 골라서 먹게 된다. 한때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좋다고 하니 소고기값이 막 치달아올랐다. 록용이 보약이라고 하니 술에다 마구 불궈 마셔 엉덩짝이 함지박만해진 녀자도 있고 솔잎이 몸에 좋다고 하니 소나무밑에 가서 입술이 퍼렇게 물들어질 때까지 그걸 질근질근 씹어서는 내뱉아버리고 또 질근질근 씹어대는 남자도 있었다. 아무튼 건강을 지키자는 보건의식이 높아지니 좋은 현상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하느님이 심술쟁이였다. 세상 사람들이 먹는 즐거움에 너무 빠져 복중복을 누리니까 시샘이 들었나부다. 고혈압이요 당뇨요 하는 문명병을 사람들에게 안아다주었다. 그런 문명병의 발생원인이 주요하게 비만에 있다고 하니 또한 비만과의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몸까기요 살빼기요 다이어트요 식이료법이요 하면서 절식이로다 소식이로다 하면서 고양이 종지밑굽 핥듯 한다. 어떤 녀자애들은 허리가 한줌만 해서 바람에 날려갈듯 하느작거리는 갈대 같은 체격임에도 헬스방에 가서 땀을 한동이씩 빼고도 모자라서 또 요가에 가서 바삭거릴 정도로 말라빠진 어깨를 들쑥날쑥거린다. 지금은 빼빼 말라빠진 체격이 선호의 대상이 되였다. 아마도 그제날 “개뼈대”들에 대한 명예회복인양 싶다.

오늘날 뚱뚱하다고 해서 다 영양과다섭취인것도 아니고 또한 빼빼 말랐다고 해서 다 영양실조에 걸린것도 아니다. 허지만 뚱뚱보인 “팡즈”도 좋고 말라꽹이인 “개뼈대”도 좋고 다 영양실조나 영양과다섭취에서 인기되는것이다. 기실 영양과다섭취도 나중에는 영양실조를 초래시킨다. 해결책은 음식을 골고루 먹고 영양을 균형적으로 섭취하는것이다. 음식은 크게 곡물류, 채소류, 고기류로 나뉜다. 세가지 부류의 음식을 골고루 먹는것이 해결책인데 정작 그렇게 하자면 제대로 안될 때가 많다.
여기까지는 음식을 놓고 사람의 신체에 해를 끼치는 영양실조를 론해봤는데 그렇다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영양실조”는 무엇을 놓고 론해야 하는가?

전번에 과학발전관학습에 관한 보고회가 있어서 참가했다. 중요한 회의였고 또한 주요한 지도간부의 중요한 강화가 있다기에 노트까지 챙겨가지고 갔었다. 헌데 기대와는 좀 어긋났다. 보고자의 보고가 어느 학교의 랑독시간에 선생님의 지적을 받은 학생이 교과서를 펼쳐들고 랑독하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누가 써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툼한 발언고를 한장한장 펼치면서 좔좔 읽어내려갔는데 고저강약도 없었다. 다만 띄염띄염 모를 글자가 나타나는지 아니면 글씨가 잘못 타자되였는지 머리를 홰홰 돌리다가는 어물어물 넘겨버리는 그 코소리가 따분해지는 보고장분위기에 미세한 활력소를 부여해줄뿐이였다. 보고내용은 주요하게 리론에 대한 연구였고 형세에 대한 분석이였다. 그다음에는 학습제도에 대한 강화였고 실무연찬에 대한 요구였고 금년도 계획이였다. 년초에 들은적 있었던 계획같았다. 보고가 약 한시간반쯤 진행되였는데 청중과의 소통은 한마디도 없었다. 유모아 한마디도 없었다. 새로 제기되는 개념도 없었다. 더우기는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실제적인 중점이 한개도 제기되지 못했다.

보고회가 끝나서 회의장밖으로 참가자들이 보뚝이 터진 밀물처럼 밀려나왔다. 여기저기에서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공연한 시간만 랑비했어. 할일이 막 밀리는데…”

“ 뭘, 한잠 잘잤잖아!”
……
보고자에 대한 조소였고 보고회의에 대한 풍자였다. 우리의 지도일군들에게는 예전보다 모든 여건이 구전하게 주어지고있다. 기층이나 현지시찰을 나가려면 고급승용차가 기다리고 외국고찰을 나가려면 비행기를 탈수 있다. 기층에 내려가면 해결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고 외지나 외국에 나가보면 선진경험도 있고 반면교훈도 있다. 왜 그런걸 보고에다 인용하지 못하는가, 왜 그런 경험과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못하는가? 문제는 그런걸 보아내지 못하고 그런걸 접수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해결해야 할 중점을 틀어잡지 못하는것이다. 왜서? 허울좋은 자리만 탐내고 “학습”이라는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았기에 “능력부진”이라는 “영양실조”가 왔기때문이다. 주석대에 오르면 “뚱뚱”해보이고 고급승용차에 오르면 “뚱뚱”해보이고 개막식에 테프를 끊어야 “뚱뚱”해보이고 축하연에서 남먼저 술잔을 높이 들어야 “뚱뚱”해보이고 상급지도자의 뒤꽁무니에 서있어야 “뚱뚱”해보이는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각 분야마다에 이처럼 “영양실조”에 걸린 “뚱뚱보”들이 아직도 적은가?

꽃이 만발하는 봄철에 한 학술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대학교교수도 참석했고 새파란 문단햇내기들도 끼여있었다. 세미나의 테마는 대중문화사업을 어떻게 흥기시키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한두 사람이 첫”포”를 쏘자 분위기는 인차 열렬해졌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어떻게 대중가요를 보급시키고있는가, 청신함을 즐기는 일본에서는 어떻게 목욕문화와 화초문화에 잠겨있는가, 프랑스의 거리예술이 어떻게 도시의 풍격특색을 도드라지게 했는가 하는 주제발언이 이어지더니 어찌하여 화제가 중세기의 로마네스크예술이 유럽의 옛구조건축물에 준 영향을 어떻게 볼것인가로 전이되였다. 뒤이어 수도원제도하에 노르만양식의 보급과 그 우아한 건축기교에 리용된 원통형, 아치형원리가 거론되더니 종교건축물내의 벽화와 인상파의 물에 젖은 로댕의 조각예술도 론의되였다. 뒤이어 고전음악의 대표인물인 바흐와 종교음악, 종교음악과 대중문화지간의 관계도 의론되였고 르네상스시기에는 왜 화가들이 시대의 선두에 서게 되였는가, 그 시기에 도대체 철학가들의 힘이 더 컸는가 아니면 문필가들의 힘이 더 컸는가 하는 쟁론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점심오찬시간이 퍽 지나면서 배가 촐촐해났던것이다. 배가 잠시 촐촐해나지 않았어도, 시간이 잠시 흐르지 않았어도 거론은 끝이 없었을것이다. 아마도 멀리는 태고연한 구석기시대의 마그달레니안인들의 동굴벽화로부터 20세기초엽의 현대미술거장인 피카소에까지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듣지 못했던 말도 많이 들었고 기억속에 아리숭해졌던 인물들의 이름도 다시 확인할수 있었다. 시야가 저기 저 먼 유럽에까지 넓혀졌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시간상의 제한으로 세미나는 고향의 대중문화, 우리네 도라지춤, 우리네 봄노래를 어떻게 보급시킬것인가, “가무의 고향”이란 옛호칭에 부끄럼없이 “꾀꼬리” 울어예고 “능수버들”이 하느적거릴 “미래의 고향판”예술과는 제대로 련결되지 못했던것이였다.

실제와 멀리 떨어진 리론이 공돌고 있고 현실을 떠난 지식결구가 구조되고 있는 오늘날 현실에는 적지 않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위기가 잉태되고있다. 수요를 떠난 교육결구라든가 토대를 닦지 않는 거품경제라든가 정신적지주를 허무는 이색문화라든가… 아무튼 실제를 떠난 리론은 “영양과다”에 걸린 표면적형태이다.

학습에는 리론학습과 실천학습이 있다. 리론만 리론이라고 추구하면 “영양과다”에 걸릴수 있고 일만 일이라고 열중하면 “영양실조”에 걸릴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균형을 잡는가 하는것이다. 균형을 잘 잡으면 더는 사우나탕안에 들어가 배가 처진 “뚱뚱보”도 볼수 없을것이고 뼈마디 절각거리는 “개뼈대”도 볼수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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