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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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 좀 천천히 가려무나!
2013년 07월 16일 08시 28분  조회:1600  추천:0  작성자: 홍천룡
•수필•

세월아, 좀 천천히 가려무나!

홍천룡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다 그 아기가 하루라도 빨리 자라나기를 원할것이다. 걸레짝처럼 구질구질한 세월을 끌어당겨다 지릿한 아기의 기저귀마냥 꾹꾹 짜서 한나절의 해볕에 말리우듯, 쪽박으로 아침저녁 물을 주며 콩나물을 기르듯 하루볕이 새롭게 느껴지는 심정이다.

“어서어서 자라고 빨리빨리 크거라!” 하루가 다르고 한달이 다르게 크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심정은 얼마나 뿌듯할가! 헌데 어떤 엄마는 그것도 성차지 않아 키가 크는 생장소를 먹인다, 이러저러한 비타민을 먹인다고 A, B , C를 부른다. 10년, 20년이 지나 그 아기가 제멋에 자랐다고 워들렁거리며 요람을 떠나 밖으로 물덤벙술덤벙 나돌아다닐 때에야 세월이 너무나도 빨랐구나 하는 원망과 근심에 쌓이게 된다.

우리 사회의 발전도 대개 아이들의 성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 금년은 공화국건립 60돐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60년이란 로정을 걸어온 공화국도 인젠 바야흐로 무르익어가는 사과가 되였다. 초가을에 과원에 가서 무르익어가는 사과를 살펴보면 양지쪽을 향한 면은 발가우리하게 익어가고 음달쪽을 향한 면은 여전히 익지 않은 상태로 퍼러딩딩해있는것을 볼수 있다. 그런 사과는 잠시 따지 않고 둬두면 늦가을에 가서야 다 붉어진다. 공화국의 첫 30년은 사과의 퍼런 면이 익는것처럼 그 발전이 굼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면 우선 먹고 입고 자는 집이 첫째 요소일것이다. 첫 30년은 공화국에서 먹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었다. 최저한 굶어죽지 않는 생존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수요에 따라 먹을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은 지워주지 못했었다. 가불간 몇십년 동안 6억 인민이 “워워터우”(옥수수가루로 찐 떡)를 떠날수 없었으니깐. 그것도 배부르게 먹을수 있는 집이 몇집이 안되였다.

지금은 그것이 건강식품이라고 다시 해들고 그제날 옛맛을 재차 음미해보는 사람들도 두루 있긴 있다. 그다음 6억 인민이 몇십년 동안 입어온 옷맵시를 살펴보자. 우선 색상이 단조로웠다. 침침한 검정색이 아니면 곤색이였다. 후에 “문화대혁명”이 터지는 덕분에 누런 국방색이 첨가되여 좀 생기를 띠기도 했었다. 국방색웃옷에다 곤색바지를 받쳐입으면 그당시 청춘남녀들의 류행되는 패션이였다고 할수 있겠다. 필자가 연길시3중 “모택동사상문예선전대”에 있을 때 대원들의 공연복으로 국방색웃옷을 갖추야 했고 거기에 하얀 셔츠도 갖춰야 했다. 안에다 하얀 셔츠를 입고 그우에다 국방색웃옷을 받쳐입고 단추를 채우면 목깃둘레에 실오리 같은 하얀 선이 레이스처럼 내돋친다. 고 햐얀 선이 없기와 있기가 완전히 한 사람의 형상을 바꿔놓는다. 참 귀신 같은 디자인수작이라고 할가! 헌데 한번 공연에 땀에 절은 셔츠를 빨아야 했기에 최저 두세벌 갖추어야 했다. 당시 집집의 가정형편을 보아 한 아이에게 셔츠를 두세벌 갖춰줄 형편이 못되였다. 그래서 우리는 깃만 달린 가짜 셔츠를 만들어서 겨드랑밑으로 줄을 껴서 어깨우에다 걸쳐놓군 했는데 그것이 마치도 녀자애들의 젖싸개와도 같아 매번 그걸 낄 때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군 했었다.

그 세월에 낡은 옷을 기워입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을가! 시집온 새색시의 일솜씨가 낡은 옷을 깁는데서 엿보였고 아줌마들이 제일 부러워한 것이 재봉침이였다. 재봉침만 있으면 낡은 옷을 새옷처럼 만들어낼수 있었고 무릎도리나 엉뎅이쪽을 곱게 기워낼수 있었던것이다. 그다음은 잠자리나 꿈자리가 있는 집이다. 공화국 첫 30년동안에 대부분 백성들은 한집에 한구들로 아이들을 평균 대여섯명씩 키워냈었다. 밤이 되면 한구들에 형님오빠, 누나언니 할것없이 한이불을 덮고 쪼로롱 누워 자야 했다. 그러면 집안이 발을 옮겨디딜 자리도 없게 된다. 한 녀석이 사타구니에다 이불을 감고 딜딜 구을면 끝머리에 서너놈은 발가숭이로 태질하다가 옹송그린채 잠을 자야 했다. 장밤 알몸에다 바람 맞고도 이튿날 한놈도 배앓이를 하는 녀석이 없었다. 참, 괴상한 현상이였다. 더 괴상한것은 우리의 아빠와 엄마가 그런 환경속에서 어떻게 “밤작업”을 했는가 하는것이다. 그래도 거침없이, 거창하게 했기에 곰같은 동생들이 련이어 나왔겠지. 우리 웃집에는 자식이 9명이였는데 맏아들과 막내의 년령차이는 20살이였다. 그 가운데서 물에 빠져죽은 다섯째를 내놓고도… 스무평방이나 될가말가한 집안에서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우리 “웅덩개마을” 북쪽 언덕위, 지금의 공원소학교운동장 남쪽에는 뿌연 기와에 철근콩크리트로 지은 아담한 일본식가옥이 한채 있었다. 공원가에서는 아마도 제일 좋은 고급가옥으로 첫손 꼽아야 할것이다. 저명한 화가 석희만선생님의 저택이였는데 광복전에 지은 집이였다. 80년대후기에 들어와서 파가이주 바람에 무너졌다. 근 40년동안 전반 공원가에서 그 집이 민가중 첫자리를 굳혀왔으니 연길시 가옥건설발전이 얼마나 굼떴다는것이 알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는가!

이와 상반대로 공화국 후 30년은 그 발전이 상상외로 빨랐다. 우선 먹는 문제가 해결되였다. 배를 두드리며 먹을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먹고싶은것을 다 먹을수 있게 되였다. 너무 잘 먹어서 탈이 나고있다. 옷견지도 수시로 바꿔입을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색상도 봄날의 화원처럼 울긋불긋 각양각색이고 디자인도 요란스레 기괴할 정도이다. 어떤 녀자들은 바지가랭이 아래도리를 아깝게도 툭 잘라서 내버리고 시뻘건 정갱이를 내놓고 다닌다. 뭐, 그것도 류행이라나! 전번에 한 중년녀자가 급병으로 죽었다. 함께 태워서 하늘로 날려보낼 옷견지들을 꺼내놓으니 몇 박스나 되였다. 대부분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새옷들이였다. 천당에 올라가서 몇백년은 몰라도 몇십년쯤은 슈퍼에 갈 필요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지금은 시민들의 거주조건도 많이 개선되였다. 옛날처럼 대여섯이 한이불을 덮고 자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집집마다 침실, 거실, 서재, 주방, 위생실이 따로따로 있게 되였다. 연길시내를 한바퀴 돌아도 공용변소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였다. 80년대초반이라고 기억되는데 주정부 북쪽켠에 4층 아빠트가 지어져 어느 한 집으로 초대되여 식사한 적이 있었다. 술상을 차려놓고 누군가 마중켠 위생실에 들어가 쏴- 하고 소리를 내며 갈기니 녀자들이 캐득거렸다. 좀 별란감이 들었다. 깨끔치 못하게 집안에서 대소변을 보게 만들다니! 헌데 지금에 와서는 집안에 위생실이 없는 집에 들어가면 오히려 별란감을 느낀다. 개명치 못하게 집안에 위생실도 안 앉혔나! 지금은 새집에 들어 벌써 5, 6년 살고나면 양식이 낡았다고 더 좋은 신식아빠트로 이주해가는 집들이 적지 않다.

공화국 후 30년이 이렇게 발전이 빨랐고 그와 동시에 세계경제도 발전이 아주 빨랐다. 서울에서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상해로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또 퇴근해서 서울로 돌아가는 보스가 있다니 정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지구가 바야흐로 한동네로 되고있다. 죄꼬만 연길시내바닥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네마실 다니듯 서울행차를 하고있다. 발전이 빠르니 자연 그 덕을 백성들이 본다. 아츨한 아빠트가 수풀처럼 일어서고 차흐름이 개울물처럼 도시의 골목길을 메우며 흐른다. 지금 만원쯤은 큰돈이 아니다. 일년에 수십만원, 수백만원씩 버는 사람이 꽤나 된다. 중산층이 일떠서고 부호층이 앞자리를 다투는 단거리시합이 벌어지고있다. 시합에 참가하고보니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도 그 시합에 참가해야 남못지 않게 살수 있는 세월이니깐. 숨이 차도 남에게 뒤떨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니 자연 부르튼 타발이 튕겨나간다. 제밀할것! 인간세상은 원래 좋을수록 불만이 많은 법이다. 그래서 자꾸 더 발전! 발전! 하며 닫는 말에 채찍질을 하게 되는것이다.

금년은 소해이다. 말이란 놈은 그래도 채찍질 하면 빨리 뛰면서도 갈 곳까지는 간다. 헌데 소란 놈은 궁둥이를 쳐서 빨리 달리도록 하면 멀리 못 간다. 필자가 말하고저 하는 중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전쟁보다 그 피해가 더 무섭다는 차사고를 분석해보면 십중팔구는 초속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발전이 빠르면 좋은 점이 많다. 또한 그만큼 나쁜점도 초래하게 된다. 이럴 때에 모주석의 2분법을 다시 외워보면 그 위대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발전이 너무 빠르면 우선 자원이 고갈된다. 석유, 석탄, 광철… 그다음 자연생태환경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몽골에서 호도거리책임제를 실시하게 되니 양, 말, 소가 대량으로 늘어났다. 개인도 돈을 벌고 가공업도 일떠서고 나라에도 공헌이 컸다. 네 좋고 내 좋고 다 좋은 판이 되였다. 허나 좋은 판국은 언제나 오래 못간다. 먹새좋은 양들에 의해 풀이 없어졌다. 풀이 없는 땅에 바람이 부니 먼지가 일고 모래가 일었다. 새파란 초원이 점차 누런 사막으로 변해갔다. 사막에서 양을 길러낼 뾰족수가 있는가! 아무리 발전이 빠르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모래알만 먹고 자라는 우량종양은 개량해내지 못했다. 그러니 개인도 양을 더 기를수 없게 되고 가공업도 파산되고 나라에서도 황사피해를 입게 되였다. 한시기 세계경제도 급속히 발전했다.

월가의 금융거두들이 피우던 려송연을 한번 툭 털면 사대양 오대주에 그 재가 흩날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주식시장를 흥성케 한다. 앉아서 커피나 차물을 후르륵 후르륵 마시면서도 몇만원, 몇십만원씩 벌수 있었다. 돈이 돈을 버니 너도나도 돈주머니를 안고 달려와서는 여기에다 한줌, 저기에다 한줌, 툭툭, 사처에다 미련없이 처넣는다. 하루아침새에 신사적인 투자인이 되여 슬슬 열매만 따먹는다. 그 피땀으로 바꿔온 거금들이 주식시장으로 사품치며 흘러드니 모든 업계가 새끼에 새끼를 치면서 팽창한다. 대출이 빈번해지고 리식이 올라가는데도 도처에서 자금을 인입하느라고 야단이다. 돈만 주면 할아버지다. 돈이 많이 들어오면 얹혀둘 필요가 없다. 그 돈으로 더 큰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웅대한 계획이 세워지고 사처에서 집을 짓고 기업을 앉힌다. 땅값이 개구리처럼 풀꺽풀꺽 뛰여오르지만 별문제다. 그만큼 집값을 올리고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해내면 되는거다. 하루밤사이에 집값이 한층, 두층씩 올라가니 도무지 하늘끝이 바라보이질 않는다. 전기사닥다리라는 엘레베터를 타고서도 늦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니 거품이 안생기게 되겠는가! 고요한 물에다 자갈을 서너대야씩 한꺼번에 뿌려보시라, 거품이 안생기는가고!

이번에 전 지구촌을 휩쓴 금융위기가 전세계에 다시한번 경종을 울렸다. 오바마가 아메리카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였다고 국면이 돌려질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반드시 금융헌병대가 조직되여 세계금융기구를 정돈하고 주식시장이 더는 도박판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말아, 좀 천천히 달리려무나…”

저기 저 일망무제한 초원의 끝머리로부터 녀중음가수 마옥도의 웅글진 노래가락이 미풍에 서서히 실려오는것만 같다. 말을 탄 녀석도 인젠 고삐를 늦출 때가 되였고 소를 탄 녀석도 유유하게 피리나 불 때가 되였다. 소란 놈은 원체 엉기적거리며 뜨적뜨적 걷기를 좋아한다. 그 성격에 맞춰줘야 목적지까지 무난하게 갈수 있는것이다.

옛날 로인들도 무정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두고 한탄했었다. 그래서 “백구과극(白驹过隙)”이란 말도 나왔고 일대 거인인 모택동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고 개탄했었다. 세인들은 무슨 뚝이라도 쌓아놓고 세월의 흐름을 막고 무슨 금실이라도 늘여서 세월의 발목을 동여매자고 무등 애를 써왔었다. 필자도 엊그저께 학교를 졸업하고 편집부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선것 같은데 벌써 근 30년 세월이 흘러 60고개를 바라보게 되였다. 후, 어쩌노? 해야 할 일을 절반에 절반도 못해놨는데… 오십고개를 넘어서부터는 시간이 총알처럼 나간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꺼풋하면 하루가 지나간다. 정상적인 사업실무를 내놓고도 저녁술이 떨어지면 최저한 그날 뉴스프로는 들어야겠지, 최저한 련속드라마 한집쯤은 봐야겠지, 최저한 인터넷에 들어가 한고패 “헤염”쳐봐야겠지, 전화를 받고는 최저한 친구생일에 가서 술잔이라도 나누어야겠지, 최저한 천당으로 가시는 분에게 묵도라도 드려야겠지, 최저한 결혼잔치에 부조라도 해야겠지, 최저한 아들딸의 일에 참녜해야겠지, 최저한 손주녀석을 안고 곱다고 해줘야겠지, 잠자리에 들면 최저한 마누라의 허벅다리라도 슬슬 어루만져줘야겠지, 최저한 량쪽 부모님집에 한번쯤은 들려봐야겠지, 최저한 친척나들이쯤은… 숨이 차오른다. 언제면 만사구애없이 남산소나무그늘아래에서 보고싶은 책이나 뒤적이며 세월을 보낼수 있을가!

세월이 사람을 너무 숨가쁘게 만든다. 백년도 못살 인생을 천년만년 살것처럼 뛰고 뛰고 또 뛴다. 국내로도 뛰고 외국으로도 뛴다. 오십이 넘었다면 좀 쉬면서 뛰자! 할 일이 많다 해도 할 일을 다 해놓으면 우리의 후배들이 무얼 하겠는가! 옛날에는 남산에도 범이 둥지를 틀고있었다는데 우리의 로선배들이 다 잡았기에 지금은 우리가 범을 잡자고 해도 범을 찾아볼수가 없게 되지 않았는가! 무슨 일이나 천천히 해서는 랑패가 없다. 중화민족의 한가지 고유한 특점이 “만만디(慢慢地)”가 아닌가! 그 “만만디”가 앞으로 이 지구의 땅떵어리에다 거대한 기적을 이뤄낼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날 너무나도 빨리 흘러가는 세월에 대고 한마디 웨치고싶다. 세월아, 좀 천천히 가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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