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화두로 되였다면 누구라 할것없이 하고싶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우리가 제일 많이 사랑하고 례찬해온 자연물은 단연코 꽃일 것이다. 운치의 상징으로 꼽히는 매화나 련꽃, 부귀를 의미하는 모란이나 작약, 사랑을 대표하는 장미, 번영으로 비유되는 진달래나 무궁화를 망라한 수없이 많은 봄꽃과 여름꽃, 가을꽃들에 대하여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간직하고 있을 《꽃같은 시절》이나 기쁨으로 《웃음꽃피우》던 지난날의 추억에 대하여 그 누가 하고픈 말이 없겠는가?
남호손은 수필 《태항산 기슭에 핀 들국화》에서 《기운이 쇠잔해진 가을햇살이 게으름을 피우면서 찬서리를 걷어낼 때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들과 락엽들 사이에 청초하게 피여있는 들국화》를 화두로 삼고 있다. 어릴 때 할머님을 따라 가을걷이를 하는 논밭에 가서 메뚜기를 잡다가 조우하게 된 《숨막힐 정도로 예쁘게》 피여있는 들국화를 처음 보게 된다. 《아무리 임자없이 들판에 피여있는 꽃이라도 일단 꺽었으면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할머니의 소박한 교육과 할머님의 사랑으로 한 겨우내 《들국화의 특이한 꽃향기에 취해》 잠들던 어린시절의 추억에서 작가는 《나는 들국화를 할머님의 사랑의 상징으로 받아들였》고 《모든 꽃들 중에서 들국화를 제일 사랑하게 되였다》라는 고백을 이끌어 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속에서 방황하던 작가는 천진시 교외의 들판에서 보게 된 들국화를 고향과 할머님을 향한 마음의 《망향초》로 인식한다. 그때 작가가 쓴 한시중《아시원(兒時願)》과《남호(할머님의 택호)심(南湖心) 》 에서 작가의 절절했던 그 때의 심정을 쉽게 읽을수가 있었다. 이제 《세계적 석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남호손은 이순의 나이에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하기 위하여 태항산오지로 들어간다. 태항산 기슭에 묻힌 조선의용군 렬사들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그의 들국화사랑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생명까지 바친 조선의용군 선렬들의 넋》으로 승화된다.
여기서 우리는 남호손 수필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작가는 들국화라는 화두를 빌려 자신의 일생을 쓰고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님의 사랑과 젊은 시절 할머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족사랑 이 오늘의 선렬들에 대한 추모로 대표되는 민족사랑으로 승 화되는 과정을 청초한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청초한 삶을 살아 가는 사람만이 쓸수 있는 청초한 글은 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수필은 독자로 하여금 강요나 설득을 요구하지 않는 문학장르라고 한다. 독자들을 우선 배려해주는 여운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수필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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