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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이야기(26)
2024년 03월 25일 15시 06분  조회:369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26)
                                                                                                                        회령
 
등소평을 중용
 
1974년 여름, 주은래는 병이 악화되여 입원치료를 하게 되였다. 국무원의 사업은 강유력한 령도자를 수요하였다.
 
1973년 2월 20일 모택동의 동의하에 등소평은 강서에서의 연금생활에서 풀려나 가정이 북경으로 이사를 했다. 이어 모택동의 안배로 3월10일 그의 부총리 직무를 회복하고 8월 중공 1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등소평을 중앙위원으로 선거하였다. 당년 12월12일, 모택동이 주최한 정치국회의에서는 등소평의 건의에 따라 “정치국이 정치를 론하지 않고 군위가 군무를 론하지 않는” 현상을 비판하고 대군구의 사령원을 서로 교체하고 등소평을 총참모장으로 임명  하였다.
 
사업에 복귀한후 등소평은 모택동의 지시와 지지하에 강청, 왕홍문, 장춘교, 요문원의 반대행위와 격렬한 투쟁을 진행 하였다.
 
1974년 10월 4일, “등소평을 국무원 제1부총리로 한다.”는 모택동의 지시를 왕홍문이 기록하고 비서 장옥봉이 전달하였다. 이에대하여 강청일당은 지대한 불만을 품고 10월 17일 정치국 회의에서 등소평을 공격하였다. 그날밤 강청일당은 밀모를 하고 왕홍문을 장사에서 치료휴양중인 모택동에게 보내여 등소평이 제1부총리가 되는걸 반대한다고 고자질을 하였다. 모택동은 강청들의 음모를 간파하고 당장에서 왕홍문을 업격히 비평하였다.
 
1974년 10월 20일, 모택동은 등소평을 당중앙 부주석, 제1부총리, 군위부주석 겸 총참모장으로 임명할것을 건의 하였다. 이에 강청일당은 지대한 불만을 품고 강청이 직접 모택동에게 견결히 반대한다는 편지를 썼다. 동년 11월12일 모택동은 강청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였다.

“자꾸 나서지 말라. 문건을 비준하지 말며 내각을 만들지 말며 뒤에서 우두머리노릇을 하지말라.  너는 이미 원한을 많이 쌓았다. 다수와 단결하라. 부탁한다. 사람에게서 보귀한 것은 자기절로 자기를 아는 것이다. 보충.”

강청은 모택동의 지시에 몇마디 거짓말 검사를 하고 자기는 아무일도 할일이 없다는둥 아무런 직무도 없다는둥… 불평과 불만을 지껄여 댔다. 얼마후 그는 왕해용과 당문생을 시켜 왕홍문을 인대 부위원장으로 임명하자고 자기의 건의를 모택동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이에 모택동은 “강청은 야심이 있다. 그는 왕홍문을 위원장으로 만들고 자기는 당의 주석이 되려고 한다.”고 첨예하게 까밝혔다.

1974년 12월, 왕홍문은 그들 일당의 밀모대로 또 장사로 가서 인대 등 인사문제로 고자질을 하였다. 이에대하여 모택동은 또 한번 엄격하고도 첨예한 질책을 하였다.

“너는 4인방을 만들지 마라. 종파를 만들지 마라. 종파는 넘어진다,”
 
강청일당ㅡ4인방은 몇달간 갖은 수단과 작간으로 소란을 피웠지만 모택동의 비평과 질책과 저지를 당했을 뿐이다. 모택동은 그들이 탈권하는데 유리한 말을 한마디도 해 주지 않았다.
 
1974년 12월 23일! 주은래는 중병을 무릅쓰고 전용기로 장사에 갔다. 당과 국가의 사업을 한몸에 지니고 있는 모택동과 진지한 상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주은래 뿐이였다. 그번 토론에서 모택동은 주은래에게 등소평에 대한 신임과 만족을 충분히 표달 하였다.

“등소평은 아주 얻기 힘든 인재다. 정치사상이 매우 강하다.”

모택동과 주은래는 그번 장사 상봉에서 등소평을 당과 국가의 령도자로 결정 하였다. 이는 극히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결정으로서 당과 국가의 권력을 진정한 맑스주의자의 수중에 장악되게 하였다는 것을 력사는 증명 하였다.
 
1975년1월 5일, 중공중앙 1호 문건은 등소평을 중앙군위 부주석 겸 총참모장으로 임명한다는 것을 정식으로 공포 하였다.
 
1975년 1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중국공산당 10기2중전회에서는 등소평을 중공중앙 부주석,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거 하였다.
 
1975년 1월 13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전국 4기인대 제1차회의에서는 주덕을 위원장으로 주은래를 총리로 등소평을 제1 부총리로 선거 하였다.
 
모택동은 1973년 등소평을 다시 복귀하고 중용하였다. 4인방의 탈권음모는 끝내 달성되지 못했다.
 
                                                                                                             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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