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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3.8절
2014년 03월 07일 15시 11분  조회:2831  추천:1  작성자: 회령
           수필
                                        그해의 3.8절
                                                                                                       회령

    해마다 3.8절이 오면 1971년도의 3.8절이 회상되며 천사만사로 무량한 감개와 차탄을 금할수 없다.

    3.8국제로동부녀절이 생겨난것은 금년이 벌써 103주년이 되였다. 주지하다싶히 3.8절은 정치적 사상적 기념일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진심으로 가장 성스럽게 보는, 어머니의 명절이다. 부녀는 인류의 어머니가 아닌가?! 아무리 익살을 험하게 쓰는 놈팽이래도 3.8절을 감히 성탄절, 정든님절이거나 멍텅구리절, 애완동물절과 같이 거론하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아이때부터 어머니치마꼬리를 잡고 3.8절경축구경을 하였다. 그때는 물론 아이다보니 개눈깔사탕알을 받아먹고 어머니들이(할머니, 처녀들도) 춤을추고 노래하는것을 보는것이 제일 재미있고 유쾌한 일이였지만 후에는 차츰 3.8절을 제대로 알기 시작했는데, 청춘시절부터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성스러운 명절인즉 3.8절이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이 관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이런관점을 갖게된것은 인간세상리치를 알아서거나 그무슨 정치사상각오가 있어서 그렇게 된것이 아니다. 나는 셈이 들면서 어머니의 로고를 너무도 눈물겹게 보았고, 받았고, 느꼈다. 그리고 많은 어머니들도 나의 어머니와 비슷함을, 지어는 더욱 혹심함을 보았다. 그때세월, 해방전은 말할것도 없고 해방후에도 개혁개방전까지는 농촌부녀들의 고생이 남자들보다 퍽 더 많았다. 이것은 구태여 일일이 말할것도 없는, 누구나 다 아는 력사적, 생활적사실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량식고생, 입는고생, 병고생, 돈고생이 그때는 보편적이였다. 특히 농촌에서 더 심하다보니 농촌부녀들의 고생을 어찌 한입으로 다 말하겠는가!... 3.8절인즉 그이들의 명절이라니 나는 감격과 기쁨과 고마움을 금할수 없었다.

    해마다 3.8절을 맞으면 나는 격동된 심정을 안고 소감을 일기책에 썼다. 소감의 중심내용은 해마다 같았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않겠다는것과 내가 일하게 되면 어머니를 꼭 호강시켜드리겠다는 맹세였다. 그러나 나는 맹세를 실천하지 못했다. 그것은 줄곧 신병을 갖고 악을쓰며 무리해온 어머니가 49고개를 넘지못하고 북망산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자욕양이 친부대”(자식이 받들려고하니 부모가 기다리지 못하더라.)였다…

    여기서 한마디를 부언한다면, 누구를 비판하자는것은 아니고, 지금세월 불효한 자녀들을 보면 나는 참으로 리해할수 없다. 부모를 박대하다니?!... 천만가지 리유를 댄다해도 나는 납득이 않된다. 똥오줌을 받아내는 부모래도, 치매에 걸린 부모래도 부모는 어느날 떠나간다. 다음은 영영 다시 보지 못한다… 나는 대소변을 시중들어야하고 식사를 시중들어야하고 정기도 오락가락하시는 아버지를 90거이 17년을 모셔봤기에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의 수고를 모르는바는 아니다. 사람의 한생을 볼때 “사람은 늙으면 아이가 된다.” 아이는 어른이 보살피는게 아닌가!... 그리고 “물을 마일때 우물 판 사람을 잊지말아야 한다.”는것은 최저의 도리 도덕이 아니겠는가!... 유치원애들도 말할줄아는 이런 천경지의의 “상식”이 커가면서 오히려 회박해 지고, 잊혀지고, 지어는 반대로 나가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나가는대로 말하다보니 갈지자가 되였는데 언귀정전, 71년도 3.8절을 말해보자.

    그해 3.8절을 우리 인민공사혁명위원회(향정부)에서는 정치적대회사로 한바탕 본때있게 경축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사혁명위원회의 “직승기령도간부”(반란으로 뛰쳐오른 간부) 들인 당위부서기 겸 혁명위원회부주임, 청년단서기 겸 혁명위원회위원, 부련회주임 겸 혁명위원회위원이 버쩍 열을 내서 기발한 창발정신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공사반란파총부에서 맹활약을 하던 그들은 혁명위원회간부로 출세를 하긴하였지만 “이농대간” (농민신분으로 국가간부직에 종사하는 사람)이였다. 그들 세사람의 속심에서 당전과업은 정식으로 국가간부가 되는 것이였다. 청년단서기와 부련회주임은 그외에도 또 입당을 해야할 간거한 과제가 더 있었다. 하여 그들은 천방백계로 정치사상수평, 사업능력이 높다는 것을 과시해야하며 정치업적을 많이 쌓아야 했다. 훗날 삐뚜러진것을 바로잡을때 이 세사람은 한결같이 자기 생산대로 쫓겨가긴 했지만, 당년에는 기세가 맹렬하기 짝이 없었다.(세사람 다 작풍문제에 걸려 전근같은건 말할나위도 없이 단통 쫓기우고 말았다. 단서기와 부녀주임은 요행 얻은 당표까지 떼우는 랑패까지 당했다.) 3.8절을 한달 앞두고 그들셋은 “창의서”(“전공사혁명적부녀들에게 드리는 우리의 한통의 공개편지”라는 부제까지 달아서)를 뻘건종이에 써서 공사대문짝옆의 담벽에 내다 붙혔다. 중점은 요약 다음과 같다. “… 모택동사상붉은기를 높히추켜들고 림부통수를 따라 강청동지를 본보기로 문화대혁명의 대풍랑속에서 계속혁명의 길로 용왕매진하는 우리 혁명적강철부녀들이여! 우리는 이번 3.8절을 우리공사 춘경생산대회전의 첯포성을 울리는 날로 하자! … 3.8절날 오전6시부터 오후6시까지(12시간) 혁명적인 실제적 실천행동으로 비료를 이고 지고 밭에 내여가는 운동을 하자! … 밤7시부터 10시까지 혁명적문예경연대회를 진행하자! …” 창의서는 그야말로 희세의 혁명적걸작이였다.

    인차 기관단위들에서 “호응서”가 나붙고 대대들에서 “붉은마음표시”대자보가 올라와서 공사담벽에 쫙 들어 붙었다. 형세발전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공사혁명위원회에서는 이 신생사물에 대하여 민감한 무산계급정치적반응을 보여 즉각 “3.8절경축활동방안”을 제정하고 문건형식으로 기층에 하달하였다. 문건에서는 창의서의 첯조항 즉 춘경생산대회전운운에 대해서는 부정하였다. 그것은 혁명위원회위원인 “민주혁명파”(반응이굼뜨다는, 뒤떨어졌다는 풍자. 원 공사당위서기와 사장 등}들이 3.8절을 춘경생산대회전개시일로 한다는건 농사절기상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거동이라고 해서 격렬한 쟁론끝에 “민주혁명파”들이 이겼기 때문이다. 하여 “3.8절비료운반운동”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비료운반운동부분에서도 문건은 대폭 중대한 수정을 하였다. 그것은, 로동시간을 8시간으로 하고 우차도 사용하며 우차에는 반드시 붉은기를 꽂고 남자들도 전부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사람마다 어록책을 주머니에 넣어 목에 걸어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에는 금년 춘경생산대회전총결평비에서 3.8절날 상황을 중점으로 본다고 하였다.

    만단의 준비와 련습을 하며 윽벼르는 와중에 드디여 3.8절이 왔다. 기관단위와 대대들이 총 궐기하였다. 남자들이 변소의 똥덩이를 꺼서 부녀들의 머리에 이워주면(우정 부녀들의 코앞으로 똥삽을 휘둘러서 구역질이 나게하며 흐드득거리는 치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고 지고 대렬을 지어 어록노래를 부르며 날쌔게 달리였다. (옥수수영양단지 만들곳에 날라갔다.) 퇴비무지는 바위덩이처럼 땅땅 얼었는데 남자들이 남포질을 하고 곡괭이를 휘둘러 끄고는 수레에 퍼담아 주면 부녀들이 2,3명씩 달라붙어 수레를 몰았다. 남자들만 수레를 몬다더냐!... “봉, 자, 수”(봉건, 자산계급, 수정주의)의 케케묵은 남존녀비사상을 짓부시자!... 부녀는 절반하늘이다!... 수레운전사들은 호매롭게 구호를 웨치고 어록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며 법석구니를 떨기도 했다. 소는 아무리 혁명열의를 다 내도 사람의 각오를 따를수 없었다. 그놈들은 사람과 보조를 맞추지 못해서 몽둥이 찜질을 등어리며 엉덩짝에 무차별 수없이 당하며 또 욕사발을 먹었다. 어떤소들은 뼉다구만 울구덕 불구덕 분주히 바삐 작동하고 속도는 내지못해서 사람들이 고삐를 어깨에 메고 앞에서 끌며 달리는 바람에 코가 찢어질 지경이였다. 오늘은 소도 3.8절을 무던히 쇠게 되였다. 비료운반운동의 첯포성은 전공사의 방방곳곳에서 봄우뢰처럼 우렁차게 하루종일 울리였다. 저녘때가 되자 하루동안의 전투는 승리적으로 순조롭게 결속되였다.

    잇따라 공사구락부에서 문예경연이 시작되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로 엄청난 사건이 터질줄이야!

    사건은 승리대대에서(원래의 이름은 복동)터졌다. 3.8절경축활동문건이 내려오자 승리대대 리서기와 부녀주임(하향지식청년)은 정신이 번쩍 났다. 그들은 즉시 대대, 생산대간부확대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였다. 승리대대의 리서기는 “4청”운동후기, 문화대혁명직전에 입당한 감때사나운 30대의 사내다. 그는 초중을 졸업하고 농사일을 시작했는데 눈매가 날카롭고 입이 맵짜고(말을 잘한다.) 성미가 까다롭고 사나워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였다. “4청”에서도 그랬지만 문화대혁명에서 그는 사람을 잡는 반란파의 본때를 충분히 발휘했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경의원지했다. 부녀주임은 인물체격이 츨츨하고 활발한 처녀였다. 그는 리서기가 지명해서 제발시킨 간부인데, 그들은 손발이 잘 맞았을 뿐만아니라 “아래”까지도 잘맞추는 사이였다.

    리서기와 부녀주임은 이번에 전공사적으로 한번 본때를 보이자고 윽별렀다. 확대회의에서 리서기는 3.8절을 승리대대춘경생산대회전개시일로 한다고 선포한 후(내부결정) 정치적대사로 3.8절활동을 진행한다면서 주밀한 전투명령을 내렸다. 거기에는 공사혁명위원회문건지시정신외에 회한한 조목이 여러가지가 더 있었다. 몇가지만 본다면, 혁명적구호 등 정치표어를 붉은종이에 써서 곳곳에 많이 붙이며,(생산대마다 영구적인것을 다섯개이상 만들것.) 남녀불문 아이들까지도 모두 어록패를 만들어 목에걸것, “어록노래선진”, “충성무선진”, “량식절약대식품(나물 밥)능수”, “모범시어머니(며느리)”, 그리고 특별상으로 “모범남편” 을 생산대마다 1명을 선거해야 한다.(공사문건에서는 저작학습선진과 3.8홍기수를 선거하라고 했다.) 3.8절날 하루의 가마목일은 남자들이 책임질것, 생산대부담으로 간단한 연회를 조직하며(1년총결시 연회수평을 초과못함.) 혁명적문예활동을 할것같은것도 있었다. 리서기가 전투동원령회의를 잔뜩 긴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다우쳐 나가는데 1대생산대장이 삐뚜렁소리를 하여 분위기를 헝클어 놓았다. 그는 워낙 입이 사복개천같이 걸직한데다가 구변이 좋고 궤변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는 공사간부들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며 대대서기는 동네집애들같이 보았다. 그러나 군중위신이 좋아서 해마다 생산대장을 하였다. 말도 잘했지만 농사일에는 막히는것이 없었고 생산조직을 우선 잘했든 것이다. 그는 소리높히 씩뚝거렸다. “거, 한조목을 더 넣기오. 그날만은 안까니와 자는것두 잡아다 볼기를 치기우. 좋지?…” 회의장은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리서기는 련거퍼 엄숙하라고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는 1대대장을 노려보다가 질책은 그만두었다. 더 말을 하다가는 또 무슨 엉터리 궤변이 나올지… 리서기는 급급히 회의를 끝내버렸다. “강조하겠는데, 왕년처럼 시시껄렁한 우스개를 하거나 전투를 놀음질처럼 우습게 보면 간부는 모가지를 뽑아버리고 대비판에 세우겠소! 어디라구 감히! 전투태세를 똑바로 차리시오! 이만. 산회!”

    리서기와 부녀주임이 이번 3.8절에 발벗고 나선데는 그럴만한 내역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그들도 공사의 “이농대간”들처럼 “과시”와 “업적”이 필요했던것이다. 리서기는 공사당위부서기 겸 혁명위원회부주임으로 올라간 사람과의 선발에서 미끌어진 사람인데, 그것이 앙심으로 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였다. 그는 림창이거나 량잠, 하다못해 사반기업같은데라도 들어가려고 왼심을 썼다. 부녀주임은 입당하고 공인모집에 뽑혀 시내로 돌아가기위해 적극성을 발휘하는 중이였다.

    저녘후, 공사문예경연대회에 참가할 선수팀이 대대판공실에 모여 출발준비를 하였다. 인솔자는 물론 리서기와 부녀주임인데 그들은 대원들의 사기를 돋구기 위하여 길은 4, 5리 멀지 않지만 뜨락또르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공사농기짬에 “얼빠”(2.8형. 그것이 쩍하면 우둘렁거리며 왕청같은데로 달아난다고 해서 붙힌 별명)가 두대 있었는데 운전수중에는 승리대대 청년이 한명 있었다. 그날도 운전수청년은 얼빠를 몰고 집으로 왔다. 그는 벌써 여러날 승리대대에 와서 제방돌을 실어 나르는 고된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녀주임은 운전수를 데리려 달려 갔다가 볼이 부어 빈손으로 돌아왔다. 운전수가 피곤도 하지만 술을 먹어서 운전을 못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일어나지도 않더라는 것이였다. 그는 워낙 술을 못하는 사람인데, 저녘에 3.8절마을연회에서 한두잔 마이고 곧바로 집에와서 쓰러졌던것이다. 리서기는 발끈 성이나서 “그눔아새끼!”하고 욕을하며 운전수를 데리려 갔다. 리서기는 운전수의 아버지가 “휘청휘청하는게… 어떻게 차를 모는가!”하며 막아나서는것을 듣는체도 하지않고 청년을 끌고왔다.

    얼빠는 선수팀을(20여명) 싣고 공사구락부까지 무사히 갔다. 리서기는 경연을 구경하다가 운전수를 끌고 공사식당으로 갔다. 속이 출출하며 한잔생각이 간절했든 것이다. 그들은 경연이 끝날즈음 시간을 맞추어 구락부로 돌아와서 선수들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차가 산모퉁이를 돌면서 그만 길아래로 굴러 떨어질줄이야?! 순간에 대형참사가 터졌다. 운전수와 부녀 2명은 당장에서 죽고(1명은 1대생산대대장의 처였음.) 10여명이 중상을 당했다.(후에 또2명이 죽었다.) 리서기와 부녀주임은 적재함뒤쪽구석에 딱 붙어 앉았는데 별로 상하지 않았다.

    승리대대뿐만아니라 전공사가 한바탕 끓어번졌다. 온갖여론이 무성한데, 어데서부터 굴러나온 소린지 리서기와 부녀주임이 간통하는 관계라는 소문도 걷잡을 사이가 없이 전공사에 쫙 퍼졌다. 사람들은 리서기때문에 발생한 사고라며 분노해서 떠들어 댔다. 성미가 불같은 운전수의 아버지는 우멍낫을 들고 리서기를 쫓아다녔다. 그는 피값을 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광기를 썼다. 풍파는 10여일후에 운전수의 아버지를 붙잡아 가면서 차츰 누그러졌다. 령감이 잡혀가던날 운전수의 어머니는 풍을 맞고 쓰러졌다. 운전수네 집은 일조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운전수의 각시는 젖먹이갓난애를 안고 밤낮 울기만 했다…

    운전수의 아버지는 머슴살이로 잔뼈가 굵은 빈농이다. 그는 무녀독남, 하나뿐인 아들이 뜨락또르운전수가 된것이 큰 벼슬을 한것보다 더 회한하고 가슴뿌듯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생벼락이냐! 리서기만 아니면 이런일이 있을수 있나? 그는 거이 미쳐버렸다. “개새끼! 공산당은 무슨공산당, 그런 개새끼가 날뛰는 것두 공산당인가! 그런 공산당은 다 죽여치워야 해! 너죽고 나죽고 끝까지 할테다…” 령감은 낫을 휘두르며 밤낮 발광을 하였다. 공사에서 달려오고 파출소에서 달려오고…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령감의 분노는 더욱 치솟았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구렁이고 뱀이고 마구 튀여 나왔다. “3.8절은 무슨 개뿔짝같은 3.8절, 제노릇을 하려고 사원들을 들볶아 대면서. 국민당보다두 못한 개새끼! 우에 잘보이려구 개수작을 피우며…” 그는 리서기네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뜨락또르기름통을 안고가서 집안에 끼얹기까지 했다… 하여 현공안국에서는 “현행반혁명범”으로 운전수의 아버지를 붙잡아 갔던것이다.

    공사와 현혁명위원회에서는 리서기가 운전수를 데려다 차를 몰게한것은 리해할수 있는거라고, 리서기를 감싸주며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수에게 있다고 결론을 했다.

    현에서는 우리공사의 그해 3.8절활동을 현적으로 가장 잘한단위라고 높히 평가하며 “이농대간”들을 구두표양까지 했다. 동시에 승리대대를 모범전형이라고, 특히 3.8절을 춘경생산대회전개시일로 한것은 현적으로 전례없는 혁명적창거라고, 농업에서 대채를따라배우는운동에서의 한차례의 획기적인 혁명이라고 하였다. 사고에 대해서는 혁명을 하려면 회생이 있기 마련이라고,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 계속 혁명투쟁을 하는것이 우리의 무산계급혁명투쟁전통이라며, 승리대대에서는 3.8절후에 춘경생산대회전을 억세게 틀어쥔것이 더욱 보귀한 혁명적행동이라고 높히 긍정하며 표양했다.

    3.8절경축활동후 우수한 활학활용강용자가 용솟음쳐 나왔다. 그중에서도 강용을 가장 잘했다고 표양받은 인물로는 두사람이 뽑혔는데 하나는 소학교 녀선생이고 다른하나는 공사위생원의 호사였다 그들은 3.8절날 똥짐을 나른 생생한 체험을 갖고 자기의 산사상활동을 심각하게 강용했는데, 계급투쟁, 로선투쟁, 문화대혁명, 계속혁명과 세계관, 인생관의 높이와 깊이에서 매우 폭넓게 강용을 했다. 그들은 강용의 마지막부분에 가서는 자기가 모택동사상의 광휘로운 빛발과 위력하에 사상상 돌변적인 비약을 해서 공산당원의 표준에 부합되는 혁명전사가 되였다고, 이것은 또 하나의 모주석의 혁명로선, 모택동사상의 위대한 승리이며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의 기꺼운 수확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높히 웨쳤다. 청중들은 그들의 철면피한 자화자찬에 입이 쓰거워 났다.

    호사는 강용을 어록노래와 충성무까지 넣어가며 정신없이 하다가도 청중을 이끌어 구호를 웨치고 어록학습도 시키고 노래와 춤도 추게하며 장내를 흥성흥성 혁명적분위기가 넘쳐나게 하였다. 호사는 순회강용에서도 그렇게 하여 참신한 강용방법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소학교녀선생도 인차 호사의 선진적인 방법을 모방했지만 호사보다는 좀 부족했다.

    그해9월 림표가 자멸하면서 그들의 강용은 한물이 지나갔다. 하지만, 국경절전야에 한패를 입당시킬때 그들은 영광스럽게 입당하여 오매불망 다년간 애써온 소원을 성취하였다. 좀 유감스러운 것이라면 호사는 병원의 령도가 되려는 혁명적꿈을 실현하지 못한것이라 하겠다. 학교선생은 학교혁명위원회 위원으로 되였다.

    호사는 우리공사에서 제일 먼저 뛰쳐나온 반란파인데, 다리를 절뚝거리는 잔페군인출신의 원장을 얼굴에는 광대를 그리고 고깔모자를 씌우고 헌양철퉁재를 뚜드리게 하며 공사마을로 끌고 다니며 투쟁한 장거를 단행한 사람이다. 그는 착오도 없는 원장을 “령도니까 뚜드려야 한다!”면서 그런 모욕적인 행패를 했는데, 격분한 군중들의 제지로 더 할수없었다. 기실은 자기를 입당시켜주지 않은데 대한 보복이였다.

    그는 이악스럽고 일하기 싫어하며 혁명에만 달아다녔다. 내부단결, 복무태도 등 방면에서 그는 군중위신이 아주 나빳기에 령도로 되지못했다.(호사는 “이농대간” 당위부서기와 작풍문제로 말썽이 있었는데 젊은나이에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 후에 그는 애비벌 되는 한국령감에게 재가를 하고 국적까지 가져갔다.)

    그해 국경절후 승리대대 부녀주임은 갑자기 토하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 임신이였다!

    조사가 진행되자 대대서기는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당시 지식청년을 다치기만하면 특별히 엄한 처리를 했는데, 서기는 질겁한 것이다. 부녀주임은 금방 얻은 당증을 떼우고 다른공사 집체호로 갔다.(훗날 현농구창 공인이 됨.) 운전사의 각시는 시어머니가 죽은후 집을 생산대 빚으로 들여놓고(흉가라고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멀리로 재가를 했다. 5년후 감옥에서 나온 운전수의 아버지는 강물에 빠져 죽고말았다.

    세월은 많이 흘러갔다. 그해의 3.8절도 이젠 옛말이 되였다. 그러나 력사는 강물처럼 오늘도 출렁출렁 끊임없이 흐르고 생활의 활무대는 여전히 만화경처럼 빙글빙글 돌고있다. 력사의 활무대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나름껏 연출하고 있다. 선과 악, 미와 추, 공과 사 그리고 우점과 결점은 력사에 그대로 찍힌다. 사람들은 그것을 필름처럼 보면서 경험과 교훈을 두고두고 말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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