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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래골의 든장질
2014년 12월 31일 16시 24분  조회:2681  추천:2  작성자: 회령
     실화
                                              마래골의 든장질 참극
                                                                                                                     회령

   이젠 40년전의 일이니까 한세대가 지나간 옛말이다. 그러나 마래골사람들은 그때의 든장질사건이 화제에 오르면 전, 후세대가 어떤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래골의 든장질참극이란 오입쟁이 두집을 마을에서 쫓아버린 굉장한 사건인데, 원근에 들썽 소문이 났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말할때면 어제일처럼 생동하게 말하면서 착잡한 심정에 잠기군 한다. 그리고 쯧쯧쯧! 혀를차며 사람이란 량심을 바로먹어야 하며 그래야 후대도 잘된다고 말한다.

   1975년 3.8절날밤이였다. 마래골생산대 정치대장, 생산대장, 회계가 간통현장을 덮쳐 비행의 남녀를 붙잡았는 데 그들로는 동수와 득보의 처 옥자였다. 이들인즉 바로 든장질로 쫓기운 그 두집 인데, 자세한 내막을 알자면 옥자부터 말해야 한다.

   옥자는 진시가지 주변 산골마을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처녀때 아이를 낳아 작은진에서 조명이 났다. 옥자가18살 먹던해 마을소학교 유부남선생이 아이를 설게 하였다. 그때는 류산시키는 의술도 락후했지만 어느의사도 위험한 일에 손을 대려고 하지않았다. 큰병원에 갈 형편도 못되다보니 옥자는 치욕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남자애) 백날이 지난후 진시가지 누구네가 업어가고 이듬해 봄 옥자는 마래골 득보한테로 시집을 갔다.(선생은 3년 감옥살이를 갔음.)

   마래골마을은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옆에서 수레길을 따라 골짜기속으로10여리 깊숙히 들어가 있다. 궁벽한 산골마을이지만 30여호가 살았다.

   득보는 마래골태생인데 날때부터 8부쯤되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배들배들 약골인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해서 생산대에서 먹여 살렸다.(초급사때 부모들이 사망.) 1958년11월 인민공사가 성립된후 양력설날 옥자는 득보와 잔치를 하였다. 득보는 늙은장모까지 모시는 데릴사위가 되였지만 생각할수록 꿈만같았다. 서른이 넘도록 과부자리도 소개가 없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마을사람들도 제일처럼 기삐하였다. 득보와 옥자의 혼사는 마래골생산대 빈하중농협회 조장인 리순덕이 주선한 것이다.(마을에서는 리주임아바이라고 존대했다. 치보조장도 겸함.) 그는 옥자네와 옛날부터 아는 사이인데, 경우가 바르고 정직하고 고정한 사람이였다. 장가든후 득보는 멀끔해 지고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시키는 일을 군소리없이 잘했다.

   옥자는 함박꽃같이 아름답고 미끈한 체격의 녀자인데 성미는 쾌활하고 열정적이 였다. 그는 보기좋게 실팍한데 득보보다 한뼘은 더 컸다. 싱싱한 옥자는 잔치후 더욱 활짝 피여났다. 그는 자기의 일생이 이젠 제자리를 잡았다고 흐믓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남편이 밤일을 만족스레 하지 못하는 것이였다. 옥자에게 워낙 바람기가 있었든가… 그는 3년도 되기전에 정치대장, 생산대장, 회계와 바람이 났다. 잔치를 하면서 옥자는 제손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누구 부럽지 않게 행복한 살림을 하리라 굳게 결심했었다. 득보가 시키는 대로 잘따라주고 자기의 머리도 누구 못지않게 총명하고 자고나면 힘이 펄펄솟는 한창때인지라 그는 앞날에 대하여 신심이 있었고 소박한 꿈도 적지 않았다. 정치대장, 생산대장, 회계와 바람이 난것은 사내들이 먼저 치근덕거린것도 있지만 옥자도 쉽게 받아들였다. 마래골에서는 제일 똑똑하다는 그들은 옥자가 반부실이 득보한테로 시집을 오자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 났다. 보름달 같기도 하고 함박꽃 같기도 하고 군대말 같이 싱싱하고 호함진 옥자는 그들이 흘끔거리며 군침을 흘리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별다른 투자도 하지않고 옥자와 즐길수 있었다. 옥자와 그들은 동물적관능관계일뿐 리혼하고 누구와 산다느니 어데로 달아난다느니 무슨리득을 챙긴다느니… 이러한 험악한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성욕만족이면 다였다. 그들은 각자 가정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음특하고 엉큼한 한창나이인 젊은남편과 사는 안해들은 육감적으로 옥자를 항상 경계하였다. 옥자같은 활량이 곁에 있으니 시름놓을수 있는가. 년놈들이 아무리 은밀하게 눈을 맟추고 돌아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군 했다. 하여 세사내의 집에서는 가끔 시앗싸움이 비밀리에 벌어지군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내들의 얼렁뚱땅과 안해들의 으름장으로 그러루하고 넘어가군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우듯이 마을에서는 차츰 쉬시쉬시 시시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퀴퀴한 뒷소리는 리순덕의 귀에도 들어 왔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노릇이였다. 도둑은 장물을 쥐여야 하고 간통은 현장을 잡아야 하는건데 아직 그런것은 없지 않은가. 그는 옥자에게 젊은녀자가 행동거지를 늘 조심해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변죽을 울리는 몇마디 말만 두어번 했을뿐이다. 득보는 항상 헤실헤실 웃고 다녔다.

   4청운동후 다른공사에서 동수네가 이사를 왔다. 그는 어느생산대의 대장질을 하였는데 4청에서 정치대장과 회계(이들은 숙질간임.)의 탐오문제를 까밝혔다. 하지만 문제가 엄중하지 않아서 공작대에서 두어번 교육을 하고 그들은 여전히 간부질을 했다. 마을에는 다른 적임자가 없기도했다. 마을사람 다수는 정치대장네와 친척이고 동수네는 타성으로 혼자인데 차츰 동네에서 외몫으로 나게되자 이사를 한 것이다. 동수는 농촌사람이지만 하야말쑥하고 말을 잘하고 약삭발랐다. 그런데 아이는 셋이나 되지만 안해가 늘 시큰둥 했다. 심성은 무던했지만 인물이 없었고 밤생활이 미지근 했다. 동수는 이사와서 삼년남짓 지난후 옥자와 눈을 맟추게 되였다. 옥자는 동수와 관계를 맺은후 더는 다른사내들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떠어떠한 리득을 주겠다고 해도 옥자는 요지부동이였다. 옥자와 동수는 서로 대방의 가정을 다치지 말고 정부관계로 한평생 살자고 굳게 공수동맹을 맺았든 것이다. 이에 세사내는 동수에게 앙심을 먹게 되였다. 그리고 동수가 저들에 대하여 사사건건 눈을 밝히는것이 몹시 아니꼽고 은근히 골치거리였다.

   3.8절날 밤, 부녀들의 오락판에 끼여들었든 세사내는 동수와 옥자가 얼마간 뜸을 들여 슬그머니 사라지자 미행을 하였는데 동수네 헛간에서 간통하는 남녀를 붙잡았든 것이다. 동수는 헛간에 나무침대까지 만들어 놓고 거기서 옥자와 재미를 보군 하였다. 안해는 초저녘부터 입을 하ㅡ 벌리고 쿨쿨 잤는데 그것은 득보도 마찬가지 였다. 하여 그들은 밤중까지 혹은 새벽까지 시름놓고 통간을 했다.

   정치대장은 리순덕, 청년단소조장, 민병패장, 부녀대장, 출납 등 생산대 골간들을 긴급히 불러다 동수를 투쟁하였다. 현장에서 덜미를 잡힌 동수는 자초지종을 이실직고 하였다. 옥자는 현장에서 놓아주었는데 정치대장은 가만히 딴소리는 절대로 하지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생산대장과 회계도 각기 옥자에게 그런 부탁을 단단히 하여 놓았다.

   생산대의 주요간부들이란 사람들의 뒷소리가 시크므레하자 리순덕은 그들을 꼴사납게 보며 한편 동수를 쓸만한 사람이라고 동네사람들과 은근히 속심을 비추기도 했는데 이런 랑패가 있을줄이야… 그는 쓰거워서 침을 퉤퉤 뱉았다. 하지만 그는 투쟁에 참가한 간부들에게 절대로 소문을 펴지말라고 두세번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마을에 퀴퀴한 소리가 많으니 다들 주의하라고 을러놓기까지 했다. 정치대장 등 세사내는 켕기는 바가 있다보니 리주임의 말씀이 옳다면서 수긍하였다. 동수는 장밤 줄욕을 먹고 풀려났다. 그러나 이틀도 넘지 못하고 그들의 추행은 마을에 쫙 퍼졌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으나 득보와 동수의 처는 감감부지였다.

   나흘이 되는날 오전, 득보가 노기충천하여 동수네 집에 달려들었다. 정치대장과 생산대장, 회계가 그를 잔뜩 추겼든것이다. 그들은 득보를 불러다 놓고 사실의 진상을 말해준다면서 동수가 너의 안해를 꾀여 간통하고 이후에도 계속 데리고 살겠다고 했는데, 그래 가만 놔 두겠는가! 든장질을 해서 쫓아버려야 한다고 추겼든것이다. 득보는 참나무몽둥이를 들고 동수네 바당문을 짓부시고 집안에 뛰여든후 가마를 뽑아 던지고 후렁에 든장대를 들이 박았다. 그리고 부쩍부쩍들어 구들장을 돌아가며 번져 놓았다. 동수는 그날로 이사자리를 얻으려고 길을 떠났다.

   득보가 든장질을 한후 이튿날이다. 이번에는 정치대장 등 세사내의 아낙네들이 동수의 처를 추겨 앞세우고 득보네 집에 달려 들었다. 그들은 이짬에 옥자네도 쫓아버리자고 입을 모은것이다. 옥자가 마을에 사는한 시름놓을수 없었든 것이다. 거기에 남편을 의심하던 다른 아낙네 둘까지 합세를 해서 그들 여섯은 가위까지 가지고 옥자네 집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들은 온갖 쌍욕을 퍼부으면서 옥자를 두들겨 패고 머리까지 깎아 놓았다. 그리고 네년이 바람 쓴 남자를 다 털어 놓으라고 쪼지고 들었다. 옥자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수 없었고 여지없이 든장질을 당하고 말았다.

   보름도 안되여 동수네와 옥자네는 선후로 멀리 이사를 가고 말았다. 있으라고 붙잡는대도 있을 체면이 없었다. 그들이 이사갈때 리순덕이와 마을사람들은 이사짐을 신작로까지 실어다 주며 타고장에 가서는 애들을 보더라도 마음을 잘먹고 몸성히 애들을 잘키우고 잘살라면서 진심으로 동정하고 섭섭해 하며 여니(배웅)를 했다. 동수네도 그랬지만 옥자네도 온집식구가 쿨쩍쿨쩍 울면서 마을을 떠나갔다.

   마을사람들은 앞에서는 화냥년 하나가 동네를 더렵혀 놓았다고 옥자를 욕했으나 속으로는 더러운 쌍놈의 년놈새끼들! 어디 잘되는가 두고보자! 하며 세사내집들을 증오하고 저주하였다. 하지만 정작 어쩌지는 못했다. 그들에게는 밭은 친척들도 있었거니와 신통히도 똑같게 부부가 입살이 드세고 이악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합작사(공소사 즉 상점), 농기짬, 사반기업, 위생소, 소학교 등에 출세시킨 자식들도 만만치 않아서 그들의 눈에 나기 싫었다. 산골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권세있는 집안들로 보였고 무서웠다. 그들은 여전히 생산대간부질을 했다. 보잘것 없는 두메산골이지만 이들은 거기서 토황제처럼 귀족처럼 안속을 채우면서 거들먹거리며 으시대며 잘 살았다.

   세월은 어느덧 이십여년이 지나갔다. 그간 동수와 옥자는 그야말로 이빨을 사려물고 자식들에게 있는힘을 다 하였다. 동수네 아들형제와 딸은 현과 진에서 국장이며 과장이 되고 옥자네 아들 삼형제는 공안국, 교통국, 신문사의 중층간부가 되고 딸형제는 식당과 상점을 경영하는데 꽤 부자가 되였다.(아이들은 얼굴에 제애비 모습이 력력했다.) 정치대장은 풍을 맞고 생산대장은 간경화에 걸려 그들은 페인이 되였다. 회계는 혈압과 당뇬가 뭔가하는 병에 걸렸는데 홀애비가 되였다 그들의 자식들도 요절했거나 감옥에 갔거나 캐출을 맞고 농사짓는 자도 있고 바람으로 가정이 풍비박산났거나 품팔이로 사는 자도 있다. 어느집도 잘됐다고 할만한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으쓱거렸는데 이런꼴이 될줄이야?!...

   지금에 와서 마래골사람들은 그게 다 보응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다 보는눈이 있고 시비판단이 있는것이다. 리순덕만 보더라도 말은 별로 하지않았지만 속은 뻔 하였다. “남을 해쿠면 저도 망하는거야. 그러게 죄되는 일은 하지말아야 해.” 리순덕의 어록이다.

                                                                                                                       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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