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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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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은인
2019년 11월 24일 10시 10분  조회:1065  추천:0  작성자: 회령
        실화
                                                    구명은인
                                                                                                               회령
 
얼마전에 나는 친구의 회갑연에 갔다가 전혀 듯밖의 상황을 만났었다. 그것은 우리가 앉은 연회상으로 친구가 막내처남이라며 60푼한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는 다짜고짜로 왈칵 나의 두손을 움켜 잡고 구명은인을 만났다고 연신 말하며 여간만 반가워 하며 흥분해 하는것이 아니였다. 나는 우두망찰 손을 잡힌대로 친구와 그의 막내처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네가 살려 준 사람이요. 경식이, 리경식!”
“경식이? 누구더라…”
“생각 안 나우? 총을 맞아 죽다가 산…” 
“아! 그렇구만. 이거 참, 오래간만이요! 반갑소, 반갑소.!”
우리는 서로 건강이며 집안형편이며를 문안하며 무척 기뻐하였다. 경식이도 이젠 60이 넘은 사람이였는데 면목은 다 잊혀졌지만, 그도 이 시가지에서 산다고 하였다. 그날 우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헤여졌다.
 
이젠 40년도 넘은 일이다. 그때는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해인 1976년 초여름이였다. 밤중이 지났는데 직일의사가 황급히 우리집 창문을 뚜드리며 나를 불렀다. 외상환자가 왔는데 매우 위중하다는 것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급히 병원으로 나갔다.

환자는 60여리 먼곳에서 38구구식총에 맞았는데 업혀 오다가 마중간 손잡이를 타고 왔다고 하는데 실혈성쑈크 상태였다. 이름은 리경식, 19살, 학서마을 농촌청년 이였다. 그날 밤 10시경에 학서마을 민병패에서는 명령을 받고 임무 집행에 나섯다. 그들의 전투임무는 오랑캐령에서 내려오는 신작로와 알미대골안이 합치는 길목을 지키며 행인을 붙잡는 것이였다. 행인이란 바로 특무인데 그는 연길에서 비행장 비밀재료를 훔쳐가지고 지금 두만강쪽으로 도망을 쳤다는 것이였다.

학서마을은 공사(향)에서 30여리 떨어진 산골마을인데 오랑캐령에서 내려오다 첯마을이다. 학서마을 민병 10여명은 목적지까지 10여리를 목에서 겨불내가 나게 달려간후 패장이 나눠주는 총알을 받아 저마다 장탄을 하였다. 인당 세발씩이였는데 장탄을 하다가 한 민병이 오발을 하였다. 굉장한 총성과 함께 경식이가 악! 소리를 지르며 풀썩 꺼꾸러 지었다.

상처는 끔직했다. 무릎 조금 아래에서 정면으로 총알을 맞았는데 총알은 곧추 국와(무릎 뒤)로 빠져나갔다. 들어간 자리는 손가락 굵기로 경골을 뜯으며 나갔지만 국와는 오리알 크기로 뭉청 빠져버렸다. 왼쪽다리의 제일 큰 동맥, 정맥, 신경이 모두 끊어졌고 엄중히 결손되였다.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혈관을 찿아 지혈시키는 한편 강심, 혈용량 보충, 산소호흡 등 구급조치를 몽땅 사용하는 한편 공사령도에 수혈대를 빨리 조직해 달라고 하였다. 동시에 현병원의 왕진을 요청하였다.
 
우리가 수혈을 하며 환자의 혈압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병원 외과에서 왕진을 왔다. 긴장한 수술은 오전 10시경에 원만히 끝났다. 1600여씨씨의 수혈을 받은덕에 환자의 상태는 온정되였다. 생명은 구했지만 치료는 방금 시작이였다.

어느덧 정심때가 거이되였는데, 공사무장부에서 식사를 안배하여 우리는 아침겸 정심 식사를 하고 다시 환자상태를 꼼꼼히 확인한후 직일실에서 금후의 치료문제에 대하여 토론을 하였다. 토론회에는 현병원외과에서 온 허주임 등 3명과 우리공사위생원의 의료일군 10여명이 참가했다. 물론, 행정이지만 서기 겸 원장인 리원장도 참가하였다.

회의에서 허주임은 환자의 총상수술은 빈틈이 없이 원만하게 처리되였다는 것을 돌출히 강조한후 우리병원 초년생의사 김선생을 흠뻑 춰 올리였다. 김선생은 의사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병원으로 온지 반년남짓해서 현병원외과에 가서 1년진수를 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았다. 허주임은 말하기를 김선생은 진수도 잘 했거니와 오늘 수술에서 상당한 실력을 발휘 했다고, 앞으로 본인이 더욱 연찬하고 곁에서 지지하면 이 공사의 외과환자는 든든한 의사가 있게 될거라고 엉뚱한 말까지 하였다. 어느면에서나 상급의사인 나는 허주임의 말을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허주임은 계속하여 이제부터 합병감염을 10여일만 잘 공제하면 봉합실을 뽑고 약간씩 활동을 하게 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는 수술에 대하여, 환자의 예후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이면서도 락관적이 였다.

그러나 나는 고려가 중중하였다. 그것은 환자의 상처에서 짙은 화약냄새가 심했는 데, 이건 화약불길에 상처주변의 모든 조직이 익고 그을렸다는 것을 말 해 주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상처는 특수성이 있을것이다. 금후 순풍에 돛단듯만 하지는 않을것이다. 이전에 가스괴저란(총상, 파편상 등에서 오는 상처가 썩는 현상) 말을 들은것이 자꾸 가슴에 걸리였다.

머리를 수굿하고 있는 나에게 허주임은 의견을 물었다.

“오늘 허주임이 큰 수고를 했습니다. 내생각에는 이 환자를 허주임이 데리고 가서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다싶히 우리의 수평으로는 이런 환자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현병원 외과에는 허주임의 상급의사가 3명이 있다.)
“이젠 다른 처리가 필요없고 소염제주사나 놓고 유합을 기다리면 되는 환잔데 그게 무슨말이요? 혈관이며 신경을 겨우 이어놓았는데 움직이는건 안되오.”
“다 치료 된 환잔데 왜 전원을 하겠습니까?” 김선생이 발끈해서 말하였다.
“외과에 한해서는 김선생을 대담히 믿고 그에게 맡기는것이 좋겠습니다. 김선생이 능히 감당할겁니다…”
허주임이 말하자 우리병원의 반란파맹장인 윤호사가 대뜸 흥분해서 말하였다.
‘우리 함께 모주석어록을 학습합시다!”
그는 “혁명은 칭커츠판이 아니며…”와 “계급투쟁을 해마다 말하며 달마다 말하며…”등 네댓 조목의 어록을 격동된 목소리로 높히 읽은후 말을 이었다.
“이환자는 전투일선에서 영광스럽게 부상을 당한 민병영웅입니다! 우리는 그를 따라 배우며 ‘만난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건 붉디붉은 태양이시며 위대한 령수이시며 도사이시며 키잡이이신 모주석께서 우리들에게 한 교시입니다. 우리는 이 환자를 원만히 치료할 신심이 있으며 용기가 있으며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꼭 달성되여야 하며 꼭 달성됩니다!”
윤호사가 계급투쟁, 정치투쟁의 화약냄새를 확!학! 풍기였으나 사람들은 코와 입을 찡그리기도 하고 히죽 웃기도 하며 한사람도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여기서 김선생과 윤호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에서 말했지만 김선생은 중전을 졸업하고 우리병원으로 분배받아 왔는데 그들은 동기동창이 셋이 한꺼번에 우리병원으로 왔다. 리원장과 나는 이들을 잘 배양하자고 하며 김선생은 현병원 외과에, 얼마후 다른 두 선생도 내과와 부산과에 진수를 보냈다. 김선생은 진수를 마치고 돌아온후 자기는 외과의사라고 광고하며 외과환자외의 다른환자는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과환자는 며칠에 간혹 한둘이 있을뿐이 였다. 당시의 농촌위생원의사는 무릇 환자면 다 치료할수 있어야 했다. 금후 과를 나누어 의사를 두려는 타산은 있었지만 아직은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농촌의사는 다면수여야 했다. 김선생은 외과에서 아직은 나의 조수로 더 커야 했고 다면수의 길을 걸으며 전문화를 더 제고해야 했다. 근래에 보니 김선생은 나를 부담스레 여기며 불편해 하는것 같았다. 하여, 나는 외과에 한해서는 그가 주동성을 발휘하게 은근히 배려를 하였다. 그러면서 무슨환자나 많이 접촉하라고 자주 말해주었다. 그래야 군중들의 환영을 받는다고 말해 주었으나 김선생은 별로 희끔해 하는 눈치가 아니였다.

윤호사는 우리공사에서 유명한 반란파 맹장으로 병원의 리원장을 거리로 끌고 다니며 투쟁한 사람이다. 전공사적으로 령도를 투쟁하는 첯 포를 쏘았다. 전업잔페군 인인 리원장은 얼굴에는 광대화상을 그리고 신문지로 만든 한발이나 되는 꼬깔모자를 쓰고 개패와 쓰레기 왕바신을 목에 걸고 페품수구로 공소사에 들어 온 깨여진 쟁개비를 두드리며 왼쪽겨드랑이에는 짝지발을 끼고 절룩거리며 모진 모욕을 여러날 당하였다. 거기에 상처까지 도져서 무척 고생하였다. 윤호사가 초중학교애들을 데리고 이런 행패를 하자 병원군중들과 중학교선생들이 분연히 일떠나 제지하였다. 그는 이미 조직적으로 처리한지도 오랜 리원장의 작풍문제를 다시 꺼내들고 여지없는 공격을 다 하였는데, 그의 목적은 리원장을 꺼꾸러 치우고 자기가 원장이 되려는 것이였다. 그는 리원장이 자기를 입당시켜 주지 않았다고 치를 떨었다. 문화대혁명 내내 그는 병원의 일은 될수록 하지않고 “혁명”만 하였는데, 별명이 “커톨거밍파”(입으로, 말로만 혁명한다)였다. 윤호사의 야망은 원내군중들의 반격으로 어느것도 실현되지 못했다.(원장꿈, 입당꿈) 그는 병원사람들을 다 밉살스레 보았다. 그와동시에 전공사에서 윤호사를 곱다는 사람은 원내, 원외에서 그야말로 한사람도 없었다. 지금 병원으로 나오는 것은 출근하지 않으면 월급을 깍고 인사처리를 하겠다고 한것도 있지만 단위별로 자기의 혁명과 생산을(사업)하기에 그가 더는 삐쳐들곳이 없기 때문이였다. 그는 김선생을 “신생사물, 신생력량, 신선한 혈액”이라며 버쩍 춰올리며 김선생과 친하게 보냈다.

토론회는 김선생과 윤호사가 전문 환자치료를 책임지기로 결정하고 끝났다.
 
하루후, 나는 대대(촌)합작의료 순회검사로 하향을 나갔다. 닷새째 되는 날에는 학서대대로 갔는데, 그날 오전 나는 대대서기, 주임, 대대의사와 함께 약재배기지로 검사를 갔다. 우리가 밭을 살펴보고 있는데, 대대위생소 호사가 숨차하며 달려왔다. 리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지금 즉시 나를 오라고 한다는 것이였다. 사연은 말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원장이 아주 급해 하는것 같더라고 하였다. 나는 즉각 30여리 먼길을 자전거로 땀을 철철 흘리며 달리였다.

병원에 당도해 보니 사연은 리경식 때문이였다!

오늘이 엿새가 되는 날인데, 환자는 수술후 미열로부터 3일째부터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여러가지방법을 다 썼으나 열은 내리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는데 지금은 혼미상태라고, 김선생이 병정을 소개하며 병지를 내여 놓았다.

나는 먼저 환자의 심장상태를 검사하고 수술부위를 검사하였는데, 수술부위는 팽팽하게 붓고 검붉은 피부는 불덩이 같았다. 나는 상처의 괴사라고 즉시 판단하고 봉합실을 뽑았는데, 첯코를 뽑자 간장물 같은 액체가 물총처럼 내 쏘며 지독한 악취를 풍기였다. 나는 다섯코를 뽑아 상처를 개방하였다. 괴사물이 두사발은 되게 나오고 악취는 숨쉴수 없게 하였다. 김선생과 윤호사는 밖으로 달려나가 연속 구토를 하여댔다. 나도 구역질을 하며 환자처치를 마저 하였다.

처치가 끝나자 리원장은 우리셋을 불러놓고 치료방안을 물었는데, 김의사는 대뜸 자기는 손을 들었다고 성근히 태도표시를 하였다. 매일 두세번씩 환자에게 어록을 읽어주고 어록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닥달을 했다는 윤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나도 신심이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환자는 패혈증이 왔을 가능성이 아주 큰데, 우선은 생명위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고 다음은 동시에 상처처리를 해야겠는데 하지를 절단하지 않으면 않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이런치료를 나는 파악이 없고 우리위생원에서는 할수없다. 때문에 즉시 상급병원에 전원을 해야한다. 빠를수록 좋다고 시간을 쟁취해야 한다고 견해를 그대로 말하였다. 리원장은 현병원에 전화를 하여 구급차를 부르고 공사로 급히 갔다.

긴말을 간단히 한다면, 환자는 현병원에서 지구병원으로 다음은 성병원으로, 이틀만에 상해로 가서(비행기로) 하지를 절단하고 패혈증치료 등으로 넉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또 한가지 소개할것이 있다.

상해의 어느 입빠른 의사가 환자측 사람들에게(회갑을 쇤 나의친구, 현무장부 부부장과 간사 1명) 처음 치료방법이 잘못되였는데(인류관을 꽂지 않은것 등) 엄중한 의료사고라며 하마트면 생명을 잃을번 했는데, 살아난 이런기적은 우리도 처음이라며, 사고원인을 밝히고 받아야 할 보상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한것이다.

이한마디 말로해서 현무장부와 공사무장부에서 나한테 조사를 왔는데, 그들의 눈치는 허주임, 김선생 등이 책임상 어떤 문제가 있기를 바라는것 같았다. 당시는 의료사고에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책임사고로 법원놀음을 해야하고 다른하나는 기술사고로 의료행정적 처리를 받아야 했다. 나는 실사구시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말한후 치료를 맡은 의사, 호사들이 있는 능력과 정성을 다 했다고 특히 강조했고(김선생과 윤호사는 그때 병원에서 자며 환자를 지키였다.) 증실재료도 그렇게 써주고 지장을 찍어 주었다.

후일담이지만, 현병원 외과 허주임이 우리위생원의 했내기의사인 김선생을 극력 춰 올리며 이제부터는 외과에 한해서는 김선생이 책임지도록, 그의 립지를 결정하는데 영향력이 있는 발언을 한데는 내막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병원에서 김선생이 외과의사로 업무를 분공 맡고 책임과 권리를 가지면 허주임의 왕진을 많이 부르는데 퍽 편리하고 그러면 회색수입이 증가되는데… 금후 그렇게 합작하자고 허주임은 김선생과 약조를 이미전에 하였든 것이다.(허주임과 김선생이 조사시 교대한 것이다.) 기술사고에 돈문제, 녀자문제까지 병원내부에서 적발되여 허주임은 주임직에서 철직되고 월급 두급을 깎기고 5년간 전근도, 월급조절도 못하며 외과문진의사를 하여야 한다는 처리를 받았다.

현무장부에서도 부장이 출당, 캐출을(제명) 당하는 벼락이 떨어졌다. 그것은 그번 특무잡이 명령이 하나의 가상훈련이였는데, 여기까지는 부장의 권력행사라고 할수 있었지만 실탄을 발급한것은 군분구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것인데 부장은 그날 얼근히 한잔해서인지 군분구에는 신청도 하지않고 공사무장부에 엄명을(호령) 내렸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후 현무장부에서는 있는 힘껏 경식의 치료에 최대의 노력을 다 하였다. 하지만, 민병들의 잘못으로, 공사무장부의 책임으로, 병원의사들의 책임으로 밀려고 광채롭지 못한 동작들을 많이하여 조직의 격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다음은 경식이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다.

경식이는 잔페로 된후 현실을 대범하게 승인하고 생산대일을 능력껏 하였다. 그때는 집체화 시절이다보니 수입분배에서 경식이를 도와주는것은 문제가 아니였다. 대대의 결정으로 6개 생산대들에서 공익금 쪽에서 보조금을 지출해 주었다. 공사무장부 라부장은 현으로 불이나게 뛰여다나며 의족을 맞추게 하였고 현농구공장에 경식이를 취직까지 하게 했다. 라부장이 애쓴덕에 경식이는 국가공인명액에 들었고 월급살이를 하며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 왔다고 하였다. 자기의 문제로 가족과 본인이 상급기관을 여러번 찿아 다녔으나 도무지 되지않는 대사를 라부장이 애를 쓰고 해결해 주었다며 경식이는 매우 감격해 하였다. 라부장이 뛰여다니며 해결한것을 경식이네는 왜서 해결하지 못했을가…

경식이는 그간 수년동안 23명의 수혈자들을 다 찿아 보았지만(변방부대 전사 두사람은 다른 성 사람인데 찿지 못했다.) 매부가 잊지말라고, 구명은인이라고 여러번 말한 나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마음에 그냥 걸려 있었는데… 이렇게 만날줄이야?! 그는 재삼  기뻐하며 반가와 하였다.(경식이가 상한 후 한달푼해서 나는 사업상 수요로 다른도시에 전근을 했었다.)
 
그날, 공원에서 경식이는 나를 구명은인이라고 자꾸 말하며 손을 잡고 놓지않았 으나 나는 량심에 걸리던 일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토론회때 내가 견결히 환자를 현병원에서 맡으라고 주장하지 못한것과 우려되는 점들을 충분히 말하지 못한것이 줄곧 후회되였다고… 내가 그러지 못한것은 나의 체면을 고려하다보니… 더 뭐라고 말하면 호박 쓰고 돼지굴에 들어가기로 중구난방 몰리우며 난처해 지겠기에… 지금 이렇게 경식이에게 직접 말하니 40여년 가슴에 걸려있은 무거운 짐을 오늘   벗었다고… 우리는 통쾌히 웃었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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