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화
상처의 터전에 희망을 심어
중편소설 <내 이름을 불러줘요>는 창작과정이 다소 특이하다. 소설을 시작했던 시점은 십년전이다.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인생 새내기였다. 류학을 준비하면서 일년 가까이 외국인 쌍둥이 형제한테 과외를 했었다. 외동으로 자랐던 나한테 10세 쌍둥이형제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똑같게 생긴 두 아이의 닮은 듯 닮지 않은 행동들, 자신을 내세우려고 미묘하게 또는 치렬하게 투닥거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렵사리 쌍둥이의 정체성이란 화두를 꺼내들게 되였다. 나는 쌍둥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꼼꼼히 기록했고 그 기록이 멈출 무렵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의욕만 앞설 뿐이지 소설을 완성시킬 수 있는 년륜과 실력이 안되였다. 얼마 후 류학을 떠나면서 소설은 유야무야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난해 년말 나는 우연하게 컴퓨터에서 오래된 소설파일을 발견하였다. 소설의 형체를 갖추지 못한, 어수선한 초고상태였다. 먼지가 앉아도 켜켜이 앉았을 법한 오래된 문서에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니다.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어 몸부림치다가 이 소설을 잡았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이다.
이때의 나는 더이상 십년전의 어린 녀학생이 아니였다. 용감하고 겁없던 젊은이는 세월 속에 씻겨지고, 세상의 만만찮음에 겁을 먹기 시작한 중년이 남았다. 이제는 자신의 아이가 있을 법한 나이가 되여버렸는데, 불행하게도 나는 아이를 배 속에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20대초에 작성해놓은 쌍둥이형제의 임신부터 출산, 양육에 이르는 이야기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과거의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낯설었고 어색했고 이상했다. 그때의 나는 감수성이 풍부했던 모양이고 수많은 기록을 해놓은 것을 보면 부지런했던 모양이다. 나는 낯선 사람이 써놓은 글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과거의 내 글을 읽었다.
새롭게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행했던 작업은 초고의 주인공 ‘나’한테서 보여지던 10년전 내 모습을 털어내는 작업이였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가끔은 상큼하다가 가끔은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가끔은 철없어 보일 정도로 유아하다가 가끔은 인생을 다 살아낸 늙은이처럼 매가리 없다. 그러한 복합성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고있는 다중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허위적이고, 사실은 10년이라는 템을 가지고 변화된 나의 모습이 본의 아니게 투영된 결과인 듯하다.
한편의 소설을 창작함에 있어 십년을 우습게 뛰여넘는 템이 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특이한 창작경험임에 틀림없다. 그 십년을 살아내면서 작가는 나이를 먹었고 바람직하다면 그 먹은 나이만큼 성장을 했을 것이다. 초고에서 내가 가장 지워버리고 싶었고 지우려고 애썼던 부분은 과거의 주인공 ‘나’의 생명에 대한 교만함이였다. 주인공은 자신이 임신한 것에 지나칠 정도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물론 주인공을 20대초중반의 나이로 설정했으니 성공에 대한 야망이 큰 그 나이의 녀성이라면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이 많이 거슬렸다.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처지여서 그랬을 것이다. 거슬리는 것들을 꼼꼼히 찾아내서 입맛에 맞게 고쳐 가면서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도저히 읽지도 써내지도 못한다면 제대로 된 작가라고 할 수 있을가. 프로작가는 자신 따위는 버리고 작품만을 살리는 것일가.)
작품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주인공을 만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쓴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엄마’라고 생각한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아이를 ‘한꺼번에 두명씩’이나 얻게 되면서 환희와 슬픔, 상처와 치유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주인공 엄마를, ‘아이에 대해서 생각조차 못해본 어린 엄마’가 상상만으로 초고를 작성하고, ‘아이를 잃은 나이 든 엄마’가 간절히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완성시켰다. 수많은 고민과 깊은 사고를 거듭해서 완성시킨 글이고, 좋은 의미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던 글이고 나한테 있어 이 작품은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준 따뜻한 작품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