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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례식장의 이채로운 풍경
강룡운 연변일보사 전임 사장
나의 한 동창생은 딸애가 나이 서른이 많이 넘도록 시집갈 궁리라곤 전혀 하지를 않는것 같아 늘 걱정을 입에 달고 다니였는데 그러던 그한테서 드디어 사위를 삼는다는 희소식이 전해왔다.
그도 그럴것이 손아래인 남동생이 먼저 장가를 가서 언녕 손주까지 안겨주었는데 맏이로 태여난 녀식한테서는 종시 감감무소식이였으니 부모의 마음이 왜 다급해나지 않았겠는가?
나는 동창생의 전화를 받고 약속한 시간에 약속된 장소인 성보빌딩 7층 례식장에 당도하여 사위를 둘러보며 대기하고있는데 때마침 6층에서 7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계단식승강기)에서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순간에도 뜨거운 키스를 주고받기에 여념이 없는 한쌍의 신랑 신부가 눈에 띄였다. 아무리 개방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연변에서는 보기 드문 이채로운 풍경이 아닐수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끄당기는것은 웨딩드레스로 곱게 단장한 신부는 우리와 똑 같은 동방인인데 반해 양복차림의 신랑은 파아란 눈동자의 서방인이라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이들 국제커플(情侣)이 바로 이날 7층 례식장의 주인공이였고 나의 동창생은 미국인 사위를 삼게 된다는것이였다.
자식을 낳았으면 곱게곱게 키워서 공부뒤바라지를 다 해주고 사회에 진출시켜 시집장가까지 보내주어야 부모된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것이 우리의 전통관념이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아들이든 딸이든 18세까지만 키워놓으면 부모된 책임을 다했다고 간주하면서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라고하는게 우리 동방인들과는 색다른 그네들의 전통관념이다. 자녀에 대한 이 한가지 태도만 보더라도 동방과 서방은 그 문화적전통이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한데 어울리기는 힘들다는것이 옛날 우리들의 생각이였다.
그러나 인제는 동서방이 한데 어울려 지구촌이라는 이 한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돼버렸으니 미우나 고우나 다같이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것이 오늘 우리의 눈앞에 다가온 외면할수 없는 현실이다.
이날 결혼하는 신부는 일본에 류학갔다가 일본에서 취직해 현재 일본 체류중인 중국조선족처녀 최송설이였고 신랑은 미국에서 일본 도꾜에 와서 파견근무를 하고있는 미국인 총각 아담스였는데 이들 두사람은 어찌어찌하여 인연이 닿아 도꾜라는 이 국제대도회지에서 서로 만나 연애를 하게 되였고 드디어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이날 결혼식은 완전히 우리 연변의 조선족혼례식으로 진행되였다. 신랑 신부의 부모가 자리를 마주하고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고 결혼선물을 주고받았으며 신랑 신부가 큰상을 받은 다음 바가지를 던져 첫 아이는 아들을 낳을것이냐 딸을 낳을것이냐 하고 점을 쳐보면서 하객들의 축복과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다름아닌 우리 연변의 조선족혼례식 그 자체였다.
신랑측에서는 대양 건너 미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누나와 녀동생, 그리고 신랑의 두 프랑스 친구가 참석하였고 신부측에서는 연변에 있는 일가친척은 물론 신부가 일본에서 근무하고있는 일본회사의 일본인 사장님까지 하객으로 오시였다. 연변의 조선족가수가 불러대는 우리의 노래가락에 맞춰 신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일가친척들, 신랑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와 녀동생 그리고 프랑스인, 일본인 하객들마저 서로 스스럼없이 손에 손잡고 한데 어울려 둥실둥실 춤을 추는 그 축제의 분위기는 이날의 결혼식을 말그대로 국제대화합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날의 결혼식은 연변조선족사회자의 사회하에 우리 말로 우리의 흥겨운 노래가락을 곁들이면서 진행되였다. 식순에 따라 신부의 아버지가 일가친척을 대표하여 사돈님일가와 래빈들에 대한 환영사가 있었고 미국에서 온 신랑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설을 하는 재미있는 장면도 연출되였다. 신랑의 아버지는 통역을 통해 자기가 얘기할 차례임을 확인하고는 부랴부랴 두 따님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다가가 가방에서 “연설문”을 찾아들고는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마이크를 잡았다.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나는 도통 알아들을수 없었건만 그가 연설을 마치고 인사를 하자 장내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바로 이때 사화자가 내뱉는 말 한마디가 퍼그나 유머스러웠다.
"참 미국과 사돈을 맺는 집안이 다르긴 다름니다. 나는 한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는데 이집 친척들은 통역을 안해줘도 벌써 다 알아듣고 박수를 쳤습니다."
사회자의 재기넘치는 이 한마디로 하여 장내에서는 또다시 일장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신랑의 아버지가 이미 얘기를 하였으면 그 가정을 다 대표했다고 말할수도 있을것인데 그들은 그게 아니였다. 신랑의 어머니도 이미 “연설문”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기에 앞서 먼저 미리 준비해 온 행주치마를 앞에 두르면서 진지하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통역을 통해 알게된 것이였지만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한 말씀이였다.
---내 아들 아담스는 내가 이 행주치마를 입고 지어준 밥을 먹으면서 어렸을 때에는 엄마라는 이성(异性)의 품속에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아들이 다 자라서 이미 성인이 되였으니 이제 곧바로 나의 품을 떠나 또 다른 하나의 이성인 안해의 품속으로 가게 된다. 아들에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쁜 안해가 생겼으니 나는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신랑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손수 가위를 잡고 입고있던 행주치마의 끈을 한 토막 잘라내여 며느리의 두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이제 내아들은 너의 남편이 되였으니 이 끈으로 아담스를 단단히 동여매놓으라고 당부하는것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 내용과 형식이 모두 우리와는 판이한 모습이였다.
이날 결혼식 진행도중 신랑과 신부는 큰상을 다 받고난 다음 갱의실에 들어가서 웨딩드레스와 양복을 벗고 우리 조선민족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갈아입고 테이블마다 다니며 하객들에게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파아란 눈동자의 키다리 신랑이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은 그 모양새가 조금은 우습강스럽기도 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풍속습관을 존중해주는 그 갸륵한 모습이 참 대견스러워 보였다. 안해가 고우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신랑 아담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 연변의 조선족처녀 최송설을 자기네 며느리로 맞아들이는데 대해 시종 매우 흡족해 하는 기색이였고 연변의 조선족혼례식의 이채로운 분위기에 경이로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였다. 나는 이날 혼례식에 참석하고 나서 우리의 민족언어와 풍속습관이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다시 한번 맘속 깊숙히 되새기게 되였다. 만약 150여년전부터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이땅에 뿌리 내린 우리 조선족이 지금까지 자신의 언어문자와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승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처럼 이럴듯 떳떳한 민족공동체로서 세인들의 주목과 찬사를 받을수 있었겠는가?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있다. 옛날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시절에는 이 마을 총각이 당나귀 타고 저 마을에 건너가 새색시를 가마에 앉혀가지고 돌아와 백년가약을 맺는게 고작이였는데 지금은 이웃나라도 아닌 대양 건너 다른 대륙간의 혼사가 비일비재로 이루어지고있으니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대경사가 아닐수 없다.
나에게도 노란 머리 미국인과 결혼한 조카딸이 있고 중국의 한족과 결혼한 조카딸도 있다. 세상물정에 밝은 나의 형님도 딸애들의 타민족, 타국인과의 혼인이 마뜩지 않아 사위감을 문전박대한적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였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 말이 이제는 그저 가볍게 해보는 빈말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히 파고들어와 자리잡기 시작한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얼마전에 일본으로 시집간 나의 외조카딸도 일본인 신랑을 데리고 연길에 와서 작년 단오날에 태여난 아들 소우조우마사시(宗象将司)의 첫돌생일을 굉장히 쇠여주고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그들 세식구가 모두 우리 민족의 한복을 차려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누가 뭐래도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였다.
최송설과 아담스, 그리고 마사시일가가 모두 우리 민족의 멋진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 비디오는 앞으로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길이 남아 그들의 평생을 환하게 빛내여갈것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들 변해간다고 걱정을랑 삼가하자. 우리 민족이 생존하는 공간이 이처럼 드넓게 펼쳐지고있으니 우리 민족이 립지도 그만큼 더 넓어지는게 아닌가? 나는 가끔 이런 생뚱같은 생각을 머리속에 굴려본다.
2007년 9월 1일 연변일보 6면(문학)에 발표( 일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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