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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샘물터에서 만난 처녀(10) 김장혁
2024년 01월 11일 11시 19분  조회:86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



             제2장 고향 마을의 사람들
 
 
 
                 1.샘물터에서 만난 처녀
 
 
 
 
 
 
      서리발 나는 해볕이 개마고원 원시림의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개마고원에는 마가을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별유천지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를 툭 차 박차를 가하면서 령길을 벗어나 적송이 우거진 산비탈을 내리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저 멀리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자 목이 말라 마른 침을 꼴깍 넘겼다. 말배에 처맨 조롱박을 풀어 쳐드니 물방울이 몇 방울이 마른 입술에 떨어졌다. 성칠은 입술의 물방울을 혀로 감빨다 말고 저 멀리 보이는 샘물터에 눈길을 박았다.
    “샘물을 실컷 마셔야 하지.”
    좁다란 골짜기 막바지 샘물터에서 웬 처녀가 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물동이에 퍼담고 있는 것이었다. 하얀 무명저고리로 감싼 가녀린 어깨 위로 외태머리를 치렁치렁 드리운 처녀, 깜장치마를 입은 처녀의 동실한 뒷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야 있겠는가.
     (은년가? 은흰가?)
      검둥이가 앞서 달려가려는 것을 성칠이 “휙!” 휘파람을 불어 불렀다.
       그는 말을 달리다가 살짝 뛰어내려 살금살금 샘물터로 다가갔다.
       (뒷모습은 은녀와 똑 같은데.)
       성칠이 샘물터의 처녀 뒤까지 살금살금 다가갔는데도 처녀는 아직도 자취를 모르고 있었다. 성칠은 뒤로 다가가 두 손으로 처녀의 두 눈을 꽉 막았다. 
      “왁!”
    “어마나!”
    후닥닥 놀란 그 처녀는 두 손으로 성칠의 두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 꼭 잡아 푸느라고 안간힘을 다 썼다.
    "누구야? 놔, 놔라니깐!"
    성칠은 손가락에 힘을 더 주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누구겠꽁?”
    “이걸 놔봐!”
    “맞추고야 놓을 테야.”
     “성칠 오빠겠꽁.”
      “아니다. 은녀야.”
      “그럼? 아냐. 성칠 오빠 맞다. 응응. 이걸 놔.”
     성칠이 아무리 목소리를 숨기려고 하였지만 은녀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성칠이 두 손을 활 놓자 은녀는 그의 두 손을 잡은 채 돌아앉으면서 쌍까풀눈을 똥그라니 떴다.
     “오빠 맞구나! 나쁜 놈!”
     은녀는 성칠의 넓은 가슴에 주먹을 안기다가 성칠의 가슴을 활 밀어놓았다. 성칠은 준비 없어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얘야, 목이 말라 째지는 것 같다. 물 한바가지를 주렴.”
     “그래요.”
     은녀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이사해 와서 남대치 말을 곧잘 했다.
     그녀는 물바가지로 샘물을 한 바가지 푹 퍼서 손바닥으로 바가지 밑에 흐르는 물을 쓱 닦았다.
     "자요."
     그녀는 두 손으로 물바가지를 쑥 내밀었다.
     성칠이 급히 받아 마시려고 하자 은녀가 물바가지를 도로 가져갔다.
     “야,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무슨 장난이야.”
     “아니. 급히 마시지 말아요.”
    은녀는 물바가지에 풀잎을 하나 뜯어 띄워 놓은 후 다시 내밀었다.
    “자, 드세요.”
    성칠은 물을 마시려다가 풀잎을 보고 상을 찡그렸다.
    “물바가지 안에 웬 풀잎이냐?”
    은녀는 생글방글 웃으면서 종알거렸다.
    “오빠가 바쁜 걸음을 달려온 후 물을 급히 마시다가 얹힐 가봐 그래요.”
    “오, 그래?”
    은녀는 옥 같은 이를 드러내며 쌔물쌔물 웃으면서 성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성칠은 물바가지 물에 뜬 풀잎을 후후 불면서 샘물을 꿀꺽꿀꺽 마시었다.
      “어, 시원하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자, 한바가지 더 주렴.”
     성칠이 물바가지를 내밀자 은녀는 샘물을 또 한바가지 폭 퍼 주면서 종알거렸다.
      “자, 드세요. 땅 밑에 샘물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컷 드세요.”
     “그래, 은녀 샘물이 특별이 시원하구나.”
    성칠은 시원한 샘물을 연속 두 바가지나 마셨다.
    “호호호, 괜히 물배만 채우겠소.”
    은녀는 또 한바가지 퍼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성칠은 그 한 바가지마저 다 마시고서야 뒤에 따라온 검둥이 대가리를 쓰다듬었다. 검둥이도 성칠과 은녀를 번갈아보면서 꼬리를 흔들거렸다.
    성칠은 말배에 건 주머니에서 큼직한 곰의 고기덩이를 꺼내서 은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사냥한 거야. 집에 가져다 앓는 아버지한테 대접해라. 이 장꿩 꼬리털 하나만은 기념으로 잘 건사해.”
   성칠이 정색해 말하자 은녀는 귀밑까지 발갛게 상기됐다.
   “오빠, 은희 언니가 알면 괜히 오해하겠어요.”
   “뭘, 오해한다는 거야. 오빠 너한테 주는 건데.  언제 셈평이 들겠니? 또 널 고와하면 뭐라니?”
     “아이고, 부끄러워라. 호호호.”
    은녀는 물바가지를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외면했다.
    가리마를 낸 귀밑에 칠색무지개가 더 곱게 피였다. 이팔청춘의 은녀는 실로 산속 숲속에 피어난 한 송이 함박꽃 같았다. 함치르르한 머리카락아래 짙은 눈썹아래 긴 속눈썹에 어울리게 새별처럼 반짝이며 새물대는 눈, 옥 같은 이, 구김살 하나 없는 빨간 입술,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에 귀밑머리 몇 오리가 흘러내려 가을 산바람에 하느작거렸다.
     “보기는?”
      “보는데 고운 얼굴이 축나니?”
     성칠은 은녀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 넓은 품에 안겼던 은녀는 덴 겁을 한 듯이 바삐 뒤로 물러섰다.
    “놔요. 저기 누가 온다는데도.”
     짐짓 골짜기아래 저쪽으로 눈치하자 성칠은 그 곳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놓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요게 어디서.”
    “호호호, 아저씨가 이러면 되는가요?”
    “그런가? 내 너무 한 겐가? 에크, 저게 네 엄마가 오는구나. 그럼 내 먼저 내려가겠다.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라."
     성칠은 적토마 잔등에 훌쩍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굽이진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은녀는 촉촉한 눈길로 멀어져가는 성칠 오빠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골짜기 저 아래에서 한손으로 치마 자락을 걷어안고 올라오는 어머니를 보자 제정신이 펄쩍 들어 물동이를 이고 장 꿩과 곰 고기를 들고 아래로 치마자락이 휘날리게 내리 걸었다.
       은녀가 인 물동이에서 바가지 물동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동 동 동 절주 있게 들려왔다.
       은녀는 금방 있은 분간하기 어려운 일에 생글 웃다가 무거운 그림자가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햇님도 처녀 총각의 이런 연극을 많이 보았으련만 숫처녀의 웃음에 화답이나 하듯이 씨물 웃었다. 시원하고 맑은 가을 샘물은 여전히  뭘 조잘조잘 속삭이면서 흐르고 흘러 성칠이 네 집 앞을 굽이굽이 흘러내려갔다.
      은녀는 물동이에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으로 닦으면서 어머니를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응삼의 자그마한 주먹 낯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춤 멈춰 섰다.
     “오, 은녀가 돌아왔구먼. 마침 잘됐다.”
    응삼의 이지러진 애호박 같은 낯에 간사한 웃음이 흘러지나갔다. 은녀가 왼손에 쥔 장 꿩에 눈길이 닿자 주름살이 죽죽 간 그의 길쭉한 낯에 음흉한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은녀가 집안에 천천히 들어가 장 꿩을 부엌에 내리어 놓고 물동이를 내리어 물독에 쏴- 부었다. 그녀가 동이를 안고 다시 샘물터로 가려고 문 밖에 나섰다.
     그때 집 안에서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함께 엄창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은녀야, 가지 말고 들어오라.”
    은녀가 집 안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쑥 꺼져 들어간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쿨룩 거렸다.
    은녀는 바삐 물동이를 구들에 내려놓고 구들에 올라가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창렬은 응삼을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작은 나리,  딱한 사정을 들어주오. 은녀를 데려가지 못하오. 내 병이 나으면 꼭 그 집에 들어가서 일해 빚을 갚아주겠소. 쿨룩쿨룩.”
     은녀는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나더니 이글이글 불타는 눈총을 응삼에게 쏘았다.
     응삼은 개의치 않고 엄창렬에게 호통쳤다.
     “애햄, 그래 자네가 언제 병이 나아서 3년 전에 진 빚을 갚는단 말이요? 약을 쓰겠다고 해서 뀌워줬더니. 참 량심없게 놀아? 은녀가 이젠 저렇게 컸으니 딸 신세라도 져야지 않겠소?”
      부엌 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창렬의 처 명순이 두 손을 마주잡고 통사정하였다.
     “조금만 말미를 줍소. 애 아버지가 저렇게 앓는데 은녀까지 들어가고 나면 이 집 농사는 누가 짛겠소? 딱한 사정을 좀 봐줍소.”
     “그것도 말이라고 해?”
    응삼이 발딱 일어나면서 뾰족한 참새 입을  짹짹거렸다.
     “염치 있소? 신세를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딸년들이 저렇게 컸는데 일도 시키지 않는가? 그래 요리 간에 보낼 예산인가? 은녀 안 되면  은희를 가져가야겠소.”
     납덩이 같은 침묵이 집안에 흘렀다.
     한참 후 응삼이 일어나면서 구렁이 같은 말 한마디 내뱉었다.
     “정 딸년들을 못 들여보내겠으면 처라도 들여보내오.”
     응삼이 엉덩이를 툭 털면서 바닥에 내려가 신을 신었다. 응삼은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도 우멍 눈은 은희의 하얗고 말쑥한 얼굴과 풍만한 젖가슴을 흘끔 곁눈질했다.
     그때까지 아버지 잔등을 두드리던 은녀가 쌍까풀눈을 들어 응삼을 바라보았다.
     “나리,  내 들어갈테니 엄마는 놔 두세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돌려 창렬과 은녀, 은희를 번갈아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오, 그래 참 심청 같은 효녀로구나. 내일 인차 우리 집에 들어오라.”
     창렬이 은녀를 밀치면서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저, 나리, 은녀는 죽어도 못 들여보내겠소. 내 눈에 곰팡이가 끼기 전에는 안 되오.”
    응삼은 머리 뒤로 담배연기를 흩날리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독살스레 을러멨다.
    “내일 보내게나. 오지 않으면 이 놈의 집을 허물어 갈 줄 알아라. 퉤! 배은망덕한 놈들.”
    응삼이 삽짝문을 열고 나가자 창렬은 은녀와 은희를 붙안고 잔등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은녀야, 안 된다, 안 돼. 내가 죽으면 죽었지 너희들을 남의  부엌데기로 들여보내지 못한다. 안 된다, 안 돼.”
     은녀는 아버지 잔등을 두드려주면서 하얀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뒤이어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헌 까래 위에 눕혀놓았다. 앓는 아버지 초췌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은녀의 가슴은 한 오리 한 오리 저며 내는 것만 같았다. 눈물과 땀방울이 흘러내려 은희의 양 볼에 눈물범벅이 된 귀밑머리 몇 오리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때 바깥이 어두워지더니 돌개바람이 사납게 불어쳤다. 순식간에 돌개바람에 창렬의 집 이영이 흩날려 하늘높이 날아났다. 앙상한 연목가지가 퍼런 하늘아래 덩그렇게 드러났다.  먹장구름이 덮쳐오더니 가을비 구질구질 쏟아져 내렸다. 을씨년스러운 하늘아래       집 안에서는 쿨룩쿨룩 기침소리에, 천정에서 새 떨어지는 물을 받느라고 분주한 소리, 명순과 은녀, 은희의 흐느낌소리가 반죽돼 상가집처럼 처량하게 귀를 아프게 했다.
    은녀의 남동생 상호는 사내노라고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눈을 부릅뜨고 씩씩 거렸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먹장구름이 흘러가고 가을비 멎자 기러기 몇 마리 끼룩끼룩 슬프게 울면서 날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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