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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황혼 제5권(87) 황혼 동기파티 김장혁
2024년 12월 23일 11시 50분  조회:10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황혼 제5

       김장혁
 

      87. 황혼 동기파티

 
 

    선녀다방에는 경쾌한 음악이 절주있게 흐르고 대학 동기 최혜영과 종호의 대화는 끝없이 흘러 내려갔다.
    종호는 혜영한테서 최군철이 지위 서기로 온다는 말에 실오리 같은 막연한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눈 앞에는 막막한 일이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종호는 갑갑해 혜영한테 말했다.
   “내 출국금지당하는 바람에 나영이네 성림의 심장수술은 어쩌오?  김춘희 박사와 황선희 박사를 보고 한국에 나가 성림의 심장수술을 좀 해주지 못하겠는가고 물어보았댔소. 그런데 심장수술부터는 개인 집에서 하지 못한다고 하잖겠소. 수술설비랑 없어 못한다오. 나영이 감옥에 있어서 성림을 중국에 데려다 수술할 수도 없고. 그래서 치료비를 중국은행을 통해 한국에 있는 나영의 여동생 춘영한테 부치려고 하니까. 글쎄  중국은행에서 내 로임 은행구좌까지 몽땅 차압하지 않았겠소. 이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소. 성림을 구할 거 같지 못하오.”
   혜영은 너무 답답해 종호를 마주 바라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핸드빽에서 벌건 돈묶음을 꺼내 종호한테 주었다. 그 돈은 원래 남동생 병문안을 가자고 금방 은행에서 꺼낸 돈이었다.
   종호는 돈묶음을 되밀어주었다.
   “아니, 이건 뭐요?”
   혜영은 돈묶음을 종호 손에 쥐어주면서 간곡히 말했다.
   “저는 로임은행구좌마저 다 차압당했잖았고 뭐요? 요즘 가져다 쓰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전처럼 짧은 생각을 하지 마오. 우린 래일의 희망을 기다려야 하오. 알만 하오?”
   종호는 별수 없이 돈묶음을 감사히 받고 머리를 끄덕였다.
   “이후에 갚을게.”
  “아니, 우리 사이에 무슨 필요없소. 류려평과 류덕재 사건을 신고한 감사비라고 생각하고 쓰오."
  "내 돈을 바라고 신고한게 아닌데."
   "아오. 정의감에서 나선게지. 그럼 동기 주는 거 쓰면 안되오. 리사장이 내 수사사업을 도와줘서 감사했소. 힘 들 때 서로 돕는게 동기간이 아니겠소? 오누이처럼 말이오.”
   그제야 종호는 돈묶음을 받아넣었다.
  "그럼 잘 쓰겠소."
   혜영은 종호가 론리사유가 망가져 동정에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인생황혼에 들어서면 다 저렇게 정치민감성이 도끼등처럼 무뎌지는가? 옛날 재직 때 리종호 사장이 아니야.)
   그녀는 이렇게 말해주려고 하다가 그만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어떤 땐데, 어째 성림이란 애한테 그리 집착하오. 혹시 성림을 구해주고 나영과 재혼이라도 할 예산이오?”
   그러나 종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오. 애가 너무 불쌍해 인간적으로 도울뿐이오. 애한텐 무슨 죄가 있소?”
   최혜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꾸 성림이나 나영한테 관심을 보이면 리사장한테 불리하오. 그래잖아도 지금 류려평은 리사장이 나영과 중혼죄 있다는지, 리사장이 류려평이 얻어먹은 아파트를 팔아 책을 냈다는지, 류려평과 리사장은 한 가정 경제공동체 공범이라는지, 류려평이 숱해 물고 늘어지는 판에, 참, 답답하오. 리사장, 좀 경중을 가려서 처사하오. 지금 성림의 치료보다 류려평과 류덕재를 처치하는게 급선무라는 걸 좀 명심하오.”
   종호는 머리를 푹 숙이더니 고민에 빠졌다.
   “그때 류려평이 년말상금으로 탄 아파트란 말을 딱 곧이들었댔소. 그래서 그 집을 팔아 조선족항일투쟁사 책을 내는 정의적인 일에 썼소. 그런데 그 일이 류려평한테 빌미를 제공할줄은 몰랐소.”
   혜영은 종호의 말이 진실한 교대라는 것을 믿었다. 그녀는 믿어운 눈길로 정의감이 있는 동기를 마주보며 또 한마디 충고했다.
   “나영은 동정할 녀자 아니오. 전번에 성감옥에 가서 최정호 국장을 심문했는데 나영은 문화국과 전람관 청사를 지을 때 아파트 한채를 공짜로 가졌답데. 이젠 리사장은 나영한테 미련을 버리고 쓸데없이 동정하지 말기를 바라오. 어떤 땐 사람을 잘 알지 못하면서 동 정하면 자기를 해칠 수도 있소.”
   그제야 종호는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나영이 고생스레 사는게 불쌍해 동정했을뿐이오. 그러나 그가 위법했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는 성림이 불쌍해 동정했을뿐이오. 특히 성림을 훌륭한 조선족애로 키우려려는 모성애가 가긍해 좀 동정했을뿐이오.”
   종호는 무슨 생각이 피뜩 떠올랐는지 핸드빽을 들추더니 유판을 꺼내 혜영한테 주었다.
   “이 유판에 요즘 류덕재 일당이 산소 주위에서 한 활동장면이 몽땅 록화돼 있소. 내 여기 올 때도 드론까지 추격해오지 않겠소.”
   “그저 일이 아니구만. 안전에 주의하오. 그래서 내 김호한테 경찰 둘을 파견해 리사장 신변을 보호하라고 부탁했댔소.”
   그제야 종호는 알 것 같았다. 산소로 갈 때 그들 형제 탄 택시 뒤를 따라오는 택시 한대가 따라왔댔고 또 산소 몰카에서 보내온 동영상을 되돌려보니 부근 강냉이 밭에도 쇠파이프를 쥔 꺽다리를 내놓고도 다른 짝패 둘이 숨어 있었댔다. 그들이 바로 김호가 파견한 변장한 경찰들인것 같았다. 종호는 혜영의 아량있는 꼼꼼한 배치에 못내 탄복했다.
   혜영은 화장실에 나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박국장이오? 내 최혜영이오.”
   그녀는 김호한테 부탁하고서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시공안국 박동묵 국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박국장, 오늘 음력 7월 15일이 아니고 뭐요? 류덕재 일당이 아마 오늘 밤에 류려평 애비 산소에 묻어둔 걸 파낼 거 같소. 경찰들을 현지에 출격시켜 나포하면 어떻소? 양, 김호 부대대장과도 말했소. 양, 형사경찰대대와 치안대대 경찰로 두개조로 나뉘어 협조 습격하면 실수 없을 수 있지. 수고하겠소.”
   혜영은 모든 걸 깔끔히 처리한 후 다방에 돌아왔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종호를 보고 물었다.
   “어째 성호와 정희 아직도 오지 않소?”
   “우리 왔소.”
   다방에 성호와 정희가 환히 웃으면서 들어섰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끝내 왔구만.”
  종호는 성호와 정희 손을 일일이 잡았다.
   혜영과 정희는 악수하면서 서로 마주 바라보며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의 눈길에는 걷잡을 수 없는 오만가지 생각이 파도치며 스치고 흘러가고 있었다.
   혜영은 정희 호리호리한 몸매를 바라보며 덕담을 건넸다.
   “참 오랜만이구나. 넌 아직도 몸매가 대학시절 처녀 때처럼 날씬하구나. 정희야, 넌 미국에 가 있다더니 언제 돌아왔니?”
    정희는 될수록 어색하게 만들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대답했다.
   “그래, 난 미국에 갔다가 한국에 들어와 산지도 몇해 된다.”
   정희는 은영의 서리내리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마주 바라보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내색을 내지 않으려고 무등 애쓰면서 인사를 받았다.
   “은영아, 참 오랜만이구나. 오늘 동기파티에 왔기에 오랜만에 널 보는구나.”
   정희도 반색하면서 인사했다.
   성호는 자꾸 혜영의 희슥한 머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는 내심 저으기 서글프기만 했다.
   (아, 얼마나 보고 싶던 은영인가? 저렇게 머리 흰 혜영이 그래 내가 미칠듯 사랑하던 은영이란 말인가?)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월이 무섭구나. 세월이 무정하구나. 우리 이젠 머리도 다 희였구나.우린 벌써 다 인생황혼에 들어섰구나. 세월이 무정하구나. 어쩜 검은 머리 휘날리면서 빙장에서 날렵하게 스케트를 타던 처녀를 이렇게 머리 허연 로파로 만들었단 말인가. 무정세월이 얄밉구나.)
    그때 다방에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성호의 기분에라도 맞춘듯이 김용임의 "나이야 가라."는 노래가 애달프게 흘렀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

    뒤이어 "사랑이야 어찌 늙으랴"는 노래가 성호와 혜영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흘렀다.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좌석에 앉으려고 했다.
   (비록 우린 황혼에 들어섰다지만 우린 아직도 마음이 늙지 않았지.) 
   정희가 여겨보니 혜영은 성호가 손을 내밀었는데도 어색한지 성호의 손도 잡지 않는 것이었다.
   종호는 은행구좌마저 동결돼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고급커피에 청도맥주랑 명태랑 소고기료리랑 숱해 시켜 올렸다.
   다방에서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씁쓸한 음악이 무겁게 흘렀다. 성호는 오랜만에 혜영을 보자 눈 앞에 옛 추억이 필림처럼 돌아갔다.
   성호는 항상 이 선녀다방에 와서 은영(혜영)과 만나 동기의 정도 나누었고 승호랑 종호랑 친구들과 술도 마시면서 찬란한 미래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눴댔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성호는 대학 시절에 은영과의 첫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난 것에 마음 아팠다. 혜영도 성호 못지 않게 그때 일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때 대학시절에 성호는 은영과 함께 빙장에서 은제비들처럼 쌍쌍이 나래쳤다. 빙상 백마왕자와 공주처럼 쌍쌍이 휘거를 하면서 펄펄 나래쳤다. 성호는 은영이 없인 못 살 것처럼 은영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런데 은영은 승호를 사랑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긴 은영은 최시장의 귀여운 공주였고 성호는 심심산골 농민의 아들이 아니였는가. 그들은 확실히 짝이 기울었다. 성호는 은영이 시공안국 형사과 과장의 아들 승호를 고중 동기 때부터 사랑했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호는 사랑의 라이벌 승호와 대판 결투까지 벌였다. 대학교청사 뒤 눈덮인 소나무숲에서 그들은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치고 박았다. 그때 은영이 중간에 끼어들어 울면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누구든지 꺼꾸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결투까지 했지만 은영은 결국은 끝까지 승호를 선택했다. 그때 성호는 막 자살까지 하고 싶었다. 그런데 후에 성호와 은영은 학교 뒤 소나무숲 속에서 련정을 불태우다가 글쎄 강도들한테 기습당했다. 강도들은 승호를 소나무에 묶어놓고 승호 앞에서 짐승들처럼 은영을 륜간했다. 은영은 승호가 자기 외에도 대학 동기 홍희와 고중 동기 허옥녀의 정조를 짓밟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였다. 그 일을 알고 은영은 승호의 그걸 면도칼로 베버리기까지 했다. 후에 승호는 에이즈에 걸려 죽고 말았다. 후에 성호가 알고 보니 승호는 글쎄 성호 아버지가 남한테 준, 성호의 배다른 큰형님의 아들일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성호는 혜영을 보는 순간 자기와 승호와 은영 사이에 있었던 치렬한 삼각련애가 자꾸 주마등처럼 떠올라 저으기 괴로웠다.
   성호는 십여년 전에 오랜만에 혜영과 함께 고향 서산에 가서 스키를  탔다. 그때 혜영은 몇길 되는 절벽에서 스키를 신고 뛰어내려 불새처럼 소나무숲 속으로 미끌어져 내려갔다. 성호는 오늘도 혜영의 그 날렵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후 성호가 한국에 나가다나니 자주 만나지 못했다.
   혜영도 은은한 음악 속에서 성호와 승호와의 옛 추억에 빠졌다가 간신히 깨어났다. 그들 둘은 서로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눈길도 별로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숱한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종호는 맥주잔을 들어 권했다.
   “자, 오랜만에 이렇게 가까운 동기들을 만나니 기쁘오. 무더운데 맥주를 시원히 들면서 얘기하기오.”
   “건배!”
   맥주잔이 댕그랑 정겹게 부딪치는 소리.
   모두들 잔을 쭉 굽냈다.
   혜영은 성호가 지금 정희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저으기 기뻤다.
   혜영은 정희를 마주 바라보면서 물었다.
   “한국에서 뭘 하니?”
   정희는 명태를 찢어 여럿의 접시에 일일이 올려 놓으면서 대꾸했다.
   “저 나그네 한국에서 광고신문을 꾸리는 걸 도우면서 두루 산다.”
   “딸애는 이름이 뭐던가? 지금 어디 있니?”
   정희는 성호를 흘끔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내 딸애 하나라고 불러. 지금 강남 한국 반도체회사에서 일하는데 괜찮게 보낸다.”
   “결혼했니?”
   “결혼했어. 한 회사 김윤선이란 총각과 결혼했다. 걔들은 미국 하버드대 동기야.”
   혜영은 다잡아 물었다.
   “혹시 걔들이 최군철 전무네 회사에서 일하잖니?”
   정희는 외까풀눈이 데꾼해졌다.
  “그래, 너도 최군철 전무를 잘 아니?”
  “너네도 알겠지만 최군철은 우리 지위 서기로 온단다.”
   정희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는 모양이야. 우리 딸도 아마 최전무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거 같다. 그래서 우리도 이번에 두루해 귀국해 돌아본다. 아마 최전무네 회사 조선족 골간들은 모두 최전무를 따라 고향에 돌아와 반도체회사를 차릴 예산인 모양이더라.”
    종호는 성호와 눈길을 맞추면서 희죽이 웃었다.
   “보라니깐. 그래도 최국장이 정계 소식이 빠르잖소? 허허허.”
   성호는 맥주잔을 들어 권했다.
   “우리 고향에 대형반도체회사가 들어앉으면야 지역경제 발전에 얼마나 좋겠소?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기오.”
   또 맥주잔이 댕그랑 마주치는 소리 정겹게 들렸다.
   그때 혜영이 핸드폰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다방에서 나가 화장실에 가서 은밀히 전화를 받았다.
   이윽고 되돌아온 혜영은 핸드빽을 들더니 종호와 성호를 둘러보았다.
   “미안하오. 좀 급한 일이 있어 먼저 일어서야겠소. 후에 다시 련락하기오.”
   성호는 일어나 따라나가며 바랬다.
   “퇴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바삐 보내오. 황혼기에 이르러 이젠 우리 다 무슨 일이 없어야겠는데. WW.”
   “그렇게 됐소. 미안하오.”
    혜영은 기실 성호와 정희와 마주 앉으니 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시도 더 앉아 있기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 공안국 박국장한테서 오늘 밤에 있을 나포작전을 연구하자고 부르자 좋다고 자리를 떴다.
   혜영은 바깥에 나가 동기들한테 손 저어 보이더니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결처럼 사라졌다. 택시는 쏜살같이 공안국으로 곧추 달려갔다.
   저쪽 골목에서 선글라스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성호와 정희는 혜영을 바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다시 되돌아와 종호와 마주 앉았다.
   혜영이 떠나가자 성호는 정희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린 인생황혼에 들어섰잖았니? 이젠 별게 있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놀고 싶은 걸 먹으면서 여생을 즐기면 되지.”
   종호는 맥주잔을 들면서 말했다.
   “그러면야 황혼이 멋지지. 그런데 어디 퇴직해도 그렇게 되니? 뭔가 해야 인생가치를 실현하는 거 같아.”
   성호도 머리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신문을 꾸리면서야 많은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한국 사람들은 언론자유돼 그런지 아무거나 마구 쓰던데 투고한 원고들을 두루 읽어 보면 어째 그닥잖더라.”
   종호는 의아해 물었다.
   “뭐? 어떻기에?”
   성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시를 잘 모르지만 그렇게 시를 쓰면 안된다고 본다. 시를 쓴답시고 응풍영월하지 않으면 미사려구로 문자장난을 하잖았겠소? 쓸데없이 횡설수설하고. 밥 먹고 할 소리 없는지, 잠꼬대 같은 소리도 짓거려놓고 시라고 내달라오. 짤막한 시라도 사람들한테 뭔가 안겨주는게 있어야지. 뭔가 귀띔해주는 거라도 있어야겠는데. 그런 걸 시라고 써보내 가지고 원고료부터 얼마나 주겠는가고 물어본다. 우스워 말도 안 나가.”
    종호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돈만 따지면서 저울질하면 세상에 유용한 아무 글도 못 써. 지금 우리 시단의 어떤 난해시는 진짜 안개 속 같아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더라. 어떤 시인들은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몽롱한 시야 말로 절세의 명시라고 하는데. 참, 남이 알아보지도 못하게 쓰는게 신지? 글쎄 이른바 예술성은 높인다고 그러는데. 참 그 정력과 필묵이 아깝다. 그런 자화자찬하는 난해시는 쓴 ‘시인’이나 알아보겠는지. 백성들이 알아보겠는가? 그런 시인들은 대중화 시를 통속시라고 얕잡아 보는데. 인민성을 잃은 시나 소설은 그닥잖은 오작이야.”
   성호와 종호는 의기투합돼 맥주잔을 댕그랑 마주쳤다.
   정희는 어느결에 파랑새란 별명처럼 얼굴이 새파래 잔을 들어 댕그랑 마주쳤다.
   종호는 성호가 은영(혜영)과 실련한 뒤 정희와의 약혼을 성공시키려고  중간에서 련애편지랑 날라주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성호와 정희가 재미나게 사는 걸 보고 저으기 기뻤다.
   종호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성호, 난 한평생 신문을 꾸렸는데 쉽지 않습데.”
   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국내에서 광고신문을 꾸려 그래도 몇만부씩 발행해 한해에 천만원 수입을 올린 적도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온라인시대 돼서 광고신문을 잘 보지 않아 망했어. 그래서 한국에 나가 꾸리는데 쉽지 않소. 동포들은 그래도 동포신문이라고 보는데 한국인들은 우리 광고신문에 광고를 잘 안내오. 심지어 신문을 보지도 않소.”
   성호는 소고기점을 집어 씹으면서 다른 화제로 뒷말을 이었다.
   “진짜 력사적 가치 있는 문장은 그래도 네가 쓴 력사이야기나 력사소설인 것 같더라.”
   “그래?”
   종호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 대작가 조정래의 대하력사소설 “아리랑”, “태맥산맥”, “한강”은 참 력사적 가치 있는 소설이지. 대녀작가 박경리 력사소설 “토지”랑 괜찮지. 그런 력사소설을 읽어보면 당시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생활모습과 당시 력사를 형상적으로 볼 수 있지. 참 좋더라.”
   “맞어.”
   성호는 명태를 쪽 찢어 와사비에 찍어 씹으면서 말했다.
   “난 시내만 나가면 그런 력사소설을 사다가 본다. 진짜 그 긴 력사소설을 어떻게 그렇게 주옥 같은 필치로 펼쳐냈을까? 조정래나 박경리 같은 대작가들이 참 존경스럽다. 너도 민족을 위해 항일전쟁력사이야기를 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니? 기여도 크구.”
   종호는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들은 자연히 “야”, “자” 하면서 무람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르고 보니 세상에 해놓은 일이 없어 참 마음이 아프다. 우리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니? 참 이러다가 훌쩍 이 세상을 떠나면 어쩌니? 부모 낳아 준 은혜와 당과 국가에서 무료로 대학공부를 시킨 은혜도 제대로 갚지 못하면 어쩌니?”
   성호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넌 괜찮아. 난 한뉘 광고나 하면서 돈은 벌었지만 너처럼 세상에 해놓은 일이 없어 고민이다. 이제라도 뭔가 해놔야겠는데.”
   종호는 맥주잔을 들어 권하면서 말했다.
   “무슨 말이냐? 네가 애나게 광고를 해 번 돈을 대줘서 내 책을 냈잖았니? 그것도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과 선렬들을 위해 기여한 거야.”
   그들의 화제는 지구촌 동서남북으로까지 뻗어나갔다.
   종호는 이런 말을 꺼냈다.
   “로씨야에선 병나면 무료로 치료해준다더구나. 나영이네 성림이도 로씨야로 데리고 가서 치료하는게 좋잖겠는지 모르겠어.”
   성호는 피뜩 떠오르는지 물었다.
   “오- 이전에 네가 입원해 찾아갔을 때 본 그 나영이란 녀자네 애 말이냐?”
   “그래. 한국 의사들은 걔는 심장수술해야 산다더라. 그런데 수술비용이 엄청 들어가는데 담당하기 어려워.”
  성호는 정희 눈치를 힐끔 보면서 종호 손을 덥썩 잡았다.
   “걔 수술하게 되면 내한테 알려라. 내 좀 도와줄게.”
   정희는 단통 얼굴이 새파래서 못 마땅한 눈길로 성호를 흘겨 보았다. 정희는 성만 나면 얼굴이 새파래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동기들은 정희를 “파랑새”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댔다.
   종호는 인차 파랑새 못 마땅해 하는 눈치를 제꺽 채고 말렸다.
   “그만 둬라. 너네도 한국 이국 땅에서 신문을 꾸려 돈을 버느라고 얼마나 고생하고 있니? 성림의 수술비를 부조받자고 성림의 말을 꺼낸 게 아니야.”
   그들 동기간은 반갑게 만났다가 돈 말이 나오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다방에서는 쓸쓸한 음악이 울렸다. 그들의 술좌석도 싸늘이 식어가다가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쌀쌀한 리별을 고하고 말았다. 종호는 쓸쓸한 동기 파티에 마음이 저으기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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