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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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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5) 운주동서당방 김장혁
2024년 01월 29일 07시 48분  조회:68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6. 운주동 서당방 


 
 
      먹장구름 틈새로 한줄기 빛이 희미하게 내리비추다가 맥없이 한숨을 쉬면서 어디론가 서서히 사라진다. 어둠이 신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이리떼처럼 기를 쓰고 대지에 기여들어 초가집을 우악스레 감싸안아버린다. 
     최구장은 마루에 앉아 담배대통을 뻑뻑 빨며 급변하는 하늘의 풍운조화를 바라보다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머리를 돌려 조왕간에서 바삐 돌아치는 큰며느리 허옥실을 보고 성칠이 준 멧돼지 고기를 푹 끓이라고 했다.
     최구장 일가가 사는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은 함경북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심심산골이었다. 정말 그가 살던 고향 개성이란 옛 고려의 수도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곳이었다.
     지금도 최구장은 눈을 스르르 감으면 자기 고향 개성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군 했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공부하던 서당이며, 고려 충신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죽은 선죽교며, 고려의 옛 궁전터전이며, 어려서부터 드레 박으로 샘물을 길어다 마시던 큰 길옆의 우물터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함경북도라고 하면 원래 이씨 왕조 때 죄를 지은 자들을 정배를 보내던 곳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못살 산골이어서 범죄자들이나 정배를 보내 고생을 시킬 곳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개성에 들어온 후 서당 글을 가르치던 최구장 영감도 계속 마음 놓고 글을 가르칠 수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본글을 가르쳐야 하지 한자나 조선 글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대대로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른 황이나 익혀온 최구장 네를 보고 알지도 못하는 일본 말을 가르치라고 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사는 이를 데 없이 괘씸했다. 그것이야 말로 최구장의 명줄과 같은 서당 훈장 밥통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작은 집의 사촌동생 최구철마저 일본 놈 몇을 총을 놓아 죽였기에 최구장 일가는 일본 놈들의 요시찰 인물로 점 찍혀 살기 어렵게 됐다. 그리하여 최구장은 정든 고향을 떠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은 명천 우시장에서도 멀리 떨어진 심심산골에 들어와 수림 속에 밭이나 일구어 감자농사를 지어 먹으면서 살게 됐던 것이다. 비록 심심산골이고 고향 개성처럼 환한 고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이 없어 기를 펴고 살 수 있고 시골 애들에게 마음 놓고 서당에서 글을 다시 가르칠 수 있어 좋았다.
      운주동 서쪽에 누르스름한 뭇 산우에 기운봉이 우뚝 솟아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는 사시절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그 구름 모양은 천태만상이었다. 피어올랐다 풀렸다 하는 구름송이,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송이, 햇솜같이 새하얀 구름송이, 고기비늘처럼 무늬를 정연하게 돋친 구름송이로 정말 아름답기만 했다. 구름송이들도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고서는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군 했다. 하여 멀리서 보면 기운봉은 마치 구름바다의 섬을 방불케 했다.
       기운봉의 청석옥석 사이로 샘물이 쿨쿨 쏟아져서는 갈색바위를 부시며 철철 흘러내려 운주동과 신흥동 마을로 달려갔다.
운주동은 서쪽의 기운봉 기슭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운주하 개울물을 따라 한 5, 6리나 되게 죽 뻗은 산골짜기에 한두 집씩 게딱지처럼 여기저기 스산하게 널려 있었다. 개울물 남쪽에는 운주동 마을에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개울물 북쪽에는 신흥동 마을이 산을 등지고 죽 늘어서있었다. 기운봉 동쪽 기슭에 있는 운주동 뒷산꼭대기는 좀 평평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곳이 명당자리라고 하는 최구장의 제의에 따라 산소를 쓰고 그 주위에 돌로 토성을 높다랗게 쌓아 놓았다. 그리하여 성과도 같은 그 토성안의 산소로 하여 운주동의 일부 집들을 성남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운주동의 이런 시골 집들은 통나무집들이었다. 대부분 아름드리나무들을 톱으로 썩썩 켜 통나무채로 쌓은 후 나무못으로 고정시켜놓고 그 우에 지붕틀을 올리고 널판자를 기와처럼 얹은 통나무집이다. 집집마다 잡나무를 베다가 울바자를 집 둘레에 높다랗게 세웠다. 진짜 산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최구장은 어려서 고향 개성에서 서당공부를 하여 천자문, 논어, 대학, 중용을 다 배웠다. 또 풍수지리마저 익혀서 집을 어떤 데 지어야 좋고 어디다 산소를 써야 명당자리라는 것을 환히 꿰뚫었다. 기운봉 기슭의 성은 바로 그의 제의에 따라 개척한 명당산소자리였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최구장은 몽땅 해리하고 푸는 방법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군 했다. 그리하여 개성으로부터 운주동에 이사해 온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유식한 서당훈장으로 모시였고 애들을 그의 서당에 보내 공부시켰다.
     또 사람들은 그를 해리장으로 높이 모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 해결방도를 물었고 결혼하거나 장례를 치르면 은전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최구장이 아침 밥술을 놓기 바쁘게 마을의 병욱이가 아들 시준의 손목을 잡고 최구장의 팔간 집 울안에 들어섰다.
      “최 훈장님, 아침을 잡수셨습둥?”
      그러자 최구장은 버릇처럼 왼손으로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움찔 일어나 마중했다.
     “김 영감, 오늘 일찍 하오다. 어서 오너라. 시준이 요즘 공부를 잘하더라.”
     시준은 인차 구십도 경례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최 선생님!”
     최구장은 인차 시준의 손목을 잡아 마루에 끌어올렸다.
    “에이, 시준도 이젠 열 둬 살 먹더니 철들었네. 이리 올라와. 오늘도 제일 먼저 서당에 왔구나.”
    시준은 다른 애들보다는 달랐다. 말수가 적은데다가 눈만 뜨면 책만 들여다보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서당에 들어서자마자 책보를 풀어놓고 마루에 손가락으로 글을 오리면서 중얼거렸다.
     “내 뭐랬소? 책을 익혀 살 놈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니까.”
    그는 윗방에 들어가 그때까지 일어도 나지 않은 장손 봉인의 엉덩이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짝짝 쳤다.
     “이 자식, 일어나라. 해 궁둥이를 다 비춘지도 오래다.”
     둬 살 밖에 안 되는 봉인은 일어나 앉으면서 두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봉인은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기였다.
      “할아버지!”
      “오, 그래. 요 놈이 우리 집안의 기둥과도 같은 14대 장손이지! 요 놈도 공부를 잘해야겠는데.”
      이때 최구장의 딸 죽순이 앙기작앙기작 걸어와 봉인을 밀어냈다.
      “가. 내 아버지야!”
      여자애는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며 흘겨보았다.
      “그래, 아빠는 장손도 고와하지만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딸을 정말 고와하지.”
      최구장이 딸과 손자를 안고 노는 재미나는 모습을 보고 병욱은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이도 옆에서 히죽이 웃었다. 허옥실도 부엌에서 아침상을 거두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방실 웃었다.
      이때 마을 애들이 다 와서 최구장은 제일 윗방에 들어가 애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준이랑 병권의 맏손자 형내랑 천자문을 따라 외우는 낭낭한 글소리가 이 시골에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최구장의 막내아들 경석은 공부하기 싫어 천자문을 외우는 척 하면서도 바깥을 흘금흘금 곁눈질 했다.
    (에이, 씨, 바깥에 나가 놀았으면 얼마나 좋겠니? 운주하에 나가서 목욕도 하고 모래에 물도랑을 파면서 놀겠는데. 날마다 하늘 천, 따 지야?)
    막내아들의 그런 속내를 꿰뚫어본 듯이 최구장은 대통으로 경석의 머리를 한 대 딱 쳐놓았다.
     “아가!”
     비명소리에 애들이 모두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경석에게 머리를 돌려 보고 캐득거렸다.
     “공부에 집중해! 왜 자꾸 바깥을 흘금거리면서 정신을 팔아? 그러고서야 입으로 아무리 외운들 글자가 머리 속에 들어가나? 못된 놈 새끼! 다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아 봐!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테야! 어험.”
     경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버지가 무서워 눈치를 흘금 거리며 하늘 천, 따 지를 외웠다.
     최구장은 철 없는 경석을 보고 골치 아파 했다.
     맏아들 경숙은 자기 대신 이젠 가문의 농사일을 담당했기에 공부를 할 새 없어 시키지 못하고 둘째 경인은 천자문을 떼고 무예를 익히느라고 검을 들고 달아 다녔다. 셋째 경민은 허약한데다가 넷째 경욱과 함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약 담배 장사에 흥취가 박혔다.
    (헤이, 생각만 해도 가운이 답답하다.)
    최구장은 생각다 못해 총명한 막내 경석에게 희망을 두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키는 판이었다. 장차 형내네 할아버지 관준한테 보내서 한의공부를 시킬 예산이었다. 서당 훈장질을 이어받아서야 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막내아들은 삶의 그루를 바꿔 심어 의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속셈으로 관준의 손자 형내에게서 서당 공부 학비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경석은 놀음에 탐해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잘 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한참 후에야 경석과 애들은 금방 일을 잊은 듯 했다.
      서당에서는 애들의 글 읽는 소리가 랑랑하게 울려 퍼졌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바깥이 불시에 어두워지더니 먹장구름이 뒤덮여 왔다. 먹장구름 속에서 시뻘건 불구렁이 기운봉을 번쩍 덮쳤다. 그 놈은 숱한 불혀로 기운봉을 감싸핥아버리고는 먹장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우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추녀 끝에서 숱한 실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경석은 바깥에 나가 놀 궁리를 접고 정신을 집중해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
     최구장은 그제야 한숨을 후 내쉬며 저쪽 마루로 나갔다.
     그는 대통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부시를 쳐 불을 달아 물고 뻑뻑 빨았다. 그는 몰려 오는 비구름을 바라보며 세상의 풍운조화를 예측하기라도 하는듯이 손을 꼽았다 폈다 하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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