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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2) 운주동 검객 김장혁
2024년 02월 18일 12시 22분  조회:79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5. 운주동 검객
 
 
 
     해빛도 따사로운 새 봄이 왔다. 치마봉과 기운봉 기슭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온 산이 연분홍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뻐꾹새들이 수림 속에서 뻐꾹뻐꾹 울고 들에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울며 밭갈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운주동 마을 옆의 운주하 개울물이 구름 싣고  파란 하늘을 싣고 조잘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마을 동구 밖의 기운봉 협곡을 흐르는 맑은 벽계수는  조약돌과 민들레꽃과  뭐라고 조잘조잘 속삭이고는 누구를 또 만나 봄날의 사랑을 속삭이려는지 갈 길을 재촉하며 무거운 이별을 한다.   
  
   운주동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운봉은 누르스름한 바위와 토색 흙으로 단장한 뭇 산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절벽은 사시장철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들이 절벽을 씻어 올리다가도 풀렸다. 구름이 천천히 걷히면서 가파른 절벽이  드러나기도 하고 다시 모려오는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면서 절경을 이루었다.
 
     천태만상의 구름송이는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다가는 갈 길이 바쁜지 어디론가 총망히 사라져버렸다. 기운봉과 치마봉에 먹장구름이 감돌고 번개가 산허리를 번쩍 칠 때는 꼭 얼마 안 있어 소낙비가 쏟아지군 했다.
    비온 뒤면 기운봉과 치마봉 사이 산골짜기에서 쿨쿨 솟는 샘물과 비 물이 갈색바위를 부시며 쏟아져 쏜살같이 흘러 운주동 골짜기를 휩쓸며 흘러 신흥동 쪽으로 내달아간다.
    운주하를 따라 내려가면서 몇 백미터씩 내려가면서 드문드문 통나무집들이 스산하게 널려있었다. 그 통나무집들은 대부분 기와나 벼 짚이거나 조 짚 대신 널판자를 기와처럼 지붕에 얹고 못으로 고정시킨 “널기와 집”이였다. 다만 서당을 차린 최구장의 집만은 청기와를 얹은 목조 팔간 집이었다.
     어느 날, 병완은 자식들을 몽땅 안방에 불렀다. 쉰 고개에 오른 병완의 머리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리였다。
     병완은 대통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고 붙여 물고 뻑뻑 빨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옛말에 팔촌이 한 구들이라고 우리 집은 커서 사대가 한 구들에서 살아도 된다. 요즘 한길수가 얼리고 닥치고 하는 수작을 봐라. 묵밭마저 더 일구지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살겠느냐? 스물두 넘는 식구들이 한 구들에서 손바닥만 한 돌밭을 믿고선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한다.”
     병완은 눈 굽에 눈물마저 픽 돌았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 듯이 뒷말을 이었다.
    “이젠 별수 없구나. 난 맏이 성칠과 함께 여기서 살 테니까 창준과 기준은 운주동에 세간나 살아라.”
     기준은 근심스러워 했다.
     “우리 다 가면 저 길수가 아버지 네를 업신여기지 않겠습둥?”
     병완은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까짓놈들, 흥!"
     성칠이 옆에서 위안했다.
    "나두 있으니까. 근심할게 없다.”
    그리하여 며칠 후 창준과 기준 형제는 상우남면 운주동에 세간나갔다.
     운주동에는 키 넘는 새가 들어 누워 있어 새골이라고도 불렀다. 새밭이 무연하게 펼쳐진 골 안에 창준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고 들었다. 그때로부터 창준네 집안은 웃새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 네는 운주동 웃새집에서 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로부터 기준네 집은 성남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은 맏아들 상우와 맏딸 어금이, 그리고 임신한 아내 사련을 데리고 봄에 누런 잔디가 말라붙은 바위틈새에 듬성듬성 난 묵은 풀에 불을 달아 태워 버리었다. 잔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낸 후 소대가리 같은 나무뿌리들을 괭이로 파내고 도끼로 패서 집에 날라 갔다.
   기준은 해뜨기만 하면 온 집 식구들을 데리고 바위 틈 사이에 재를 펴 놓고 나무로 구멍을 뚫고 기밀을 심었고 운주하 강변에 일군 황무지 밭에는 감자를 심었다.
    어느 날, 어금은 사철 맑은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하러 나갔다.
    빨래터 개울물이 어찌나 맑은지 조약돌이 다 들여다보였고 물고기 몇 마리가 조약돌 틈새에서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는 것이 다 들여다보였다.
    어금이 한창 개울물에 빨래를 휑구어 납작한 빨래 돌에 올려놓고 방치로 쨩쨩 칠 때다.
    애래 쪽 개울가 백사장에 머 태가 치렁치렁한 한 총각이 나타났다. 어금은 누군지 똑똑히 볼 새 없이 빨래를 방치로 땅땅 두드려 개울물에 활활 휑궈 버드나무가지에 널어 말리었다.
    그녀는 피뜩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한 총각이 검술을 익히는 멋진 모습을 보았다.
   “어덴가 퍽 눈 익은데?”
    그 총각은 시퍼런 검로 몸 주위를 휘감으면서 휘두르는데 서리발이 사처로 빛발쳤다. 총각은 훌 뛰어 날면서 칼로 내리찍었다. 두 다리를 앞뒤로 모래바닥에 쭉 펴고 앉았다가도 훌쩍 뛰어 일어나면서 턱을 발로 차는 동시에 옆으로 칼로 가로 찔렀다.
     총각이 검술을 연습하는 장면은 정말 신출귀몰해 보기 장관이었다. 마치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구름 속의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가도 구름 속에서 날아 내려오면서 꼬리로 땅을 치는듯하고 닭이 외발로 선후 원숭이가 왼팔을 이마 위에 얹고 해를 가리고 먼 곳을 보는 듯 했다. 꿈틀거리는 용이 대가리를 쳐들고 영용무쌍하게 앞으로 무찔러 나가는 듯이 검을 춤추면서 앞으로 찔러나갔다.
      그 날랜 검술장면을 보다나니 어금은 그만 손에 쥐였던 빨래를 모래바닥에 뚝 떨어뜨렸다.
       “어마나!”
      어금은 화뜰 놀라면서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인차 모래가 다닥다닥 매달린 빨래를 들고 개울물가에 가서 훌훌 씻어 버두나무 숲에 널어 말리었다.
    이때 허옥실이 봉인을 업은 채 빨래함지를 이고 사뿐사뿐 빨래터에 다가왔다.
    “아니, 언니, 참 오랜만이요.”
    어금은 방치를 놓고 옥실한테로 다가가 빨래함지를 받아 내려놓고 어린애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이유, 애기 곱다야, 봉인아, 뽀뽀하자.”
    옥실은 빨래 돌을 바로잡아 놓으면서 “봉인이 이름을 우리 시아버지가 근형이라고 고쳤소. 봉인이라는 이름은 애명이라오. 그래서      우리 요 14대 장손부터는 뿌리 근자 돌림으로 애들의 이름을 짓는다오.”라고 했다.
    “근형이, 그 이름 좋다. 최구장어른이야 훈장이기에 아무튼 이름도 잘 지을 분이죠.”
    그들이 한창 빨래를 하는데 징검다리로 한 총각이 검을 들고 건너왔다.
    어금과 옥실이 여겨보니 칼을 둘러멘 총각은 다름 아닌 옥실의 시동생인 경인이었다. 어금이가 바라보니 아까 저기에서 검술을 익히던 그 총각 같았다. 그리하여 어금은 대뜸 머리를 숙이는데 넙죽한 얼굴이 귀밑까지 홍당무가 돼버렸다.
    “아주머니, 아직 빨래하자면 물이 차갑겠는데 어째 애까지 업고 나왔소?”
    훤칠하게 생긴 경인은 성큼성큼 빨래터에 다가왔다.
    “일없소. 시동생, 검술을 익혔소?”
    옥실은 미소를 지으면서 시동생을 바라보며 빨래를 했다. 그런데 어금은 경인이가 다가오자 머리를 점점 더 수굿하고 몸을 외로 탈면서 빨래를 했다. 어금은 웬 일인지 경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높뛰는 것을 느끼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챈 옥실은 어금의 어깨를 톡 밀었다.
   “얘, 우리 시동생이야. 은인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 해서야 되니?”
   어금은 경인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간 잘 지냈소?”
   경인은 검을 뒤로 가져가면서 인사를 받았다.
   “양, 그쪽에서도 잘 보냈소.”
   그는 서리발치는 칼을 모래바닥에 놓고 개울물에 근육이 울뚝 뿔뚝 한 팔부터 썩썩 씻더니 푸푸 물을 불면서 세수하는 것이었다.
    “어, 시원하다.”
   옥실이 자기 머리 수건을 벗어주려다가 어금의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어금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눈을 곱게 흘기며 옥실을 바라보았다.
     옥실은 어금의 옆구리를 더 세게 서너 번이나 톡톡톡 다쳤다.
     어금은 그제야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 수건을 벗어 경인에게 내밀었다.
     “옜소. 수건으로 얼굴을 닦소.”
    경인은 인차 그 수건을 받지 못하고 옥실을 건너다보았다.
   옥실은 눈을 찔끔해보였다.
    “아주머니, 이래도 되오?”
    “별소리를 다한다. 초면도 아닌 오랍누이 같은 사이에."
    옥실은 말을 마치자 어금의 눈치를 살피었다.
 
     어금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 어색해 빨래를 대충 휑구어 꽉꽉 짜더니 함지에 담아 이고 일어났다. 그녀는 몽당치마를 걷어 안은 채 바람이 일게 버드나무숲에 가서 그 곳의 빨래도 걷어 함지에 담아 이더니 머리를 이쪽에 돌렸다.
    “언니, 먼저 집에 가겠소.”
    “응, 그래라.”
    어금은 경인에게 눈인사를 곱게 하고는 머리를 돌려 사락사락 모래를 밟으면서 동네 쪽으로 멀어져갔다.
    옥실과 경인은 토론이나 한 듯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동네 쪽으로 빨래함지를 이고 몽당치마자락을 휘날리면서 가는 어금의 뒤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후 옥실은 빨래를 물에 활활 휑구면서 옆에 앉아 칼자루를 매만지는 경인을 보고 넌짓이 말했다.
   “시동생, 저 어금은 예쁜데다가 마음씨 또 착한 애요. 저 애를 내 둘째동서로 삶았으면 좋겠는데 아주버니 생각에는 어떻소?”
    경인은 외까풀 눈을 끔뻑했다.
    “그럼 오죽 좋겠소? 그런데 명천의 울뚝이라고 소문난 기준이라는 양반이 맏딸을 쉽게 줄까?”
    그러자 옥실은 정색하여 경인을 바라보면서 힘 주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오. 시부모와 말해볼게.”
    경인은 신심이 한 가슴 뿌듯이 생겨났다.
    “글쎄 우리 아버지와 병완 영감은 아주 가까운 사이 돼서 아버지가 나서면 설득시킬 것 같기도 하오만.”
   청명절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모두 한복차림에 지지고 볶은 제물을 갖춰가지고 조상의 산소로들 갔다.
    운주동 뒤 산에는 성처럼 돌담을 쌓은 옛성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옛 성은 고구려 옛성이라고도 했다. 최구장은 그 성안을 명당자리라고 했다. 그 바람에 운주동과 영월동, 신흥동의 사람들은 그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 앞 다투어 산소를 썼다.
     청명이 되자 사람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조상들의 산소에 와서 가토를 하고 제주를 올리고 절을 올렸다.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서는 무당들이 한창 굿을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사람들은 제사를 끝내자 이 곳에 모여들어 무당들이 굿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이 무대에 올라서서 굿을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천하의 악귀들을 몰아내고 천하의 어진이들을 잘살게 도와주옵소서. 남자귀신이면 지고 나가고 여자귀신이면 이고 가주옵소서. 조상신들이여, 이 불쌍한 후손들을 도와주옵소서. 병마를 몰아내고 오곡이 풍성하게 복을 내리옵소서.”
    무당의 굿이 끝나자 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렸던 통돼지를 칼로 저며 내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래야 굿이 잘 든다고 했다.
   뒤이어 악귀를 몰아내는 검술표현이 있었다.
   그때 산소에 갔던 병완이 일가도 굿 구경을 하러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검객 경인이 나서서 머리태를 휘날리며 훌 날아오르면서 앞으로 검으로 내찔렀다. 그는 땅바닥에 앞뒤다리를 펴서 대고 앉았다가도 하늘로 훌쩍 뛰어 오르면서 옆으로 찍었다.  발로 턱 차기를 하고 뱀이 굴속에서 나오듯이 앞으로 검을 찌르면서 나가다가도  뒷발질을 하며 몸을 홱 돌려 뒤를 찌르기도 했다.
    그 날랜 장면을 보고 모두들 혀를 끌끌 찼다.  
     어금도 아버지 기준의 옆에서 경인오빠의 서리발치는 날랜 검술표현을 보고 박수를 연신 치였다.
     “잘한다!”
    기준도 그 놀란 검술표현에 고함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장내 숱한 사람들은 경인의 검술솜씨에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병완이 기준을 보고 검객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눈에 익은데. 누군지 모르겠냐?”
     기준은 아버지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최구장네 둘째아들이 아닙니까? 전번에 최구장 네 맏아들이 큰잔치를 할 때 신랑의 말고삐를 잡았던 그 총각 말입구마.” 
 
    병완은 검술재주를 피우는 경인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경인은 곤두박질재주를 부리며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서리발치는 칼로 악귀를 찍어 토막 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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